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숨결
박상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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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직 의사가 병원을 배경으로 쓴 미스터리 스릴러다. 의학 미스터리 장르는 이미 미국에서 로빈 쿡, 테스 게리첸 등이 잘 만들어놓았다. 일본으로 넘어가면 가이도 다케루 등이 있다. 한국도 병원을 배경으로 몇 권의 스릴러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나의 장르로 발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작가 자신도 이런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사실 자신이 일하는 곳을 배경으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쉬운 접근법 중 하나다. 물론 다른 분야로 들어가면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현직 의사란 타이틀은 이 작품의 의학적 세부 사항들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죽음의 가능성을 알려준다.


프롤로그가 나올 때만 해도 의사 강나리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각 장마다 들어가 있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 접점을 이룰지 궁금했다. 작가는 교묘하게 아이의 성별을 가려놓았고, 이 아이가 경험한 죽음을 병원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살며시 연결시켰다. 각 장마다 나오는 이야기는 이 아이가 큰 후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누군지 알게 되면 살인사건의 중요한 용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인이라고 확정시키지 않는 것은 이것을 반전 트릭으로 사용한 소설을 읽은 적 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의 교수는 아주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전문의가 되기 위해 이들의 인격 모독마저 참아야 한다. 권위와 권력은 결합해서 최소한 병원이란 공간 안에서 한정적인 사람들에 최고의 지위를 부여한다. 군대마저 변하는 세태 속에서 말이다. 레지 1년차 의사 현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바로 이런 부조리함을 잘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레지 2년차 선배가 보여주는 장면은 또 어떤가. 병원이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에 이런 강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다. 만약 생명을 더 위한다면 더 많은 의사를 고용해 그들의 피로 때문에 생기는 실수를 예방해야 한다. 병원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강나리를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만든 프롤로그의 사건은 이현우에게 넘어간다. 현우는 외과전문의가 되고 싶다. 김태주는 탁월한 수술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수술 참여 중 핸드폰 벨이 울리면서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다. 이현우 선생이라고 부르지만 말투에 담긴 멸시와 권위적인 어투는 불쾌하다. 그를 외과로 오게 만들려고 한 선배의 의도를 보여줄 때 그 야비함이란. 현우는 정의롭지도 자기주장이 강한 인물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처우에 결코 반발하지 않고 속으로 삼킨다. 이런 그에게 한 환자가 나타나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바로 한수아다.


한수아의 아버지는 이 병원에서 갑자기 죽었다. 수아는 엄마가 의사에게 무릎 굽혀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엄마를 의심한다. 엄마를 살인자 취급한다. 이 갈등이 1년 간 이어져오고 있다. 수아는 병원도 의사도 신뢰하지 않는다. 수아는 현우에게 그 날 밤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틀어진 모녀 사이를 바로 잡고 싶은 욕심과 수아에 대한 호감 때문에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까지 문제없었던 환자 두 명이 갑자기 응급상황이 생기고 사망한다. 현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조사한다. 이 조사 때문에 내과 레지던트 선배와 충돌이 생기고, 이 조사 건이 김태주에게 알려진다. 최악의 상황이다.


한 레지던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 과정은 대학병원의 시스템을 한 번 들여다보게 한다. 개인정보보호가 강화되어 내가 본 것이 기록되어지고, 각 전문의 사이의 갈등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능성 없는 환자를 다른 과로 보내 문제를 떠넘기는 일도 빈번하고,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는 공모도 자행된다. 이런 일들을 현우의 조사과정 속에 틈틈이 넣어 그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슬기란 어린 환자를 통해 안락사 문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고, 현우와 수아의 관계를 통해 의사와 환자의 윤리문제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고의 흐름은 빠른 전개 속에 이어지지만 너무 감상적인 주인공 덕분에 긴장감이 약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으로 넘어가면 ‘뭐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런 마무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마무리에 강한 영향을 편집자가 끼쳤는데 이 이야기를 보고 다시 한 번 편집자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혹자는 편집자를 작가만큼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몇 가지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가독성이 좋고 흔하지 않은 한국 의학스릴러란 부분에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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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여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3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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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에서 꾸준히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를 내놓고 있다. 이번에는 엄마와 아빠에 대한 책이다. 마스다 미리에 대한 좋은 평을 온라인에서 보고 무작정 몇 권 사놓았었는데 다른 장르 소설에 우선순위가 늘 밀렸다. 그러다 기회가 닿아 읽기 시작한 마스다 미리의 세계는 은근히 매력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일본에서 출간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책들도 있는데 이 부분이 나의 어린 시절 추억과 맞닿아 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엄마’라는 단어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잠깐잠깐 떠올렸다. 소소하지만 누군가의 추억과 조용히 연결되는 이야기다.


