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갱은 셋 세라 명랑한 갱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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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1권과 2권을 사 놓고 오랫동안 묵혀 두고 있는 사이에 3권이 나왔다. 일본 출간 기준으로 보면 3권이 2015년도에 나왔으니 한국 번역도 늦은 편이다. 아내가 읽을 책을 추천하라고 했을 때 1권을 권했더니 재밌다고 한 기억이 난다. <골든 슬럼버>를 재밌게 읽었다고 하면서 아는 척도 하는데 2권은 읽지 않았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방송에 나오는 작가의 작품을 전달해도 그냥 덮어둔다. 이 책을 들고 읽을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단상이다. 당연히 역주행의 기다림은 가슴 한 켠에서 꿈틀거린다. 기약할 수 없는 계획이지만.


최근에 서평은 쓰지 않았지만(언제 쓸지 모르지만) 몇 권의 이사카 고타로 소설을 읽었다. 이전에 읽을 때는 깨닫지 못한 그만의 독특한 문체가 최근에는 읽으면서 눈에 들어왔다. 약간의 거부감, 독특함, 기발함 등이 전해졌는데 이런 부분들은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는 약간 덜했는데 익숙해져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품의 성격 탓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가독성과 재미 측면에서는 취향 저격이다. 전작들을 읽지 않아 놓치는 부분들도 많겠지만 3편만 읽어도 큰 무리가 없다. 역자 후기를 보면 세 권이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지 간단하게 알려줘 참고할 수 있다.


명랑한 갱들이 은행을 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순조롭게 은행털이가 진행되는데 마지막에 경비원이 던진 경찰봉에 일행 중 한 명의 팔이 다친다, 구온이다. 유키코의 아들 신이치가 일하는 호텔로 장면이 바뀐다. 신이치가 근무를 잘 하는지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호텔 로비에서 상당히 기분 나쁜 손님이 나타난다. 신이치를 괴롭힌다. 구온이 소매치기한 정보에 의하면 프리랜서 기자다. 이 소설의 진짜 악당인 히지리다. 그의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 방을 찾다가 공격당하는 그를 구해준다. 그때 은행털이범에게 경찰봉을 던진 경비원 인터뷰 장면이 방송에 나온다. 구온이 다친 부위가 히지리의 눈에 들어온다. 관계가 꼬이는 순간이다.


이 일이 생긴 후 나루세 일당들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다. 미행과 성추행이나 폭력 등을 둘러싼 협박이 일어난다. 다행이라면 이들이 보통 사람과 달라 이 상황을 잘 피한다는 점이다. 나루세는 이 상황이 왜 생긴 것인지 알게 된다. 바로 히지리가 자신의 도박 빚을 없애기 위해 꾸민 작전이다. 그리고 호텔에서 히지리에게 일어난 일을 조사한다.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일을 했는지. 이 과정에서 히지리의 기사 때문에 최소 3명 이상이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무책임하고 자극적이고 악의적인 기사가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그가 얼마나 추악한 인물인지 알려주는 대목은 뒤로 가면서 하나씩 드러난다.


시리즈 앞권을 읽지 않아 이 갱들이 어떤 성격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히지리를 자신들이 처리하면 될 텐데 그들은 그에게 손도 데지 않는다. 히지리는 협박의 강도를 높인다. 자신의 도박 빚을 없애라고 날짜까지 통보한다. 은행에서 훔친 돈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하지만 이 한 번으로 끝낸다면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닐 것이다. 이 위기 상황을 탈출할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부분의 설계에 담겨 있다. 독특한 능력을 가진 네 사람이 힘을 합쳐 한 순간에 반전을 이루어내는 그 계획 말이다. 읽으면서 쉽게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계획이 실현될 때 통쾌함과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다. 씁쓸함은 아직 이런 기자들이 현실에 많다는 부분과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2권 읽고, 3권도 읽어라고 말해야겠다. 당연히 나는 1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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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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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한 편의 시와 그 시를 둘러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의 산문집을 좋아한다. 읽었던 시는 기억을 더듬어 감상하고, 새로운 시는 읽고 바로 시인의 의도와 나의 감상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기억이 부정확해 그의 시집이나 산문집을 얼마나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시인 중에서 가장 많이 읽은 시인에 들어갈 것 같다. 그의 초기 시집도 한두 권 읽었지만 근래 시집들을 읽으면서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인들 시집을 더 읽게 되었다. 그런 시인들 중에 정호승 시인이 포함된다.


