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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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죽이기 시리즈 최신판이다. 이 책 이전에 세 편이 먼저 나왔다. 불행인지 모르지만 앞에 세 권은 아직 읽지 못했다. 죽이기 시리즈의 첫 권인 <앨리스 죽이기>가 한때 역주행 인기를 끌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이 시리즈 이전에 출간된 책들을 집에 모셔 두고 있지만 언제 읽을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 이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둔 것은 이전에 쓴 글에도 나오지만 <분리된 기억의 세계>를 읽고 난 후다. <인외 서커스>의 무한질주는 또 어떤가. 그리고 이번 소설을 읽고 이 시리즈를 완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죽이기 시리즈는 고전 동화를 뒤틀고 현실과 연결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이전 작품과 조금 차이가 있는 구성인 듯한데 아쉽게도 죽이기 시리즈 다른 책도, <피터 팬>의 원전도 읽지 못했다. 다만 어릴 때 본 <피터 팬>의 뮤지컬이나 영화나 애니만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 속 피터 팬의 말과 행동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원서에 대한 설명을 천천히 읽으면 이 작품 속 피터 팬이 원작에 더 가깝다고 한다. 집 어딘가에 예전에 사 놓은 피터 팬 소설이 있을 텐데 언제 읽고 이 책의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다.


피터 팬이 웬디 등을 다시 네버랜드로 데리고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피터는 쉽게 네버랜드를 찾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 예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피터 팬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리고 전편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한 말하는 도마뱀 빌이 나타난다. 읽을 때는 거부감이 들었는데 다 읽은 지금은 이 성격이 어린 아이의 실제 성격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우기는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뭐지?’ 하는 놀람이 먼저였다. 그가 누군가를 죽이면서 이 생각은 더 심해졌다.


현실에서 이모리가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참석한다. 그 장소에서 친구 한 명이 쓰러진다. 처음에는 이 상황을 그냥 사고로 받아들였다. 최소한 빌이 네버랜드의 세계 속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자신이 살고 현실에서 아바타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작품 속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아바타라의 공간이고, 실체는 네버랜드 등에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다른 설정이다. 이것은 다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죽음은 실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동창회 모임에서 내가 죽는 상황이 벌어져도 네버랜드에서 죽지 않으면 잠든 곳에서 다시 깨어난다. 이 사실이 아주 끔직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다.


이야기는 네버랜드와 동창회 모임 장소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네버랜드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동창회의 누군가가 죽는다. 그런데 이 모임에 온 사람들이 자신이 네버랜드의 누군지 말하지 않는다. 만약 알려지면 피터에게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관성 속에 피터에 의해 팅커 벨이 죽는다. 그런데 피터 팬은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팅커 벨의 비명을 들었을 때 이 사실을 증명할 증인도 있다. 네버랜드에서는 팅커 벨을 죽인 범인을 찾고, 아바타라의 세계 속에서는 누가 누구의 아바타라인지, 눈으로 고립된 공간을 벗어날 방법 등을 찾기 바쁘다. 그리고 네버랜드에서 피터 팬과 붉은 피부족과 해적 등이 싸우고 죽이는 상황은 계속 이어진다. 당연히 동창회 숙소에서는 죽는 자가 늘어난다.


단순히 두 세계를 바꾼 것에 멈추지 않고, 원작의 한 문장에서 확장한 피터 팬의 성격을 극대화했다. 여기에 서술트릭과 전통적인 역할극을 집어넣어 이야기에 두께를 더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잔혹한 장면들인데 빠른 진행으로 이 부분에 매몰되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팅커벨을 죽인 사람과 죽인 이유를 밝혀내는 마지막 부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는 내용 속에서 원작을 다시 생각하고, 이야기 속에서 다른 현실과 반전의 재미를 누릴 수 있었다. 이 시리즈 역주행을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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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트릭의 모든 것
니타도리 케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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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서술트릭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술트릭을 다룬 작품들을 상당히 읽었지만 이 장르에 감탄한 적은 많지 않다. 아마도 불평등한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을 한 꺼풀 벗기면 당했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선입견은 미스터리 장르를 읽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데 서술트릭은 특히 그렇다.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에도 나오지만 서술트릭이란 것을 알고 본다면 속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실제 이 소설에 실린 단편들을 읽고 처절하게 당했으니까. 작가가 말한대로 메모하면서 읽고, 트릭을 찾겠다고 달려들었다면 아주 조금 달랐을지 모르지만.


