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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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할인시대, 정가인하 등으로 혼다 테쓰야의 소설들을 많이 사놓았다. 레이코 형사 시리즈, 지우 시리즈 등이다. 늘 그렇듯이 이 책들은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을 뿐이다. 볼 때마다 읽어야지 생각하지만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늘 하지만 처음 읽는 작가라면 뺄 수 없다. 잠시 기억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가지고 있는 책과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 한 권 나왔다. 전과자만 입주할 수 있다는 기묘한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배경으로 그 입주자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소설이다. 목차를 보고 다카오가 주인공인가 생각했지만 실제 내용은 그곳에 사는 모두의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다카오를 중심에 놓았다. 실제 중심은 물론 셰어하우스 플라주다. 다카오가 이 셰어하우스에 오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 전과자의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면서 플라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이 사이에 르포 기자 한 명이 끼어들어 과거에 벌어진 살인 사건 하나를 알려준다. 이 살인 사건은 알리바이 때문에 1심과 2심의 판결이 뒤바뀌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살인 사건 중 하나인데 기자가 집착한다. 기자는 그 피고인의 민낯을 밝히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가짜 이름으로 플라주에 입주한다. 중반까지 이 기자가 누군지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이상한 곳이다. 전과자만 입주하는 것도, 각 방에 문이 없는 것도, 월세 5만 엔에 식사 공짜까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준코라고 하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지 꼭꼭 숨겨두었다가 마지막에 그 이유를 밝힌다. 플라주는 불어로 해변이란 의미다. 기자의 입을 빌려 작가는 경계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전과자와 비전과자의 경계, 생과 사의 경계 등 많은 경계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처음에는 모든 전과자를 받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준코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입주자를 받는다. 그리고 입주자들이 제대로 된 일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떠나길 바란다.


다카오는 각성제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딱 한 번 한 것이 걸렸다. 출소 후 머문 집이 불타면서 플라주에 오게 되었다. 그 딱 한 번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틀었다. 다카오를 통해 사회가 전과자를 어떻게 보는지, 그 전과자들의 재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왜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다른 전과자 입주자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이 죄에 대한 벌을 받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과자란 사실이 중요하다. 작가는 죄를 저지른 것과 형벌을 받는 것 사이를 들여다본다. 실수에 의한 살인도, 정당방위도, 사법체계의 실수도 ‘전과자’란 단어 속에 그냥 묻혀버린다. 그들의 새 생활의 의지를 꺽기 위해 저지르는 사람들의 폭력은 교묘하고 집요하다. 과연 누가 더 나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섯 명의 입주자와 집주인 준코까지 일곱 명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낸다. 일상을 보여주면서 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죄를 안고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한다. 플라주는 식당이자 주점이기도 하다. 손님들이 밤과 낮에 몰려온다. 밤의 술 자리는 흥겹고 즐겁다. 준코의 요리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 가성비 훌륭한 음식을 내놓는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끝부분에 이 셰어하우스 사연이 나왔을 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심금을 울리는 대사는 미와가 신스께 씨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 한 말이다. “신스께 씨가 자신은 언제 죽어도, 혼자일 때 죽어도 고독사가 아니라고 했어. 그러니까 자기가 죽어도 나는 울면 안 된다고.... 그래서 나 안 울어.”


각자의 사연과 달리 과거가 현재와 엮이는 순간이 있다. 그 중 최악이 바로 미와의 과거다. 복수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이 상황을 마주한 플라주의 사람들이 대처하는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다카오가 각성제를 했을 때와 미와를 구할 때 마주한 경찰은 완전히 다른 감정이다. 그리고 이야기 진행 과정 속에 소거법으로 찾아낸 기자의 정체와 숨겨놓은 사실은 놀라운 반전을 던져준다. 마지막 장에서 다카오가 “모두 제각기 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도 같은 죄가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인간이었다.”고 한 것은 플라주의 입주민에 대한 요약이자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으로 혼다 테쓰야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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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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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출판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안전가옥이다. 처음 이 브랜드를 알게 된 것은 <냉면>이란 앤솔로지였다. 이후 나온 <대멸종>까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잊고 있다가 이 브랜드의 쇼-트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었다. 역시 좋았다. 이후 안전가옥의 책들을 한 권씩 도전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좋아하는 장르의 출판 브랜드만 보고 열심히 사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너울이란 작가에게 반했다. 아마 시간이 된다면 최근에 나온 그의 새로운 단편집에도 달려갈 것 같다. 책 소개글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떠올랐기에 더 그렇다.


