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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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양이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는데 말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집에서 고양이를 키웠던 것은 아주 어릴 때가 유일하다. 역자 후기처럼 제대로 돌본 것이 아니라 남는 밥으로 키웠다.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고양이는 쥐약을 먹고 죽었다. 죽은 고양이 몸 위를 기어다니던 구더기가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물론 이것은 다른 기억과 이미지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는 자주 봤다. 어릴 때 깊은 밤에 마주한 고양이의 눈은 아주 무서웠다. 귀엽다는 생각을 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고양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고양이의 습성을 조금씩 이해했다. 현재 나와 고양이의 거리는 딱 거기까지다.


일본의 고양이 이야기를 많이 읽다 보니 고양이 집사란 단어에 더 익숙하다. 언제부터인가 집사란 단어와 고양이가 결합했다. 이런 감성으로 이 책을 펼치면 놀라운 사실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고양이는 분명 도시의 그것과 다르다. 환경이 다르니 위험의 대상도 달라진다. 독수리가 고양이를 낚아챌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너무 많이 나은 새끼들을 처리하기 위해 학살 같은 행위를 해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섬뜩하다. 중성화 수술이 없던 시대라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개체수가 늘어나는 고양이 새끼는 필요 이상의 숫자는 없애야만 한다. 즉 죽인다는 말이다. 이 처리는 엄마가 한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저자는 계속해서 고양이를 키운다. 아주 예쁜 혼혈 샴고양이 암컷을 키우는데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 고양이가 자기 새끼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억지로 새끼들에게 끌고와야 했다. 두 번의 임신 이후 중성화 수술을 받게 하는데 이 수술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외모의 변화가 심하게 생긴다. 새끼들의 개월수가 어느 정도 되면 분양을 한다. 물론 가끔 그냥 집에서 키우는 경우도 있다.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가 언제나 두 마리 이상을 돌보는 것을 본다. 병 든 고양이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가 보여주는 정성과 노력은 애완동물을 쉽게 버리는 사람들이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레싱이 1967년, 1989년, 2000년에 발표한 글을 한 권으로 엮은 산문집이다. 대부분의 분량은 1967년도 발표에 나오고, 뒤로 가면서 분량이 준다. 노년으로 가면서 이해의 폭은 넓어지고 애정은 더 깊어진다. 일본 에세이처럼 가볍게 읽기에는 문장과 상황에 대한 글들이 너무 건조하다. 화려하고 따뜻한 문장으로 고양이의 삶을 그려내기보다 건조하지만 그 아래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고양이의 삶을 보여준다. 서로 저자의 애정을 더 차지하려고 싸우고, 자신의 고집을 세우고, 어떤 고양이는 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차분한 관찰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해석이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일본 작가들의 고양이 글을 읽다가 이 책을 읽으면 너무 다른 분위기에 놀란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서로 비교할 수 없지만 최소한 고양이를 관찰하고 그 삶을 그려내는 문장과 표현들은 차이가 크다. 감정을 억지로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고 고양이에 초점을 더 맞춘다. 자신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자신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죽인 후 그들의 감정을 간단하게 표현했는데 이것이 더 인상적이다. 또 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숨긴 채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다. 이렇게 이 글 속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레싱은 자신만의 문체로 이런 고양이의 삶과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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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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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도시 안덕을 배경으로 연쇄 방화와 실종 사건을 다룬다. 서해안 도농복합도시 안덕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발도시 중 하나다. 수도권에 위치했다면 인구 증가와 더불어 개발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겠지만 안덕은 그렇지 않다. 인구 5만의 도시에 구 도시와 신 도시가 나누어지고, 공권력은 지방 토호의 위세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토호들은 정치인과 손잡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자세가 되어 있다. 실제 그렇게 한다. 이런 토호 중 한 명인 장정호가 검사 출신 조카 세휘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세휘는 남편과 이혼소송과 아이 양육권 싸움 중이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이다. 남편도 검사고, 동기다. 이 둘의 결혼식 풍경은 한국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검사는 바쁜 직업이다. 서로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결혼하지 않은 이 부부의 현실은 냉혹하다. 술 중독이 심해지자 이혼을 결심하고,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충동적인 행동이다. 안덕에 변호사 사무실을 내 경제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장정호가 살짝 손을 내민다. 자신의 줄을 타면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약속을 한다. 그리고 엄마의 치매 문제도 있다. 열두 살 아들 수민과 바닷가 작은 도시에 내려온 그녀의 삶은 황량하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이미지는 북유럽 스릴러의 장면들이다.


