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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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은 처음 읽었다. 이전에 <인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희곡이란 이유 때문인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작품도 소설이라고 착각했다. 희곡이란 사실을 알고 약간 주저했는데 읽기를 잘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주 재밌었다. 등장인물들을 한정시키고, 상황보다 대화에 더 많은 부분을 보여준다. 이 희곡은 간결하면서도 유머와 풍자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 읽었던 <타나토노트>의 황당한 설정들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모두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폐암 수술 도중 아나톨 피숑은 죽는다. 수술 현장의 모습은 프랑스 수술실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인원은 부족하고, 휴가는 가야한다. 희극적으로 이 상황을 묘사한 후 장면은 천국으로 바뀐다. 아나톨은 침대에 누워 있고, 그의 주위에 카롤린이 온다. 처음에는 카롤린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카롤린은 아나톨의 수호천사이자 그의 변호사 역할이다. 그리고 베르트랑이 등장한다. 그는 이 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하고, 폐암으로 죽은 그를 멍청이라고 부른다. 둘의 티격태격 싸운다. 그런데 나중에 이 둘이 이승에서 부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잠에서 깨어난 아나톨은 몸 상태가 최상이다. 그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착각이다. 그가 수술 중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롤린이 이 말을 하는 주저주저한다. 이제 그는 재판에 회부된다. 이 재판은 천국에 머물거나 환생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다. 처음에 아나톨은 상속 등의 문제 때문에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보통 죽은 다음 천국에 오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그는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 지금 돌아간다면 신체에 문제가 있지만 살 수는 있다. 카롤린의 설득으로 그는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이 희곡의 진짜 재미는 그의 환생 여부를 둘러싼 재판이다. 아나톨은 자신을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좋은 가장, 좋은 직장인으로 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검사 베르트랑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어릴 때 저지른 나쁜 행동, 단속되지 않은 수많은 교통 법규 위반, 예쁘지 않은 배우자 선택, 배우의 재능을 선택하지 않은 일 등을 지적하면서 환생인 <삶의 형>을 선고한다. 뚱뚱한 아내에게 충실했던 것도 문제로 삼는데 이승과 천국의 가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부분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그의 삶을 재생하는 부분에서 우리의 삶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이승에서 아나톨이 판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검사가 지적한 두 개의 살인 사건에 대한 판결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작가는 현실을 뒤틀어 비판하고, 상황을 유머스럽고 유쾌하게 표현하고, 우리의 일반 가치와 도덕 규범 등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판결에서 가장 큰 비율로 자유의지를 놓은 것은 작가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희곡을 다 읽은 지금 <인간>에 관심이 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두툼하고 권수가 많은 작가의 소설이 부담스럽다면 이 희곡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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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수법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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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와카타케 나나미의 소설을 읽었다.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이후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시리즈가 나온 것이 2010년이니 그 사이 10년이 지났다. 작년에 살인곰 서점 시리즈가 처음 나왔지만 읽을 기회가 되지 않아 그냥 지나갔다. 이번에 이 책을 선택하면서 역주행을 해야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번이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런 행운이!! 물론 이전에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가 나왔었다. 그 중 한 권은 읽었고, 다른 한 권은 어딘가 책탑 속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구질구질하게 널어놓은 것은 이 소설 속에 그녀가 이전에 하세가와 탐정사무소에서 일했고, 왜 그만 두게 되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탐정으로 꽤 실력이 있던 그녀가 탐정을 그만 둔 이유는 간단하다. 하세가와 탐정사무소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탐정사무소를 차리거나 다른 탐정사무소에 들어가면 되지만 그녀는 미스터리 전문 책방 살인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전 직장에서 동년배 회사원보다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는데 10년 넘게 가족과 만나지 않고, 취미도 없고, 친구도 거의 없고, 애완동물도 기르지 않고, 남친도 없어 돈을 쓰지 않아 돈이 모인 경우다. 이런 상황이니 느긋하게 지내도 문제없다. 서점 이벤트를 위해 필요한 책을 찾아다니면서 상대적으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유품정리사의 연락으로 책을 정리하기 위해 그곳에 간다. 이 집에서 바닥이 꺼져 사고를 당하는데 이것이 새로운 탐정 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그녀가 이 집에서 발견된 백골과 집주인에 대한 멋진 추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를 유심하게 본 사람이 있다. 전직 유명 배우 아시하라 후부키다. 그녀는 20년 전에 사라진 딸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맞선을 보기로 한 날 딸이 사라졌다. 전직 형사 출신 탐정을 고용해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 정보가 언론사에 알려져 스캔들까지 터진 상태였다. 이후 그녀의 재산을 노린 친척 중 한 명이 탐정사무소에 의뢰했지만 이 일은 단순히 재산을 상속받기 위한 작업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돌보는 사람은 질녀인 이즈미 사야다. 그녀 또한 후부키의 재산 상속을 기대한다. 하지만 후부키의 사소한 일들을 많이 대신한다. 하무라에게 이 일을 직접 의뢰한 것도 사야다.


