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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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민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처음 나왔을 때 얼핏 본 기억이 있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영화도 봤다. 이상의 시를 소재로 이런 스릴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 작품들이 나왔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궁극의 아이>와 <불로의 인형>에 대한 수많은 호평을 보고 다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책을 구해놓고 당연히 묵혀둔 것은 나의 일반적인 수순이다. 읽어야지 하면서 놓아뒀지만 손이 먼저 간 것은 최근작인 <귀신나방>이었다. 책을 펼쳐 읽자 잘 읽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작품 하나가 있다.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이다. 나치와 히틀러를 다룬 고전 중 고전이다. 2차 대전 마지막에 히틀러가 자살했다고 했지만 그가 살아 있다는 소문은 계속해서 떠돌고 있다. 나치의 죽음의 의사 멩겔레를 찾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최근에 멩겔레를 추적한 책이 한 권 나왔다고 하는데 이번 소설을 읽은 후 부쩍 관심이 생겼다. 히틀러가 살아 있다면, 그의 제국을 새롭게 건설한다면 어떤 모습과 어떻게 제국을 건설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작가는 이 의문을 멩겔레의 의술과 미국 자본주의 속으로 들어간 나치를 설정해서 풀어내었다.


소설의 도입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란 남자가 한 소년을 살해하면서 아돌러 히틀러를 외치는 장면이다. 이후 바우만은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퓰리처상 수상자인 여성 저널리스트 크리스틴 하퍼드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그녀에게 왜 그가 소년을 쏠 수밖에 없었는지 들려준다. 자신이 아우슈비츠 출신이고, 나치 잔당을 체포하려는 이디의 멤버 중 한 명이었다고 말한다. 전후 독일의 풍경을 묘사하고, 동료들과 나치 잔당을 잡기 위해 어떤 활약을 했는지, 그 과정에 어떤 비극이 있었는지 빠르고 간결하게 보여준다.


자살한 히틀러가 가짜란 소문은 그럼 진짜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여기에 멩겔레가 수용소에서 어떤 끔찍한 실험을 했는지 몇 가지 예를 들면서 황당하지만 과감한 설정 하나를 집어넣는다. 그것은 뇌수술이다. 히틀러의 뇌를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이식 수술한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실험체로 사용한 멩겔레이기에 이런 수술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거부반응에 대한 몇 가지 기본 사항을 넣었지만 쉽게 납득하기 힘든 설정이다. 이 부분을 지나면 젊어진 히틀러가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들은 아주 극단적으로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전혀 현실감이 없게 다가온다.


이 소설의 재밌는 부분 중 하나는 새롭게 변신한 히틀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의 심리를 조정하는 것이나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지닌 힘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그 힘을 얻기 위한 과정들을 보여주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극단적인 설정과 주관적인 진행으로 현실성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시대를 60년대로 잡은 이유도 나오는데 음모론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나쁘지 않은 설정들이지만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웹소설의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아쉬운 대목이다. 오토 바우만의 추적을 다루지만 결국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라면 어떤 행동과 사고를 할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전 작품들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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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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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앤 롤링을 제친 신인이란 문구는 정말 인상적이다. 내가 조앤 롤링을 제쳤다는 문구 그대로에 혹할 사람은 아니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지금은 잠시 고개를 끄덕인다. 재밌을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 이상으로 잘 읽힌다. 광고에 나오는 판타지,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키워드 등이 머릿속에 자리잡았지만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와 얼사와 게이브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잠시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이들의 앞날이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과 더불어서. 마지막 장을 덮은 다음에는 작은 만족감이 찾아온다.


