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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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놓고 한참 뜸을 들였다. 밀린 책들이 너무 많아 손에 들었다 놓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다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읽자고 생각했다. 조금씩 며칠 동안 읽었는데 나의 예상을 뒤집는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나의 선입견이 만들어낸 예상이기에 나 자신을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히면서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공공장소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이전에 이 작가의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그 기억을 환기시켰다. 화려함보다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가란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 명은 사토코이고, 다른 한 명은 히카리다. 사토코는 히카리가 중학생 때 출산한 아이 아사토를 입양했다. 나의 첫 예상을 벗어난 부분은 사토코 부부가 아이의 입양을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히카리가 입양 사실을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할 때 이 사실이 드러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 아니 나의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여섯 살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알렸다는 것도 대단하다. 입양을 주선한 단체에서 이런 일을 권장했다는 부분도 놀랍다.


유치원에서 정글짐을 하던 아이 한 명이 아사토가 밀어서 떨어졌다고 말한다. 유치원에 불려가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하지만 미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사토는 밀지 않았다고 말한다. 떨어져 다친 친구는 아사토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제일 친한 친구 소라다. 소라 엄마는 병원비는 유치원에서 나오니 교통비만 받겠다고 말한다. 사토코는 아들이 한 행동이 아니라면서 거절한다. 진실의 문제가 어른들의 갈등으로 번진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것은 사토코의 절제다. 돈으로 소라 엄마의 갈등을 풀 수 있지만 아이의 말을 믿는다. 의심의 순간조차도 그 말을 내뱉지 않는다. 정말 쉽지 않는 일이다.


사토코 부부가 어떻게 입양을 결정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줄 때 현실이 앞으로 튀어 나온다.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한 직장 동료의 반응이나 두 집안의 반대 등도 우리가 예측 가능한 일반적 반응이다. 이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된 이유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고, 포기의 순간에 본 한 방송 프로그램 덕분이다. 입양과 육아에 대한 부분은 실제 작가가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자극적인 뉴스 등에 의해 알게 모르게 우린 뒤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토코 부부에게 입양은 축복이고 행운이고 행복이다.


아사토의 친모인 히카리의 삶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다른 모습의 가족을 보여준다. 남자 친구를 사귀고 점점 진도를 나가면서 둘은 성교를 하게 된다. 피임의 중요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임신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중절 수술이 불가능한 개월 수다. 히카리의 부모는 둘 다 선생인데 아닌 척하면서 딸들의 사생활을 엿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놓친다. 자신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히카리가 원하는 중학교에 가지 못한 것도 거짓말로 주변에 말하지 않았던가. 딸의 임신보다 그들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들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 히카리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란 노력해서 쌓아 올리는 것”이고, “가족은 아무리 핏줄로 이어졌다 한들 오만하게 굴어서는 쌓아 올릴 수 없는 관계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히카리 가족과 사토코 가족이 대비되는 부분이다. 가족과의 갈등은 히카리를 집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가출한다. 이후 삶을 보면 열심히 산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삶이란 열심히 산다고 잘 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협박과 몰락 과정을 보면서 예상한 현실은 또 한 번 여지없이 틀렸다. 읽으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희망을 암시한다. 혈연 중심 가족을 벗어난 이들에게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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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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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애플>로 처음 만난 작가다. 혼란스럽지만 대단하면서 뭐지라는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이후 이 작가의 작품을 한두 권 더 사놓았는데 왠지 모르게 제목 때문에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단편집이 나왔다. 이사라는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경험한 일을 소재로 다루었다. 개인 이사, 가족 이사, 직장의 이사 등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도시 괴담과 엮어 풀어내었다. 읽으면서 서늘한 기분이 들었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는 이름도 있었다. ‘뭐지?’ 이 의문이 풀린 것은 <작품 해설>이란 단편(?)에서 풀린다.


