나의 세 번째 눈과의 짧은 조우
브루스 보스턴 지음, 유정훈 옮김 / 필요한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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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기 전에는 SF시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SF적인 상상력을 차용해 쓴 시들을 읽은 적은 있지만 시집 전체가 SF시인 경우는 없었다. 출판사 소개에 의하면 브루스 보스턴은 미국 SF시문학계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한다. 작가 자신은 과학소설보다 사변소설에 더 가까운 작품을 쓴다고 말하는데 이 시집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최근 SF를 Science Fiction과 Speculative Fiction으로 분류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사변소설에 대한 간단한 정의를 보면 ‘미래의 인간상이나 사회상에 대한 사색을 중심으로 하는 소설’로 되어 있다. 좀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단어다.


1975년 이후 2016년까지 발표한 시들 중에서 시인이 직접 선별해 수록한 선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과학소설의 범주를 벗어난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발표된 시들인데 스페이스 오페라, 초현실주의, 뉴웨이브,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하드보일드, 호러, 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들인데 읽다 보면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기존 시들과 다른 느낌을 주는데 낯설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시집 전체가 이런 경우는 다시 말해 처음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있다면 당연히 시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쩌면 연속성을 지닌 시집으로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연작시가 아니었고, 다양한 장르를 다루면서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연금술사, 광전사, 살아있는 시체들, 늑대인간, 변신인간, 천사, 악마의 아내, 유령 아내 등의 이야기는 판타지의 영역이다.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 이미지를 잠시 빌려왔다. 뱀파이어와 로봇을 결합한 <로보뱀파이어>는 ‘진부한 이미지’를 가졌지만 자신을 만든 이를 첫 희생자로 삼았다는 대목을 읽고 감탄한다. <우주인의 나침반>을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서남북의 방향이 우주에서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된다. “우주는 방향이 없고/ 동시에 모든 방향을 쥐고 있으며”라는 시어는 나의 시야를 순간 넓혀준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시들에서 과거 핵전쟁의 위험과 지구온난화 문제 등을 마주한다. “볼 것이니, 깨진 바닥에 / 금이 가 곧 황무지가 되어 / 사라진 고속도로,” (<고스트 피플>) 우리 문명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고 새로운 종이 이 곳에 정착할 것이다. 전설 속 사라진 문명인 아틀란티스에서 환상을 제거한 <아틀란티스의 빈민가>는 “아틀란티스 빈민가의 / 길거리에 늘어선 /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집들 안에서 / 살아가고 죽는 이들은 / 여느 착취당한 종족과 / 다르지 않다 “고 말한다. 그리스의 민주주의 뒤에 노예제도가 있었음을 우리가 자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단순히 SF적인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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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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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책방이듬의 운영자가 쓴 에세이다. 이 책에서 먼저 시선을 끈 것은 영역시집 <히스테리아>가 세계적 권위의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는 정보였다. 하지만 좀더 찬찬히 소개글을 읽으니 시인이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등을 엮었다는 부분에 눈길이 더 갔다. 하나 고백하자면, 늘 그렇지만 시인에 대해 잘 모른다. 시집을 가끔 읽지만 내가 읽었던 시인조차 기억 못할 때가 있다. 주로 읽는 소설가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시인은 더 심하다. 최근 시집에 관심을 더 두고 있지만 그래도 소설에 비하면 엄청 적다. 책상 옆에 쌓여 있는 몇 권의 시집이 보이지만 언제 읽을지 기약할 수 없다.


책방이듬은 일산 호수공원 근처에 있었다. 과거형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전한 것 같기 때문이다. 동네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나부터 동네서점을 가지 않는다. 회사 근처 대형서점에 가서 사는 경우도 드물다. 만약 동네에 내가 자주 가는 책방이 생긴다면 가끔 생기는 상품권으로 책을 한두 권 정도 살지 모르겠지만 크게 자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괜히 뜨끔한 대목들이 많다. 그리고 읽으면서 가수 요조의 책방무사가 떠오른 것도 같은 독립서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두 저자의 전문 분야가 다르다 보니 풀려나오는 이야기도 다르다. 그래도 이 소소한 일상의 기록과 에피소드들이 가슴 한 곳을 파고든다.


