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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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공모전이 카카오페이지의 추미스 공모전이다. 현재까지 내가 읽은 작품들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었고, 재미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몇 작품이 있는데 시간 나면 천천히 읽을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일가족 동반 자살이란 언론사의 표현에 정면으로 반발한다. 과연 이 자살이 가족 구성원 모두의 동의를 얻었는지 묻는다.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란 표현이 좀 더 정확하다.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가 아내를 죽이고, 두 아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작가는 이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세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이야기의 문을 여는 것은 작은아들 진웅이다. 10년 전 아버지의 가족 살해 사건 당시 형이 칼을 막고 도망가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침대 밑에서 엄마가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을 봤다. 자살에 실패한 아버지는 감옥에 가고, 두 형제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형은 고등학교 마친 후 가출을 했다. 아버지가 출옥해서 돌아온다는 소식과 할머니의 간청에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형과 아버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역할을 맡는다. 칼을 두려워하는 형과 그 형이 보여준 의심스러운 행동, 그리고 자신의 알 수 없는 흔적들을 깔아놓고 누가 진범일까 추리하게 만든다.

 

형은 모델로 일하고 온몸에 그날 있었던 날짜를 문신했다. 반 여학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살인자의 자식이란 사실은 이미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 그를 둘러싼 세 명, 두 친구와 한 여친의 행동은 그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은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가족 관계는 삐걱거린다. 아버지 옛 친구들의 반응은 단순한 호기심과 악의로 가득하다. 불편한 충돌은 당연하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진웅의 반장 시체는 10년 만에 돌아온 살인자와 함께 온갖 소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되살려낸다. 누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형이 아닌 아버지의 시선이 그 다음이다. 사채를 쓰고, 삶이 힘들어 자살을 결심했다. 자신만 죽으면 되는데 아내와 아들까지 죽이려고 했다. 다른 가족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면서 생긴 문제다. 물론 그의 사채가 그의 죽음 이후 가족의 큰 어둠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목숨까지 빼앗을 권리는 없다. 출소 후 그를 찾아온 사채업자에게 당하는 그의 모습은 10년 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공권력에 호소하고, 자신의 어머니처럼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가 마주한 과거와 현재의 두 사건은 그를 다시 뒤흔든다. 현재 살인자가 누군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예상은 가능하지만.

 

큰아들 진혁의 시선은 이전의 두 사람이 보지 못한 사건의 다른 면을 보게 한다. 그는 세 번의 살인 사건 목격자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일가족 살해 시도와 그가 마을을 떠나게 만든 사건과 진웅의 반장 살인 사건 모두. 우연히 모델이 되었지만 더 높은 비상을 할 기회를 그는 놓친다. 아니 과거가 두려워 비상을 포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돌아온 옛집은 아직 불안감이 그대로다. 아버지가 언제 자신들을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문을 잠근다. 살인자의 아들이란 이유로 의심을 사고, 또 다른 진실과 악의로 증거를 조작한다. 허술한 조작은 전문가들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다.

 

단 5일 동안 세 명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같은 지역과 1인칭 시점의 사용은 사실을 한정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화자를 등장시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입체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고, 불편한 사실들이 밝혀진다.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은 진웅의 친구 민기의 존재다. 과연 이렇게까지 민기를 활용해야 했을까? 살인자와 살인자의 가족과 그 피해자를 같이 묶어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잘 보여준다. 한 가족의 처참한 비극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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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의 애프터 파이브 - 막차의 신, 두 번째 이야기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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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의 신>을 읽고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왔다. 이번에는 막차가 아니라 첫차다. 한때 막차를 타고 졸다 종점까지 갔던 기억을 풀어내기도 했지만 늦게까지 놀다가 택시비가 없어 첫차를 기다린 적도 있다. 이런 기억들을 더듬다보면 과거가 잠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가끔 빠른 비행기를 타기 위해 움직이다 보면 놀랍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삶의 역동성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번 이야기는 일본 유명 번화가 신주쿠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예전에 도쿄 여행 갔을 때 본 이미지와는 다르다. 시간이 다르니 보이는 사람들도, 풍경도, 장소도 다른 모양이다.

 

다섯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표제작 <첫차의 애프터 파이브>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선입견이 먼저 움직였다. 주인공을 20대로 추정한 것이다. 러브호텔 청소 일을 한다는 사실과 몇 가지 설명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50대 중년임을 알게 된다. 중견 종합상사맨이었던 그가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들려주고, 직장에서 나온 후 첫차를 기다리며 머문 곳에서 본 풍경과 과거가 엮여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삶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출근과 퇴근이 교차하는 장면은 피곤과 활기도 대비된다. 작은 인연의 시작도 같이.

