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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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가 직접 뽑은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작이란 말에 혹시 읽기 힘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쓴 소설을 쉽게 읽은 적이 없기에 그가 뽑은 소설도 그렇지 않을까 괜히 겁먹은 것이다. 하지만 천재 소매치기와 절대 악의 화신이 대결한다는 광고 문구 덕분에 이런 염려를 들어낼 수 있었다. 악과 악의 대결 구도란 점이 속도감을 높여주고, 긴장감을 불러올 것이란 짐작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나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소매치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이 능력은 그로 하여금 보통 사람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파악하고, 지갑을 훔쳐내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지만 쉽게 긴장을 풀고 일상 속으로 편안하게 들어갈 수 없다. 비록 그가 소매치기 하는 대상이 부자들이라곤 하지만 그 속엔 친절한 사람도 존재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선한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능력은 반복될수록 나쁜 무리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운명이 소용돌이치고, 긴장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부는 그의 과거를 다루고, 후반부는 그의 현재를 다룬다. 과거를 다룬다고 하지만 현재 속에서 회상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 기자키와의 만남은 절대 악과의 만남이다. 그와 함께 소매치를 했던 이시카와를 회상하면서 드러나는 과거의 사건은 그로 하여금 도쿄를 떠나게 만든다. 그 사건 이후 이시카와의 생사는 알 수 없는데 그가 죽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이 다시 돌아와 소매치기를 하는 장면인데 그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사건을 암시한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자키와의 재회와 그의 협박으로 소매치기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우연히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소년의 일이다. 특히 이 소년이 엄마와 함께 어설프게 훔치는 장면은 그로 하여금 과거 속 자신을 떠올려준다. 그들이 들켰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후 소년이 그를 따르면서 여러 가지 일이 생기는데 이 관계가 미래를 바꾸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소년에게 훔치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가 도덕적인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과 불안 때문에 그렇다. 

사실 광고 문구처럼 대결 구도에서 오는 긴장과 스릴을 많이 기대했다. 하지만 작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다. 소매치기할 때 긴장감이 고조되지만 일시적인 반응일 뿐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가 기자키를 거부하고 대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자신의 옆에 그 어떤 조력자도 없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쓰리’는 것뿐인 상황에서 대결이 펼쳐질 수가 없다. 오히려 기자키가 말한 유럽 귀족의 운명 이야기가 그에게 더 적합하다. 

절대 악과의 대결에서 오는 긴장과 스릴이 없다고 하지만 다른 재미가 가득하다. 그가 소매치기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심리묘사와 세부적인 상황 설명은 긴박감을 주고 몰입하게 만든다. 그의 감정과 심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기자키의 등장은 언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불러온다. 특히 마지막 세 번의 쓰리는 누군가에게서 흔적도 없이 무엇인가를 훔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한지 알려준다. 그의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머릿속에 그려지는 쓰리 장면은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말인데 속편을 통해 광고 문구 같은 대결구도가 본격적으로 펼쳐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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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4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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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가 돌아왔다. 그것도 유부남으로 말이다. 연쇄살인범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의 활약이 이번에도 펼쳐진다. 그런데 그가 리타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왠지 모르게 약해진 것 같다. 인간의 감정이 메마르고 이성에 의해 감정을 연기하던 그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서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좀더 조심하게 되고, 약점이 생기고, 적들은 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기는 위협은 덱스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문제로 확대되고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파리 신혼여행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덱스터에게 파리는 따분한 공간일 뿐이다. 리타가 즐거움과 기쁨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마이애미의 밤거리다. 자신 속에 있는 검은 승객과 함께 죽일 대상을 물색하고, 끔찍한 살인으로 욕망을 채우고 싶어 한다. 물론 파리에서도 가능하지만 그곳은 정보도 없고, 능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러다 떠오른 명소가 모르그 가란 것은 그의 따분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신혼여행은 기한이 있고, 그리워하던 마이애미로 돌아온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온 첫날 끔찍한 시체가 그를 기다린다. 해변 가에서 뱃속에 내장 대신 과일바구니를 채워 넣은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이것이 단 한 구라면 문제가 없을 텐데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시체들은 보기 좋은 모양을 전시된 것처럼 꾸며졌고, 덱스터 속의 검은 승객은 이 시체들을 보고도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연쇄살인사건 담당형사가 된 데보라는 덱스터의 정체를 이미 안 상태고, 그에게 사건을 해결할 단서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그리곤 단서를 찾아 그녀는 덱스터와 함께 현장을 돌아다니고, 관광청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용의자를 방문하던 중 칼에 찔린다. 그녀의 생명은 위태로워지고, 덱스터의 이성은 감정에게 자리를 살짝 내준다.

