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리더 -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자 스토리콜렉터 68
크리스토퍼 판즈워스 지음, 한정훈 옮김 / 북로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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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통 스릴러 소설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할 때 초능력자를 내세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소설은 진짜 초능력자가 등장한다. 전문지식과 통찰력을 가진 전문가가 아닌 진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그대로 투사할 수 있는 초능력자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실제 이 작가의 전작들을 보면 비현실적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낯익은 제목들은 집에 있는 책을 다시 찾아서 읽고 싶게 만든다. 이것은 단순히 초능력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과 속도감과 재미 때문이다.

 

주인공 존 스미스가 가진 능력의 일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 장면들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납치된 부호의 딸을 되찾기 위해 납치범들을 만나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그가 가진 능력의 일부를 사용해서 저격수를 물리친다. 멎진 맛보기 장면이다. 그리고 새로운 의뢰자 슬론를 만나러 간다. 그의 능력은 부호들에게 은밀하게 알려져 있다. 슬론의 변호사 게인스는 그의 소문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고, 존은 가볍게 이 관문을 통과한다. 슬론이 바라는 것은 그의 회사에서 자신의 알고리즘을 훔쳐 데이터 마이닝계의 큰손이 된 프레스턴의 기억을 지워달라는 것이다. 그 댓가는 그가 바라는 고요하고 외딴 곳에 있는 섬과 그곳에 있는 주택이다.

 

왜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어려운 의뢰를 받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글 속에서 풀어놓는다. 왜 외딴 섬에서 살려고 할까? 이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 읽는다고 했지만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느낌이나 감정 등이 그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이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약물을 먹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 능력의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선택적 사용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이것을 제외하면 이 능력을 통해 그가 보여줄 활약은 정말 가공할 정도다. 작가는 이것을 이야기 속에서 아주 멋지게 활용한다.

 

이런 종류의 작품에는 여자 주인공이 빠질 수 없는 것일까? 켈시 포스터의 등장은 처음에 그냥 예쁜 비서 정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 이력을 파고 들어가면 그녀가 원했던 일이 무엇인지, 이것이 존과 함께 하는 동안 어떻게 발휘되는지 알 수 있다. 그녀의 미모가 그의 능력을 발휘하는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 물론 그녀가 없다고 해서 그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힐 일은 없어 보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영화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아마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배우가 맡을지 궁금하다. 가끔 아주 멍청한 여주인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화를 내게 만드는데 최소한 이 작품에서는 아니다.

 

프레스턴을 만나 그의 기억을 지우려는 시도는 그가 본 화면에 떠오른 문구 때문에 차단된다. 경호원들에게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탈출한 존의 자산들을 지운다. 이 장면 또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것들이다. 특별한 육체 능력은 없지만 존은 그가 가진 능력으로 위험지역을 벗어난다. 켈시를 구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의 교차로 이어진다. 현재는 당연히 프레스턴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과거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 능력을 어디에 이용했는지 보여준다. 이 과거 속에서 그가 CIA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알려진다. 이때 경험한 것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빠른 속도의 전개, 특별한 초능력과 액션의 조합, 주인공의 과감함, 초능력을 이용한 반격, 약간의 로맨스 등은 가독성을 높여준다. 상대방의 몸에 손을 데지 않고도 심리적 이미지와 감정 등을 투사해서 무력화시키는 장면들은 하나의 판타지 소설 같다. 여기에 하나의 미스터리를 집어넣었다. 왜 프레스턴은 그를 죽이려고 했을까? 이 일에 또 다른 배후가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과 더불어 빠르게 읽다 보면 끝이 보인다. 그리고 다음 활약을 펼치는 그를 기다린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면 또 어떤 다른 능력을 보여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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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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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겼다. 이것 이외에도 많은 교육이 생겨났다. 내가 처음 직장에 들어왔을 때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이 차이는 내가 중늙은이이기 때문에 겪게 된 변화다.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부작용은 있다.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 악용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제도의 안착 여부가 결정된다. 이런 제도에 반감이 있는 쪽은 악용하는 몇 가지 사례를 계속 말하면서 이를 문제시한다. 이 소설도 그런 사례를 하나 다룬다. 재밌는 점은 이 사례를 통해 교육을 더 강화한 부분이다. 괴롭힘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빠른 전개와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가독성을 높인다. 한때 내가 재밌게 본 일본 드라마 작가의 작품답다.

