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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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석유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석유가 없었다면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편안함과 풍족함은 없었을 것이다. 이 책 속에서도 지적했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중 석유에서 비롯하지 않은 물건이 거의 없다. 만약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혹은 만든 후 배달 과정 속에 석유가 있다. 예전에 이 사실을 알고 왜 그렇게 석유에 미국이 집착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석유가 사라진다면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이 책 속에 많은 부분 나온다.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전체적인 흐름은 사실일 것이다.

원제는 “1갤런 당 20불”이다. 도대체 1갤런이면 어느 정도일까? 약 3.78리터라고 한다. 현재 자동차 휘발유 가격이 1700원 대임을 생각하면 한국은 이미 4달러 유가가 실현되고 있다. 이보다 유가가 더 높아지면 어떨까? 아마 자가용을 운전하기보다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이미 IMF시대에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무대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현재 우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휘발유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유가와 상관없이 유류세가 일정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름값이 올라도 세금은 동일하고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다는 의미다. 저자는 이런 것도 역시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유가의 변동에 따라 변하는 우리의 집, 차, 직업, 휴가 등에 중심을 두고 있다. 석유는 한정되어 있고, 그 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다. 이 사실 속에서 유가가 어느 정도로 올랐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에 대한 의문에 답한다. 그 처음으로 4달러를 말하는데 가장 큰 변화가 차다. 이 가격이 되면 사람들이 기름을 많이 먹는 차를 버리게 되고, 점점 유가가 오르게 되면 월마트 등의 대형쇼핑몰에도 변화가 온다고 말한다. 우리도 현재 집 주변의 슈퍼마켓보다 차를 몰고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미국의 경우는 30분 이상을 달린다고 한다. 교외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차로 출퇴근을 하는데 이때 기름값으로 지급하는 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 그러니 당연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심으로의 인구이동이다. 현재처럼 교외에서 차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시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장거리 출퇴근자들이 유가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란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전기차 등에 대해서도 말한다. 전기차를 모두 타게 되면서 생기는 과사용에 대해 대비하는 새로운 기업체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 변화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상당히 흥미롭다. 이어지는 유가의 변화에 대한 미래 시나리오는 현실 속에서 뿌리를 두고 계속되는데 한 편의 SF소설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 덕분에 읽기는 더욱 쉽고 재미있다.

화석연료가 점점 소진되고, 그 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삶도 변한다. 교통수단이나 배송방법이나 사는 지역의 위치도 변한다. 낮은 유가가 우리의 삶을 풍족함을 넘어서 낭비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면 높아진 유가는 과거의 절약과 검약을 상기시킬 것이다. 에너지 사용이 과도해지면 각종 탈 것들의 운용비용이 상승하고, 변화를 강요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대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에서 단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수많은 대체 에너지 기술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는데 최선의 것으로 원자력을 꼽는다. 전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이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점점 다가간다는 사실엔 동의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우리의 삶이 어떤 기반 속에서 발전했는지, 우리가 누리는 풍족함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더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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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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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페터 회의 소설을 읽는다. 뭐 이렇게 말하면 나 자신이 아주 많이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딱 한 권 읽었다. 바로 그 유명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도 사실 조금은 난감했다. 중역 때문인지 집중을 하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고, 낯선 풍경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사건들이 가슴에 꼭 와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읽히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기다렸다. 이것은 왜일까? 지명도 때문일까? 아니면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은 때문일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번 소설을 만났다.  

 

전작처럼 이번에도 쉽게 가슴으로 파고들지는 못했다. 1/3 가량 읽으면서 왠지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음악적인 느낌을 더 받았다. 그 후 집중력이 깨어지면서 이 흐름을 다시 찾지 못했는데 상당히 아쉬웠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현실과 환상이 조금이 뒤섞이고, 주인공 카스퍼의 능력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올수록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진도는 잘 나갔다. 이야기가 품고 있는 힘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카스퍼를 통해 펼쳐지는 고전음악과 소리의 세계가 경이롭고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보여준 책 앞부분 문장에서 느낀 음악적인 느낌이 사라진 것은 바로 이런 경이로움에 둔감해지고, 이야기에 집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카스퍼. 그는 광대이자 뛰어난 음악가다. 특별한 청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사실 특별하다는 단어만으로 부족하다. 그는 소리를 통해 사람을 구별하고, 그 사람의 감정이나 속도 들여다보고 느낀다. 그가 감정을 소리를 통해 접근할 때 그 낯설고 신비로운 능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 자신도 이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확실히 모르겠다고 말할 때조차도 말이다. 또 그가 아이들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을 치료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능력을 보면서 고개를 절로 끄덕인다. 현실에서 이 청각능력은 또 다른 힘을 발휘한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그 사람의 소재지를 안다. 소리의 울림과 음색을 통해 구분하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 CSI에서 삼각법을 사용하여 소재지를 찾던 것이 생각났다. 물론 카스퍼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 