이번 산문집은 일흔이 된 그의 ‘삶의 외로운 흔적’과 ‘그리운 편린들’을 담고 있다. 시를 풀어낸 산문 속에서 그런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나의 삶을 잠시 회상하거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시인 등의 삶을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어떤 산문은 여행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윤동주의 무덤을 찾아간 이야기나 백두산 정상을 올라가 소변을 본 이야기 등은 왠지 시보다 산문이 더 인상적이다. 어떤 면에서 이런 글들은 어딘가에서 연재된 듯한 느낌도 있다. 그가 직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기회를 잘 활용한 것 같은데 살짝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동화작가 정채봉 이야기를 읽고 책을 몇 권 구해 놓은 적이 있다. 동화라 잘 읽지 않지만 그의 창작 동화에 대한 평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정채봉과의 인연을 풀어낸 시와 산문을 읽으니 다시 그의 동화에 관심이 생긴다. 물론 바로 읽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아니다.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 중 한 명이 정채봉이다. 어디에서는 형이란 호칭을, 또 다른 지면은 씨라는 호칭을 붙인 것을 보면 이 산문집이 지금 바로 모두 쓴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지엽적인 이야기보다 그의 병간호를 그렇게 열심히 한 부분이 내 심금을 더 울린다. 내가 가족 이외 이렇게 열심히 간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기자 생활도, 출판사 대표도 맡았다. 현대문학북스란 출판사 대표 시절 선인세를 둘러싼 이야기는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잘 보여준다. 친한 사람들은 선인세를 돌려주지 않고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돌려줬다. 서로 힘든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예상외의 결과에 그가 놀랐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간관계에 돈이 엮이면 그들의 관계가 밑바닥이 드러난다. 천상병 시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 대한 피상적인 이야기에 조금은 실체를 더 할 수 있었다. 그의 시집을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데 언젠가 찾으면 몇 편 조용히 읽어보고 싶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에 대한 기억들은 나 또한 그 시대를 지나왔기에 가슴 속에서 작은 울림들이 계속 이어졌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중 어머니보다 아버지에 눈길이 간 것은 내가 아버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나 자신도 있으니까.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면 별로 없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같이 술 한 잔 하고 엄마에게 전화해 이야기하는 추억은 지금도 찡하다. 하지만 현실의 부딪힘은 어쩔 수 없다. 군 복무 중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문단에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문단이란 집단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글들에서 그에게 도움을 준 스승들과 지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나 자신도 배워야 할 부분이다.


6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시는 몇 편 없다. 읽지 않은 시집 속 시도 적지 않다. 워낙 외우는 것을 싫어나는 성격이라 짧은 시의 강렬한 인상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경 달다>가 대표적이다. 물론 대표적인 시 몇 편은 읽은 기억이 남아 있다. 읽은 듯한 시도 당연히 몇 편 있다. 그렇지만 그 기억과 시인의 시 창작을 둘러싼 이야기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의 시에 대한 오독 이야기(<밥그릇>)도 나오는데 혹시 나도 그의 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을 지우는 방법 중 하나가 이 책을 읽는 것이다.


