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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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표지가 먼저 시선을 끌었고, 지하 도시, 핵폐기물 처리시설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선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자연 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이 6년간의 집필로 완성한 이야기는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나의 예상은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둘러싼 문제들에 집중해 사회 문제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문제점보다 현실을 보여주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지만 이 부분을 파고들어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가 놓친 것일까?


화려한 표지와 달리 책 속의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인터넷 서점의 사진을 보고, 그 이미지가 명확해진 것도 있다. 참고 자료에 대한 정보를 책속에 표기해 놓았는데 인터넷주소를 그대로 치기도 쉽지 않다. QR코드를 넣어두었다면 좀더 쉽게 찾아보지 않았을까? 점점 게을러지는 나의 모습이 반영된 표현이다. 이런 책의 인상과 달리 내용은 놀라운 점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너무 많아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고, 이미지 형성에 많은 부분 실패했다. 자료를 찾아가면서 읽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우리가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세 실무 그룹이 인류세를 현재의 지질시대로 정식 채택하도록 권고했다’고 말하고, ‘그 시작점을 핵 시대가 도래한 1950년’이라고 한다. 이 인류세란 단어를 다른 책 속에서 이미 봤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 단어는 지구온난화와 연결된다.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노출된 순록 사체에서 탄저균 포자가 방출되었고, 동시베리아 숲에서는 수만 그루의 나무가 사라졌다. 그린란드 북서부에서는 만년설 아래 봉인했던 냉전 시대 미군 미사일 기지가 노출되었고 유독성 화학물질이 같이 폐기되어 있다. 이런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문제점을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지구온난화란 문제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까?


언더랜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숲 속 나무 아래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균근성 곰팡이가 숲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파리 지하 속 도시 이야기다. 카타콤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부분은 일부였다. 이 땅속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다. 마지막은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일들이다. 전통적인 사냥은 힘들어졌지만 이 땅의 지하자원을 노린 자본이 녹은 대지를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지하 공간에서 현재의 사하라 같은 모래의 흔적이 있다고 하니 상상력이 꿈틀거린다. 수십 수백만 년 전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어떤 문화가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의 가장 대단한 점은 이 모든 공간을 저자가 직접 경험했다는 점이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그 공간을 가게 되었는지 알려줄 때 어떤 곳은 그 위험성이 그대로 느껴질 때도 있다. 안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해도 작은 사고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개발 이야기 속에 자본의 논리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 부분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얼마나 많은 기계들이 땅 속에 그냥 폐기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핵 폐기물을 보관하기 위한 시설도 읽다 보면 상상력이 발동한다. 만약 이것이 폭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재밌는 부분은 이 보관소를 먼 후손들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기호 등에 대한 논의다. SF작가까지 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 책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수많은 문학 작품의 인용이다. 낯익은 작가와 작품도 있지만 낯선 것도 많다. 다른 문화의 환경과 경험 차이다. 단순히 그곳에 가서 경험한 것을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의 상황을 문학 작품 등과 엮어서 이야기한다. 상상력의 공간이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런 문학보다 현실적인 모습들이다. 우리가 몰랐고, 은폐했고, 기대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이 저자의 문장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저자가 경험한 공간들이,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린다. 능력이 되면 소설로 만들고 싶은 공간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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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성귀수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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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작의 평가가 좋아 선택했다. 1권만 읽은 상태라 전체적인 평가는 조금 유보하고 싶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나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연쇄살인범이자 치료감호소를 탈출한 쥘리앙 이르트만이 전작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더불어 막간극과 이르트만의 관계도 궁금하다. 전반부만 가지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는 것은 무리다. 확실한 살인 사건 하나를 가지고 엮이고 꼬인 사람들과의 관계가 하나씩 펼쳐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이르트만의 존재까지 감안해야 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 프랑스와 우루과이 경기가 벌어지던 중 마르탱 세르바즈 경정의 오래된 휴대폰에 한 통의 호출번호가 찍힌다. 그가 사랑했고,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전 연인 마리안의 연락이다. 그녀가 연락한 이유는 아들 위고가 살인 현장에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에 관심이 없는 그는 팀원들을 데리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곳은 대학도시 마르삭이다. 현장은 이미 지역 헌병대가 출동했고, 그는 이 사건을 담당하고자 한다. 검사와 합의한 후 조사를 진행한다. 저택 욕조에는 온몸이 밧줄로 꽁꽁 묶인 여교사이 시체가 놓여 있다. 입안에는 손전등이 끼어 있다. 기이하고 엽기적인 살인이디. 그리고 정원의 풀장에는 19개의 인형이 떠있다. 이 인형과 위고 때문에 옆집 사람이 신고했다.


