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천사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1-1 추락천사 1
로렌 케이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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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이 느껴지는 표지가 인상적이다.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트와일라잇>을 아직 읽지도 보지 않았는데 그 팬을 유혹하는 소설이 한 편이 나왔다고 한다. 장르는 판타지 로맨스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나에게 판타지는 선 굵고 남성적이면서 전투적인 것이다. 그런데 로맨스란 단어가 들어있다. 나의 취향과 맞지 않다. 하지만 고딕 스타일이란 설명과 표지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잉글랜드 헬스턴 1854년 9월에 한쌍의 남녀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랑과 두려움이 교차하는데 뭔가 펼쳐질 것 같다. 충분한 설명 없이 끝난다. 그리고 현재로 시간이 바뀐다. 여주인공 루스가 소드 앤 크로스 학교로 강제 전학을 온다. 교문을 들어와서 본 건물부터 특이하다. 그녀는 이곳에 오길 원치 않았다. 비행 청소년을 감화시킬 목적을 가진 학교고, 학생들 중 일부는 위치추적 장치와 전기충격 팔찌를 차고 다닌다. 학교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알아낸 정보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에 비해 너무나도 가혹한 처분 같다. 

첫날 그녀에게 접근한 한 소녀가 있다. 아리앤느다. 그녀를 통해 학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과정에 두 남자에게 끌린다. 다니엘과 캠이다. 특히 다니엘을 보면 그녀는 안기고 싶어할 정도다. 뛰어난 미모와 매력을 가진 두 남자와 역시 뛰어난 매력을 가진 루스는 이제 서서히 엮이기 시작한다.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 남자의 대결과 루스의 방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학교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변함없이 그것들은 그녀의 눈에 보인다. 더 많은 숫자가 그녀 곁에 맴돈다. 

그것은 그림자로 나타난다. 그것들은 그녀의 눈에만 보인다. 어린 시절 그림자 이야기를 했다가 정신병원에 갔고, 약을 먹었다. 그녀가 이 학교에 오게 된 것도 그녀는 알지 못하는 한 소년의 죽음과 관계있다. 키스를 하려다 불에 타 죽은 것이다. 이 사건은 의문이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욕과 매도가 멈추지 않고, 불안은 점점 심해진다. 과연 이 그림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의 학교생활은 평온하게 이어질 수 있을까? 이 두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저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이야기는 나아간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로맨스란 단어가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선 굵은 소설이 아니다. 쉽게 남자의 매력에 빠지는 루스와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킹카 두 명의 대결은 낯익은 구도다. 단순히 이런 전개만 이어졌다면 중간에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 남자와 학교에 있는 다른 학생들이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뭔가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덧붙여 매혹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디즈니사에서 판권을 산 후 영화로 만든다고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읽으면서 영상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괜히 영화 한 편을 머릿속에서 찍는다.

개인적으로 루스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불만이다. 뒤로 가면서 어느 정도 이해되었지만 순간적으로 짜증이 난 경우도 있다. 그녀의 끌림과 매혹이 영원의 굴레를 뒤집어 쓴 운명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것은 해소되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이고, 앞으로 세 편이 더 나와야 전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권은 혹시 영원히 열일곱 살이었던 과거가 나오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왜 그런 운명의 굴레에 갇히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불만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추락천사들의 싸움이다.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이 두 세력이 균형을 잡고 있다는 것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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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기사단의 검
폴 크리스토퍼 지음, 전행선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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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부터 사람의 시선을 끈다. <다빈치 코드>에서 시작하여 영화 <내셔널 트레저>까지 인용하면서 템플기사단을 씹는다. 대단한 독설이다. 보거나 읽은 것들이라 순간적으로 눈이 번쩍 떠였다. 그리고 템플기사단에 대한 강의는 계속된다. 이 강의 속에 나오는 그들은 요즘 말하는 마피아와 다를 바 없다. 긴 세월을 지나면서 환상과 전설이 덧붙여져 미화되거나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끄덕인다. 그럼 이 소설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그의 전작처럼 이번에도 남녀 주인공이 나온다. 전작이 연인으로 발전한다면 이번엔 육촌 삼촌과 조카 사이다. 삼촌은 미 사관학교 교수인 홀리데이 중령이고, 조카는 퓰리처상을 받은 적이 있는 사진작가다. 이 둘이 모인 것은 홀리데이의 삼촌 그레인저가 죽었기 때문이다. 상속인으로 이 둘을 지목했고, 이 때문에 모였다. 변호사를 만나 유산에 대한 설명을 듣고, 템플기사단의 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냥 듣고 넘어갔는데 그레고리의 책상을 뒤지다 비밀공간에서 검을 발견한다. 이때만 해도 그냥 날카로운 검일뿐이고, 큰 호기심도 관심도 없었다. 그 집이 불타고, 도적이 검을 들고 달아나기 전까지 말이다.