이 소설에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 지진과 홍수로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 출간이 2006년인 것이나 카스퍼의 나이가 마흔둘인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시간보다 앞이다. 이 시간은 사실 출간 당시를 배경으로 한다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간적으로 코펜하겐이나 그 도시가 지진과 홍수로 일부 가라앉았다는 사실은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설 속 핵심 내용이 코벤하겐의 침몰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은 카스퍼의 능력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소리에 대한 탁월한 능력은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수많은 소송과 세금 문제가 섞여있다. 세계적 인기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고, 그 풍요는 결국 그의 인간적 성장과 발전을 방해한다. 이런 현실에서 스페인은 그를 고소하고, 곧 그곳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최소 5년은 감옥에 살아야 한다. 이때 한 소녀가 나타난다. 클라라마리아다. 이 소녀는 그를 끌어당긴다. 이 끌림은 그를 방황하고 조사하게 만든다. 결국 다다른 수녀원에서 만나게 되는 놀라운 장면은 그가 지닌 능력을 압도할 정도다. 그리고 현실은 그가 이 소녀를 찾게 만들고, 이 소녀를 둘러싸고 있는 비밀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까운 미래와 카스퍼의 신비한 능력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속도감 있게 읽히고 재미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문장과 소리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덕분에 좀더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고전음악과 소리에 대한 풍부한 설명과 해설은 흥미를 자아내는 동시에 나를 압도한다. 머릿속에서 그 음악들을 재현해보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하다. 대신 바흐에 대한 관심은 다시 높아졌다. 이미 다른 책에서 그에게 빠진 글을 읽고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바흐를 좋아하는 것이 완벽한 대위법으로 펼쳐지는 음악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나도 한 번 느껴보고 싶은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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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
캐서린 호우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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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에서 마녀재판이 있었다. 20명이 넘는 사람이 마녀로 지목당하고 처형당했다. 유럽의 종교재판이 벌어지던 시기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지만 신대륙으로 불리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작가는 바로 이 다양한 해석과 그 시대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마녀에 대해 새롭고 신선한 해석을 보여준다.

박사과정 시험에 합격한 코니에게 어느 날 엄마의 부탁 전화가 온다. 그것은 외할머니의 집을 수선해서 팔아 체납된 세금을 납부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매사추세츠 주 마블헤드로 온다. 18세기 낡은 집은 먼지 가득하고 온갖 잡초와 풀들로 가득하다. 그곳에선 낯설고 신비한 경험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집안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말이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한 여자의 이름은 놀랍고 신비로운 세계로 그녀를 인도한다.

코니가 발견한 이름은 딜리버런스 데인이다. 낡은 성경 속에서 발견한 이름인데 앞으로 펼쳐질 조사와 연구는 모두 여기서 시작한다.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필연적인 만남이다. 그리고 17세기 말 세일럼으로 돌아가 데인의 과거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서로 교차하면서 진행되는데 코니의 조사와 맞물려 있다. 처음엔 그냥 보통의 호기심이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박사 학위를 위한 논문 자료로 발전하다. 여기에 지도교수 매닝 칠튼이 은근히 그녀가 조사를 계속할 것을 요구한다. 어느 정도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작가는 데인의 과거에 다가가는 과정을 빠르게 진행하지 않는다. 더딘 진행 속에 도움을 주는 인물이자 연인으로 발전하는 샘을 만나게 하고, 그녀 주변에 환상 같은 장면들을 펼쳐 보여준다. 딜리버런스 데인의 흔적을 쫓아가지만 쉽게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발견하는 단서 하나는 그녀가 파문당했다는 것이다. 이 파문을 그녀는 마녀재판으로 연결하지만 자료가 없다. 힘겹게 찾은 그녀가 남긴 재산 목록 속에서 영수증이란 단어가 그녀의 눈길을 끈다. 영수증이 성경과 비슷한 가격이다. 의문을 품는다. 번뜩하고 하나의 아이디어가 스쳐지나간다. 혹시 레시피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조사가 이어지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밝혀지는 것은 현대적 의미의 마녀가 아니다. 작가는 그 시대 사람의 시선에서 마녀를 재현해내었다. 물론 그 해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질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고 왜 칠튼 교수가 그렇게 그녀를 닦달했는지도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을 어렵고 복잡하게 처리하기보다 편안하게 펼쳐 보여주면서 빠르게 진행한다.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과 과거의 사실들은 뒤로 가면서 속도감이 붙고 손에서 책을 놓기가 힘들게 만든다. 대단한 흡입력이다. 그리고 연금술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신선하다.

