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외전 - 다시 검찰의 시간이 온다
강희철 지음 / 평사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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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신문 온라인판에 연재되었던 강희철의 법조외전 중 검찰 관련 31편을 뽑아 새롭게 엮은 책이다. 이 책을 선택하고, 읽으면서 김웅의 <검사외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은 베스트셀러인 <검사외전>을 따라한 듯한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잘 모르는 독자라면 두 책을 헷갈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검사외전>이 검사가 쓴 검사 업무 경험이라면 이 책은 기자가 본 검찰 기록이다. 재미란 측면만 놓고 보면 <검사외전>의 압승이다. 여기에는 기사란 한계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김웅의 글 솜씨를 빼고 말할 수는 없다.


좀 아는 기자가 쓴 꽤 하는 검사들의 속살 들추기, 확 잡고 싶은 권력자들의 겉말 뒤집기란 문구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실패하고 있다는 말은 누구나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작년 조국 사태에서 우리가 본 검찰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강희철 기자는 자산의 경력과 인맥을 통해 이 문제의 다른 면을 파헤친다. 기자에게 중요한 것은 법과 절차 등의 문제인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언제나 이 법과 절차 등이 약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이런 법을 고치려고 하면 반발하는 세력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 부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야기 중 나에게 크게 와 닿는 부분은 세 곳이다.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검찰 인사 등이다. 검찰 인사 부분에 대해 그가 인용하는 전직 검사 출신들의 이야기는 결국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눈여겨 볼 부분도 많지만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검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없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민정수석 시절 조국의 잘못된 인사나 권력 행사 부분도 보기에 따라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부분은 검사동일체란 현실 속에서 과연 가능한 것일지 궁금하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가장 큰 반대한 인물 중 한 명이 <검사외전>의 저자 김웅 검사다. 이제는 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경찰이 더 큰 조직이고, 아주 많은 수사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경찰의 수사과 검찰로 가서 뒤집어 지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도 않다. 그럼 그 반대는 어떤가? 검찰과 경찰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 둘은 어떻게 해서라도 더 많은 권한을 가지려고 한다. 이 문제는 더 많은 보완책이 분명 필요하다. 그리고 검찰이 기소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생기는 문제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김학의 출국금지의 법적 문제만 이야기하지 그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는 부분은 넘어간다. 다른 기사에서 말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공수처는 기자의 우려대로 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중 특히 법원과 검찰의 비리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생각하면 필요한 조직이다. 공수처가 대통령의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 말에는 동의한다. 여전히 검찰의 힘이 강력하다는 부분도 안다. 법과 정의를 외치지만 현실은 어떤가. 어느 순간 공수처가 국민의 바람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순간들이 분명히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검찰만 기소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제 식구 감싸기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전관예우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기사 모음이란 한계가 존재하는데 기자가 일괄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인터뷰 등으로 정리해 책을 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이슈를 따라가는 기사와 분량의 한계가 느껴져서 그렇다.


나의 생각과 다르고, 내가 몰랐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원칙에 대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 자신도 원칙을 좋아한다. 하지만 세상은 원칙에 집착하면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다. 법에 유연성을 가지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이 유연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남용의 문제는 남는다. 기사를 몇 시간 씩 읽는 것은 사실 나에겐 고역이었다. 검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기에 더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검찰 개혁의 꼬인 부분도 조금은 알겠다. 기자가 제기하는 논란이 될 만한 사안들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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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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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언수란 이름보다 김연수란 이름이 나에게 더 익숙하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캐비닛>을 재밌게 읽었지만 이후 출간된 작품이 많지 않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이후 나온 두 권의 소설들이 장르 마니아 사이에 좋은 평을 얻으면서 이 이름에 점점 익숙해졌다. <캐비닛>2006, <설계자들>2010년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다작의 작가는 분명 아니다.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면 몇 권 더 나오지만 단편으로 참가한 것들이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뜨거운 피>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와 비슷한 작품들이 김언수 작가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생겼다.

 

설계자. 언제부터인가 이 단어에 익숙해졌다. 이 작품 이전인지 이후인지 잘 모르겠다. 그것과 별개로 이 소설은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세계의 이면을 다룬다. 믿거나 말거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설정이다. 음모론을 좋아한다면 더 좋아할 이야기다. 읽으면서 문체와 캐릭터 등에 강하게 끌렸다. 래생부터 털보, 한자, 이발사 등 아주 매력적인 인물들이 나온다. 설계자, 암살자, 그림자, 푸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 이면 세계 속에서 암약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세계다. 하지만 이들의 뿌리는 우리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세계다.

