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먹어라 - 미친 듯이 웃긴 인도 요리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현수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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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 제목을 보고, 간단한 책 소개글을 읽은 후 이전에 읽었던 다른 작가와 착각했다. 그 작가는 진짜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면서 인도 음식에 대한 아주 많은 정보와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착각은 얼마 읽지 않아 사라졌다. 인도 음식에 대한 작가의 열정과 사랑은 나오지만 그것은 인도 여행의 한 부분일 뿐이다. 거대한 인도 대륙 전체를 겨우 3개월 만에 돌아본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좋아하는 인도 음식을 열심히 먹고 연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가족 여행이란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인도 음식 기행을 기대했지만 인도 여행으로 마무리된 느낌이다.

 

마흔을 앞둔 남자의 근심걱정으로 시작한다. 나 자신이 나이 먹는 것에 조금 둔감한 편이라 이 부분은 공감하지 못한다. 두 아들을 두고, 런던 외곽에 살고 있는 작가는 잡지 등에 기고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의 찌질한 행동이 자주 나오는데 아마 내가 작가라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의 책이 꽤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조금 의아했는데 출간연도를 찾아보니 2011년도다. 그가 2016년도에 영국 여행작가협회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된다. 인도 여행기를 쓰는 덕분인지 자신이 인도 음식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말한다. 이 때문에 인도 음식 이야기가 엄청 나올 것이란 기대를 더 했다.

 

한 나라의 음식을 사랑하는 것과 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작가는 이 부분을 잘 보여준다. 그가 알고 있는 인도 여행은 결코 쉽지 않다. 그가 본 여행기 등은 열악한 환경 이야기로 가득하다. 장염, 더러운 숙소, 벌레, 말라리아, 교통지옥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이런 근심걱정은 손소독제와 수도꼭지를 덮을 양말 등으로 대변된다. 현재 한국의 동남아 여행 카페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것 중 하나가 샤워기 필터지 않은가. 필리핀에서는 얼음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보통 무시하고 갈 수 있는 것도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 인도 여행도 그가 기획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정말 인도 여행을 하면서 그는 많이 먹고 마신다. 맵다는 단어가 자주 들어가는데 솔직히 매운 인도 음식을 거의 먹어보지 않은 나에게는 조금 낯설다. 가족 여행이지만 인도 음식 탐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내가 짠 일정도 돌아야 한다. 자신이 잡지 기고가란 사실을 이용해 좋은 호텔에 머물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셰프의 초대에 전전긍긍하는 부분이다. 공짜면 문제 없지만 제대로 된 요금을 내면 결코 적지 않은 지출이다. 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것이 아내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여행 도중에 호텔에서 만난 인도 가족들을 나중에 다시 만나기도 한다. 아내가 연락한 덕분이다. 아이들이 밖에서 재밌게 놀지만 작가는 걱정으로 가득하다. 손님을 초대한 가족의 문화와 부엌 풍경은 낯설지만 흥미롭다.

 

작가는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술이다.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전날의 숙취 때문에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한다. 많은 음식 이야기 속에서 술이 등장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아내는 그를 요가 강습에 보낸다. 이 책의 후반부는 요가 수련과 초월명상에 대한 것이다. 스트레칭, 운동부족으로 온몸의 근육이 쪼그라드는 나에게 이 글은 약간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요가 수련이 쉽지는 않다. 신비주의를 대하는 이성주의자의 모습도 놓지 않는다. 수련은 술을 절제하게 만들고, 작은 동작을 할 때 내던 소리를 멈추게 한다. 작가가 인도에서 진짜 발견한 것을 “내 삶에 균형, 고요, 명료함, 그리고 절제를 좀 더 불러올 수 있도록 돕는 도구”였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행을 마친 후 요가와 명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하는데 10년 지난 지금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음식 여행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인도 여행을 다른 시각과 경험으로 만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순간순간 익살 넘치고, 유쾌한 글들이 가득한 것도 재밌다.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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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쇼핑몰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 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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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의 스릴러를 좋아한다. 이번 소설은 중편과 장편 사이 분량이다. 예상한대로 한 번 잡은 후 끝까지 읽었다.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고, 머릿속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스쳐지나갔다. 실제 사건이 벌어지는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는다. 이 길지 않는 시간 속에 재밌는 캐릭터들을 집어넣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액션과 코믹함까지 넣었다. 군더더기 없는 진행과 하나의 상황에서 삼촌과의 기억을 덧붙여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은 각성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정확하게 말하면 훈련 효과지만 말이다.