개인이 탐정 일을 하게 되면 불법이다. 그래서 다른 큰 탐정사무소 도토종합리서치를 계약자로 변경해서 이것을 비껴가려고 한다. 이곳의 직원 사쿠라이 씨에게 조사도 부탁하고. 조사는 이전에 이 일을 처음 맡은 이와고 탐정의 보고서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상당히 상세하고 조사가 잘 된 보고서다. 그 다음 보고서는 목적에 맞춘 보고서라 참고할 내용이 없다. 이와고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20년 전 실종 사건을 조사한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하나씩 다시 조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도 나오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고 탐정도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사를 하면서 의문스러운 죽음과 실종을 몇 개 발견한다.


하무라는 조사를 통해 자신의 날카로운 추리력을 발휘한다. 후부키의 과거 스캔들 이면을 밝혀내고, 시오리의 친부가 누군지도 알게 된다. 그녀가 은퇴한 한 후에도 화려한 삶을 유지하게 된 이유도. 이런 조사 과정에 공안이 끼어들어 그녀를 협박한다. 그녀의 탐정 업무가 불법이라면서. 그리고 그녀에게 은밀한 감시 업무를 준다. 이렇게 이 소설은 20년 전 사라진 시오리를 찾는 큰 줄기 속에 소소해 보이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은 사건들이 곁가지처럼 들러붙는다. 이 때문에 하무라는 크고 작은 부상을 계속 당한다. 불행의 대명사라는 명칭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끈질기고 통찰력 있는 조사 등으로 이 실종 사건의 본질에 다가간다.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고통스럽고 아프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도착하면 이 작품이 시리즈가 될 것임을 알리는 장면을 마주한다. 다음 이야기로 최대한 빨리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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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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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이 동물원>에 대한 엄청난 호평을 기억하기에 이 작가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이 단편집 홍보를 보면 한국판 오리지널 SF단편집이란 문구가 나온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의 미출간 단편 중 12편을 추려서 한국 판본으로 엮었다. 부정확한 내 기억에 의하면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유명 작가의 미출간 단편들을 한국에서 먼저 엮어 내다니 대단하다. 그것도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열약한 SF 장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아주 놀라운 시도다. 이런 용감한 기획에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열두 편의 단편들은 제각각 분량이 다르다. 목차를 보면 동양적인 느낌을 주는 제목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협의 팬이기에 오독한 부분도 있고, 섣부른 예측을 한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읽다 보면 다른 중국계 SF작가 테드 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괜히 이런 작가들을 보게 되면 부럽다. 몇 년 전 이윤하 작가가 휴고상을 수상해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 있었지만 아직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 꾸준히 SF작품을 내는 작가들이 많아 최근에 이런 아쉬움을 많이 달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번역가를 만나 한강처럼 SF문학상을 받았으면 한다.


첫 단편 <호(弧)>는 한자를 오독했다. 여우 호라고 생각했는데 곡선을 의미한다. 열여섯에 싱글맘이 된 레나가 갓난아기 찰리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 결국 이 도피행은 끝나고, 그녀 앞에 새로운 직업이 나타난다. 시신을 놀랍도록 정밀하게 가공하는 직업이다. 예술의 경지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늙지 않는 몸을 만드는 작업도 성공한다. 노화와 시간을 다루는데 마지막 단편 <내 어머니의 기억>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이 단편은 시간의 상대성을 이용해 두 모녀의 삶과 외모 등을 간단하면서도 강렬하게 보여준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심신오행>은 동양의 오행철학과 기를 엮었다. 우주에서 난파한 타이라가 미개척 행성에 도착했다. 이 행성은 중국계들이 사는데 오행의 기를 실 생활에 활용하는 곳이다. 페이젠은 불시착한 그녀를 구한 후 그녀의 단전이 빈 것을 보고, 그곳을 채우는 작업을 한다. 여기에 재밌는 설정 하나를 집어넣는데 그것은 미생물과 감정에 대한 것이다. 다른 작품에서 읽었던 것이지만 이 소설은 바이러스가 사라진 인류를 다루면서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새로운 문화의 접촉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감정은 전형적이지만 흥미로운 가정들이다.