내가 시인의 산문집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듣고 난 후다. 소설가와 다른 시각이란 그의 말이 나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시인의 산문집에 일단 먼저 눈길을 준다. 산문집 자체를 읽지 않았던 시절도 있지만 조금씩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시인의 산문집엔 더 관심을 두었다. 읽다 보면 시인의 시도, 다른 시인의 시도 에세이 속에 들어 있다. 시집을 잘 읽지 않는데 이렇게라도 읽어야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한몫했다. 어떤 글은 읽으면서 산문보다 시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둔한 내 감성에 그렇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한 에피소드에서 시인의 시가 어렵다고 말하며 다른 시를 보내달라고 한 한 방송작가의 말이 다시 뜨끔했다.


독립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성공의 반대길을 가는 것과 같다. 한 달 임대료 등을 벌기가 힘들다는 말은 내가 독립서점들을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저자의 지인들이 책방 여는 것을 말린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라면 하는 것이 맞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고생의 길을 가는 시인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산다. 이 산문집은 그런 일상을 조용히 담아낸다. 시 청탁을 거절하는 글을 읽으면서 생활의 무거움을 다시 느낀다. 자신은 책방을 벗어나고 싶은데 비용 등의 이유로 책방에서 술을 마시자는 지인의 이야기를 다룬 에피소드는 나의 과거 행동들을 돌아보게 한다.


작은 책방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 자신도 강사로 나가 강의를 한다. 한 고등학교에 강의를 한 후 특강료를 돌려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중에 임대료를 낼 때 그 돈이 아쉬웠던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글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읽었는데 그 기억이 겹쳐졌다. 물론 책방이듬에 온 작가나 시인들이 그녀의 강사료를 거절한 경우도 있다. 일산 호수공원을 생각하면 김훈과 김연수가 떠오르는데 황석영 이야기가 불쑥 나와 놀랐다. 한때 일산 호수공원과 파주 출판단지는 나의 놀이터 중 한 곳이었다. 이젠 너무 멀고, 자유롭게 다닐 수 없지만.


가독성은 좋다. 문장도 간결하고 시적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을 했지만 담고 있는 생각과 문장들이 나의 시선을 오래 잡고 있었다. 단숨에 읽으려고 하다 멈추고 다른 일을 하고, 짬을 내어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단숨에 달렸다. 읽으면서 그가 경험한 소소한 일상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떤 대목에서 잠시 반발해보지만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의 기록들은 시간 순이 아니다. 편집에 의해 시간은 뒤섞인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에피소드 하나. 손님은 왕이 아니냐는 진상 손님에게 여기서는 다 평등하다고 말하는 대목을 읽고 그 기지에 놀랐다. 시인의 시가 쉽지는 않은 듯한데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시인의 산문집은 이상하게 시를 읽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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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가, 나의 악마
조예 스테이지 지음, 이수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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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의 광고 문구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지옥 같은 데뷔작’, ‘<케빈에 대하여>, <나를 찾아줘>, <오멘>의 만남’이란 문구다. 이 문구들 중에서 나의 시선을 특히 끌었던 단어는 ‘지옥’ 과 ‘오멘’이었다. 예전에 대충 본 영화 <오멘>과 워낙 유명해서 읽었던 소설 <오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번역 제목에도 ‘악마’란 단어가 들어가기에 그대로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악마가 등장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오멘>이나 <로즈메리의 아기>를 떠올렸다. 착각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과 다른 전개가 펼쳐졌다.