 

삼촌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한다. 이상한 삼촌이란 표현이 나온다. 고등학교 진학 전 가출한 후 20년 만에 돌아와서도 집에 머무는데 히키코모리와 다름없는 삶을 산다. 삼촌 정진만은 주인공 정지안에게 참 많은 충고를 한다. 그 중 하나가 검은 개 이야기다. 할머니의 장례식 날에 들려주었다. 개는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난다. 충고의 요지는 절대 눈을 피하지 말고, 놈이 가장 아끼는 것을 빼앗으라고 말한다. 여덟 살 소녀에게 할 말인가 싶지만 전화를 받고 삼촌이 갑자기 떠난 후 소녀는 검은 개에게 지지 않으려고 한다. 삼촌은 한 달 만에 돌아왔고, 부모님은 장례식장에서 치정에 엮여 돌아가셨다. 이후 삼촌하고 살게 되었다.

 

삼촌은 작은 쇼핑몰을 운영 중이었다. 이런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왜 자살을 한 것일까? 지안은 삼촌이 바라는 대로 중어중문학과에 갔고, 삼촌은 안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집에 돌아왔고, 장례식장에서 삼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학창 시절 삼촌이 마을 도박장을 어떻게 박살내었는지 말이다. 노안으로 중학생 때 술, 담배 등을 살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 정도에 머물지 않았던 이유가 잠시 설명된다. 현재는 그 당시 친구보다 열 살은 어려보인다고 할 정도니 동안이라고 해야 하나. 잠시 훈훈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삼촌은 안전에 강박적인 모습을 보인다. 집에 몇 개의 안전장치를 해놓았다. 열쇠 복사를 금지한다. 집에 들어가려는 그녀에게 다가온 인물이 있다. 사진관집 아들 정민이다. 그는 삼촌의 쇼핑몰에서 알바를 했다고 말한다. 삼촌의 2G폰으로 입금 문자가 온다. 3백만 원, 잔고는 거의 8억 원이다. 정민의 도움으로 입금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삼촌이 죽었다고 말하는데 “그럼 너도 오늘 안에 죽겠네?”란 답이 온다. 뭐지? 정민의 도움으로 쇼핑몰의 숨겨진 사이트로 들어간다. 예상하지 못한 살인 도구들이 판매되고 있다. 도대체 삼촌의 정체는 뭘까? 자살의 이유는? 이런 그들을 찾아오는 한 여자가 있다. 이때부터 상황이 바뀐다.

 

누가 적인지, 동지인지 쉽게 알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통신망이 끊어지고, 외부로 연락이 불가능하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은 마체테를 휘두른다. 살육의 밤이 시작되고, 지안 등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삼촌의 창고에 들어가려고 한다. 이어서 펼쳐지는 반전과 액션과 과거 회상 등은 평범한 여대생을 결코 평범하게 만들지 않는다. “잘 들어 정지안,”으로 시작하는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삼촌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또 다른 어둠이 드러난다. 머릿속에서 이 장면을 어떻게 연출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일까? 배후는 누구고? 액션과 미스터리가 교차한다. 그리고 다시 반전이다. 마지막까지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책을 덮을 땐 유쾌하다. 혹시 시리즈 계획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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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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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공모전이 카카오페이지의 추미스 공모전이다. 현재까지 내가 읽은 작품들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었고, 재미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몇 작품이 있는데 시간 나면 천천히 읽을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일가족 동반 자살이란 언론사의 표현에 정면으로 반발한다. 과연 이 자살이 가족 구성원 모두의 동의를 얻었는지 묻는다.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란 표현이 좀 더 정확하다.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가 아내를 죽이고, 두 아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작가는 이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세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이야기의 문을 여는 것은 작은아들 진웅이다. 10년 전 아버지의 가족 살해 사건 당시 형이 칼을 막고 도망가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침대 밑에서 엄마가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을 봤다. 자살에 실패한 아버지는 감옥에 가고, 두 형제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형은 고등학교 마친 후 가출을 했다. 아버지가 출옥해서 돌아온다는 소식과 할머니의 간청에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형과 아버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역할을 맡는다. 칼을 두려워하는 형과 그 형이 보여준 의심스러운 행동, 그리고 자신의 알 수 없는 흔적들을 깔아놓고 누가 진범일까 추리하게 만든다.

