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1 - 워런 버핏과 인생 경영 스노볼 1
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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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엄청 두꺼운 책이다. 아주 힘들게 읽었다. 어렵거나 지루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1800쪽이 넘는 분량 때문이다. 단숨에 읽기엔 너무나도 분량이 많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람을 잡아당기는 매력으로 가득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약속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며칠 전에 끝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게 때문에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도 없었다. 가끔 전철에서 이 책을 들고 읽다보면 재미에 빠져 무게를 잃기도 하지만 지하철 문을 나서는 순간 팔에 경련이 온다. 그래도 다시 손에 든다.  

 

 워런 버핏. 사실 잘 모른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자가 누군지 보여줄 때 그의 이름을 알았다. 증권투자가라는 것과 얼마 전 엄청난 금액을 기부했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다. 하나 더 꼽는다면 그가 한 말 때문에 주가가 엄청나게 폭등했다는 것도 있다. 이 정보 때문에 사실 버핏에 대한 인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엄청난 재산을 기부한 사실보다 나쁘게 언론에서 흘러나온 정보가 그의 이미지를 흐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지가 언론에서 나오고 확대 생산된 정보를 믿게 만들었다.  

 

 1800쪽이 넘는 책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서평을 쓴다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역사가 담겨 있어 단숨에 파악되지 않는다. 증권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가 걸어온 길을 연대순으로 보여주는데 읽다보면 그의 철학과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돈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보면서 나와 다른 그의 삶이 결코 부럽지는 않지만 평생을 걸쳐 모은 재산을 기부하거나 검소한 삶을 사는 모습에선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집중력과 열정이다. 그리고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고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나 한탕주의를 노리지 않는 평정심에선 놀랍기 그지없다.   

 

 그의 업적으로 가득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역시 ‘사람들이 어째서 자기 눈앞에 뻔히 보이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1권 276쪽)는 대목이다. 초창기에 그레이엄의 안전마진을 배우고, 이를 실무에서 적용하는 부문에서 시작된 그의 성공이 단순히 운이 좋았다거나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시장의 흐름과 변화에 순응하면서 결코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단기 목표가 아닌 장기 목표를 가지고 투자한다. 그가 나 같이 주식에 무식한 사람도 투자의 기본으로 알고 있는 것을 철저하게 지키고, 매일 신문과 정보지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정보를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IT버블의 위험을 피하고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을 이어나가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의 삶에서 돈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내인 수지다. 주식시장의 제왕이었던 그가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대었던 그녀와의 결혼이 결코 평범한 모습은 아니었다. 자신이 정열을 바친 돈에 대한 사랑을 조금만 쪼개어 아내를 비롯한 가족에게 주었다면 많은 부분에서 다른 삶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각자 다른 사람들과 살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은 것이나 버핏의 거대한 부를 자선과 기부를 통해 다른 삶을 산 수지를 보면서 이 두 사람의 결합이 각자에게 최선의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지의 행적과 금욕적인 부분이 있는 버핏의 삶에서 기부와 자선 행위의 중요성을 다시 배운다. 특히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표를 나누어 주면 끊임없이 의존 관계가 되풀이될 뿐인데 이렇게 할 필요가 있냐고 하면서 자신의 자식들에게 평생 먹고 놀 재산을 물려주는 것을 비판하는 부분에선 순간 뜨끔하였고 부자들의 이런 말 뒤에 숨겨진 본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부의 대물림이 그가 말한 ‘난소 로또’와 연관되면 그들이 부자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하게 노력하지 않거나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부자들이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변명에 불과하다.  

