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왕구천 1
양시아오바이 지음, 이지은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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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점점 흐릿해지는 옛 기억을 떠올리면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에 대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고 정비석의 소설일 것이다. 그 유명한 고사성어 와신상담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에 대한 기억은 사실 역사 자료를 소설로 각색하면서 이야기에 중점을 둔 것이다. 전국시대의 이야기 중 한 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 작가는 월왕 구천에 아예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 둘을 통해서 전국시대의 역학 관계와 삶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물론 그 속에 담긴 현대 중국의 인식도 깔려 있다. 가끔은 번역 탓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첫 부분은 구천이 아직 왕이 아닌 합려의 집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스승이자 뛰어난 대장장이 구 사부와 함께 오나라로 가서 합려가 왕이 되는 것을 도우려고 한다. 이런 행동은 약소국인 월나라는 독립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숨겨져 있다. 구 사부에게 검술을 배웠고, 그의 능력으로 만든 명검으로 구천은 무장하고 있다. 합려의 집에 가서 이 둘은 헤어진다. 구 사부는 뛰어난 병기를 만들기 위해, 그 아들로 분장한 구천은 합려의 손님이자 불모로 살아간다. 여기서 구천은 부차와 친구처럼 사귀게 되고, 합려의 딸 승옥과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런 평화로운 삶은 합려가 왕이 되려는 욕망이 펼쳐지는 순간 깨진다. 오왕을 그 유명한 어장검으로 암살하고, 왕권을 얻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 구천은 탁월한 무술 실력으로 공을 세운다. 하지만 승옥이 말한 것처럼 그는 불안한 위치에서 감시받는 입장이다. 하나의 시험을 받는데 그 곳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알았던 어머니를 만난다. 전 오왕이 힘으로 빼앗은 것이다. 왕이 된 합려는 이런 궁녀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그의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다. 이에 그가 분개한 것은 당연하다. 함정에 그가 빠지고,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합려가 이를 용서할 리가 없다. 그는 달아난다. 그 도중에 사랑하는 여인은 죽고, 그는 힘들게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간다.

그 이후 벌어지는 내용은 합려를 구천이 죽이고, 이런 구천을 다시 부차가 정복하고, 그의 노예 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통을 겪고, 다시 왕으로 돌아와서 와신상담하면서 복수의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이 짧고 간략하게 요약된 내용을 실제 현실의 과정 속에 자세히 재현해낸다. 부차가 구천에게 죽은 아버지 복수를 위해 신하들에게 매일 그 과거를 외치게 하거나 구천이 다시 돌아와서 안락함에 빠져 원래의 의지를 잃게 될 때 죽음으로 그 불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전보다 세밀하게 하나씩 펼쳐낸다. 너무 쉽게 의지가 무너지기도 하지만 왕이란 자리가 주는 부담감을 견뎌내면서 국민을 다독이며 나아간다. 부차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복수를 이룬 것에 비해 구천은 긴 세월을 참고 견디면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한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는 그 말을 그대로 실현한다.

읽으면서 이런 세부적이고 현대적으로 각색된 국력강화 정책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동시에 너무 현대적이라 살짝 반감을 사기도 한다. 서시의 미모를 칭송하면서도 결코 그 미모에 정신을 놓지 않는 부차를 보여주면서 경국지색이란 말에 너무 쉽게 빠져 사실성을 잃었던 것을 살려내었다. 비록 완전히 그 미모에서 헤어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와 서시와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작가는 단순한 미인계를 넘어 긴 시간 속에 흔들리는 의지와 심리를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 패자였던 부차의 능력을 부각시켜 상황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장점을 작가는 너무 안일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구천의 승리를 그려낸다. 생략된 부분들이 너무 많아 독자가 상상력으로 현실에 끼워 맞춰야 한다. 