검을 훔쳐 달아난 사람 때문에 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그 내역을 조사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들이 흔적을 쫓아가는 곳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총을 든 악당들이 나타나 그들을 겨냥하고, 겨우 달아난다. 이들이 도착한 곳에는 언제나 적들이 나타나는데 재수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능력이 탁월한 것인지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진다. 그러면서 비밀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된다. 이 과정을 작가는 홀리데이 일행의 움직임만 쫓아다니면서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 속으로 우릴 데리고 가서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현실 속에 있었던 부조리한 상황을 설명한다. 이런 부분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 작가의 작품을 거의 모두 읽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구성에서 힘이 딸린다. 캐릭터도 작품 속에서 강한 개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잘 읽힌다. 이야기를 설정하고 풀어나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조사한 자료들이 이야기 속에 드러날 때는 새로운 정보와 가설 때문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긴장감이나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이끌고 가지는 않지만 비교적 쉬운 문장으로 속도감을 높인다. 이런 장점이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게 만든다.

역시 이번에도 마무리가 불만이다. 처음 만난 <렘브란트의 유령>이 전형적인 할리우드 식 마무리로 아쉬움을 주었다면 그 다음 작품 <아즈텍의 비밀>은 갑작스런 마무리로 차라리 할리우드 식 마무리가 그리웠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그 결말이 너무 무책임하다. 다음 이야기를 위한 포석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풀어낸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꼴이다. 자신이 한 정확한 자료의 나열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독자에게 결말의 다양성을 열어놓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쉽고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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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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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본드라마에 빠져 있었을 때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를 보았다. 그 당시는 원작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그 드라마의 원작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워낙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기에 원작소설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드라마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작에 대한 욕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몇 권을 구입하였지만 미뤄두고 있었다. 이제 이 시리즈의 첫 권을 시작한다.

몇 년이 흘러가면서 드라마의 세부적인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씩 기억하는 내용을 짜깁기하면 이 소설에 나오는 단편들이 드라마 속에 녹아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표제작이고, 그 사이에 다른 작품들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은 드라마로 표현할 수 없는 더 깊고 어두운 이야기가 나온다. 좀더 직설적이고 잔인하고 현실적인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 

모두 네 편의 연작 단편소설이 들어있다. 표제작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마코토의 첫 활약이 펼쳐진다. 드라마에서 기본 미스터리가 되는 줄거리가 이 단편에선 중요한 소재다. 마코토를 둘러싼 환경과 I.W.G.P의 권력 지도와 그 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삶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사건을 해결할 그의 동료들이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낸다. 드라마의 이미지가 깨어짐과 동시에 그 이미지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익사이터블 보이>는 전작에서 해결사 모습을 보여주었던 마코토가 본격적으로 해결사 역을 맡게 되는 작품이다. 묘한 힘의 균형 속에서 야쿠자 보스의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이 의뢰를 통해 그는 과거 동창들을 만나고, 자신의 능력을 한층 더 발전시킨다. 이번 소설에서 현실의 야쿠자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드러난다. 그가 발을 담군 세계가 아직 그 세계는 아니지만 그 경계를 그가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아시스의 연인>을 읽으면서 역시 드라마가 생각났다. 전작에서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 함께 한 이란인을 보호하는 작전을 펼친다. 그 이란인을 보호해달라고 한 것은 그의 동창이자 매춘녀이자 이란인의 애인이다. 그녀가 마약하는 것을 화내고, 딜러의 마약을 불 태워 생명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이 난관을 해결하고, 그를 보호할까 의문이었는데 예상외로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실행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해결사 마코토의 능력이 더욱 돋보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말은 살짝 입가에 미소 짓게 한다.

마지막 <션샤인 거리의 내전>은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서 그가 어떤 존재인지 가장 잘 보여준 단편이다. 새롭게 등장한 조직과 구 조직의 내전을 해결하는 그의 모습이나 첫사랑은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가장 많은 분량이다. 마코토의 친구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마지막 장면은 장관이다. 하지만 그 대결 속에 담긴 수많은 사연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씁쓸하다. 한창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 할 그들이 손에 칼을 들고 적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가슴 아리고 비참한 현실이다. 

