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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그리워졌다 - 인생이 허기질 때 나를 지켜주는 음식
김용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4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음식과 관련된 기억들을 많이 불러왔다. 첫 이야기 칼국수는 만드는 법에서 나와 다른 기억을 보여주지만 그 옛날 한 장면을 영화처럼 떠올려주었다. 이 기억이 정말 맞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학창시절 먹었던 음식들은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다가온다. 음식은 문화이자 기억이라고 말했듯이 각각의 집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식구들을 먹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1부는 가장 따스한 기억과 감동을 전해준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작가와 다른 시대를 산 사람들의 기억들과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많은 이야기들이 소설이나 영화의 상황을 빌려 왔다.
수많은 음식들이 나온다. 이 중에서 나의 추억과 맞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음식도 있다. 현재 시점에서 이 음식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시대, 다른 성별,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에 더욱 그렇다. 작가는 양푼비빔밥을 실연의 상처를 달래는 이야기로 풀어내지만 나에게 제사 후 남은 음식을 한꺼번에 넣고 비빈 음식으로 더 강하게 남아 있다. 헛제삿밥과 겹치는 이미지이지만 지금도 제사 후 남은 나물들과 밥을 이렇게 해결한다. 고추장과 참기름의 조화는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고등어구이의 기억은 해안가에 산 나와 내륙에 산 작가와 갈라질 수밖에 없다. 염장으로 등푸른생선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와 신선한 고등어를 먹었던 나. 달걀말이의 기억은 도시락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부분이다. 여기에 소시지를 넣으면 더 많은 기억을 불러오고, 입맛을 다시게 한다. 상추쌈. 이 음식을 고기와 함께 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기억난다. 쌈밥집이 생기면서 구운 고기를 쌈 채소와 함께 먹던 그 시간들이. 달콤하고 씁쓸한 연애의 기억을 담은 커피가 나에겐 돈 없던 학창 시절 가장 쌌기에 마신 음료수다. 그 시절 함께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낸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릴 때 어른들이 마시길래 호기심에 먹은 막걸리. 대학생이 되어 마신 막걸리는 술 약한 나에게 최악의 주류 중 하나였다. 그때는 쌀막걸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길거리 음식이나 분식 중 떡볶이는 나의 입맛과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핫도그나 오뎅이 더 맞다. 술 취한 늦은 밤 지인들과 함께 오뎅 하나와 국물을 먹던 그 시간들은 지금도 아련하게 다가온다. 라면의 기억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왜곡되었고, 햄버거는 이젠 입맛에 잘 맞지 않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맛있는 햄버거를 먹지 못해서인가. 콜라 리필이 되지 않아서 인가. 라면에 김밥 이미지는 또 언제 생긴 것일까? 분식점에서 이렇게 끼니를 때우던 그때가 갑자기 생각난다.
갓 지은 쌀밥의 엄청난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 강렬해 잊혀지지가 않는다. 만화 <식객>도 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가. 한때 기름 냄새 때문에 짜장면을 먹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돼지기름 때문일 것이다. 왠지 모르게 역했던 기억은 이젠 곱빼기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 중국집의 기억 중 하나인 군만두는 많이 퇴색했지만 지금도 마트 시식대를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팥빙수는 지금도 즐겨먹는다. 가격이 너무 사악해 자주 사먹지 못하지만 어릴 때 시장통에서 두툼한 얼음을 갈고 색소와 팥을 넣었던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눈꽃빙수의 부드러움보다 아직은 이쪽이 더 좋다. 기억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와인은 겉멋으로 마셨다. 솔직히 취향을 찾아냈다고 하지만 거의 마시지 않으니 상표를 잊은 지 오래다. 지금처럼 고급 초콜릿이 없었던 그때 가나초콜릿 하나면 충분했다. 점점 고급화로 나아가는 것들이 와인과 초콜릿이다. 아! 생일 케이크가 있다. 이제는 생일이 아니어도 조각 케이크를 먹지만 왜 이런 문화가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간장게장 맛집의 가격은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한다. 알을 품은 게의 몸부림보다 가격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 돈가스의 기억은 가끔 옛날 돈가스와 일본식 돈가스를 둘 다 맛보게 만들고, 오래전 도쿄 여행에서 맛본 돈가스는 인생 돈가스였다. 물론 지금도 그럴까 하는 의문은 있지만.
김치, 한국인의 소울 푸드다. 작가는 김치와 관련된 글을 세 개 올렸다.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과 김치로. 설렁탕에 깍두기가 없으면 무슨 맛이겠는가. 라면엔 또 어떤가. 식당이 중국산 김치로 가득하다고 해도 아직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식당은 많다. 김장이 고된 노동이 되면서 가족 간의 갈등을 불러오지만 많은 집에서 가장 중요한 반찬이다. 여름철 수박과 콩국수는 최고의 음식이다. 음식물쓰레기 때문에, 너무 큰 크기 때문에 살 때 주저하지만 마트에 가면 늘 눈길을 주고 한 통 산다. 맛있는 콩국수 한 그릇은 더위에 사라진 입맛을 되살린다. 이렇게 이 책의 수많은 음식들은 나의 기억과 추억을 교차시키고,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잊고 있던 친구들을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