조애나 틸. 암으로 엄마를 잃고 자신도 암으로 유방과 난소를 제거했다. 처음에는 이런 정보가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전 남친이 등장하면서 이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앞에 많아야 아홉에서 열 살 정도의 소녀가 나타난다. 바로 얼사다. 얼사를 처음 본 조는 경찰에도 신고하고, 실종자 사이트도 검색한다. 찾아온 경찰의 말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밖이 더 위험하기에 어쩔 수 없이 잠시 머물게 한다. 얼사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마을의 계란 장수를 찾아간다. 그가 게이브다. 이때 처음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그를 바라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얼사의 등장이 이 이웃이 서로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조는 조류학 학위를 따기 위해 이 작은 마을에 왔다. 유리멧새가 그녀의 관찰 대상이다. 얼사는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온 행성과 종족을 말하는데 솔직히 나는 이해 못할 내용이다. 소녀는 다섯 기적을 경험한 후 자신의 별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굶주림과 흐름한 옷과 맨발은 그녀가 가출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소녀가 생각보다 영리하고 지적이다. 경찰이 나타나자 바로 도망치고, 조류학 책을 생각보다 재밌게 읽는다. 나중에 고양이의 이름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따오기도 한다.


게이브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타인과의 대화가 거의 없는 남자다. 상당히 잘 생겼다. 얼사를 사이에 두고 조와 게이브가 작은 관심과 불꽃을 피운다. 밀고 당기는 시간들이 일어나는데 이 일은 그들의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다. 조는 연구가 끝나면 돌아가야 하고, 게이브는 정신 병력이 있다. 그리고 게이브의 엄마도 아프다. 게이브의 누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게이브가 이 둘에게서 잠시 멀어진 것도 이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언제나 현실에서 도망치게 만든다. 조는 게이브가 현실을 마주보는데 큰 도움을 준다.


조와 게이브가 현실의 삶에서 그들이 겪은 아픔과 고통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얼사는 그 과거를 알 수 없다. 한동안 그들은 실종 아이들을 찾는 사이트를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언제부터인가 포기했다. 이 포기는 힘들고 귀찮아서가 아니라 얼사와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아이를 찾아서 경찰이 온다면 유괴 등의 범죄로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아이는 자신이 말한 다섯 가지 기적 중 몇 가지를 빠르게 이룬다. 큰 것들이 아닌 작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얼사의 존재는 이 훈훈한 소설에서 판타지 요소 한 가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혹시 진짜 외계인 아니야 하고.


이 소설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인 가족을 다룬다. 가족 간의 갈등, 새로운 만남, 화해 등을 아주 잘 엮었다. 대사가 많이 나와 잘 읽히고,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조의 조류학 연구는 소설 속의 또 다른 지식이자 재미다. 가슴과 난소를 잃어 여성성이 거세되었지만 성욕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기 위한 한 발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거의 모두 가슴 속에 아픔을 담고 있다. 특히 조, 얼사. 게이브 등은 더욱더. 이 아픔과 고통을 넘어 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다 갑자기 벌어진 하나의 사건은 이야기의 방향을 돌리고, 앞에 느낀 불안감을 현실화시킨다. 현실적이고 깔끔하고 훈훈한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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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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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전 애인의 집을 불 질러 일가족을 죽게 만들었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정말 나쁜 여자다. 경찰의 수사 결과나 재판 과정에서 하나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은 그녀에게 사람들은 악녀의 낙인을 찍고, 그녀가 받은 사형 판결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당연함의 이면을 파헤치는데 작가는 재판 판결문의 문장 첫 부분들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이 판결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언론의 무책임한 발표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형수의 친구들 시선을 통해 하나씩 풀어낸다. 그리고 결국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그녀의 삶을 빠르게 돌아본다.


다나카 유키노. 사형을 선고받은 여자의 이름이다. 산부인과 의사의 시선으로부터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열일곱 살 미성년자였던 엄마, 낙태하러 왔다가 의사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꾼 엄마. 그리고 그런 그녀를 사랑해 결혼한 아빠. 엄마와 같이 갑자기 정신을 잃는 병을 앓고 있는 유키노. 언니와 함께 쇼 등과 밤하늘을 구경하기로 한 그녀. 하지만 이 평온한 일상에 외할머니가 찾아오면서 균열이 생긴다. 엄마가 사고로 죽고, 그녀를 사랑해 술을 끊었던 아빠는 술에 취해 딱 한 번 그녀를 때린다. 양부의 거친 폭력에 시달렸다는 문장의 허구를 보여준다.


