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제1회 카카오페이지×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수상작
이지아 지음 / 스윙테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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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1회 카카오페이지×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카카오페이지 특별 선정작이다. 얼마 전 대상 수상작인 <스노볼>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더 맞는 작품은 이 작품이다. 아마 조금 더 낯설고 문장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분량이 적은 것은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과 디테일이 생략되어 있다는 단점으로 다가온다.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 나의 상상력으로 그곳을 채워야 하는데 설정마저 그렇다는 부분에서 조금 아쉽다. 어떻게 보면 sf형식만 빌린 한 편의 성장 소설일지 모른다. 잃어버린 물건의 복수극을 꿈꾸면서 글을 썼다고 하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소녀 룻과 티스테라는 정찰 우주비행선이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룻는 티스테와 함께 우주를 누볐던 다비드 훈의 손녀딸이다. 티스테(TST1)는 훈이 돌아올게란 약속을 믿고 기다리다 토성의 상트레겐 계곡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정찰 우주선이다. 버려진 우주선을 안드로이드로 재생하는 에레스 박사의 도움으로 인간 남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공지능에 감정까지 가진 티스테는 훈의 귀환을 기다린다. 하지만 훈은 이미 죽었다. 이 사실을 숨긴 채 룻이 티스테를 찾아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룻은 뛰어난 해커다. 신선한 공기가 부족한 동네에 살고 있다. 돈을 벌면 엄마를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 근처까지 옮기려고 한다. 해킹 신고로 돈을 벌지만 이사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 우주로직사를 해킹하려다 감지되고, 우주로직사가 엄청난 보상금을 건 것을 발견한다. 그 대상은 티스테 1이다. 이 보상금이 룻으로 하여금 훈 할아버지의 낡은 우주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처음에 룻은 티스테를 우주로직사에 데리고 갈 목적으로 이 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서로 교류하면서 관계를 맺고. 같은 인물을 추억하고, 함께 위험한 경험을 하면서 변한다.


작가는 룻과 티스테의 기억 속에서 훈을 불러온다. 훈이 한 일과 대화 등은 이 둘이 만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룻이 티스테를 만나고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까지 모두 다섯 행선지다. 이 각각의 행선지는 새로운 이야기와 추억이 교차하고, 룻이 사실을 말할 기회를 제공한다. 머릿속에 완벽한 문장이 만들어졌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러면서 감정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사실에 다가간다. 하지만 우주로직사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면서 이 상황은 알 수 없게 된다. 작가는 다섯 행선지 모두에서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재밌게 읽을 수 있게 만든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목을 아주 멋진 문장으로 썼다. “이 아이는 어떻게든 빛을 찾아내려는 연약한 새싹의 모습을 감추려 하지 않은 채 순수하게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이 드러냄이 성장으로 바뀐다. 사실은 안 티스테가 과거의 흔적에 집착하고 상처받았을 때 현실을 깨닫게 한 것도 이 감정을 실천으로 옮긴 룻 덕분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인간처럼 행동할 때 아직 채우지 못한 부분들을 채우는 것도 룻과의 행동 덕분이다. 버려진 존재란 것을 알고, 이 상실감을 채우려고 하는 모습과 다시 신뢰를 얻으려는 진심이 간결한 이야기와 여백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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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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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찰스 부코스키가 존 브라이언이 창간한 지하신문 <오픈 시티>에 14개월 동안 연재한 칼럼을 엮은 산문집이다. 이 에세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써달라는 요청을 수락한 결과다. 어떻게 보면 14개월 동안 한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돈은 그를 꾸준히 이런 일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연보를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아 이런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에세이 속에서 만난 그를 떠올리면 이 성실함이 조금 낯설다. 그리고 바로 앞에 읽었던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신문에 연재한 칼럼이라 그런지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보다 조금 쉽게 읽었다. 물론 비속어와 음탕하고 거친 언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금 익숙해졌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이번 에세이도 읽으면서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날개 달린 선수가 나와 야구를 하는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의 이름 약자가 JC라는 것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뒤로 넘어가면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미 다른 책에서 읽었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그때 느낀 의문을 푸는데 도움을 준다.


다른 에세이처럼 이번에도 직설적인 단어 사용은 십대의 욕설처럼 품어져 나온다. 하지만 그 뒤에, 그 밑에 깔린 감성과 비판의식 등은 그 단순함을 뛰어넘었다. 내가 부코스키의 글을 계속 읽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이다. 물론 그 시대 문화와 작가의 뒤틀린 삶을 좀 더 알게 된다면 광고처럼 부코스키의 글에 빠져 더 열심히 찾아 읽을지 모르겠다. 사실 이번에 읽은 두 작품처럼 거침없이 멋대로 쏟아 낸 단어와 문장들로 가득한 책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산문집의 가장 큰 매력도 바로 이런 점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이야기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는 부분도 많지만 내가 그 현실을 제대로 알기는 역시 어렵다.


