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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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의 신작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적게 알고, 작가의 이름만으로 선택했다.

정보가 적다 보니 읽으면서 미세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이 어긋난 지점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는 여러 번 독자로 하여금 잘못 이해하게 하고, 상황을 꼰다.

뛰어난 가독성과 잘 짜인 구성은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오게 되면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왜 많은 스릴러 독자들이 이 작가의 작품에 빠져드는지 알겠다.


작가는 두 개의 시간과 두 개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나는 내털리가 출근해서 겪게 되는 현재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시간에서 현재로 오는 돈 쉬프의 이메일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내털리와 돈은 서로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하지만 사건의 시작은 돈이 출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온 이상한 전화다.

늘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던 돈이 출근하지 않자 내털리는 걱정을 한다.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온 전화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

왠지 돈이 걱정되는 내털리, 이것을 지점장에게 말하지만 무시당한다.

돈은 이전에 지점장 세스에게 오후 2시 미팅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2시가 되면 돈의 미출근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돈은 거북이 마니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바다거북이에 더 집중한다.

그녀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과 거북이 집착 등은 그녀의 성격 한 면을 보여준다.

돈의 이메일을 통해 내털리가 뛰어난 미모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돈은 내털리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내털리가 그녀를 밀어낸다.

사무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릴 시절 친구인 미아에게 이메일로 알려준다.

그러면 미아가 돈에게 약간의 조언을 한다.

이 이메일은 현재로 오면서 내털리를 둘러싼 나쁜 이야기가 더 늘어난다.

사내 왕따, 고객의 불만, 사내 불륜, 횡령까지.


돈의 이메일을 그냥 보면 사내 왕따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털리가 외근을 갔다가 돈의 집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바뀐다.

돈의 집안에서 발견된 상당한 양의 핏자국.

나타나지 않는 돈과 살인 가능성.

여기에 덧붙여지는 내털리의 알리바이 부재와 신경질적인 행동들.

섬세하고 교묘하게 묘사한 심리 묘사와 행동은 호기심을 증폭한다.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물들. 그리고 사실보다 소문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1부는 의심으로 가득 채우고, 사실에 대한 갈증을 불러온다.

2부에서 드러난 사실은 또 다른 반전의 시작이다.

에필로그에서는 반전과 숨겨져 있던 사실 일부가 드러날 뿐이다.

과연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까? 하고 묻는다면 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읽지 못한 작가의 다른 스릴러들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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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삶을 위한 수학 -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를 푸는 네 가지 수학적 사고법
데이비드 섬프터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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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를 푸는 네 가지 수학적 사고법’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원제가 <Four Ways of Thinking: Statistical, Interactive, Chaotic and Complex>이다.

사고의 네 가지 방법은 통계적, 상호작용적, 카오스적, 복잡계적 사고법이다.

사실 이 네 가지 사고법을 보고 생각한 것들은 읽으면서 깨졌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일부 확인시켜주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새로웠다.

수학을 멀리한 지 오래되었고, 실력도 낮은 편이라 세부적인 이해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내용 속에서 수학의 발전을 조금씩 엿볼 수 있었다.

아마 내 수학 실력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추천의 말에 더 공감했을 것이다.


실제 있었던 1997년 산타페 여름 학교에 가공의 인물을 덧붙였다.

가공의 인물들도 저자 주변 인물에서 빌려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실제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책 속에 그들이 들려주고, 설명하고, 질문하는 내용들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수학의 역사 속에서 내가 잘 몰랐던 수학자들이 많이 나온다.

현대 수학의 발전에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통계적 사고에서 만난 피셔는 통계적 사고의 틀을 바꾸었다.

우리가 현대에서 쉽게 만나는 통계학의 이면에는 그의 연구가 깔려 있다.

그런데 학문적 업적을 제외하면 그는 편견에 사로잡혀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상호작용적 사고에서 현실에서 우리가 의문을 가지는 몇 가지 답을 발견할 수 있다.

토끼와 여우를 두고 보여주는 그래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단순화해서 보여준다.

토끼가 늘어나면 여우가 늘어나고, 늘어난 여우 때문에 토끼가 줄고, 이 때문에 다시 여우가 준다.