모두 다섯 FILE로 이루어져 있다. 각 파일마다 실종 사건과 손가락 하나가 놓여 있다. 실종자들은 모두 장정호와 형, 동생 사이다. 마트, 횟집, 골프장, 인력 사무소 등을 운영한다. 모두 자기 점포에서 실종되었고, 범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방화와 실종 사건이 일어난 마트에서 세휘가 간 것도 당숙인 장정호가 부탁한 채불임금 문제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역신문사 기자 한병주를 만난다. 한병주는 중앙지 연예부 기자였지만 좌천되어 5년째 안덕에 머문다. 이 사건 현장에서 처음 지역 경찰을 만나고, 나중에 당숙이 어떻게 지역 경찰을 위압하는지 보여준다. 마트 사건으로 의뢰 내용이 바뀐다. 범인을 경찰보다 먼저 찾는 쪽으로.


실종과 방화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단서는 부족하다. 이 사이에 이 도시의 역사 일부분이 드러나고, 세휘의 고질적인 문제도 역시 계속 나온다. 숙취에 시달리다 사건 현장에 달려가는 날도 있고, 검사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한 현장을 마주하기도 한다. 검사의 전관예우가 빠진 자리를 검사의 서류 작업으로 현실을 살짝 드러낸다. 처참한 현장은 서류와 다른 현장감을 보여준다. 이 사건 이외에도 그녀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엄마의 치매고, 다른 하나는 아들 수민의 양육권 문제다. 그리고 수민은 동네 여중생 도연에게 빠져 있다. 도연의 엄마 정인숙은 거구에 몸에서 냄새가 심하게 난다. 첫인상부터 불쾌하고 두렵다.


소설 중간에 납치범의 정체를 작가가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왜지? 란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미스터리의 한 축이 무너지고, 한국적 감수성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는다. 장정호가 어떻게 자신의 친위대를 모으게 되었는지, 이 친위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금씩 드러낸다. 세휘의 개인사와 엮이면서 안덕으로 대표되는 퇴락한 도시의 사회 경제 문제들이 조금씩 밝혀진다. 퇴락한 도시지만 그 속에서도 권력은 살아 움직인다. 어쩌면 이런 도시일수록 권력은 법보다 더 우위에 서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왜 장정호 주변 인물들이 납치되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가독성은 좋은 편이지만 읽으면서 아쉬움이 강하게 들었다. 장정호 일당들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무너진 부분과 그들의 죄악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이 죄악을 더 깊이 파고들어 적나라하게 파헤쳤다면 이 살인 납치에 좀더 공감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반전으로 드러나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금은 이해된다. 또 하나는 경찰의 무능력과 무력함이다. 무사안일과 복지안동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아주 낯익지만 낯설다. 개인적으로 가장 불만은 약물과 가스등 효과를 과대포장해서 드러낸 부분이다. 일본만화 <몬스터>를 연상시킨다. 그보다 강도는 훨씬 약하다. 전체적인 균형은 아쉬움이 있지만 세부적인 묘사나 진행 등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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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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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한때 이 상 수상작들을 열심히 찾아 읽은 적 있다. 지금은 이전처럼 문학상 수상작에 집착이 조금 덜 하지만 그렇다고 관심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인작가에게 주는 문학상 중에서 가장 권위 있지만 단순히 재미만 놓고 보면 다른 상들에 조금 뒤떨어진다. 물론 취향 차이는 존재한다. 이런 생각들을 책 읽기 전에 했다면 거짓말이다. 수상 이력은 책을 선택할 때, 책을 펼쳐 읽을 때를 제외하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서 바로 읽는다면 연속적으로 생각이 이어지겠지만 온라인인 경우 시차가 이런 생각을 지운다.


