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 김강 소설집
김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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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주저하다가 선택한 책이다. 낯선 작가의 단편집이란 것과 잘 알지 못하는 문학상 수상자란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근 미래와 우주라는 단어가 나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이전에 낯선 작가의 작품을 아주 재밌게 읽은 경험도 한몫했다. 책을 펴고 읽기 전 인터넷서점 리뷰 몇 개를 간단히 훑었는데 엄청난 극찬이 나온다. 사실 이런 극찬을 의심없이 보기는 쉽지 않다. 물론 취향 차이도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더디게 읽혔다. 더디게 읽혔다는 말의 의미는 문장이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재미난 이야기를 만났다.


모두 아홉 편이 실려 있다. 각 이야기의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분량 이상인 경우가 많다. 가까운 미래를 다루다 보니 낯익은 이름도 나오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기발함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어리둥절하게 만든 작품도 있다. 어떤 작품의 경우 마지막 장면을 읽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목차에서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는데 <그대, 잘 가라>에 나오는 문장을 변용해 가져왔다고 한다.


가족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세 편 있다. <병호가 오는 날>, <호모XY>, <우리 아빠> 등이다. <호모XY>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들을 편지로 불러 모은다. 그 이유가 드러났을 때 혈육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본다. 혈육에 집착했지만 가정을 꾸리지 못한 인물의 과거와 그 욕심을 잘 보여준다. <병호가 오는 날>은 처음에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가족 형태의 탄생을 만나게 된다. 피가 아닌 서로의 필요와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가족 말이다. 이 작품은 심훈문학상 수상작 <우리 아빠>의 세계관과 연결시키면 미래의 우리 삶을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출산율 저하와 정자 제공자, 우리 아들과 우리 아빠란 명칭의 의미 등. 인간의 혈육에 대한 애착은 <호모XY>와도 이어진다.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둘 있다. 하나는 책 제목과 관계있는 <그대, 잘 가라>이고, 다른 하나는 <아라히임>이다. <그대, 잘 가라>는 화성 개척단에 참여하게 된 남자 이야기다. 7년 뒤 선발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영어권으로 여행만 다닌 그가 결국 개척단의 일 중에 선택한 것은 청소부다. SF영화나 소설에서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는 직업이다.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떠나려는 그를 둘러싼 아내와 친구들이다. 가면 살아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다. 떠나는 자가 내는 욕심을 날려 버리는 노래 제목이 ‘그대, 잘 가라’이다. <아라히임>은 한국 대통령이 외계인에게 보내고 받은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가 외계인에게 인류의 역사 한 부분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외계종족이 자신들의 문화 등을 설명한다. 성취와 자격 문제를 다룬 부분은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A리그>는 세 남자의 불행했던 과거를 홈런 한 방과 그 공으로 멋지게 엮었다. 추억과 야구판의 한계와 사회 권력 등이 재밌게 풀려나온다. 노년 세대를 위한 프로 야구리그란 황당한 설정이 주는 재미는 덤이다. <밴타블랙 99.695%>는 K의 묵비권과 종편의 방송이 좋은 대비를 이룬다. 정치테러를 한 것 같은데 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은 약간 허탈하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가 흘린 범행의 증거들도 마찬가지다. <잘 자, 병철>은 노숙자 병철의 시선을 통해 우리 주변의 삶을 보여준다. 그가 관찰한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과 반격은 약자의 작은 몸부림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쾌하게 읽은 작품이 <알로하의 밤>이다. 알로하는 사람 이름이다. 알씨 성에 로하란 이름이다. 소설 속 숫자는 그들이 태어난 연도다. 화자가 경험한 일들을 들으면서 나 자신도 하나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이름을 외쳐도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인인데도 여권이나 외국인거주증을 말하는 경찰이 모습은 바로 우리들이다. 이름이 아니라 외모 등으로 확장하면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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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사라진 밤
루이즈 젠슨 지음, 정영은 옮김 / 마카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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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테일러는 평범한 토요일 밤 데이트앱으로 이완이라는 남자를 만나기로 하고 나간다. 현재 그녀는 남편 매트와 별거중이다. 이 밤에 나가게 된 데는 친구들의 성화가 큰 역할을 했다. 다음날 아침 엘리슨은 멍과 핏자국이 있고, 머리가 아프고 구토를 한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을 본다. 지난 밤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한 남자가 문을 두드린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목소리를 듣고 동생 벤임을 알게 된다. 지난 밤 무언가 나쁜 일을 당한 것은 분명하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만 경찰에 대한 나쁜 기억이 신고를 막는다. 병원에 입원하고, 여러 차례 검사를 한 후 안면인식장애와 단기기억상실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처음 소개글을 읽었을 때 흔한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사건으로 생각했다. 데이트 강간 약물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러 곳에서 봤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넘어졌다고 속인다. 어젯밤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잘못 말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경찰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말한다. 그리고 이 경험이 그녀와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중에 보여준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하나의 의문을 던져 놓고 나중에 그 의문을 풀어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읽는 내내 경찰에 신고하면 될 텐데를 생각하면서 그녀가 깔아놓은 설정에 화가 났다. 이 때문에 사건은 더욱 꼬인다. 상황이 꼬이고,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상태에서 낯선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토요일 밤과 관련된 누군가가 그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공포심을 심어준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이 심리 묘사에 있다.

