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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 2020년 제1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4월
평점 :
오래전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란 소설을 읽었었다. 그 당시 한창 책들을 모으던 시기라 제목부터 끌렸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서평을 찾아 다시 읽어보니 책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에 빠졌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아예 가상의 도서관에 소장된 가상의 책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을 읽으면서 몇 편은 혹시 하는 심정으로 검색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검색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나의 시선을 가장 끈 부분은 다양한 책들의 표지와 각 책들의 소개문 혹은 감상문이다. 혹시 책 표지라도 다른 사람이 그렸나 하고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32권의 책들을 작가가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 호펜타운이란 도시에 반디멘 재단 도서관이 있다. 물론 가상의 도시와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직접 쓴 원고로 책을 만들어 기증했다. 사가본이라고 하는데 도서관이 재정난과 장서 부족으로 문을 닫게 되면서 이 사가본을 기증자들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일부는 받을 사람이 연락되지 않아 돌려주지 못한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책들은 빈센트 쿠프만(VK)란 인물이 기증한 책들이다. 사서인 머레이와 잠시 나눈 대화 속에 그가 책도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소설은 VK가 제공한 책들의 카탈로그이자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환상을 담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장르와 제본 등으로 멋진 각각의 책 이야기를 풀어낸다.
‘당신이 읽을 수 없는 100권의 책’이란 책이 나온다. 이 100권의 목록이 순전히 가짜라는 사실을 말하는데 이것은 이 소설 속 32권의 목록에도 적용된다. “아마 그는 자신이 상상한 책들을 함께 상상하고 그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즐거워할 누군가가 한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독자가 자신만의 환상적이며 사실적인 책들의 목록을 만들기를, 그리고 그 책들을 찾아 나서기를, 즉 그것을 직접 쓰기를 바랐을 지도 모른다.”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작가가 목록을 만들고, 책을 찾아 나선 끝에 직접 쓴 책이다. 어느 특정한 한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실험적으로 상상해내면서 말이다.
32권의 책 카탈로그 사이에 이 도서관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이 간단하게 삽입되어 있다. 카탈로그의 그림을 담당한 레나나 자신의 아이를 도서관에 두고 가는 요코나 요리사나 마약 판매인으로 오해를 하는 인물 등이 바로 그들이다. 가끔 이들을 오해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책 이야기 너머의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람의 향기를 풍기게 만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역시 32권 책 이야기다. 표지, 저자, 역자, 출판사, 출간연도 등의 정보는 왠지 모르게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고, 책 감상문 등은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처음에는 설마 책 정보로 가득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 이 책 감상문이 호기심과 재미를 불러왔다. 기발함과 풍부한 정보들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주고, 존재하지 않는 책들은 현실과 이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책 이야기 다음에 이 책을 읽거나 훔치려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은 나중에 가상의 경매를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만드는데 이 또한 가상의 주인이다. 읽으면서 무심코 지나간 몇 가지 사실들은 나중에 책을 복기하면서 새롭게 다가온다. 32권의 책 표지 일러스트를 보면서 작가의 전공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한의사라고 한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몇 편의 설정들은 나중에 한 번 원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