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마가파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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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중일전쟁부터 좌우 사상 대립, 홍콩 반환 협상에 이르는 근대사를 아우르는 ‘홍콩 3부작’ 프로젝트의 1부다. 원제인 ‘용두봉미(龍頭鳳尾)’는 마작 용어라고 한다. 삼합회의 우두머리이자 영국인 정보경찰의 꼬리로 살았던 주인공 록남초이의 삶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홍콩판 남-남판 <색.계>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소개글들이 모두 나의 시선을 끌었다. 홍콩의 역사를 삼합회의 시선으로 풀어낸 것도 아주 인상적이다. 한창 유행했던 홍콩 영화 속 삼합회의 이전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처음 프롤로그를 읽을 때는 마가파이 가족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금방 록박초이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인물이 어떻게 홍콩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가 왜 남자에게 끌리는지 등을 보여준다. 이것은 자신과 아내의 과거 성폭행과 관계있다. 아내는 아빠에게, 록박초이는 작은아버지다. 이 나쁜 경험은 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록박초이의 아내 아귄은 엄청난 성욕을 발휘하고, 절정에 이르면 아빠를 외친다. 록박초이는 아내의 욕망을 완전히 채워주지 못한다. 그리고 작은아버지의 성폭행은 자신의 또 다른 성 취향을 깨닫게 한다. 물론 이 사실을 드러낼 수는 없다.

 

록박초이가 아내를 떠나게 된 데는 아내의 폭력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군벌 하나에 군인으로 입대한다. 여기서 그는 비밀이 밖으로 알려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배운다. 이 비밀이 죽음을 가져오고, 밀고자가 누군지 알게 되는 순간 폭력 아래 놓인다. 운 좋게 살아난 그가 다시 떠나 도착한 곳이 바로 홍콩이다. 이곳에서 그는 인력거꾼이 된다. 친구들과 함께 한 집에 살게 되는 데 이때 록남초이란 이름으로 바꾼다. 그는 현재에 완전히 안주하려는 마음이 없다. 주된 고객이 영국인이다 보니 영어를 배우려고 한다. 이곳에서 그는 다른 비밀 하나를 보고 만다.

 

평범한 인력거꾼이던 그가 영국인들을 태우고, 언어를 배우려고 하면서 영국인 정보경찰 모리스와 엮인다. 모리스는 록남초이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록남초이는 그에게 끌린다. 결국 록남초이는 모리스의 은밀한 애인이자 정보원이 된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는 홍콩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집에 돌아온 그가 본 것은 중일전쟁으로 척박해진 동네와 아내 아귄으로 인한 복잡한 가족 관계다. 동생이 아귄가 집을 떠났고, 동생을 보기 위해 간 광저우에서 그는 새로운 사실과 함께 삼합회의 일원이 된다. 나중에 매춘부를 관리하게 되면서 수많은 여성을 상대하지만 마음 한 곳에는 모리스가 차지하고 있다.

 

사실 록남초이보다 동생이 더 삼합회에 어울린다. 성격과 행동을 봐도 그렇다. 이때 록남초이가 하나의 마케팅 안을 내는데 이것이 조직에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다 홍콩에 새로운 삼합회 조직을 세울 필요가 생긴다. 그가 속한 조직의 두목 아들도 데리고 가야 한다. 그가 만든 조직은 손흥사로 불리고, 예전 친구들도 합류한다. 이 당시 삼합회는 군벌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작가는 이 조직들이 바라는 바를 간단하게 말한다. 바로 돈이다. 나중에 조직들 사이에 알력이 생겼을 때 이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그들 위에 누가 있는지도.

 

이 소설은 홍콩의 역사이지만 중국 역사의 한 자락을 차지한다. 당시 군벌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하이에서 일어난 암살 사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폭력배들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고, 이들을 뒤에서 경찰이 봐준다. 상납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중일전쟁과 더불어 일제의 침략은 홍콩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정보가 중요해진다. 모리스와 록남초이는 이런 이익관계 속에서 서로를 탐한다. 이 둘의 관계는 홍콩 역사의 이면이다. 경찰은 자신들의 편리함을 위해 삼합회 조직을 이용했고, 이것이 결국 홍콩 삼합회를 거리의 지배자로 만든다. 나중에 일제가 점령했을 때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평범한 인력거꾼이었던 그가 어떻게 삼합회의 두목이 되고, 권력과 엮이고, 자신의 동성애 취향을 숨긴 채 살았는지를 역사 속에서 보여준다. 홍콩하면 한때 떠나지 않았던 마작과 매춘과 마약이 역사의 한 자락을 차지한다. 이것들이 엮이고 얽힌 과거사 속에 한 인간의 사랑과 욕망이 조용히 꿈틀거리며 자란다. 비밀을 지키려고 하지만 드러날 수밖에 없고, 이 비밀은 또 다른 사람의 삶에 큰 무게로 작용한다. 이것을 작가는 ‘좆대로’란 단어로 삶의 기준을 삼게 만든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의지와 힘은 너무 무력하다. 상당히 가독성이 좋고, 작가가 발표하려고 한 나머지 2부작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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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8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강원주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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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 중 한 권을 읽었다. 다른 두 권도 집에 있는데 솔직히 말해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현학적이란 글을 보고 교코쿠도 나츠히코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이 소설을 조금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정말 힘들게 다 읽었다. 현학적인 내용은 뺀다 해도 트릭 등을 아주 열심히,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나도 활자만 따라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다시 읽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느리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고 싶다. 혹시 하는 마음 때문이다.

