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역사 - 김 시스터즈에서 BTS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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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한류란 단어가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그 역사를 보면 겨우 20여 년이다. 저자는 김 시스터즈부터 시작해 BTS까지로 다루지만 실질적인 한류는 IMF 이후부터라고 봐야 한다. 물론 저자는 그 이전에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를 간단히 시대순으로 집고 넘어간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음악과 방송의 역사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컬러TV가 국내에 보급된 이유가 미국 수출이 막혀서란 부분이다. 영상 혁명이란 부분에서 이후 HD, UHD 같은 화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AFKN이다. 지방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미군방송이다. 봉준호의 영화 세포의 원천이라고 불리던 것이다. 이 방송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역적 차이가 문화적 차이를 만든다는 글이 떠오른다.


전형적인 강준만 식 글쓰기다. 인용글을 이어붙여 가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늘 놀라는 글쓰기 방식인데 언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용글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어붙이기 방식 때문에 중복되는 문장이나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좋게 보면 중요한 강조다. 이 수많은 인용과 출처들은 사실 하나씩 주석을 확인하면 시간이 무한정 늘어난다. 그래서 본문에 집중하고 주석은 나중에 확인하지 하면서 잊게 된다. 뭐 읽다가 궁금한 경우에는 주석을 찾아봤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이번 책은 주석만 거의 80쪽에 달한다.


이 책을 읽기 전 강헌의 한국 대중문화 강좌를 팟캐스트를 통해 들었다. 그중에서 한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려주는 부분을 흥미롭게 들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 부분이 다시 반복된다. 팬덤들이 한류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부분이다.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아이돌의 음악과 정보 등을 자발적으로 올리면서 초기 한류 형성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각종 사이트의 연예인 게시판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사진이나 짤이 끝없이 올라온다. 나 같이 이런 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짤 등을 통해 요즘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알게 된다. 물론 이전부터 알고 있는 연예인들도 많다.


이 책은 한류를 다루면서 드라마와 음악 등에 대부분을 할애한다. 게임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이야기하지만 수익이나 팬덤 등을 감안하면 훨씬 대단한 게임 부분이 너무 적다. 실제 한국의 인터넷 게임에 인기도는 아이돌 이상인 경우도 있지만 아직 이 부분에 대한 기사나 정보는 적다. 나 자신도 롤의 페이커를 안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페이커의 대단함에 대한 평가를 보다 보면 그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e-스포츠와 한류의 연관성을 좀더 파고들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이 분야를 제대로 알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저자가 페이커를 조금이나마 다루었다는 부분은 박수칠만 한 일다. 인터넷게임에 대한 분석 등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프로게이머를 아직도 이전의 연예인들을 ‘딴따라’라고 부른 것 같은 식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한류에 대한 개괄적 역사를 담고 있다 보니 좀더 알고 싶은 한류 정보가 빠진 경우도 있다. 읽다 보면 한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과 팀이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욘사마 열풍을 일으킨 배용준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BTS다. 욘사마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방송 등을 통해 이미 경험했지만 뒤로 들은 말은 그보다 더 대단했다고 한다. 욘사마가 한국 드라마의 일본 진출의 문을 거의 열었다고 한다. 욘사마 이후 한류 마케팅의 문제점 등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한류 드라마의 영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동남아 거래처들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던 중국 직원이 나중에 이민호에게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류를 더 절감했다.


사실 방탄소년단의 초기 시절을 기억하기에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무관심과 무지와는 상관없이 BTS는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다. 이 성공의 일부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알려주는 글들을 보면서 인터넷 강국이란 허울 속에 실속을 발견했다. SNS와 유튜브는 이들이 그들의 팬덤 아미와 소통하는 공간이자 홍보창이다. 미국의 유명한 프로레슬러가 자신도 아미라고 말한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중남미의 한국 팬클럽 등을 보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내가 부끄럽다. 올해 초에도 거래처 직원이 나는 모르는 한국 아이돌 그룹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BTS의 노래를 대충 흘려 들었는데 언젠가 제대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감상해보고 싶다.