음탕하고 무겁고 황당한 이야기 속에서도 웃음은 찾아온다. 한 술꾼을 골목으로 유인해 방망이로 기절시켜 돈을 갈취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결말이나 유명한 작가의 집에 가서 나오면서 갈취당하는 이야기 등은 지금 당장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재밌는 에피소드다. 그리고 질펀한 섹스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뒤섞이며 누가 누군지, 현실인지 망상인지 헷갈린다. 밑바닥에 떨어진 술꾼이 벌이는 행동과 이야기는 이성의 잣대를 가져다대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마 한창 순수에 집착하는 청소년기였다면 내 입에서 쌍욕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음탕한 이야기에 헤롱거리거나. 물론 그가 찬양한 작가들을 찾아 읽고, 아는 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솔직한 글이 나의 글과 잘 맞지는 않지만 배울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언제 부코스키의 시집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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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엮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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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부코스키의 소설을 생각보다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이 기억은 이 작가에 대한 호감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두 권의 에세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두 권의 에세이를 들고 뭐부터 읽을까 고민하다, 두꺼운 책부터 읽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이 글 속에 나온다. 순간 순서를 잘못 정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 생각도 읽다가 그냥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말이다.


소설을 생각하고 읽은 탓인지 느낌이 너무 다르다. 아니면 그 사이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혼란스러운 작품들이 수없이 나왔다. 이런 점은 이제 읽기 시작한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존에 읽었던 에세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에세이는 너무 노골적이라 거부감이 생길 정도다. 한 편의 포르노 소설 같이 진행되는데 그를 잘 모르는 나에겐 ‘왜?’라는 의문 부호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단어들은 직설적이다. 아주 직설적이다. 거침없이 단어를 사용한다. 완화된 문장이나 단어가 나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거침없이 내뱉는다. 엄숙한 문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경험일 것이다. 만약 이 서평에 그 단어들을 사용하면 꽤 많은 단어들이 잘릴 것이다. 술 먹고, 토하고, 경마에 빠지고, 음주 운전을 하는 등 그의 일상은 일반적 삶과 너무 다르다. 오래전 미키 루크가 주연한 <술고래>란 영화가 부코스키를 다룬 것이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뭐 그때 알았다고 해도 부코스키가 누군지 몰랐겠지만.


이 혼란스러운 이야기들 속에서 그의 문장과 글에 대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 이야기도 같이 나온다. 현대 문학가에 대한 그의 날 것 그대로의 평가는 잠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 속에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곳에서 그가 읽었던 작품들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단순한 주정뱅이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가 책을 낸 후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대목이 몇 곳에서 나오는데 낯선 모습이다. 그 당시 우리도 그랬을까? 말러에 대한 그의 애정은 곳곳에서 묻어나오고, 나의 머리는 그 음악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된다.


미국 문학가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샐린저처럼 숨어 살거나 아니면 바쁘게 돌면서 책 홍보를 하는 경우를 본다. 아마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부코스키는 그런 작가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의 경험과 삶을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풀어냈다. 또 곳곳에서 풍자와 비판을 내려놓지 않았다. “생각은 섹스보다 위험하다. 훌륭한 미국 시민은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문장을 보면 그것이 잘 드러난다. 내 생각에 대한 집착이 아직 많아서인지 생각보다 더 깊숙이 내 안으로 이 글들이 들어오지 못한 부분이 있다. 다시 나중에, 다시, 란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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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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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가 “내 평생 읽은 최고의 책이다.”라는 극찬을 했다고 해서 혹했다. 여기에 주인공이 가진 ‘사물이나 사람을 순간 이동시킬 수 있는 비상한 초능력’이 강하게 눈길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큰 기대를 했다. 큰 기대가 독이 되었을까? 아니면 내가 예상한 판타지가 너무 없는 탓이었을까? 가볍게 읽길 바랐기 때문일까? 솔직히 말해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 책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노예제도 시대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와 너무 다른 모습이었기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이 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면 아마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미국 남부의 버지니아와 북부의 필라델피아가 주요 무대다. 주인공 하이람은 백인 농장주의 혼혈 아들이다. 이 시대에 혼혈은 유색인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이 문장을 쓰면서 홍길동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하이람은 아버지 대신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그에게는 한 명의 형이 있는데 그는 백인이다. 당연히 형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시대를 다룬 소설 등에서 잘 나오듯이 혼혈 자식들은 재산의 일부다. 필요하다면 팔기도 한다. 하이람의 엄마도 농장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팔았다. 담뱃잎을 생산하는 농장의 몰락은 이 생산도구인 흑인 노예의 매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이람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대단한 기억력이지만 엄마에 대한 기억만 희미하다. 그가 처음 이동하는 초능력을 발휘한 것은 백인 형과 함께 탄 마차가 강으로 추락한 순간이다. 형은 죽었고,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 채로 발견되었다. 그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의 이런 능력을 눈여겨 본 사람들이 있다. 바로 버지니아 언더그라운드 조직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나오는데 작가는 이것의 ‘인도의 힘’이라고 부른다. 소설은 하이람이 이 ‘인도’를 자신의 의지대로 하게 되는 순간까지 다룬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상황들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한 소년의 성장을 보여준다.


