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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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각 장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미스터리의 요소가 곳곳에 숨겨져 있지만 가장 강하게 풍기는 것은 제목부터 추리소설이라고 알리는 산장 살인사건이다. 여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몇 개의 이야기가 조금씩 엮여있다. 그 엮임이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이야기의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매력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치바의 성격과 행동이다. 사신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모르지만 타인의 행복이나 불행에 관심이 없다. 단지 일을 위해 그 사람의 죽음을 결정하기위해 그 대상을 알고자 할 뿐이다. 세상의 변화나 용어 등에 무지한 면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순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신이기 때문인지 그의 모습은 프로그램된 인조인간과도 같은 모습이다. 인간성도 아픔도 없고 단지 사람과 닮았음을 표현할 뿐이다.   

 

 두 번째는 곳곳에 숨겨진 미스터리 요소다. 다양한 방법으로 곳곳에 조그마한 것부터 연속살인까지 나오지만 기본적으로는 소소한 것들이 있다. 대상자에게 생과 사를 부여할 수 있는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역시 가장 큰 즐거움은 그 사람들의 삶에 직접 부딪히며 생사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미스터리적 요소들이다.  

 

 마지막은 각 장마다 다른 분위기를 띄면서 다양한 장르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미스터리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각 장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각 장마다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준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치바도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그 속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려고 한다. 하지만 역시 그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일에 치여 기계적으로 움직이지만 가끔은 놀라운 분석과 예리한 추론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부담 없이 읽히고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사신이라는 직업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미스터리 요소가 조금 약한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부정확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조금 트집을 잡고 싶은 부분이다. 모두가 동시대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 긴 시간의 흐름을 알게 되면서 반갑기도 하였지만 환경의 변화가 거의 없다보니 좀더 신경을 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생긴다.  

 

 추리소설의 재미를 바라고 읽기 원한다면 이 소설은 많이 약하다.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의 다른 소설처럼 이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고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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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셀렉션
데이브 프리드먼 지음, 김윤택 외 옮김 / 지성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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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생물학 시간에 배운 것과 짧은 영어를 살짝 떠올려보면 ‘자연선택’이란 의미다. 구체적인 것이야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진화의 단계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 작가는 이런 용어를 sf스릴러 같은 소설에 적용했을까? 그것은 바로 이 소설의 악역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악마가오리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사실 상상만으로 그 깊이가 짐작되지 않는 심해에서 살던 가오리들이 GDV-4라는 바이러스를 피해 달아나고, 생존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적응하고, 진화하는데 이 과정이 상당히 빠르다. 물론 이것은 소설적 장치에 의해 가속화된 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물이 실제 존재한다면 어떨까? 작가는 바로 이 점에 눈길을 주었고, 우리가 흔히 장난을 치면서 “아싸! 가오리.”를 외치던 그 가오리를 포식자로 내세웠다. 그 가오리의 능력은 놀랍고 무시무시하고 영리하기까지 하다.  

 

 이야기의 첫 부분은 조금 더디다. 살짝 긴장감을 주는 장면이 보이지만 사건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후 새로운 종이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쥐가오리를 연구하던 팀이 추적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이 소설에서 악마가오리로 불릴 가오리와 대결하는 제이슨 연구팀이다. 이 팀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인터넷으로 부를 이루었지만 상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졸부 해리 애커먼의 해양수족관 ‘만타 월드’의 쥐가오리가 급사하면서였다. 큰돈을 벌어줄 것으로 생각한 쥐가오리가 수족관 안에서 죽으면서 경영상 어려움이 닥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리슨 팀이 계속 연구 중이었다. 약간 늘어져 있던 그들에게 이 새로운 종의 가능성은 처음엔 귀찮은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흔적을 좇아가면서 발견하게 되는 사실들은 긴장감을 주고,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다. 이제 본격적인 조사와 추적과 대결이 펼쳐진다.  

 

 

 악마가오리를 좇는 해리슨 팀이 하나의 중심축을 이룬다면 악마가오리의 행동은 또 다른 축을 만든다. 이 무리가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고 날려는 노력을 하고, 가오리 특성 상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다른 바다생물들을 사냥하는 장면을 보면 이 가오리들이 얼마나 무서운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수많은 가오리들 중 수십 마리가 하늘을 날게 되고, 그 중 하나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게 되면서 이제 그들의 사냥터는 바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육지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이들이 무서운 것은 본능에 의한 사냥이 아니라 자신들의 엄청난 능력을 바탕으로 조사하고 분석하는 등의 지적활동을 펼치는 점이다. 사냥꾼이어야 할 해리슨 팀이 어느 순간 사냥감으로 변하게 되는 것도 이런 능력 때문이다.  