저자는 결론적은 한류를 만든 요인으로 열 가지를 꼽았다. 그 중 첫 번째인 ‘뛰어난 혼종화, 융합 역량과 체질’은 초반부터 계속해서 주장한 것이다. 이전에는 외국의 것을 카피했다면 이제는 융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MP3 파일 공유를 허용하면서 생긴 음반 시장의 몰락과 IMF 이후 해외 시장 진출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IT 강국의 시너지 효과’도 꼽았는데 앞에서 말한 인터넷 게시판 활동 등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 홍보에 아주 효율적이고 강력했다. 이외 다른 요인들도 다루었는데 공감할 부분들이 많다. 그리고 이 한류의 역사 속에 있었던 수많은 문제점과 논쟁도 같이 풀어놓아 단순한 한류 홍보가 아니다.


저자는 “한류의 역사를 중간보고 차원에서 기록해두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분명히 말한다. 윤리적 문제를 제쳐놓고 보면 이수만을 비롯한 한류 기업가들의 우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는 동의한다. 성공은 열정과 노력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00만 신드롬’ 문제를 지적하는데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 등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의 개선이 필요함을 다시 느낀다. 언젠가 나중에 봐야지 했던 영화가 대작에 밀려 상영이 끝난 것을 발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저자는 한국을 대중문화 공화국이라고 말한다. 맞다. 내가 예전처럼 대중문화를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을 둘러보면 드라마와 음악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한류의 역사란 제목 속에 한국 대중문화 역사를 아주 잘 녹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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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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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인상적이다. 읽으면서 표지를 볼 때마다 붉은 입술을 내민 턱과 목선이 눈을 사로잡는다. 책을 펼쳐 읽으면 예전 자식들을 줄줄이 낳았던 시절의 기정 풍경이 펼쳐진다.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하지만 딸들만 나왔던 한 집의 이야기다. 작가는 아들을 얻기 위한 노력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간단하게 그 집의 역사를 다룰 뿐이다. 주인공 해금도 마찬가지로 부모 등이 바란 성별이 아니다. 딸들은 모두 자 돌림자를 사용한다. 막내 영미를 제외하고. 이런 가정사는 한 소녀의 삶에 배경이 되고, 힘이 된다. 그리고 해금의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시절 청춘의 빛남을 느낄 수 있었다.

 

805월의 광주를 이 소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광주민주화 이후 이 청소년들은 각자의 삶으로 나누어져 살아간다. 그날 광주에서 죽은 친구도 있고, 이 친구 때문에 괴로워하면 자살하는 친구도 있다. 민주화를 외치던 운동권 학생 승규는 군대에서 의문사로 죽는다. 마지막에 그의 죽음을 마주하고 치솟는 눈물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시체를 두고 엄마가 외치는 소리에는 과거의 비극도 겹쳐진다. 한 세대를 뛰어넘어 국가가 한 개인에게, 한 가족에게 또 죽음을 내린 것이다. 아들의 기일에 찾아온 친구를 웃으며 반가이 맞이하는 엄마가 홀로 남겨진 후 흘릴 눈물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해금은 승희가 아이를 임신하고 돌아와 낳게 되면서 집에 있는 돈을 훔쳐 전달한다. 승희의 아버지는 엄마가 있는데 낯선 여자를 들였고, 승희는 광주로 나와 자취한다. 그러던 중 엄마가 찾아와 홀로 승희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죽었다. 승희는 이때 집을 떠나 세상을 떠돌다 임신했다. 같이 돌던 남자는 도망쳤고, 나중에 집을 찾아가니 물건 값을 떼먹고 도망 중이다. 승희가 사라졌을 때 해금과 친구들을 죽은 친구와 더불어 승희도 잊으려고 한다. 잊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을 것 같아서. 승희의 귀환과 임신은 큰일이다. 아이를 힘들게 낳은 후 남자들은 아빠와 삼촌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만영은 진짜 남편이 되고 싶어 한다.