 

처음에는 동생 이외의 누구에게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외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차에 난 상처 때문이다. 혹시 자신이 취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차로 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이 두려움은 과거 열두 살 생일날에 일어난 사건에서 비롯했다. 실직을 한 아버지는 강도짓을 하고 이 과정에서 다른 동료가 쏜 총에 한 여성이 죽는다. 평범한 주부가 죽은 사건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총을 쏘지 않았지만 배심원들에게 높은 형량을 선고 받는다. 동시에 남은 가족들은 지역 주민들과 학교 친구들에게 온갖 나쁜 소리와 물리적 협박을 듣는다. 연좌제가 사라진 세상에서 현실은 아직도 이런 식의 연좌제가 존재한다.

 

작가는 앨리슨이 현실에서 느끼는 공포 속에 주변 사람들의 불분명한 태도를 미묘하게 표현한다. 함께 사는 크리시는 그날 밤 이후 나타나지 않고, 페이스북 친구도 끊어진 상태다. 줄리아는 그녀의 이혼 원인을 앨리슨의 솔직한 말 때문이란 비난을 한다. 나중에 그날 밤 간 클럽의 CCTV 영상을 함께 보고 뭔가를 숨기는 태도를 보인다. 그녀도 뭔가를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 누군가가 놓아둔 협박 편지 등 때문에 공포에 짓눌린다. 안면인식장애 때문에 범인이 옆에 있어도 모른다. 이런 상황들 사이에 작가는 범인의 심리를 넣어 그녀의 과거 속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을만한 일은 아빠의 강도 사건 밖에 없다.

 

읽으면서 절대 범인이 되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역시 되지 않았다. 누구냐고? 읽으시면 알게 된다. 그가 만약 범인이면 이 이야기 설정이 다른 장르로 빠지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범인이 압박하고, 과거를 되돌아볼 때 반전의 요소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과 반전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앨리슨이 친구들을 알아보는 방식은 목소리와 옷이나 익숙한 행동들이다. 유일하게 변함없이 인식하는 인물을 엄마다. 엄마의 사진을 집 곳곳에 둔 것도 자신의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다. 살짝 더 들어가면 다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탁월한 심리 묘사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설명은 뛰어나지만 성격과 취향 등으로 공감할 수 없는 몇 가지 설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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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도시 Part 1 : 일광욕의 날
김동식 외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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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설정을 가진 소설집이다. 보통의 앤솔러지들이 하나의 키워드를 던져주고, 그 키워드에 맞춰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만드는데 이 단편집은 다르다.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에 독립적이지만 하나의 세계로 이어진다. 키워드는 월면도시와 일광욕의 날이 되겠지만 이 여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세계관을 공유하고, 그 세계관을 성장시켜나간다. 이 책의 추천에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성장형 세계관과 일광욕의 날이 지닌 비밀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이 앤솔러지의 단편 순서가 이야기의 창작 순서인지 하는 것이다.

 

여섯 편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은 <하드보일드와 블루베리타르트>와 <가마솥>이다. 이 두 작품은 수인과 문차일드를 가장 먼저 드러낸 작품들이다. 홍지운의 <하드보일드와 블루베리타르트>는 적응 초기에 디즈니영화 <주토피아>가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보통 사람들보다 수인들이 더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이 때문에 몇 번이나 본 <주토피아> 이미지를 떠올려주었다. 뱀 탐정과 건물주 토끼 노인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반전은 모두 읽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었다. 동물의 특성을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에 녹여낸 부분도 이야기에 쉽게 적응하게 만든다.

 

강창규의 <가마솥>은 에필로그 너울과 이어진다. 가마솥은 범죄자들을 가두는 감옥이다. 교진은 먀약상으로 이 감옥에 갇히는데 탈출 계획을 세운다. 그가 혹시 어떤 누명을 쓴 후 탈옥해 복수하는 내용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진 않는다. 그리고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과 문차일드라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를 등장시켜 수인과는 다른 존재들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 속 문차일드들은 <엑스맨>의 돌연변이와 닮았다. 이야기 후반으로 넘어가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고, 이것이 다시 너울과 이어지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한다.

