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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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프랑스 누아르 장르를 혁신한 네오폴라르(néo-polar)’를 통해 문학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다고 하지만 처음 만났다. 네오폴라르를 검색했지만 쉽게 그 정의가 나오지 않는다. 범죄소설을 가리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윤리문학이라고 한 것과 관계 있을까. 이 소설은 장파트리크 망셰트의 대표작이고 1977년 작품이라고 한다. 하나의 장르를 혁신한 작가의 작품이 이제야 번역 출간되었다는 사실에서 한국의 장르 시장이 얼마나 협소했는지 알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란 부분에서 왜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떠올랐을까? 분량만 놓고 보면 거의 세 배 이상 차이 나는데 말이다.

 

읽기 시작하면서 큰 착각을 먼저 했다. 제르포가 올해에만 두 사람을 죽였다는 문장을 읽고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암살자로 착각했다. 그리고 다음에 나온 알론소 에메리크 이 에레리크 이야기도 마지막에 오독으로 이어졌다. 도미니카공화국 군사정보기관 장교 출신이란 것과 그 당시 독재 정권 이야기와 엮이면서 제르포를 머릿속에서 한통속으로 묶은 것이다. 이 오독과 착각은 실제 이야기가 펼쳐지는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읽지 않고 머릿속에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평범한 일상을 여유롭게 보지 못하고 그 이면을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해결된 것은 거의 마지막에 왔을 때다. 다시 첫 부분을 읽게 되었고, 이 오독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착각과 오독으로 관계를 잘못 알았다고 하지만 군살 없는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 사고난 차에서 사람을 구해 병원에 데려다주지만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는다. 경찰은 총상 입은 사람을 찾는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의 일상을 보여주고, 가족과 함께 긴 휴가를 떠난다. 이런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둘 있다. 이들은 제르포를 죽이려고 한다. 왜 죽이려고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휴양지 해변에서 이들은 제르포를 익사시키려고하다 실패한다. 겁을 먹은 제프로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다. 제르포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살인자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렌트한 차를 타고 떠나는 제르포를 주유소에서 죽이려고 한다. 직원과 살인자 중 한 명이 죽는다. 겁에 질린 제프로는 정신없이 달아난다. 기차에 올라타고 도주 하는 중에 부랑자가 망치로 그를 때리고 기차 밖으로 밀어낸다. 다치고 부러진 몸을 이끌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사람을 찾아 움직인다. 다행스럽게 포르투칼 벌목원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신문에서는 그의 실종 사고가 나왔다. 그는 돌아가지 않는다. 알프스 산속 마을에서 머문다. 살인자 중 살아남은 한 명이 그를 찾는 중이다.

 

작가는 이 빠른 전개 속에 특별히 어떤 군살을 붙이지 않는다. 작은 군살이라면 음악에 대한 것 정도랄까. 풍경이나 사람 관계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사라지고, 건조한 상황만 보여줄 뿐이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고 지나가면 다른 상황을 마주한다. 다시 바로 앞으로 돌아가야 다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관계 등으로 평온하게 지내는 순간 새로운 파국이 닥친다. 작가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설정을 앞에 깔아두었다. 그리고 그는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 이유를 찾는다. 오해와 분노와 착각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갑작스런 인물이 등장하고 반격이 시작된다.

 

평범한 직장인이 살인자에게 쫓기면서 일어나는 사건은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루었다. 이 소설 이전에 그런 작품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뼈대만 남긴 이야기를 생각하면 다른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후 작품들은 몇 작품 금방 떠오르는데. 그의 폭력과 살인은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다. 반격에 실패하면 그는 죽는다. 겁먹고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에 그의 목숨이 조금 더 연장되었다. 운도 작용했다. 그의 처절한 반격이 운을 만들기는 했지만 위험한 순간들을 돌아보면 그렇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재구성했는지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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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온 사람들 - 전쟁의 바다를 건너온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홍지흔 지음 / 책상통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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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6.25를 잊고 지낸다.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이 봤던 6.25 관련 프로그램이 나의 눈에서 사라졌다. 이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방송을 잘 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6.25를 적어놓으면 요즘 아이들이 ‘육점이오’라고 읽는다는 것과 관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지만 나조차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6.25가 7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에 ‘그 정도 밖에’라는 표현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도 잊고 있었다. 어릴 때 한국 전쟁에 대해 그렇게 많이 들은 내가 이 정도니 최근 아이들 탓하기도 무색하다.