각각 독립된 단편이지만 연결되는 작품도 있다. <문>, <상자>, <끈> 등이 그렇다. <문>은 자신이 사는 집이 연쇄살인범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이사를 결심한다. 마음에 드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둘러보는데 몇 가지가 신경 쓰인다. 흰 벽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이다. 이렇게 이 집을 선택하지 않을 꼬투리를 잡아가는데 비상구를 발견한다. 문제는 이 비상구다. 열고 들어갔지만 나오지는 못한다. 휴대폰도 사용불가다. 그리고 관리인이 말했던 전철 사고가 꿈과 이어진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돈벌레가 나오고, 의미심장한 마무리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수납장>은 교묘한 서술로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다시 앞장을 확인하게 된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의 엄마, 아이가 그린 존재하지 않는 아빠의 그림, 이사 전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짐 정리 등이 엮이고 꼬인다. 그리고 조용히 드러나는 죽음의 흔적들. 섬세하게 읽어야 하는 단편이다. <책상>은 이삿짐센터에 취직한 한 주부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 이삿짐센터 왠지 수상하다. 사장 누나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한 통을 급하게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둘까 고민하는데 책상 서랍에 낀 종이 한 장을 발견한다. 직장을 먼저 그만두고자 한 사람의 편지다. 마지막 장에서 반전이 펼쳐지는데 서늘하면서도 코믹하다.


<상자>는 직장 이사를 다룬다. 자신이 표기한 짐들은 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짐만 자기 앞에 쌓인다. 유미에는 계약직 여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정직원의 갑질이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신입들이 계약직 아줌마들에게 찍히면 엄청 고생한다. 이 사내 왕따를 기반으로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이때 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벽>은 계약직 프로그래머들의 이야기다. 하야토가 어린 시절 겪었던 가정 폭력의 악몽을 꾼다. 잠을 깨기 위해 흡연실에 가서 다른 입사 동기 기요시를 만난다. 기요시는 자신이 사는 집에 상당히 만족한다. 그런데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온 후 소음이 생긴다. 가정 폭력이 벌어지는 것 같다. 신고한다. 그리고 하야토의 고백과 함께 예상 가능한 일이 벌어진다.


<끈>은 호러 게시판으로 시작한다. 사야카는 이 게시판을 즐겨본다. 자신에게 무서운 일이 생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아주 좋아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중단된 뒤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자>와 이어진다. 뭐지? 그녀는 이사를 자주 한다 한 집에 오래 살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번 집도 이전 집 계약 만기로 이사왔다. 그런데 이 집 왠지 낯익다. 그녀의 취미 중 하나가 거리뷰를 보는 것인데 <문>의 한 장면이 그곳에 등장한다. 비상구 밑에 뭔가 끈 같은 것이 보인다. <문>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이 집은 호러 게시판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서늘하고 단편들을 읽으면서 가진 의문들이 한 번에 해결되는 단편이 바로 <작품 해설>이다. 작가는 이 해설부터 읽어서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이 단편은 앞에 나온 단편들에 담겨 있지 않은 이야기들의 해설이자 첨부 설명이다. 대충 설명한 연쇄살인범이나 의심 가득한 상황에 대한 분명한 설명을 담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놓친 것들을 하나씩 복기한다. 그러다 마지막 문장에서 다시 한 번 ‘뭐지?’를 내뱉는다. 어둡고 서늘하고 끈적거리고 유쾌하지 않지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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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지음, 문승준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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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몇 편 봤지만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의 영화 대표작 중 <러브레터>는 “오겡끼데스까”란 대사로 유명하다. 나카야마 미호가 눈밭에서 이 대사를 외치는 장면은 지금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패러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 <러브레터>를 그 당시 불법비디오로 봤는데 화질도 좋지 않고 나의 감성과도 맞지 않았다. 아마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내용이고, 졸면서 봤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 그의 소설이 출간된 후 그의 글에 대한 좋은 평가를 봤다. 왠지 모르게 그의 소설에 손이 나가질 않았다. 절판본도 많다. 샀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했다.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한 번 보고 싶다. 내가 좋아했던 마츠 다카코가 여주인공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4월 이야기> 속 그녀 이미지와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마 1인2역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토사카가 평생 동안 잊지 못하고 있는 미사키와 그 여동생 유리 역으로 말이다. 학창 시절은 다른 배우가 맡았는데 솔직히 누군지 모르겠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은지 몇 년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굉장히 정적인 느낌이 영상으로 옮겨질 때는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다.


