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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대할인시대, 정가인하 등으로 혼다 테쓰야의 소설들을 많이 사놓았다. 레이코 형사 시리즈, 지우 시리즈 등이다. 늘 그렇듯이 이 책들은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을 뿐이다. 볼 때마다 읽어야지 생각하지만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늘 하지만 처음 읽는 작가라면 뺄 수 없다. 잠시 기억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가지고 있는 책과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 한 권 나왔다. 전과자만 입주할 수 있다는 기묘한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배경으로 그 입주자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소설이다. 목차를 보고 다카오가 주인공인가 생각했지만 실제 내용은 그곳에 사는 모두의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다카오를 중심에 놓았다. 실제 중심은 물론 셰어하우스 플라주다. 다카오가 이 셰어하우스에 오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 전과자의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면서 플라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이 사이에 르포 기자 한 명이 끼어들어 과거에 벌어진 살인 사건 하나를 알려준다. 이 살인 사건은 알리바이 때문에 1심과 2심의 판결이 뒤바뀌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살인 사건 중 하나인데 기자가 집착한다. 기자는 그 피고인의 민낯을 밝히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가짜 이름으로 플라주에 입주한다. 중반까지 이 기자가 누군지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이상한 곳이다. 전과자만 입주하는 것도, 각 방에 문이 없는 것도, 월세 5만 엔에 식사 공짜까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준코라고 하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지 꼭꼭 숨겨두었다가 마지막에 그 이유를 밝힌다. 플라주는 불어로 해변이란 의미다. 기자의 입을 빌려 작가는 경계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전과자와 비전과자의 경계, 생과 사의 경계 등 많은 경계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처음에는 모든 전과자를 받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준코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입주자를 받는다. 그리고 입주자들이 제대로 된 일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떠나길 바란다.
다카오는 각성제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딱 한 번 한 것이 걸렸다. 출소 후 머문 집이 불타면서 플라주에 오게 되었다. 그 딱 한 번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틀었다. 다카오를 통해 사회가 전과자를 어떻게 보는지, 그 전과자들의 재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왜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다른 전과자 입주자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이 죄에 대한 벌을 받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과자란 사실이 중요하다. 작가는 죄를 저지른 것과 형벌을 받는 것 사이를 들여다본다. 실수에 의한 살인도, 정당방위도, 사법체계의 실수도 ‘전과자’란 단어 속에 그냥 묻혀버린다. 그들의 새 생활의 의지를 꺽기 위해 저지르는 사람들의 폭력은 교묘하고 집요하다. 과연 누가 더 나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섯 명의 입주자와 집주인 준코까지 일곱 명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낸다. 일상을 보여주면서 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죄를 안고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한다. 플라주는 식당이자 주점이기도 하다. 손님들이 밤과 낮에 몰려온다. 밤의 술 자리는 흥겹고 즐겁다. 준코의 요리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 가성비 훌륭한 음식을 내놓는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끝부분에 이 셰어하우스 사연이 나왔을 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심금을 울리는 대사는 미와가 신스께 씨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 한 말이다. “신스께 씨가 자신은 언제 죽어도, 혼자일 때 죽어도 고독사가 아니라고 했어. 그러니까 자기가 죽어도 나는 울면 안 된다고.... 그래서 나 안 울어.”
각자의 사연과 달리 과거가 현재와 엮이는 순간이 있다. 그 중 최악이 바로 미와의 과거다. 복수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이 상황을 마주한 플라주의 사람들이 대처하는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다카오가 각성제를 했을 때와 미와를 구할 때 마주한 경찰은 완전히 다른 감정이다. 그리고 이야기 진행 과정 속에 소거법으로 찾아낸 기자의 정체와 숨겨놓은 사실은 놀라운 반전을 던져준다. 마지막 장에서 다카오가 “모두 제각기 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도 같은 죄가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인간이었다.”고 한 것은 플라주의 입주민에 대한 요약이자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으로 혼다 테쓰야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