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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역사 - 김 시스터즈에서 BTS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7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한류란 단어가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그 역사를 보면 겨우 20여 년이다. 저자는 김 시스터즈부터 시작해 BTS까지로 다루지만 실질적인 한류는 IMF 이후부터라고 봐야 한다. 물론 저자는 그 이전에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를 간단히 시대순으로 집고 넘어간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음악과 방송의 역사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컬러TV가 국내에 보급된 이유가 미국 수출이 막혀서란 부분이다. 영상 혁명이란 부분에서 이후 HD, UHD 같은 화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AFKN이다. 지방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미군방송이다. 봉준호의 영화 세포의 원천이라고 불리던 것이다. 이 방송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역적 차이가 문화적 차이를 만든다는 글이 떠오른다.
전형적인 강준만 식 글쓰기다. 인용글을 이어붙여 가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늘 놀라는 글쓰기 방식인데 언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용글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어붙이기 방식 때문에 중복되는 문장이나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좋게 보면 중요한 강조다. 이 수많은 인용과 출처들은 사실 하나씩 주석을 확인하면 시간이 무한정 늘어난다. 그래서 본문에 집중하고 주석은 나중에 확인하지 하면서 잊게 된다. 뭐 읽다가 궁금한 경우에는 주석을 찾아봤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이번 책은 주석만 거의 80쪽에 달한다.
이 책을 읽기 전 강헌의 한국 대중문화 강좌를 팟캐스트를 통해 들었다. 그중에서 한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려주는 부분을 흥미롭게 들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 부분이 다시 반복된다. 팬덤들이 한류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부분이다.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아이돌의 음악과 정보 등을 자발적으로 올리면서 초기 한류 형성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각종 사이트의 연예인 게시판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사진이나 짤이 끝없이 올라온다. 나 같이 이런 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짤 등을 통해 요즘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알게 된다. 물론 이전부터 알고 있는 연예인들도 많다.
이 책은 한류를 다루면서 드라마와 음악 등에 대부분을 할애한다. 게임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이야기하지만 수익이나 팬덤 등을 감안하면 훨씬 대단한 게임 부분이 너무 적다. 실제 한국의 인터넷 게임에 인기도는 아이돌 이상인 경우도 있지만 아직 이 부분에 대한 기사나 정보는 적다. 나 자신도 롤의 페이커를 안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페이커의 대단함에 대한 평가를 보다 보면 그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e-스포츠와 한류의 연관성을 좀더 파고들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이 분야를 제대로 알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저자가 페이커를 조금이나마 다루었다는 부분은 박수칠만 한 일다. 인터넷게임에 대한 분석 등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프로게이머를 아직도 이전의 연예인들을 ‘딴따라’라고 부른 것 같은 식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한류에 대한 개괄적 역사를 담고 있다 보니 좀더 알고 싶은 한류 정보가 빠진 경우도 있다. 읽다 보면 한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과 팀이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욘사마 열풍을 일으킨 배용준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BTS다. 욘사마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방송 등을 통해 이미 경험했지만 뒤로 들은 말은 그보다 더 대단했다고 한다. 욘사마가 한국 드라마의 일본 진출의 문을 거의 열었다고 한다. 욘사마 이후 한류 마케팅의 문제점 등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한류 드라마의 영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동남아 거래처들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던 중국 직원이 나중에 이민호에게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류를 더 절감했다.
사실 방탄소년단의 초기 시절을 기억하기에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무관심과 무지와는 상관없이 BTS는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다. 이 성공의 일부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알려주는 글들을 보면서 인터넷 강국이란 허울 속에 실속을 발견했다. SNS와 유튜브는 이들이 그들의 팬덤 아미와 소통하는 공간이자 홍보창이다. 미국의 유명한 프로레슬러가 자신도 아미라고 말한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중남미의 한국 팬클럽 등을 보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내가 부끄럽다. 올해 초에도 거래처 직원이 나는 모르는 한국 아이돌 그룹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BTS의 노래를 대충 흘려 들었는데 언젠가 제대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감상해보고 싶다.
저자는 결론적은 한류를 만든 요인으로 열 가지를 꼽았다. 그 중 첫 번째인 ‘뛰어난 혼종화, 융합 역량과 체질’은 초반부터 계속해서 주장한 것이다. 이전에는 외국의 것을 카피했다면 이제는 융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MP3 파일 공유를 허용하면서 생긴 음반 시장의 몰락과 IMF 이후 해외 시장 진출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IT 강국의 시너지 효과’도 꼽았는데 앞에서 말한 인터넷 게시판 활동 등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 홍보에 아주 효율적이고 강력했다. 이외 다른 요인들도 다루었는데 공감할 부분들이 많다. 그리고 이 한류의 역사 속에 있었던 수많은 문제점과 논쟁도 같이 풀어놓아 단순한 한류 홍보가 아니다.
저자는 “한류의 역사를 중간보고 차원에서 기록해두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분명히 말한다. 윤리적 문제를 제쳐놓고 보면 이수만을 비롯한 한류 기업가들의 우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는 동의한다. 성공은 열정과 노력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00만 신드롬’ 문제를 지적하는데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 등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의 개선이 필요함을 다시 느낀다. 언젠가 나중에 봐야지 했던 영화가 대작에 밀려 상영이 끝난 것을 발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저자는 한국을 대중문화 공화국이라고 말한다. 맞다. 내가 예전처럼 대중문화를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을 둘러보면 드라마와 음악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한류의 역사란 제목 속에 한국 대중문화 역사를 아주 잘 녹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