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 세계 경제를 비추는 거울
도시마 이쓰오 지음, 김정환 옮김, 강호원 해제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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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가까이는 돌반지 등 선물이나 장식용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금값이 개인 생활과 관련을 가지는 것은 바로 돌 반지나 금반지 등을 살 때다. 그 외는 사실 금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뉴스에 금값이 올라 온스 당 1천불이 넘었다는 등의 소식이 있지만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돌 반지 한 돈에 얼마다 하면 아! 많이 올랐네, 하고 금방 이해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금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선배 한 분이 세금을 절약하고, 안전한 투자 목적으로 금괴를 산 주변 사람 이야기를 해줬다. 예전에 비해 금값이 거의 두 배 뛰었는데 농담 삼아 돈 버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번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엔 결과론적인 상황이 담겨 있다. 금값이 떨어졌으면 아마 다른 자산을 샀다면 더 벌었을 텐데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략한 이야기 속에 금 가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것은 금이 지닌 안정성과 희소성 등이다.  

 

 

 저자는 “황금을 세계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금시장에는 전 세계의 정치․경제의 동향이 응축되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시장의 조류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4쪽)로 시작한다. 그리고 “서브프라임 문제 역시 금시장이 다른 시장보다 앞서서 민감하게 조류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4쪽)라고 말한다. 이런 위기를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그 원점은 1971년 닉슨이 달러와 금의 고정환율로 고정하는 대신 변동환율 제도로 이행한 때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금을 통화의 자리에서 몰아낸 것이 통화 투기를 낳았고, 그것이 먼 원인이 되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한다. 옵션과 스왑, 인덱스 투자나 증권화 상품 등의 낯선 파생금융상품은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현재 말해지고 있다.  

 

 모두 6장으로 나누어 황금에 대해 설명한다. 현재 금 가격이 상승하게 된 배경을 미국발 금융위기와 금시장과의 관계나 금본위제의 안전성 등으로 설명한다. 이어서 2천년 역사를 가진 통화로서 금의 가치를 주목하고, 금시장을 뒤흔드는 금 메이저와 투기 자금의 실태를 보여준다. 간략하게 일본에서의 금 거래를 설명한 후 금시장을 움직이는 나라들을 설명한다. 현물거래 중심지인 런던, 100년 이상 금 생산량 1위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장 많이 금을 소비하는 인도, 이제 세계최대 금 생산국이자 2위의 소비국인 중국, 금리를 낳지 않는 금을 장점으로 생각하는 중동국가 등으로 옮겨간다. 마지막 장에선 앞으로 벌어질 금시장을 변수들을 되짚어본다.  

 

 황금에 대한 많은 정보와 사실을 담고 있다. 금을 통해 세계경제의 한 면을 보게 된다. 유사 이래 채굴된 금의 양이 약 16만 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나 IMF 외환위기에 우리가 판 금의 양이 200톤이란 정보는 금의 희소성과 가치를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딜러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사고 뉴스로 판다’는 상투적인 수단은 유사시 금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것은 유사시에 금을 팔아 급한 상황을 넘기라는 뜻인데 한국과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던 금을 팔아 경제위기를 넘긴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   

 

 현재 각국의 금 보유량과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게 되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이 보유한 금 보유량은 2008년 9월 현재 8,134톤이고, 외환보유액 비중은 78.2%다. 이에 반해 중국은 600톤에 1%다. 이런 불균형은 미국과 중국이 공생관계를 앞으로도 어느 기간 동안 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후 중국은 금 보유량을 계속 늘이고 있다. 중국은 현재 위안화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시간에 이것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중국을 예측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전체적으로 금을 통해 세계 경제를 풀어본 책이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통계 수치와 금 보유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금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알려준다. 우리들 대부분은 장식물이나 예물로서 황금을 바라본다. 원화나 달러나 위안화 등이 단순히 각국이 써준 차용증임을 생각할 때 실물자산이자 궁극의 통화인 금의 존재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역시 경제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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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를 믿지 말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이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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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은 무섭다. 자신도 모르게 생활 속에 그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귀여운 여인 이자벨이 한 남자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직업병 때문이다. 그녀의 가족이 사립수사관이 아니었고, 그녀가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이번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건은 바로 옆집 남자이자 그녀의 열한 번째 남자 친구인 존 브라운을 뒷조사하는 일이다. 멋진 외모에 예절까지 갖추었지만 조금 이상한 행동 때문에 그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않았고, 조사를 넘어선 집착으로 발전하여 체포까지 된 것이다. 소설은 바로 그녀가 두 번째 혹은 네 번째 체포로 시작한다.  

