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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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새로운 한국 소설가들의 이름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이 중에서 제대로 작품을 읽은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 틈틈이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지만 장르 문학에 더 집중하고, 낯익은 외국 작가의 소설을 더 읽다 보니 겨우 이름만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낯익은 작가조차 사놓고 묵혀두고 있으니 새로운 작가에게 손이 나가는 것은 더 힘들다. 백수린은 이전에 짧은 단편 한 편 정도를 읽은 적이 있지만 그 단편집에 실린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 나의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 그 단편집은 작가들이 너무 많아 낯익은 작가조차 지금은 기억 못한다. 이것도 인터넷 서점 검색을 통해 겨우 알았다.


한때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시인의 산문집에 관심을 가졌고, 이것이 소설가의 산문집으로 다시 이어졌다. 가끔 번역 소설들이 주는 문장의 피로함을 푸는 데는 한국 소설가의 작품이 딱 맞다. 모국어란 것이 주는 익숙함 때문인 듯하다. 잘 된 번역의 경우라면 이런 피로함이 없겠지만 문장이 어색한 번역투의 소설 등을 자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피로감이 쌓인다. 그런데 이 책에서 외국어로 말하고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와 나의 시선을 끌었다. 물론 번역과는 다른 문제다. “외국어로 말하는 일이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모국어 중심의 인식 틀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는 부분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작가의 이력은 화려하다. 내가 알고 있는 문학상만 두 개 수상했다. 한때 이런 문학상을 좇아다니며 찾아 읽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밀린 책들만으로도 벅차다. 그래도 이런 문학상 수상작에는 늘 눈길이 간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앞에서 말한 소설가의 첫 산문집이란 이유가 가장 크고, 내가 좋아하는 ‘빵’과 ‘책’을 매개로 글을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목차에 나오는 빵들 중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데 낯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빵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낯설고 낯익은 작가와 책 제목들이었다. 집에 있는 책들이 상당히 많지만 읽은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이 산문집에 신춘문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도 수많은 소설가 지망생(?)이 여기에 목을 매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수많은 질타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소설가란 타이틀과 문단으로의 진입을 감안하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현실에서 이런 소설가들보다 웹 소설가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지만 그들의 눈은 여기에 머물고 있다. 몇 년 전 이런 부분을 다룬 소설을 한 권 읽었는데 이때도 이런 그들의 집착(?)이 계속 가슴에 남았다. 물론 나 자신도 한때 문학청년을 꿈꾸지 않았던가. 뭐 장르소설도 쓸 집중력이나 노력도 없었지만 말이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나와 다른 시각을 발견한다. 이 때문에 이런 책들을 계속 읽게 된다. 사놓고 묵혀두거나 관심을 두지 않은 작품에 눈길을 주는 것도 이런 해석 덕분이다. 읽었던 책에서 내가 놓친 부분을 다시 떠올려줄 때, 작가가 다시 읽으면서 바뀐 감상을 말할 때 속된 말로 혹한다. 그리고 작가의 소소한 일상과 소설가로써의 삶을 말할 때 나와 다른, 혹은 내가 누릴 수도 있는 삶의 순간을 생각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늘 사고 싶은 책이 늘고, 꼭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지만 나의 욕심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단편집에서 인상적인 단편 하나만 다루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보면 나의 글쓰기 방법을 다시 검토한다. 다정한 매일매일, 내가 자주 놓치는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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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들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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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을 흥미 있게 읽었기에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광신도들에 대한 관심도 있다. 원제인 “DISCIPLES”는 제자들 혹은 예수의 제자들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 단어를 광신도들로 번역하게 되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선입견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이야기 전체를 읽게 되면 광신도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실제 밀러 교회의 신도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우리가 흔히 아는 광신도와 조금 다르다. 물론 이 교회의 신자 중 한 명이 보여준 행동은 여타 종교의 광신도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한 종교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소설은 5부 31장에 8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은퇴한 과학사 교수 해리 필드이지만 이 소설을 정말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데이비드 레오와 닉 포스터 등이다. 해리 필드가 가짜 과학, 사이비 과학, 유사 과학을 주제로 강연할 원고를 쓰는 중 손녀의 친부인 올리버 퀸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올리버는 해리의 딸 주디를 임신시킨 후 도망간 인물이다. 출산 당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는데 자신의 딸 헤이즐을 밀러 교회에 데리고 가려고 왔다. 첫 문장이 “외손녀가 납치당하기 두 시간 전”이다. 친부지만 납치란 사실을 분명하게 알린다. 친부였기에 해리는 외손녀를 맡겼다.