엄마란 호칭을 부를 때 우린 여자란 사실을 잊는다. 오래 전 엄마도 여자고,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글을 읽고 친구나 후배 아내를 부를 때 꼭 이름을 부른다. 누구 엄마란 호칭 대신에. 이 책에는 그런 이야기보다 홀로 도쿄에 떨어져 사는 작가가 오사카 집을 방문해서 경험한 작은 이야기들과 자신의 추억을 풀어내고 있다. 이 작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내 엄마의 기억과 내 아이의 기억을 동시 떠올린다. 추억과 현실의 문제다. 현실 속의 나는 아이를 작가의 엄마처럼 키우지 못한다. 나의 쓸데없이 완고한 성격이 한몫 차지한다. 아빠 편을 읽으면 나의 상황과 더 많은 비교가 되겠지만.


책의 형식은 이전 작품들과 똑같다. 이야기가 글로 먼저 나오고, 만화로도 나온다. 빠르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역시 만화 쪽이다. 나의 취향이 그렇다. 엄마와 함께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아줌마란 단어다. 취향, 행동, 이웃과의 관계 등을 보면 한국의 아줌마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때 울 엄마의 모습도 이것과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읽다 보면 이름만 다르지 내가 현재 잘 사용하는 몇 가지 도구들이 등장한다. 밀폐용기. 물티슈 청소밀대 등. 100엔 샵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나도 자주 다이소에서 간단한 용품들을 산다. 난 아저씨인데도 말이다. 광고지로 뭔가를 만든 이야기는 갑자기 오래 전 한국도 잠시 유행했던 것이 생각난다.


일상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추억이 그냥 떠오른다. 앨범 이야기에서 배경에 더 중점을 두면서 사람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 부분은 불과 십 수 년 전 나도 그랬다. 사람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답이 걸작이다. 옷을 보고 안다니 이것도 대단하다. 여열 부분도 고기를 구울 때면 이 남은 열이 괜히 아까워 뭔가를 올린 기억이 난다. 잡지에 나오는 인테리어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을 자주 경험하는데 이 감상이 재밌다. 감자에 잎이 나면 버려야 하는데 이것을 옮겨 심었다는 부분은 이 감자를 심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렇게 이미지와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아픈 할머니를 집에 모셔온다고 할 때 보여준 단호한 모습과 임종 후 모습은 감동적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고민되면 산다는 엄마 이야기는 그 연역을 따라가면 이해가 된다. 나의 경우라면 반대일 때가 많지만. 당첨 이야기에서 욕심을 버리라고 하지만 버린다고 당첨되지는 않는다. 운이 따라야 가능하다. 엄마 선물을 고민하는 딸을 보면서 현금을 좋아하는 울 엄마가 너무 편하고 고맙다. 엄마가 읽을 책을 고르는 것과 엄마와의 문자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는 왠지 울컥해진다. 노년에 힘들게 문자를 배워 보내는 울 엄마가 생각났다. 이런 추억과 기억과 이미지들이 이번에도 계속 다가온다. 아빠 편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된다. 엄마의 여운을 생각하면 좀 천천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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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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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기 오래 전 <조정래의 시선>이란 에세이를 먼저 읽었다. 이 에세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정글만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분량도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늘 그렇듯이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지난 번 <천년의 질문> 완독 후 올해는 꼭 읽어야지 생각했다. 그 결심이 이번에 이루어졌다. 오래 전 읽었던 <태백산맥>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다른 작품들처럼 여전히 가독성이 좋다. <천년의 질문>에서부터 왠지 눈에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데 이번에도 조금 나온다. 그것은 작가의 생각이 너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느낌으로 적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13년이다. 그 후 7년이 지났다. 소설 속 몇 가지 가정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G1 같은 이야기다. 중국의 무서운 성장에 대한 부분은 그의 글처럼 이루어졌고,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의 질서 문화도 상당히 좋아졌다. 내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때 비하면 최근 중국 상하이의 교통 상황은 아주 좋아졌다. 최소한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 풍경은 그렇다. 처음 갔을 때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중국에 100위안짜리 위조지폐가 많다는 점이다. 동네 식당에 놓은 위폐감별기를 현지인이 알려줘서 알았다. 위조지폐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도 나온다. 많다고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닌 모양이다.


