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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평점 :
오프라 윈프리가 “내 평생 읽은 최고의 책이다.”라는 극찬을 했다고 해서 혹했다. 여기에 주인공이 가진 ‘사물이나 사람을 순간 이동시킬 수 있는 비상한 초능력’이 강하게 눈길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큰 기대를 했다. 큰 기대가 독이 되었을까? 아니면 내가 예상한 판타지가 너무 없는 탓이었을까? 가볍게 읽길 바랐기 때문일까? 솔직히 말해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 책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노예제도 시대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와 너무 다른 모습이었기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이 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면 아마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미국 남부의 버지니아와 북부의 필라델피아가 주요 무대다. 주인공 하이람은 백인 농장주의 혼혈 아들이다. 이 시대에 혼혈은 유색인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이 문장을 쓰면서 홍길동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하이람은 아버지 대신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그에게는 한 명의 형이 있는데 그는 백인이다. 당연히 형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시대를 다룬 소설 등에서 잘 나오듯이 혼혈 자식들은 재산의 일부다. 필요하다면 팔기도 한다. 하이람의 엄마도 농장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팔았다. 담뱃잎을 생산하는 농장의 몰락은 이 생산도구인 흑인 노예의 매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이람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대단한 기억력이지만 엄마에 대한 기억만 희미하다. 그가 처음 이동하는 초능력을 발휘한 것은 백인 형과 함께 탄 마차가 강으로 추락한 순간이다. 형은 죽었고,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 채로 발견되었다. 그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의 이런 능력을 눈여겨 본 사람들이 있다. 바로 버지니아 언더그라운드 조직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나오는데 작가는 이것의 ‘인도의 힘’이라고 부른다. 소설은 하이람이 이 ‘인도’를 자신의 의지대로 하게 되는 순간까지 다룬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상황들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한 소년의 성장을 보여준다.
하이람의 대단한 기억력은 백인들에게 좋은 유흥거리다. 자신이 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하이람은 주인님의 바람대로 형의 좋은 하인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형의 죽음은 그의 가능성을 닫아놓는다. 여기에 하이람이 사랑하는 소피아가 나오면서 그는 탈출을 바란다. 탈출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장의 다른 노역인에게 부탁한다. 이 부탁은 잘못된 것이다. 노예 상인에게 넘어간 그는 팔린다. 이 매각이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예상외의 전환이다. 이후 언더그라운드의 도움으로 자유인으로 필라델피아에 머물면서 조직원으로 살아간다. 이 시기에 그는 조금씩 현실에 대해 눈을 뜬다. 가슴 속에는 구하고 싶은 두 명의 여자들을 품고 있다.
필라델피아라고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이미 <노예 12년>이란 소설에서 봤듯이 자유인이 된 흑인을 잡아가는 백인들이 있다. 그리고 흑인들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백인들의 모습도 나온다. 이런 현실 속에 자신들의 가족들을 남부에 노예로 남겨두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진다. 하나의 자산으로 팔려나가면서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말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의 가족으로 모여 사는 것이다. 하지만 남부에서 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쉽지 않다. 실패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위험하지만 멈출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백인들이 이 시대에 흑인들의 탈출을 도왔을까 하는 부분을 적은 대목이 나온다. “노예제도는 그들을 수치스럽게 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선량함에 대한 기본 감각을 노예제도가 침해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들의 증오심은 일종의 허영이며, 노예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노예제도 자체에 대한 증오였다.”라고 말한다. 이 허영의 일부를 가진 인물 중 한 명이 주인공 하이람이었다. 흑인이지만 그는 백인 아버지의 후광 속이라면 팔리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자각하는 순간은 과거의 기억을 찾는 순간이다. 이 부분은 현재 인종차별을 넘어가려면 과거의 기억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취향을 타지만 강한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