다음 화자가 닉 포스터다. 닉은 정신지체아다.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인물인데 올리버 퀸이 그를 데리고 밀러 교회에 간다. 헤이즐 납치 당시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장시간 이동 속에서 헤이즐을 돌보는 인물이다. 닉은 각 부마다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중요한 사건과 이어져 있다. 헤이즐의 납치, 올리버 퀸의 죽음, 데이비드 레오의 납치, 그리고 살의 등. 자신만의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가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의해 폭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해리의 교육과 연결되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세우지 못한 아이에게 누군가의 영향력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닉의 시각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영문과 교수이자 허영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이 데이비드 레오다. 그는 흑인이다. 피부색은 검은색보다는 갈색에 가깝다. 닉의 시선은 이 색 구분을 잘 보여준다. 주디에게 관심이 있고, 해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주디의 딸이 납치된 후 밀러 교회로 직접 찾아간 인물이 그다. 영웅심이란 표현이 나오고, 아이를 찾으러 가면서 나타나는 심리 묘사는 너무 솔직해 어색할 정도다. 그가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 순간은 늦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가 백인이 아니라는 정체성과도 관계있다. 그는 위험하지만 스릴 넘치는 모험을 겪는데 이 속에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깨닫는다.


가장 예상외의 퇴장은 올리버 퀸이다. 솔직히 목차를 유심하게 읽지 않아 그가 죽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그는 밀러는 만나지 못하고, 밀러의 제자인 루머의 말에 혹해 딸을 데리고 밀러의 농장에 갔다. 흑인인 데이비드를 죽이려고 하다 오히려 자신이 죽는다. 이 죽음은 납치 사건과 FBI의 개입이 불러올 파국을 염려한 루머의 결단이다. 소설 속에 루머가 화자로 등장하는 것은 딱 한 번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본 상황과 완전히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이때 내가 루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의아했던 상황 몇 가지도 바로 이해되었다.


해리가 밀러와 인터뷰하는 장면은 과학사 교수의 욕심에서 비롯했다. 그가 밀러 농장까지 올 필요는 솔직히 없었다. 하지만 문답식으로 표현된 밀러의 논리는 흥미롭고, 솔깃한 부분들이 많다. ‘사후’에 대한 질문은 종교의 핵심인데 그는 시간이란 개념을 이용해 아주 능수능란하게 피해간다. 민감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살짝 피하면서 이어간다. 그리고 밀러가 화자로 등장하는 것도 딱 한 번인데 그의 각성과 듣는 소리를 닉이 듣는 소리와 연결하면 종교적 체험의 실체를 이해하게 된다. 광신도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금은 이해된다. 대화를 구분해 표현하지 않고 묵직하고 심리묘사가 대부분이라 가독성은 조금 떨어진다. 그러나 각 인물들의 내면과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우리의 내면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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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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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를 처음 만난 것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일식>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때는 정말 이해도 못했고, 재미도 없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문학상에 더 약했던 시절이라 그 다음 책도 샀다. 몰론 재미는 없었다. 이후 몇 권의 책을 더 샀지만 그냥 묵혀만 두었다. 그러다 읽은 <결괴>는 이전까지 알던 히라노 게이치로가 아니었다. 아주 재밌게 읽었고, 그 묵직함에 놀랐다. 아마 이 책이 분기점이 되어 작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머릿속은 언젠가 첫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먼 훗날의 가능성이 아주 낮은 생각일지라도 이 생각은 그의 신작에 늘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그 연장선에 있는 책 중 한 권이 이 <한 남자>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재일조선인 3세 기도 아키라다. 조선인 이름을 사용하다 해외 여행할 때 여권의 국가가 문제될 것 같다는 이유로 국적을 바꿨다. 그의 의지보다 부모님의 의지다. 어릴 때 조선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살지 않아 특별히 국적에 대한 인식을 크게 하지 못한 그이지만 일본인 아내와의 결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장모님이 한류 팬이라 그에게 한국에 대해 물었을 때 그가 한글조차 모르는 재일조선인이었다는 설명은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혐한, 혐중이 강해지는 시대 분위기는 알게 모르게 그가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리에의 인생에 대한 설명으로 작은 문을 연다. 물론 서에서 기도를 말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은 책을 다 읽을 때 즈음이다. 리에는 두 번 결혼을 했다. 한 번은 이혼을, 한 번은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이혼 전에 아들을 병으로 먼저 보냈는데 이 일이 이혼 원인이다. 그 사유에 대한 간결한 설명은 함축적이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다. 두 번째 남편 다니구치 다이스케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가정을 꾸몄는지 알려주는데 불행은 이 집을 비켜가지 않았다. 임업에 종사하는 남편이 쓰러지는 나무에 깔려 죽은 것이다. 본가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그이지만 죽음까지 숨길 수 없어 부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의 형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영정 사진을 보고 자신의 동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그는 누구?