이번 소설은 이미 파리 신혼여행에서 단서를 살짝 흘려놓았다. 그 단서는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단서를 따라 가다가 만나게 되는 하나의 동영상은 덱스터를 불안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데보라를 찌른 범인이 풀려난 후 그가 저지른 살인 장면을 담은 영상이다. 이 영상을 따라가서 만나게 되는 사실들은 끔찍하고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범인이 보여준 영상에서 그의 가족의 위험이 드러난다. 덕분에 시리즈 속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덱스터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호기심을 낳게 한다.

덱스터. 그는 강하다. 착하고 성실한 혈액분석가란 겉모습을 치워내면 냉정하고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연쇄살인범이 나타난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이 반영웅이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모른다. 분명히 악을 법의 신판으로 물리쳐야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그가 보여준 거침없는 살인은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욕망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작가가 선 대 악이 아닌 악 대 악의 대결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독자 속 검은 승객을 살짝 깨우게 만든다. 

이번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가족은 무겁지만 낯익은 소재다. 데보라가 덱스터 정체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이나 덱스터가 리타에게 계속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현실이 모순적으로 펼쳐진다. 아직 그의 정체를 둘러싼 갈등을 덮어두고 펼치지 않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되면 반드시 전면에서 부각될 내용이다. 그리고 리타 아이들의 성장과 활약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코디의 말과 행동은 작은 덱스터나 다름없다. 이 아이들과 리타와 데보라로 이루어진 가족이 그를 어떤 식으로 변하게 할지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약간 무뎌진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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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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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원서능력자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서를 읽을 수 없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시리즈나 미출간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요즘엔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좋은 작가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쌓여 있는 책도 많은데 원서까지 읽고 쌓아야 한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공간과 돈이 더 부족해질 것이다. 버나드 콘웰은 이 책 포함하여 두 권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나에게 안타까움과 다행을 동시에 줬다.

스톤헨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다. 이곳을 두고 수많은 학설이 오고 간다. 이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각 방위가 천체운행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등과 결합하여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떤 작가들은 이곳에서 비밀 종교 의식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었고, 현재도 이곳에선 종교의식이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확한 용도나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이 없다. 

작가는 불가사의한 스톤헨지의 비밀을 선사시대로 우릴 인도하고 그 거대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그 속엔 그 시대의 삶, 사랑, 탐욕, 마법, 음모, 전투, 모험, 과학 등이 담겨있다. 그 중심엔 해와 달의 신이 있고, 배다른 세 형제가 얽히고설킨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그 시간은 현대의 것과 다르다. 특히 형제 중 사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의 삶은 굴곡이 심하다. 부족장이었던 아버지가 큰형에게 죽은 후 노예로 팔려가고, 그 상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노예로 변한 것이 또 다른 음모임이 드러난 후에도 그의 삶은 계속해서 수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데 가장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면서 인도적인 인물이다.

이야기는 사반이 큰형 렌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사연에서 시작한다. 성인식을 아직 치르지 않은 소년 사반이 큰형에게 사냥 등을 배우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가 이방인을 발견한다.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을 예상하지만 이 시대 이방인은 약탈자이자 도둑이다. 이방인을 뒤쫓아 가서 그를 죽인다. 그가 가진 물건 중 황금이 있다. 형은 자신이 가지려고 하고, 동생은 부족장인 아버지에게 가져다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충돌이 생기고, 이 기회를 노려 사반을 죽이려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황금이 이 거대한 상상력을 움직이는 동력원이고,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다.