이 그래픽노블은 작가의 외가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실화에 충실하기보다 허구로 재미와 전달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중간 중간에 현실적 감각의 유머 코드가 들어가 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50년 12월 24일 1만 4천 명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흥남에서 거제에 도착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다. 흔히 하는 말로 흥남 철수 작전 당시 한 가족의 탈출기다. 이 가족의 숫자는 부모님 포함 모두 열 명이다. 이 열 명 중 누구 하나 이산가족이 없었다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한때 한국 전쟁을 둘러싼 남침과 북침 논란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남침으로 가르치지만 북침을 주장하는 논리도 있었다. 최근에도 북침을 주장하는 논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논리와 별개로 한국 전쟁은 수많은 동족의 죽음을 안고 있다. 동족 상잔의 비극이란 상투적인 문구가 지금도 떠오른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 국토가 공산화되려는 순간 낙동강 전선의 방어와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시킨다. 거의 전 국토가 수복되려는 순간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이 중공군 중에 모택동의 아들이 있었고, 이 전쟁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과 피란민이 철수해야 했다. 이 그래픽노블은 이때 상황을 그렸다.


경주 가족은 밥을 먹다가 피난선을 타기 위해 흥남 부두로 간다. 부도에 도착했다고 바로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흥남 철수 상황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들은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상황에 집중해 이산의 아픔과 이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극적인 구성보다 타기 전까지 이 가족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 과정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에 더 집중한다. 특히 옥순이로 대변되는 아이 찾기는 피난민의 물결 속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다. 실제 경주 가족도 손을 놓치고 헤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는데 배고픔 때문에 누나에게 줄 떡을 먹는 소년의 모습이 눈시울을 적신다. 이 가족이 피난선을 타기 위해 끓여놓았던 소고기 내장 등을 나중에 이 집에 들어온 아이들이 엄청 행복하게 먹고 좋아하는 장면은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이 그래픽노블의 등장인물들 모습에 거부감이 있다. 너무 예쁘게 그렸다. 내가 주변에서 보는 사람이나 자료 속 사람과 너무 다르다. 그래서인지 인물로 표현된 장면보다 간결한 묵선의 그림과 기억을 더듬은 말들이 더 강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그림보다 글이 이것을 더 잘 보여준다. 작가의 외가에서 들은 이야기가 사료들과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작품 속에는 강한 아픔이나 상실감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 마지막 장면의 상 위에 놓인 열 개의 수저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절망이 빠져 있는 것도 한몫했다. 더 알기 위해서는 더 공부를 해야 한다. 흥남 철수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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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가 여기에 있었다
조앤 바우어 지음, 정지혜 그림, 김선희 옮김 / 도토리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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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출간된 책이다. 이전에 <그래도 내일은 희망>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번역과 그린이가 이번 번역본과 다르다. 주니어김영사에서 뉴베리 수상작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출간되었었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되었다. 아마도 집 책장을 뒤지다보면 이 시리즈 한두 권 정도는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이번에 이 책을 선택한 것도 뉴베리 수상작이란 사실이 큰 역할을 했다. 처조카가 뉴베리 수상작들을 한권씩 읽는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관심이 생겼다. 여기에 시장 선거 이야기를 담고 있다니 더 관심이 갔다.

 

호프는 웨이트리스다. 호프의 엄마도 웨이트리스다. 그런데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엄마가 만난 사람들 중 한 명일 텐데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성이 문란한 것이고, 피임마저 하지 않아 생긴 탄생이다. 호프가 새롭게 도착한 멀허니의 웰컴스테어웨이즈 다이너에 일하는 웨이트리스도 아빠를 알지 못하는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다. 호프와 다른 점이라면 호프는 이모의 손에 자랐는데 이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이런 설정을 보고 아무 생각없이 넘어가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웨이트리스들에게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가치 판단 하기가 쉽지 않다.