 

 두 번째 혹은 네 번째 체포라니 조금 이상하다. 이런 애매한 표현을 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금 이상한 그녀 가족과 생활 속에 존 브라운이 나타나면서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펼쳐진다. 하지만 존 브라운을 둘러싼 의문보다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에 더 중심을 두고 있다. 그녀의 동생 레이와 경찰 헨리의 이상한 관계, 어머니의 늦은 밤 외출, 아버지의 알 수 없는 변화,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결혼한 오빠의 갑작스런 우울과 변화 등이 재미있고 유쾌하며 즐겁게 펼쳐진다.  

 

 전작 <네 가족을 믿지 말라>를 보지 않아 앞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읽는데 지장은 없다. 오히려 전작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만 높아졌다. 이렇게 만든 첫 째 공신은 역시 이자벨이다. 그녀의 좌충우돌하는 활약을 보는 재미는 대단하다. 전 남자 친구들의 결혼 소식에 우울해 하고, 여동생 레이 때문에 고생하는 헨리를 방문하여 습관처럼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녹음한다. 이런 것들을 시간 순으로 하나의 파일처럼 엮어서 소설을 만들었는데 한 편의 영화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존 브라운에 대한 집착은 핵심 줄거리인데 무섭거나 집요하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코믹하다. 몰래 들어가려는 이자벨과 꼭꼭 숨기려는 존 브라운의 대결은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전혀 없고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역시 이 이상한 가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을 읽었다면 적응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만나니 엽기적이다. 직업병으로만 이 모든 사항을 치부하기엔 너무 치밀하고 때로는 유치하다. 이자벨이 의문을 가진 것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일반적인 가족들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일들이다. 바로 이 점이 이 가족의 이야기에 빠져 웃고 즐기게 하는 매력이기는 하다. 그리고 부록의 전 남자친구 리스트에 나오는 헤어질 때 한 말들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추론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것을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집안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찰 헨리는 정말 대단하다. 운전교습 중 자신을 친 레이를 결코 좇아내지 못하고, 이제는 집을 잃은 이자벨 마저 자신의 집에 살게 한다. 이런 보면서 앞으로 펼쳐질지  모를 두 사람의 로맨스를 기대한다. 그리고 왜 레이가 그렇게 헨리에게 집착하는 지 살짝 의문이기도 하다. 이것을 싫어하면서도 받아주는 헨리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도 역시 궁금하다. 이것은 앞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면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는 내내 웃게 되고, 기발한 착상과 유머 있는 대사에 킥킥거린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쳐다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자벨의 집착이 만들어내는 상황들과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유쾌한 탐정극이자 상황극이다. 존 브라운의 비밀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지면서 미스터리는 약해진다. 하지만 정말 멋진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이 다음에 벌어질 사고나 사건을 기대하게 만든다. 바람 잘 날이 없는 이 가족을 보면서 입가에 계속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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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여름방학
사카키 쓰카사 지음, 인단비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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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초등학생이 나에게 와서 ‘아빠’하고 외친다면 어떨까? 아마 엄청나게 당황하고, 허둥지둥할 것이다. 그리고 냉정을 찾은 다음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연구소로 달려가지 않을까? 검사 결과 나의 아이가 맞다면 어떤 느낌일까? 농담 삼아 다 자란 아이가 나타나 준다면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나 이 소설처럼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엄청 복잡하고 곤란하고 어려우면서 가슴 한 곳에 고마움이 자리 잡을 것 같다.  

