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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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완슨과 헷갈리는 작가가 있다. 아마 그 당시 이 두 작가의 작품을 번갈아 읽으면서 생긴 착각인 모양이다.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피터 스완슨의 작품을 다시 검색하니 모두 네 권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 포함 현재 3권 읽었다. 아마 나머지 한 권도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인지는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가의 작품이 매력적이란 것이다. 최소한 현재까지 읽은 작품들은 그랬다. 물론 이 작품 포함이다. 이번에 전작의 서평을 대충 훑어보았는데 기억이 희미하게 날 뿐이다. 이 저질기억력이란. 아마 이 부분이 다른 작가와 착각하게 만든 듯하다.

 

이 소설은 누가 살인자인지 초반에 알려준다. 반전은 두 번에 걸쳐 펼쳐지는데 앞부분에 보여준 설정이 마지막 장에서 완전히 해결된다. 솔직히 마지막 반전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각 부의 이야기의 흐름이 갑자기 바뀌면서 나를 순식간에 흔들어 놓았다. 작가가 잘 짠 구성 덕분이다. 연쇄살인범이 누군지 알려준다고 해도 풀어낼 이야기는 많다. 왜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하는 것 등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이 이 살인 이유다. 그리고 왜 그가 이런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 그의 가족사로 계속 들어간다. 가정 폭력이 어떻게 한 가족을 망가트리는지 잘 보여준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이 두 사람은 바로 옆집이고 똑같이 생긴 집에서 산다. 매슈가 살고 있던 곳에 헨리에타 부부가 이사온다. 매슈 부부가 헨리에타 부부를 식사에 초대했는데 헨이 서재 벽난로 위에 놓인 펜싱 트로피를 보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그 트로피는 살해당한 더스틴 밀러의 트로피다. 그녀가 놀라는 모습을 매슈가 본다. 작가는 바로 다음 날 매슈의 정체를 알려주고, 매슈는 이 트로피와 다른 살인 전리품을 정리한다. 예상하지 못한 빠른 연쇄살인범의 정체 노출에 놀랐다. 헨은 자신이 본 트로피가 더스틴 밀러의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들어간 그곳에 트로피는 없었다.

 

이제 이야기는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경찰에 알려 잡혀가게 하려는 헨과 그녀의 신고 등을 무사하게 지나가야 하는 매슈의 대결이 된다. 이와 동시에 매슈는 직장 동료의 록 가수 남친을 죽이려고 한다. 바람을 피운다는 이유다. 매슈는 살인 대상자를 관찰하기 위해 펍에 갔고, 펍에서 헨은 그를 뒤따른다. 매슈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녀는 긴장한다. 혹시 어떤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미행이 그녀로 하여금 매슈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만든다. 록 가수의 일정을 확인하고 그 현장을 보려고 한다. 죽이려는 자와 확인하려는 자의 대결이다. 보통의 스릴러라면 이 대결에 집중하겠지만 이 작품은 그럴 의도가 없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번역 제목은 소설 속 한 문장이다. 증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과거가 이 증언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녀가 신고한 내용을 형사들이 그렇게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는 것도 과거 때문이다. 조울증을 앓았고, 대학 시절 신고 관련 문제가 있었다. 증거품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의 말만 믿고 수사나 기소를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매슈 쪽에서 오히려 기피 신청을 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그런데 매슈는 자신의 정체를 아는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고 싶어한다. 녹음되지 않으면 이 말들이 그 어떤 증거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말해 편안해진 매슈, 사실을 알지만 경찰에 말해봐야 소용없는 헨. 새로운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또 한 번 분위기가 바뀐다.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1부가 끝날 때, 2부가 끝날 때마다 새로운 관계와 사실이 드러난다. 3부로 오게 되면 서술 트릭을 이용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작가가 앞부분에 단서를 내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여자는 절대 죽이지 않는다고 맹세하는 매슈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동생 리처드로 넘어가면 달라진다. 리처드는 매슈보다 덜 이성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매슈의 살인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은 <덱스터>가 스쳐지나갔다. 뭐 나에겐 덱스터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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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1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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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 최면과 전생을 엮어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야기꾼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가독성이 좋아 쪽수가 쑥쑥 넘어간다. 주인공 르네 톨레다노를 역사 교사로 설정해 사라지고, 왜곡되고, 숨겨진 역사를 같이 버무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틀란티스 대륙이다. 르네의 최초 전생을 아틀란티스인 게브로 설정해 신화와 전설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했다. 작가의 상상력을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의 착각일까? 빠르고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상상력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특히 가장 기본 설정인 최면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과 퇴행 최면으로 전생의 영혼이 들어와서 발휘하는 능력 등이 대표적이다.