이 순환은 단순한 듯하지만 외부 변수가 없을 때 정답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이렇게 작용하지 않는다.

셀룰러 오토마타가 나오면서 머릿속은 쥐가 나기 시작했다.

단순한 듯한 이진수 숫자들의 나열, 그것이 의미하는 바.

이런 어려움 속에 상호작용을 개선하는 핵심을 말할 때 고개를 끄덕인다.

기본 규칙을 파악하고 이를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현실 속 상호관계에서 우리가 쉽게 놓치고, 많이 실수를 저지르는 부분이다.


카오스적 사고는 카오스 이론이 먼저 떠오른다.

카오스 이론을 떠올리면 나비의 날개짓이 연상된다.

오래 전 이 이론을 읽을 때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이론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했는지, 나비의 날개짓이 어떻게 대표 이미지가 되었는지.

우리가 무시한 소수점 몇 자리 이하가 만들어낸 변수들.

기후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전 지구 곳곳의 대기 상태를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아야 변수를 제거할 수 있고, 정확한 답을 도출할 수 있다.

아폴로 11호 임무 성공에 기여한 마거릿 해밀턴의 프로그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스무고개를 이용한 설명은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준다.


마지막 복잡계적 사고법에 넘어오면 또 어떤 이야기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이 이야기에서 나의 시선을 끈 인물은 수학자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콜모고로프다.

천재 이야기에 늘 매혹되는 것은 그들이 세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콜모고로프가 단순화했다고 한 수학은 정말 배우고 알고 싶다.

복잡성에 대해 “복잡성이란 출력을 생성하거나 설명하는 프로그램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간결하게 표현된 공식 하나가 얼마나 단순하고 중요한지 알려줄 때 더 공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이 네 가지가 뒤섞여 있고, 미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삶의 한 지점에서는 이 네 가지 사고법 중 하나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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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를 배달합니다
최하나 지음 / 한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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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힐링 소설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요구르트 아줌마 대신 요구르트 언니를 등장시켰다.

스물여섯의 여울은 빠르게 돈을 모으기 위해 요구르트 배달을 시작한다.

씨드 머니 1억을 모은 뒤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것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요구르트 배달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단순하게 배달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고객도 모집해야 한다.

체력과 끈기가 없다면 오랫동안 이 일을 하는 것은 힘들다.

처음에 그녀를 냉담하게 쳐다본 아줌마가 있는 것도 잦은 이직 때문이다.

하지만 여울은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이런 일에 잔뼈가 굵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영업소에서 그날 배달할 요구르트 등을 받는다.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의 구역 안을 모두 돌아야 한다.

여울은 자신의 애마인 요구르트 카트 콩콩이를 몰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울에게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온다.

주인 몰래 나온 강아지 콩순이를 데려다 주다가 은둔형 외톨이가 된 청임을 만난다.

청임의 엄마는 딸이 집밖으로 나오면 요구르트 계약을 많이 해주겠다고 꼬신다.

이 상황을 쉽게 본 여울은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청임을 자신의 방에서, 집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은 힘들다.

빵순이란 사실을 알고 매일 와플을 구우면서 유혹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지만 꾸준한 노력과 정성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만든다.


대리점의 점장이 바뀌면 분위기도 확 바뀐다.

새롭게 온 점장은 악명이 배달원들에게 악명이 자자하지만 본사의 평가는 좋다.

회사 입장에서는 실적을 많이 올려주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새 점장은 오자마자 배달원들의 구역을 새롭게 지정해준다.

처음 받은 지역을 떠나 천사마을이라 불리는 산동네를 배정받는다.

지자체에서 독거노인들 집에 가장 싼 요구르트 배달을 요청한 것이다.

일은 힘들고, 큰 돈은 되지 않는 일이다.

경사가 가팔라서 콩콩이를 타고 올라가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긍정적인 여울은 밝고 쾌활한 목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배달한다.

그러다 이 마을의 빌런 같은 욕쟁이 할머니를 만난다.


이 욕쟁이 할머니는 세상을 삐딱하게 쳐다본다.