 

 호스트 야마토에게 한 소년이 찾아온다. 첫 말이 “아버지, 처음 뵙겠습니다.”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다. 아이의 엄마 이름을 듣는 순간 사실임을 직감한다. 이렇게 만난 부자는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호스트인 야마토는 전혀 호스트답지 않다. 고객에게 웃음과 그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줘야하는데 오히려 진실을 까발리고 손찌검까지 한다. 당장 모가지다. 바른 말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장 취미가 있는 사장 재니스의 소개로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택배기사다.  

 

 허니비 택배. 이곳이 그가 앞으로 일한 직장이다. 묘한 분위기가 있는 곳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첫 날 지역을 한 번 돌고 나서 힘들어 하지만 전직 폭주족이었던 그는 차를 잘 몰 자신으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그에게 배정된 것은 리어카다. 경량으로 새롭게 개조되었지만 분명히 리어카다. 지역밀착형 소형 택배사고, 배송차들의 불법주차 문제가 있다지만 놀라운 발상이다. 그런데 작가 후기를 보면 실제 일본에 이런 택배사가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그는 물건을 배달하면서 지역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이후 이어지는 택배 현장의 모습은 약간의 마찰이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전직 호스트의 습관과 노력으로 점점 좋아진다. 힘들지만 고객을 배려하는 마음과 노력은 늘 택배사고를 불만스럽게 말하는 우리 현실을 보면 비교된다. 물론 우리의 현장 환경이 더 열악하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는 한다. 그렇지만 가끔 정말 좋은 택배기사를 만나면 고맙고 미안한 마음까지 생긴다. 이 소설 속 상황은 작가가 한 부분을 강하게 미화한 점이 있기는 하다. 