 

형은 모델로 일하고 온몸에 그날 있었던 날짜를 문신했다. 반 여학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살인자의 자식이란 사실은 이미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 그를 둘러싼 세 명, 두 친구와 한 여친의 행동은 그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은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가족 관계는 삐걱거린다. 아버지 옛 친구들의 반응은 단순한 호기심과 악의로 가득하다. 불편한 충돌은 당연하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진웅의 반장 시체는 10년 만에 돌아온 살인자와 함께 온갖 소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되살려낸다. 누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형이 아닌 아버지의 시선이 그 다음이다. 사채를 쓰고, 삶이 힘들어 자살을 결심했다. 자신만 죽으면 되는데 아내와 아들까지 죽이려고 했다. 다른 가족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면서 생긴 문제다. 물론 그의 사채가 그의 죽음 이후 가족의 큰 어둠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목숨까지 빼앗을 권리는 없다. 출소 후 그를 찾아온 사채업자에게 당하는 그의 모습은 10년 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공권력에 호소하고, 자신의 어머니처럼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가 마주한 과거와 현재의 두 사건은 그를 다시 뒤흔든다. 현재 살인자가 누군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예상은 가능하지만.

 

큰아들 진혁의 시선은 이전의 두 사람이 보지 못한 사건의 다른 면을 보게 한다. 그는 세 번의 살인 사건 목격자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일가족 살해 시도와 그가 마을을 떠나게 만든 사건과 진웅의 반장 살인 사건 모두. 우연히 모델이 되었지만 더 높은 비상을 할 기회를 그는 놓친다. 아니 과거가 두려워 비상을 포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돌아온 옛집은 아직 불안감이 그대로다. 아버지가 언제 자신들을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문을 잠근다. 살인자의 아들이란 이유로 의심을 사고, 또 다른 진실과 악의로 증거를 조작한다. 허술한 조작은 전문가들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다.

 

단 5일 동안 세 명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같은 지역과 1인칭 시점의 사용은 사실을 한정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화자를 등장시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입체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고, 불편한 사실들이 밝혀진다.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은 진웅의 친구 민기의 존재다. 과연 이렇게까지 민기를 활용해야 했을까? 살인자와 살인자의 가족과 그 피해자를 같이 묶어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잘 보여준다. 한 가족의 처참한 비극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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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의 애프터 파이브 - 막차의 신, 두 번째 이야기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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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의 신>을 읽고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왔다. 이번에는 막차가 아니라 첫차다. 한때 막차를 타고 졸다 종점까지 갔던 기억을 풀어내기도 했지만 늦게까지 놀다가 택시비가 없어 첫차를 기다린 적도 있다. 이런 기억들을 더듬다보면 과거가 잠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가끔 빠른 비행기를 타기 위해 움직이다 보면 놀랍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삶의 역동성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번 이야기는 일본 유명 번화가 신주쿠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예전에 도쿄 여행 갔을 때 본 이미지와는 다르다. 시간이 다르니 보이는 사람들도, 풍경도, 장소도 다른 모양이다.

 

다섯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표제작 <첫차의 애프터 파이브>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선입견이 먼저 움직였다. 주인공을 20대로 추정한 것이다. 러브호텔 청소 일을 한다는 사실과 몇 가지 설명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50대 중년임을 알게 된다. 중견 종합상사맨이었던 그가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들려주고, 직장에서 나온 후 첫차를 기다리며 머문 곳에서 본 풍경과 과거가 엮여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삶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출근과 퇴근이 교차하는 장면은 피곤과 활기도 대비된다. 작은 인연의 시작도 같이.

 

<스탠 바이 미>는 같은 이름의 음악이 이야기 속에 연주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노래를 하기 위해 상경한 가수다. 자신이 살던 곳과 달리 큰 공간에 압도되어 버스킹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고등학생들이 노숙자 와타나베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고 말린다. 그는 더러워 목욕탕에 가지도 못하고, 목욕탕에 갈 때 입는 옷은 도둑맞았다. 그는 그녀의 기타를 보고 잠시 연주한다. 실력이 좋다. 둘은 함께 버스킹을 하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와타나베가 목욕하고 새옷을 입어야 한다. 옷을 사고, 목욕탕에서 때를 민 후 그들은 성공적인 버스킹을 한다. 자신감을 얻는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길을 간다. 이 하룻밤의 인연이 긴 여운을 남긴다.

 

<초보자 환영, 경력 불문>은 동일본대지진과 관계있다. 지진 재해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이야기다. 세무사사무소가 폐업해 바텐더가 된 사람도,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후 도쿄로 온 사람도 있다. 오카마 공연장에서는 동일본대지진 피해자들을 적극 환영한다. 제목이 모집 광고에 있는 문구다. 왠지 모르게 이번 단편은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그들의 삶과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지진 피해와 그 여파 등을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않은 문제점은 아쉽다.