 

아키쓰 와타루는 지방 소도시의 마루오 슈퍼마켓 체인 점장으로 일한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7년 전 부하 직원을 괴롭혔다는 파워 해러스먼트 문제로 고발당해 좌천되었다. 속칭 파워하라다. 이 소설에서는 온갖 무슨무슨 하라가 등장한다. 나이, 성별, 야근, 부성애, 모성애, 기온 등 모든 것에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어떻게 직장 상사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삭막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이것은 과장된 것이고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키쓰가 다시 본사로, 그것도 컴플라이언스실 실장으로 발령이 난 것은 마루오의 오리지널 브랜드 인기 크림빵 속에 1엔짜리 동전이 들어 있다는 신고와 바로 전날 전직 실장이 사퇴한 것 때문이다.

 

한때 잘 나갔고, 좌천되어 지방 점장으로 일하는 그에게 컴플라이언스실 업무는 낯설다. 유일한 부하 직원 마코토를 선배라고 부르면서 일한다. 그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은 무슨무슨 하라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다. 능글맞은 상사다. 마코토가 원칙적이고 열정적인 사원이라면 아키쓰는 시야가 넓고 경험이 많다. 그가 처음 맞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하나씩 가능성을 지워나가는 것이다. 신고한 엄마를 찾아가 가능성을 지우고, 현장의 자료도 확인한다. 그러다 단서를 발견한다. 사장 직속 컴플라이언스실 실장인 그는 이 사건을 보고한다. 해결책은 예상과 다르다.

 

작가는 소비자와 직접 마주하는 슈퍼마켓 체인점을 무대로 설정해서 가장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음식에 이물질을 넣거나 여성 시간제 직원들의 처우 문제나 여성이 승진한 경우나 진상 고객 등을 소재로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직장 내부의 권력 싸움도 같이 넣어 긴장감을 더 높인다. 아키쓰의 부하 직원이었다가 이제는 상무로 승진한 와키타가 현 사장 마루오의 대척점에 있다. 마루오 사장은 아키쓰에게 와키타 상무의 비리를 캐어 알려달라고 한다. 자신의 적을 아기쓰의 도움으로 물리치려는 속셈이다. 이것은 왜 와키타가 아키쓰를 고발하게 되었는지 하는 문제와 함께 소설 전체에 흐르고 이것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키쓰는 근무시간 이외에도 마코토가 연락하면 나간다. 현장에서 직접 목소리를 듣고, 조심스럽게 문제를 풀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위치가 사장 직속이다 보니 사장을 바꾸려는 일파에선 이 문제를 이용해 공격할 수밖에 없다. 사내 권력 다툼이 해러스먼트 사건과 뒤섞인다. 소설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와키타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하는 사장과 사장의 실각을 위해 노력하는 와키타 파의 소리 없는 전쟁이 은연중에 벌어진다. 마루오 사장은 회사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 신규 점포를 내고, 사내 첫 여성 부장을 발령 내고, 육아를 위한 단축 근무제를 확대 실행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두 문제가 된다.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 컴플라이언스실이 있다. 아키쓰의 재치와 추리력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지방 근무 경험은 여유와 새로운 시선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는 최강의 상사로 변하는 중이다.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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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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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삭막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이 소설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사람보다 식물을 더 사랑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다.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알콩달콩하거나 밀당을 담고 있지 않다. 대학 식물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연구를 이야기의 주변에 풀어놓고, 그들의 일상을 더 많이 보여준다. 읽다 보면 학창 시절 과학시간에 배웠던 것 일부를 떠올리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에 빠진 사람들의 열정을 잔잔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평범한 일상과 우리 주변의 모습을 큰 자극 없이 보여주는데 이것이 상당히 재밌다.

 

요리를 수업 중인 후지마루는 작지만 정겨운 양식당 엔푸쿠테이의 음식에 반했다. 처음엔 사람 필요 없다고 해서 채용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보자마자 채용되었다. 이유라면 주인이자 요리사인 쓰부라야가 연애를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동경대로 추정되는 T대학 근처에서 동네 장사하는 식당이다. 점심시간이면 작은 줄을 서는데 홍보를 더하면 긴 줄도 가능하다. 하지만 쓰부라야는 그럴 마음이 없다. 그리고 이 식당은 양식당이라고 하지만 일식도 같이 한다. 밤이 되면 동네 손님들이 오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식사한다. 이들이 바로 마쓰다 연구실의 연구원들이다.

 

갑자기 쓰부라야가 비교적 한가한 시간에 배달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 시간은 지켜지지 않는다. 마쓰다 연구실에 점심 배달 간 후지마루는 몇 번 배달하면서 연구원 모토무라에게 반한다. 고백한다. 며칠 뒤 돌아온 대답은 사랑 없는 세계인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한다. 차였다. 흔히 예상하는 다음 이야기는 후지마루의 연애 쟁취 분투기일 테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바뀐다. 후지마루가 아니라 모토무라다. 요리사와 식물학자의 연애 이야기로 흘러갈 것 같은 분위기가 식물학 연구소로 일상이 바뀐다. 이때부터 후지마루는 조연처럼 잠시 등장하다 사라진다. 모토무라의 연구와 연구소가 전면에 나선다.