 

작가는 단순히 악마가오리와 해리슨 팀의 대결로만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자신이 배운 생물학과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론을 보여주고,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놀라운 가설을 세운다. 이런 정보들이 어느 순간은 지루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예감하게 만들고, 긴장감을 준다. 기존에도 새로운 바다생물이 등장하여 인간과 사투를 펼쳤지만 이번엔 다르다. 더욱 영리하고, 강하다. 하늘을 날 수 있고, 상어보다 강한 턱과 이빨을 가지고 있다. 생각까지 하면서 사냥을 한다. 학습능력도 아주 뛰어나다. 소설 속 대사처럼 만약 이런 생물체가 심해에서 나와 적응하여 하늘을 덮는다면 어떨까? 히치콕의 영화 <새>를 능가하는 공포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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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의 음모
파트리스 라누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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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놓고 본다면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다. “ 조용한 밤에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들릴 거야. 그들의 작고 빠른 움직임은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멈추지 않는단다. 나는 이것을 ‘나비들의 음모’라고 부르지.”(56쪽)라면서 그 뜻을 풀어준다. 그런데 이 문장만으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몽환적 미스터리란 수식어처럼 어렵게 나에게 다가왔다.  

 

 이야기의 구성은 간단하다. 배에 색을 칠하던 이전 천체물리학자 나 로익에게 클라라란 소녀가 다가온다. 그녀는 약간의 자폐증이 있는 솔이란 소년과 함께 왔다. 그녀는 로익에게 배를 태워줄 것을 요구한다. 처음엔 거부하지만 곧 그들은 배를 타고 나간다. 하지만 이 선택이 그들을 오랜 시간 동안 바다 위를 표류하게 만들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처음엔 쉽게 구조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낙관은 두려움으로 변하게 된다.  

 

 조그마한 배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삶을 이어가는 어른 하나와 두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의 갈등과 협동 속에 로익의 과거가 드러난다. 그의 아내였던 파트리샤의 기억은 악몽으로 다가오고, 이 악몽으로 괴로워하는 로익을 보고 클라라는 공포에 질린다. 이들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자폐증을 앓고 있던 솔은 새롭게 변한다. 이 변화를 통해 다섯 가지 질문이 오가고 이 속에서 작가는 철학적 의문과 답을 내놓는다. 이 질문을 잘 들여다보면 ‘나비들의 음모’란 무엇일까 하는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답들이 명확한 실체를 띄고 있다기보다 관념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처음 이들의 표류 장면을 보면서 <파이 이야기>가 연상되었다. 호랑이와 한 배위에서 동거를 하면서 표류한 소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마도 표류한 배위에서 살게 된 상황 때문인 모양이다. 그 소설이 다른 생명체의 미묘한 긴장과 균형으로 재미를 주었다면 이 소설은 로익과 클라라와 갈등과 로익의 과거 속에 펼쳐진 사건과 솔의 질문에서 다른 재미를 준다. 갈등의 깊이는 사실 깊게 느껴지지 않고, 긴장감도 크게 고조시키지 않는다. 단지 아내였던 파트리샤와의 과거가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하지만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솔의 질문이다. 이 대화 속에 배 이름인 ‘모로프’와 책 제목인 ‘나비들의 음모’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다시 결국 책 마지막 장면으로 연결되면서 감각과 의식 세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 결말이 사실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재미가 많이 반감되었다.  

 

소설은 나 로익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이 시점이 바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작가는 불친절하다. 왜 그들이 표류하게 되었는지, 왜 수많은 배들 속에 있으면서 구조를 받지 못했는지, 과연 클라라 등의 존재는 실존인지 등의 의문을 자아내면서 그에 대한 답은 피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이들의 존재를 내 가슴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생각하길 바라는 모양이다. 그리고 솔과의 질문 속에서 그 답을 찾길 바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현재 인식 능력을 벗어나 있기에 꿈과 환상처럼 다가온다. 표지에 나오는 문장 “너의 눈은 결국 너를 속인단다”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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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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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구의 종말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벌어질 일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지구가 끝나는 날을 알고 있던 주니어의 이야기다. 그의 머릿속에 속삭이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이야기는 그가 알고 있는 종말의 날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려준다. 이러니 그의 삶이 평탄하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다. 아니 당연하다. 스피노자가 말했던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 한 것이. 하지만 그는 몰랐다. 지구가 사라지는 그 날을 말이다.  

 

 두 가지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하나는 97로부터 1까지 역순으로 세면서 진행되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주니어와 그를 둘러싼 가족과 연인 에이미의 시점에서 본 현실이다. 숫자로 표현된 문장들이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 그 종말이 필연임을 알려준다면 다른 시점은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 주니어의 시점이 들어가는 순간 뒤섞여버린다. 하지만 이들의 삶과 생각들이 종말로 확정된 미래를 우리로 하여금 묻고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작가는 지구의 종말이란 기본 설정 외에도 재미난 설정을 한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천재 주니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종말을 알고 공포를 느끼며 살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차이고, 알코올 중독이 되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는 등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에이미와 헤어진 후 알코올에 절어 살아가는 그 모습에선 확정된 미래를 결코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의 한 표현이다. 자신에게 종말을 알려준 존재들이 그의 종말론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할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예언자들이 지구 종말을 예언했지 않은가 말이다.   

