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엔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1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친구와 영화로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지막 장면을 보고 뭐야! 를 외쳤던 기억이 있다. 영화와 원작에 대한 정보 없이 다가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결말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부두교와 악마숭배 등의 제사의식과 감독의 현란하고 암울한 영상미였다. 이미 십 수 년이 지났는데도 그 이미지 일부가 내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제 원작을 통해 영화의 이미지를 다시 떠올리고, 의문을 가졌던 것에 답을 찾게 되었다.  

 

 하드보일드와 오컬트 호러의 결합이란 표현, 정답이다. 이야기의 도입부는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드보일드다. 탐정 해리 엔젤에게 한 변호사가 찾아오고 한 의뢰인에게 그를 소개한다. 의뢰인 사이퍼는 2차 대전 초기 큰 인기를 얻었던 가수 자니 페이버릿을 찾아달라고 한다. 그는 자니가 무명일 때 도움을 좀 주었고, 그가 사망할 경우 담보를 건 것을 몰수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 계약 내용은 당연히 비밀이다. 그리고 자니가 전쟁 중에 부상을 입고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지만 병원 측의 교묘한 방해로 면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의뢰 내용은 사실 확인이다.   

 

 단순하게 자니가 그 병원에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려고 시작한 조사는 단순한 미끼다. 엔젤이 병원을 찾아가서 자니의 흔적을 서류상 좇아가지만 어디에도 그 실체가 없다. 그러니 그 중심에 있던 의사를 찾아간 것은 당연하다. 그를 통해 숨겨진 과거 사실 일부를 알게 된다. 다른 정보를 더 얻기 위해 모르핀 중독자인 그를 방에 가둔다. 그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낸 후 찾아가니 자살한 것처럼 보이면서 죽어있었다. 왜? 누가? 그를 죽인 것일까? 이것은 앞으로 이어질 살인의 시작일 뿐이다.  

 

 이 사건 이후 엔젤은 자니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하루 일당 50불에 열흘 기간으로 500불을 선불로 받았다. 1959년 뉴욕을 배경으로 엔젤은 자니의 과거를 좇는다.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니 한때 약혼했던 여자와 악단이 나온다. 이제 과거 속에서 단서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들을 만나고, 뒤좇으면서 부두교의 의식을 보게 된다. 여기서 그의 숨겨진 비밀 한 가지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단서보다 이어지는 살인이 더 문제다. 의사처럼 그가 자니의 흔적을 뒤좇고, 하나의 단서를 찾을 때마다 살인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누굴까?   

 

 작가는 엔젤의 행동을 통해 하드보일드 형식을 보여준다면 그가 좇고 파헤치는 과정에 드러나는 살인과 의식을 통해 오컬트 분위기를 풍긴다. 이전에 본 영화 이미지와 앞부분에 나온 문장 덕분에 하나의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곳곳에 흘려놓은 단서들을 무심하게 본 결과 가장 중요한 설정을 놓쳤다. 이 서평을 쓰기 위해 몇 쪽을 뒤적이니 그 흔적들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마술이니 트릭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그 설정으로 모두 가능해졌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이니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섬세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과 50년대 말 뉴욕의 풍경을 멋지게 그려낸 것은 분명히 작가의 역량이다. 빠르고 쉴 새 없이 읽어 나가게 만들고, 마지막 결말에 허탈감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제 영화를 다시 본다면 완전히 새롭게 그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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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예수
앤 라이스 지음, 이미선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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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렉산드리아에서 7살의 예수가 싸운 아이를 향해 쓰러져라! 고 외친 후 그 아이가 죽는다. 하지만 얼마 후 그 아이가 살아나길 바라면서 그 아이는 다시 살아난다. 이런 경이적인 일로 시작하여 1년간의 행적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이 나에겐 안타까움을 준다. 미국 최고의 판타지 작가 중 한 명인 그녀가 흡혈귀나 마녀 등을 버리고 신의 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앤 라이스를 생각하면 뱀파이어 레스타가 먼저 떠오른다. 영화로 유명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그 매력적인 흡혈귀 말이다. 그녀의 작품에 빠지게 만든 것도 역시 ‘뱀파이어 레스타’였다. 영화로 보고 책으로 읽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이후 나온 시리즈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다른 시리즈인 메이페어 마녀시리즈도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그녀의 신간이 나오길 엄청 기다렸다. 하지만 그 시리즈들은 중단되었고 기다림은 지쳐갔다. 그러다 서점에서 본 앤 라이스의 신간이 예수에 대한 책이라니!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것은 엄청난 안타까움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손이 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요 근래 엄청나게 많은 팩션이 쏟아져 나오고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예수라는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책들이 나오는 와중에 인간 예수나 카톨릭에 대한 음모론 등의 흥미로운 소재들이 관심을 끌었다. 어느 순간 반종교적이 된 나에게 이런 책들은 좋은 흥미꺼리였다. 하지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책들이라 흥미 이상의 것을 주는 것은 무리였다. 체계적인 독서가 아니라 얻은 것도 많지 않지만 반기독교적 성향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다. 이런 시기에 약간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 시점에 만난 이 소설이 재미있게 읽힐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앤 라이스라면 조금은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역시 그녀의 문장과 생생하게 살려낸 그 시대의 풍경과 생활은 멋졌다. 허나 책에 대한 집중력과 재미까지는 보장해 주지 못했다.  