 

후리야기 성관은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넣어둔 성관과 닮았다고 하여 흑사관으로 불린다. 이 흑사관의 주인은 산테쓰 박사였다. 그는 유럽에서 의학과 마술을 연구한 인물이다. 이 가문은 카테리나 데 메디치의 사생아라는 비앙카 카펠로로부터 시작한다고 전해진다. 이 이름과 보스포루스 해협 동쪽이란 지명 때문에 이 흑사관이 일본이 아니라 터키 근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탐정부터 출연하는 인물들이 모두 일본인이다. 아주 현학적인 탐정인 노리미즈 린타노나 하제쿠라 검사나 구마시로 수사국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후리야기 가문은 이상한 죽음을 계속하고 있다. 산테쓰 박사가 1년 전에 기괴한 방법으로 자살했고, 흑사관 안에서 감금된 채 길러진 네 명의 외국인들이 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흑사관에 들어왔고,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들 중 한 명이 죽으면서 노리미즈가 하제쿠라와 구라시로 등과 함께 흑사관에 들어와 수사를 한다. 비극적인 가문 이야기와 연쇄살인과 신비주의 등을 엮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사실의 나열보다 신비주의, 점성술, 종교학, 심리학, 암호학 등의 다양한 학문들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추리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전문 분야 이야기가 나오면 집중력이 흩어진다. 수많은 문헌과 그 책에서 인용한 문장과 지식 등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뭐 덕분에 이 부분을 가볍게 스쳐지나가듯이 넘어가게 되지만 말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수사를 의뢰하고, 용의자 등을 심문하는 과정은 일반 추리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독자를 압도하는 작가의 지식들이 끝없이 나열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단하다. 어떤 순간에는 이 모든 문헌들이 작가의 창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작가가 엄청난 장서가인 듯하다. 책 사느라고 사업이 망하고, 가세가 기울 정도라니 대단하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이 문헌들을 읽고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인용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 책 사는 것보다 산 책을 읽는 것이 더 힘든 일이지 않는가. 물론 이 내용을 소설 속에 제대로 녹여내는 것은 더 힘들다.

 

아무리 힘든 소설이라고 해도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누가 범인인지 추론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작가는 이 추론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현학적인 내용들로 용의자로 심문하고, 용의자들도 현학적으로 대답한다. 그의 추론과 상관없이 누군가가 죽어나간다. 추리 내공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머릿속에 염두에 두고 읽었는데 범인과는 상관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나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흑사관의 구조와 과학을 이용한 가능성들이다. 고전 추리소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트릭인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약하다. 음에 대한 것은 또 어떤가. 솔직히 내가 지금 소화하기에 버겁다. 괜히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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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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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300쪽이 넘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왜냐고? 운문으로만 구성된 책이고, 이 운문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것은 운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문체가 가독성을 높이고, 엘리베이트를 이용한 설정은 다음 층에서는 누가 등장할지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호기심에 멈추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미국 흑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잠시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윌리엄의 형 숀이 총을 맞고 죽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너무 슬퍼다. 엄마의 통곡은 또 어떤가. 경찰에 밀고할 수도 있지만 이 동네에 룰이 있다. 첫째 울지 마라, 둘째 밀고 하지 마라, 셋째 복수해야 한다. 윌은 울지 않으려고 하고, 밀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수를 하려고 한다. 숀과 함께 쓰는 방에서 숀의 총을 발견한다. 윌은 누가 범인인지 짐작할 뿐이다. 마지막 룰을 지키기 위해 그는 허리춤에 총을 차고, 엘리베이트를 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 엘리베이트 안에서 일어난다. 자신이 생각한 살인자를 죽이기 위해 탄 엘리베이트가 로비 층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것도 각층마다 새로운 인물이 타면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각층마다 멈추는 엘리베이터에서 윌이 아는 사람들이 탄다. 이 인물들은 모두 숀이나 윌과 관계있다. 이 인물들은 이 룰이 만들어낸 비극을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복수란 이름 아래 행해진 살인의 이면과 숨겨진 사실을 낱낱이 드러낸다. 룰에 지배받던 윌은 억눌렀던 감정을 표출한다. 단 한 번도 총을 잡은 적이 없던 열다섯 살 소년의 삶이 뒤흔들린다. 총에 몇 발이 장전되는지도, 사람을 겨냥하는 방법도, 제대로 총을 휴대하는 법도 그는 모른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룰을 지켜야 한다.