 

처음 주연이 바뀐 것을 보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후지마루가 등장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친 개성 강한 연구원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선인장에 빠진 사토나 고구마 등을 연구하는 교수 등이 나오면서 우리가 그냥 무심하게 보고 지나간 것들을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 순수한 열정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한다. 아마도 이것이 큰 이벤트 없이도 강한 몰입도를 유지하게 만든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 후지마루의 요리에 대한 열정과 식물 연구를 대하는 모습 등이 엮이면서 작은 재미들을 준다.

 

읽다 보면 모토무라의 후지마루에 대한 감정의 변화가 조금씩 드러난다. 하지만 그 변화는 너무 적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작가는 이것을 바로 표현한다. ‘그래도’라는 기대를 품고 읽게 되는데 이 연애사에 작가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식물의 세계와 그 연구원들 이야기가 더 많다. 그래서 조금씩 나오는 둘의 만남과 후지마루의 감정 표현에 더 눈길이 간다. 후지마루도 모토무라도 순수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분야에 열정적이다. 흔한 연애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 이 소설에서는 없다. 사랑을 시작하면서 발산하는 에너지는 없지만 사랑으로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 없는 세계는 역설적 표현이다. 괜히 ‘혹시’란 단어를 이용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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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학 - 고광률 장편소설
고광률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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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통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대학 교수들의 갑질과 재단 문제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대학교수들의 암투, 질투, 모략, 욕망 등이 뒤섞여 있다. 국공립이면 조금 다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사학의 경우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시간강사법 개정을 둘러싸고 대학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려주는 책들이 이미 나와 있고, 총장 자리를 둘러싼 온갖 암투와 비리 등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작가는 이런 학교 문제 중 대학교수 사회와 재단에 집중한다. 작가 자신이 30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고민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그렸다고 한다.

 

일광학원 재단의 일광대학교는 중부권 대학이다. 이 대학은 일광건설을 운영하던 초대 이사장 모준오가 세금 문제를 피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 아이디어를 낸 인물은 주시열인데 현재 총장인 모도일과 대척점에 있는 실세 교수다. 한때 주시열이 총장이었던 적이 있다. 모도일은 하버드 의대전문대학원 출신이다. 선친의 유훈에 따라 주시열을 내처지 못하고 함께 하고 있다. 이 둘이 학내에서 각각 파벌을 형성하고 견제하면서 학교가 굴러간다. 이사장 집안이고 총장이면 절대 권력을 휘두를 것 같은데 반대 파벌과 법 때문에 운신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작가는 이 부분을 파고들어 줄서기, 파벌, 암투, 비리 등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사학 비리를 파헤치는 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모도일 총장이 뭐가 아쉬워서 비리를 저지르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권력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지 못할 때 참지 못한다. 일광대학은 교육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가선정되어 부실 판정을 받게 된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학생들은 총장 퇴진을 요구하고, 시위를 벌이고, 총장실을 점거한다. 총장 반대편에 있던 파벌은 새로운 총장을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수장은 전 총장이었던 주시열이다. 여기에 감사실장 봉백구와 직원 출신 비정년 교원 공민구 등이 등장해 대학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낯설지만 낯익은 상황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대학교수들이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소설에서 지적할 때 놀랐다. 교수들의 특권의식은 또 다른 권력을 만나는 무력하다. 일광대학에 의대가 있는데 의대생들도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 의대 편입 문제를 그들이 지적한다. 이 지적을 보면서 학교 비정규직 교사들을 직원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을 때, 공사에서 비정규 직원들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 의견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노력과 성취와 기득권이 능력주의란 단어로 포장되어 유통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한 번의 시험 합격이 만들어낸 문턱은 턱없이 높다.

 

앞부분에 의대 학장 윤우가 이야기를 끌고 나갈 것 같았는데 스트레스로 쓰러지면서 중심에서 밀려났다. 이후 작가가 개입해 학교 내부의 문제와 이 학교가 어떻게 설립되고 운영되었는지 알려준다. 공민구가 중심에서 이야기를 풀어갈 줄 알았는데 그도 이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이다. 교원과 직원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기는 한다.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모도일 총장은 분노하고, 교직원들을 모으고 휘두른다. 이 권력에 기생하는 교직원들은 그에게 충성하고 그의 눈치를 볼 뿐이다. 학자적 양심이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고한 교수의 위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부분을 아주 희극적으로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솔직히 이 부분이 약하다.