이 단편집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각각 독립적인데 마지막 두 편은 이어져 있다. 첫 작품 <정적>은 작가의 첫 발표작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TV 단편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갑자기 마포구와 서대문구가 정적 속에 빠지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두 지역을 벗어나면 소리가 들린다. 이유도 원인도 모른다. 주인공은 대학생이고 마포구에 산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생기는 몇 가지 문제를 보여주고, 이 소리 없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여준다. 온갖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 소리를 빼앗는다면 어떨까? 잔잔한 이야기 속에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웃프다. 지하철 연착으로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너무 연착된 지하철을 기다리다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재밌는 것은 이 사람들 속에서 매일 작업하는 인기 웹툰 작가 성하리다. 매일 그는 연재한다. 독자들은 그의 연재에 놀라고, 개인이 아니라고 의심하고, 걱정한다. 우연히 친구 책방 개업을 도와주러 온 기자가 이 전철에 도착해 경험한 일이다. 웹툰 작가는 기자가 이 사실을 기사화하길 바란다. 오랜만에 도착한 전철을 타기 위해 달려드는 시체 같은 사람들과 이미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행정복지센터 9급 공무원 김현 이야기다. 그는 모든 직장인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금요일을 가장 기다리고 행복해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다시 금요일이다. 보통의 타임루프물이라면 같은 금요일이 반복되는 것이겠지만 이 소설은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이다. 지난 7일 동안의 기억이 사라졌다. 하루 속에 갇힌 이야기를 상상했는데 반복되는 요일이 나왔다. 이 7일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전 이야기와 달리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 이유가 나온다.


<신화의 해방자>와 <최고의 가축>은 연작 판타지다. 이야기 순서를 뭐가 먼저라고 하기 어렵다. 독립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해방자>는 <최고의 가축>에서 생명공학 기업 셀트린이 용혈을 얻게 된 이후 유전자 개발을 하는 연구소 직원이 된 유소현과 용순이 이야기다. 소현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용순이를 돌보면서 생기는 문제와 용순이의 성장을 잘 버무렸다. 마지막 장면은 판타지스럽게 마무리된다. 반면 <최고의 가축>은 한반도를 수호하는 용 이스켄데룬과 북미 대륙을 수호하는 용 아이발리크의 싸움부터 나온다. 이 싸움에 둘은 부상을 입고 긴 잠에 빠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셀트린의 직원이 용의 둥지를 찾아오면서부터다. 사실과 가공의 역사를 뒤섞고, 마법과 과학을 융합시킨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가축의 대상이 뒤바뀌는데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이 단편을 읽으면서 소현과 용순이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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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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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시녀 이야기>의 계보를 이을 페미니즘 소설이란 광고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녀 이야기>를 사놓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읽어야지 늘 생각하는 많은 소설 중 한 권인데 말이다. 늘 그렇듯이 다른 책들을 보면서 읽어야지 하는 기억을 되살린다. 책 소개에 나오는 ‘충격적인 반전’은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충격적인 반전은 나의 예상을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야기 곳곳에서 단서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아마 예전에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그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외딴 곳에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란 학교가 존재한다. 이 학교의 소녀들은 모두 예쁘고, 지독한 관리 속에서 살아간다. 부모들은 소녀들을 이 학교에 보내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으로 교육받게 만든다. 모두 기숙사에 살면서 남자 교수들에게 교육을 받는다. 만약 몸에 상처가 나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치료한다. 엄청난 관리를 받는다는 느낌과 함께 알 수 없는 행위들이 이야기 속에 잔잔히 나타난다. ‘뭐지?’란 단어가 머릿속을 지나간다. 아무리 봐도 이 학교 수상하다. 작가는 이 수상한 분위기 속에서 중요한 이야기 몇 개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반전을 준비한다.