여울이 배달하는 요구르트가 공짜라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이 할머니가 여울을 데리고 약수터로 올라간다.

어쩔 수 없이 끌려 힘들게 약수터에 올라가는 여울.

평소 체력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불만 가득하지만 여울은 욕쟁이 할머니에 끌려 올라간다.

그러다 이 산행 뒤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된다.

욕쟁이 할머니의 과거, 욕 뒤에 있는 따뜻한 마음, 외로운 현실.

여울의 친화력과 밝은 표정, 끈기 있는 행동력은 여울을 한 번 더 성장시킨다.


요구르트 언니 여울의 성장과 현실의 문제가 같이 다루어진다.

은둔형 외톨이, 고립된 노인, 자립 준비 청년 등의 문제가 나온다.

이 문제들은 단순 명쾌하게 바로 해결되는 것들이 아니다.

여울이 직접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울이 문제들을 바라보고, 함께 하면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간다.

이 과정은 해결 과정이자 성장의 시간이다.

이 성장은 따뜻한 마음, 끈기, 타인에 대한 관심, 연대의식에서 비롯했다.

힐끔 쳐다보면 쉬울 듯하지만 현실에서 꾸준히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에필로그는 새로운 의미에서 여울의 성장을 보여주고, 그녀의 앞길을 응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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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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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자극적인 제목이다.

원제를 자극적으로 바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I를 좀더 기초부터 파고든다.

현재 AI가 어떤 단계를 밟으면서 성장하고 발전했는지 천천히 보여준다.

기계의 학습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먼저 밝힌다.

기계가 학습하도록 도움을 주는 기초 작업가들이 있다.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이라 불리는데 그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작업하는지 말한다.

이때부터 AI의 학습과 함께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펼쳐진다.

인공지능의 현재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를 묻고 돌아본다.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

이들이 작업한 데이터를 런던의 콘텐츠 검수자가 재가공한다.

한 단계를 지나면서 이 콘텐츠의 가격은 아주 높아진다.

아프리카의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과 확연히 다른 환경 속에서 그들은 일한다.

여기까지 읽고 난 뒤 우리가 알고 있던 AI의 공격을 좀더 바로 볼 수 있었다.

가까운 미래에 AI의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직 인공지능이 홀로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능력이 없다면서.

AI 훈련에 필요한 시간 대부분 데이터 주석 작업에 사용된다.

이 방대한 자료 등을 생각하면 왜 알지도 못하는 회사가 높은 가격에 팔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작업이 아프리카에서 가능한 것은 인터넷 혁명 때문이다.

광 케이블이 세계 곳곳에 깔리면서 이제는 어디에서나 인터넷 작업이 가능하다.

세계적인 AI기업들이 더 낮은 비용을 찾아 아프리카 등을 찾는다.

밀리 초 단위를 다투는 업종이 아니라면 데이터 센터를 지대가 비싼 선진국 도시에 둘 필요가 없다.

아이슬란드가 데이터 센터 산업에 유리한 이유가 흘러나온다.

친환경 에너지로 발전을 하고, 낮은 기온은 데이터 센터를 낮은 온도로 유지하는데 유리하다.

하지만 이 데이터 센터는 아이슬란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냉각기를 돌리기 위해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우리가 보통 신경쓰지 않는 분야에서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


AI의 학습은 기초 데이터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 학습 데이터를 모두 돈을 주고 산다면 너무나도 높은 비용이 필요하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데이터와 더불어 자신도 모르게 팔린 목소리 주인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아직 AI가 모방을 넘은 창작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직’이지만 영원한 것은 아니란 사실도 머리에 담아두어야 한다.

이후 AI로 관리되는 물류 창고 노동자와 실리콘밸리 투자자가 등장한다.

인간이 어떻게 반복적인 작업 속에 인간성이 마모되는지 보여준다.

여기에 벤처캐피털 투자자를 등장시켜 수익과 사업장 이전에 대한 현실을 말한다.

왜 기초적인 데이터 주석 작업들이 아프리카 등에서 계속되는지.

그리고 그의 자기합리화와 변명은 아주 낯익은 궤변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냥 피상적으로 생각한 AI의 학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하나의 AI만으로 전세계를 아우르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도 알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각각 다른 철학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학습한 AI들이 떠올랐다.