“네가 죽은 건 작년 7월 29일이었다.”란 첫 문장과 이 사실을 알게 된 8월 23일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3주가 지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작가는 소설로 썼다. 24년 동안 잊지 못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동창회에 가서 그녀의 여동생을 만난 다음 일어난 일들이다. 오토사카의 시선이 한 축을 맡고, 유리가 다른 한 축을 맡는다. 언니의 죽음을 알리러 갔다가 오해한 선배들 때문에 미사키인 척한다. 오토사카는 첫눈에 유리임을 안다. 속이고, 속는 척하는 사이 오해가 끼어든다. 오토사카가 미사키에게 보낸 문자를 본 유리 남편의 질투로 휴대폰이 깨진다. 이후 유리는 손 편지로 그에게 자신의 일을 적어 보낸다. 처음에는 이 편지 내용을 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유리의 시선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임이 드러났다.


오토사카는 소설가다. 딱 한 편을 내었을 뿐이지만. 그 소설의 제목은 <미사키>다. 작가지만 소설을 출간해서 돈을 벌지 않고 비둘기 관련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다른 여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첫사랑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소설가가 된 이유도 그녀가 소설가란 단어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소설도 그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면 그는 소설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가 첫 소설을 낸 후 소설을 출간하지 못한 이유다. 그가 처음에는 유리로부터, 나중에는 미사키와 유리의 딸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이 편지들은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이어준다. 말이 아닌 글로 감정을 표현할 때 감정은 절제된다.


소설은 가독성이 좋다. 분량도 많지 않다. 하지만 정적이고, 감정의 표현이 격렬할 때조차도 왠지 모르게 고요하게 다가온다. 일본 문화 속에서 자주 보게 되는 억눌린 감정이 글 속에 표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기억과 추억에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 감정을 머릿속에서 이해한다고 생각해도 말이다. 유리가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대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일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고, 조금은 정적인 분위기를 활기차게 끌고 나간다. 아마 이 부분이 없었다면 상당히 처진 분위기의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미사키가 그를 떠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녀가 남편의 학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도. 그 남편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영화를 보면 알게 될까? 그녀의 죽음과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긴 유언장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일지도 모른다. 간결하고 섬세한 묘사를 읽으면서 일본 영화 감독들 중에는 좋은 글을 쓰는 소설가도 상당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드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이와이 슌지의 소설을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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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산호 그림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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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양한 분야의 소설을 쓰는 작가다. 장르는 또 어떤가. 그의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나를 사로잡은 소설은 없다. 잘 나가다 조금씩 아쉬운 전개와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구성에 좀더 힘을 들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도입부의 이야기는 신선했고, 재밌었는데 과거로 돌아간 부분이 너무 많아지면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이 소설은 2012년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되었던 것을 새롭게 다듬어 정식 출간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느낀 전형적인 모습이 조금은 이해된다.