현재 이 시리즈로 번역된 것은 모두 여섯 권이다. 단숨에 읽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껴두고 싶다. 변하는 마코토의 모습도 있을 것이고, 어느 순간 실패도 하지 않을까 하고 짐작도 해본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이케부쿠로로 대변되는 지역 속에 이 시대 젊은이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추리적인 재미만 따진다면 좀 약하다.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해야 할까. 반면에 캐릭터가 주는 재미는 아주 크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다시 드라마를 보고 싶게 만든다. 드라마 속에서 원작이 어떻게 녹아있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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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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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의 첫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2008년 영국추리작가협회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을 받았다. 일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해외 부분도 1위다. 이런 화려한 수상경력 중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맨 부커 상 후보에 선정된 것이다. 분명하게 이 소설을 스릴러로 알고 있는데 후보에 올라간 것이다. 약간 의외였다. 하지만 모두 읽고 난 지금 이 선정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 편의 스릴러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촘촘하게 만들어낸 소련의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1933년 우크라이나 체르보이 마을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 시기는 실제 우크라이나가 엄청난 기근에 시달리던 때다. 초근목피로 삶을 이어가고 있던 중 한 여자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밖으로 내몬다. 너무 사랑하지만 자신의 배고픔 때문에 고양이를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선택으로 고양이를 내좇는다. 그런데 이 모습을 한 소년 파벨이 본다. 엄마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말하고 고양이를 잡으러 간다. 동생 안드레이와 함께 고양이를 잡지만 그는 다른 어른에게 잡힌다. 동생이 형이 사라진 것을 두려워하며 엄마를 찾아간다. 형은 어디에도 없다. 배고픈 또 다른 사람에게 잡힌 모양이다. 이렇게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간 후 현실로 나온다.

1953년 현실의 소비에트 연방은 참혹하다. 독재자 스탈린의 말은 곧 하늘이고, 반항은 죽음이다.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임을 서방에 알리기 위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통계가 판친다. 당연히 살인사건은 존재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싸움을 하던 형제 중 동생이 사라진 후 기찻길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이 아이는 주인공 레오의 부하 아들이다. 아버지는 살인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은연중에 드러난 레오의 위협에 아들의 죽음은 사고로 바뀐다. 이 사건이 묻히는 순간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스파이 협의로 감시 중이던 수의사가 도망친 것이다. 

전쟁 영웅이었던 레오가 조금 방심한 그때 벌어진 일이다. 수의사 주변을 수사하던 중 단서 하나를 발견한다. 그를 몰아내고 그의 자리를 탐내던 부하 바실리는 다른 곳을 지목한다. 엇갈린다. 레오는 확신을 가지고 수의사를 뒤쫓고, 그를 잡는다. 수의사를 숨겨준 전쟁 동료는 바실리에게 즉결 처분된다. 섬뜩한 현실이다. 다행히 두 딸은 레오의 저지로 살아남는다. 수의사는 끌려가 고문당하고 약에 취해 고객들의 이름을 말한다. 이때 레오는 그가 무죄임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국가 권력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죄가 없지만 잘못은 있을 수 없다. 이 사건을 통해 살벌하고 공포에 떨던 스탈린 시절의 삶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 자백 중 레오의 아내 라이사가 나온다. 위에서 이것을 조사하라고 한다. 그는 고민하다 아내의 무죄를 주장한다. 실수다. 평소 같으면 시베리아로 유배당할 것이지만 그때쯤 스탈린이 죽었다. 이 때문에 그는 다른 지역 민병대로 좌천된다.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의 실체가 드러난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아내가 권력의 두려움 때문에 결혼했고, 이제 그 사실에 그는 폭발한다. 이런 가족 해체 속에서 그와 아내는 숲 속에서 한 구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 시체의 모습이 부하의 아들이 죽은 모습이나 그 마을에 있었던 살인과 비슷하다. 이때 깨닫는다.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연쇄살인사건이 인정될 리가 없다. 이때부터 이 살인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그와 아내의 협력과 노력이 펼쳐진다. 