장미정원에 갔다가 비 때문에 일찍 학생들은 돌아온다. 오던 길에 주유소에 들러 차에 기름을 넣고, 소녀들은 화장실 등에 다녀온다. 사탕 등을 좋아하는 필로미나는 단 것을 사려고 한다. 그러다 잭슨이란 청소년을 만난다. 그가 필로미나에게 관삼을 두고 사탕 등을 사주려고 한다. 이때 사감이 나타나 이 행동을 방해한다. 이 짧은 만남이 잭슨과 필로미나를 연결시키고, 다음에 일어날 사건에 기폭제가 된다. 밸런타인이 반발하면서 생긴 작은 사건은 보통의 학교라면 가벼운 처벌로 끝나겠지만 이 학교에서는 충동억제제 처분을 받는 큰 일이다.


여자 기숙사의 풍경은 평범하다. 주유소에서 훔친 잡지를 보면서 야한 농담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잭슨이 학교에 몰래 숨어들어온다. 달리기를 하던 시드니가 보고 필로미나에게 알려준다. 잭슨과 필로미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잭슨의 전화번호를 받는다. 나중에 필로미나가 공중전화를 거니 없는 전화번호란 회신이 나온다. 이상하다.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목소리다. 이렇게 이야기는 조금씩 이 학교에 대한 의문의 탑을 하나씩 쌓아간다. 그 의문이 하나씩 깨어질 때 진실의 문이 조금씩 열린다. 그 과정은 몇 번의 반복과 생략으로 표현된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오픈하우스다. 이 날 부모님이나 투자자들이 학교에 온다. 오픈하우스 전에 레논로즈가 울었고, 당일 그녀가 사라진다. 학교에서는 부모가 데리고 갔다고 말한다. 사감과 분석가의 대답이 다르다. 필로미나는 레논로즈가 그립다. 그러다 그녀의 침대 밑에서 시집 한 권을 발견한다. <가장 날카로운 가시들>이란 시집이다. 충격적인 내용의 시가 실려 있다. 필로미나의 의식을 깨운다. 하지만 진짜는 오픈하우스 행사 때 일어난 일 때문에 생긴다. 변호사에게 휘둘리는 친구의 모습을 분석가 안톤에게 말했는데 아무 처벌도 없다. 그리고 그날 마신 술 때문에 매일 밤 먹던 비타민 등을 토한다. 이 일이 그녀로 하여금 전날의 기억을 갖게 한다. 시집과 약에 대한 사실을 공유한다. 이제 그들은 진실을 알기 위해 위험 속으로 자신들을 밀어넣는다.


소설 속 소녀들은 남성에 대한 복종과 순종을 강하게 주입받는다. 오픈하우스에서 일어난 몇 가지 상황은 이 소녀들이 사람보다 상품이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한 권의 시집과 약의 작용에 대한 의혹 등이 소녀들을 일깨운다. 그녀들이 받은 교육의 실체와 은근히 표현되는 성추행과 억압된 욕구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들이 당한 고통과 싸운다. 마지막에 헌사 같은 <면도날 심장을 가진 소녀들>이란 시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남자들에게 두려운 소녀가 되라고 말한다. 복종과 순종이란 단어보다 존중과 두려움이란 단어가 더 부각된다.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좋지만 부분적으로 취향을 타는 곳도 나온다, 과장된 표현이라고 누군가 말하겠지만 현실에서 이런 여성들을 강요하는 무리들은 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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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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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휴가를 가면서 이 책을 들고 갔다. 평온한 휴가지에서 재밌게 읽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들고 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거의 책을 읽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번 때를 놓친 책들은 언제나처럼 뒤로 밀리고 밀렸다. 인터넷으로 조금씩 읽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딘 속도였다. 그러다 큰맘(?) 먹고 끝까지 달렸다.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느낀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고 조합하는 그의 능력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최고의 적이었던 멜빈 마스를 구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펼쳐진다.