 

룰 때문에 비극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엘리베이터의 시간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로비까지 가는 과정이나 대화를 생각하면 물리적 시간은 비현실적이다. 물론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트란 공간 속에서 만남이 이어지지만 이야기의 공간은 밖으로 확대된다. 이 확대된 공간과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비극은 단순히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가족의 비극이자 동네의 비극이고, 미국 흑인들의 비극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단순히 운문으로 쓴 것과 비극을 보여준 것만으로 이 소설을 평가하기는 부족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담배 연기 가득한 엘리베이트 안의 풍경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과거가 나열되면서 풀려나오는 사실이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다.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느낌이지만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표현이 없어 가독성을 더 높여준다.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또 어떤가. 그렇게 해서 밝혀지는 불편한 진실들은 또 어떤가. 인터넷 서점에 나온 수많은 수상 이력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예상한 것을 훨씬 뛰어넘은 작품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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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춘의 일기를 쓰다
나태주 시와그림, 김예원 글 / 시공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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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한 책이다. 부제대로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춘의 일기를 쓴 것을 책으로 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고 그 당시 자신의 삶과 생각과 연결해서 쓴 글을 모았다. 시인의 시가 그의 손을 떠난 순간 이 시가 어떻게 독자에게 읽히고 해석되고 삶과 연결되는지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전까지 개인적으로 나태주 시인의 에세이를 한 권 읽은 것이 전부인데 이번에 한 독자의 시 선집을 읽게 되었다. 최근 이 시인의 시에 조금씩 관심이 생긴다. 시집 한 권 정도는 올해 안에 읽고 싶다. 이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시인의 시에 자신의 삶을 주석처럼 달았다. 겨우 두 줄도 되지 않는 시에도 긴 글이 달렸다. 일곱 꼭지로 나누어진 구성은 편집의 결과이겠지만 좀더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나의 나이가 글쓴이보다 훨씬 많다 보니 그 감상이 가슴 깊은 곳까지 오지 않는 순간도 있지만 가장 간단한 관계와 감정들을 마주할 때는 공감하는 부분이 크게 늘어난다. 특히 첫 파트에서 부모가 된 이후 더 절실하게 느낀 감정들이, 내가 해주지 못하는 있는 일들이 가슴 한 곳을 쿡 찔렀다. “엄마는 언제 죽나? / 내가 죽을 때 죽지.”(<동행> 전문) 이처럼 짧은 시도 나의 감성과 이성을 깨웠다. 물리적 죽음보다 마음의 죽음을 더 생각하게 만들고, 철학적인 사고로 잠시 빠지게 한다.

 

김예원은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가 떠난 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과 문화는 그가 돌아와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하늘 올려다볼 시간을 샀다고 말하는 여행에 대한 글은 어느 저녁 해질녘 도로에서 본 하늘 풍경을 떠올려주었다. 괜히 감상적이었던 시간이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다보니 하늘 볼 시간은 더 없다. 회사 창밖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나 산의 풍경이나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 정도 전부다. 아마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하늘 볼 일은 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여행에서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을 사람에게 치유받는다는 평범한 이야기는 평범해서 좋다.

 

나태주 시인을 풀꽃 시인으로 만들어준 풀꽃을 정말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떠올린다 말할 때 약간은 의외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어를 이렇게 삶에 적용하다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해석을 좋아한다. 삶은 제각각 다르고, 문자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누군가는, 어떤 사물을 자세히, 오래 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은 깨닫는 것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저자는 이것을 참 빨리 깨달은 것 같아 조금 부럽다.