르네는 동료 교사와 센강 유람선 공연장 판도라의 상자에 간다. 이곳에서 르네는 퇴행 최면 대상자로 선택된다. 최면에 성공해 전생의 문을 열게 된다. 그가 바란 것은 영웅이다. 영웅의 전생은 알고 보니 제1차 대전 참호병이었다. 독일군과 열심히 싸우다 죽었다. 문제는 죽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이 충격에 밖으로 나갔는데 그곳에서 강도를 만나 싸우다 죽인다. 아직 전생의 잔상이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신고를 하면 되지만 시체를 센강에 빠트린다. 집에 와서 잠을 잔 후 출근하지만 학생들은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관심없다. 전날의 강렬한 경험은 다시 퇴행 최면으로 그를 이끈다. 최면술사 오팔에게 다시 강제적인 부탁을 한다. 그는 또 다른 전생의 자신을 만난다.


현실에 돌아와서 그는 경찰이 언제 나타나 자신을 체포할지 두려워한다. 어느 날 밤 혼자 퇴행 최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가 그의 첫 번째 전생자인 아틀란티스인 게브를 만난다.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퇴행 최면으로 전생의 그를 만나 그 곳이 어딘지 알게 된다. 바로 아틀란티스다. 작가는 아틀란티스를 전설과 신화 속 자료로 그려낸다. 그들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영적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지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공통의 신화 중 하나를 아틀란티스에 녹여낸다. 바로 방주 신화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침몰과 방주 신화를 같이 엮었다.


전생의 경험은 르네의 현실을 더욱 비튼다. 수업은 교과 과정보다 전생 체험 위주로 흘러간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와 가려지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려주려는 그의 노력은 시험이란 벽에 부딪친다. 결국 교장의 경고를 듣고, 경찰까지 그를 찾아오면서 교사로서의 삶은 마무리된다. 그의 이 경험을 늘 함께 하는 교사 동료 엘로디에게 말하는데 그녀의 반응은 너무 현실적이고 비판적이다. 그녀가 그를 정신병자처럼 꾸며 정신병원에 넣는다. 하지만 이 병원의 원장은 최악의 정신과 의사다. 엘로디가 당한 일을 감안하면 절대 소개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이 병원에서 그는 최악의 경험을 하는데 전생의 기억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다. 그리고 병원을 전생 기억 중 하나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빠르게 읽게 되는 이야기 속에 시간 여행의 패러독스를 만난다. 대표적인 것인 아틀란티스의 방주다. 게브가 살던 시대에는 거대한 배를 만들 수 있는 조선술이 없다. 유체이탈로 달까지 다녀오고 피라미드를 세우는 아틀란티스인들이지만 말이다. 이 조선술을 게브가 가르쳐 준다는 설정인데 중간에 생략된다. 그리고 방주에 올라 탈출해서 그들이 가는 곳으로 이집트로 설정한다. 게브의 아이들 이름을 이집트 신들의 이름과 같이 지은 것도 사람들이 흔히 아는 신화나 전설과 연결시키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의문 하나 추가하면 과연 1만2천 년 전에 파피루스를 사용했는지와 그것을 석회 동굴 속 밀봉된 항아리에 넣어두면 보존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2천 년 된 사해문서와는 또 다른 환경이다.