모두 여섯 편의 서술트릭 단편이 실려 있다. 분량도 제각각이다. 다루고 있는 사건도 살인 같이 무시무시한 것이라 아니다. 막힌 화장실 변기를 누가 뚫었는가, 사진 동호회 확대기 필터 무단 교체 범인은 누군지, 미국 산속 외진 별장의 두 인질의 정체는 무엇인지, 얼마 전에 산 미스터리 책에 담긴 비밀은, 낡은 연립주택 속 중국인의 하이셴을 훔쳐간 인물은 누군지, 각지의 유명 조형물을 훼손하는 헤드헌터를 잡는 방법 등을 다룬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한 명이 늘 등장하고, 같은 성 벳시가 계속해서 나온다. 읽으면서 조금씩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마지막 단편이다.


<뻥 뚫어주는 신>은 서술트릭을 의식하면서 기존 추리방식으로 접근해 범인을 추리했다. 여자 화장실에서 막힌 변기가 뚫렸는데 누가 했는지 찾아내는 일이다. 내가 추리한 범인은 당연히 아니었고, 선입견이 만든 사고 속에서 움직였다. 이 설정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등을 맞댄 연인>은 히카루와 시오리라는 두 남녀의 시점으로 서술한다. 두 사람의 감정과 관찰이 진행되면서 하나의 사건이 둘을 이어준다. 사건은 사진 동아리방 확대기 필터 무단 교체 사건이다. 역시 선입견이 하나의 장치로 작용하고, 마무리는 훈훈하게 진행된다.


<갇힌 세 사람과 두 사람>은 짧은 분량 속에 낯익은 설정을 녹여내었다. 숫자와 이름 등이 나오는 장면이 하나의 멋진 트릭이 된다. <별생각 없이 산 책의 결말>은 손님 없는 칵테일 바에서 화자가 자신이 읽은 추리소설을 들려주고 범인을 맞추는 게임을 다룬다. 아니 범인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어떻게 그 범행이 가능했을까 의문을 품게 한다. 하지만 진짜 서술트릭은 다른 곳에 있다. 왠지 모르게 기분 좋게 당했다는 느낌보다 ‘뭐지?’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 아마 기술적인 부분을 모르면 풀 수 없는 트릭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풀어내면 스포일러라 생략.


<빈궁장의 괴사건>은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연립주택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사건은 말린 하이셴이 사라진 것이다. 이 단편의 재밌는 부분은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대목들이다. 트릭 하나는 맞추었는데 무심코 읽은 부분에서 차이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작가의 주의를 염두에 뒀다면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은 탐정 사무소가 직접 나오는 유일한 단편이다. 읽으면서 의문이 생긴 부분에 대한 것이 트릭을 푸는 중요한 단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편들을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본 것이 가장 큰 재미였다. 혹시 시리즈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짝 품어본다.


작가 후기도 이 단편집에서 한 편의 단편 역할을 한다. 이 정도 스포일러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서술트릭을 다룬 작품을 더 읽게 되면서 초반의 반감이 많이 사라졌다. 가끔 이 반감의 원천이 되는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면 서술트릭을 깨트릴 단서를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아직 서술트릭은 나의 독서법과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적고, 그리고, 비교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단편 속 서술트릭은 제목처럼 다른 작품의 서술트릭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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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간 스파이
이은소 지음 / 새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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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소개를 읽고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북한 남파 공작원이 서울의 중학교 교사로 잠입해 중2를 상대한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인민군 최대 강적 중2병 환자들의 선생이란 설정이 너무 진부해보였다. 그러다 서점에서 이 책 표지와 안쪽을 잠시 훑어보고 알 수 없는 관심이 생겨 선택했다. 여기에 작가의 전작에 대한 호평도 물론 한몫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책을 읽자마자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탄탄한 문장과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읽지 못한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관심이 뻗어나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주는 남파 공작원 훈련을 받고 내려오던 중 남한의 전투함에 발견된다. 다른 조원들이 죽는 사이 방탄조끼 덕분에 운 좋게 죽지 않는다. 접선 장소에 도착해 죽으려는 사이 남파공작원 황 사장이 그녀를 죽지 못하게 막는다. 그의 집 옥탑방에서 살면서 남한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편의점 알바, 피시방 알바 등을 하면서 훈련을 몸에 붙인다. 처음 그녀가 황 사장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남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살아온 곳과의 차이를 표현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현실이지만 늘 배고픔과 결핍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낭비로 비추어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음식의 맛은 또 어떤가.