단순히 마녀재판을 둘러싼 비밀을 밝혀내는 소설이었다면 어쩌면 조금 진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궤도를 따라가기보다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재미있게 구성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그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는 동시에 허구를 사실 속에 살짝 집어넣어 현실성과 사실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마법에 대한 호기심과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자극하고, 예상한 결말이 과연 맞는지 알고 싶게 한다. 역사와 환상과 스릴러를 잘 버무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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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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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이란 지명은 서울 강남에 있는 테헤란로 때문에 낯익다. 하지만 정작 테헤란이 어느 나라의 도시인가 하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는 이란의 수도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각 나라 수도에 무지한 탓도 있지만 중동이란 지역을 미국적 시선에서 주로 본 탓이다. 이 말은 중동을 간접 경험하는 일 대부분이 미국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거기에 중동 작가의 소설을 접할 일이 많지 않고, 출판된 작가들의 작품도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제3자의 시선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비록 그가 그곳 태생이었다 하여도 말이다.

1974년 겨울 테헤란의 루즈베 정신병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군가의 읊조림에 깨어난다. 낯설고 격정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시간은 1973년 여름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루즈베 정신병원이 현재라면 1973년 여름 테헤란은 과거다. 이 두 시간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이 시간은 만난다. 이 만남은 왜 정신병원이란 공간에서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한 소년의 가장 찬란했지만 가슴 아팠던 과거를 펼쳐 보여준다. 

파샤. 그는 옆집 연상의 여인 자리를 사랑한다. 자리는 닥터로 불리는 대학생과 약혼한 상태다.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여자를 좋아하는 그는 닥터도 좋아한다. 이 감정의 모순 때문에 고민한다. 70년대 테헤란에서 이런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약혼자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슬람의 전통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런 그에게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아메드다. 그도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다. 파히메다. 하지만 그는 용기 있다. 파히메가 약혼을 했다고 하자 그 집에 찾아가 사랑한다고 고백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 오빠들에게 흠신 두들겨 맞지만 말이다.

이 둘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하나의 축으로 진행된다면 그 시대의 공포가 또 다른 축이다. 친미 독재 정권인 팔레비 왕조가 비밀경찰 사바크를 앞세워 반정부활동을 철저하게 탄압하던 시기다. 마르크스 서적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18년을 감금되고, 반정부활동은 광장에서 사형 집행될 정도다. 이런 공포는 일상생활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그마한 사건만 생겨도 사람들은 움츠려들고, 심리적인 압박감을 가진다. 만약 총살당했다면 시신을 찾기 위해 총알 값을 지급해야 할 정도라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기다.

아무리 공포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학생들의 순수함은 변함없다. 사랑에 목숨을 걸려는 열정이 샘솟고, 친구의 우정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쉽게 떠날 수도 없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가슴속에 조국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파샤의 아버지가 그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미국에서 선진 토목기술을 배워와 조국의 도로를 만들고 성공하길 바란다. 힘든 정치 현실이 가득한 곳이지만 가족이 사는 곳이기에 돌아오길 바라는 것이다. 

사랑과 정치 현실을 교차하고 엮어서 진행한다. 무거운 현실에서 재치와 유머로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인물은 아메드다. 현실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서 힘겨워하는 인물은 파샤다. 하지만 이 두 소년이 우정과 사랑을 경험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읽는 동안 저절로 감정이입 되게 만든다. 서로의 연인과 함께 하면서 보낸 시간들은 젊은 날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에 닥터의 존재는 무겁고 무서운 현실을 대변한다. 독재정치를 조금이라도 깨트리고자 한 그의 노력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 발생한 파샤의 실수는 그의 약혼녀인 자리에 대한 사랑과 엮이면서 복잡해진다. 이것도 또한 그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현재와 과거가 이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미스터리처럼 연출했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청춘들의 사랑과 그 시대의 정치현실을 다루면서 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지를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빠르게 읽히면서 그 시대의 풍경과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 여름 밤의 열기를 식히기 올라가서 자는 테헤란의 지붕은 어쩌면 그 시대 청춘들의 열기를 식혀주는 동시에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내는지 모른다. 그 지붕 위에서 밤하늘 별들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붙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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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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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시마다 소지가 79년에 처음으로 쓴 소설이지만 발표는 88년에 스물다섯 번째로 한 것이다.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에 쓴 작품들이 나중에 다시 출간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이렇게 늦게 된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무려 스물네 권이나 발표했다니 그것도 대단하다. 뒤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면 두 번의 개정이 있었는데 어느 판본을 기준으로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저작권을 보면 첫 출판인 88년인데 97년에 다시 애장판이 나오면서 다시 개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 작가 참 개정을 좋아한다.

