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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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 이치의 17세 데뷔작이다. 중편 분량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와 단편 <유코>, 두 편이 실려 있다. 아직 이 작가의 장편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단편집을 읽으면서 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품집도 그런 점에서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섬뜩하다. 한 소녀의 우발적인 살인과 그 사체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을 죽은 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죽은 자의 목소리지만 전혀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말할 뿐이다. 그것은 그녀가 죽는 순간마저 그렇다. 죽는 순간의 공포나 고통을 담기보다 그 장면을 서술할 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체 처리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을 자아낼 정도다.

아홉 살 소녀 사쓰키가 친구 야요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단지 야요이가 좋아하는 친오빠 켄을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사체를 본 순간 야요이는 당황하고 두려워한다.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이때 나타난 켄은 다른 반응이다. 냉정하고 두려움이 없다. 보통의 수순이라면 친구가 실수로 떨어져 죽었다고 어른들에게 알리겠지만 그는 사체를 사람들 몰래 처리하려고 한다. 먼저 닫히지 않은 도랑을 발견하고 그 속에 사체를 숨긴다. 그곳을 주위 땅과 변함없이 보이도록 사후 작업도 한다. 그런 후 태연하게 둘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 마을엔 연속적인 실종사건이 다섯 건이나 발생했다. 그런 와중에 사쓰키가 사라진 것이다. 사쓰키의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딸을 찾아 야요이 집으로 온 것은 당연하다. 이 순간 두 남매의 반응은 다르다. 켄은 냉정을 유지한 반면 야요이는 공포와 불안감을 느낀다. 이 감정들에 먹히려는 순간 켄은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켄의 냉정과 대담함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과연 열한 살 소년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바로 그 부분에서 재미가 만들어지기는 한다. 두 남매의 감정 변화와 제대로 사체를 처리하기 위한 대담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놀라움과 끔찍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유코>는 서술트릭을 사용했다. 읽는 동안 계속 생각한 것을 마지막에 뒤집어 버린다. 물론 서술트릭이 뛰어난 작품들에 비해 충격의 강도는 약하다. 하지만 긴장감과 으스스한 분위기로 집중하게 만든다. 가정부 키요네의 시선에서 대부분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이 속에 함정이 있다. 물론 작가는 단서를 숨겨놓고 마지막에 가서야 펼쳐 보여준다. 전작에서도 이런 부분이 있는데 약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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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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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한 번 읽고 싶은 책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손에 들어온 <중세의 가을>도 읽어야지 생각만하고 읽지 않고 있다. 소설에 집중하는 독서 습관을 조금은 고쳐보자는 마음에서 평소에 관심이 있던 놀이를 다룬 이 책을 들었다.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했는데 역시다. 하나하나 예를 든 부분을 읽으면 쉽게 다가오는데 전체적인 부분으로 흘러가면 전체 구도가 파악되지 않는다. 책 읽는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생각들과 제대로 같이 놀지 못한 탓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의 목적은 ‘여러 문화 현상들 중에서 놀이가 차지하는 지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어느 정도까지 놀이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탐구하려는 것’이고, ‘놀이의 개념을 문화의 개념과 통합시키려는 것’이다.(21쪽) 그래서 용어도 문화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역사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의 전공 분야들인데 그 연구 결과들을 읽으면서 방대한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각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놀이와 함께 풀어내는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 본질과 의리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놀이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말하고, 놀이 속에 있는 진지함을 말한다. 진지함과 놀이가 서로 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놀이를 하면서 우리가 진지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놀이가 자발적 행위이자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는 점과 놀이가 경쟁 혹은 재현이란 말에서 그 의미를 더욱 폭 넓게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의례 부분과의 연관성은 우리 문화 예식들이 놀이의 영향으로 어떤 식으로 재현했는지 가장 잘 드러내어준다. 앞에 나온 개념들이 이 속에서 많은 부분 담고 있음을 또한 알게 된다.