렌가가 호전적인 전사로 폭력과 죽음을 보여준다면 둘째 형 카마반은 영악하고 음모와 마법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인물이다. 사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신비하면서도 광기에 찬 인물이다. 불구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태양신 슬라올의 사제임을 자청해 나서고, 달의 신 라하나를 숭배하는 여마법사 사나스에게 마법을 배우고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식을 쌓은 후 명성을 떨친다. 미신이 넘실거리던 그 시절 어느 정도 자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고, 슬라올에 대한 광신은 스톤헨지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모든 폭력과 광기의 또 다른 표출이다. 

한 소년의 성장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수많은 부족의 삶과 사랑과 종교가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자연 현상은 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오고, 현재에서 보면 아주 조그마한 지식이 거대한 저주와 마법으로 둔갑하여 그 시대를 지배한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설정은 성인식에서 실패하여 전사가 되지 못한 아이들이 사제가 되는데 이들이 점점 또 다른 권력을 잡고, 전사들에게 공포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육체적 능력이 부족한 그들이 지식으로 지배계급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조금은 알게 된다.

전작에서도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손에서 떼기가 쉽지 않다. 하나의 돌을 옮기기 위해 그들이 들이는 공력과 시간을 생각하며 한 장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이 세 형제의 대립과 갈등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찬양은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임을 보게 되고, 고대인의 삶에서 시간의 옷을 벗겨내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과 거대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이 지닌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갑자기 스톤헨지를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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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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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 중국 관련 책을 읽다보면 그곳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과 괴이한 동물들에 놀라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특히 <산해경>을 인용할 때면 언제 꼭 한 번 읽어야지 마음을 먹지만 왠지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읽은 책들 속에서 중국 신화와 역사를 통해 많은 인물과 이야기를 만났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지 못했다. 역사의 흐름은 알게 되었지만 단순히 중화주의의 부산물로 가득했기 때문에 살짝 거부감이 생겼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가 이 사실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최근 엄청난 역사 왜곡을 실현하고 있다. 한때 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동북공정을 비롯해서 얼마 전까지 그렇게 오랑캐 족이라고 욕했던 만주나 몽골에 대해서도 자국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거대한 영토와 수많은 소수민족을 중국이란 하나의 국가 속에 통합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사라져 가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유물과 유산은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작업이 완료된 시점에서는 원 나라나 청 나라가 중국이란 거대한 제국 속에서 분열과 통합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 민족의 거대한 업적이나 실패는 역사 속에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이다.

왜 중국의 역사 왜곡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느냐고, 이 신화 이야기가 이런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염제 신농의 동이계와 황제의 화하계의 대립을 중국 신화 속에 넣어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 고대 문헌의 원전 자료를 인용하고 연구한 결과물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저자는 기본적인 서술 방향을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라는 두 가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의 시각에서 볼 것을 제안하고, 이것을 중국 신화의 상호 텍스트성, 중국 신화의 해체 및 동양 신화적 시각에서 다시 읽기 등으로 구체화했다. 그 덕분에 놀랍고 신기하고 괴상하고 독특하고 과장되고 허황된 것 같은 이야기 속에서 숨겨진 의미와 변질된 역사를 조금씩 파악하게 된다. 단순히 신화의 나열이나 서술을 넘어 중국 신화와 서양 신화를 비교하고, 한국 신화와도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중국 신화가 중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동양 신화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화란 무릇 인간이 잃어버린 태초의 본성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아닌가!”(33쪽)란 문장을 통해 중국 신화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현재의 중국 한족이 하나의 민족이 수천 년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족들의 결합임을 말하고, 염제 신농 등을 통해 중국 문명이 처음에 동방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부분은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중국 원전 속에 가려진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해석하고 비교한 결과물이다. 한국인으로 단순히 기분 좋은 연구일 수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도 또한 사실이다.