책 뒷면에 미타라이와 이시오카의 첫 만남이란 문구가 있다. 탐정에 비해 나에게 이시오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놈의 저질 기억력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시오카와의 첫 만남이 아니라 미타라이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었다는 독자의 평이다.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엄청난 데뷔를 한 이력을 생각하면 어떤 트릭이 있기에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독자의 평을 읽다보니 잘 짜인 트릭보다 감성적이란 단어가 더 눈에 들어온다. 이래저래 호기심을 자극한다. 

첫 장면은 낯선 벤치 위다. 늦은 오후 눈을 뜬 그가 먼저 생각한 것은 차다. 어딘가 세워두었을 것 같은 차다, 그런데 없다. 여기서 기억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어디에 세워뒀을까? 에서 시작하여 결국 나는 누군가로 이어진다. 가야할 곳을 모른다. 방황한다. 그러다 한 여자가 보인다. 기시감대로 여자가 맞는다. 그가 길을 걷다 쓰러진다. 이 장면은 그와 료코의 첫 만남이다. 찻집에서 다시 깨어나지만 역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그렇게 그는 공포와 기억상실과 무력감 속에 서 있다. 이때 그를 부축한 료코에게 그녀 집으로 가자고 한다. 자신도 놀란다.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간다.

이 만남으로 이 둘은 그녀를 때린 기둥서방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같이 시작한다. 열아홉의 예쁘고 귀여운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한 것이다. 그의 꿈 일부가 실현된 것이다. 료코는 물장사를 벗어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는 이력서가 필요 없는 공장에서 일한다. 행복한 나날이 이어진다. 이 일상에 변화가 온 것은 전철에서 본 하나의 간판이다. 미타라이 점성술 간판이다. 몇 번을 그냥 지나가다 전날 부장과 술 마시고 다른 사람과 싸운 뒤라 그런지 왠지 끌린다. 한자의 음독을 제대로 몰라 고민을 하다 안으로 들어간다. 이름을 말한다. 역시 잘못된 발음이다. 이렇게 명탐정 미타라이와 만난다. 물론 이때는 그가 명탐정이라고도 될 것도 예상하지 못한 시기다.

아마 미타라이 시리즈에서 팬들이 선정한 1위가 된 것도 이 만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이십대의 미타라이 모습은 새롭고 신선하다. 언제나 탁월한 추리와 판단력과 기행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난다. 인간적이고 재미있고 때로는 우스운 모습으로 말이다. 이 둘의 만남이 많아짐에 따라 그의 삶도 조금 변한다. 세상에 료코 외에 아무도 친한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친구가 생겼다. 일상의 변화는 료코를 자극한다. 그러다 발견한 한 장의 운전면허증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를 몰아간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엄청난 음모와 계략은 그를 파멸로 몰아간다.

변함없이 잘 읽힌다. 기억을 잃은 그를 따라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반에 그의 과거가 드러나는 부분에선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놀랍다. 밝혀지는 사실과 이어지는 행동은 속도감을 더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작가의 경험이 만들어낸 상황에서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편으론 인간 이성이 마비되었을 경우를 생각하면서 일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충분히 납득하지는 못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쿄고쿠 나츠히코의 <백귀야행>이다. 고서점 주인인 교고쿠도와 세키구치의 만남이 생각났다. 가끔 점성술사 미타라이와 고서점 주인이자 괴담 전문가 교고쿠도가 헷갈린다. 장광설이야 교고쿠도가 더 심하지만 미타라이가 트릭을 밝혀내고 진상을 설명할 때도 역시 만만치 않다. 또 이 둘과 연결된 세키구치와 이시오카도 그런 부분에 일조한다. 뭐 이런 설정은 홈즈에서부터 시작한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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