주인공을 역사 교사로 설정하여 기억과 전생을 엮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알려진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설정으로 알려주는 역사들은 새로운 시각이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란 부분을 감안하면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전생 기억을 이용해 숨겨진 보물을 찾고, 위험한 곳을 벗어나고, 강력한 무술을 발휘하는 장면들은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 같다. 이 부분에서도 할 말이 있지만 생략한다. 한 편의 판타지 모험 소설로 생각하고 읽으면 상당히 재밌다. 그러나 아직 <개미>의 강렬한 기억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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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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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할인시대, 정가인하 등으로 혼다 테쓰야의 소설들을 많이 사놓았다. 레이코 형사 시리즈, 지우 시리즈 등이다. 늘 그렇듯이 이 책들은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을 뿐이다. 볼 때마다 읽어야지 생각하지만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늘 하지만 처음 읽는 작가라면 뺄 수 없다. 잠시 기억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가지고 있는 책과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 한 권 나왔다. 전과자만 입주할 수 있다는 기묘한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배경으로 그 입주자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소설이다. 목차를 보고 다카오가 주인공인가 생각했지만 실제 내용은 그곳에 사는 모두의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다카오를 중심에 놓았다. 실제 중심은 물론 셰어하우스 플라주다. 다카오가 이 셰어하우스에 오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 전과자의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면서 플라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이 사이에 르포 기자 한 명이 끼어들어 과거에 벌어진 살인 사건 하나를 알려준다. 이 살인 사건은 알리바이 때문에 1심과 2심의 판결이 뒤바뀌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살인 사건 중 하나인데 기자가 집착한다. 기자는 그 피고인의 민낯을 밝히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가짜 이름으로 플라주에 입주한다. 중반까지 이 기자가 누군지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이상한 곳이다. 전과자만 입주하는 것도, 각 방에 문이 없는 것도, 월세 5만 엔에 식사 공짜까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준코라고 하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지 꼭꼭 숨겨두었다가 마지막에 그 이유를 밝힌다. 플라주는 불어로 해변이란 의미다. 기자의 입을 빌려 작가는 경계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전과자와 비전과자의 경계, 생과 사의 경계 등 많은 경계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처음에는 모든 전과자를 받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준코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입주자를 받는다. 그리고 입주자들이 제대로 된 일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떠나길 바란다.


다카오는 각성제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딱 한 번 한 것이 걸렸다. 출소 후 머문 집이 불타면서 플라주에 오게 되었다. 그 딱 한 번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틀었다. 다카오를 통해 사회가 전과자를 어떻게 보는지, 그 전과자들의 재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왜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다른 전과자 입주자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이 죄에 대한 벌을 받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과자란 사실이 중요하다. 작가는 죄를 저지른 것과 형벌을 받는 것 사이를 들여다본다. 실수에 의한 살인도, 정당방위도, 사법체계의 실수도 ‘전과자’란 단어 속에 그냥 묻혀버린다. 그들의 새 생활의 의지를 꺽기 위해 저지르는 사람들의 폭력은 교묘하고 집요하다. 과연 누가 더 나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섯 명의 입주자와 집주인 준코까지 일곱 명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낸다. 일상을 보여주면서 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죄를 안고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한다. 플라주는 식당이자 주점이기도 하다. 손님들이 밤과 낮에 몰려온다. 밤의 술 자리는 흥겹고 즐겁다. 준코의 요리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 가성비 훌륭한 음식을 내놓는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끝부분에 이 셰어하우스 사연이 나왔을 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심금을 울리는 대사는 미와가 신스께 씨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 한 말이다. “신스께 씨가 자신은 언제 죽어도, 혼자일 때 죽어도 고독사가 아니라고 했어. 그러니까 자기가 죽어도 나는 울면 안 된다고.... 그래서 나 안 울어.”


