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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으로 제목을 바꾸어 개정판이 나왔다. 왠지 어색한 제목 변경이다. 일본어로 모두 표기했다면 덜 어색했을 텐데 ‘백마’만 ‘하쿠바’로 바꾸었다. 내용 상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집에 있는 책이 구판이라 구판을 읽었다. 백마산장이란 제목이 붙어 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백마산장이란 단어보다 펜션 머더구스란 단어를 더 많이 봤다. 실제 이 소설은 영국의 동요 머더구스를 이용해 트릭을 만들고, 밀실 트릭도 함께 엮었다. 고전 추리소설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작품이다. 머더구스에 얽힌 암호는 암호풀이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 도전할 만하다.
이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두 개씩 있다. 이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상응한다. 프롤로그에서 두 사람의 죽음이 나온다면, 에필로그에서는 이 죽음들과 다른 죽음의 비밀이 밝혀진다. 이 죽음들과 상관없이 형사가 등장해 펜션의 숙박객들을 모아놓고 범인을 지적하는 부분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범인을 지적할 때 장면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런데 단순히 한 명의 범인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사건들 이면의 이야기들이 더 흘러나와 색다른 맛을 준다. 특히 두 개의 에필로그는 앞에 나온 의문을 깨끗하게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오코의 오빠 하라 고이치가 죽은 뒤 기묘한 엽서 한 통이 나오코에게 왔다. 오빠 고이치는 펜션 머더구스에서 음독자살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 엽서가 이 자살에 의문을 품게 한다. 오빠의 죽은 지 1년만에 그 펜션에 간다. 처음에는 혼자 갈 생각도 했지만 친구 마코토가 동행하면서 함께 간다. 이 둘은 상당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남자들의 관심을 끄는 미모를 가진 나오코와 반대로 마코토는 남자로 자주 오해받는다. 성격도 나오코가 좀 더 감상적이라면 마코토는 냉철한 이미지다. 이 둘은 콤비가 되어 머더구스 펜션에서 일어난 사건을 파헤치고, 동요 머더구스를 둘러싼 비밀을 밝혀낸다.
머더구스 펜션은 각방에 정해진 이름이 있다. 그리고 각방에 머더구스가 쓰여진 역자가 걸려 있다, 이 펜션을 구입할 때부터 있었고, 판매자가 이것을 떼지 말라고 했다. 이 액자 뒤에는 동요의 번역이 있다. 나오코 일행은 각방을 돌면서 이 머더구스를 복사하고, 나중에는 원문과 대조한다. 이 동요는 펜션의 각방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규칙으로 해독될 때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지고, 트릭이 풀린다. 이 트릭이 풀렸다고 앞에 있었던 죽음에 대한 단서가 단 번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죽음이 일어난 후 도착한 형사와 함께 힘을 합친 후 살인자의 정체가 밝혀진다.
이 펜션은 매년 한 명씩 사람이 죽었다. 첫 번째 죽음과 마지막 죽음은 같은 곳에서 일어났다. 끊어진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다. 두 번째 죽음은 나오코의 오빠 고이치의 자살(?)이다. 나오코와 마코토는 고이치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이어간다. 트릭을 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펜션이 매년 같은 사람들이 와서 묵는다고 해놓고, 이전과 같은 상황이나 장면들을 재현한다. 사실 세 번째 죽음이 없었다면, 인간이 탐욕이 멈추었다면 아무 일 없이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탐욕은 쉽게 멈추질 않고 점점 자란다. 이 탐욕의 이면에는 한 가지 숨겨진 비밀이 있는데 이것이 밝혀졌을 때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작품들 중 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작품들 편차가 너무 심해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번 작품은 마음에 든다. 영국 고전추리의 느낌 때문이다. 트릭을 풀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과 범인을 지목하는 부분 사이에 큰 구멍이 있지만 말이다. 밀실 트릭도 특별하지 않는데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사용한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실제 이 트릭을 푸는 과정을 좀더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좀더 나오코의 탐정 놀이가 흥미로웠을 텐데. 작가는 여자는 무섭다고 썼지만 이야기 속에 나오코를 둘러싼 남자들의 관심은 ‘미녀는 괴로워?’ 혹은 ‘귀찮아?’가 아닐까. 최근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들을 한 권씩 읽고 있는데 이 작품도 그 연장선에서 읽었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