그 시대 삶이나 국가 지도를 모르니 사실 답답한 부분이 있다. 특히 오와 월의 위치가 어딘지 몰라 정확한 그림을 그려내는데 어려움이 있다. 출판사에서 지도 한 장만 첨부했다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문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번역상 오류인지 중국이란 단어나 황제란 단어 등 후세에 나온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시대와의 괴리가 주는 어려움이 몰입을 방해한다. 두 왕의 삶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살려낸 것에 비해 이런 조그마한 오점들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어쩌면 나의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부차의 죽음 후 이야기는 너무 많은 에필로그가 붙어 힘이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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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세월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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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수상한 식모들>에서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최 씨 집안 여자들을 중심으로 지나간 세월을 복기하고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그려낸다.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바구미 여사에서 시작하여 윤희까지 이어지는 기이한 능력은 최 씨 집안의 내력이지만 우리들의 욕망과 희망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능력이 신통방통하고 괴이하고 이상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1988년부터 시작하여 2023년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세 여자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첩살이하던 엄마의 죽음을 보고 본가로 간 미령이 중심에 있다면 그녀를 데려온 명옥과 그 딸 신혜가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다. 미령의 엄마 선옥이 자살한 후 두 남매 중 미령을 자기 집으로 데려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고모인 바구미 여사를 돌볼 아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바구미 여사는 쌀집 딸로 신기가 있는데 쌀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놀라운 예언능력은 그 집안의 부를 이루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니 정신을 놓은 중늙은이를 내치지도 못하고 고이 모실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한다. 

1988년 전두환은 잡혀 들어가고, 그의 업적이라 칭송되던 올림픽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외형 속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변함없이 이어진다. 작가는 이런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 속에 사람들의 삶을 풀어놓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미령이 얹혀사는 집에서 나름 잘 살고 있고, 명옥은 남편은 쓸데없는 투자와 허세로 고생을 하고, 신혜는 자신을 둘러싼 이상한 능력 때문에 고민을 한다. 그녀들의 이런 삶을 시간 속에 녹여내는데 그 삶들이 우리의 삶과 묘하게 겹쳐진다.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다시 사랑하는 삶의 순환 속에 그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이런 반복만 보여주었다면 지루한 책읽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 세 여자의 삶의 환상과 현실을 교차시키고, 실제 현실을 그 바탕에 깔아놓는다. 

세 여자가 중심인 듯하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간과 시간이 중심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이 세 여자가 기구하다면 기구할 팔자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그 속에 펼쳐지는 삶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뜨겁던 사랑은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지만 좌절하기보다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살아간다. 속고, 속이고, 거짓말하고, 믿고, 믿는 척하는 삶의 현실이 그대로 펼쳐진다. 눈앞에 보이는 진실은 거짓으로 치부되고, 입에 발린 거짓말은 진짜로 찰떡같이 믿는다. 

과거를 복기하고 드러내는 순간이 끝나고 미래를 그려낼 때 모습 또한 지금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거대한 허상이 무너지지만 곧 다른 허상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어설픈 부자는 사기당하고, 가난한 사람은 변함없이 가난하거나 더 가난해진다. 작가는 이 장면들을 교묘하게 삽입하여 현실의 비틀린 모습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은 변함없이 도도하게 흘러간다. 이 거대한 흐름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각각 다른 굴곡을 가지고 있다. 단숨에 읽히지만 그 바닥에 흐르는 슬픔과 삶들이 아련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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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샷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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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5시. 소총을 든 남자가 등장한다. 미니 밴을 타고 주차장 2층으로 간다. 총을 꺼내고 쏠 준비를 한다. 공공광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다. 모두 여섯 발이고, 다섯 명이 죽는다. 무차별살인이다. 광장은 혼돈에 빠지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여러 사람이 911에 전화를 하고, 경찰은 신속하게 현장으로 다가온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현장을 장악하고 증거를 수집한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사건 현장이 재구성되고, 수집된 증거는 재빨리 분석된다. 불과 여섯 시간 만에 용의자가 드러난다.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와 재빠른 사건처리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렇게 용의자 제임스 바가 체포된다.

여기까지 정말 단 한숨도 쉬지 않고 읽었다. 잭 리처가 등장하기 전인데도 말이다. 그의 여동생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 덕분에 그곳 변호사가 그를 방문한다. 교과서적인 증거에 변호사는 의욕도 없다. 그의 유죄를 확신하던 변호사에게 그가 요구한 것은 하나다. 잭 리처를 데려오라는 것이다. 이 멍청한 변호사는 리처를 정신과 의사 정도로 생각한다. 이 정보를 얻은 동생이 탐정을 고용해 그의 흔적을 찾는다. 어디에도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감옥에서 바는 폭행을 당하고 사경을 헤매게 된다.

