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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한 아이가 부모에 방에 들어갔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난다. 피곤한데 자신의 잠을 방해했다는 이유다. 아이는 자신의 방 옷장에서 헬멜을 쓴 한 아저씨 아르투어를 만난다. 이 장면을 보고 나의 머릿속은 공포소설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그런데 장면이 바뀌어 엠마 슈타인이란 정신과 전문의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 자신이 로한젠실험의 대상자였다고 말하면서. 엠마는 강의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온다. 샤워를 하려는데 증기 때문에 유리에 써져 있는 글씨를 보게 된다. “도망쳐. 당장!”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다.
베를린은 한 연쇄살인범 때문에 난리다. 그 살인범은 여자를 죽인 후 머리를 깎는다. 나중에 ‘이발사’란 별명을 얻는다. 엠마는 이 글을 보고 놀랐지만 호텔 안에는 어떤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잠들었다가 어떤 소리를 듣는다. 약물에 의해 기절하고, 강간당하고, 머리가 깎인다. 언론에 알려진 이발사의 행동과 닮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그녀를 발견한 경찰은 이 성폭행 등이 이발사가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가 머물렀다는 로젠호텔의 방 호수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그녀가 당한 것은 무엇인가? 그녀의 환상일까?
이 사건으로 그녀는 임신했던 아기를 잃고, 집밖으로 나가질 못한다. 집안에만 머물 뿐이다. 이 당시의 하루를 그녀는 가장 친한 변호사이자 아버지의 친구인 콘라트와 만나 이야기한다. 이때부터 시간은 과거와 인터뷰하는 순간으로 나누어진다. 엠마는 소포 하나를 받았던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참혹하고 잔혹했던 그날의 기억들을 말이다. 그리고 이 소포 하나가 얼마나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는지 말한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하게 돌아갔다. 혹시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상상에 의한 허구가 아닌가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당연히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두가 이발사 용의자가 되었다.
내가 처음 예상한 설정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포는 처음에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배달부가 의심스럽다. 집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세미나를 위해 떠난 남편 필리프에게 연락한다. 누군가 집에 있는 것 같다. 남편과 동료가 와서 확인하지만 아무도 없다. 기계 고장으로 난 소리다. 그런데 키우던 삼손이 갑자기 아프다. 집밖으로 나가길 겁내는 그녀가 아주 어렵게 집앞 동물병원을 찾아간다. 무엇을 먹어 삼손이 아픈지 모른다. 검사를 의뢰한다. 그리고 우체부가 맡긴 소포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앞집에 간다. 실재한다. 집안으로 들어간다. 가발이 보이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남편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이상하게 상황들이 꼬인다. 어떻게 보면 이 상황들이 비현실적으로도 보인다.
이런 과거의 시간과 더불어 그날 있었던 어떤 사건의 변호를 위해 콘라트가 질문을 한다. 이 장면들은 교차하지만 분량은 절대적으로 과거가 많다. 엠마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는 것이 엠마의 이야기다. 엠마가 가진 정신의 불균형과 상황들이 엮이고 꼬이면서 더 복잡해진다. 이발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타나고, 다른 시체가 발견된다. 하지만 이발사는 아니다. 절친했던 이웃도 그녀를 비난했고, 그녀의 전화가 또 다른 상황을 만든다. 다시 오해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는 폭발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지?’였다. 그리고 진짜 반전이 펼쳐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용의자를 만들어놓고 뒤통수를 강하게 때린다. 이 반전에 호불호가 생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어쩌면 읽는 동안 내가 단서들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심리 스릴러란 부분만 놓고 보면 엠마의 혼란과 공포 등이 강하게 와 닿는다. 순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폭발시키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당연히 흡입력이 좋다. 본편이 끝난 후 작가 10주년을 기념해 독자들의 메일을 선별해 실었는데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들에 대한 강한 독서 욕망이 일어났다. 뭐 이 욕망이 다른 작가 작품에서도 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