 

경애의 죽음이 친구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는 그들의 삶에 큰 흔적으로 남아 있다. 진만은 내정된 일자리를 버리고 뒷골목에서 살고, 그 사건 이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수경은 자살한다. 하지만 삶은 이런 비극 속에서도 굴러가야 한다. 실제 그 당시 광주에서 중학생이었던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피해자를 제외하고 그 충격을 그렇게 많이 받지 않았다고 하는 분도 있다. 물론 조금만 신경 쓰고 주변을 둘러보면 그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을 것이다.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살아있는 사람들까지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른 자식들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이런 청춘들의 삶을 그려내었다. 가장 빛날 20대 초반의 청춘들을.

 

실제 이 소설의 끝부분에 도달하기 전까지 그렇게 먹먹하지 않았다. 야학과 대학생들의 노동현장 침투 등이 나와도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일 뿐이었다. 사랑 때문에 방황하는 청춘들을 보면서 그 빛나는 아픔이 가슴에 와 닿았지만 아름답고 향기로웠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이 놓여 있었고, 고도성장기라 일을 찾는데 문제없었던 시절이었다. 읽다 보면 아련한 그리움이 생길 때도 있다. 아마 내가 그 시절을 보내는 중이라면 아주 힘들어 했을 텐데 추억의 힘이 과거를 덧칠한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더 먹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친구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거나 더 방황을 하는 친구가 생긴다. 이것도 청춘의 몫이다. 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집에 있는 공선옥의 다른 소설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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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파스트의 망령들
스튜어트 네빌 지음, 이훈 옮김 / 네버모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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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이제야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가끔 이런 작품들을 만나는데 뒤늦은 출간이라도 감사할 따름이다. 읽으면서 그 속도감과 전개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알고 있던 북아일랜드의 역사를 다시 되살리고, 알지 못했던 역사를 배웠다. 한때 북아일랜드 역사나 상황을 다룬 영화들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후 역사의 업데이트다. 물론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한 나라의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 역사의 한 구석에서 살아온 남자의 삶을 전면에 내세워 암울한 분위기의 스릴러 액션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작품은 그것을 완벽히 해내었다.


제럴드 피건은 자신이 죽인 열두 유령 때문에 매일 괴로워하며 술에 취해 잠든다. 전직 IRA의 전설적인 행동요원이었고, 정치범으로 12년간 감옥에 있었다. 출소 후 7년이 지났지만 이 유령들은 계속 그를 따라다닌다. 어느 날 30년 친구이자 현재 정치인인 마이클 맥케나가 찾아온다. 맥케나는 바뀐 정치 분위기를 타고 성공한 정치인이 되었다. 이런 그에게 열두 유령 중 소년 유령이 처형의 몸짓을 한다. 맥케나는 술에 취한 피건에게 자신이 그 무리에 넣어줘 그가 지금 돈 걱정 없이 산다고 말한다. 이에 피건은 그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고 반발한다. 맥케나는 취한 피건을 집에 데려다 주는데 이 순간이 피건에게는 과거의 망령들을 없앨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바로 맥케나를 죽이는 것이다.


유령이 지목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숫자가 바뀐다. 열둘에서 시작해 열하나, 아홉, 여섯, 이런 식으로 유령의 숫자는 줄어든다. 열두 명을 죽여야 모든 유령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관련된 유령의 숫자와 이어져있다. 한 사람을 유령 셋이 처형을 원하면 셋이 사라진다. 피건은 더 이상 죽이고 쉽지 않지만 유령들의 강렬한 바람과 그 대상들의 비열한 행위가 그를 다시 살인자로 만든다. 그 나름대로 흔적을 지우고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그를 살인자로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는 그의 고백으로 완전해진다.


작가는 피건의 입장만 다루지 않고 다른 인물들도 내세운다. 대표적으로 캠벨이 그렇다. 그는 비밀부대 출신 첩자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테러조직이나 작은 무리에 가담한다. 중개자를 통해 새로운 지시와 돈을 받고 움직인다. 피건의 살인 이후 뒤흔들리는 벨파스트 정치권에 내부 스파이로 침투한다. 이미 피건이 살인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무리들에게 그는 암살자 역할을 맡는다. 맥긴티의 지시 아래 피건을 미행하면서 움직인다. 물론 최우선 지시는 중개인을 통해 내려온 것이다. 캠벨의 비중은 상당하다. 마지막에 가면 중요한 반격의 열쇠가 된다. 이런 그조차도 피건과 정면에서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피건은 하나의 전설이다.