 

김동식의 <재현>은 피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시체가 계속해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읽자마자 딱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맞다. 그 인물과 관련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 존재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로 이어진다. 역시 이번에도 문장이 거친데 이 작가의 작품만 별도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정명섭의 <진시황의 바다>는 잘 읽힌다. 매끄러운 문장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마무리가 아쉽다. 인간이 달에 살기 위해서는 산소와 식량이 필요하다. 진시황의 바다라고 부르는 곳에서 발견된 거인의 신상과 선주민 이야기가 진시황의 불로초와 이어진 부분은 재밌다.

 

김선민의 <제13호>는 가장 먼저 아폴로 13호가 떠올랐다. 그 13호가 아니다. 월면도시와 거인 전설과 일광욕의 날에 대한 작은 단서가 드러난다. 중반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 편의 공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고, 그 마지막은 그 공식을 따른다. 마지막 작품인 최지혜의 <예약 손님>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름 대신 첫째, 둘째, 셋째라고 부르는 삼남매가 어떤 집 안에 들어오고 나서 생긴 이야기를 다룬다. 이 집에 거주하는 두 인물도 상당히 의심스럽다. 셋째는 문차일드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 능력 때문이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판타지 세계와 이어지고, 마지막 문장 하나는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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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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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니시무라 교타로의 소설을 읽었다. 몇 년 전에 읽은 <종착역 살인사건>이 마지막이지만 그 이전에 헌책방에 산 책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아마 이 작가를 트래블 미스터리의 대가로 기억하게 된 데는 이 작품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본격 추리 소설이 나왔다. 소설의 도입부에 작가는 쌍둥이 트릭을 사용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명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정면 도전장을 낸다. 실제 소설 속 설정이나 내용 속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자주 다루어진다.

 

도입부에 쌍둥이 형제가 나온다. 둘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한 장의 무료 숙박 초대장이 사람들에게 배달된다. 사건은 한 인물이 얼굴도 가리지 않고 강도짓을 하는 것이고, 초대장은 한 쌍의 연인에게 스키장이 있는 호텔 관설장의 무료 숙박권이다. 이 초대장은 이들에게만 온 것이 아니다. 이들이 관설장에서 만난 인물들은 모두 여섯 명이다. 관설장의 주인은 왜 이들이 선택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연쇄살인사건의 가장 중요한 동기다. 이 여섯 명의 남녀들은 한 명씩 죽음을 맞는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볼링 핀이 한 명씩 죽을 때마다 사라진다.

 

얼굴을 드러낸 강도는 반복되면서 몽타주가 작성되고, 피해자 중 한 명이 운전하다 용의자를 잡는다. 그런데 또 다른 상점에서 강도가 나타난다. 피해자들이 와서 용의자를 확인하니 그가 맞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강도가 쌍둥이란 점이다. 범죄현장에 지문을 남겼다면 누군지 알 수 있겠지만 얼굴만 보여줬을 뿐이다. 두 사람 모두 범인으로 잡아넣기는 무리다. 경찰들이 쌍둥이 범죄자에게 농락당한다. 그렇다고 경찰들이 포기할 리가 없다. 그들은 이 쌍둥이 형제를 미행하고, 잠복한다. 미행하다 들키지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설은 이 쌍둥이 강도를 잡으려는 형사와 관설장의 상황을 교차하면서 풀어간다. 다른 시간대라면 쉽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겠지만 같은 시간대로 두 사건이 진행된다. 쌍둥이 트릭과 관설장의 연쇄살인사건은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관설장의 연쇄살인은 실제로 큰 공포나 긴장감을 불어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아쉬운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립된 산 속 호텔에서 한 명씩 죽어나가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심리 묘사에서 강한 공포나 불안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히스테리가 그 상황을 집어삼켜도 할 말이 없는데 말이다. 미스터리 트릭을 풀기 위한 설정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쌍둥이 형제에게 끌려다니던 경찰에게 돌파구가 열리는 것은 한 통의 편지다. 그들이 어떤 트릭을 사용했는지 알게 되고, 이런 트릭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알려주는 편지다. 그리고 다음에 어떤 범죄가 일어날지 알려준다. 동시에 관설장의 끊어진 전화선이 이어지면서 연쇄살인 정보가 경찰에 알려진다. 하지만 바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루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이면 남은 사람들을 죽이기 충분하다. 실제 경찰과 피해자 가족들이 관설장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마무리된 다음이다. 경찰에는 편집된 정보만 넘어간다. 이 사건도 한 장의 편지가 관설장에 오면서 발부된 초대장에서 비롯했다.