이 기이한 살인에 그의 눈길이 한 번 더 간 것은 집안 가득 울리는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 때문이다. 이 음악은 이르트만의 상징과도 같다. 물론 우연일 수 있다. 이르트만이 탈출한지 18개월이나 지났지 않은가. 전 유럽의 수사기관이 그를 뒤좇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통의 수상한 메일이 그에게 온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르트만이 보낸 느낌이다. IP 추적을 통해 메일이 온 곳을 찾아간다. 그에게 남겨진 물건이 있는데 CD다. 이것을 재생하니 마릴린 맨슨의 음악이다. 그런데 딸 마르고가 이 밴드의 팬이다. 나중에 이 둘이 어떻게든지 연결될 것 같다.


위고가 체포된 소식은 마르삭에 이미 소문이 났다. 마르고도 여기서 대입을 준비 중이다. 매혹적인 여교사의 죽음은 단순히 위고의 살인으로 단정하기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 여교사의 메일함에서 삭제된 메일을 복원하니 그 지역 유력 정치인이 드러난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다. 그의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마르고도 친구 엘리아스와 위고의 무리들을 뒤좇는다. 엘리아스는 살인이 있던 밤 그 술집에서 위고 등을 지켜본 인물이다. 그리고 늦은 밤 이들이 모여 미로 속에서 나누는 수상한 대화를 듣는다. 새로운 아마추어 탐정들이 투입되는 순간이다.


읽다보면 프롤로그의 한 장면과 이르트만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과 막간극이 머릿속에서 엮인다.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수사 도중 마르탱은 의문의 인물에게 일격을 당한다. 그가 조사하던 CCTV가 무언가를 찍었던 것일까? 그리고 중반쯤에 전작의 헌병대 대위였던 지글레르가 등장한다. 아직 비중이 높지 않지만 사건의 추이를 볼 때 존재감을 뽐낼 것 같다. 언제 마르탱과 다시 연결되고, 어떻게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지 궁금하다. 여기에 경찰 내부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인물이 있는데 누군지 의문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전반부에 많은 것을 뿌려놓았다. 과연 어떻게 이것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지 궁금하다.


전작을 읽지 않아 궁금한 것이 많다. 아마 2권까지 읽고 1권의 느낌 그대로라면 전작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고가 쓰던 소설 제목이 ‘써클’이었는데 위고의 친구들이 ‘써클’을 말한다. 과연 이 둘은 같은 것일까? 다시 마리안의 만나 과거 이야기를 듣고, 그녀와 몸을 섞는 그가 얼마나 이성을 유지할지도 궁금하다. 그가 평생토록 마리안을 잊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말이다. 추천글을 보면 겹겹의 미스터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1권만으로도 회색뇌세포는 바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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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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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편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제목대로 누가 봐도 연애를 다룬 소설집이다. 이 30개의 짧은 소설들은 상황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읽다 보면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추억에 빠지고, 나의 노년을 생각하게 된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읽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마음먹으면 단숨에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과 재미가 있다. 작가를 검색하니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에세이와 집에 모셔둔 몇 권의 소설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작가들처럼 이 작가도 그냥 뒤로 미루어두었는데 이제 한 권씩 끄집어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이런 짧은 단편들이 여러 편 나오면 그 감상을 적기가 쉽지 않다. 몇 편만 추려서 말하기도 그렇고. 재미의 기복이 심하다면 재밌게 읽은 몇 편만 추리면 되지만 이 단편집은 상당히 균일한 재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성격을 가졌고, 나이도 초등학생부터 노년까지 다양하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또 어떤가. 읽으면서 이들이 마주한 상황 속에 나의 현재와 과거를 대입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어떤 대목에선 현실 풍자가, 어떤 이야기에서는 아련함이, 어떤 헤어짐에선 찌질함이, 어떤 사랑에선 순수함이 강하게 묻어난다.


녹색어머니회에서 헤어진 그녀를 만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과 작은 배려에 감동하고, 사랑의 감정 가득한 곳에서 마주한 몰카가 행복을 깨트린다. 재난지원금으로 짝사랑 여자의 밥을 사주고, 사내 연애를 하면서 그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연인의 출국이 연기되면서 느끼는 감정은 현실적 피곤함에 자리를 내준다. 오래된 부부의 별거가 만들어낸 상황은 또 어떤가.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의 은근한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농촌 노총각의 삶과 그 순수한 감정이 만들어낸 그 상황은 웃게 만들면서 그 순수함에 감동한다. 사기에 낚인 남자의 절실한 감정이 만든 절박함도 연애의 일부다.