각자의 사연과 달리 과거가 현재와 엮이는 순간이 있다. 그 중 최악이 바로 미와의 과거다. 복수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이 상황을 마주한 플라주의 사람들이 대처하는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다카오가 각성제를 했을 때와 미와를 구할 때 마주한 경찰은 완전히 다른 감정이다. 그리고 이야기 진행 과정 속에 소거법으로 찾아낸 기자의 정체와 숨겨놓은 사실은 놀라운 반전을 던져준다. 마지막 장에서 다카오가 “모두 제각기 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도 같은 죄가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인간이었다.”고 한 것은 플라주의 입주민에 대한 요약이자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으로 혼다 테쓰야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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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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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출판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안전가옥이다. 처음 이 브랜드를 알게 된 것은 <냉면>이란 앤솔로지였다. 이후 나온 <대멸종>까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잊고 있다가 이 브랜드의 쇼-트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었다. 역시 좋았다. 이후 안전가옥의 책들을 한 권씩 도전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좋아하는 장르의 출판 브랜드만 보고 열심히 사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너울이란 작가에게 반했다. 아마 시간이 된다면 최근에 나온 그의 새로운 단편집에도 달려갈 것 같다. 책 소개글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떠올랐기에 더 그렇다.


이 단편집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각각 독립적인데 마지막 두 편은 이어져 있다. 첫 작품 <정적>은 작가의 첫 발표작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TV 단편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갑자기 마포구와 서대문구가 정적 속에 빠지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두 지역을 벗어나면 소리가 들린다. 이유도 원인도 모른다. 주인공은 대학생이고 마포구에 산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생기는 몇 가지 문제를 보여주고, 이 소리 없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여준다. 온갖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 소리를 빼앗는다면 어떨까? 잔잔한 이야기 속에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웃프다. 지하철 연착으로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너무 연착된 지하철을 기다리다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재밌는 것은 이 사람들 속에서 매일 작업하는 인기 웹툰 작가 성하리다. 매일 그는 연재한다. 독자들은 그의 연재에 놀라고, 개인이 아니라고 의심하고, 걱정한다. 우연히 친구 책방 개업을 도와주러 온 기자가 이 전철에 도착해 경험한 일이다. 웹툰 작가는 기자가 이 사실을 기사화하길 바란다. 오랜만에 도착한 전철을 타기 위해 달려드는 시체 같은 사람들과 이미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행정복지센터 9급 공무원 김현 이야기다. 그는 모든 직장인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금요일을 가장 기다리고 행복해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다시 금요일이다. 보통의 타임루프물이라면 같은 금요일이 반복되는 것이겠지만 이 소설은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이다. 지난 7일 동안의 기억이 사라졌다. 하루 속에 갇힌 이야기를 상상했는데 반복되는 요일이 나왔다. 이 7일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전 이야기와 달리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 이유가 나온다.


<신화의 해방자>와 <최고의 가축>은 연작 판타지다. 이야기 순서를 뭐가 먼저라고 하기 어렵다. 독립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해방자>는 <최고의 가축>에서 생명공학 기업 셀트린이 용혈을 얻게 된 이후 유전자 개발을 하는 연구소 직원이 된 유소현과 용순이 이야기다. 소현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용순이를 돌보면서 생기는 문제와 용순이의 성장을 잘 버무렸다. 마지막 장면은 판타지스럽게 마무리된다. 반면 <최고의 가축>은 한반도를 수호하는 용 이스켄데룬과 북미 대륙을 수호하는 용 아이발리크의 싸움부터 나온다. 이 싸움에 둘은 부상을 입고 긴 잠에 빠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셀트린의 직원이 용의 둥지를 찾아오면서부터다. 사실과 가공의 역사를 뒤섞고, 마법과 과학을 융합시킨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가축의 대상이 뒤바뀌는데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이 단편을 읽으면서 소현과 용순이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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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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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시녀 이야기>의 계보를 이을 페미니즘 소설이란 광고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녀 이야기>를 사놓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읽어야지 늘 생각하는 많은 소설 중 한 권인데 말이다. 늘 그렇듯이 다른 책들을 보면서 읽어야지 하는 기억을 되살린다. 책 소개에 나오는 ‘충격적인 반전’은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충격적인 반전은 나의 예상을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야기 곳곳에서 단서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아마 예전에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그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외딴 곳에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란 학교가 존재한다. 이 학교의 소녀들은 모두 예쁘고, 지독한 관리 속에서 살아간다. 부모들은 소녀들을 이 학교에 보내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으로 교육받게 만든다. 모두 기숙사에 살면서 남자 교수들에게 교육을 받는다. 만약 몸에 상처가 나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치료한다. 엄청난 관리를 받는다는 느낌과 함께 알 수 없는 행위들이 이야기 속에 잔잔히 나타난다. ‘뭐지?’란 단어가 머릿속을 지나간다. 아무리 봐도 이 학교 수상하다. 작가는 이 수상한 분위기 속에서 중요한 이야기 몇 개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반전을 준비한다.