 

주인공 래생은 수도원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였다. 도서관 너구리 영감이 데리고 와서 키웠는데 혼자 글자를 깨우쳤다. 이 부분은 영감이 바란 것은 아니다. 이후 영감의 암살자로 자랐다. 도입부의 암살도 의뢰에 의한 것이다. 굉장히 낭만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암살은 현실이다. 시체 처리를 애완동물 화장장을 이용한다. 이곳의 주인은 털보다. 이 털보의 화장장은 설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시체들이 최종적으로 오는 곳이다. 아주 뛰어난 암살자였다가 살인에 반발한 추도 결국 이곳에 오고 말았다.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시체들을 처리하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곳이다.

 

한 암살자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 뒤에 앉은 사람들을 쫓는다. 하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 분명 최종 보스가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설계자들은 살인 등을 아주 정밀하게 설계한다. 살인 지시도 분명하다. 추가 살려 보낸 여자를 찾아내 죽일 때도 살인 방식을 알려준다. 암살자는 이들의 도구다. 그런데 이 암살자들의 삶이 아주 짧다. 음모론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모론의 대상인 JFK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JFK를 죽인 암살자를 죽이면서 꼬리를 자른다. 필요하면 그 암살자도 죽이면 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의문의 죽음들에 대해 의심을 눈길을 거둘 수 없게 된다.

 

미숙한 래생이 실수했을 때 잠시 현장을 떠난다. 그때 공장에서 일하는데 그 모습은 과거 남녀 공장 노동자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와 닮았다. 실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래생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놓인다. 그의 선택은 평범함보다 익숙한 과거의 삶이다. 이후 그는 개들의 도서관에 머물고 너구리 영감의 설계에 따라 암살자로 살아간다. 이런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그의 집 화장실에 놓인 작은 폭탄에서부터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덮친다. 그의 유일한 친구에게 부탁해 이 폭탄 제조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누굴까? 그리고 왜? 쉽게 생각하면 도서관을 없애고 싶어하는 한자일 것 같지만 그는 래생이 자기와 일하길 바란다.

 

한자도 도서관에서 자랐지만 독립해 점점 자신의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보안회사 등으로 위장된 그의 사무실은 강남 요지에 위치해 있다.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푸주가 보여주는 거친 사업과 달리 이 설계자들은 조금 더 세련되어 있다. 하지만 하는 일은 암살이란 점에서 같다. 이 소설에서 대선은 아주 중요한 행사다. 쉽게 설계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시기다. 권력자들 눈밖에 나면 공권이 개입해 사업이 엉망진창이 된다. 그래도 몰래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어두운 작업은 계속된다. 래생의 유일한 친구가 죽은 것도 바로 이 연장선이다. 암살자에게 복수는 아주 낭만적인 단어이지만 래생은 몰래 그것을 바란다.

 

이야기는 현재에서 과거로, 설계자들의 역사와 암살자들의 관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시대의 변화가 요구하는 바를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너구리 영감과 한자다. 이 설계자들의 세계를 깨트리고 싶은 사람도 있다. 가장 뒤에 누가 앉아 있는지 모른다면 이 세계 자체를 깨트리면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설계자들의 장부가 대중에게 알려지면 이 판이 깨어질 것이란 생각이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의심스럽게 눈여겨 본 인물이 여기에 가세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암울한 느와르의 마무리와 닮았다. 개정판에서 보강된 결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언제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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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어스 프로젝트 라임 청소년 문학 42
다비드 무아테 지음, 이세진 옮김 / 라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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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5년이란 먼 미래 지구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기근, 전염병 등으로 지독하게 살기 어려워진다. 세계 각국의 소수 특권층은 안전지대인 돔을 만들어 그 속에 머문다. 그 외 다수의 사람들은 돔 밖에 산다. 이들은 언터처블과 그레이로 분류된다. 그레이로 분류된 아이들을 언터처블 아이들과 함께 교육 받을 기회를 준다. 겨우 몇 명 뿐이지만 이 작은 희망이 그레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이 희망을 이용해 그레이들의 불만과 반란을 약화시킨다. 역사에서 자주 본 지배통치 방법 중 하나다. 자신도 돔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갈등의 대상을 언터처블이 아닌 같은 그레이에게 향하게 한다.