읽으면서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도 몇 편 있다. 아마 내가 찌질해서 그럴 것이다. 아마 그 위치에 놓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어떤 사랑은 이해하기보다 그냥 받아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연애는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다. 어느 순간에 썸은 사랑으로 꽃피어난다. 연애는 서툴지만 그 마음은 진솔하다. 짧은 소설들이지만 그 간결함 속에 사연을 집어넣고, 상황을 만들어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작가의 유쾌한 문체와 유머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우리가 무심히 보고 지나간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소설들이 잘 보여준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반전도 조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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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삼킨 아이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양미래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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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함구증이란 단어를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들었다. 그것도 흔하지 않은 이란 소설을 통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몇 권의 이란 소설을 읽었는데 현대를 다루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이란을 떠난 사람들이 쓴 소설들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작가도 강체 추방되었으니 어쩌면 같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나에게 감쳐져 있던 이란의 모습을 살짝 엿보게 만들었다. 언론을 통해 알고 있던 일부 모습 너머의 현실은 우리의 삶과 큰 차이가 없고,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의 과거를 떠올려준다.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작가가 실화를 바탕을 두고 쓴 글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스무 살 청년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이어지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목소리를 삼킨 아이의 이야기와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샤허브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아이를 옹호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조금씩 꾸준히 나온다. 다섯 살이 되었지만 말을 하지 않는 샤허브를 보고 친척 호스로우 형이나 친형 아라쉬는 벙어리라고 말하고,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다만 호스로우 형은 샤허브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앞세우려고 한다. 어린 샤허브를 아이스크림으로 유혹하고, 강제로 하숫물을 마시게 하려고 한다. 다행이 아라쉬가 이것을 보고 막는다.

 

친척들은 샤허브를 지진아 혹은 벙어리라고 단정해서 말한다. 아빠조차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말이 조금 늦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샤허브에게 유일한 아군은 엄마가 유일하다. 이런 샤허브에겐 상상 속 친구가 둘 있다. 바비와 아시다. 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친할머니가 엄마를 질타하자 머리 위로 벽돌을 떨어트리고, 아라쉬 형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벙어리라고 말하자 형이 완성한 작품을 망가뜨린다. 자신에게 엄마처럼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 아빠는 가위로 차를 긁는다. 자신 속에 움튼 복수의 감정이 저지른 행위들이다. 아이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모두의 말을 알아듣지만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사허브. 그의 나쁜 행동도 감싸주는 엄마. 저능하다고 생각하는 아빠의 뒤틀린 감정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말하지 않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은 아빠의 감정을 더 나쁘게 만든다. 엄마의 울음에 반응해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엄마를 감싸기 위해 친척들 앞에서 욕을 내뱉는데 이 행동이 그 당시 긴장을 풀어주지만 지진아의 굴레를 완전히 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조급하고 자신의 위신을 생각하는 아빠는 아들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한 반 나아가기보다는 주춤하고, 쉽게 화를 낸다. 관심은 공부 잘 하는 큰 아들과 말 잘하는 막내 딸에 집중한다. 샤허브는 아빠를 아라쉬네 형 아빠라고 부른다.

 

