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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
신란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풍장은 티베트 전통 장례방법이다. 예전에 다른 책에서 풍장을 세부적으로 묘사한 글을 읽었는데 하나의 문화임을 알고 있어도 쉽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른 문화의 특징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면서 머릿속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 그 장례를 본다면 어쩔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풍장은 우리의 문화와 괴리가 심하다.
작가가 결혼 백일도 되기 전에 티베트에서 전사한 남편을 찾다가 30년만에 돌아온 여자를 인터뷰한 것을 소설로 구성한 것처럼 꾸몄다. 남편의 이름은 커쥔, 아내의 이름은 수원이다. 이 둘의 사랑을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문을 열지만 곧 티베트 전장으로 떠난 남편과 그를 기다리는 아내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느 날 한통의 전사 통지서가 날아온다. 남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그녀는 남편을 찾아 티베트로 떠날 결심을 한다. 이 결심은 그녀를 낯선 티베트로 가게 만들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30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30년. 결코 짤은 시간이 아니다. 티베트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지만 이 정도 시간이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시간을 다르게 묶어버린다. 그 시작은 그녀의 부대가 티베트로 들어와서 매일 밤 두 명씩 살해당하고, 우연히 한 티베트 여자 줘마를 구해주면서부터다. 매일 자신의 동료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티베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자라고 있는 부대원들에게 그녀의 살해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원의 노력이 줘마를 구하고, 이 줘마를 통해 다시 그들이 티베트 군인들의 살육에서 벗어난다. 이 과정은 하나의 윤회처럼 그려져 있다.
원과 줘마가 티베트 군인들과 함께 다니다 사고로 떨어졌을 때 한 유목민 가족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 만남은 원이 티베트를 이해하게 만드는 시발점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과 문화 양식이 거라 가족과의 생활 속에서 충돌하고, 충격을 준다. 지금도 굳게 닫혀 있는 문화 속에서 산다면 놀랄 정도인데 60년대의 그녀라면 더 심할 것이다. 이 문화 충격을 자신의 시선에서 보는 것에서 점점 벗어나는 것이 바로 그들과의 어쩔 수 없는 삶을 이어가면서부터다. 그리고 도중에 줘마가 납치된 사건은 말도 통하지 않은 그녀를 그 유목민들에게 더 오랫동안 묶어두게 만든다. 그것이 비록 불행한 삶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긴 시간을 티베트에 머물지만 그녀의 삶은 변방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그녀와 함께 동행한 사람들의 행동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도시나 트랙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들의 놀람과 먹을 것 대신 사치품을 사는 티베트 사람들의 삶을 보는 원의 놀람은 문화 충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시간들을 작가는 결코 끊어서 보여주지 않는다. 몇 년이 흘렀다거나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다거나 하는 서술을 피하고 그녀의 삶에 집중한다. 그리고 결코 가슴 한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 커쥔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세부적인 감정의 흐름을 생략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고, 그리워하고, 아파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한 여성이 30년간 티베트에서 죽은 남편을 찾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놀라움은 티베트와 중국 간의 전쟁과 대립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티베트 사람들이 중국의 침공으로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는 사라지고, 중국 부대원의 전멸이나 죽음은 명확히 그려진다. 혁명이니 해방이니 하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원래의 목적은 흐려지고,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에겐 한없이 불편한 진실이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다시 우리의 고대사나 북한으로 이어지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세밀하게 그려내지 않음으로써 그 긴 세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조금 부족하다. 하지만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유목민들의 삶과 티베트의 문화는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한다. 자연스럽게 티베트 문화 속으로 동화되는 원의 삶은 그녀의 사랑과 더불어 감동을 준다. 화려함은 사라지고, 투박하지만 간결한 묘사들은 시간을 넘어 그녀의 삶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이 지닌 몇 가지 약점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