현재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종교 때문에 전쟁하듯이 AI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처음부터 계속해서 저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말한다.

약탈적이고 불공정한 무역 협정을 통해 자원을 수탈했던 신식민주의적 질서를 답습”한다고 지적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AI산업에 대한 환상을 가졌음을 알았다.

마지막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 등에 AI산업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말한다.

AI산업을 말하면서 끝까지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들을 중심에 세운다.

많은 정보와 소식 등이 머릿속에서 회오리 치고, 공부할 것들을 더 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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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 정은문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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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1979년이란 연도를 보고 생각한 것은 일본인이 본 계엄 당시 풍경이다.

이 소설에서 계엄 당시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열한 장 중 단 한 장에 불과하다.

오히려 자신이 머문 1년 동안 한국을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에 가깝다.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것이 2022년이니 43년 전 이야기다.

단순히 기억에 의존해 쓴 글인지, 한국에 머물면서 기록한 것이 바탕인지는 모르겠다.

이 당시 서울 지리와 물가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다른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 본 것과 비교하면 수긍할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단어나 표현 등을 보면서 살짝 눈살을 찌 뿌린다.

대표적인 단어가 일본을 ‘내지’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가 만난 나이 많은 한국인들이 계속 이런 표현을 쓴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1978년 술자리에서 한국 유학생 양 군의 말 한 마디에서 시작했다.

주인공 세노는 작가의 분신인데 실제 그의 한국 생활 당시보다 나이가 다섯 살 어리다.

한국 대학에서 일본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말에 술김에 신청했다.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은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느린 일 처리, 반일 감정이 실린 듯한 표정과 말들.

이것은 그가 한국에 있으면서 소포 등을 찾으러 갈 때 더 심하게 경험한다.

미국 친구가 영어를 사용하라고 한 대목은 부끄러운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과 대비되는 것 중 하나가 당시 일본어를 유창하게 사용한 사람들이다.

그가 하숙한 집주인이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내가 알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결코 일본어가 유창하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일본어로 공부한 사람과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의 차이.

일제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일본어로 공부한 지식인들.

광복 후 자신들이 바라는 삶을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반일 감정 때문에 ‘일본어과’란 이름 대신 외국어과를 사용했다는 사실.

앞에 말한 일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순되는 상황 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당시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그가 한국 오기 전 서점에서 산 책들로 배운 한국의 다양한 모습처럼.

그가 가르친 학생들과의 대화 등은 그 시절 학생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몰래 그를 찾아와 일본 사회운동가의 책을 말한 학생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한국에 있으면서 그는 한국말을 공부하고, 한국 영화 등을 본다.

너무 오래 전에 봐서 기억도 가물거리는 영화 제목이 나오면 괜히 검색해본다.

영화는 작가의 전문 분야인데 이 당시 한국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등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하길종 감독 관련 에피소드는 새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의 아내 전채린이 전혜린의 동생이라거나 자금난으로 촬영 중단되어 주연 여배우가 결혼했다거나.

미국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올 때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이 귀국을 말렸다고 한다.

코플라의 <대부>와 그의 <바보들의 행진>을 생각하면 많은 아쉬움이 생긴다.

전채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료를 받는 장면 등은 영화 팬의 한 명으로 부럽다.


당시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시각은 그의 친구들 말에서 잘 드러난다.

동시에 한국을 비하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얼마 전 우리의 모습이 겹친다.

우리가 얼마나 동남아나 중국을 비하하고 무시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시절 그들이 알던 한국의 음식 문화는 편협했고, 무지했고 일부 사실이다.

일부 음식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경험을 풀어낸 장면은 옛 기억을 불러온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풍경은 신선했고, 그가 만난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일본인의 한국 기생 관광은 한국인의 동남아 매춘 관광과 이어진다.

현재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달랐던 과거 한국의 풍경과 문화를 그려낸다.

정치에 대해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오히려 일부 사실을 왜곡한다.

읽으면서 과거의 풍경과 문화 속으로 빠져들고, 다른 시각으로 본 한국의 옛 모습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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