 

 수많은 에피소드가 나오고, 기록적인 인수와 실적이 나오지만 역시 인상적인 것은 평범한 이야기들에 있다. 젊었을 때 재무 관련 조언을 최고로 잘 했을 때는 듣지 않던 사람들이 부자가 된 지금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도 그 속에서 위대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에선 우리가 얼마나 명성과 권위에 눈과 귀를 가리고 사는 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워런 버핏이 이룬 거대한 부와 업적들이 단순히 그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가 일에 몰두하게 뒤에서 받쳐준 수지와 그에게 평생의 철학이 된 안전마진을 가르쳐준 그레이엄이나 그의 수제자들이자 친한 친구들과 새롭게 증권시장을 보는데 도움을 준 찰리 멍거와 그를 믿고 초기에 자산을 맡긴 투자가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그가 있은 것이다. 열정과 집중력과 더불어 하나의 철학을 갈고 닦으면서 최선을 다해 최상의 길을 찾아온 그의 행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고, 느끼고,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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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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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이렇게 11문자가 이 소설의 제목이자 단서다. 원작의 제목도 11문자 살인인 것을 보면 번역에도 신경을 쓴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다. 1987년 작품이다. 최근 작품들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다. 자신만의 특징을 아직 살려내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군살 없고 간결한 진행은 보이지만 깊이가 느껴지지 않아 약간 아쉽다.  

 

 한 남자가 죽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 예감이 현실로 바뀌고 또 다른 한 사람이 죽는다. 처음 죽은 남자가 이 소설의 탐정 역할을 하는 여성 추리작가의 남자 애인이고, 다음에 죽은 인물이 그와 함께 일했던 여성 편집자다. 그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왜 그들은 죽어야 했을까? 이 사건을 뒤쫓다 만나게 되는 사건이 있으니 1년 전 요트 여행을 함께 갔다는 점이다. 그 여행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한 남자 다케모토 유키히로가 죽었다. 근데 이상한 것은 그가 수영을 잘한다는 점이다. 그 사고의 뒷면에 숨겨져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 중 나머지는 어떻게 될까?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알게 모르게 한 작가의 작품에서 다른 작가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흔적들을 희미하게 느끼게 된다. 이 소설도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 보이면서 비교적 쉽게 범인을 찾아내었다. 너무 단순하고 쉽게 드러나는 단서들이 범인을 지적하는데 편하게 만들었다. 동기도 범인도 쉽게 알았지만 그 사고에 대한 사실은 독자가 알 수 없다. 그것만은 작가의 전유물이니 마지막까지 숨겨져 있다. 헌데 그 마지막까지 숨겨둔 내막이 개운하지 못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처럼 빠르게 잘 읽힌다. 대단히 많은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보지 못한 작품이 많다. 본 작품들도 들쑥날쑥한데 계속 그의 소설에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게이고 팬인 모양이다. 아직 많은 작품도, 그의 대표작도 읽지 않아(나오키 상 수상작은 제외) 기대치가 남아있지만 최근에 본 몇 작품은 조금 힘이 빠지게 한다.   

 

 추리소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과연 살의라는 설정이 연쇄살인으로 이어질 정도라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과 악의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푼돈 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현실도 있지만 대부분 우발적인 상황임을 생각하면 그 준비와 실행은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책을 읽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흔적도 조금 보여 잠시 향수에 빠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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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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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태생의 작가라면 먼저 떠오르는 베트남 문제가 이 소설에선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일곱 편이 실린 이 소설집에서 두 편이 베트남과 관련이 있기는 하다. 특히 표제작인 <보트>는 한때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왔던 베트남 난민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다른 지역과 다른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가 태어난 곳보다 자란 곳과 환경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닌가, 유추해본다.  