위폐 이야기를 하게 되면 위쳇페이나 알리페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중국 현지인들은 거의 현찰을 사용하지 않고 위쳇페이 등으로 결제한다. 최소한 상거래에서 간편결제는 한국보다 더 발전했다. 예전에는 외국인도 위쳇페이를 자신의 신용카드로 쉽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불가능하다. 중국 계좌가 있어야 한다. 인터넷 경제 부분에서 중국의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다. 배송도 대단히 빠르다. 실제 현지인에게 부탁해 보니 다음날 바로 도착했다. 한국 이상으로 그들의 삶은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가끔 네이버에서 중국 소식을 열어보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2대 금기어가 있다. 하나는 천안문이고, 다른 하나는 파륜궁이다. 작가는 이것보다 모택동에 대한 비난을 더 무섭게 다룬다. 중국 공안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묘사한 부분은 완전히 공감하지 않지만 그들의 정보 통제가 얼마나 신속하고 무서운지는 잘 안다. 글 속에 대만에서 대만 독립 지지했다고 공안에 끌려간 이야기가 나오는데 결코 헛된 소리가 아닐 것이다. 한국 국뽕 이상으로 중국도 ‘하나의 중국’을 표어로 내세우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단서를 글 속에서 다룬다. 실제 한족의 영토가 3분의 1 정도란 부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란 거대한 대지를 다섯 나라의 비즈니스맨들 이야기로 풀어낸다. 한국,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 등이다.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한국의 상사맨 전대광이다. 그의 입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일반론을 풀어내고, 다른 한국인이나 외국인들을 통해 개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의문이 드는 것은 일본 상사맨들에 대한 설정이다. 그들이 중국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전에 읽었던 일본 상사맨들을 다룬 소설과 조금 다른 내용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입체적이지 못한 인물들을 꼽으라면 바로 일본인과 프랑스인이다. 일본 비즈니스맨들의 모습은 거만하고 불만만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데 시대가 지나면서 일본 종합상사의 전설은 사라진 것일까? 나중에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프랑스인 자크 카방은 럭셔리브랜드 중국 이사다. 그는 자발적으로 시장을 읽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중국 사장 리완싱에 끌려다닌다. 실제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리완싱이 보여준 영업 전략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리완싱을 통해 박리다매가 얼마나 효율적인 판매 전략인지 알려준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인구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중국의 13~5억 인구는 엄청난 시장 규모이자 국내경제만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작가가 G1을 말한 것도 이런 인구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 인구의 1%만 생각해도 13백만 명 이상이다. 상위 0.1% 부자를 생각해보라. 이들이 럭셔리 매장 등을 휩쓸고 다닌다면 또 어떤 모습이 연출될 것인가.


사회인들만 보여줄 수 없기에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과 그의 연인인 리옌링을 등장시켰다. 이들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는 달콤하지만 작가는 달콤함보다 이들을 통해 역사를 더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 대표적인 부분이 난징대학살이다. 일본 우파가 그렇게나 부인하고 있는 그 학살 말이다. 그리고 외국 언론과의 대담 등을 통해 현재 중국 대학생들이 가지는 지적재산권이나 문화 등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이 소설이 나올 당시에는 짝퉁이 자랑스럽게 팔렸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이성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만 모든 산업화 단계를 거친 국가들이 지나온 길임을 감안하면 그 당당함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꽌시와 중국 여성들의 성 개방 등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꽌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지만 성 개방 정도는 자기 회사 사장은 손님으로 만났던 것을 말할 정도로 대담하다. 이런 이야기보다 나의 시선을 끈 내용은 왜 소련은 무너졌는데 중국은 왜 무너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단순히 사회주의 제도를 넘어 그 시대의 상황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당시 중국의 인민은 그렇게 굶주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중국 정부 등의 엄청난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체제를 유지하고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그 한계점을 지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7년이 지났지만 이 소설 속 몇 가지 사실들은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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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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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아직 앞의 두 권을 읽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작품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가독성이 대단히 좋아 작가의 다른 작품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사 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을 발굴해 읽고 싶다. 재밌게 읽었지만 서평을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책이다. 그것은 작가가 섬세하게 엮어 놓은 서술 트릭 때문이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 장인데 반전의 연속이다. 그리고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아동납치 전문수사관 밀라가 주인공인 속삭이는 자 시리즈 중 한 권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등굣길에 납치된 뒤 15년 만에 돌아온 사만타가 프로파일러 그린 박사와 대화를 나누고, 그 속에서 자신이 경험한 일을 풀어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립탐정 브루노가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한 평범한 소년이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와 그 괴물이 또 어떻게 한 사람을 최악의 상황으로 밀어넣는가 이다. 괴물이 되는 과정을 좇는 것이 브루노가 하는 일이라면 사만타의 기억 속에서 마주하는 것은 최악의 사육이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브루노는 사실 좋은 사립탐정이 아니다. 15년 전 사만타의 부모들이 의뢰한 것도 돈만 꿀꺽했다. 자신이 죽을 날을 받아놓은 상태고, 사만타가 15년 만에 살아 돌아오면서 이 사건 조사에 열을 올린다. 오랜 사립탐정 활동으로 쌓인 경험은 사만타가 발견될 당시 비밀 정보를 얻게 한다. 그녀에 대한 제보 전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브루노는 이 전화 내용을 직접 듣고 누가 이 제보 전화를 했을지 찾아낸다. 그리고 사만타가 사라질 때 마주한 토끼 가면을 다시 만난다. 제보자는 그 토끼 가면을 보고 두려워 떠났고, 전화만 남겼다. 이 단서를 가지고 브루노는 일명 버니라고 불리는 범인을 찾아간다.