아마 10년 전에 내가 이 산문집을 읽었다면 많이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시인이 그리워하고, 외로움을 다루고, 고마워하고, 뒤늦게 깨달은 몇 가지 감정들보다 다른 부분들에 시선이 더 갔을 것이다. 시간이 나에게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현실을 더 치열하게 살게 만들고, 이전 관계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면서 이 산문집을 받아들이는 폭이 더 넓어졌다. 나이듦이란 것이 주는 작은 선물 중 하나다. 그의 어린 시절 추억들을 읽으면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비교하고 즐거워하고 무서워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이 대에 따라 감상이 많이 갈릴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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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 이상 5 - 거울방 환시기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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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 1권의 서평을 찾아봤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 내가 쓴 서평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1권을 이전에 읽은 것 같은데 아닌 모양이다. 열심히 찾아보면서 추리한 결과 <경성탐정록>과 착각한 것 같다. 물론 한동안 <경성 탐정 이상> 1권이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나의 머릿속에서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저질 기억력을 탓하면서 이번 소설 속 과거 에피소드를 앍고 지나갔다. 물론 이것도 저질 기억력의 탓이지만. 전작을 의식하면서 읽은 것은 전적으로 나의 실수다.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가 5권까지 나왔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각각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 않았기에 전체적인 평가를 할 수는 없다. 5권만 놓고 보면 전작에 등장한 인물들이 상당히 나온다. 나처럼 5권부터 읽는 독자들은 나중에 앞 권을 읽을 때 작은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것과 별개로 전체적인 재미는 예상보다 조금 떨어진다.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실제 완성도 면에서 조금 허술한 부분이 있다. 구성도 치밀하지 않고, 시리즈를 처음 읽는 독자가 캐릭터를 파악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또 하나 액션 장면을 보면서 긴장감을 느끼거나 이미지를 바로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첫 장면에서 한 소년이 바다를 표류하면서 동생과 헤어진다. 이 장면이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실제 이상이 발견한 소년들과 교동도의 슈하트 학교의 음모를 연결하는 작은 단서에 불과해 첫 장면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다. 그리고 이번 장편 소설은 부제인 ‘거울방 환시기’처럼 슈하트 학교의 벌칙방 거울방이 중요한 트릭의 장소로 활용된다. 작가는 이 부분을 이상의 시와 연결하고, 환상과 현실을 교차하면서 어지럽게 만드는데 이 부분의 묘사도 그렇게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이상과 구보가 교통도의 슈하트 학원으로 가게 된 이유는 학원에서 한 여학생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탐정 이상이 이 실종된 여성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통도로 간다. 구보와 동행하는 와중에 이상은 자신의 후배를 자처하는 인물을 만나고, 기차 안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이 승객 명부를 조사했지만 이상의 후배란 인물은 없다. 전작에 등장한 여성이 주안나란 여성의 보디가드로 나와 인사를 한다. 주안나도 슈하트 학원에 가는 중이다. 이렇게 도입부를 지난 후 마주한 학원은 음모를 품고 있는 것과는 달리 너무 감정적인 교장의 행동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학원에 무언가 있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조선판인 이 시리즈는 홈즈의 숙적처럼 이상의 숙적을 한 명 만들어 놓았다. 한일 두 왕조의 피를 이어받은 류 다마치가 바로 그다. 사라진 학생을 찾고, 슈하트 학원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은 왠지 치밀한 느낌이 없다. 적들에게 쫓기는 그들이 큰 무리 없이 탈출하는 장면에서 긴장감보다 의아함이 먼저 든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이상이 건축 기사였다는 사실을 이용한 트릭이나 낱말풀이를 이용한 암호 해석 등은 작은 재미를 주지만 전체적인 긴장감은 떨어진다. 그리고 소설 중에 윤동주의 시집을 주문했다고 했는데 이때는 내가 알기로는 윤동주의 시집이 출간되지 않았다. 독일 나치 수용소의 만행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도 2차 대전 패망 이후란 것을 생각하면 작가의 착각이거나 괴담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거칠지만 잘 읽히는데 뭔가 강렬함이나 구성 등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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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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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 스릴러 시리즈 첫 권이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첫 권에는 늘 끌린다. 충격적인 반전 결말의 심리 스릴러라고 하니 더욱 끌릴 수밖에 없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구성으로 연쇄 살인 사건의 생존자인 테사 카트라이트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1995년 사건 이후의 테시와 현재의 테사로 구분했는데 같은 인물이다. 호칭의 변화 때문에 목차를 보고 다른 인물이란 생각을 했는데 같은 인물이었다. 과거는 사건 이후 테시를 진찰한 심리학자와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현재는 사형 선고를 받은 연쇄살인자 테렐이 무죄라는 생각과 그녀 주변에 감도는 불안과 공포를 다룬다.


16살의 소녀 테사가 살아난 것은 그녀의 선천적인 심장의 느림 때문이다. 그녀가 발견된 곳에서 이미 죽은 몇 명의 여성 시체도 같이 있었다. 이 이미지는 평생 그녀를 따라 다닌다. 수잔들이라고 부르는 그녀들의 몇 명의 신원조차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을 강간하고 죽이려고 한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기억했다면 간단했겠지만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살아났다고 하지만 그녀의 몸은 수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갑자기 시력을 잃었고, 어느 날 시력이 회복되었다. 심리학자와의 대화는 그 당시 그녀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테사는 자신의 집 주변에 심어진 블랙 아이드 수잔을 보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그녀가 테렐이 무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도 바로 이 꽃들 때문이다. 책 표지에 이 꽃들이 나온다. 불안은 그녀가 사는 집에 보안 장치를 하고, 딸 찰리에게 철저하게 주의를 준다. 불안감은 그녀가 딸에게 연락이 되지 않을 때 폭발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또 열네 살 딸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 때문이다. 실탄을 장착한 총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다. 집 주변에 심어진 블랙 아이드 수잔과 테렐의 사형집행일 확정 등으로 다시 관심을 받으면서 생긴 일들은 이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안심하면서 살기는 힘들다. 언제 또 그런 피해를 입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이라고 잡힌 인물이 진짜가 아니고 진짜가 밖에서 그녀를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집착은 더 심할 것이다. 작가는 이런 심리를 잘 다룬다. 교차하는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기록 속에서, 싸운 것에 화가 나 무시하고 있던 기억 속에서 불쑥 과거가 되살아난다. 연쇄살인범이 보낸 협박장은 결정적으로 이 생각을 강화시킨다. 재판 증언 이후 싸운 후 사라진 단짝 리디아도 그녀에게는 하나의 공포다. 혹시 하는 감정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범의학의 진보를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한참 CSI 시리즈를 볼 때 새로운 과학 기술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 소설도 그런 상황을 잘 그려낸다. 당시 기술로는 유전자 분석을 할 수 없었던 신원 미상의 여성들 정체를 밝혀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범인을 밝혀내진 못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이 가진 불안과 의심을 지우기엔 충분하다. 물론 하나의 가능성도 지운다. 테사가 자신의 불완전한 기억과 공포를 담아 몇 가지 물건들을 찾아낸다. 이것들을 검사해 안도감을 심어준 것도 과학 기술이다. 테렐의 사형이 집행 정지되기 위해서는 더 분명한 증거 자료가 필요하다.