기도는 이런 과정 속에서 등장한다. 그의 이력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리에와 알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는 이혼 당시 담당 변호사였다. 리에 이야기에서도 동일본 대지진을 말하는데 기도는 관동대지진을 떠올리며 한 시대의 비극과 불안감을 조금씩 연결시킨다. 관동대지진 당시 어떻게 조선인 등을 학살했는지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현실을 살짝 보여준다. 이런 현실과 혐한 분위기가 엮이고, 기도는 이전까지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리에의 남편이었던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정체에 대한 의문과 이어진다. 리에의 요청에 따라 그는 다니구치 다이스케라고 말한 존재 X를 조사한다. 이 조사만 놓고 보면 탐정물이지만 그에겐 이 일은 부업일 뿐이다.


부업이라고 하지만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관련된 인물을 만나고, 실제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러다 신분을 바꿔주는 사기꾼 오미우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새로운 단서를 발견한다. 오미무라는 진실을 알지만 그에게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 조사 과정에서 그는 서로 신분을 교환하는 일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오미무라가 던져준 단서를 따라가다 발견한 내용은 아주 불편한 현실이다. 자신의 호적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어떤 사연 때문에 교환까지 하게 되었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한국처럼 주민등록증 발급 당시 지문을 날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사실로 이어진다. 한국이라면 지문만으로 그의 정체를 쉽게 알았을 것이다. 왠지 씁쓸한 느낌이다.


결국 기도는 X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호적을 바꾸려고 했는지, 리에와의 결혼 생활 3년 반이 그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 신분을 바꾼 남자와 그를 조사하는 기도의 삶이 교차하면서 많은 것을 보여준다. 섹스리스 부부의 불안한 삶과 자신의 정체성 문제 등이 엮이고, 꼬인다. 그리고 리에의 이혼과 결혼으로 성을 세 번이나 바꾼 아들 유토의 문제까지. 정적인 사회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동적이고 변화가 심한 사회 속에서는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제목인 ‘한 남자’는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X, 다니구치 다이스케, 기도 아키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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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피라미드사회 - 능력주의가 낳은 괴물
하승우 지음 / 이상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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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로 ‘능력주의가 낳은 괴물’이 달려 있다. 최근에 능력주의의 문제를 다룬 책을 한 권 읽었기에 낯설지만은 않다. 그 책은 미국의 현실을 다룬 것이고, 이 책은 우리의 현실을 다룬다. 하지만 그 바탕에 깔린 능력주의는 동일한 것이다. 이전에는 사실 이런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책을 그렇게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 자신이 능력주의를 그대로 믿고 살았다고 해야 한다. 물론 이 능력주의가 우리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조금씩 낌새를 챈 것은 좀 더 되었지만 말이다. 단지 낌새만 약간 안 정도일 뿐이다.


겨우 두 권의 능력주의 비판 책을 읽고 능력주의 허실을 파악할 정도로 능력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책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알게 모르게 그 능력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아마 실무에서라면 이 능력주의를 앞세워 일하기를 더 좋아할 것이다. 그래야 내 일이 조금은 편할 테니까. 하지만 저자가 쓴 네 꼭지의 이야기는 나 자신조차 무의식 속에 옹호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당연히 반성하고,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이 두 책을 읽을 때 같이 고민한 부분이다.


민주화가 왜 신분피라미드를 무너뜨리지 못했나? 하는 질문은 학창 시절 그 수많은 민주 운동가들이 회사만 들어가면 재벌의 개가 되어 움직일까? 하는 의문과 이어졌다. 학생 운동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선배가 재벌의 이익을 위해 기자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알게 되었을 때 조금은 깨달았지만 말이다. 실제 1장은 이전에 읽었던 책의 한국 버전 요약본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능력주의를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군사독재와 시민사회운동이 이 능력주의를 공유했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운동권의 능력이 이끌어낸 사교육 시장은 낯설지만 끔찍한 현실이고, 채용비리를 둘러싼 재판 결과는 또 다른 능력으로 비추어지는데 부족함이 없다.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촘촘하게 엮인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 신분피라미드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도 작은 균열이나마 내어 다음을 도모하자고 할 정도다. 이런 문제의식은 공간과 시간으로 이어진다. 공간은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누어진다. 시간은 노동시간보다 자유시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차별이 얼마나 서울에서 공고화되어 있는지는 학창시절부터 느꼈다. 지방 출신인 나에게 서울 친구는 집에 가는 나를 보면 시골 가냐? 고 물으면서 서울 이외 지역을 모두 시골이라 부르면서 차별했다. 공간의 차별을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한때 지방소멸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용어가 “인구가 줄어드는 불안감(인구감소 쇼크!)을 이용해 중앙부처가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전략”이라고 할 때 아직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존재를 시장 가치로 환산하는 나쁜 버릇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낯익은 파견근로제이지만 한때는 아주 낯선 제도였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젠 너무 흔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 제도를 제안한 것이 공무원이란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 인물들의 이후 출세가도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사람들은 ‘능력’이란 단어를 사용해 설명한다. 불편한 현실이다.