 택배기사만 따뜻하고 훈훈한 것이 아니라 등장하는 대부분이 그렇다. 호스트 유키야나 손님 나나나 사장 재니스나 직장 동료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지만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렇다. 그중에서도 아들 스스무 군은 발군이다.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구김살이 없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척척 잘도 한다. 요리도, 청소도, 숙제도 모두 자신이 알아서 한다. 이 아이를 보면 나라도 어디서 이런 자식이 나타나 준다면 감사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스스무 군의 여름방학 동안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을 다룬다. 잔잔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다. 좋은 사람들의 일상과 두 부자의 관계 만들기는 빠르게 읽히면서 마음에 전혀 걸리는 것이 없다. 이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현실의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단점이 읽는 동안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겨울 방학 이야기가 기다려질 뿐이다. 앞으로 이 부자뿐만 아니라 엄마까지 등장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티격태격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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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클럽의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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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직접 뽑은 자신의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유일한 단편집이다. 13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고 미스 마플의 놀라운 추리력을 선보인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미스 마플의 놀라운 추리력과 직관력은 그녀가 등장하는 소설을 볼 때마다 놀란다. 비록 그것이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과 트릭이지만 책을 읽다 몰입하는 순간 잠시 가공과 현실의 경계를 잊게 된다. 이 부분이 우리가 추리를 읽고 소설 속 탐정들에게 매료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13개의 사건 속에서 많은 수의 답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가 탁월한 추리력이나 관찰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읽어왔고 애거서 여사의 작품도 여럿 읽었기 때문이다. 책의 후기를 보니 이 중 몇 편은 장편으로 발전하였다고 하니 어딘가에서 책이나 영화 등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앞의 몇 편은 너무나도 익숙하여 이전에 읽은 책이 아닌가 의심도 하였다. 하지만 나의 둔한 기억력으로 정확한 정보를 찾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편 한편이 보물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 ‘푸른 제라륨’과 ‘크리스마스의 비극’과 ‘방갈로에서 생긴 일’이 마음에 들었다. ‘푸른 제라륨’이 마음에 든 것은 트릭 자체가 기발한 것도 있지만 인간이 가진 미신에 대한 공포가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의 비극’의 경우 범죄가 발생할 것을 직관적으로 감지하지만 결국 살해당하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두뇌대결과 트릭이 재미있었다. ‘방갈로에서 생긴 일’은 무시무시한 살인이 아니라 범죄 계획을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해설에서 ‘피 묻은 포도’는 ‘백주의 악마’로, ‘친구’는 ‘예고 살인’이라는 장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친구’의 경우 왠지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떠올려 주었고, 다른 작품들도 여기저기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가지게 한다. 그만큼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과연 이 13편의 단편 추리소설이 과연 추리소설사에 걸작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몇 편에선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재미도 있지만 애거서 여사의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단서 불충분과 직관에 의한 해결이 나에겐 걸림돌로 작용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추리를 추천하라고 하면 많은 책들 중 이 한편도 추천하고 싶다. 어린 시절 내가 애거서의 책과 셜록 홈즈의 책 등으로 추리에 재미를 붙인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애거서의 책을 짬짬이 읽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작가인 것은 틀림없다. 가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만 그 영향력을 보고 생각할 때마다 위대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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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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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힘들게 읽었다. 작가가 말했듯이 바깥 세계와 내면 세계를 동시에 반영하기 위해 일반적인 문법과 서술규칙을 모조리 무시한다. 네 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일인칭과 삼인칭이 왔다 갔다 한다. 서술과 독백과 대화가 과거와 현재 시제와 뒤섞여 있다. 대단한 집중력과 세심하게 읽지 않으면 그 재미를 놓치기 십상이다. 사라마구와 마르케스의 칭찬을 제대로 누리기가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한 명을 꼽으라면 아구스티나다. 그녀의 남편 아길라르나 과거의 연인 미다스나 외할아버지 포르툴리누스는 별개의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와 직접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제목처럼 광기를 보여주는 개인은 아구스티나이고, 사회의 광기를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미다스다. 이 둘을 통해 내면의 황폐화된 모습과 시대의 현실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아구스티나의 집은 부자다. 그녀는 물질적 결핍을 모르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녀의 늦은 귀가와 남자 친구에 대한 아버지의 근심과 걱정은 막내인 비치에게 옮겨가면 폭력으로 발전한다. 아들이 보여주는 여성 같은 행동과 말투가 그로 하여금 폭력을 휘두르게 한다. 아버지와 소피 이모 사이의 불륜을 알고도 덮어둔 현실이 드러나는 순간 가족이 보여주는 연극은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하다. 그녀가 광기에 휩싸이고, 폭발하는 장면들이 그 연원을 올라가면 이 상황에 있음을 알게 되고, 다른 이야기 속에서는 가족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아길라르는 대학교수였다. 아내를 위해 교수직을 포기하고, 사료 배달을 한다. 물론 교수직을 포기하기 전 학교가 잠시 문은 닫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를 돌볼 시간을 더 갖기엔 사료 배달이 더 좋다. 아갈라르는 그녀의 광기를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낸다. 사랑으로 가득한 그는 이 속에서 아구스티나 가족의 역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모든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고, 발전했고,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하고 질문한다. 인상적인 장면은 전처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느낀 편안함과 이 편안함에 취해 있을 때 나타난 아구스티나의 관심이다. 이 관심으로 사랑이 충만하고, 그녀의 광기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 세탁을 하는 미다스는 부패와 폭력과 마약 거래와 살인 등의 사회적 현실을 말한다. 가난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가 아구스티나의 오빠 호아코를 만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는 돈의 위력을 알고, 호아코의 행동과 말을 흉내 낸다. 성장한 후 부자들과 마약상들의 돈을 세탁하고, 자신도 부를 쌓아간다. 나름대로 부를 이루고, 멋진 여자를 거느리지만 그가 가진 것은 아직 약한 기반위에 세운 모래성과 같다. 그 모래성은 그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싸우지 않고 포기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녀의 광기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려면 외할아버지 포르툴리누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독일 이민자에 피아노 연주자였던 그의 현재와 과거를 보면 그녀의 행동이 단순히 개인적, 사회적 문제만이 아닌 유전적 요소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의 누나 일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듣는 순간 그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삶이 그것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역자는 원작의 문장이 주는 난해함을 어느 정도 읽기 쉽게 풀어내었다. 그래도 익숙하지 않다. 절반 정도를 읽으면서 그 문장과 시제와 인칭 때문에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고 집중력은 약해졌다. 그런데 절반을 넘어 끝으로 가면서 앞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도가 붙고 힘겨웠던 문장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재미도 있었다. 비록 거장들이 누린 재미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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