미식축구를 잘 모르지만 스포츠에서 학생 시절 기록이 성인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학생 시절 최고였다고 해도 성인의 세계는 또 다르다. 프로야구를 보면 이것이 잘 드러난다. 최고의 계약금을 받고 들어가지만 1군에 정착도 하지 못한 선수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멜빈 마스의 활약을 말할 때 괴물이란 단어가 결코 아깝지 않다. 데커가 프로에 갈 정도였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선수였다. 역대 최고 대학 러닝백 중 한 명이란 표현은 그를 알려주는 것 중 극히 일부다. 천부적인 재능에 노력이 곁들여지면 프로가 될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 마스가 감옥에 있을 때 드러난다.


전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에이머스 데커는 FBI 미제 사건 해결팀에 합류하여 일하던 중 멜빈 마스의 사건을 알게된다. 이상함을 느끼고 조사를 시작한다. 이때 마스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었다. 그가 수감된 텍사스주는 사형제도가 아직 있다. 20년 전 프로팀과 계약을 체결하고 기분 최고의 상태였던 그인데 부모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이때 상황과 증거들이 모두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 또한 사형을 앞둔 범죄자다. 경찰만 알고 있는 증거를 말하면서 마스의 무죄를 증명했다. 마스는 형 집행이 중지된다. 이 시점에서 데커와 마스가 만난다.


마스의 무죄를 증명한 범인의 아내를 데커가 찾아간다. 그날 밤 그녀의 캠핑차가 폭발한다. 데커는 그 집에 있을 수 없는 고가의 제품들을 봤다. 누군가 정보를 속인 것이다. 이 단서를 데커와 그의 팀이 쫓는다. 20년 전 살인 사건이 있었던 장소를 찾아가고, 그 당시 기록을 뒤지고, 사람들을 만난다. 이 살인 사건 자체가 이상하다. 조작된 기록들이 드러나고, 방대한 정보를 조사하면서 숨겨진 사실들을 밝혀낸다. 충격적인 가설이 세워진다. 마스의 아버지가 아내를 죽이고, 마스를 범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살해 당한 여자를 방문한 남자가 마스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 이야기는 더 많은 의문을 던지면서 나아간다.


전작의 의문의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20년 전 살인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푸는 것이다. 단서를 뒤쫓아 올라가면 추악한 인종 차별 문제와 폭력 등의 다양한 문제들과 마주한다. 한 번 품었던 의심을 해제한 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의심이 살아난다. 추정이 난무하는 사이에 자료가 하나씩 맞춰지면서 사실이 드러난다. 반전과 함께 트릭이 이어진다. 왜 마스는 감옥에 가야만 했을까? 과연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만약 그가 프로에서 뛰었다면 어떤 기록을 보여주었을까? 읽으면서 끝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들이다.