 

 첫 단편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은 제목 속에 많은 것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를 작가와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면 그의 내밀한 고백일 수도 있다. 몇 편의 단편을 내놓았고, 이제 새로운 단편을 구상하고 있던 그에게 찾아온 아버지와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이 단편을 읽을 때 느끼지 못한 것 중 하나가 이 단편이 단편집 전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란 것이다. 아버지와 그의 관계, 베트남 출신이지만 베트남을 소재로 글을 쓰지 않는 것이나 이야기 마지막에 아버지의 경험을 소설로 만든 것 등이 왠지 이 단편집 구성과 맞물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드러나는 아버지의 경험은 그 전쟁이 얼마나 추악하고 끔찍하고 비윤리적이었는지 잘 드러내준다. 아버지의 마지막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길게 여운을 남기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 십대 암살자 후앙 파블로 메렌데즈 이야기다. 다른 글 속에서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삶이 얼마나 위태하고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지 보면서 삶이 지닌 새로운 힘과 공포를 배운다. <일리스 만나기>는 제목 그대로 일리스를 만나기 위한 한 노화가의 이야기다. 바람을 피운 후 딸을 데리고 떠난 아내와 그녀를 마녀라고 부르면서 헤어진 딸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심리묘사는 그의 현실과 미래를 함축적으로 담아내었다.  

 <해프리드>는 존재감 없던 제이미가 준결승전에서 결정적인 골을 넣으면서 학교의 화제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가 바라보기만 하던 존재였던 앨리슨이 관심을 보이고, 그녀와 연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가슴을 들뜨게 만든다. 어머니는 암으로 고생을 하고, 아버지는 다시 바다로 나가려고 한다. 동생은 자신을 맴돌며 관찰하는 현실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충돌은 나와 가족을 돌아보게 만든다. 글 속에 숨겨져 있는 그의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와 여운을 남긴다. <히로시마>는 2차 대전 막바지에 달한 일본의 풍경을 한 소녀의 독백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거짓과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한 소녀의 독백은 그 결과를 알고 있기에 아련한 고통과 그 시대의 비극을 들여다보게 한다.  

 <테헤란의 전화>는 이란이 배경이다. 미국 여성 사라를 통해 테헤란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그녀의 내면도 산산이 조각난 상태임을 이 도시와 대비해 그려내고 있다. 여성 잔혹사를 읽으면서 파빈의 행적이 궁금하고, 호텔에 남은 두 남녀 앞에 벌어질 일들이 황량하다. 표제작 <보트>는 베트남 난민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난민들의 선상 생활은 끔찍하다. 육지를 향해, 자유를 향해 달아난 그들의 욕망 앞에 더 넓은 바다는 공포이자 절망의 대상이다. 배에서 죽은 사람을 바다에 던지고, 시체를 밑밥 삼아 상어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생존의 의지와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바다의 공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는 문장이 문득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역시 짧은 문장들이다. 헤밍웨이를 연상시킬 정도로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문장 속에 감정은 직접 드러내길 보다 행간에 조용히 숨어있다. 차분히 읽다보면 그 감정들이 하나씩 하나씩 가슴에 쌓여간다. 그리고 일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버지란 존재다. 첫 단편부터 마지막까지 아버지는 이 단편집에서 그리움과 추억의 대상이다. 감동적이고 놀랍도록 창의적이란 광고 문구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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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의 비밀
폴 크리스토퍼 지음, 민시현 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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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작 <렘브란트의 유령>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선택했다. 전작도 부족한 점이 눈에 많이 들어왔지만 속도감 있게 읽혔기에 머리 식히려는 의도로 선택한 것이다. 전작처럼 이번 소설도 빠르게 잘 읽힌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용두사미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한 권으로 마무리하려고 하면서 벌려놓은 많은 이야기들이 급하게 끝났다. 사실 중반까지는 전작보다 오히려 더 탄탄하게 나아갔다. 그런데 마무리 부분에 와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너무 허술하게 끝나 많은 아쉬움을 준다.  

 

 이번 탐험의 대상은 그 유명한 학살자였던 코르테스의 유산이다. 기존에 몰랐던지 아니면 작가의 새로운 주장인지는 모르지만 코르테스가 스페인 왕가로부터 견제를 받고, 종교재판의 공포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다. 이야기는 코르테스의 유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코덱스가 배의 난파 속에 사라지는 것과 쿠바 사태 속에서 미군 폭격기가 갑자기 몰아친 태풍 속에서 추락하는 과거로부터 시작한다. 얼핏 보기에 이 두 사건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뒤에 가면서 이 둘은 연결되고, 이 연결점이 세밀하고 강하게 부각되지 못하면서 힘을 잃는다.  