<매듭 묶기>는 매듭문자와 유전자 공학을 엮었다. 한글도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연관성은 모르겠다. 유전자 공학에 난족의 족장이 도와주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그들의 환경에서 잘 자라는 볍씨와 종자의 특허가 묶이면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본에 종속된다. <사랑의 알고리즘>은 인형을 위해 개발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것인데 그렇게 강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곁>은 원격 접속으로 임종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간병하는 남자 이야기다. 인터넷 전화 초창기 외국에 나간 자식들과 상대적으로 쉽고 저렵하게 통화했던 사실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미래의 간병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싱귤래리티 3부작은 다시 <공각기동대>의 전뇌를 떠올리게 만든다. 자신의 정신을 디지털 세계로 보내는 이야기인데 단계적이지만 독립적으로 이어진다. <카르타고의 장미>는 정신의 디지털화 초기 이야기다. 여동생 리즈의 평온하고 행운 가듯한 일상을 말하는데 나중에 반전이 펼쳐진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정신을 디지털화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세상이 황폐화되고 있고, 문명은 퇴보했다. 이전 세대의 풍요로움이 사라진 후 인류의 삶이 어떨지 그려진다. 과학, 생존, 퇴화가 엮이고 꼬였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디지털 세계 속 인류의 미래를 그려낸다. 육신이 사라진 시대 속에 인류는 디지털화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아이를 만들다니. 45년 동안의 짧은 시간이란 표현이 인상적이다. 인간이 물리적 한계를 벗어났을 때 시간은 무한해진다. 물론 이 디지털 세계를 유지하는 물리적 에너지는 절대적이다.


<만조>는 달이 지구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다. 엄청난 조수 간만 차이와 그 속에서 자연과 싸우는 가족 이야기다. <뒤에 남은 사람들> 속 사람들이 연상된다. <달을 향해서>는 달 이민을 신청한 사십대 중국 남자 이야기다. 완고하고 원칙적인 샐리를 등장시켜 진실보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는 이 단편집에 가장 분량이 많다. 오하이오에 중국인들이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일들과 관우의 이야기가 엮여 펼쳐진다. 중국인들이 백인들 속에 자리잡으려는 노력과 관우인 듯한 로건의 행동과 이야기는 고대 관우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관우가 타임슬립을 했다고 가정하는 것도 재밌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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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 :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하여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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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인의 발견과 완성을 위한 인문 에세이 시리즈 4권 중 마지막 편이다. 심연, 수련, 정적, 승화 등으로 이어지는 작업이다. 이전 세 편도 읽었는데 실용적인 수련법보다는 학구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전작들처럼 자신의 전공 분야를 잘 활용해 4부, 28개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4부는 응시, 엄격, 명료, 승화 등이다. 저자는 승화가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승화를 지금의 삶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추구하려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읽다 보니 일본 만화 <드래곤 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한 단계를 넘어가면 또 다음 단계의 적이 나타나는 설정 덕분이다. 저자는 동네 야산과 그 산보다 높은 산의 존재를 예로 들었지만.


많은 키워드가 마음속에서 많은 생각으로 움직였지만 1부의 ‘양심’과 ‘전정’은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과연 내가 양심적인 삶을 살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고, 내 삶의 가지치기는 제대로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실패했다. 외부 조건 등에 흔들린 마음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는 마음에 다른 욕심들이 덕지덕지 붙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욕심을 내려놓고 버려야 하는데 탐욕이 이성을 삼켜버린다. 만족이란 감정에 휩싸여 더 나아가지 않고 머문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걸음’ 이 단어를 한때 현실이 아닌 과거로 만든 적이 있다. 자동차로 출퇴근하면서 걷기는 아주 특별한 일이 되었다. 걷지 않으면서 생긴 수많은 육체적 질병 등은 가끔 나태한 나 자신으로 이어졌다.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은 언제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나를 알려주는 것 중 하나가 ‘취미’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취미는 점점 폭이 좁아진다. 깊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한 번 나태해진 나는 가볍게 취미를 즐길 뿐이다. 어떨 때는 즐긴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과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는지는 말할 수조차 없다.