책은 11부 3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과 땅이 열리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신화 속 인물들과 영웅들을 거친 후 이상하고 괴상하고 신기하고 별난 사람이나 사물들을 보여준 후 낙원과 지하 세계로 마무리한다. 이 과정은 대부분 연대순으로 이어지는데 신화 속 인물이 후대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알려주어 신화가 완전한 것이 아닌 시대 속에 변형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엔 중화주의나 유교의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적 사고 등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 또 이런 신화를 서양 신화와 비교 분석하여 유사성과 차이점을 알려주는데 여기서 동서양의 철학 차이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동양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대한 유산을 마주하고, 역사 속에 그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의 미스터리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이 책의 가치는 아주 많다. 중국 신화를 중국에 한정시키지 않고 동양으로 확대한 것을 비롯하여 서양 신화와 비교, 분석한 것이나 동양 신화를 잘 구분, 정리하여 그 흐름을 잘 파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풍부한 자료 사진은 과거와 현대의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를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활자로 묘사된 것을 실제로 볼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사진에 나 자신의 상상력을 덧칠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동양 신화로 읽어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다른 저서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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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의 발소리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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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 이후 두 번째로 미치오 슈스케의 책을 읽었다. <섀도우>에서 서술트릭을 사용하여 나를 완전히 속였는데 이번 단편집도 마찬가지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여섯 편의 미스터리가 담겨 있는데 그 한 편 한 편이 수준급이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뻔한 결말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솟아나는 소름은 멋지고 섬뜩하다. 반전과 더불어 인간의 심리 밑바닥을 훑고 지나가면서 어둠을 이렇게 잘 표현한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단편집이다.

<방울벌레>는 11년 전 죽은 친구S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다. 친구를 죽이고 묻은 그에게 들려오는 방울벌레 소리는 그의 신경을 건드린다. 하지만 이 소리 뒤에 숨겨진 사실은 과거의 회상을 거치면서 반전이 펼쳐진다. 방울벌레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감정과 심리의 복잡한 흐름은 앞에 펼쳐놓은 단서들과 더불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짐승>은 개인적으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작품이다.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화자가 넘어진 의자 다리 속에 적힌 문장을 보고 S의 살인사건 내막을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뛰어난 가족들에 비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그가 신문기사 등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은 어쩌면 전형적이고 뻔한 전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S의 살인사건의 전모가 짐작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반전에 있다. 반전은 섬뜩하고, 구성은 반전과 맞물려 제목과 소설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 사건을 둘러싸고 회상과 추억이 뒤섞이면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작품이 <요이기츠네>다. 학창시절 악행이 현재의 그를 휘감아오고, 이 때문에 환상 속으로 현실이 매몰된다. 나쁜 친구 S 때문에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것은 단순히 핑계다. 용기가 부족했고, 자신 속에 담겨 있는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축제와 짧게 결합한 작품인데 심리 묘사가 너무 혼란스럽다.

<통에 담긴 글자>는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거짓이 이어지고, 속임수가 계속되면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유감이다’란 이 짧은 문장에서 시작되는 사건의 전말은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섭고 강렬한지 보여준다.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가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실들을 펼쳐놓게 만든다. 그리고 살인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책제목 술래의 발소리가 나오게 된 <겨울의 술래>는 일기 형식이다. 약간 밋밋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밝혀지는 사실과 행동들이 가슴 한 곳을 서늘하게 만든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마음은 망가지지 않았다.’란 문장이 훈훈하고 따뜻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의 웃음은 섬뜩하다. 그들의 행복이 나에게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은 그들이 보여준 엽기적인 행동 때문이다. 불편한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 단편 <악의의 얼굴>은 친구 S에게 이지메를 당하는 나의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 속에 S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 공포를 몰아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이웃집 여자다. 그녀가 말하는 황당한 일의 사실이 밝혀진 후 펼쳐지는 사건들은 인간 심리의 맹점을 그대로 파고든다.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는 그 소년을 보면서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용하면서도 갑자기 S의 웃음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 의미가 결코 순수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사건을 암시할 때 다시금 우리의 심리를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서 화자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의 약자가 모두 S다. 어떤 작품에선 작가를 내세우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의 이름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어느 작품에선 오츠 이치의 단편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다고 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른 작품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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