끝까지 읽고 난 후 처음에 받은 느낌은 사라졌다. 도시 전설 같은 보라색 치마를 관찰하던 화자가 한 여성을 끝없이 스토킹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입부에 보라색 치마를 관찰하면서 자기 주변에 있었던 언니, 친구, 동료 등의 이미지를 겹쳐보고 부정하고 투사한다. 처음에는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실 끝까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중간에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면을 자주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내고 다가가는 순간은 딱 한 번 있다. 위기의 순간이고 이것을 기회로 그녀와 친해지려고 한 것이다.


보라색 치마는 작지만 순발력이 좋다. 화자가 시장에서 그녀를 잡으려고 하다 가게 진열창을 파손한다. 사람들 사이를 아주 잘 헤집고 다닌다. 그 때문인지 공원 지정석에 앉은 그녀를 건드리고 도망치는 놀이를 아이들이 한다. 나중에 그녀가 사과를 먹는데 건드려 떨어트린 후 아이들과 친해진다.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보라색 치마가 도시 전설처럼 다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보라색 치마를 입고 다닌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며칠씩 감지 않은 머리에 일주일에 한 번꼴로 상점가에 오고, 상점가 사람들 사이에 하루에 그녀를 몇 번 보느냐에 따라 운이 좋고 나빠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꾸준히 보라색 치마를 관찰하는 화자는 직업이 없는 듯한 보라색 치마를 위해 정보지를 그녀의 지정석에 놓아둔다. 일단 외모가 깨끗하지 않으니 취업에 계속 실패한다. 그녀가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시장에서 샴푸 샘플을 나눠주는데 다른 사람들이 먼저 가져간다. 겨우 다섯 개 남긴 후 그녀의 집 문고리에 걸어둔다. 정보지처럼 시행착오를 겪는다. 다행히 그녀는 호텔 청소 회사에 취직한다. 놀라운 점은 이 현장까지 화자의 시선이 따라간다는 점이다. 물론 보라색 치마는 화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나중에 같은 버스를 탄 후 그녀에게 아는 척 하려다 차가 흔들려 코를 만지는데 이보다 그녀의 엉덩이를 만진 치한이 더 강한 인상을 준다. 생각보다 대찬 그녀를 보게 된다.


호텔 청소 직원으로 생활하면서 그녀의 외모 등이 바뀐다. 처음에는 자기소개도 못했는데 어느 순간 제대로 말하기 시작한다. 직원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청소부들이 업무상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데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치한 사건 이후 그녀가 직장까지 오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화자에게는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다. 화자는 그녀에게 말을 건내고 친해지려는 타이밍을 노리지만 계속 실패한다. 어쩌면 자신이 꺼려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 오게 되면 이전에 도시 전설 같이 비정상적인 보라색 치마가 정상이고, 화자가 비정상이다.


