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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삼킨 아이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양미래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8월
평점 :
선택적 함구증이란 단어를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들었다. 그것도 흔하지 않은 이란 소설을 통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몇 권의 이란 소설을 읽었는데 현대를 다루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이란을 떠난 사람들이 쓴 소설들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작가도 강체 추방되었으니 어쩌면 같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나에게 감쳐져 있던 이란의 모습을 살짝 엿보게 만들었다. 언론을 통해 알고 있던 일부 모습 너머의 현실은 우리의 삶과 큰 차이가 없고,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의 과거를 떠올려준다.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작가가 실화를 바탕을 두고 쓴 글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스무 살 청년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이어지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목소리를 삼킨 아이의 이야기와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샤허브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아이를 옹호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조금씩 꾸준히 나온다. 다섯 살이 되었지만 말을 하지 않는 샤허브를 보고 친척 호스로우 형이나 친형 아라쉬는 벙어리라고 말하고,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다만 호스로우 형은 샤허브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앞세우려고 한다. 어린 샤허브를 아이스크림으로 유혹하고, 강제로 하숫물을 마시게 하려고 한다. 다행이 아라쉬가 이것을 보고 막는다.
친척들은 샤허브를 지진아 혹은 벙어리라고 단정해서 말한다. 아빠조차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말이 조금 늦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샤허브에게 유일한 아군은 엄마가 유일하다. 이런 샤허브에겐 상상 속 친구가 둘 있다. 바비와 아시다. 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친할머니가 엄마를 질타하자 머리 위로 벽돌을 떨어트리고, 아라쉬 형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벙어리라고 말하자 형이 완성한 작품을 망가뜨린다. 자신에게 엄마처럼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 아빠는 가위로 차를 긁는다. 자신 속에 움튼 복수의 감정이 저지른 행위들이다. 아이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모두의 말을 알아듣지만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사허브. 그의 나쁜 행동도 감싸주는 엄마. 저능하다고 생각하는 아빠의 뒤틀린 감정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말하지 않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은 아빠의 감정을 더 나쁘게 만든다. 엄마의 울음에 반응해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엄마를 감싸기 위해 친척들 앞에서 욕을 내뱉는데 이 행동이 그 당시 긴장을 풀어주지만 지진아의 굴레를 완전히 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조급하고 자신의 위신을 생각하는 아빠는 아들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한 반 나아가기보다는 주춤하고, 쉽게 화를 낸다. 관심은 공부 잘 하는 큰 아들과 말 잘하는 막내 딸에 집중한다. 샤허브는 아빠를 아라쉬네 형 아빠라고 부른다.
친척 누나 페레슈테라는 샤허브를 이용해 공원에서 남자를 만난다. 이란은 법적으로 남녀가 같이 있게 되면 도덕경찰이 체포한다. 자유연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란과 명예살인이란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주루룩 나올 정도다. 그러나 청춘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다. 누나가 말하지 않는 샤허브를 이용해 남친을 만나는 것은 기발한 발상이다. 물론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은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경찰에 잡힐 뻔 한 적도 있다. 결국 밀회를 위해 집안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누나가 사라졌을 때 지진아라고 생각한 샤허브의 도움으로 그곳을 찾아간다. 그 이후 벌어진 몇 가지 상황은 낯설고, 감춰진 사회의 다른 면을 보게 한다.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와중에 샤허브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 외할머니다. 그녀는 이 집이 가진 문제를 잘 파악하고, 샤허브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과 애정과 꾸준한 노력으로 아이의 신뢰를 쌓고,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아이의 입을 조금씩 열게 한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돈을 번다는 아버지의 말이 가진 허점도, 집안일에 짓눌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엄마의 심리 이면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세심한 관찰, 꾸준한 노력과 믿음이 필요한데 이 부부는 성급했고 불안했다. 대화가 사라지고, 변명만 난무한다. 목소리를 숨길 수밖에 환경이 더욱 만들어졌다. 한 번 만들어진 관계는 노력으로 이어가야 한다. 외할머니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나 자신의 육아에 대해 돌아보고 배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