뉴 어스 프로젝트는 백만 명의 사람을 태운 거대한 우주선으로 지구와 같은 환경의 행성에 가는 것이다. 한 번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6년이 넘지만 도착하면 넓은 토지와 깨끗한 공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레이들에게는 뉴 어스 프로젝트, 약자로 NEP에 뽑히는 것이 하나의 로또와 같은 행운이다. 여주인공 아이시스의 친척이 그곳에서 보낸 영상으로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행운은 신청자에 한해서 이루어진다.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편안하게 6년을 날아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니 돔 밖에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바란다. 작가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이면을 현실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잔혹한 현실과 잔인한 인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설정이 자주 나온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낮은 도시와 건물은 물속에 잠긴다. 사람들은 버려진 빌딩 속에서 과거의 유산을 찾아내어 이용한다. 도서관, 통조림 등이다. 황폐해진 지구는 물에 잠겼거나 바짝 말랐다. 돔 밖 대기는 최악이고 산성비가 내린다. 이 산성비가 현실적으로 땅에 농사짓는 것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시스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수경재배와 환경에 적응하는 품종 개발로 작은 성과를 만들어낸다. 우수한 성적으로 언터처블과 함께 공동학교에서 공부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돔 안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이다.


오라이언은 NEP 수장의 아들이다. 특권층 중의 특권층이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처럼 그레이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호기심 많고 정의롭다. 그레이인 아이시스와 부딪혔을 때도 거짓말로 그녀가 퇴학당하지 않게 만든다. 언터처블 친구인 미란다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란다는 계급의식이 너무 투철해 그레이와 어울릴 생각이 전혀 없다. 오라이언은 의식 있는 선생의 기획으로 아이시스의 동네를 방문할 기회를 얻는다. 이곳의 현실을 보고, 아이시스의 비밀 정원을 보게 되면서 더 그녀와 가까워진다. 이 둘의 사이를 질투한 미란다는 그레이들이 가장 원하는 바인 NEP 당첨을 통해 둘을 떼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 작업이 추악하고 참혹한 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학살의 기록은 대단히 많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홀로코스트의 경우 몇 백만 명이 죽었지만 구 소련 스탈린의 숙청과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대 기근 등으로 죽은 인물은 이 숫자의 몇 배에 달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학살은 또 어떤가. 하지만 이런 학살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일이 이 소설 속에 일어난다. 중반 이후 이 사실이 드러날 때 작가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란다. 홀로코스트 같은 일이 역사에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속에 자본의 논리와 지배계급의 역겹고 추악한 논리를 만나게 된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 꼬리 자르기도 같이 보여준다.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지만 결코 그 희망이 밝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일까? 두껍지 않지만 낯선 설정으로 가독성은 높였고, 이 설정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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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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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프랑스 누아르 장르를 혁신한 네오폴라르(néo-polar)’를 통해 문학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다고 하지만 처음 만났다. 네오폴라르를 검색했지만 쉽게 그 정의가 나오지 않는다. 범죄소설을 가리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윤리문학이라고 한 것과 관계 있을까. 이 소설은 장파트리크 망셰트의 대표작이고 1977년 작품이라고 한다. 하나의 장르를 혁신한 작가의 작품이 이제야 번역 출간되었다는 사실에서 한국의 장르 시장이 얼마나 협소했는지 알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란 부분에서 왜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떠올랐을까? 분량만 놓고 보면 거의 세 배 이상 차이 나는데 말이다.

 

읽기 시작하면서 큰 착각을 먼저 했다. 제르포가 올해에만 두 사람을 죽였다는 문장을 읽고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암살자로 착각했다. 그리고 다음에 나온 알론소 에메리크 이 에레리크 이야기도 마지막에 오독으로 이어졌다. 도미니카공화국 군사정보기관 장교 출신이란 것과 그 당시 독재 정권 이야기와 엮이면서 제르포를 머릿속에서 한통속으로 묶은 것이다. 이 오독과 착각은 실제 이야기가 펼쳐지는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읽지 않고 머릿속에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평범한 일상을 여유롭게 보지 못하고 그 이면을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해결된 것은 거의 마지막에 왔을 때다. 다시 첫 부분을 읽게 되었고, 이 오독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착각과 오독으로 관계를 잘못 알았다고 하지만 군살 없는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 사고난 차에서 사람을 구해 병원에 데려다주지만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는다. 경찰은 총상 입은 사람을 찾는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의 일상을 보여주고, 가족과 함께 긴 휴가를 떠난다. 이런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둘 있다. 이들은 제르포를 죽이려고 한다. 왜 죽이려고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휴양지 해변에서 이들은 제르포를 익사시키려고하다 실패한다. 겁을 먹은 제프로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다. 제르포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살인자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렌트한 차를 타고 떠나는 제르포를 주유소에서 죽이려고 한다. 직원과 살인자 중 한 명이 죽는다. 겁에 질린 제프로는 정신없이 달아난다. 기차에 올라타고 도주 하는 중에 부랑자가 망치로 그를 때리고 기차 밖으로 밀어낸다. 다치고 부러진 몸을 이끌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사람을 찾아 움직인다. 다행스럽게 포르투칼 벌목원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신문에서는 그의 실종 사고가 나왔다. 그는 돌아가지 않는다. 알프스 산속 마을에서 머문다. 살인자 중 살아남은 한 명이 그를 찾는 중이다.