 

<스탠 바이 미>는 같은 이름의 음악이 이야기 속에 연주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노래를 하기 위해 상경한 가수다. 자신이 살던 곳과 달리 큰 공간에 압도되어 버스킹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고등학생들이 노숙자 와타나베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고 말린다. 그는 더러워 목욕탕에 가지도 못하고, 목욕탕에 갈 때 입는 옷은 도둑맞았다. 그는 그녀의 기타를 보고 잠시 연주한다. 실력이 좋다. 둘은 함께 버스킹을 하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와타나베가 목욕하고 새옷을 입어야 한다. 옷을 사고, 목욕탕에서 때를 민 후 그들은 성공적인 버스킹을 한다. 자신감을 얻는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길을 간다. 이 하룻밤의 인연이 긴 여운을 남긴다.

 

<초보자 환영, 경력 불문>은 동일본대지진과 관계있다. 지진 재해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이야기다. 세무사사무소가 폐업해 바텐더가 된 사람도,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후 도쿄로 온 사람도 있다. 오카마 공연장에서는 동일본대지진 피해자들을 적극 환영한다. 제목이 모집 광고에 있는 문구다. 왠지 모르게 이번 단편은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그들의 삶과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지진 피해와 그 여파 등을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않은 문제점은 아쉽다.

 

<막차의 여왕>은 술 먹고 막차를 자주 타면서 붙은 별명이다. 늦은 밤 헤어진 연인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한다. 막차를 탄 후 잠들어 내릴 곳을 지나갔다. 낯선 역에서 옛 연인에게 전화를 하는데 갑자기 끊긴다. 연락 두절이다. 잠시 갈등하다 그녀를 데리러 가기로 한다. 이 사이 사이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던 역에 도착한다.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한다. 막차와 첫차의 운행 간격, 그녀의 체력 등을 떠올리며 가능성을 추리한다. 이 추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성향이나 체력 등을 잘 알아야 한다. 빗속을 달리는 그녀를 만난 후의 장면은 훈훈하고 작은 여운과 기대를 남긴다.

 

<밤의 가족>은 출장 성매매 여성과 그녀들을 태우고 다니는 운전기사 이야기다. 운전기사는 엄마가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 미안해한다. 이것을 견딜 수 없어 고등학교 졸업 후 집을 나왔다. 성매매 여성 중 한 명은 아버지가 사업이 망한 후 가족을 버리고 잠적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댄다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한 일이다.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큰 호사임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최악의 막장 상황을 마주한다. 작가는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보여줄 뿐이다. 각자의 삶이자 현실이다. 마지막엔 첫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작은 여운도 당연히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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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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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이전에 제목만 보고 추리소설이 아닐 것이란 섣부른 추측을 했다. 내가 책을 선택할 때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장르를 쉽게 예단하는 나쁜 습관에서 비롯했다. 책소개를 보면 이 소설이 복수에 대한 소설임을 알려준다. 살인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세 남매가 별똥별 아래에서 복수를 맹세하는데 제목에 유성이 들어간 이유다. 늘 그렇듯이 작가 특유의 간결한 구성과 빠른 전개와 반전은 단숨에 끝까지 달려가게 한다. 중간에 너무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설정이 들어가 있어 약간 힘이 빠지는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고이치, 다이스케, 시즈나. 이 세 남매는 늦은 밤 유성군을 보기 위해 몰래 집밖으로 나간다. 유성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모님의 시체다. 고이치가 먼저 발견했고, 다이스케는 누군가가 뒷문으로 나가는 것을 봤다. 부모님은 양식당 <아리아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식당은 하이라이스가 싸고 맛있고 양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도 가끔 와서 먹었다. 갑자기 고아가 된 세 남매는 경찰들의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경찰도 노력하지만 범인을 잡는데는 실패한다. 세 남매는 아동보호시설에 들어간 후에도 유성을 보러간다. 여기서 그들은 복수를 다짐한다.

 