리처는 플로리다에서 편하게 쉬고 있다가 뉴스를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현장을 향해 온다. 그가 온 목적이 바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바가 이라크 전쟁 당시 벌인 사건 때문에 그를 죽이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이 사실에 변호사와 그의 여동생은 놀란다. 그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가 사경을 헤매고, 증거가 너무나도 명확하기에 리처는 떠날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가 왜 나타났는지 몰랐던 무리들이 괜히 나선다. 혹시 그가 그 사건을 다시 파헤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조그마한 착각이 길 떠나려던 리처를 그곳에 잡아두게 된다. 이제 리처는 먼저 시비를 걸어온 적 때문에 사실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시리즈 아홉 번째 소설이다. 두 번째 소설 다음에 갑자기 아홉 번째다. 만약 세 번째였다면 <탈주자>를 먼저 읽었을 것이다. 내년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출간을 앞당긴 것은 아닐까 막연한 추측을 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주저함 없이 나아가는 리처의 모습을 매력적이다. 거구에서 품어내는 힘과 헌병 수사대에서 닦은 수사능력은 이번 소설에서 극대화된다. 너무나도 분명한 증거 때문에 그가 손쓸 수 있는 여지가 줄었는데 그의 존재와 활약이 그 틈새를 자꾸 벌려준다. 적들이 느끼는 초조함이 많아질수록 리처의 추리는 더 정확해진다.

리처의 과거는 이번에도 조금씩 드러난다. 과거는 현재의 그를 만들었고, 방랑자 기질은 변함없다. 독불장군처럼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할 것 같지만 사건을 하나씩 풀어가는 도중에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검사장 딸이자 바의 변호사인 헬렌과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방송한 아나운서 야니와 탐정 프랭클린 등이 그들이다. 마지막엔 전직 해병의 도움까지 받는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것은 역시 잭 리처다. 그가 품어내는 열정과 냉기와 액션은 눈을 떼기가 어렵다. 그냥 쉴 새 없이 읽게 된다.

그의 탁월함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눈길을 끌지만 하나의 단서에서 시작하여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추리능력은 더욱 대단하다. 분명한 사실에서 시작하여 그 분명함에서 의문을 품고, 빠진 증거에 주시하고, 연결되는 다른 사건을 주목한다. 무작위의 본질이란 부분에서 단서를 찾아내고, 점점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은 앞에 벌어진 사건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난 후 그는 조용히 떠난다. 이 장면을 보면서 현대판 셰인을 생각한다. 액션에서 시작하여 멋진 추리로 마무리되는 그 과정이 단숨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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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2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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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권이 나왔다. 원래 한 권씩 찔끔찔끔 나오는 만화를 잘 보지 않는다. 한꺼번에 전권을 읽길 좋아한다. 그런데 착각과 우연으로 1권을 읽었다. 그 후 그 거친 그림과 그 속에 살아있는 섬세한 묘사와 재미난 이야기 전개 때문에 반했다. 1권에서도 말했듯이 잘 몰랐다면 이런 그림체의 만화를 손에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예쁜 그림체의 만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도 경험한 것이지만 이런 경향은 속독과 그 만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여유와 나쁜 습관 탓이었다. 

2권에선 1권에서 중요한 관찰자 역할을 했던 소년 칸키치의 역할이 많이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앞부분은 연쇄살인자를 등장시켜 호기심과 긴장을 불어넣었고, 후반에선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사냥꾼을 등장시켜 다음에 벌어질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런 큰 흐름 속에 변함없이 펼쳐지는 소소한 일상과 소이치로의 낯설고 신기한 경험들은 그의 매력을 강하게 발산한다. 어느 부분에선 영화 <셰인>을 나도 모르게 연상하게 만든다. 