하이람의 대단한 기억력은 백인들에게 좋은 유흥거리다. 자신이 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하이람은 주인님의 바람대로 형의 좋은 하인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형의 죽음은 그의 가능성을 닫아놓는다. 여기에 하이람이 사랑하는 소피아가 나오면서 그는 탈출을 바란다. 탈출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장의 다른 노역인에게 부탁한다. 이 부탁은 잘못된 것이다. 노예 상인에게 넘어간 그는 팔린다. 이 매각이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예상외의 전환이다. 이후 언더그라운드의 도움으로 자유인으로 필라델피아에 머물면서 조직원으로 살아간다. 이 시기에 그는 조금씩 현실에 대해 눈을 뜬다. 가슴 속에는 구하고 싶은 두 명의 여자들을 품고 있다.


필라델피아라고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이미 <노예 12년>이란 소설에서 봤듯이 자유인이 된 흑인을 잡아가는 백인들이 있다. 그리고 흑인들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백인들의 모습도 나온다. 이런 현실 속에 자신들의 가족들을 남부에 노예로 남겨두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진다. 하나의 자산으로 팔려나가면서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말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의 가족으로 모여 사는 것이다. 하지만 남부에서 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쉽지 않다. 실패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위험하지만 멈출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백인들이 이 시대에 흑인들의 탈출을 도왔을까 하는 부분을 적은 대목이 나온다. “노예제도는 그들을 수치스럽게 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선량함에 대한 기본 감각을 노예제도가 침해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들의 증오심은 일종의 허영이며, 노예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노예제도 자체에 대한 증오였다.”라고 말한다. 이 허영의 일부를 가진 인물 중 한 명이 주인공 하이람이었다. 흑인이지만 그는 백인 아버지의 후광 속이라면 팔리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자각하는 순간은 과거의 기억을 찾는 순간이다. 이 부분은 현재 인종차별을 넘어가려면 과거의 기억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취향을 타지만 강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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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창비시선 449
안도현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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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안도현의 시를 읽었다. 절필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기간이 4년이었던 모양이다. 그 후 다른 에세이 한 권을 즐겁게 읽은 적이 있다. 나에게 안도현은 시인보다 <연어>의 작가가 먼저다. 그의 시집을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지 목록을 뒤져보았지만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부분이 다른 시인들과 다른 점이다. 시인의 시보다 동화나 에세이에 더 친숙함을 느꼈다니 묘한 느낌이다. 그리고 최근 현대 시를 몇 권 읽으면서 조금 어려움을 겪은 탓인지 이번 시집은 상대적으로 쉽게 읽혔다. 어떤 시는 왠지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3부 <식물도감>의 한 대목이 이 시집의 제목이다. 식물도감이란 제목처럼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등장한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고 집중하면 흥미로운 시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타리꽃이 피었다 / 곧 개강이다 / 나는 망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마타리꽃이 뭐지? 하는 생각보다 개강과 망했다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 시 이전에 <환한 사무실>에서 창의 안팎을 거꾸로 단 사연을 적은 시를 보고 또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웃음을 자아내는 시들이 상당히 자주 보여 즐거웠다.


<그릇>에서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그 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고 말할 때 이 고백이 나에게도 해당됨을 느낀다. <꽃밭의 경계>는 경계를 표시할 돌을 줍는 행위를 반성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읽혔는데 마지막엔 반전처럼 “경계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어라”는 말에 놀란다.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는 이 시집의 또 다른 매력이다. <군인이 집으로 돌아간다면>이란 시는 이 세상 평화에 대한 희망을 잘 보여준다. 군인들이 정말 집으로 돌아간다면, 전쟁이 사라진다면, 하고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이 시집에서 눈시울을 붉힌 시가 두 편 있다. 한 편은 <고모>고, 다른 한 편은 <임홍교 여사 약전>이다. <고모>가 다섯 고모의 삶을 시어로 요약한 것이라면 <임홍교 여사 약전>은 시인의 어머니의 삶을 약력처럼 적은 시다. 한 어머니의 삶을 간결하게 요약한 이 시에 왜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을까? 내 어머니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면 어떨까?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요약된다는 것에 슬픔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그 시간의 흐름과 삶이 나의 기억과 합쳐져서 그런 것일까? 시인처럼 적을 정도로 내가 고모와 어머니의 삶을 모른다는 사실이 왠지 부끄럽다.


일상의 관찰과 사색을 통해 시어를 뽑아낸 시들을 보면서 그냥 무심코 지나친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시를 산문처럼 늘 다가가는 습관을 가진 나에게 이 시들은 집중하고 그려내고 상상하는 것만큼 문을 열어준다. 위에서 말한 마타리꽃이 어떻게 생긴 지 몰라도 그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감성과 마음은 조용히 다가온다. 알면 더 좋을 테지만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올해가 가기 전 시집을 한 권 더 읽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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