언어에서 놀이의 개념을 찾는데 이 과정은 문화인류학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경기를 놀이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풀어내면서 놀이의 한 속성을 설명한다. 이때부터 놀이와 다양한 의미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하나씩 풀어낸다. 그 처음이 법률이고, 전쟁, 인식(지식), 시, 신화창조, 철학, 예술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모든 것들 속에 놀이가 담겨 있다니 예전에는 그냥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약간 과장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대로 오면서 진정한 놀이가 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프로화된 스포츠 등이다. 이것은 ‘진정한 놀이가 되려면 어른이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하는 그런 게임이 되어야 한다.’(376쪽) 말처럼 놀이 자체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흔히 모든 일의 최고 경지는 즐기는 것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바로 우리가 하는 수많은 일들이 바로 놀이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멋대로 추측해본다. 강한 몰입으로 그 일에 빠질 때 넘쳐흐르는 행복감과 즐거움을 생각하면 놀이가 주는 강력한 힘을 알 수 있다. 

사실 한 번 읽고 이 책을 다 이해하기는 무리다. 분명히 나의 오독도 존재한다. 텍스트 속에 깔려 있는 생각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서 읽다보니 이해도의 깊이가 부족하다. 언어, 문화, 역사 등을 통해 놀이를 풀어내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그 의미 하나하나가 결코 쉽지 않다. 어느 정도는 이 책에 대한 해설서가 필요할 것 같다. 분명하게 안 것 하나는 놀이가 문명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하나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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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론 투게더 Alone Together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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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삶은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하다. 한때 즐거움이 어느 순간은 의무도 바뀌고, 삶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나의 기준에서 사물과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에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의무와 책임을 벗어던지고 나로 살아가고 싶은 본심이 가득하지만 사회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본심을 만약에 그대로 드러내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이 소설 속 주인공 야나세가 가진 능력은 바로 이런 본심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저주라고 부른다.

파장의 공명을 통해 다른 사람의 본심을 읽는 능력을 가진 야나세지만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야나세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 집안의 유전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서 좋을 것이 없는 것도 많다. 아니 정확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게 만들고 본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다면 아마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다. 저주로 불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가 한 명의 친구도 가지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야나세는 힘들게 의대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가진 저주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자 자퇴한다. 그리고 대안학원에서 아르바이트 선생을 한다. 그 어떤 학교나 학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이 이곳에 온다. 수업시간은 있지만 수업은 없고 모두가 그냥 앉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갈 뿐이다. 이 학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다녔던 의대 가사이 교수가 그를 찾는다. 자살 미수로 입원한 환자를 죽인 그가 말이다. 채 한 학기도 제대로 다니지 않은 그를 기억한 것은 그가 물은 질문 때문이다. 그리고 한 소녀를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죽인 여자의 딸 사쿠라다.

기본 줄거리는 가사이 교수가 죽인 여자의 딸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 속엔 야나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녹아있다. 기억을 교묘하게 자신이 편리한대로 왜곡한 그나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아들을 눈치채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엄마나 직장을 잃고 가장의 허울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버지나 자신의 딸이 아님을 알지만 겉으로 드러난 부정을 위해 노력하는 척하는 아버지 등이 교차하면서 연결된다. 그가 저주를 내려 그들을 한 명씩 해방시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불편하다. 자신들과 비슷하지 않는 그를 손가락질하고 질타한다. 대부분이 감정을 속이고 진심을 왜곡하고 사회 속 일원으로 맴돌기 때문이다.

<미싱>에서도 참 글을 잘 쓴다 생각했지만 장편에서도 그 능력은 변함없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와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고, 너무 솔직하게 감정을 까발린다. 불편함을 넘어 충격적일 때도 있다. 아마 텐도 아라타의 <가족 사냥>을 먼저 읽지 않았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사회가 틀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내세워서 현대의 가족이나 삶을 그려내었다. 일상적이지 않고 가장된 부분도 많지만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회 문제가 점점 한국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볼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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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털 엔진 견인 도시 연대기 1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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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 도시 연대기 4부작 중 첫 권이다. 이 책에 대한 설명 중 피터 잭슨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화려한 수상경력은 강하게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지구 종말 이후를 다루었다는 것과 SF 어드벤처계의 디킨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가볍게 시작하여 단숨에 모두 읽었다. 그리고 지금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머릿속에서 새롭게 구성하고 앞으로 펼쳐질 다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상상해본다.