시민운동마저 능력주의에 포획되었다고 했을 때 한국의 능력주의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고,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이야기들이 다시 이 부분에서 다루어진다. 이 꼭지에서 잠시 다루고 있는 대기업의 환경보호에 신경 쓴다는 이미지 광고와 가리고 있는 현실의 관계는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모금이 운동을 압도하는 상황을 설명할 때는 나도 뜨끔했다. 적은 돈으로 내 양심의 부담을 살짝 덜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신분이 제공하는 노력을 강조했는데 세부적인 부분에서 이전 책 <엘리트 세습>과 다른 부분이 있다. 한국은 오히려 귀족사회처럼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과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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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도노 하루카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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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심사위원 간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논쟁적인 작품을 좋아한다.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작품도 좋아하지만 이런 논쟁을 하는 작품은 나의 삶과 비교하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표현에 자주 놀랐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고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자기절제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절제가 불안하게 다가왔다. 제목도 여기에 한몫한다. 마지막 장면은 독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처음 읽을 때와 지금 떠올리면 느낌이 조금 다르다.

 

럭비 연습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훈련이 끝난 후 선배집에서 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예전 경기 비디오를 본다. 반복적인 행동이란 설명이 나오는데 경기에 대한 부분은 딱 한 번 나온다. 가장 찬란했던 그 순간만 보여준다. 주인공 요스케는 도쿄의 어떤 사립대 4학년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지만 모교 후배들의 럭비 훈련을 도와준다. 그 자신도 매일 개인 근육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자위도 빠트리지 않는다. 왕성한 청춘이다. 어쩌면 평범한 대학생일지 모르겠다. 작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주지만 어떤 분야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이런 디테일을 숨긴 채 진행한다.

 

친구의 만담 공연에서 신입생 아카리를 만난다. 자신의 욕망을 내보이지만 나쁜 행동이란 이유로, 자신이 받은 교육의 힘으로 이것을 절제한다. 이런 절제들은 위에서 말했듯이 가끔 나온다. 성적인 끌림이나 무의식적인 시선 등을 보여주는데 항상 자기가 받은 교육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 등의 이유를 말한다. 어떻게 보면 마마보이 같다. 이런 표현들이 왠지 그의 실제 감정과 엮이면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아카리가 그에게 관심을 보일 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거절한다. 물론 나중에 둘은 연인이 되지만 최소한 그는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솔직함, 어떻게 봐야 할까?

 

간결한 문장과 관조적인 상황 등은 약간 건조하다. 연인 관계조차 깊이보다 상황 묘사에 짧은 감상을 덧붙였을 뿐이다. 보기에 따라 너무 건조하고 평범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의 욕망을 충실하게 충족하려는 요스케의 모습이 보인다. 럭비에서 후배들이 더 높은 성적을 얻게 하려고 훈련의 강도를 더 높이려고 하고, 아카리의 섹스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힘이 딸리는 현실을 마주한다. 이 두 가지 일에서 그는 완벽한 충족감을 얻지는 못한다. 부족하거나 너무 과하다. 파국이 벌어지는 순간도 한 순간의 욕망에 휘둘리면서 생긴 일 때문인데 그가 이전까지 보여준 절제의 균열을 정확하게 표현했다. 내려놓으면서 안도하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불친절한 작품이다. 정확하게 알려주는 부분들이 거의 없다. 이런 불친절한 묘사 속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햄버그 가게의 점원들이 외국인이란 부분이다. 왜 반복해서 외국인이란 설정을 넣었을까? 실제 외국인들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요스케는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여친들과 여행을 다닐 때 그가 비용을 부담하는데 그 흔한 알바 이야기조차 없다. 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지만 어떤 분야인지도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의 폭력도 어떤 결과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것은 전 여친인 마리코의 꿈 이야기에서 또 반복된다. 뭐지? 짧은 소설이지만 독특하고 곳곳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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