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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낯선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 시대를 돌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도, 동양의 역사도 아니면 더욱 그렇다. 이 소설의 배경은 1793년의 스웨덴이고, 그 나라의 역사는 더욱 낯설다. 20년간 전제군주로 군림했다는 구스타브 3세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고, 그의 암살이 어떤 전환점을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오고, 프랑스 혁명이 나와 비슷한 시대 배경을 짐작할 뿐이다. 이런 배경 지식이 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모른다고 읽기 힘든 것은 아니다. 현대 기준으로 그 시대를 이해하려고 무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소설 속 화자는 크게 4명이다. 1부와 4부를 이끌고 나가면서 하나의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들은 방범관 카르델과 인데베토우 청 세실 빙에다. 2부는 1부에서 발견된 시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2부에서 묘사한 참혹한 장면은 나의 상상력에 덧붙여줘 아주 끔찍했고, 이미지를 차단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3부는 또 다른 인물이 화자로 등장해서 그 시대 가난한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작은 권력을 쥔 사람들이 폭력을 어떻게 휘두르는지 보여준다. 별개처럼 보이는 다른 화자들은 하나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단순히 끔직한 살인 사건을 넘어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러시아와의 전쟁 경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카르델이다. 그는 이 전쟁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이 팔에 나무 의수 하나를 묶어 사용한다. 이 의수는 어떤 순간에는 좋은 방패가, 어떤 때는 무기가 된다. 하지만 그는 늘 술에 절어 있다. 처음 사지가 잘리고, 눈이 파헤쳐지고, 혀가 짤린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도 술에 취해 있었다. 쓰레기로 가득한 호수에서 그는 이 시체를 건져낸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다. 누군들 이런 시체에 놀라지 않겠는가. 이 시체가 그로 하여금 인데베토우의 유령이라고 불리는 빙에와 연결시켜준다.
빙에는 조금 특별한 수사관이다. 사건이 일어났으면 기소하고 형벌에 처하면 되는데 그는 그 이상을 원한다. 드러난 사건의 이면을 알고 싶어 한다. 감성보다 이성을 내세우지만 그는 결핵 환자다. 그가 언제 죽을지 인데베토우 청에서 내기가 걸릴 정도다. 재능은 있지만 조직과 쉽게 섞이지 못한다. 치안총감은 이 사건을 비밀리에 수사해달라고 한다. 언제 치안총감이 바뀔지 모른다. 현재 치안총감은 너무 열심히 일하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다. 시체를 검시해서 나온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둘은 단서를 좇는다. 시체에서 발견된 천 조각과 시체를 옮긴 도구 등이 그 대상이다.
작가는 1부를 끝낸 후 계절을 거슬러 올라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한다. 처음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접점이 조심씩 나온다. 하지만 그 접점이 만들어내는 참혹함과 비참함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빈민 구역의 열악한 환경과 대비되는 부자들의 뒤틀린 욕망이 표출되는 공간과 이어진다. 살아 있는 동안 사지가 잘린 남자가 어떻게 부호들의 유흥거리가 되었는지 말해줄 때 그 역거움과 잔혹함에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어떤 사연이 이렇게 잔혹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볍게 읽기 힘들지만 가독성은 아주 뛰어나다. 기존 영화나 그림에서 본 이미지가 이 책의 몇몇 장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다. 독한 술에 취해 하루를 이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무거움을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괴물을 만들어내고, 괴물이 공포를 자아내고, 그 공포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마비시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공포 속에 품은 작은 희망은 작은 단서가 되어 빙에 등에게 전달된다. 그 참혹한 절망 속에서도 결코 내려놓지 않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복수심일까? 그래서 마지막에 범인이 풀어놓은 자신의 사연과 빙에가 들려준 이야기는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다음 작품이 나온 것으로 아는데 과연 빙에와 카르델 콤비가 다음에도 이런 활약을 보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