 

트래블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이 소설의 트릭 중 하나는 지하철이다. 발로 뛰는 형사가 이것을 발견한다. 쌍둥이 트릭도 이미 알려줬다. 하지만 이런 설명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정된 생각에 빠져 다른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볼링 핀의 개수가 의미하는 바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중간 중간 작가가 깔아놓은 트릭 몇 가지와 범인은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트릭은 놓쳤다. 심리 묘사와 연쇄살인의 동기가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트릭만 놓고 보면 아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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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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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상 최우수신인상 수상작이다. 미국 작가인데 영국을 배경으로 썼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일주일 정도 배경이 될 곳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소설의 장소가 실제 하는 곳이 아니라 작가가 창조한 장소란 점이다. 영국에 간 이유도 구글의 스트리트뷰를 보는 것만으로 부족해서였다고 한다. 이 방문을 통해 중요한 장소 중 한 곳이 만들어졌다. 두 나라의 언어 차이는 번역된 소설이란 부분에서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페미니즘 스릴러라고 하는데 이번에 처음 들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문장이나 분위기를 끌고 가는 힘이 상당히 좋다. 개인적 취향의 차이일지 모르겠지만 흡입력은 조금 떨어진다.

 

언니 레이첼을 죽인 살인자를 동생 노라가 직접 찾는다는 설정이다. 역에 마중 나오지 않는 언니를 생각하면 집에 갔다가 애완견 페노가 죽은 채 매달려 있는 것을 본다. 집 안에서 언니가 피로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울부짖으면서 언니에게 다가간다. 응급조치를 하다 중단한다. 이 행동이 언니에게 더 해로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언니는 죽었다. 신고했던 구조요원이 이 사실을 확인해주고 경찰에도 신고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추억과 나쁜 기억이 현재 사건과 이어진다. 그 나쁜 기억 중 최악은 열일곱 살에 당한 폭행이다.

 

노라가 생각하는 언니는 쉽게 당할 여자가 아니다. 어릴 때 있었던 폭행 사건에서도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공포에 짓눌려 집에 숨기보다 범인을 찾아나서는 성격이다. 이 범인 찾기는 결코 멈춘 적이 없다. 가능성 있는 범죄 사건이 있으면 법정을 찾아간다. 노라가 생각하는 가설 중 하나는 이 범인이 언니를 찾아와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레이첼 주변 사람들을 의심한다. 그러다 한 인물이 의심스럽다. 바로 배관공인 키스다. 노라는 계속해서 그의 주변을 맴돈다. 언니의 이전 연인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그녀는 스스로 정한 용의자 주변을 맴돈다.

 

언니가 당한 폭행의 영향인지, 아니면 사회의 한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노라가 낯선 남자를 만나는 순간 느끼는 불안감을 잘 표현한다. 경찰이라고 해도 아닐 가능성을 생각하고, 이웃도 마찬가지다. 언니처럼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어지고, 작은 호신무기를 손에 꽉 쥔다. 어둡고 낯선 곳에서 스쳐지나가는 남자도 불안하다. 남성의 폭력 앞에 무력하게 노출된 여성들의 사건도 몇 번이나 다룬다. 피해 여성들이 누구나 레이첼처럼 강인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레이첼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애완견 페노가 저먼셰퍼드를 경비견으로 데리고 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녀가 가진 단서는 과거의 사건과 만나기로 했다는 ‘마틴’이란 남자 이름뿐이다. 그런데 주변 사람 누구도 마틴을 모른다. 경찰의 과학 수사는 그 어떤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 잘못하면 미궁 속으로 빠질 수 있다. 그녀가 찾아낸 용의자들은 쉽게 그 혐의를 벗는다. 그리고 남성 폭력에 노출되었던 한 여성을 등장시킨다. 루이스 형사와 많이 헷갈렸던 루이즈다. 남친의 폭력 아래 놓여 있었는데 그 남친이 사고로 죽었다. 이 사실을 알려준 인물은 바로 언니다. 소설 후반부까지 자신이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을 루이즈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니를 죽인 사람을 찾는 과정은 과거와의 만남이다. 이 만남 속에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언니의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발견한다. 그녀와 언니와의 충돌도 드러난다. 이런 사실들이 나중에는 그녀를 용의자로 만들기도 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살인의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언니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일상은 쉽게 무너진다. 그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초조함과 그리움과 슬픔 등은 작가의 정제된 문장 속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상황을 나 자신이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내가 남성으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여자들의 택시 납치 사건이 얼마나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택시 승차 공포를 느끼게 했던가.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여성들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힘과 결과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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