장미정원에 갔다가 비 때문에 일찍 학생들은 돌아온다. 오던 길에 주유소에 들러 차에 기름을 넣고, 소녀들은 화장실 등에 다녀온다. 사탕 등을 좋아하는 필로미나는 단 것을 사려고 한다. 그러다 잭슨이란 청소년을 만난다. 그가 필로미나에게 관삼을 두고 사탕 등을 사주려고 한다. 이때 사감이 나타나 이 행동을 방해한다. 이 짧은 만남이 잭슨과 필로미나를 연결시키고, 다음에 일어날 사건에 기폭제가 된다. 밸런타인이 반발하면서 생긴 작은 사건은 보통의 학교라면 가벼운 처벌로 끝나겠지만 이 학교에서는 충동억제제 처분을 받는 큰 일이다.


여자 기숙사의 풍경은 평범하다. 주유소에서 훔친 잡지를 보면서 야한 농담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잭슨이 학교에 몰래 숨어들어온다. 달리기를 하던 시드니가 보고 필로미나에게 알려준다. 잭슨과 필로미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잭슨의 전화번호를 받는다. 나중에 필로미나가 공중전화를 거니 없는 전화번호란 회신이 나온다. 이상하다.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목소리다. 이렇게 이야기는 조금씩 이 학교에 대한 의문의 탑을 하나씩 쌓아간다. 그 의문이 하나씩 깨어질 때 진실의 문이 조금씩 열린다. 그 과정은 몇 번의 반복과 생략으로 표현된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오픈하우스다. 이 날 부모님이나 투자자들이 학교에 온다. 오픈하우스 전에 레논로즈가 울었고, 당일 그녀가 사라진다. 학교에서는 부모가 데리고 갔다고 말한다. 사감과 분석가의 대답이 다르다. 필로미나는 레논로즈가 그립다. 그러다 그녀의 침대 밑에서 시집 한 권을 발견한다. <가장 날카로운 가시들>이란 시집이다. 충격적인 내용의 시가 실려 있다. 필로미나의 의식을 깨운다. 하지만 진짜는 오픈하우스 행사 때 일어난 일 때문에 생긴다. 변호사에게 휘둘리는 친구의 모습을 분석가 안톤에게 말했는데 아무 처벌도 없다. 그리고 그날 마신 술 때문에 매일 밤 먹던 비타민 등을 토한다. 이 일이 그녀로 하여금 전날의 기억을 갖게 한다. 시집과 약에 대한 사실을 공유한다. 이제 그들은 진실을 알기 위해 위험 속으로 자신들을 밀어넣는다.


소설 속 소녀들은 남성에 대한 복종과 순종을 강하게 주입받는다. 오픈하우스에서 일어난 몇 가지 상황은 이 소녀들이 사람보다 상품이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한 권의 시집과 약의 작용에 대한 의혹 등이 소녀들을 일깨운다. 그녀들이 받은 교육의 실체와 은근히 표현되는 성추행과 억압된 욕구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들이 당한 고통과 싸운다. 마지막에 헌사 같은 <면도날 심장을 가진 소녀들>이란 시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남자들에게 두려운 소녀가 되라고 말한다. 복종과 순종이란 단어보다 존중과 두려움이란 단어가 더 부각된다.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좋지만 부분적으로 취향을 타는 곳도 나온다, 과장된 표현이라고 누군가 말하겠지만 현실에서 이런 여성들을 강요하는 무리들은 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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