 

 저자 후기를 보면서 그녀가 얼마나 많은 서적을 읽고 연구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무신론자들의 황당한 주장에 대한 그녀의 반론에 가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고와 독서의 기반은 그녀의 신앙심이다. 기독교 신자에 앤 라이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 같은 무신론자가 읽기에는 약간 거부감이 생긴다. 차라리 저자 후기가 더 흥미로웠다고 해야 하나? 그녀의 영감과 신앙심과 오랜 조사 끝에 나온 이 소설이 탁월한 능력에 의해 그 시대를 그려내고 있지만 이미 정해진 결론에 의해 흥미가 반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비록 기독교와 예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문장과 의미로 가득하다해도 말이다. 다시 뱀파이어 시리즈로 돌아올 가능성이 없기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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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회상록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 지음, 조세형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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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구름에서 태어난 빗방울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는 빙하 녹은 물과 합쳐져 강이 된다. 여기서 ‘그’라는 남성 명칭을 사용한 것은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강이 남성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사랑을 나누었던 존재들이 여성성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강이 된 그는 엄청난 세월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그 긴 역사를 강은 수많은 신화와 역사를 섞어서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로 만들어 놓았다.  

 

 전작 <나무 회상록>에 비해 쉽고 빠르게 읽었다. 강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미 전작에서 경험한 구성인 점도 있지만 낯익은 것도 크다. 인류의 역사를 큰 줄기에서 다루며 도도하게 흘러가는데 역사에 조그마한 지식만 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그 잔혹함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후 펼쳐지는 폭력과 학살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아주 작은 살인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이 전환이 역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 대표 인물이 전사인 쿠르칸이다. 그의 후손들로 아틸라, 샤를마뉴 대제, 나폴레옹, 히틀러 등을 꼽는다. 역사 속에서 그들이 벌인 전쟁과 그 참혹한 현장을 생각하면 남성 중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처럼 보인다.  

 

 작가는 강을 신으로 만들면서 사실주의의 무거움을 벗었다. 강이라는 명사로 부르지만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존재를 화자로 내세우면서 유럽의 신화 속 존재들을 부담 없이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인간의 역사를 말하는 동시에 환상세계도 같이 그려내고 있다. 재미난 점은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강과 노움과 님프 등에게 인간의 감정을 부여한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그리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특히 물의 님프 살마키스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때문에 홍수를 불러오는 강의 모습은 의인화와 역사의 멋진 만남이다.  

 

 많은 문장 속에 인간이 지닌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부분이 있다. “그들의 시각은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어. (중략) 인간은 우리와 달리 세상이 몇몇 정해진 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세상이 매 순간 다채로운 색으로 모습을 바꾼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지.”(24쪽)란 문장이다. 교육이나 삶의 경험에 의해 시각이 왜곡되고 고정되면서 쉼 없이 변화는 세상에 우리의 적응과 발전은 더기기만 하다. 

  

 

 이미 전작에서 남성성의 파괴적인 성향과 여성성의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번에도 역시 남성 중심 사회로의 이행으로 인한 분쟁과 문제들을 긴 시간 속에 보여주고,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강의 변화를 통해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치수를 위해 둑을 쌓으면서 물의 흐름을 직선으로 만들어 숨겨진 재앙을 암시하는 부분에선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사회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직선과 관련된 부분별한 개발과 현재만을 생각하면서 일어나는 환경오염은 현재도 문제지만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강은 말한다. 하늘로 증발해도 다시 인간이 신호를 보내면 지상으로 내려와 강으로서의 나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이다. 전작처럼 희망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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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회상록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 지음, 박선옥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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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주목이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이다. 그녀의 성장과 죽음과 재생을 다루면서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게 만든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다가갔다가 생각보다 무겁고 때로는 재미난 이야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부족한 지식들이 아쉬움을 준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 몇 곳을 제외하면 짧은 지식으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고 지나가기도 했다.  

 

 주목. 사실 잘 모르는 나무다. 사실 나무 그 자체를 잘 모른다. 한때 이름 몇 개를 외우고, 늘 보는 나무 몇 종류를 알고 있는 것이 전부다. 거대하게 자란 나무를 보면 대단하다고 감탄하고, 이제 수명이 다한 나무를 보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상쾌함을 느끼고, 곧게 자란 나무들을 보면 무의식중에 목재를 생각한다. 나 자신도 모르게 고마움과 이익을 동시에 느끼고 생각한 것이다. 