이런 피건을 뒤흔드는 여자가 등장한다. 맥케나의 조카인 마리다. 마리는 경찰과 사귀면서 IRA의 위협을 받았는데 이것을 삼촌이 막아주었다. 이 경찰이 나중에 다른 작품의 주인공인 잭 레논 형사라고 한다. 삼촌의 시체 앞에서 속내를 드러내었고, 이것을 피건이 본다. 이상하게 그녀에게 끌린다. 그녀도 그에게 좋은 응대를 한다. 삼촌의 죽음은 그녀에게서 방어막을 치운 것과 같다. 이전 IRA는 그녀를 위협하고, 피건은 이것을 막으려고 한다. 이것은 나중에 상황이 꼬이면서 복잡한 과거와 힘든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북아이랜드의 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과거의 병사들은 변한 시대상에 적응해 더 높은 자리로 가거나, 과거를 회상하면서 살아간다. 작가는 이런 변화된 정치 상황을 관련 인물들의 대화 속에 녹여내었다. 맥케나의 죽음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이것이 그 당시 북아일랜드의 불안한 상황을 대변해준다. 이런 현실 속에 과거의 망령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복수를 외친다. 이전에 그들을 죽였던 피건이 다시 그들의 욕망, 아니 피건의 죄책감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이 벌어진다. 폭력과 피의 고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액션과 폭력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멋진 스릴러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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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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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인 송자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그가 쓴 법의학서 <세원집록>은 낯익다. 조선 시대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서적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초의 법의학서로 인정받고 있는 모양인데 1247년에 5권으로 간행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니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놀라운 것은 곤충학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대 법의학과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나 오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검시법에 대한 설명을 다룬 부분을 보면 현대 법의학자의 모습이 보인다. 늘 읽을 때마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궁금했는데 이 소설이 어느 정도 그 부분을 채워준다.


13세기 중국의 한 인물을 스페인의 작가가 팩션으로 그려내었다. 그가 그려낸 이 시대 사람들과 문화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로베르트 반 홀릭의 추리 소설을 읽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다. 서양인이 본 동양의 문화나 심리 묘사는 현재의 내가 상상한 것과 상당히 괴리가 있다. 누가 더 가까울까 하는 것은 솔직히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나 자신도 이미 많은 문화의 영향 아래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괴리감은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소설은 송자의 아버지가 부모님의 죽음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부터 시작한다. 좋은 교수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던 송자는 그 기회가 끊어진다. 고향에서 형이 집안을 떠받치고 있다. 체력이 딸리는 송자는 형에게 구박을 받는다. 그러다 머리가 잘린 시체가 밭에서 발견된다. 이 사건이 송자 집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명판관 펭이 개입한다. 정황증거와 증거품 하나가 범인을 루라고 가르킨다. 그리고 송자가 연모하고 있던 여인의 집에 있는 동안 집은 의문의 사고로 불탄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아픈 여동생만 겨우 구한다. 아주 힘든 앞날이 그 앞에 놓여 있다.