상점가 사람들이 보라색 치마는 인식하지만 화자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을 노란색 카디건이라고 부른다. 존재가 희미하지만 모를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보라색 치마는 그녀가 주변에 있어도 인식하지 못한다. 후반에 사고가 터져 화자가 나타났을 때 그녀의 이름이 드러난다. 이야기 흐름 상 중간에 그녀의 정체가 어느 정도 추측 가능하다. 보라색 치마의 스캔들과 사고는 사실을 왜곡한다. 그 사이를 노란색 카디건이 살짝 발을 끼어넣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작가가 왜 노란색 카디건이란 명칭을 붙였는지 살짝 그 의중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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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 김강 소설집
김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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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주저하다가 선택한 책이다. 낯선 작가의 단편집이란 것과 잘 알지 못하는 문학상 수상자란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근 미래와 우주라는 단어가 나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이전에 낯선 작가의 작품을 아주 재밌게 읽은 경험도 한몫했다. 책을 펴고 읽기 전 인터넷서점 리뷰 몇 개를 간단히 훑었는데 엄청난 극찬이 나온다. 사실 이런 극찬을 의심없이 보기는 쉽지 않다. 물론 취향 차이도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더디게 읽혔다. 더디게 읽혔다는 말의 의미는 문장이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재미난 이야기를 만났다.


모두 아홉 편이 실려 있다. 각 이야기의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분량 이상인 경우가 많다. 가까운 미래를 다루다 보니 낯익은 이름도 나오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기발함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어리둥절하게 만든 작품도 있다. 어떤 작품의 경우 마지막 장면을 읽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목차에서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는데 <그대, 잘 가라>에 나오는 문장을 변용해 가져왔다고 한다.


가족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세 편 있다. <병호가 오는 날>, <호모XY>, <우리 아빠> 등이다. <호모XY>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들을 편지로 불러 모은다. 그 이유가 드러났을 때 혈육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본다. 혈육에 집착했지만 가정을 꾸리지 못한 인물의 과거와 그 욕심을 잘 보여준다. <병호가 오는 날>은 처음에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가족 형태의 탄생을 만나게 된다. 피가 아닌 서로의 필요와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가족 말이다. 이 작품은 심훈문학상 수상작 <우리 아빠>의 세계관과 연결시키면 미래의 우리 삶을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출산율 저하와 정자 제공자, 우리 아들과 우리 아빠란 명칭의 의미 등. 인간의 혈육에 대한 애착은 <호모XY>와도 이어진다.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둘 있다. 하나는 책 제목과 관계있는 <그대, 잘 가라>이고, 다른 하나는 <아라히임>이다. <그대, 잘 가라>는 화성 개척단에 참여하게 된 남자 이야기다. 7년 뒤 선발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영어권으로 여행만 다닌 그가 결국 개척단의 일 중에 선택한 것은 청소부다. SF영화나 소설에서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는 직업이다.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떠나려는 그를 둘러싼 아내와 친구들이다. 가면 살아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다. 떠나는 자가 내는 욕심을 날려 버리는 노래 제목이 ‘그대, 잘 가라’이다. <아라히임>은 한국 대통령이 외계인에게 보내고 받은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가 외계인에게 인류의 역사 한 부분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외계종족이 자신들의 문화 등을 설명한다. 성취와 자격 문제를 다룬 부분은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A리그>는 세 남자의 불행했던 과거를 홈런 한 방과 그 공으로 멋지게 엮었다. 추억과 야구판의 한계와 사회 권력 등이 재밌게 풀려나온다. 노년 세대를 위한 프로 야구리그란 황당한 설정이 주는 재미는 덤이다. <밴타블랙 99.695%>는 K의 묵비권과 종편의 방송이 좋은 대비를 이룬다. 정치테러를 한 것 같은데 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은 약간 허탈하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가 흘린 범행의 증거들도 마찬가지다. <잘 자, 병철>은 노숙자 병철의 시선을 통해 우리 주변의 삶을 보여준다. 그가 관찰한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과 반격은 약자의 작은 몸부림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쾌하게 읽은 작품이 <알로하의 밤>이다. 알로하는 사람 이름이다. 알씨 성에 로하란 이름이다. 소설 속 숫자는 그들이 태어난 연도다. 화자가 경험한 일들을 들으면서 나 자신도 하나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이름을 외쳐도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인인데도 여권이나 외국인거주증을 말하는 경찰이 모습은 바로 우리들이다. 이름이 아니라 외모 등으로 확장하면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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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사라진 밤
루이즈 젠슨 지음, 정영은 옮김 / 마카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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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테일러는 평범한 토요일 밤 데이트앱으로 이완이라는 남자를 만나기로 하고 나간다. 현재 그녀는 남편 매트와 별거중이다. 이 밤에 나가게 된 데는 친구들의 성화가 큰 역할을 했다. 다음날 아침 엘리슨은 멍과 핏자국이 있고, 머리가 아프고 구토를 한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을 본다. 지난 밤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한 남자가 문을 두드린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목소리를 듣고 동생 벤임을 알게 된다. 지난 밤 무언가 나쁜 일을 당한 것은 분명하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만 경찰에 대한 나쁜 기억이 신고를 막는다. 병원에 입원하고, 여러 차례 검사를 한 후 안면인식장애와 단기기억상실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처음 소개글을 읽었을 때 흔한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사건으로 생각했다. 데이트 강간 약물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러 곳에서 봤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넘어졌다고 속인다. 어젯밤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잘못 말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경찰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말한다. 그리고 이 경험이 그녀와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중에 보여준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하나의 의문을 던져 놓고 나중에 그 의문을 풀어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읽는 내내 경찰에 신고하면 될 텐데를 생각하면서 그녀가 깔아놓은 설정에 화가 났다. 이 때문에 사건은 더욱 꼬인다. 상황이 꼬이고,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상태에서 낯선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토요일 밤과 관련된 누군가가 그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공포심을 심어준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이 심리 묘사에 있다.

