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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평점 :
개인적으로 이승우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다. 나의 독서법과 거리가 조금 있는 작가고, 취향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이승우를 강하게 인식하는 순간이 두 번 있었다. 하나는 한 영화평론가의 추천작으로 <생의 이면>이 올라왔을 때고, 나머지 한 번은 최근 로쟈의 현대 한국문학에 대한 글 속에서였다. 그때부터 책장에 몇 년째 꽂혀 있는 <생의 이면>이 눈에 들어왔다. 읽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언제 시간 나면 읽어야지 생각하는 수많은 책 중 한 권이다. 그런데 문학에세이가 나왔다. 분량도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섣부른 추측을 했다. 선택은 이렇게 되었다. 이 선택은 정말 착각이었다.
에세이와 적은 분량은 보통 때라면 하루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승우의 글은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다듬고 다듬은 문장들이, 꼬인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차이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그러니 대충 읽으면 그 내용을 완전히 오독하거나 ‘뭐 이런 비슷한 말장난 같은 글을 썼는가’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솔직히 고백 하나하면 나 자신도 이 에세이를 완전히 집중해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집중력이 깨어져 단어만 따라간 곳도 적지 않다. 그래도 읽으면서 그 의미를 곱씹고, 그 차이를 생각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누린 부분도 많다.
읽으면서 해외문학과 한국문학에 대한 감상문이란 느낌을 받은 부분이 많다. 외국 작가야 모두 유명한 작가들이지만 한국 작가 중 조금 낯선 이름도 있었다. 최근 나의 독서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생긴 문제이긴 하다.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어진 작가가 카프카인 것은 그의 글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궁금해지고,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이청준의 소설을 읽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부분은 나의 기억 속 이청준과 이승우의 문장과 내용을 생각하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평론가들이 연구할 부분이 아닐까.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같은 작가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비판하는 글을 보고 살짝 반감이 생겼다. 물론 그 당시에도 이 둘은 같은 인물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경지는 어떤 것인지.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에서 재미를 발견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가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산 책을 읽고 재미없다고 외쳤던 순간과 지금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오에 겐바부로의 책 중 한 권이 SF로 분류되어 있어 기대하고 읽었는데 크게 실망했던 순간도 있었다. 아마 이런 경험들이 이 에세이를 읽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천천히 그 문장을 들여다보고 말장난 같은 글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가 지닌 의미를 깨닫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책을 더 읽을 테냐고 묻는다면 일단은 ‘다음에’라고 답하고 싶다. 아직은 좀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좋기 때문이다.
“독자의 처지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문자 텍스트의 숙명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내가 상당수의 작품들 힘들게 읽은 이유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시간, 장소, 기분, 분위기, 나이, 의자의 경도 등이 미세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 않는가. 늦은 밤 책을 많이 읽는 나에게 이런 체력적 환경적 요인들은 그 작품을 이해하는데 미세하거나 거대한 차이를 만든다. 여기에 나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특정 장르에 익숙해진 독법도 이런 차이를 크게 만든다. 이렇게 이 책은 나의 사유를 확장시킨다.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작가. 그의 에세이는 철학적이고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종교의 인용은 기독교의 글들이지만 내용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소설쓰기, 실존, 소설의 고유성 등이다. 에세이 후반으로 가면 독자, 세계화, 소설가 등을 이야기한다. 노벨문학상도 하나의 문학상이란 그의 평가에 공감하면서 하나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로운 시선 하나를 배운다. 나의 의지와 조직의 지시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언젠가 그의 소설들을 읽고 젊은 시절 내가 놓친 재미를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