이후 송자는 집 전재산으로 형을 구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이 돈을 가지고 여동생과 달아난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녹하지 않다. <레미제르블>의 자베르 경관처럼 그를 쫓는 인물이 있다. 여기서도 달아나야 한다. 시체를 읽으면서 사인을 찾아내고, 이 단서를 기반으로 범인을 추론하는 그의 지식과 관찰력은 여러 사람에게 유용하다. 그리고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이런 그의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한다. 여동생의 약값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이 재능을 팔아야 한다. 그의 관심과 열정이 대학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작가는 앞부분부터 송자의 탁월한 직관력과 법의학적 지식을 버무려 살인 사건이나 죽음의 원인 등을 해결한다. 송자를 아주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놓고, 그가 운과 노력 등으로 이 상황을 헤쳐 나가게 한다. 그의 지식을 탐내고 질투하는 인물도 나타나고,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도 나온다. 그의 지식을 이용해 관직에 올라가는 인물도 나오고, 이 인물과의 대결 구도는 또 하나의 재미난 에피소드가 된다.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황궁에서 일어난다. 욕망, 진실, 암투, 권력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정신없이 읽게 만든다. 앞부분에서 느낀 답답함은 어느 순간 사라진다. 실제 송자의 고난은 읽는 동안 아주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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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전쟁
이종필 지음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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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물리학 교수가 양자역학, 인공지능 등을 기반으로 쓴 하드 SF다. 하드 SF라고 썼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 느낌은 인공지능과 양자역학을 소설로 풀어쓴 느낌이 더 강하다. 어떤 대목에서는 김진명의 소설 느낌도 조금 난다. 하드 SF라고 썼지만 개인적 느낌은 테크노 스릴러다. 물론 테크노 스릴러 거장들의 작품에는 비교할 수 없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는데 덕분에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긴장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갈등 구조를 너무 직선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충격적인 도입부와 매력적인 설정을 가진 소설인데 말이다.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에 머리 없는 시신이 걸린다. 이 시신은 드론으로 운반되었다. 이 시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누가 이 시체를 이순신 장군 동상에 걸었을까? 매력적인 도입부다. 그리고 작가는 세 명의 주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인공지능 전문 교수 조성환, 과학 잡지 기자 하영란, 이 사건의 담당 형사 윤태형 등이다. 하영란은 조성환에게 전화해 이 사건을 알리고, 그의 전문지식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이 세 명은 경찰서에 모여 시체의 운반과 몸에 남은 흔적 등을 논의한다. 드론 운반은 가능하고, 몸에 박힌 수많은 못들은 무언가를 가리킨다. 타카총으로 박았고,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고 말한다.


과학 영역으로 넘어가면 작가의 전문분야가 흘러나온다. 타카총으로 인간이 이렇게 쏘려면 얼마나 힘든지, 인공지능이 할 경우 어떤 흔적이 남는지. 그러다 이야기는 인공지능을 넘어 양자역학으로 넘어간다. 양자역학의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고, 이것을 통해 어떤 일이 가능한지 알려준다. 내가 초보적으로 아는 것 이상의 정보가 담겨 있다. 뒤로 넘어가면 이 과학 지식이, 정보가, 기술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구한말 고종을 엮고, 친일파 문제를 간단히 연결시킨다. 비밀결사조직도 등장시키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무리수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대학 내부의 권력 관계, 성폭력 문제 등을 간단하게 집어넣는다. 이 대학과 연구소는 새로운 과학 기술의 중요한 원천이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를 등장시키고, 연결하면서 새로운 과학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 하나가 시체의 몸에 박힌 수많은 못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정체다. 조성환이 파고들고, 경찰이 조사한 결과는 과거의 사건이다. 이때 이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조성환의 후배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자살이 몇 년 전 국정원 직원 자살과 비슷하다. 후배가 남긴 문자 메시지를 단서로 암호를 풀고, 그가 남긴 자료를 찾아낸다. 놀라운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정보를 하영란과 윤태형에게 공유한다.


이 소설은 사건이 발생하고, 단서를 찾아내는 것도 비교적 간단하다. 중요한 정보의 공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리한다. 친일 문제와 함께 공권력을 이용한 살인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견을 내놓는다. 국가 권력 사이의 알력도 너무 간단하게 처리해 뭔가 허전하다. 분량을 엄청 더 보강해 갈등 구조를 만들고, 첨단 기술을 둘러싼 암투도 집어넣고, 등장인물들이 좀더 위험하고 좀더 노력하는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 국가 부의 증대와 개인의 윤리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은 작가의 오랜 관심사다. 이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황우석 사태다. 소설의 구성이나 재미는 조금 취향을 타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과학 지식과 정보 등은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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