소설은 엄마와 딸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한 명은 엄마 수제트. 다른 한 명은 딸인 해나다. 수제는 크론병으로 고생하다 현재의 남편 알렉스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예쁜 딸 해나를 낳았다. 평범한 딸이라면 육아의 힘겨움에 멈출 수 있지만 이 딸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일곱 살이 되었는데도 말을 하지 않는다. 선택적 함구증이라도 걸린 것일까? 말을 못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학교에 보내면 되지만 유치원 등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다. 속된 말로 잘린다. 엄마가 딸을 홈스쿨링 하는 데 진도를 잘 따라온다. 처음 봤을 때 수제트는 조금 특수한 아이 육아 지친 엄마 정도로 보였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것이 큰 착각임을 보여준다.


해나가 처음 말을 했을 때 나의 머릿속은 드디어 ‘악마’가 등장했다고 좋아했다. 악마가 어떤 능력을 보여줄까 기대했다. 그런데 이 등장은 연습한 연극이었다. 마녀처럼 자신을 꾸민 것이다. 해나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엄마에게서 아빠 알렉스를 독차지하기 위해서다. 육아에 지친 엄마가 보여주는 몇 가지 반응들에 비해 회사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해나를 사랑으로 보듬어준다. 육아에서 배제된 아빠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다. 해나가 말을 못해도. 유치원 등에서 문제를 일으켜도 그는 현실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해나에게 아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이자 존재다. 모녀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한다.


수제트는 신화가 된 모성애에 짓눌린다. 말을 못하는 것 때문에 진단을 여러 곳에서 받는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늘 가까이에서 본 것 때문에 딸이 저지른 것임을 직감한다. 늘 붙어지내야 하는 그녀에게 쉴 틈이 없다. 독박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엄마들의 고통을 그대로 투사해놓았다. 여기에 해나의 점점 심해지는 장난과 악의 가득한 행동은 도를 넘어선다. 다행이라면 아직 해나가 일곱 살 여자 아이란 사실이다. 그녀는 딸의 문제를 파악하고 고칠 수 있는, 혹은 받아줄 학교를 열심히 찾을 수밖에 없다. 잠시 천사 같은 딸과 놀아주는 아빠는 그것이 불만이지만.


해나는 아주 똑똑하다. 몰래 움직이는데도 능숙하다. 이 때문에 이 소녀는 엄마 아빠의 정사를 보고, 엄마 몰래 들어가 엄마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낸다. 아빠의 컴퓨터를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을 찾아내 그 역할에 몰입하고. 이것으로 엄마를 겁준다. 엄마에게 들려준 첫 말도 여기서 나왔다. 첫 시작은 이런 작은 위협이지만 강도가 점점 심해진다. 엄마가 먹는 약을 바꿔 놓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압정을 바닥에 깔아놓는다. 이 강해지는 정도가 이 소설의 긴장감을 점점 고조시키고,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기대하게 만든다. 이런 아이를 마주해야 하는 부모의 심리 묘사도 아주 현실적이다.


작가는 육아의 어려움에 아이가 소시오패스라면 어떨까? 하는 공포를 엄마의 시선으로 그려내었다. 아이가 자라고, 적대감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는 과정을 통해 그 두려움을 단계를 하나씩 높인다. 그래도 엄마라는 모성애 때문에 갈등하게 만들고, 죄책감을 느낀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혹시 다른 반전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 엄마가 숨긴 사실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다. 물론 숨긴 것은 있다. 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난 지금 왠지 이 작품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된다. 착한(?) 딸로 돌아온 해나가 진짜로 엄마와 대결하는 장면으로 가득한 소설을 말이다. 마지막 문장 “최고로 착한 소녀가 되어야 한다.”가 이렇게 섬뜩하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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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주로 출근합니다 - 놀랍도록 유쾌한 우주비행사의 하루
마리옹 몽테뉴 지음, 하정희 옮김 / BH(balance harmony)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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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sf 장르는 스페이스 오페라다. 그렇다고 다른 장르를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쉽고 빠르고 재밌게 읽을 수 있기에 이 장르를 좋아하지만 하드 sf도 좋아한다. 이런 장르 소설을 읽다 보면 우주라는 공간이 너무 쉽게 다가온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곳으로. 하지만 현실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는 것도 힘들다. 1969년 달에 인류가 발을 내딛은 후 우리가 우주비행사이라고 부르는 인물들은 지구 주변에서 맴돌 뿐이다. 우주 정거장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영화처럼 쉽고 가볍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저자는 실존 인물인 토마스 페스케를 통해 이 과정을 사실적이고 유쾌하게 그려내었다.