소련의 과거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유신시절이 생각난다. 안기부가 언제 구둣발로 집을 짓밟고 사람을 잡아갈 줄 몰랐다는 불안과 공포 시절 말이다. 독재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펼치는 폭력과 압제는 불안과 공포를 먹고 자라는 모양이다. 그래도 한국이 민주주의의 탈을 쓴 상태에서 살인과 고문이 자행되면서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은 반면에 철의 장막 속에선 한계조차 없다. 의심은 확정이고, 확정은 곧 죽음이다. 즉결처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어나고, 감시의 눈길은 아버지와 아들, 형제 사이에도 없다. 조그마한 농담 한 마디로도 충분히 죽을 수 있다.

드러난 현실은 만들어진 이미지로 포장되고, 그 밑에 숨겨진 현실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하다. 너무나도 분명한 연쇄살인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것을 조사한다는 것은 곧 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이 말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란 의미다. 소설 후반부는 살인자를 찾으려는 레오의 노력과 독재정치가 깨어지는 틈새를 보여준다. 그리고 레오가 생각한 인민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고, 멀어졌던 아내와의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스릴러 같이 악당과 경찰이 만들어내는 쫓고 쫓기는 대결이 이 작품의 매력은 아니다. 공포에 짓눌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현실과 공포와 불안이 살인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력이다. 한 인물이 변해가고, 깨닫고, 인정하는 그 과정이 매력이다. 나의 과장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주인공 이름이 레오인 것이 영화 <매트릭스> 속 레오와 같이 현실을 깨닫고 싸우는 존재의 오마쥬인지도 모르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있다니 어떨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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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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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읽은 <산중일기>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 에세이도 눈길이 갔다. 처음 책을 받고 대충 넘겨보면서 마주한 사진들은 따스하고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거기에 좋은 종이까지 곁들여 있다. 이런 만족스런 감각들을 가지고 책을 펼친다. 목차를 가볍게 훑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낯익은 이름들도 보인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그의 문학 반세기를 만든 추억과 인연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처음 읽으면서 속도가 빨랐다. 가벼운 이야기에 많은 사진들이 그렇게 만든다. 작가의 과거 추억을 현실로 불러온다. 각각의 이야기 분량이 모두 다르다. 그는 분량의 제약을 받지 않고, 현실로 추억과 인연을 데리고 온다. 이 추억과 인연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현실로 오는 과정에서 작가의 현재 깨달음과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뒤로 가면서 속도가 점점 더디다. 어느 문장을 읽다가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힌다. 조용히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모두 마흔세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인연은 사람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사물과 풍경과 추억과 사람들로 이어져 있다. 사람 이야기가 좀 적어 아쉬운 느낌도 있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 난 하나, 칼국수 한 그릇, 개구리 한 마리가 이 아쉬움을 채워준다. 이것들과의 추억과 새로운 경험과 느낌이 나의 닫힌 가슴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점점 삭막해지는 나의 감성을 조용히 두드린다. 몇몇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내고, 그 힘겨웠을 과거가 머릿속에선 부럽기만 하다. 아마 실제 겪는다면 힘들어할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가슴 속으로 파고 든 것은 두 인연이다. 하나는 적막이란 단어를 풀어낸 것이고, 하나는 형제에 대한 것이다. 적막이란 가슴에 새소리가 쌓이는 것이란 말에 처음 고개를 갸우뚱했다. 노년에 맞이한 손자들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조금씩 새소리의 의미가 와 닿는다. 나의 삶 속에서 가장 불효가 바로 이 손자임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 아리다. 형제란 서로 닮아가는 정신의 노력이란 문장에서 다시 한 번 더 나를 돌아본다. 그가 살아온 인생과 내가 경험한 인생이 분명히 다르고, 환경도 다른데도 말이다. ‘형제란 서로 닮은 얼굴이 아니라, 서로 닮아가려는 정신의 노력’(166쪽)에선 내가 과연 그 정도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나만 보고 앞으로 달려온 삶이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그가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을 이야기하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가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에 대한 것이 많다. 이미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란 책까지 낸 상태인데도 할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몇몇 이야기는 낯익은 듯하다. 가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자신의 성공을 말할 때는 왠 자랑! 하면서 살짝 콧방귀도 날려본다. 부럽다.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한 표현들이 많은데 삶을 살아오면서 날카로움을 닦아온 것인지 아니면 본래 천성인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신을 믿지 않지만 그가 성경에서 큰 도움을 받고 깨달음을 얻은 부분에서 살짝 부럽기도 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실천이 부럽다. 이 모든 이야기가 나로 시작하여 사물과 사람과 추억과 인연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모든 것은 우리로 결국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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