납치된 후 미로 속에서만 산 사만타는 기억의 미로 속에 갇혀 엇갈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린 박사는 그녀가 기억해야만 범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미로 속 이야기는 잔혹하고 가슴 아프고 외롭고 무섭다. 강한 의지가 없다면, 작은 희망이라도 없다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 무서운 것은 버니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신세계를 파괴하고 고문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 한 여성이 마주한 현실은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만약 공감한다면 공감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지 모른다. 상상의 문을 살짝 열다가 닫을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한다. 악은 우리 주변의 평범함 속에 있다고. 보통 사람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괴물로 움직이는 사람은 쉽게 눈에 띄지만 보통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찾기 쉽지 않다. 평범함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그 괴물이 다가와도 인지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의 가면을 벗고 괴물이 될 때는 이미 늦다. 솔직히 말해 이런 생각을 읽으면서 하지 못한다. 문장 속에 이런 글이 나와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앞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최근에 읽은 작품들이 심리 묘사에 치중하는 스릴러였는데 이번 작품은 심리 스릴러와 탐정물을 같이 엮었다. 당연히 반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왜 이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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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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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양이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는데 말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집에서 고양이를 키웠던 것은 아주 어릴 때가 유일하다. 역자 후기처럼 제대로 돌본 것이 아니라 남는 밥으로 키웠다.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고양이는 쥐약을 먹고 죽었다. 죽은 고양이 몸 위를 기어다니던 구더기가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물론 이것은 다른 기억과 이미지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는 자주 봤다. 어릴 때 깊은 밤에 마주한 고양이의 눈은 아주 무서웠다. 귀엽다는 생각을 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고양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고양이의 습성을 조금씩 이해했다. 현재 나와 고양이의 거리는 딱 거기까지다.


일본의 고양이 이야기를 많이 읽다 보니 고양이 집사란 단어에 더 익숙하다. 언제부터인가 집사란 단어와 고양이가 결합했다. 이런 감성으로 이 책을 펼치면 놀라운 사실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고양이는 분명 도시의 그것과 다르다. 환경이 다르니 위험의 대상도 달라진다. 독수리가 고양이를 낚아챌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너무 많이 나은 새끼들을 처리하기 위해 학살 같은 행위를 해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섬뜩하다. 중성화 수술이 없던 시대라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개체수가 늘어나는 고양이 새끼는 필요 이상의 숫자는 없애야만 한다. 즉 죽인다는 말이다. 이 처리는 엄마가 한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저자는 계속해서 고양이를 키운다. 아주 예쁜 혼혈 샴고양이 암컷을 키우는데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 고양이가 자기 새끼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억지로 새끼들에게 끌고와야 했다. 두 번의 임신 이후 중성화 수술을 받게 하는데 이 수술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외모의 변화가 심하게 생긴다. 새끼들의 개월수가 어느 정도 되면 분양을 한다. 물론 가끔 그냥 집에서 키우는 경우도 있다.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가 언제나 두 마리 이상을 돌보는 것을 본다. 병 든 고양이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가 보여주는 정성과 노력은 애완동물을 쉽게 버리는 사람들이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레싱이 1967년, 1989년, 2000년에 발표한 글을 한 권으로 엮은 산문집이다. 대부분의 분량은 1967년도 발표에 나오고, 뒤로 가면서 분량이 준다. 노년으로 가면서 이해의 폭은 넓어지고 애정은 더 깊어진다. 일본 에세이처럼 가볍게 읽기에는 문장과 상황에 대한 글들이 너무 건조하다. 화려하고 따뜻한 문장으로 고양이의 삶을 그려내기보다 건조하지만 그 아래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고양이의 삶을 보여준다. 서로 저자의 애정을 더 차지하려고 싸우고, 자신의 고집을 세우고, 어떤 고양이는 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차분한 관찰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해석이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일본 작가들의 고양이 글을 읽다가 이 책을 읽으면 너무 다른 분위기에 놀란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서로 비교할 수 없지만 최소한 고양이를 관찰하고 그 삶을 그려내는 문장과 표현들은 차이가 크다. 감정을 억지로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고 고양이에 초점을 더 맞춘다. 자신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자신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죽인 후 그들의 감정을 간단하게 표현했는데 이것이 더 인상적이다. 또 고양이가 다른 새끼들을 숨긴 채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다. 이렇게 이 글 속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레싱은 자신만의 문체로 이런 고양이의 삶과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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