제목만 보면 우주를 쉽게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우주로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일단 우주비행사 후보에 선발되는 것부터 어렵다. 수많은 훈련과정도 어렵고, 공부할 것도 많다. 내 기억으로도 우주왕복선을 보내려고 하다가 실패한 후 더 이상 보내지 않고 있다. 우주왕복선을 보내지 않는다고 우주선을 보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주정거장의 수선과 우주에서의 실험 등을 위해 각국이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당연히 수많은 우주비행사 지원자들이 모집 공고가 나오면 지원한다. 유럽우주국 우주비행사 지원자는 8천여 명이었고, 그 중에서 합격자는 단 여섯 명이었다.


십 수 년 전 한국도 우주에 한 명을 보냈다. 이소연 씨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그녀와 고산 씨가 뽑혔다. 이소연은 예비 우주인이었지만 결국 그녀가 갔다. 그 당시 크게 홍보되었지만 나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몇 년 전 <중력>이란 소설을 읽고 우주비행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알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우주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며, 운이 좋아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만화 속 토마스도 그의 동료들이 먼저 우주로 나가는 것을 봐야 했고, 그가 갈 차례에 몸에 이상이 없어야 했다. 만약 그에게 문제가 생기면 예비 우주비행사가 그 대신 간다. 실제 이런 일은 가끔 벌어진다고 한다. 이 만화에도 자주 나오지만 이 우주비행사들은 아주 승부욕이 강하고, 언제라도 우주로 나가고 싶어한다. 훈련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선발과정부터 괴상하다. 약간 희극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겠지만 시험은 늘 어렵고 괴상하지 않은가. 유럽우주국이란 단체의 특성 상 선발에 국가 배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한 우주비행사를 우주로 보내는데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그들이 받는 훈련은 또 어떤가. 미국 나사와 러시아 등을 오가면서 훈련과 교육을 끊임없이 받는다. 대단한 열정과 체력이 없다면 견딜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이런 훈련들을 받는 것은 우주란 낯선 곳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몇 개월 살다 지구로 돌아온 후 간단하게 묘사한 장면을 보면 다른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우주복에 난 작은 구멍 하나가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리고 우주에 나가서 그들이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고 실험하는지 알려준다. 이것도 역시 그들끼리 경쟁한다.


우주에서 그들이 수많은 실험을 하지만 지구에 돌아온 이후 그들이 바로 훌륭한 실험 재료다. 낯선 환경에서 살다 온 그들이 피부, 혈액, 뼈 등의 상태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실제 우주선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현실에서 제품으로 만들어져 나온 것들이 많다. 가끔 광고 방송에서도 본다. 읽으면서 내가 별똥별이라고 생각한 것들 중 최소한 한두 개 정도는 우주에서 버린 쓰레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우주 쓰레기를 대기권에서 불태우기 때문이다. 뭐 각도가 잘못되면 그냥 땅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우주비행사들의 귀환에서도 적용된다. 자그마한 실수로 귀환 각도가 잘못되면 그 속에 타고 있는 우주비행사들이 받는 중력이 달라진다. 이 중력에 대한 설명은 그림으로 확인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