<모기남>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도 역시 만족할 것이다. 다만 전편보다 더 데커에 집중되는 느낌이라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만약 마스의 매력이 표현되지 않았다면 균형이 좀 더 깨졌을 것이다. 데커가 살을 빼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다음 권에서는 과연 데커의 다이어트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을지 궁금하다. 3편의 서평을 읽으면 데커의 활약이 조금 바뀌었다고 한다. 살을 빼면서 액션이 더 많아진 것일까? 아니면 다른 새로운 매력남이나 매력녀가 등장하는 것일까? 데커의 수사를 중지시키려는 사람에게 너무 무력하게 무너진 데커가 과연 다음에는 좀 더 신중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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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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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엄마라는 여자> 편을 읽었다. 시간을 더 두고 아빠 편을 읽고 싶었지만 잠깐 잡은 사이에 다 읽었다. 분량도 많지 않고 이야기도 어렵지 않다보니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열심히 찾았지만 몇 곳을 제외하면 잘 보이지 않았다. 딸의 시선에 본 아빠의 일상이기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몇몇 에피소드는 아내의 말을 통해 들은 장인어른의 모습과 겹쳐 있었다. 환경과 성격이 다르니 이 차이는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전체적인 이야기 분위기가 엄마 편과 너무 달랐다. 엄마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풀려나왔다면 아빠는 열심히 떠올려 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해야 할까. 뭐 나의 착각일 수 있지만.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아빠의 삶을 보여준다. 과거 속 아빠는 결코 자상한 남편도 아빠도 아니다. 권위적이고 성격 급하고 출장이 잦고 버럭버럭한다. 출장이 길어진 후 아빠 없는 삶에 적응했다 구 질서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야기도 있다. 텔레비전 리모컨이 하나 밖에 없던 시절 당연히 그 리모컨은 아빠의 것이었다. 아빠 오기 전에 어린이 만화 영화 등이 방송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이야 24시간 어느 때나 어린이 방송을 볼 수 있고, 어린이가 더 큰 힘을 가지는 시대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몇 편의 만화 속에서 두 여자가 아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나온다. 두 여인이 ‘아빠들이란’이란 공통의 기억을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 중 하나가 엄마와 딸이 가는 여행에 함께 가자고 물어봐졌으면 하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아내와 장모님과 함께 떠난 여행에 함께 가지 못해 기분이 조금 상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작가는 같이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듯이 말했지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다. 뭐 엄마와 딸의 입장에서는 권위적이고 성격 급한 아빠와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겠지만 말이다.


이 아빠의 급한 성격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음식에 대한 것이 많다. 뜨거운 것을 못 먹어 된장국에 얼음을 넣어 먹는다거나 식당에 가면 제일 위에 있는 음식을 시킨다거나 하는 행동이다. 맛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가 연상되었다. 식당 아줌마에게 맛 없었다고 바로 말한 우리 아버지 말이다. 쌀밥이 사무쳤다는 이야기는 나 자신도 경험한 일이다. 국가적으로 잡곡을 장려할 때도 무조건 쌀밥만 드셨던 아버지가 기억난다. 뭐 지금은 잡곡도 잘 드시지만. 작가도 지적했지만 가난의 기억이 만들어낸 하나의 집착이다.


한 만화에서 아빠가 죽을 때 ‘당신 덕에 좋은 인생이었다.’고 말해줄게라고 말한다. 이때 엄마의 반응 두 가지는 핵심을 콕 찌른다. 하나는 멋대로 사는 쪽이 더 오래 산다고 말하고, 다른 하나는 죽기 직전에 인사받아봤자 늦었다는 말이다. 속된 말로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이다. 자식들이 부모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기 부끄러울 때가 있는데 아빠의 경우 자주 있다. 하지만 좋을 때도 있다. 필요할 때마다 주머니 속 동전을 바로 내어주고, 연날리기에서 남자들과 신나고 즐겁게 놀 때 등이다. 한신 팬인 아빠가 한신의 우승에 보여준 행동은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의 산만하고 성격 급하지만 생각보다 꼼꼼한 부분도 있다. 글씨나 그래프 작성 에피소드 등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부러우면서 에상 외의 장면이 있는데 바로 ‘짐 한 상자’ 편이다. 이사할 때 아빠의 짐이 한 상자 분량이었다고 하는데 곤도 마리에가 떠올랐다. 책도 생각보다 열심히 읽는 듯한데 읽은 책은 아는 사람에게 보내는 모양이다. 딸 앞에서 딸의 책을 읽는데 오히려 딸이 무안해한다. 이 책의 후기에 작가는 “나에게 아빠는 그냥 ‘아빠’라는 그 이름 자체였다.”라고 썼는데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상당히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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