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술트릭의 모든 것
니타도리 케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서술트릭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술트릭을 다룬 작품들을 상당히 읽었지만 이 장르에 감탄한 적은 많지 않다. 아마도 불평등한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을 한 꺼풀 벗기면 당했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선입견은 미스터리 장르를 읽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데 서술트릭은 특히 그렇다.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에도 나오지만 서술트릭이란 것을 알고 본다면 속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실제 이 소설에 실린 단편들을 읽고 처절하게 당했으니까. 작가가 말한대로 메모하면서 읽고, 트릭을 찾겠다고 달려들었다면 아주 조금 달랐을지 모르지만.
모두 여섯 편의 서술트릭 단편이 실려 있다. 분량도 제각각이다. 다루고 있는 사건도 살인 같이 무시무시한 것이라 아니다. 막힌 화장실 변기를 누가 뚫었는가, 사진 동호회 확대기 필터 무단 교체 범인은 누군지, 미국 산속 외진 별장의 두 인질의 정체는 무엇인지, 얼마 전에 산 미스터리 책에 담긴 비밀은, 낡은 연립주택 속 중국인의 하이셴을 훔쳐간 인물은 누군지, 각지의 유명 조형물을 훼손하는 헤드헌터를 잡는 방법 등을 다룬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한 명이 늘 등장하고, 같은 성 벳시가 계속해서 나온다. 읽으면서 조금씩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마지막 단편이다.
<뻥 뚫어주는 신>은 서술트릭을 의식하면서 기존 추리방식으로 접근해 범인을 추리했다. 여자 화장실에서 막힌 변기가 뚫렸는데 누가 했는지 찾아내는 일이다. 내가 추리한 범인은 당연히 아니었고, 선입견이 만든 사고 속에서 움직였다. 이 설정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등을 맞댄 연인>은 히카루와 시오리라는 두 남녀의 시점으로 서술한다. 두 사람의 감정과 관찰이 진행되면서 하나의 사건이 둘을 이어준다. 사건은 사진 동아리방 확대기 필터 무단 교체 사건이다. 역시 선입견이 하나의 장치로 작용하고, 마무리는 훈훈하게 진행된다.
<갇힌 세 사람과 두 사람>은 짧은 분량 속에 낯익은 설정을 녹여내었다. 숫자와 이름 등이 나오는 장면이 하나의 멋진 트릭이 된다. <별생각 없이 산 책의 결말>은 손님 없는 칵테일 바에서 화자가 자신이 읽은 추리소설을 들려주고 범인을 맞추는 게임을 다룬다. 아니 범인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어떻게 그 범행이 가능했을까 의문을 품게 한다. 하지만 진짜 서술트릭은 다른 곳에 있다. 왠지 모르게 기분 좋게 당했다는 느낌보다 ‘뭐지?’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 아마 기술적인 부분을 모르면 풀 수 없는 트릭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풀어내면 스포일러라 생략.
<빈궁장의 괴사건>은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연립주택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사건은 말린 하이셴이 사라진 것이다. 이 단편의 재밌는 부분은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대목들이다. 트릭 하나는 맞추었는데 무심코 읽은 부분에서 차이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작가의 주의를 염두에 뒀다면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은 탐정 사무소가 직접 나오는 유일한 단편이다. 읽으면서 의문이 생긴 부분에 대한 것이 트릭을 푸는 중요한 단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편들을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본 것이 가장 큰 재미였다. 혹시 시리즈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짝 품어본다.
작가 후기도 이 단편집에서 한 편의 단편 역할을 한다. 이 정도 스포일러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서술트릭을 다룬 작품을 더 읽게 되면서 초반의 반감이 많이 사라졌다. 가끔 이 반감의 원천이 되는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면 서술트릭을 깨트릴 단서를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아직 서술트릭은 나의 독서법과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적고, 그리고, 비교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단편 속 서술트릭은 제목처럼 다른 작품의 서술트릭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