어떻게 보면 따분한 일상이고 반복이다. 우주비행사의 일상을, 그 중에서 훈련과 교육을 누가 재밌게 보겠는가. 하지만 작가는 이 일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뛰어난 연출력으로 생동감 있게 정보를 제공한다. 왜 이런 훈련을 받는지, 중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우주복을 입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우주선에서 재활용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의 소소하지만 중요한 정보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화면 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웃게 만든다. 우리가 보게 된 장면들에 담긴 의미를 알려준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재미있는 묘사는 이 책의 가독성을 높인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우주에 나갈 수 있을까? 잠깐 우주로 나간 나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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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ㄹㄹ 2021-02-02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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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들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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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음악을 잘 듣지 않지만 한때는 늘 옆에 끼고 살았다. 그 당시 유행하는 음악을 흥얼거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샀다. 앨범이 점점 사라지고 음원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점점 음악과 멀어졌다.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이 생기면서, 텔레비전에서 멀리 떨어지고 음악 방송을 거의 보지 않으면서 음악이 낯설어졌다. 한때 ‘나는 가수다’나 ‘복면 가왕’에 빠져 집중하던 시절도 얼마 지나 사라졌다. 최근에 나오는 아이돌 음악은 나와 맞지 않거나 너무 낯설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트로트 방송은 트로트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만들어주었지만 트로트 가수들이 내세우는 ‘민족의 음악’이란 말에는 콧방귀를 뀐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 트로트가 자신의 삶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책 도입부에 트로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글들은 한 번에 집필한 것이 아니다. 긴 세월 동안 걸쳐 연재하고 고쳐 쓴 것들을 새롭게 덧붙여 낸 것이다. 도입부 글을 읽고 트로트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다. 저자 자신이 음악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음악 자체보다 자신의 경험과 시대를 엮어 그 시절과 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일제강점기 노래를 말하면서 트로트만 말하지 이 음악의 기원인 엔카와 그 표절작에 대한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재즈를 한국 경성에서 연주했다는 부분도, 그 가수들 일부가 클래식 등을 공부했다는 사실도 말이다. 음악사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가볍게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개괄적 흐름은 쫓아가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때 자신의 삶을 뒤흔든 음악들이 있다. 시대별로 장르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한 음악들은 멜로디 중심이었다. 가사는 솔직히 뒷전이었다. 팝송의 경우 가사를 알고 들은 경우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즐겨 들었던 팝송 가사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들이 생겼다. 하지만 늘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멜로디였다. 그 다음에 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달라 놀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어릴 때 아무 것도 모른 채 불렀던 유행가들은 또 어떤가. 지금 내 아이가 따라 부르는 유행가의 가사 의미를 알까? 따라 추는 춤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 창법은? 작은 푸념을 해본다.


유행가는 그 노래가 불리는 순간 그 노래를 아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다. 저자도 개그맨과 가수 이야기에서 다루었지만 히트곡 하나만 있어도 평생 그 노래를 우려먹을 수 있다. 이 노래는 시위 현장에서, 거리 응원에서, 노래방의 작은 모임에서도 동일하다. 그 멜로디를 흥얼거릴 때 우린 그 감정을 잠깐 그 감정을 교류한다. 저자가 5.18 광주를 겪으면서 80년대 대중 가요를 잊고 지냈다고 한 것은 그날의 충격을 대중 가요의 가사들로 치유할 수도, 멈출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김건모에서 멈춘 것은 그의 감성이 따라갈 수 있는 한계점이 그 곳까지가 아니였을까.  <스피드>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해석은 씁쓸한 현실이지만 그 시대를 지난 사람에게는 한때의 유행가였다. 그것은 저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다룬 노래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유행가가 장르가 아니라고 말한다. 맞다. 시대마다 유행했던 노래들의 장르는 다양하다. 60~70년대, 아니 그 이전 유행했던 노래들도 모두 뽕짝은 아니었다. 그 시절을 풍미했던 인물들 덕분에 착시 효과가 생긴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세밀하게 다루지 않은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쉬운 대목이다. 통기타로 대변되는 포크 음악이나 락 등을 다룬 이야기에서 많은 이야기가 생략된 채 거시적으로 다룬 부분도 아쉽다. 정치와 음악을 엮어 들려준 이야기는 머릿속에 담아둘 만하다. 정치 홍보곡들이 만들어져 뿌려진 반면에 민중가요가 나와 그에 대응해 불리게 된 현상도 같이 말이다. 그리운 이름인 김광석과의 인연을 다룬 부분은 괜히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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