 

호프의 이모는 요리사다. 뉴욕의 식당에서 위스콘신주 작은 도시 멀허니로 온다. 이 식당의 주인은 스툽 씨다. 그는 백혈병을 앓고 있다.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지만 이 병 때문에 동업자로 이모를 불러온 것이다. 이 식당은 새벽부터 손님들이 온다. 스툽 씨가 요리하고, 브레이버먼이 즉석 요리를 담당한다. 둘은 이 식당에 와서 요리사와 웨이트리스가 된다. 호프는 웨이트리스 일을 좋아하고, 눈썰미도 좋다. 살면서 겨우 세 번 만난 엄마의 조언을 기록하고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어떤 곳이라도 작은 텃새는 존재한다. 이모와 호프는 이 텃새를 견디며 자신들의 영역을 만든다.

 

호프가 온 이 멀허니는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보통 기존 시장만 출마해서 당선되었는데 이번에는 스툽 사장이 출마를 선언한다. 그는 이 작은 도시의 문제점을 현 시장에게 바로 묻는다. 대답하지 못한다. 시장도 불만이다. 스툽 사장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을 지적하며 노골적으로 깎아내린다. 스툽 사장이 출마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백 명의 추천인 서명이 필요하다. 스툽 사장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서명을 받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한다. 이 장면에서 한국의 투표제도와 다른 제도가 하나 나온다. 바로 유권자 등록이다. 유권자 등록은 나라에서 자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해야 한다. 유권자 등록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투표권이 없다.

 

스툽 사장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대로 할 마음이 없다. 아주 정직한 후보다.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해 상대를 헐뜯을 생각이 없다. 상대 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하고 하는 바를 표현할 뿐이다. 그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광고할 재력도, 후원자도 없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청소년과 교회 목사 등이 있다. 특히 호프를 비롯한 청소년들은 열정적이다. 자발적으로 스툽 사장의 시장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의 도움으로 후보자가 될 수 있었고,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다. 중반까지 스툽 시장이 크게 앞섰지만 전 시장이 가짜 뉴스를 퍼트리면서 상황이 바뀐다. 스툽 사장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백혈병 환자란 것이다. 적은 이 약점을 파고들어 불안감을 고조시키며 역전을 노린다.

 

이 선거판을 보면 한국의 선거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정책 대결보다 가짜 뉴스와 네거티브 전략이 판치는 선거판 말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더 심한지도 모르겠다. 그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그의 식당을 헐뜯기 위해 샐러드에 쥐가 들었다는 가짜 상황도 만든다. 정직한 사람들의 도움과 이성적 판단이 작용하면서 이 위기를 벗어난다. 호프는 식당에 오는 한 손님에게 스툽 시장에게 투표하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이 손님은 자신이 한 번도 투표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나중에 이 손님이 반전의 열쇠가 된다.

 

시장 선거와 호프의 가정사가 엮여 한 편의 멋진 성장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의미를 아주 잘 보여준다. 호프가 신문기자에게 대답한 부분은 시민은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 선거 과정에 참여하는 게 필요하고, 그 과장에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 보고, 부패에 ‘노!’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호프는 자신의 아빠가 자신을 찾아오는 꿈을 꾼다. 아직 소녀일 뿐이다. 이 소설은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시민의 의무를 되돌아보게 하고, 한 소녀의 성장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요리사와 웨이트리스 관계에 대한 부분은 몰랐던 부분인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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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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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완슨과 헷갈리는 작가가 있다. 아마 그 당시 이 두 작가의 작품을 번갈아 읽으면서 생긴 착각인 모양이다.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피터 스완슨의 작품을 다시 검색하니 모두 네 권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 포함 현재 3권 읽었다. 아마 나머지 한 권도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인지는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가의 작품이 매력적이란 것이다. 최소한 현재까지 읽은 작품들은 그랬다. 물론 이 작품 포함이다. 이번에 전작의 서평을 대충 훑어보았는데 기억이 희미하게 날 뿐이다. 이 저질기억력이란. 아마 이 부분이 다른 작가와 착각하게 만든 듯하다.