간절하게 갈구하는 마음은 집중력을 높인다. 간절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여유가 차지하면 좋겠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그곳에 놓인다. 탐구하고 모험하고 자신의 잠재력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할 때 우린 동물적 인간에서 신적 인간으로 승화한다. ‘내재’는 내 속에 있는 것을 통찰하는 것이다. 우린 점점 더 즉각적이고 즉흥적으로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내 기억을 뒤지기보다 검색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새로운 시대에서 바라는 인간상일지 모르지만 그 도구가 없을 때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어느 순간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있다.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위대한 변화의 시작으로 ‘승화’를 꼽는다. ‘각성’도 ‘모험’도 ‘변모’도 일상의 우리 존재를 깨어나게 하고 경계를 초월하게 한다. 저자는 승화를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승화는 어제와 달라질 오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이자, 지속적으로 자신을 혁신하려는 용기 있는 도전”이라고 정의한다. 신뢰와 지속과 혁신과 용기와 도전이 중요 키워드다. 하나만 빠져도 승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등산, 산책, 자연 등을 이 글 속에 계속해서 노출한 것도 변화와 그 변화를 인식하고 관찰하는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글을 읽으면서 풍부한 지식에 부러움을 느낀다. 잠시 긴 숨을 내쉬며 잠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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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나 에프 그래픽 컬렉션
노엘 스티븐슨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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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밌고 읽고 있는 f(에프)의 그래픽노블이다.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에프에서 나왔다는 것과 멋진 악당이 되고 싶은 변신 소녀의 이야기란 부분에 끌려 읽었다. 그림체는 상당히 각이 져 있는데 주인공 니모나만 둥근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을 다룬 그래픽노블들이 단순한 그림체와 배경 색을 가진 것에 비해 배경이나 여백 등이 많이 채워져 있다. 판타지를 다루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강한 액션의 생동감은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단순히 직선적인 구조가 아니고, 엮이고 꼬인 관계와 위트 넘치는 대사와 장면으로 끝까지 재밌게 읽게 한다.


니모나가 악당 발리스터 블랙하트를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에이전트를 통해 조수가 되려고 왔다고 하는데 거짓말이다. 니모나는 자신의 변신 능력을 보여주면서 무시무시한 악당이 되려고 한다. 그런데 발리스터가 파괴와 살인을 엄청나게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악당은 뭐지? 악당이 있다면 영웅이 있다. 영웅은 발리스터의 친구였던 암브로시우스 골든로인이다. 암브로시우스는 영웅 협회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데 이것도 상당히 특이하다. 발리스터와 암브로시우스의 관계는 마상 시합에서 암브로시우스가 패한 후 분노 때문에 발리스터를 공격해 그의 오른팔을 부수면서 틀어졌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악당과 영웅 관계처럼 보이는데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이 전형성은 조금씩 사라진다.


이 판타지 세계는 서양 중세 시대를 떠올리지만 무기나 방송 등을 보면 아주 현대적이다. 몇몇 장면은 중세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이 그래픽노블에서 재밌는 설정 중 하나는 협회가 악당과 영웅의 관계를 만들고, 협회가 어둠의 세력이란 점이다. 누구나 인지하는 악당 발리스터가 협회가 몰래 만드는 화학 무기를 대중에게 알리고, 자신이 퍼트린 병으로 음모를 꾸미지만 결국 치료제를 투입하는 등의 모습은 흔히 생각하는 악당이 전혀 아니다. 그는 강요된 악당이다. 니모나의 악당스러운 계획을 반대하는 인물도 역시 그다. 폭주하는 니모나를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고, 중세 설정과 현대의 과학기술이 같이 다루어진다. 니모나의 변신 능력은 물리적 법칙을 무시한다. 동물로도, 사람으로도, 공룡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 다만 생명이 없는 물체는 불가능하다. 소녀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장면은 마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반 이후가 되면 니모나의 정체성과 과거가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왜 그렇게 악당이 되어 나쁜 짓을 하려고 하는지도 조금은 예측이 가능하다. 이 예측이 맞다고 그 무거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능력을 탐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잔혹함은 어떻게 보면 아주 전형적이다. 언제나 비극은 바로 그 부분에서 생긴다.


니모나가 처음에 보여준 유쾌함은 뒤로 가면서 점점 무거워지고 어두워진다. 발리스터와 투닥거리고, 입장 차이가 있지만 둘은 어느 순간 좋은 악당 동료가 된다. 둘 중 하나가 위험해지면 자신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구하려고 한다. 물론 진짜 악당은 이것을 노린다. 함정을 판다. 협회에 위협이 되는 대외적인 악당들을 처리하려고 한다. 영웅 암브로시우스가 선두에 서야 하지만 그는 발리스터의 친구다. 이 둘의 갈등과 친분은 새로운 사실과 함께 또 한 번 바뀐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전개 등은 뒤로 가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D.C나 마블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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