감정을 지우는 훈련은 받은 그녀는 속으로 남한의 자본주의를 비웃는다. 그러다 편의점 앞에 세워둔 스쿠터가 도난당하는 장면을 보고 달려가 아이들을 잡는다. 처음 강석주 선생과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이다. 선생은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간첩인 그녀가 바라는 바다. 이렇게 석주와 해주는 엮이기 시작한다. 이후 어리바리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석주의 모습을 보고 해주는 그를 이용할 생각을 한다. 실제 가짜로 만든 신분증과 자격증을 이용해 계약직 선생이 되었을 때 석주는 아주 필요한 순간마다 해주를 도와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둘의 로맨스를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만약 로맨스로 이어졌다면 작품은 이상해졌을 테지만.


북한의 남파공작원은 남한 사회의 이방인이다. 이 이방인이 본 학교의 모습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공간이다. 이 이방인의 시선은 우리의 교육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 선생과 선생들 사이의 관계, 학생과 학생의 관계, 학교와 학부형의 관계 등이 나오는데 길지 않지만 분명하게 그 문제점을 보여준다. 사실 여부보다 관계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에 따라 갑을 관계가 뒤바뀌는 현실은 가슴 아프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그 상황을 넘어가기에 급급한 학교의 모습은 또 어떤가. 결코 낯설지 않은 상황들이다. 물론 이 낯선 시각으로만 이야기를 채웠다면 아주 건조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중반으로 넘어가면 반전처럼 상황이 바뀐다. 이 바뀐 상황이 개인적으로 아쉽다. 남파공작원이 중2들과 관계가 더 깊어지고, 어리바리한 석주 선생과 썸을 타는 장면이 더 나왔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얼어붙은 감정에 좀더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면 더 좋고. 작가는 이 남파공작원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이 간첩을 주시하고 있던 사람을 보여주면서 단순히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는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여운이 길게 남는지도 모르겠다. 해주의 웃는 얼굴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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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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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온 <루팡의 딸>로 요코제키 다이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재회>가 있었다. 그때의 서평을 찾아보니 “화려한 연출을 부리지 않고 견실하게 이야기를 만든다”고 쓴 글이 보인다. 아마도 루팡이란 단어 때문에 이 작품에서도 화려한 사건 사고 등을 예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1988년이란 시대적 배경으로 그 시대 여성들의 일상을 차분히 풀어낸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그때나 지금의 염원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여성들에게 오늘 새롭게 시작된 헤이세이라는 세상은 어떤 시대가 될까?”


소설은 두 여성의 시점으로 먼저 진행된다. 대기업 도하츠 자동차 홍보부서에서 일하는 삼십대 중반의 히무라 마유미와 간호사로 일하다 의사와 결혼해 전업주부가 된 진노 유카리 등이다. 마유미는 결혼을 바라지만 자신의 눈에 차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선을 봐도 마찬가지다. 이런 그녀에게 과거 학교 선배와의 만남은 새로운 기회가 된다. 바로 진노 도모아키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는 사내홍보를 위해 회사 선수를 만나러 간 곳에서 야구 공에 맞았기 때문이다. 도모아키에 대해 나쁜 기억이 있다. 자기를 잘 따르던 후배가 그에게 강간당한 후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런데 도모아키는 다른 말을 한다. 그녀의 유혹이었다고. 의사와의 결혼을 바라는 그녀에게 과거의 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유카리는 부유한 집안의 며느리로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시아버지도 의사고, 남편도 의사다. 시어머니와 점심을 같이 먹는다. 약간의 트집이 있지만 평범한 가정의 풍경이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1일분에 5천 엔이나 하는 고급 초밥을 한 달에 몇 번이나 사먹는다. 늦게 들어온 남편은 그 초밥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런 풍요함 속에 남편과의 부부관계는 몇 개월 째 없다. 연애시절 그의 성욕을 생각하면 분명 딴 여자가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손자가 생기지 않자 유명한 신사에 임신을 기원하러 가자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가 답답하다. 이런 그녀에게 남편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다마나 미도리는 좋은 이웃이 된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인식한다.