 

이 소설은 누가 살인자인지 초반에 알려준다. 반전은 두 번에 걸쳐 펼쳐지는데 앞부분에 보여준 설정이 마지막 장에서 완전히 해결된다. 솔직히 마지막 반전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각 부의 이야기의 흐름이 갑자기 바뀌면서 나를 순식간에 흔들어 놓았다. 작가가 잘 짠 구성 덕분이다. 연쇄살인범이 누군지 알려준다고 해도 풀어낼 이야기는 많다. 왜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하는 것 등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이 이 살인 이유다. 그리고 왜 그가 이런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 그의 가족사로 계속 들어간다. 가정 폭력이 어떻게 한 가족을 망가트리는지 잘 보여준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이 두 사람은 바로 옆집이고 똑같이 생긴 집에서 산다. 매슈가 살고 있던 곳에 헨리에타 부부가 이사온다. 매슈 부부가 헨리에타 부부를 식사에 초대했는데 헨이 서재 벽난로 위에 놓인 펜싱 트로피를 보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그 트로피는 살해당한 더스틴 밀러의 트로피다. 그녀가 놀라는 모습을 매슈가 본다. 작가는 바로 다음 날 매슈의 정체를 알려주고, 매슈는 이 트로피와 다른 살인 전리품을 정리한다. 예상하지 못한 빠른 연쇄살인범의 정체 노출에 놀랐다. 헨은 자신이 본 트로피가 더스틴 밀러의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들어간 그곳에 트로피는 없었다.

 

이제 이야기는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경찰에 알려 잡혀가게 하려는 헨과 그녀의 신고 등을 무사하게 지나가야 하는 매슈의 대결이 된다. 이와 동시에 매슈는 직장 동료의 록 가수 남친을 죽이려고 한다. 바람을 피운다는 이유다. 매슈는 살인 대상자를 관찰하기 위해 펍에 갔고, 펍에서 헨은 그를 뒤따른다. 매슈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녀는 긴장한다. 혹시 어떤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미행이 그녀로 하여금 매슈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만든다. 록 가수의 일정을 확인하고 그 현장을 보려고 한다. 죽이려는 자와 확인하려는 자의 대결이다. 보통의 스릴러라면 이 대결에 집중하겠지만 이 작품은 그럴 의도가 없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번역 제목은 소설 속 한 문장이다. 증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과거가 이 증언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녀가 신고한 내용을 형사들이 그렇게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는 것도 과거 때문이다. 조울증을 앓았고, 대학 시절 신고 관련 문제가 있었다. 증거품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의 말만 믿고 수사나 기소를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매슈 쪽에서 오히려 기피 신청을 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그런데 매슈는 자신의 정체를 아는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고 싶어한다. 녹음되지 않으면 이 말들이 그 어떤 증거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말해 편안해진 매슈, 사실을 알지만 경찰에 말해봐야 소용없는 헨. 새로운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또 한 번 분위기가 바뀐다.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1부가 끝날 때, 2부가 끝날 때마다 새로운 관계와 사실이 드러난다. 3부로 오게 되면 서술 트릭을 이용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작가가 앞부분에 단서를 내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여자는 절대 죽이지 않는다고 맹세하는 매슈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동생 리처드로 넘어가면 달라진다. 리처드는 매슈보다 덜 이성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매슈의 살인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은 <덱스터>가 스쳐지나갔다. 뭐 나에겐 덱스터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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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1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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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 최면과 전생을 엮어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야기꾼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가독성이 좋아 쪽수가 쑥쑥 넘어간다. 주인공 르네 톨레다노를 역사 교사로 설정해 사라지고, 왜곡되고, 숨겨진 역사를 같이 버무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틀란티스 대륙이다. 르네의 최초 전생을 아틀란티스인 게브로 설정해 신화와 전설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했다. 작가의 상상력을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의 착각일까? 빠르고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상상력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특히 가장 기본 설정인 최면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과 퇴행 최면으로 전생의 영혼이 들어와서 발휘하는 능력 등이 대표적이다.