 

 또 다른 설정으론 그의 형 로드니다. 어릴 때 로드니 삼촌 집에서 코카인을 시험 삼아 했다가 중독된 그의 삶이 흥미롭다. 육체적으로 뛰어나지만 약 중독으로 치료원에 들어가고, 그 때문에 지성을 많이 잃게 된다. 하지만 타고난 육체 능력은 야구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엄청난 명예와 부를 이루게 도와준다. 재미난 것은 약물 중독으로 지성을 잃은 후 갖게 된 운동 능력도 있지만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이다. 동생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것도 약물 중독이었을 때 결코 가지지 못한 것임을 생각하면 삶이 다른 측면도 있음을 부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니어의 삶을 따라가면 사실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 중반까지 술에 절어 있을 때는 그가 느낀 공포와 절망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그 후엔 너무 변한 모습 때문에 흥미롭기는 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약간 무리라고 보이는 이 설정이 다음에 나올 새로운 이야기를 위한 초석임을 알게 되지만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종말의 시간이 알려진 순간 펼쳐지는 사람들의 수많은 반응들도 흥미롭다. 작가는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종말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고 묻는다. 그리고 상황 하나하나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한다.  

 

 묵시록적 판타지다. 종말은 실제 발생한다. 하지만 종말이 주제가 아니다. 단지 이것은 소재다.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에서 주니어와 사람들의 삶이 중심이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란 제목처럼 종말의 순간에도 모든 것은 존재한다. 마지막 숫자 1이 모든 이야기의 끝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이 최근에 읽은 것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독창적이란 것이다. 모두 읽은 지금 다시 묻는다. 과연 지구의 종말을 알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아마 늘 생각한 것이지만 지금처럼 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물론 급하게 좀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달려 나갈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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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4
이종호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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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선도 벌써 네 번째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세 번째 작품에선 제목을 바꾸었는데 이번에 다시 단편선 4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시리즈의 경우 통일성을 가졌으면 한다. 이 단편선에서 낯익은 작가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제 단골이 된 그들을 보면서 잊고 있던 단편들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보는 재미도 있다.   

 

 모두 열 편이다. 적지 않은 편수다. 기존 단편선에서 본 것과 같은 소재를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단편들도 있는 반면에 최근 사회문제와 연관시켜 풀어낸 이야기들도 있다. 작가 각자가 풀어내는 방식과 사연에 따라 섬뜩함을 느끼고 애절하고 가슴 아프고 어느 순간은 웃게 만든다. 물론 그 밑에 깔린 감정들은 공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첫 두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다. 장은호의 <첫 출근>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삶을 단순화한 것이다. 조직의 한 부품으로 변하는 순간 그 작업이 어떤 결과를 산출할 것인지 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려는 삶을 아주 섬뜩하게 표현했다. 누가 시키는지, 왜 그런지, 어디서부터 시작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 작업을 멈추는 순간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메시지를 단순히 전달하고, 그 전달된 메시지대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그 결과를 보면서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 극단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연출들이 그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조지 오웰의 <1984> 공포버전이라면 확대해석일까?   

 

 

 김종일의 <도둑놈의갈고리>는 한 여자의 조용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도둑놈의갈고리란 식물을 말하면서 다가온 그 남자와의 연애를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한다. 읽다보면 한 여자의 회상임을 알 수 있다. 공포를 느끼게 만들기보다 평범한 연애이야기 같다. 하지만 남자의 진실을 알게 된 여자가 남자를 차고 난 후 분위기가 조금씩 바뀐다. 자신을 찬 첫 여자라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욕하고, 복수를 말하던 남자가 최악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것은 몰카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최선을 다한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공포를 심어준 것이다. 이 감정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차분하게 폭발하는 순간 얼음처럼 서늘한 감정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이종호의 <플루토의 후예>는 기존에 본 그의 작품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복수와 귀신이란 소재를 이용해 마지막에 오싹한 느낌을 전해준다. 황태환의 <폭주>는 종말이 벌어질 것이란 소식에 일어난 청소년들의 잔인한 폭주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왜 웃음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엄마는 무서운 존재인 모양이다. 우명희의 <불귀>는 공포를 느끼기보다 며느리의 삶에 안타까움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유선형의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를 읽으면서 <첫 출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속처럼 일하는 모습이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조금씩 암시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이 소설을 이해해야 할까? 고민한다. 최민호의 <더블>은 먼저 도플갱어가 생각났다. 똑같은 두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유라의 <배심원>은 최근에 벌어진 2PM의 재범 사건을 생각하게 한다. 인터넷이란 매체가 편리하고 많은 도움을 주지만 익명의 그림자 속에서 벌어지는 악의가 어떤 악취와 공포를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준다.   

 

 

 권정은의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는 제목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아있는 좀비가 넘쳐나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 한 여자의 눈을 통해 그 변화의 순간들을 지켜보는데 기존 좀비소설의 변주라곤 하지만 강한 충격을 주기엔 부족하다. 전건우의 <배수관은 알고 있다>는 우리사회의 또 다른 문제 중 하나인 기러기 아빠를 소재로 했다. 배수관을 통해 전해지는 소리를 통해 공포와 긴장을 조성한다. 예상과 조금 다른 결말이 더욱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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