소설의 첫 장면은 바다에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녀가 진노 유카리라고 말한다. 이 정보가 나온 후 왜 그녀가 그곳에서 죽었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설정이다. 두 여성의 일상이 나온 후 시체가 발견되고, 이 시체를 둘러싼 사람들과 형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왜 이 시체를 진노 유카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작가는 과거의 인물을 한 명 더 등장시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읽다 보면 그녀의 죽음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시체의 정체를 알게 된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인물과 죽은 자의 과거가 이 상황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든다. 거짓말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진짜 진실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또아리를 튼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 가지 가정을 세우고, 그들의 사연을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늘어난다. 그 시대와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은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데 작은 장애가 된다. 어쩌면 한국 남성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유미의 삶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의 욕심은 이해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뭐 삶이 언제나 이해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자살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는 대목이 나올 때, 마지막 장면을 볼 때 두 여성의 삶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녀들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제 이 작가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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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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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은 처음 읽었다. 이전에 <인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희곡이란 이유 때문인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작품도 소설이라고 착각했다. 희곡이란 사실을 알고 약간 주저했는데 읽기를 잘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주 재밌었다. 등장인물들을 한정시키고, 상황보다 대화에 더 많은 부분을 보여준다. 이 희곡은 간결하면서도 유머와 풍자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 읽었던 <타나토노트>의 황당한 설정들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모두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폐암 수술 도중 아나톨 피숑은 죽는다. 수술 현장의 모습은 프랑스 수술실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인원은 부족하고, 휴가는 가야한다. 희극적으로 이 상황을 묘사한 후 장면은 천국으로 바뀐다. 아나톨은 침대에 누워 있고, 그의 주위에 카롤린이 온다. 처음에는 카롤린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카롤린은 아나톨의 수호천사이자 그의 변호사 역할이다. 그리고 베르트랑이 등장한다. 그는 이 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하고, 폐암으로 죽은 그를 멍청이라고 부른다. 둘의 티격태격 싸운다. 그런데 나중에 이 둘이 이승에서 부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잠에서 깨어난 아나톨은 몸 상태가 최상이다. 그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착각이다. 그가 수술 중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롤린이 이 말을 하는 주저주저한다. 이제 그는 재판에 회부된다. 이 재판은 천국에 머물거나 환생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다. 처음에 아나톨은 상속 등의 문제 때문에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보통 죽은 다음 천국에 오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그는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 지금 돌아간다면 신체에 문제가 있지만 살 수는 있다. 카롤린의 설득으로 그는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이 희곡의 진짜 재미는 그의 환생 여부를 둘러싼 재판이다. 아나톨은 자신을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좋은 가장, 좋은 직장인으로 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검사 베르트랑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어릴 때 저지른 나쁜 행동, 단속되지 않은 수많은 교통 법규 위반, 예쁘지 않은 배우자 선택, 배우의 재능을 선택하지 않은 일 등을 지적하면서 환생인 <삶의 형>을 선고한다. 뚱뚱한 아내에게 충실했던 것도 문제로 삼는데 이승과 천국의 가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부분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그의 삶을 재생하는 부분에서 우리의 삶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이승에서 아나톨이 판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검사가 지적한 두 개의 살인 사건에 대한 판결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작가는 현실을 뒤틀어 비판하고, 상황을 유머스럽고 유쾌하게 표현하고, 우리의 일반 가치와 도덕 규범 등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판결에서 가장 큰 비율로 자유의지를 놓은 것은 작가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희곡을 다 읽은 지금 <인간>에 관심이 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두툼하고 권수가 많은 작가의 소설이 부담스럽다면 이 희곡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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