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이 스님 독특하다. 까다롭다. 술 좋아하고, 칵테일은 보헤미안 드림을 선호하고, 담배는 던힐만 피운다. 우리의 기준에서 보면 땡중이 분명한데 일본에선 다른 모양이다. 어쩌면 슈겐도라는 종교가 이것을 허용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외형적 사실은 매주 토요일 밤 스낵바 에이프릴에서 지장 스님의 살인사건 경험담을 듣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곱 주 동안 벌어지는 그 모임은 그 이야기를 듣는 모두를 즐겁게 만든다.
단편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명탐정 코난과 김전일이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스님이 가는 곳도 마찬가지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산속 저택의 가장파티에 우연히 참석한 곳에서, 여우에 씌어 있던 노파를 구한 후 신흥종교에 빠진 딸을 구하러 갔다가, 지나가는 길에 친구의 집에 잠시 들렀다가, 야쿠자 똘만이와 시비가 붙었다가, 산속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내를 도와주다가, 산속에서 멧돼지를 만나 꼼짝 못한 순간 등의 만남을 통해 살인사건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처럼 사건을 예방하지는 못하지만 탁월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찾아낸다.
이 일곱 편의 이야기 진행방식은 동일하다. 모임에 사람들이 모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 이야기에 맞춰 지장 스님이 자신이 경험한 살인사건을 말한다. 먼저 현장에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사건이 벌어지기 전 상황을 이야기하고, 사건 후 현장을 다시 한 번 더 말한다. 이 이야기 속에 사건과 단서를 동시에 담고 있는데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추리를 먼저 내놓는다. 가끔 지장 스님이 움찔할 정도로 정답에 다가가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도 맞추지 못한다. 반면 미스터리 마니아 도코카와 부인의 의문을 그가 너무 쉽게 맞추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스님의 경험이 사실인 것과 상관없이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더욱 사로잡는다.
반복되는 형식이지만 소설 속 화자인 전직 영화 청년 아오노가 모든 사람의 바람을 담아 “꼭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이하, 지장 선생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진짜 있었던 일인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그 체험담을 듣고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할 뿐이다. 그래서 여행하는 추리소설의 화신이란 표현도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또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따지는 순간 손 안에서 사라져버리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까.”(363쪽)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그들이 지장 선생의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한 후 그가 사라진 것과 맞물려 있다. 그가 사라진 후 모임은 계속되지만 이제 지장 선생은 없다. 이것은 독자에게도 큰 아쉬움이다.
이 미스터리 단편들을 읽으면서 한둘은 범인을 맞추었지만 대부분은 놓쳤다.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범인이 쉽게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신경을 썼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지만 말이다. 코난이나 김전일처럼 긴 시리즈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그의 이야기가 실제 경험담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될 무수한 살인사건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독특하고 까다롭고 개성 강한 이 행각승 탐정의 다음 이야기가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