1부는 이런 식으로 중학교 시절 강도치사 사건과 과거 교제 상대에 대한 이야기와 계획성 짙은 살의를 그녀가 아닌 그녀 옆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파고들어간다. 엄마의 죽음 이후 뒤틀린 삶과 관계의 서툰 모습과 누군가에게 연결되어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하는 그녀를 표현한다. 읽으면서 그녀가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세운다. 1부의 각 장은 이런 가정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유키노의 잘못이 아닌데, 나쁜 남자를 만났을 뿐인데, 전화만 그때 연결되었으면 되었을 텐데 하고.


2부로 넘어가면 어린 시절 친구였던 쇼와 신이치의 시점으로 변한다. 이 둘은 유키노의 사형을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둘의 관점은 다르다. 쇼는 그녀의 죄를 인정하면서 사형을 지연하고 감형 받으려고 한다. 신이치는 그녀의 무죄를 믿고 있다. 이런 차이는 오랜만에 만났을 때는 크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벌어진다. 도쿄대 법학과 재학 중 변호사 시험에 붙은 쇼와 학교 이지메의 대상이었던 신이치가 살아온 길도 너무 다르다. 여기에 신이치가 숨기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의 죄의식을 강하게 만들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이끌어낸다.


이 소설에서 가장 먹먹한 부분은 역시 에필로그다. 앞에서 보여준 유키노의 가짜 모습이 깨어진 순간을 보여준다. 살아남아 외롭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바라는 그녀의 바람이 강한 아픔과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유키노의 삶을 따라가면서 가정 폭력, 동네 소문, 학교 폭력, 이지메, 청소년 보호법, 흥미 위주의 미디어 문제, 사형제도 등을 간단하면서도 묵직하게 다루고 넘어간다. 그리고 유키노가 아닌 그녀에게 자신의 죄를 넘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나도 그들처럼 하지 않았을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 작품이 준 먹먹함과 여운이 강하게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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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성찰하다 - 중산층 붕괴,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유럽중심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다니엘 코엔 지음, 김진식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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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럽사를 알게 되면 꼭 68혁명을 만나게 된다. 많은 인문학자들의 강의 속에서 이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몇 년 전 50주년을 기념해서 이와 관련된 책들이 꽤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늘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다른 책들처럼 읽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 68혁명은 하나의 전설처럼 나에게 남았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전설 같은 이 68혁명의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저자는 이 혁명으로 바뀐 좋은 부분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에 더 많은 시선을 주고, 그 이후의 변화를 분석한다.


고도성장기에 사람들은 미래를 낙관한다. 이 낙관이 68혁명에도 작용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이 중단되면서 장밋빛 미래는 조용히 사라진다. 80년대 신자유주의는 유럽 선진국의 수많은 산업들을 제3세계로 옮기게 만들었다. 그 중 한 곳이 한국이었다. 이 산업의 이전과 자본의 탐욕은 우리가 늘 마주하게 되는 두 계급의 소득 격차를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벌려놓는다. 수많은 좌파학자들이 주장하는 미국 상장기업 CEO 연봉 등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그 중 하나가 낙수효과인데 실제 우리는 이 효과를 봤다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혹시 안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뜨끔했던 순간이 여러 번 있다. “좌파 엘리트들은 능력주의적인 이런 이상이 고등 교육을 받지 않고 유기농도 먹지 않으며 건강 위생도 좋지 못한 사람들의 귀에 비난처럼 들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부분과 “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기를 그들은 원했던 것이다.”란 문장들이다. 알게 모르게 지식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계몽의 수단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무심코 뱉은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성 이전에 감성이 먼저 움직인다는 사실은 늘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학살 정책을 시작할 때 그는 군중이 도덕에서 벗어나도록 준비시켰다.” 이 문장은 2차 대전 당시 평범한 독일인들이 어떻게 그런 대학살을 용인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실제 전후 독일인들이 지금처럼 피침략국과 유대인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빈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와 68혁명의 연관성을 엮어 풀어낸 이야기를 보고 우리의 친일 청산이나 일본의 사과 등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독일인의 90퍼센트는 가끔씩 마음에서 우러나 나치에 동조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란 문장은 굉장히 논쟁적이지만 그 시대의 현실을 깨닫게 만들기 충분하다.