 

<막차의 여왕>은 술 먹고 막차를 자주 타면서 붙은 별명이다. 늦은 밤 헤어진 연인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한다. 막차를 탄 후 잠들어 내릴 곳을 지나갔다. 낯선 역에서 옛 연인에게 전화를 하는데 갑자기 끊긴다. 연락 두절이다. 잠시 갈등하다 그녀를 데리러 가기로 한다. 이 사이 사이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던 역에 도착한다.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한다. 막차와 첫차의 운행 간격, 그녀의 체력 등을 떠올리며 가능성을 추리한다. 이 추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성향이나 체력 등을 잘 알아야 한다. 빗속을 달리는 그녀를 만난 후의 장면은 훈훈하고 작은 여운과 기대를 남긴다.

 

<밤의 가족>은 출장 성매매 여성과 그녀들을 태우고 다니는 운전기사 이야기다. 운전기사는 엄마가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 미안해한다. 이것을 견딜 수 없어 고등학교 졸업 후 집을 나왔다. 성매매 여성 중 한 명은 아버지가 사업이 망한 후 가족을 버리고 잠적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댄다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한 일이다.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큰 호사임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최악의 막장 상황을 마주한다. 작가는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보여줄 뿐이다. 각자의 삶이자 현실이다. 마지막엔 첫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작은 여운도 당연히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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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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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이전에 제목만 보고 추리소설이 아닐 것이란 섣부른 추측을 했다. 내가 책을 선택할 때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장르를 쉽게 예단하는 나쁜 습관에서 비롯했다. 책소개를 보면 이 소설이 복수에 대한 소설임을 알려준다. 살인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세 남매가 별똥별 아래에서 복수를 맹세하는데 제목에 유성이 들어간 이유다. 늘 그렇듯이 작가 특유의 간결한 구성과 빠른 전개와 반전은 단숨에 끝까지 달려가게 한다. 중간에 너무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설정이 들어가 있어 약간 힘이 빠지는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고이치, 다이스케, 시즈나. 이 세 남매는 늦은 밤 유성군을 보기 위해 몰래 집밖으로 나간다. 유성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모님의 시체다. 고이치가 먼저 발견했고, 다이스케는 누군가가 뒷문으로 나가는 것을 봤다. 부모님은 양식당 <아리아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식당은 하이라이스가 싸고 맛있고 양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도 가끔 와서 먹었다. 갑자기 고아가 된 세 남매는 경찰들의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경찰도 노력하지만 범인을 잡는데는 실패한다. 세 남매는 아동보호시설에 들어간 후에도 유성을 보러간다. 여기서 그들은 복수를 다짐한다.

 

14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미제사건이 되었고, 소멸시효도 다가온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세 남매는 험난한 세상에 시달리다 살아남기 위해 사기꾼으로 바뀐다. 작전과 가짜 서류는 고이치가, 실제 남자를 홀려 돈을 받아내는 역할은 여동생 시즈나가, 이 상황을 돕기 위한 역할은 다이스케가 한다. 이들이 이런 사기꾼이 된 데는 자신들이 겪었던 사기가 큰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하고 이 사기 일을 그만 두려고 한다. 마지막 대상은 양식당 체인 <도가미 정> 사장의 아들이 도가미 유키나리다. 그가 나오는 모임에 나가 시즈나가 그를 유혹해 청혼하게 만들고, 가짜 보석을 사게 만드는 작전이다. 이 작전은 예상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변수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첫 번째 변수는 시즈나가 유키나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가미 정>의 사장 마사유키가 14년 전 다이스케가 본 용의자와 꼭 닮았다는 것이다. 시즈나는 유키나리의 요청으로 <도가미 정>의 오리지널 하이라이스를 맛보는데 이 맛이 <아리아케>의 맛과 똑같다. 마사유키가 레시피를 훔치기 위해 부모님을 살해했다는 추측에 이른다. 이 사실을 이전에 수사했던 형사들에게 말할 수도 있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자료와 정보가 필요하다. 이것을 조사하는 일은 고이치가 한다. <도가미 정>이 언제부터 승승장구했는지 듣고, 범인에 대한 확신은 더 강해진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들은 증거를 만들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사기에 농락당했던 그들이 사기꾼이 되고, 우연히 14년 전 용의자를 만나게 되는 과정은 빠르게 진행된다. 시즈나와 유키나리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원수의 아들을 사랑했다는 낭만적인 설정 속에서 증거물품 조작은 이어진다. 이런 증거물품이 나오면 이전 형사들은 잠시 활기를 띈다. 논리적인 모순이 있지만 목적한 곳으로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범인이란 확신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세 남매, 똑같은 맛의 하이라이스, 갑작스러운 성공, 이전 맛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 등이 시선을 한 곳으로 계속 유도한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이 반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모든 진행은 군더더기가 없다. 일본 드라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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