시간적 배경은 약 3천 년 후의 지구다. 이 시대는 과학이 극으로 발달한 후 60분 전쟁으로 멸망한 다음 시대다. 전쟁의 여파로 산과 바다가 불안정하게 뒤틀리고, 삶을 위해 한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재난을 기다리는 일이다. 이때 한 과학자가 움직이는 도시를 발명하고, 살기 위해 모두 움직이기 시작한다. 초창기는 생존과 필요에 의해 움직였다. 하지만 자원이 점점 고갈하면서부터 움직이는 도시는 하나의 포악한 육식자로 변한다. 소설의 첫 장면이 런던 시가 광산 타운을 쫓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먼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역사와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런던 시는 시장이 모두 위에서 권력을 잡고 있지만 각 길드가 함께 도시를 운영하고 있다. 주인공 톰 내츠워디는 역사학자 길드의 3급 견습생이다. 부모가 하층민 계급이고, 길드에 들어올 때 돈이 없어 3급이 된 것이다. 평범한 그가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밸런타인이다. 친절하고 자상하면서 위대한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데 그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첫 장면에서 벌어진 추격전 끝에 런던 시가 광산 타운 사냥에 성공한다. 그 도시에 있던 물건들 속에서 박물관에 갈 유물이 있는지 검사를 하려고 밸런타인과 함께 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한 소녀가 밸런타인을 죽이려는 모습을 보고 막는다. 암살자는 달아나고 톰은 쫓는다. 소녀를 거의 잡았을 때 소녀는 자의로 움직이는 런던 시 밖으로 몸을 날린다. 그리고 톰에게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이 이름 때문에 밸런타인은 톰을 토시 밖으로 밀어버린다.

톰과 함께 떨어진 소녀는 헤스터 쇼다. 그녀는 밸런타인이 부모를 죽이고 자신도 죽이려고 했다고 말한다. 영웅 밸런타인이 자신을 죽음으로 밀어냈지만 그는 쉽게 믿지 못한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받은 교육과 삶이 거부의 몸짓을 하는 것이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두 아이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하나씩 깨트리며 성장하는 모습이다. 작가는 그 과정을 환상이 아닌 처절한 현실을 통해 보여준다. 도시 간의 전투와 승리의 환호, 자아도취, 자기합리화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소설 속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도시진화론으로 표현된 도시 사이의 사냥은 현대 자본주의의 비정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반 견인 도시 연맹과 도시들의 대립은 수렵 문화와 농경 문화의 충돌 혹은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의 대결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리고 런던 시의 모습은 19세기 문헌 속에서 보고는 했던 런던의 삶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다. 신분상승의 욕망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고, 공존보다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한 것에 급급한 그들의 모습은 너무 적나라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서술에서도 좀처럼 주저함이 없다.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거대한 런던 시를 생각해본다.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움직일까? 하늘을 나는 비행선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다양한 무기와 무시무시한 살인 기계인 부활군 스토커는 그 시대의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자신을 둘러싼 알을 깨고 세계를 다시 보게된 톰의 성장과 헤스터와의 은밀한 유대감은 이 놀랍고 신기한 세계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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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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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들이 만났다. 아니 강신주라는 철학자를 통해 짝짓기가 이루어졌다. 저자는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이란 부제에서 알려주듯이 난해한 현대 철학을 역시 난해한 시를 통해 풀어낸다. 한 편의 시와 그 해석을 한 철학자의 철학으로 풀어서 설명할 때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하게 된다. 그것은 그 설명이 쉽고 친절한 것도 있지만 시를 통해 만나게 되는 철학자들의 사유와 세계가 새롭고 신선하면서 낯익은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21명의 시와 시인들 중 낯선 시인도 몇몇 있다. 거기에 비하면 철학자들은 낯선 사람이 더 많다. 워낙 유명한 시인과 철학자들이야 상식처럼 알고 있지만 그의 철학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 그 자체다. 그런데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한 철학과 철학자들을 만났다. 그 만남은 나의 사유 세계를 넓혀주고 깊게 만들었다. 읽으면서 감탄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해석과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의 생각과 엇갈린 부분에서 갸우뚱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충동과 흡수와 관찰은 관심이 있었지만 어렵고 난해하다는 이유만으로 멀리했던 그 학문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21편의 시와 철학자를 모두 말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그 중에서 몇몇만 추려보자. 이들은 시의 주관적이고 낯선 이미지들이나 철학의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 용어를 깨고 나에게 다가온 것들이다. 동시에 갇혀 있던 이미지와 관념들이 산산조각 나고 삶속으로 조용히 파고들었다. 낯설기만 했던 시와 철학이 나에게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모든 시와 철학이 그랬다면 정말 좋겠지만 강한 울음으로 다가온 것은 몇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작가의 말처럼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다.