 

 전작에서 콤비가 된 두 연인 핀 라이언과 빌리가 기록물보관소에서 16세기에 사라진 코덱스의 존재를 발견한다. 이 존재를 좇아 긴 여행을 하고, 이런 이들을 뒤좇는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바티칸 내부에 존재하는 흑기사단이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선 나치의 후손이자 정보상인인 케슬러와 이 두 연인이 찾아가는 곳에 존재하는 악당 마약왕 구즈만과 제약회사 회장 부자와 쿠바에서 잠수함을 운행하는 크루즈가 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충돌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소설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 조금 산만한 느낌도 있다. 중심에서 모든 사연을 연결하고, 모험을 겪고, 긴장감을 불러와야 하는데 이 부분들이 많이 부족하다. 핀과 빌리의 모험이 긴장감도 없고, 전체를 끌고 나간다는 느낌도 주지 못한다. 제약회사 회장인 노블 부자나 흑기사단이 이 둘을 바짝 좇아가면서 긴박감도 만들고, 찾고자 하는 보물의 가치도 어느 정도 높여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 오히려 뒤로 가면서 보물은 뒤로 밀려나고,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해진다. 이렇게 되면서 앞에 깔아둔 것들이 힘을 잃는다. 물론 과거 속에 단서를 배치해두기는 했다. 그런데 작가는 이 부분도 너무 허술하게 마무리한다.  

 책을 덮고 난 후 마지막 장면을 다시 생각해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고 말이다. 분명 이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내는데 재주가 있다. 역사와 정보를 녹여내는 실력도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짜임새나 마무리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차라리 전작처럼 할리우드식 마무리를 지향하면서 좀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면 더 재미있고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2권 분량으로 만들었다면 멋진 모험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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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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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각 장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미스터리의 요소가 곳곳에 숨겨져 있지만 가장 강하게 풍기는 것은 제목부터 추리소설이라고 알리는 산장 살인사건이다. 여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몇 개의 이야기가 조금씩 엮여있다. 그 엮임이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이야기의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매력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치바의 성격과 행동이다. 사신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모르지만 타인의 행복이나 불행에 관심이 없다. 단지 일을 위해 그 사람의 죽음을 결정하기위해 그 대상을 알고자 할 뿐이다. 세상의 변화나 용어 등에 무지한 면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순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신이기 때문인지 그의 모습은 프로그램된 인조인간과도 같은 모습이다. 인간성도 아픔도 없고 단지 사람과 닮았음을 표현할 뿐이다.   

 

 두 번째는 곳곳에 숨겨진 미스터리 요소다. 다양한 방법으로 곳곳에 조그마한 것부터 연속살인까지 나오지만 기본적으로는 소소한 것들이 있다. 대상자에게 생과 사를 부여할 수 있는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역시 가장 큰 즐거움은 그 사람들의 삶에 직접 부딪히며 생사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미스터리적 요소들이다.  

 

 마지막은 각 장마다 다른 분위기를 띄면서 다양한 장르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미스터리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각 장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각 장마다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준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치바도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그 속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려고 한다. 하지만 역시 그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일에 치여 기계적으로 움직이지만 가끔은 놀라운 분석과 예리한 추론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부담 없이 읽히고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사신이라는 직업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미스터리 요소가 조금 약한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부정확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조금 트집을 잡고 싶은 부분이다. 모두가 동시대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 긴 시간의 흐름을 알게 되면서 반갑기도 하였지만 환경의 변화가 거의 없다보니 좀더 신경을 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생긴다.  

 

 추리소설의 재미를 바라고 읽기 원한다면 이 소설은 많이 약하다.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의 다른 소설처럼 이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고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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