14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미제사건이 되었고, 소멸시효도 다가온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세 남매는 험난한 세상에 시달리다 살아남기 위해 사기꾼으로 바뀐다. 작전과 가짜 서류는 고이치가, 실제 남자를 홀려 돈을 받아내는 역할은 여동생 시즈나가, 이 상황을 돕기 위한 역할은 다이스케가 한다. 이들이 이런 사기꾼이 된 데는 자신들이 겪었던 사기가 큰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하고 이 사기 일을 그만 두려고 한다. 마지막 대상은 양식당 체인 <도가미 정> 사장의 아들이 도가미 유키나리다. 그가 나오는 모임에 나가 시즈나가 그를 유혹해 청혼하게 만들고, 가짜 보석을 사게 만드는 작전이다. 이 작전은 예상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변수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첫 번째 변수는 시즈나가 유키나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가미 정>의 사장 마사유키가 14년 전 다이스케가 본 용의자와 꼭 닮았다는 것이다. 시즈나는 유키나리의 요청으로 <도가미 정>의 오리지널 하이라이스를 맛보는데 이 맛이 <아리아케>의 맛과 똑같다. 마사유키가 레시피를 훔치기 위해 부모님을 살해했다는 추측에 이른다. 이 사실을 이전에 수사했던 형사들에게 말할 수도 있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자료와 정보가 필요하다. 이것을 조사하는 일은 고이치가 한다. <도가미 정>이 언제부터 승승장구했는지 듣고, 범인에 대한 확신은 더 강해진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들은 증거를 만들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사기에 농락당했던 그들이 사기꾼이 되고, 우연히 14년 전 용의자를 만나게 되는 과정은 빠르게 진행된다. 시즈나와 유키나리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원수의 아들을 사랑했다는 낭만적인 설정 속에서 증거물품 조작은 이어진다. 이런 증거물품이 나오면 이전 형사들은 잠시 활기를 띈다. 논리적인 모순이 있지만 목적한 곳으로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범인이란 확신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세 남매, 똑같은 맛의 하이라이스, 갑작스러운 성공, 이전 맛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 등이 시선을 한 곳으로 계속 유도한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이 반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모든 진행은 군더더기가 없다. 일본 드라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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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존 그린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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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란 이름을 가진 여자에게 열아홉 번 차인 콜린의 이야기다. 이때 캐서린은 C도 K도 가능하다. 콜린은 영재다. 탁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천재가 되고 싶어 한다. 어떤 단어를 듣거나 보면 애너그램을 본능적으로 한다. 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 중 하나다. 이런 능력들은 타고난 것과 더불어 반복적인 노력에 의해서 갖추어졌다. 지역 퀴즈 게임에 나가서 우승한 전력도 있고, 그의 특성은 논문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동안 그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아웃사이드였다. 어릴 때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자라면서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친구 하산도 있고, 사랑하는 캐서린들이 있지 않았던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열아홉 명을 사귀었다고 하니 엄청난 것 같지만 단 몇 분짜리도 있다. 며칠짜리도 적지 않다. 마지막 K-19에게 차인 후 그의 삶은 엉망진창이 된다. 이때 친구 하산이 자동차 여행을 제안한다. 둘은 콜린이 사탄의 영구차라는 별명을 붙인 차를 타고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난다. 엉뚱하고 독특한 유머를 가진 하산과 실연의 상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콜린이 떠나는 것을 보고 로드 무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안신처란 표지판에 끌려 것삿 마을로 들어간다. 대공은 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시체가 왜 이런 마을에 있지? 의문이다.

 

이 마을에 도착해 가이드와 함께 대공의 안식처를 보려고 한다. 가이드는 또래의 린지다. 길을 가다 콜린이 넘어지고 다친다. 다행히 린지는 구급대원이 되고 싶어 해 콜린을 가볍게 응급조치한다. 놀라운 것은 콜린이 넘어진 후 하나의 공식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단 것이다. 자신과 열아홉 명의 캐서린에 대한 공식이다. 솔직히 말해 이 공식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좀 더 열심히 이해하려고 들여다보면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 부분에 집중하고 싶지 않다. 빨리 이 공식을 만들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가게로 돌아온 그들에게 린지의 엄마가 콜린의 정체를 알아챈다. 집으로 초대하고, 이들에게 주당 500불로 유혹한다. 콜린과 하산이 머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콜린 등이 하는 일은 린지의 엄마 회사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것을 녹음해서 가져오는 일이다. 이 마을 유일의 공장은 탐폰의 끈을 만든다. 이 공장을 다니거나 다녔던 사람들은 만족하고 있다. 린지가 그들을 찾아갔을 때 보여준 반응은 반가움과 친밀함으로 가득하다. 물론 린지는 살짝 이 일에 빠져서 콜린과 똑같은 이름의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 이 남친은 TOC로 불린다. 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청춘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 코린의 과거사가 조금씩 이야기 속에 삽입된다. 물론 공식 작업은 계속 된다.