르네는 동료 교사와 센강 유람선 공연장 판도라의 상자에 간다. 이곳에서 르네는 퇴행 최면 대상자로 선택된다. 최면에 성공해 전생의 문을 열게 된다. 그가 바란 것은 영웅이다. 영웅의 전생은 알고 보니 제1차 대전 참호병이었다. 독일군과 열심히 싸우다 죽었다. 문제는 죽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이 충격에 밖으로 나갔는데 그곳에서 강도를 만나 싸우다 죽인다. 아직 전생의 잔상이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신고를 하면 되지만 시체를 센강에 빠트린다. 집에 와서 잠을 잔 후 출근하지만 학생들은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관심없다. 전날의 강렬한 경험은 다시 퇴행 최면으로 그를 이끈다. 최면술사 오팔에게 다시 강제적인 부탁을 한다. 그는 또 다른 전생의 자신을 만난다.


현실에 돌아와서 그는 경찰이 언제 나타나 자신을 체포할지 두려워한다. 어느 날 밤 혼자 퇴행 최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가 그의 첫 번째 전생자인 아틀란티스인 게브를 만난다.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퇴행 최면으로 전생의 그를 만나 그 곳이 어딘지 알게 된다. 바로 아틀란티스다. 작가는 아틀란티스를 전설과 신화 속 자료로 그려낸다. 그들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영적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지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공통의 신화 중 하나를 아틀란티스에 녹여낸다. 바로 방주 신화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침몰과 방주 신화를 같이 엮었다.


전생의 경험은 르네의 현실을 더욱 비튼다. 수업은 교과 과정보다 전생 체험 위주로 흘러간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와 가려지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려주려는 그의 노력은 시험이란 벽에 부딪친다. 결국 교장의 경고를 듣고, 경찰까지 그를 찾아오면서 교사로서의 삶은 마무리된다. 그의 이 경험을 늘 함께 하는 교사 동료 엘로디에게 말하는데 그녀의 반응은 너무 현실적이고 비판적이다. 그녀가 그를 정신병자처럼 꾸며 정신병원에 넣는다. 하지만 이 병원의 원장은 최악의 정신과 의사다. 엘로디가 당한 일을 감안하면 절대 소개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이 병원에서 그는 최악의 경험을 하는데 전생의 기억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다. 그리고 병원을 전생 기억 중 하나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빠르게 읽게 되는 이야기 속에 시간 여행의 패러독스를 만난다. 대표적인 것인 아틀란티스의 방주다. 게브가 살던 시대에는 거대한 배를 만들 수 있는 조선술이 없다. 유체이탈로 달까지 다녀오고 피라미드를 세우는 아틀란티스인들이지만 말이다. 이 조선술을 게브가 가르쳐 준다는 설정인데 중간에 생략된다. 그리고 방주에 올라 탈출해서 그들이 가는 곳으로 이집트로 설정한다. 게브의 아이들 이름을 이집트 신들의 이름과 같이 지은 것도 사람들이 흔히 아는 신화나 전설과 연결시키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의문 하나 추가하면 과연 1만2천 년 전에 파피루스를 사용했는지와 그것을 석회 동굴 속 밀봉된 항아리에 넣어두면 보존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2천 년 된 사해문서와는 또 다른 환경이다.


주인공을 역사 교사로 설정하여 기억과 전생을 엮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알려진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설정으로 알려주는 역사들은 새로운 시각이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란 부분을 감안하면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전생 기억을 이용해 숨겨진 보물을 찾고, 위험한 곳을 벗어나고, 강력한 무술을 발휘하는 장면들은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 같다. 이 부분에서도 할 말이 있지만 생략한다. 한 편의 판타지 모험 소설로 생각하고 읽으면 상당히 재밌다. 그러나 아직 <개미>의 강렬한 기억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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