소이치로의 검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1권에서 대충 보여주었다. 살기가 너무 강한 그의 검술을 꺽기 위해 애검 쿠니후사를 팔지만 그 검의 영혼은 그를 맴돌며 재결합을 요구한다. 이것은 아직 살기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현실과 그에게 닥쳐올 미래를 암시한다. 그중 일부가 바로 연쇄살인이고, 사악한 기운 가득한 사냥꾼의 등장이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함정수사를 하고, 살인범이 나타나는 순간 그의 몸속에 잠자고 있던 살기는 폭발한다. 숨겨져 있던 과거의 일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사건 처리는 그 시대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냥꾼의 등장은 한편으론 소이치로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음 권에서 본격적으로 이 둘의 대결이 펼쳐지겠지만 소이치로의 과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이 부분은 정말 다음 권에 대한 갈증을 부채질한다. 사무라이 만화니 멋진 대결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그 결투 장면이 화려한 영상이나 긴 긴장감을 불러오지 않지만 그 간결함 속에 느껴지는 긴장과 강렬한 폭발력은 정말 일품이다. 

이 작품을 정말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검술 대결이나 살인자의 등장이 아니다. 오히려 소이치로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다.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오해했던 츠네나 그에 대한 연심을 품고 글을 배웠던 오카츠나 관찰자 역할을 했던 칸키치 등이 바로 그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그 시대의 현실과 삶의 풍경을 드러내고, 소이치로가 느끼는 환상의 무거움과 잔혹함을 덜어낸다. 이것은 그와 쿠니후사의 대화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하지만 탁월한 능력과 숨겨진 과거는 결코 그를 평화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원작이 있고 이것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권을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동시에 기다림이 주는 설레임을 오랜만에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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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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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는 나에게 영화감독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에 대한 정보를 얻다 보면 코미디언으로 더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차이는 한때 영화를 좋아해서 유명한 작품과 감독들을 찾아본 때문이다. 이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대단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세계적인 영화제 상을 엄청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의 영화를 보면서 많이 졸았다. 재미없었다. 나와 취향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 표정을 보면 영화배우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사고 직후 병원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을 정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 전에 쓴 독설을 실었다. 이 나누어진 부분들을 읽으면서 앞부분의 느낌이 뒤로 가면서 혼란스러워졌다. 시간 순으로 보면 독설이 앞이고, 병원의 단상들이 뒤일 텐데 뒤바뀐 순서가 이 혼란을 부채질한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독설에 담긴 내용들이 민감한 사항들이 많고, 그의 정확한 정치성을 모르다 보니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 인기 연예인이 생각나는 대로 갈겨 쓴 글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만 작가와 이 책을 낸 한국 출판사를 생각하면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사고를 당한 후 생각들을 정리한 글부터 사실 나의 신경을 살짝 긁어 놓았다. 너무 적나라한 것이야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지만 나의 생각과 충돌하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조금 불편했다. 솔직함을 넘어서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들은 욕이 살짝 튀어나오는 부분도 생긴다. 특히 자신의 오스트리아의 하루를 형무소의 시간과 비교하는 대목에선 그가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알 수 있다. 그가 만약 한국 군대에서 근무를 했다면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불편한 감정도 많지만 솔직함과 날카로운 인식은 그를 또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5천 명이 죽었다고 말하면서 개인을 말살하고 묶어 생각한 것을 그는 5천 건으로 풀어낸 것이다. 사회문제 이전에 개인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지금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고 파묻힌 현장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지만 밥을 먹으면서 보고 금방 잊어버리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날카로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중력을 사색할 때는 왠지 모르게 건담 시리즈가 생각났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퍼즐 푼 것으로 보는 장면에선 깊이가 느껴졌다. 

붉은 색으로 나누어진 독설들은 우리의 현실과 연결시키면 더욱 불편해진다. 일본 헌법이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의 글은 일본인에게 통쾌함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마 이 모든 것이 싸움에 진 탓으로 돌리는 유치한 행동으로 보인다. 정치인에 대한 공격과 일본사람들에 비판과 질타는 거침없다. 자유의 개념을 정확하게 말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다 평등으로 넘어가면 강자의 논리가 넘실거린다. 남성우월주의가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교육이나 외교문제로 넘어가면 대안 없는 비판과 무책임한 말로 가득하다.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란 부제가 붙어 있지만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독설들이다. 이 독설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궁금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그의 생사관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단지 단상을 통해 드러난 사색과 관찰에서 가끔 뛰어난 점이 보일 뿐이다. 그가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모두 하여 통쾌하고 유쾌할지 모르지만 그 글을 읽고 생각을 걸러내는 입장에선 굉장히 불편하다. 일반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을 읽고 싶다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겐 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많은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정치성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구성 때문에 더욱 불편하고 가끔은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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