  

 

 주목이 얼마나 사는 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시간은 엄청나다. 처음 그녀가 죽음을 만날 때가 1400년이 넘을 때다. 이 죽음이 지난 후 살아남은 뿌리에서 부활한다. 재미난 것은 그녀에게 죽음을 내린 사람들이 수도사였고, 그녀의 재생을 보고 기적을 외치며 보호한 사람도 수도사였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이중성이 극과 극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이 인간에게 증오를 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증오를 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자신 주변에서 벌어진 나무들의 대학살로 인한 울부짖는 고통을 들으면서 좀더 성숙한다. 이제 그녀는 한층 여유롭게 따스하게 주변과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주목의 회상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나무들의 세계를 말한다. 처음 그녀가 사람을 만난 장면이 살인이고, 인간이 나무에게 가하는 도끼질은 나무들의 죽음이다. 이 죽음을 통해 그녀가 인간을 만났고, 주목을 숭배하는 종교인을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들은 한정적이다. 아니 이기적이다. 자신의 지역을 지키기 위한 전투나 다른 나무들이 도끼에 쓰러질 때 결코 느끼지 못했던 아픔과 고통을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에게 대입한다면 어떨까?   

 

 작가가 뒤에 쓴 작품개요에서 “자연에 대한 경시이자 극도의 인간중심주의”(335쪽)가 기독교의 결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지 자연환경과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천지만물 중에서 인간이 최고 귀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또 대운항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배를 만드는 목재로 바뀌었는지 보여준다. 그 시대의 바탕에 깔린 감정이 바로 강한 탐욕이다.   

 

 적자생존이나 진화설에 대한 의문으로 마무리한다. 인간들이 행동이 세상의 영원한 법칙이란 말로 표현된 진화나 적자생존을 넘어 공존을 말한다. 자연계의 모든 것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계를 꿈꾼다. 하지만 “세상은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할 수 없는 싸움터”(294쪽)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 이 한 단어에 담겨 있는 의미는 너무나도 크고 거대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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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은 죽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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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이 <네 탓이야>라고 하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전편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고 이번 작품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그래서 다음에 시간을 내어 전작을 읽어보고 싶다. 모두 아홉 편이 실려 있다. 겨울에서 시작하여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면서 이야기는 끝나는데 한 계절에 하나의 이야기가 실린다는 것도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첫 작품 <짙은 감색의 악마>는 이 작품집이나 다음에 나올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서 중요한 악당이 될 존재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그녀의 언니가 자살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흥신소 일을 시작하면서다. 그녀가 맡은 일은 시오리라는 여성 실업가를 경호하는 일이다. 그녀의 집으로 스토커처럼 악담을 담은 팩스가 들어오고, 혐오스런 택배가 오고, 위에선 화분이 떨어지고, 차가 그녀를 향해 돌진한다.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그녀를 보호하는 일인데 이젠 같이 경호하던 사람마저 그녀를 공격한다. 이 모든 음모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얼까?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혹시 자작극은 아닐까? 의문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악당의 등장으로 여운을 남긴다.  

 

 <시인의 죽음>은 그녀가 낡은 자취집을 벗어나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원인을 파헤친다. 결혼을 앞둔 친구 미노리의 약혼자가 차를 몰고 자살을 한 것이다. 공무원이면서 시집을 내어 초판이 매진될 정도로 능력이 있었던 남자가 말이다. 이 자살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숨겨진 비리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비밀은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작품이 뒤에 많은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그것은 이 집이 의뢰인을 만나는 공간이자 그녀의 친구가 탐정 역을 맡기도 한 것 때문이다.  

 

 <아마, 더워서>는 한 여성 사무원의 살인미수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왜 그녀가 그런 일을 벌렸는지와 과연 그녀가 실제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뒤끝이 남는 것은 역시 제목이자 그녀의 심정을 드러낸 문장과 사연 때문이다. <철창살의 여자>에서 만나게 되는 서지학은 반가웠다. 그렇지만 한 화가의 자살과 그의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마지막에 밝혀지는 순간 인간관계와 질투와 살의가 섬뜩함을 주었다.  

 

 

 하무라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 두 작품 중 하나인 <아베마리아>는 한 탐정의 하루 동안 탐문수사 속에 숨겨진 사연이 가슴 아리고 개운치 않은 뒤끝을 남긴다. 표제작 <의뢰인은 죽었다>는 다시 인간의 탐욕과 탐욕이 만들어낸 살인에 놀란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그 모든 알리바이와 거짓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녀의 추리와 해결 능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탐정의 여름 휴가>에선 그녀는 휴가 중이다. 여기서 탐정은 그녀의 친구 미노리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과거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그녀의 모습에 새로운 재미가 있다.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는 의뢰인의 조사 요청을 정말 하나도 봐주는 것 없이 사실적으로 대응한다. 자살한 친한 친구가 꿈에 나타나는 이유를 밝혀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황당한 이 의뢰를 통해 그 자살의 이유를 찾고, 그 이유에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의 연약한 심리상태와 질투가 만들어낸 결과에 놀라게 된다. 마지막 단편 <편리한 지옥>은 첫 작품과 연결되는 동시에 이 단편집에 실린 몇 개의 이야기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바로 짙은 감색의 악마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선 새로운 의문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다음 작품집에서 이 악마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궁금하다.  

 

 연작단편이다 보니 독립적이면서도 연관성이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 만나보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욕망과 탐욕이 일상에서 어떤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는지 잘 알 수 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는 냉철하고 집요하면서도 매력적이다. 그녀를 등장시켜 사연에 감정 이입하기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조사하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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