친척 누나 페레슈테라는 샤허브를 이용해 공원에서 남자를 만난다. 이란은 법적으로 남녀가 같이 있게 되면 도덕경찰이 체포한다. 자유연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란과 명예살인이란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주루룩 나올 정도다. 그러나 청춘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다. 누나가 말하지 않는 샤허브를 이용해 남친을 만나는 것은 기발한 발상이다. 물론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은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경찰에 잡힐 뻔 한 적도 있다. 결국 밀회를 위해 집안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누나가 사라졌을 때 지진아라고 생각한 샤허브의 도움으로 그곳을 찾아간다. 그 이후 벌어진 몇 가지 상황은 낯설고, 감춰진 사회의 다른 면을 보게 한다.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와중에 샤허브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 외할머니다. 그녀는 이 집이 가진 문제를 잘 파악하고, 샤허브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과 애정과 꾸준한 노력으로 아이의 신뢰를 쌓고,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아이의 입을 조금씩 열게 한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돈을 번다는 아버지의 말이 가진 허점도, 집안일에 짓눌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엄마의 심리 이면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세심한 관찰, 꾸준한 노력과 믿음이 필요한데 이 부부는 성급했고 불안했다. 대화가 사라지고, 변명만 난무한다. 목소리를 숨길 수밖에 환경이 더욱 만들어졌다. 한 번 만들어진 관계는 노력으로 이어가야 한다. 외할머니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나 자신의 육아에 대해 돌아보고 배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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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파도 속으로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세연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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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주저없이 선택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내가 예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기대한 작품은 해양에서 찾는 유물과 이를 둘러싼 갈등과 음모 등이었는데 괴기한 상상력이 더 많이 들어갔다. 작가 후기를 보면 이 작품이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린 소설인지, 또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준다. 기대와 다르다고 하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잘 읽힌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말 일제의 배가 미군 폭격기에 의해 침몰한다. 가짜 병원선으로 위장한 731부대 병원이다. 한국의 서해는 일제가 침탈한 수많은 금괴와 유물 등을 일본으로 가지고 가는 도중에 침몰한 배들이 있는 곳이다. 실제 도자기 등을 실은 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배를 찾기 위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언론을 통해 나온 적이 있다. 이런 배를 찾는 사람들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있고, 가끔 영화로도 나온다.

 

최순석은 깊은 바다 키조개를 채취하는 재래식 잠수부다. 채취 후 집으로 돌아가는 중 해경 배 위에서 울부짓는 여자를 발견한다. 이윤정이다. 침몰한 배에서 아빠 시체를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해경은 찾다가 포기한 상태인데 순석은 그녀의 애절함에 넘어간다. 다행히 판돌의 도움으로 윤정의 아버지 시체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작은 에피소드가 생기지만 말이다. 뭍으로 돌아온 그에게 최동곤에게서 보물선을 찾은 것 같다는 문자 한 통이 온다. 다음 날 최동곤의 집에 갔는데 그는 시체가 되어 있다. 다잉 메세지가 피로 써져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를 공격한 후 달아났다. 집은 불탔다. 최초 발견자이자 용의자로 며칠 고생한다.

 

최동곤의 장례식에서 평생을 일본 침몰선 초잔마루를 찾아다닌 이도형을 만난다. 돈을 벌면 그는 이 보물선을 찾아다녔다. 순석은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그 숫자가 의미하는 곳으로 간다. 최동곤이 찾은 보물선을 발견한다. 배를 발견했다고 그 보물이 고스란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일에는 돈이 들어간다. 이도형과 함께 인양하기로 한다. 마린보이호란 배가 구해지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모여든다. 그 중에는 최동곤의 전처도 있고, 약사인 이윤정도 있다. 이들은 순석이 표시한 곳으로 간다. 위치를 표시했다고 해도 서해 바다는 인양이 쉽지 않다. 세월호나 천안함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조류나 뻘 등이 이것을 어렵고 힘들게 만든다.

 

정확한 위치를 알고 도구가 있다면 힘든 환경이라고 해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순석 등의 잠수부는 초잔마루호의 내부에서 수상한 항아리와 백금괴로 추정되는 것을 찾아낸다. 만약 이것이 백금괴가 맞다면 금괴 하나에 13억 원의 가치가 있다. 이들은 신났다. 그런데 갑자기 해적이 배에 올라탄다. 어디에서 나타났지? 백금괴를 발견한 것은 또 어떻게 알았지? 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더 많은 금괴를 인양하라고 말한다. 본보기로 항해사를 죽인다. 해적에 대항해 반격을 시도해보려고 하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이 백금괴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젠 진짜 금괴를 찾아내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해적과 보물선 이야기가 어느 순간 배의 조난과 엮이면서 731부대의 수상한 항아리로 옮겨간다. 항아리 속에서 발견된 문서 한 장은 이 배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하지만 흐릿하고 일어 전공자도 없어 번역이 쉽지 않다. 이 문서는 이윤정이 번역하는데 초잔마루의 항해일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수상한 항아리에서 나온 기이한 물질 등은 왠지 모르게 으스스하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조난 이후 배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사건들의 사실과 연결된다. 기대한 것과 너무 다른 설정과 전개지만 가장 빠르게 읽은 부분도 바로 이 부분들이다. 개인적으로 최동곤의 죽음과 보물선 찾기가 더 엮이고 꼬이면서 미스터리한 상황이 일어나고 긴장감을 불어넣기 기대했는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다. 순석과 윤정의 행동과 심리 표현도 왠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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