20대에 만났고 즐겼던 두 시인 박노해와 기형도의 글을 통해 추억과 기억을 새롭게 만들면서 문을 가볍게 열었다. 이때만 해도 기억을 더듬고 가볍게 나아간 정도다. 그런데 김남주 시인의 시가 아렌트의 철학과 만나면서 기존의 가치관들이 산산조각 난다. 근면, 정직, 성실, 공정, 충성, 봉사 등의 전통적인 덕목들이 무사유를 거치면 어떤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나치 시대의 아이히만인데 그가 수행한 유대인 학살이 광기나 악의 때문이 아니라 관료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성과 성실성과 그 일이 끼칠 영향이나 그 사람들의 처지를 전혀 반성하지도 성찰하지도 않은 무사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권위니 명령이니 하는 것에 쉽게 굴복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수많은 행위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배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이런 가치관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마주침과 관계를 지나 너무나도 인간적인 에로티즘에 살짝 발을 담군 후 유하의 시에서 욕망의 현장을 다시 만난다. 내가 겪고 만나고 경험했던 삶들이 다가온다. 그러다 다시 김수영의 시에서 왜 4.19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고, 다시 이것은 80년대 6.29선언으로 이어진다. 조그마한 성취가 주는 낭만에 취해 진정한 싸움을 중도에서 멈춘 우리의 현실이 느껴진다. 80년대를 뒤흔든 도종환 시인의 시를 그쳐 인식론으로 다가왔던 김춘수 시인을 만나고, 사놓고 아직도 읽지 못한 최영미와 사르트르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본다. 그 당시 시인의 평가를 시대 속에서 풀어내는 저자의 글에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일상과 비극을 담아낸 최명란 시인의 시에선 부끄러움을 느끼고 동시에 삶의 현실이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엄청난 비극이자 절망이 부외자에겐 한순간의 감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 처참한 아우슈비츠가 이성과 합리성 때문에 발생했다고 하는 순간 놀라게 된다. 광기나 비정상 때문이 아니라니 말이다. 이 현실은 동일성의 사유에서 비롯하는데 아도르노는 개별적인 것이나 비개념적인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시 전체주의와 맞닿아 있다. 쉽게 표현하면 어떤 나라에서 전쟁으로 몇 명이 죽었다는 것보다 구체적인 누가 죽었다고 설명할 때 사람들에게 더 쉽고 진심으로 다가간다는 의미다. 
이후에도 한하운을 통해 배제된 자들의 울부짖음을 듣게 되고, 타인에게 이르려는 욕망을 마주하고, 다시금 난해한 이상의 시를 만난다. 황지우를 통해 사랑의 내적구조를 조금은 알게 되고, 호네트와 박찬일의 만남 속에서 다시 상호 인정과 자유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마지막에 만난 두 한국인은 이 책에서 가장 낯선 만남이다. 시인과 철학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낯설다. 저자의 평가를 듣다보면 언젠가 반드시 공부해야 할 사람임에 틀림없다. 

책의 구성은 사실 간단하다. 한 편의 시를 내세우고, 시인을 말하면서 시를 해석한 후 철학자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 철학자의 철학을 시를 통해 하나씩 풀어내는데 이 과정을 통해 철학과 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이래서 얻게 되는 이해와 깨달음은 결국 삶으로 이어진다. 철학과 시가 각각 양 극단에 자리한 듯하지만 서로 통하는 점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쉽게 읽었다. 몇몇 철학에선 나의 삶과 마주침이 부족해 이해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많은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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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3-23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