 

처음에는 동생 이외의 누구에게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외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차에 난 상처 때문이다. 혹시 자신이 취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차로 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이 두려움은 과거 열두 살 생일날에 일어난 사건에서 비롯했다. 실직을 한 아버지는 강도짓을 하고 이 과정에서 다른 동료가 쏜 총에 한 여성이 죽는다. 평범한 주부가 죽은 사건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총을 쏘지 않았지만 배심원들에게 높은 형량을 선고 받는다. 동시에 남은 가족들은 지역 주민들과 학교 친구들에게 온갖 나쁜 소리와 물리적 협박을 듣는다. 연좌제가 사라진 세상에서 현실은 아직도 이런 식의 연좌제가 존재한다.

 

작가는 앨리슨이 현실에서 느끼는 공포 속에 주변 사람들의 불분명한 태도를 미묘하게 표현한다. 함께 사는 크리시는 그날 밤 이후 나타나지 않고, 페이스북 친구도 끊어진 상태다. 줄리아는 그녀의 이혼 원인을 앨리슨의 솔직한 말 때문이란 비난을 한다. 나중에 그날 밤 간 클럽의 CCTV 영상을 함께 보고 뭔가를 숨기는 태도를 보인다. 그녀도 뭔가를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 누군가가 놓아둔 협박 편지 등 때문에 공포에 짓눌린다. 안면인식장애 때문에 범인이 옆에 있어도 모른다. 이런 상황들 사이에 작가는 범인의 심리를 넣어 그녀의 과거 속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을만한 일은 아빠의 강도 사건 밖에 없다.

 

읽으면서 절대 범인이 되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역시 되지 않았다. 누구냐고? 읽으시면 알게 된다. 그가 만약 범인이면 이 이야기 설정이 다른 장르로 빠지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범인이 압박하고, 과거를 되돌아볼 때 반전의 요소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과 반전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앨리슨이 친구들을 알아보는 방식은 목소리와 옷이나 익숙한 행동들이다. 유일하게 변함없이 인식하는 인물을 엄마다. 엄마의 사진을 집 곳곳에 둔 것도 자신의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다. 살짝 더 들어가면 다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탁월한 심리 묘사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설명은 뛰어나지만 성격과 취향 등으로 공감할 수 없는 몇 가지 설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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