 

요약하면 밋밋할 수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유머 등이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콜린과 하산의 대화는 농담과 유머로 가득하다. 하지만 둘의 대화에서 불편함을 느끼면 ‘딩글베리’란 단어를 말하면서 이야기가 더 나아가지 않게 한다. 이 단어는 주로 콜린이 사용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하산도 사용한다. 린지와 TOC의 애정 행각은 청춘 영화에서 자주 보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린지가 못생겨 인기 없던 시절 이야기를 늘여놓고, 인기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과 TOC를 자신의 남자로 만든 배경 등을 말하면서 행복해 보이는 이 커플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소소하지만 다양한 에피소드와 콜린에서 나오는 다양한 지식은 각각의 매력을 발휘한다. 사랑의 공식 부분은 예외다. 천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콜린과 늘어진 삶을 살고 싶은 하산과 자신의 마을에서 만족하며 살려고 하는 린지 등은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를 경험한다. 이 변화가 그들을 이전과 다른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차피 인생은 빌어먹을 스노우볼 같은 거잖아.” 변화는 외부에서 일어나 내부로 전달된 후 다시 밖으로 표출된다. 뭐 다른 경우도 있지만. 이들의 관계가 변화는 대목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지만 유쾌하고 즐겁게 이끌고 나가는 것은 분명 작가의 필력이다. 언제 시간나면 부록을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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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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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찬호께이의 대표작인 <13·67>을 읽지 않았다. 구해 놓고 두껍다는 이유로 뒤로 미루고 있다. 그 사이 다른 작품들을 읽었는데 <풍선인간>을 읽은 후 단편에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더 강해졌는데 대표작을 읽은 후 다시 바뀔지는 모르겠다. 뭐 이번 단편집이 작품활동 10주년을 맞아 작가가 엄선한 작품들이라고 하니 더 그럴 수도 있다. 실제 작가 후기를 보면 각각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가끔 이런 후기를 보는데 반갑고 재밌다.

 

습작이란 제목이 붙은 것을 포함해 총 열일곱 편이 실려 있다. 습작을 뺀 열네 편에는 ‘매 단편마다 클래식 음악처럼 순서를 정리하고 표제를 붙였으며 함께 들으면 좋은 배경음악’까지 골랐다. 솔직히 클래식 음악을 잘 몰라 한 번 들어봤는데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작가의 골수팬이고 더 깊은 재미를 알고 싶다면 한 번 전체를 듣고 비교하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열일곱 편은 장르와 분량이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이야기의 끝에 반전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반전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도 있다.

 

단편집을 읽으면 늘 그렇듯이 좋아하는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일수 있는데 <파랑을 엿보는 파랑>, <습작 1>, <올해 제야는 참 춥다>, <내 사랑, 엘리>. <습작 2>, <자매> 등이 더 재밌었다. <습작 1,2>는 각 두 쪽 분량이고, 키워드 다섯 개를 중심으로 쓴 엽편 소설인데 예상하지 못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에 살을 조금만 더 붙이면 재밌는 단편 소설로 나올 것 같다. <올해 제야는 참 춥다>도 짧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에 대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살짝 앞으로 가면 무심코 읽었던 대목이 새롭게 다가온다. <자매>는 어떻게 보면 빤한 내용일 수 있지만 꼬인 상황이 재밌었다.

 

첫 작품 <파랑을 엿보는 파랑>은 읽으면서 몇 번이나 바뀌는 분위기 때문에 쉽게 결말을 예상할 수 없었다. 교묘하게 상황을 편집해 놓고, 독자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한다. 서술트릭으로 풀어내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들을 단계적으로 풀어낸다. 가장 취향에 맞는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겼다. <내 사랑, 엘리>도 중간에 바뀐 상황이 나를 재밌게 만들었다. 살인자였다고 생각한 인물이 바뀌고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드러나는 전형적인 구조지만 말이다. 찬호께이 단편을 읽으면서 이런 트릭들을 자주 만나는데 이런 설정을 아주 잘 마무리한다.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이나 <숨어 있는 X>는 분량이 좀 되는데 전편은 대담한 설정이지만 읽으면서 예상이 가능한 마무리였고, 뒤편은 집중해서 읽고 그 상황을 이해해야 그 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데 중간에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졌다. 아마 시간이 지나 다시 읽게 된다면 <숨어 있는 X>는 다른 재미를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곧 금>도 예상된 반전이란 점과 판매한 시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쉽다. 철학적으로 읽는다면 좀더 다른 해석과 재미가 있긴 하다. <정수리>의 마지막 장면도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주인공이 본 것이 우리 사회의 부정, 부패 등이라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산타클로스 살인사건>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훈훈하게 마무리한다. <필요한 침묵>은 갑작스러운 마무리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다. <가라 행성 제9호 사건>은 이야기를 꼬아놓았는데 취향을 조금 탔다. <커피와 담배>는 담배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영혼을 보는 눈>은 영매가 보는 것의 이면을 다루는데 재밌지만 그 다음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이 단편집이 아니었다면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악마당 괴인 살해 사건>은 B급 감성이 가득하다. 일본 특촬물 느낌에 영웅은 악당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잘 녹여내었다. 코믹한 발상과 현실적 문제가 잘 뒤섞여 있지만 왠지 작위적인 마무리란 느낌이 든다. <습작 3>은 다른 습작처럼 머릿속을 울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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