천천히 소설을 읽으면서 피해 여성이 느끼는 감정에 조금씩 공감했다.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자신의 실수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새롭게 끌리는 감정에 조금씩 눈길이 옮겨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뭐지? 내가 읽으면서 무엇을 놓친 것이지? 늘 많은 것을 놓치지만 이런 반전은 예상 밖이다. 개인적 취향과는 조금 맞지 않다. 누군가의 말처럼 다시 읽으면 그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새로운 사실이 풀리면서 수많은 이야기는 요약되어 흘러나온다. 이 간단한 이야기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건 해결 이후의 또 다른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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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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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첫 장편소설이다. 1993년에 <케익을 굽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한다. 첫 번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은 탈고한 지 4년 만에 출간되었다. 가끔 유명작가의 첫 소설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출간되었는지 볼 때마다 놀란다. 그리고 이 작가가 얼마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지 떠올리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출간될 당시 페미니즘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던 시기였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의 소산으로 간주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프로토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개인적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생각하지 못한 재미를 누린 작품들 때문이다. 대표작 중 몇 편은 사놓고 묵혀두고 있고, 몇 작품은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당시 두툼했던 작가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은 어떤 책이라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처음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 기묘한 관계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 지 의문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될 인물이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미성년자에 끌리거나, 임신했는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등의 행동 말이다. 뭐 노땅인 나에겐 예전에 늘 봤던 일이지만.


메리언 매캘핀은 설문조사 회사에서 설문지 만드는 일을 한다. 까다로운 집주인과 변덕이 심한 룸메이트 에인슬리를 두고 있다. 대학 동창 클래라는 학업 중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낳았고, 셋째를 임신 중이다. 그녀 자신은 변호사인 피터와 사귀고 있다. 밖에서 볼 때 아무 문제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이다. 그러다 맥주 관련 설문 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조금 이상한 남자를 만난다. 대학원생 덩컨이다. 첫 인상은 열여섯 소년 같았는데 실제는 나이가 있다. 하지만 이 나이보다 그의 기이한 행동과 표현이 눈길을 끈다. 메리언이 심리적 갈등을 겪을 때 그는 ‘그 문제는 당신의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자신의 문제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는 우연히 만나는 순간이 늘면서 그에게 이상하게 끌린다.


남자 친구 피터는 잘 생겼고, 직업도 좋다. 소설 속에서도 말했듯이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남자 친구다. 문제는 그가 메리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인물인데 이상하게도 메리언이 작은 일탈을 벌인 후 그녀에게 청혼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메리언은 덩컨을 계속 만난다. 그가 그녀를 잘 배려해주고, 이해하는 행동을 한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그는 그의 감정에 더 충실하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어쩌면 이런 솔직함이 그녀는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그와의 가벼운 입맞춤과 터치는 부도덕한 일인데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피터와 불편해지면 오히려 그를 찾는다. 이것은 피터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무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덩컨이 괴상한 남성이라면 룸메이트 에인슬리로 마찬가지다.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고, 남편 없이 애를 낳으려고 한다. 유전적으로 문제 없는 남자를 선택해 임신하려고 계획한다. 이 계획이 잘 진행되는데 나중에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 타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메리언은 피터가 청혼한 다음부터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점점 이 범위는 넓어진다. 살이 빠져 마를 것 같은데 면을 많이 먹어서 원래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때 내 몸매를 돌아보게 되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점점 줄어들지만 피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덩컨의 말처럼 그녀만의 걱정이다. 이 걱정의 원인은 예상한대로 였지만 그 해결 과정은 예상하지 못한 일탈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해설을 보면 많은 상징들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그 시대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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