한동안 유럽은 난민과 이민 문제가 심각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역사 속에서 이민이 경제성장과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 알려줄 때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 한국도 어촌과 농촌으로 넘어가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유지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민자들이 노동력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그 지역 사람들이 하기 싫거나 임금이 적은 일들이다. 이 연관성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 것이지만 주변에서 이런 일들을 자주 만나고 듣게 된다.


현대는 스마트폰의 시대다. 코딩이 교과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는 이 일이 특정 직업군에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코딩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알게 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이유는 로봇이 알고리즘에 의해 지배되고, 이런 알고리즘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해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알려주는 몇 가지 사건들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렇게 이 책은 분량에 비해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노출하고, 토론의 장으로 끌고 오고, 바뀐, 바뀌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유럽을 성찰하다>란 제목보다 <세상이 변했다고 말해야 한다>란 원제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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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바다로
나카가미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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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미 겐지의 소설을 검색하니 이 작품 이외에 딱 한 권이 나온다. 오래전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고목탄>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는데 소개글을 보니 화려한 문학상 수상 이력이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고인이다. 그리고 이번 단편집은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까지 쓴 작품을 모은 것이다.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너무도 잔혹한 젊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나의 젊은 시절 일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물론 시대와 국가가 달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다양한 분위기의 단편들인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청춘의 열정이다. 정액이다. 한 편을 제외하면 정액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 단편은 없다. <사랑 같은> 소설은 아예 노골적으로 손과 성교를 다룬다. 사람의 손을 닮은 무엇에 빠진 스물한 살의 대학생이 주인공이다. 괴이하고 엽기적인 상황들인데 마지막 반전은 정말 예상 밖이다. ‘손가락’의 애무를 벗어나기 위해 점점 살찐 나를 상상하는 장면은 그 발작적인 웃음과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 ‘손가락’을 나만의 것이란 착각을 보고, 어릴 때 나만의 생각이라고,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첫 작품 <18세>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읽기 편하다. 미숙한 청소년들은 어른 흉내를 내면서 자신들이 다 자랐다고 생각하지만 예상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을 때 그 미숙함은 너무 쉽게 드러난다. <JAZZ>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짧다. 조금 긴 산문시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 단편집에서 자주 나오는 음악 장르는 재즈다. <다카오와 미쓰코>는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단편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어떤 살들을 더 붙였을까 궁금하다. 동반자살미수업으로 돈을 벌겠다고 한 친구들이 결국 동반자살로 끝난 현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불만족>은 나의 독백과 또 다른 ‘나’와이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나도 한 적이 많지 않은가. <잠의 나날>은 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나의 이야기다. 배 다른 형의 자살 기억과 부모의 돈으로 도쿄에서 뒤틀린 삶을 살아가는 화자의 모습이 강한 허무를 전달한다. 형의 자살과 그 이전에 있었던 상황들 속에 드러나는 솔직한 심리 묘사는 날카롭다. 마지막 작품 <바다로>는 이야기보다 이미지 표현에 더 집중했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서 풀어내고 정화시키는 과정이 낯설다.




전체적으로 이 단편집은 이야기보다 이미지와 청춘의 잔혹한 삶에 집중했다. 내가 기대한 18세 청춘의 고뇌와 아픔은 그렇게 강하게 와 닿지 않았다.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쉽게 산산조각난다. 작가 소개글을 읽다 보면 이 단편 속 상황들 중 꽤 많은 부분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 발견이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언젠가 <고목탄>을 찾아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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