 

처음엔 조금 쉽고 가볍고 풍자적이고 유머스러운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작가는 대학의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지만 깊이 파고들어가지 않으면서 왠지 모르게 중심이 빈 듯한 느낌을 준다. 대학교수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총장에 충성하거나 반대 파벌의 움직임 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재밌는 부분 중 하나는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인물들 대부분이 일광대학 출신이란 점이다. 마지막에 공민구가 교패를 닦는 장면은 학교에 대한 그의 애정과 바람을 보여준다. 같은 동문인 봉백구 실장이 한 행동과 대비된다. 기대와 다른 전개와 결말이다. 어쩌면 현실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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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숭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9
J. D. 바커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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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자가 버스에 치여 죽었다. 이런 놀라운 설정으로 도입부를 연다. 이 연쇄살인자는 희생자의 귀, 눈, 혀를 적출해 가족에게 보내고, 시체는 공공장소에 전시한다. 5년 동안 이미 일곱 명의 희생자가 있었다. 이 연쇄살인마의 별명은 4MK(네 마리 원숭이 킬러)다. 일본 닛코의 도쇼구에 있는 현명한 원숭이 부조에서 유래했다. 악을 보지고,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이런 연쇄살인마가 버스에 치였다고. 놀랍지 않은가. 이 시체가 가지고 있던 상자가 그를 4MK라고 추정하게 만든다. 검은 리본이 묶인 작고 하얀 상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4MK 전담반 형사 샘 포터는 이미 이 상자를 20개 이상 보았다.

 

이 상자 속에는 귀가 하나 들어 있다. 주소도 표기되어 있다. 부동산 재벌 아서 탤벗의 주소다. 이것은 탤벗의 가족 중 한 명이 납치되었다는 의미다. 집을 찾아간다. 아내와 딸 모두 무사하다. 탤벗을 찾아간다. 그도 무사하다. 그런데 그에게 혼외자식이 한 명 있다. 에머리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 딸이다. 딸이 사는 집에 가니 아이가 없다. 그 아이가 납치되었다. 4MK가 죽었으니 빨리 이 아이를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하면 탈수 등으로 죽을 수 있다. 단서는 시체의 몸에서 발견된 일기 한 권과 몇 가지 증거물품 뿐이다. 4MK 전담반은 버스에 치여 얼굴이 망가진 사람의 정체를 찾아내고, 납치된 아이를 찾아야 한다.

 

소설은 크게 두 가지고 구성된다. 하나는 샘 포터 등을 내세운 현실의 시간 속 전개고, 하나는 연쇄살인마의 일기다. 현실 속 시간에서 포터나 에머리 등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장면이 전환되면 중심인물과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이 시간 설정이 은근히 독자를 압박한다. 읽다보면 ‘아직’과 ‘벌써’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이 4MK가 죽인 희생자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다. 그 가족들 중 한 명이 엄청난 부정, 부패를 저지른 범죄자라는 것이다. 아서 탤벗도 범죄자란 의미다. 에머리를 찾는 것과 함께 탤벗도 조사해야 한다. 이 상황이 주어진 단서와 함께 급박하게 진행된다.

 

놀라운 연쇄살인마의 탄생을 알리는 일기는 또 다른 재미다. 처음에는 아이만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부모도 만만찮다. 아니 부모가 아이를 그렇게 키웠다. 이 일기는 잔혹한 장면이 나온다. 엄마의 부정이 사건의 원인인 것처럼 시작해서 살인이 펼쳐지고, 시체 처리와 사건 은폐 등이 이어진다. 이 모든 사건의 관찰자는 아이다. 옆집 포터 부인은 남편이 죽었는지 궁금해하고, 확신하고, 그녀도 갇힌다. 상황은 점점 꼬인다. 읽으면서 이 일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이 의문은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반전과 함께 이 자체로 놀라운 스릴러가 된다.

 

현실과 일기가 교차하고, 포터와 에머리와 노튼 등의 현재 상황이 이어진다. 연쇄살인마가 과연 죽었을까 하는 의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 탤벗이 저지른 악의 실체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하나씩 밝혀진다. 여기서도 반전과 반전이 이어진다. 스스로 자경단이 되어 악을 처벌하고 있다고 하지만 희생자들은 악을 저지른 범죄자의 가족이다. 그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단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일기다. 긴박하고 위급한 상황 속에서 증거품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재밌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도 결코 재미와 여운은 사라지지 않는다. 4MK 시리즈가 두 권이나 더 나와 있다고 하니 빨리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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