 

작가는 이 빠른 전개 속에 특별히 어떤 군살을 붙이지 않는다. 작은 군살이라면 음악에 대한 것 정도랄까. 풍경이나 사람 관계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사라지고, 건조한 상황만 보여줄 뿐이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고 지나가면 다른 상황을 마주한다. 다시 바로 앞으로 돌아가야 다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관계 등으로 평온하게 지내는 순간 새로운 파국이 닥친다. 작가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설정을 앞에 깔아두었다. 그리고 그는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 이유를 찾는다. 오해와 분노와 착각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갑작스런 인물이 등장하고 반격이 시작된다.

 

평범한 직장인이 살인자에게 쫓기면서 일어나는 사건은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루었다. 이 소설 이전에 그런 작품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뼈대만 남긴 이야기를 생각하면 다른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후 작품들은 몇 작품 금방 떠오르는데. 그의 폭력과 살인은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다. 반격에 실패하면 그는 죽는다. 겁먹고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에 그의 목숨이 조금 더 연장되었다. 운도 작용했다. 그의 처절한 반격이 운을 만들기는 했지만 위험한 순간들을 돌아보면 그렇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재구성했는지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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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온 사람들 - 전쟁의 바다를 건너온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홍지흔 지음 / 책상통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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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6.25를 잊고 지낸다.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이 봤던 6.25 관련 프로그램이 나의 눈에서 사라졌다. 이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방송을 잘 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6.25를 적어놓으면 요즘 아이들이 ‘육점이오’라고 읽는다는 것과 관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지만 나조차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6.25가 7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에 ‘그 정도 밖에’라는 표현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도 잊고 있었다. 어릴 때 한국 전쟁에 대해 그렇게 많이 들은 내가 이 정도니 최근 아이들 탓하기도 무색하다.


이 그래픽노블은 작가의 외가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실화에 충실하기보다 허구로 재미와 전달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중간 중간에 현실적 감각의 유머 코드가 들어가 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50년 12월 24일 1만 4천 명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흥남에서 거제에 도착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다. 흔히 하는 말로 흥남 철수 작전 당시 한 가족의 탈출기다. 이 가족의 숫자는 부모님 포함 모두 열 명이다. 이 열 명 중 누구 하나 이산가족이 없었다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한때 한국 전쟁을 둘러싼 남침과 북침 논란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남침으로 가르치지만 북침을 주장하는 논리도 있었다. 최근에도 북침을 주장하는 논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논리와 별개로 한국 전쟁은 수많은 동족의 죽음을 안고 있다. 동족 상잔의 비극이란 상투적인 문구가 지금도 떠오른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 국토가 공산화되려는 순간 낙동강 전선의 방어와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시킨다. 거의 전 국토가 수복되려는 순간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이 중공군 중에 모택동의 아들이 있었고, 이 전쟁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과 피란민이 철수해야 했다. 이 그래픽노블은 이때 상황을 그렸다.


경주 가족은 밥을 먹다가 피난선을 타기 위해 흥남 부두로 간다. 부도에 도착했다고 바로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흥남 철수 상황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들은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상황에 집중해 이산의 아픔과 이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극적인 구성보다 타기 전까지 이 가족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 과정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에 더 집중한다. 특히 옥순이로 대변되는 아이 찾기는 피난민의 물결 속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다. 실제 경주 가족도 손을 놓치고 헤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는데 배고픔 때문에 누나에게 줄 떡을 먹는 소년의 모습이 눈시울을 적신다. 이 가족이 피난선을 타기 위해 끓여놓았던 소고기 내장 등을 나중에 이 집에 들어온 아이들이 엄청 행복하게 먹고 좋아하는 장면은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이 그래픽노블의 등장인물들 모습에 거부감이 있다. 너무 예쁘게 그렸다. 내가 주변에서 보는 사람이나 자료 속 사람과 너무 다르다. 그래서인지 인물로 표현된 장면보다 간결한 묵선의 그림과 기억을 더듬은 말들이 더 강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그림보다 글이 이것을 더 잘 보여준다. 작가의 외가에서 들은 이야기가 사료들과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작품 속에는 강한 아픔이나 상실감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 마지막 장면의 상 위에 놓인 열 개의 수저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절망이 빠져 있는 것도 한몫했다. 더 알기 위해서는 더 공부를 해야 한다. 흥남 철수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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