인류는 좀비들에 쫓겨 우주로 도피한다. 지구를 떠나면서 그들은 전략핵 등을 투하해 지구를 파괴한다. 소수의 인류는 우주에 살지만 물자 부족에 시달린다. 100년의 시간이 지난 후 우주로 떠난 사람들은 두 개의 파로 나뉜다. 지구파와 우주파다. 지구파는 지구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무인정찰 로봇 등을 보냈다. 마침내 인간이 지구에 내려온다. 한 곳만 온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군인들이 강하한다. 이 소설은 그 중에서도 한국에 강하한 부대 이야기다. 초반에 강하한 군인들과 그곳을 급습하는 좀비들의 전투는 강렬하다. 이런 SF 판타지 액션은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다 주인공 K-기준이 구인류의 일기를 발견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일기는 좀비들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 속에서 인간들이 보여준 행동들은 어떠했는지 등이 잘 나온다. 처음에는 아칸소 독감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 전염병이 전파되는 과정과 방송 내용 등을 보면 최근의 코로나 19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전 연재에도 이런 내용이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정부의 거짓과 언론 통제 등을 다룬 부분은 그 당시 분위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 독감으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숨긴 정부와 이 사실을 파헤치려는 민간인들의 작은 노력들이 초반에 나온다. 결국 이대 카페에 이들이 모이는 것은 얼마의 시간을 버티면 공권력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좀비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치명적이다. 전염병의 특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다 전염된다. 좀비의 무서움은 이미 수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나왔다. 처음 영화로 나왔을 때보다 좀비는 더 진화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진화한 좀비는 영상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좀비를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머리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물속에서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 속에 인용글을 통해 좀비에 대한 학설을 여러 가지 드러낸다. 좀비들이 소리와 빛에 반응한다는 지식을 구인류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설정은 이전 세대의 역사를 우주로 가져가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일기의 분량이 너무 많다. 이번 소설이 시리즈의 도입부가 아니라면, 아니 도입부라고 해도 단행본의 분량을 생각하면 너무 많다. 실제 우주에서 온 K-기준 일행의 분량이나 정보가 너무 적다. 좀비에 대한 그들의 무지가 빚어낸 참사는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초기 강하군이란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너무 쉽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이런 점을 제외하고 바이러스의 확산과 좀비에 둘러싸인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은 재밌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비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대라는 공간과 아지트란 설정은 조금 특이하다. 중간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것도.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다 보면 다음 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의 새로운 접점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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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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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었다. <오만과 편견>을 읽은 지 십 수 년만이다. 그 당시 아주 재밌게 읽어 이 소설도 그런 재미를 기대했는데 예상을 벗어났다. 그 사이 나의 취향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 패니의 성격에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한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분량에 비해 활동적인 이야기가 적다. 패니에 한정하면 ‘이렇게 정적인 여주인공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섬세하게 읽으면 패니의 심리 묘사가 상당히 흥미롭지만 거의 7백 쪽 분량의 소설에서 계속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가난한 집안 환경 탓에 어쩔 수 없이 이모 집에 얹혀살게 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좀처럼 이 가족에 동화되지 못한다. 이런 그녀에게 작은 햇살을 전해주는 인물이 에드먼드 오빠다. 빈곤과 마리아 이모를 위해 맨스필드에 왔는데 충분치 않은 영양습취 덕분에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다, 레이디 버트럼(마리아 이모)의 두 딸 마리아와 줄리아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 무시도 당했지만 에드먼드 오빠의 도움으로 이 가족에 조금씩 섞인다. 허약한 그녀를 위해 운동을 할 수 있게 여성 승마용 말도 구해준다. 이런 오빠에게 몰래 연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몇 가지 그 당시 문화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는 장자 상속이고, 부 번째는 자유연애의 성향이다. 버트럼 가는 준남작 가문인데 상당한 부를 가지고 있다. 장자의 집안의 부를 상속 받고, 둘째는 성공회 목사로 부임해 생계 등을 유지한다. 물론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메리 크로퍼드가 에드먼드에게 호감을 가졌다가 그가 목사가 될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아쉬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적은 수입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삶을 살고 싶은 그녀에게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록 그녀가 에드먼드에게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책 후반에 가면 그녀의 감정과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편지가 패니에게 간다.


19세기 초라는 것을 감안하면 자유연애는 상당히 의외다.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사교 무대에 데뷔하는 것은 알겠지만 이 당시는 아직 정략결혼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소설이니 이런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겠지만 지위가 높을수록 결혼은 집안의 이익과 결합한다. 러시워스 씨와 마리아가 약혼하는 것도 둘이 열렬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부추김과 이익이 맞았기 때문이다. 완고한 토머스 경이 여행에서 돌아와 러시워스 씨를 만났을 때 만족한 것도 그의 재능 덕분이 아니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말들 때문이다.


조용한 시골 맨스필드에 변화가 오는 것은 그랜트 부부가 이사 오면서 부터다. 그랜트 부인은 두 명의 동생이 있다. 헨리와 메리 크로퍼드 남매다. 이들은 그랜트 부인을 만나러 와서 정적인 시골 생활을 즐긴다.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 헨리는 버트럼 가의 두 딸에게 관심이 있다. 이 이전에 첫째 마리아는 러시워스 씨와 약혼을 한 상태다. 버트럼 경이 해외로 나간 사이 젊은 청춘들은 서로 만난다. 헨리의 매력에 두 딸이 빠진다. 이들이 연극을 하려고 하면서 이 모호한 관계는 더욱 이상하게 꼬인다. 이성을 압도하는 감성과 작은 질투와 연모의 감정 등이 차분히 펼쳐진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장면도 이때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패니는 조용한 관찰자로 남아 이들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한다. 정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도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덕분에 메리가 가진 생동감과 욕망이 오히려 시선을 더 끈다. 유쾌하고 활기 넘치는 그녀에게 남자들이 빠져든다. 패니에게 메리에게 끌리는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에드먼드는 큰 고통이다. 그 남매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자신도 에드먼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속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후반부는 색다른 재미를 주고,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최근 소설 같은 속도감은 없지만 차분하게 읽고 음미한다면 고전의 재미는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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