 

이십 대 청춘의 사랑은 다양한 과정과 결과를 가지고 있다. 사랑, 이별, 사랑, 그리움, 또 다른 사랑 등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싸우고, 고마워하고, 자신을 발견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란 이 말도 이 과정을 거친 후 마음속에 다가온다. 3년 사귄 남자의 이야기에서 사랑이란 양방향이란 글에 공감하면서도 왠지 태클을 걸고 싶은 것은 그 양방향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이 글들을 보면서 시인의 시가 또 어떤 식으로, 그 상황에 따라 이해되는지 살짝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인이 좋아할 글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우는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채우라고 말한 <마음을 비우라고?>는 시가 강한 인상을 주었다.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안쓰러워하는 마음으로 차고 넘치도록 채우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쁜 것들이 채워질 수 없다고. 솔직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 이 순간들만은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뒤로 오면서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시와 연결해 적은 글들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저자의 삶이 주는 생생함과 조금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순간 그녀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정리하고, 요약했을 것이다. 김예원이 말했듯이 그렇게 어려운 시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 쉬운 듯한 시어들 속에서 나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시인의 그림은 그 간결함과 섬세함이 익숙한 듯 편안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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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 -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 페러그린 시리즈 4
랜섬 릭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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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이다. 앞의 세 권은 읽은 적이 없다. 영화로 나왔다는 것도, 그래픽노블로도 나온 것을 알고 있다. 오래 전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주 두툼한 세 권짜리 시리즈는 솔직히 요즘은 도전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 새로운 이야기란 말에 혹했다. 이 책으로 시리즈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전편에 대한 궁금점이 강해지고, 이 책부터 읽어도 작품을 따라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하게 된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은 예고편 등에서 봤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몇몇 캐릭터는 영화 속 이미지가 살짝 따라왔다. 하나의 사건이 끝나면서 완결된 시리즈로 생각한 것이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성공한 작품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다면 이것은 더 쉽다. 전작을 모르니 소설 속 이야기만으로 앞의 이야기를 짐작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연속성을 가지지만 전작에 속박되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이 부분에서 성공했다. 전작을 몰라도 재밌고 빠르게 이 책을 완독했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정신 나간 아이 취급을 받으며 정신병원에 끌려갈 위기에 처했다. 이때 페러그린 원장과 이상한 아이들이 나타나 구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앞부분이 조금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들의 능력도 모르고, 왜 제이콥이 정신 나간 아이 취급 받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루프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오면 보통 이상한 아이들은 급속하게 나이를 먹는데 이들은 십 대의 모습으로 하루씩 나이를 먹는다. 과거의 시간 속에 박제된 채 살던 아이들이 현재에 와서 마주하는 풍족함과 발전 등은 그들에게 이상한 세계다. 과거와 현재가 충동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이것은 루프 속에 살아가는 이상한 사람들과도 관계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한 제이콥이 할아버지의 집에서 발견한 지하 비밀 창고와 그가 남긴 업무 일지와 지도들은 새로운 모험으로 이끈다. 이번 책은 할아버지가 미국 대륙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와 관련 있다. 업무 일지는 그것을 알려주고, 할아버지가 남긴 조그마한 단서는 할아버지 동료와 연락하게 만든다. 그는 바로 H이다. H와 만나는 과정도 쉽지 않고, 이 만남은 새로운 모험 속으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을 이끈다. H의 시험은 제이콥의 새로운 삶과 이어져 있다. 친구들과 함께 이 모험에 뛰어 들어간다. 그 첫 번째 지역이 플로리다다. 제이콥과 친구들은 이 여행을 페러그린 원장 몰래 하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청춘 소설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전 3부작을 읽지 않아 낯선 부분은 이들이 현대 무기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흔한 판타지라면 총을 맞아도 이상이 없어야 하는데 이들은 이상한 능력을 가진 아이일 뿐이다. 이 특수한 능력이 상황에 따라 그 힘을 아주 크게 발휘하지만 바로 앞에서 총을 든 사람을 만나면, 그 총에 맞으면 무력하다. 그리고 제이콥의 능력은 물리적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주 취약하다. 육체적으로 아직 청소년이고, 그의 능력이 일반 사람들이나 이상한 사람들에게 물리적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몇몇 위기 상황에서 그의 친구들이 큰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모험 중에 제이콥과 엠마의 사랑 전선에 살짝 문제가 생긴다. 엠마는 제이콥의 할아버지 에이브와 한때 사랑했던 사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시간 흐름 속에 산 사람과 박제된 시간 속에 산 사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제이콥은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설정에 따르면 이전 3부작은 유럽 대륙이 배경이었고, 새 시리즈는 미국 대륙이 배경이다. 왠지 모르게 제대로 된 통치권이 없는 무법 시대의 과거를 끌어들인 것이 서부 시대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갱들의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제이콥이 임무 수행 중 마주하는 현실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이 시리즈를 더 깊이, 더 잘 이해하려면 이전 3부작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는 기다려진다. 마지막에 던진 떡밥이 아주 강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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