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걷다 노블우드 클럽 4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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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 유명한 존 딕슨 카의 데뷔작이다. 한 작가의 데뷔작을 읽다 보면 앞으로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가끔 보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것은 그 작가가 유명해진 뒤 역으로 데뷔작을 읽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뒤늦게 출간된 그의 처녀작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은 작품들을 생각해본다. 기억이 희미한 속에 밀실트릭으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이 생각나고, 오류투성이 번역 탓에 그 가치를 몰랐던 작품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밀실과 과학이란 단어 속에서 그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소설 속에 빠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설정을 그냥 가볍게 받아들여야 한다. 1920년대 말이란 시간과 그 시대에 벌어진 성형수술이 다른 사람을 쉽게 속일 수 있는 수준이란 것 등이다. 처녀작이 나온 것이 1930년인 것을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 상당히 현대적인 설정들도 보이곤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선입견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실력이 시대를 넘어서도 통용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낸 탓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한 쌍의 남녀에게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의 시간이 한 정신병자이자 살인마의 협박으로 공포의 순간으로 변한다. 뛰어난 스포츠맨인 라울 드 살리니가 아름다운 루이즈 부인과 결혼을 한 것은 분명히 그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이전에 그녀의 전 남편인 로랑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고, 뛰어난 성형수술을 받은 후 사라진다. 이후 로랑의 협박은 이 부부를 공포에 빠지게 하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경찰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살리니 공작은 목이 잘린 채로 시체가 되어 발견된다. 그가 있던 방 입구 중 하나를 경찰이 감시하고 있었고, 방 어디에도 숨겨진 공간은 없다. 누가 그를 죽이고, 어떻게 그 곳을 빠져나간 것일까? 이 알 수 없는 상황을 관찰자인 나의 회상을 통해 방코랭 총감의 뛰어난 활약으로 사건을 하나씩 풀어낸다.    

 

 처음 앞부분을 읽으면서 그냥 지나친 부분이 나중에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사실 이 부분을 머릿속에 담아 두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단련된 사고방식으로 하나의 사건을 추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단지 하나 뿐이다. 사건 전체를 본다면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지만 본 사건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가 잘 짠 설정이 나를 완전히 속인 것이다. 전형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살인사건을 설명하는데 읽으면서 내가 세운 가정과 범인상이 완전히 무너진다. 괜히 트집을 잡는다면 충분한 단서를 소설 속에서 나타내주지 않았다는 것과 선입견이 방해를 한 정도다.  

 

 이 책은 로크미디어에서 존 딕슨 카 시리즈 첫 권으로 나왔다. 처녀작이 첫 권이란 점에서 상당히 반갑다. 읽으면서 궁금한 점은 방코랭 총감이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는지와 다른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흔히 고전 명탐정들이 상황을 단숨에 파악하고 범인을 금방 아는데 그도 이런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과학과 증거의 확보를 통해 마지막 장면을 연출한다. 수많은 카의 작품 속에서 그의 활약이 많다면 낯익은 이름일 텐데 낯설다. 다른 이름으로 번역된 것일까? 아니면 그의 활약이 많지 않거나 일회성일까? 개인적으로 출판사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후기나 작가에 대한 정보를 통해 이런 궁금점을 풀어주고, 이 시리즈의 미래를 살짝 보여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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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정원 뫼비우스 서재
서미애 지음 / 노블마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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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 오는 날 전철 안에서 한 남자가 수많은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한 소녀에게서 사과 향기를 맡는다. 알 수 없는 충동에 그녀를 따라간다.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앞으로 나간 후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가 다가오자 갑자기 당겨 목 졸라 죽인다. 제대로 반항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소녀 정아는 죽는다. 이 갑작스런 살인을 통해 첫사랑 같은 강렬한 경험을 하고, 자신이 사냥감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제 한 연쇄살인범이 태어난다.   

 

 강지훈 형사는 비오는 날 정아가 죽은 현장을 꿈꾼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옛날 그녀가 자신을 찾아와 누군가가 죽이려고 한다고 말했지만 무시한 것을 마음의 상처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경찰들 누구나 평생 가슴에 품고 사는 미해결 사건이 그에게 바로 이것이다. 이런 꿈을 꾸고 있는데 한 케이블 방송국의 앵커우먼 시체가 발견된다. 공중파는 아니지만 케이블에선 공중파의 유명 앵커 못지않은 인기를 가진 그녀다. 수습기자에게 특종을 빼앗기고 사건은 전 매스컴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이 사건의 관심은 바로 뒤에 터진 한 유명 여자 연예인의 스캔들 때문에 금방 수그러든다. 그렇지만 그녀의 자리를 대신한 정유진에게 이상한 메일이 오고, 새로운 범죄의 냄새가 풍긴다.  

 

 그런 동시에 서울시경 강력계로 하나의 택배가 도착한다. 정확한 수신인이 없는 배송물이다. 살짝 열어본 그 속엔 한 여자의 잘린 머리가 담겨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다. 그녀가 담겨 있던 상자 속에서 한 모텔 정보를 얻는다. 그곳에서 CC카메라에 담긴 정보를 가져온다. 그녀와 함께 모텔로 들어가는 남자가 찍혀 있다. 바로 강 형사다. 이제 왜 그가 그녀와 함께 그 모텔로 들어갔는지 사연을 설명한다. 그가 발견한 단서 때문이다. 강 형사에게 의혹의 그림자를 띄우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간다.  

 

 과거의 살인사건과 현재의 두 살인사건이 맞물려 돌아간다. 이 세 사건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과거 정아에게 스토커가 있었다. 그녀가 경찰서에 와서 도움을 요청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명 앵커가 죽음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은 정유진에게도 스토커가 있다. 그녀의 방송을 모니터하고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 늘 곁에 머물러 있다. 비록 그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이 둘의 연관성을 길게 물고 늘어지기보다 강 형사에게 집중한다.   

 

 강 형사는 택배로 머리만 온 그녀의 정체를 알지만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다시 택배로 손이 오지만 역시 말하지 않는다. 수상한 행동이다. 이렇게 수상하고 미심쩍은 상황들을 연출하고, 연쇄살인범을 잠시 등장시켜 그의 쾌락을 말한다. 첫 살인의 강렬함과 이어지는 살인들의 아쉬움과 멈출 수 없고 점점 주기가 짧아지는 살인의 충동을 말한다. 이 부분은 다른 소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대목이다.   

 

 작가는 현장 분위기와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과거에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인용하고, 사실적이고 정확한 자료로 현실성을 높인다. 잔혹한 연쇄살인범을 등장시켜 긴장감을 높이고, 스토커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빠른 전개와 매력적인 형사의 등장은 재미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사건의 얼개를 엮어가고 풀어내는 모습이 조금 서툴다. 초반에 풀어놓은 사건들이 마지막에 가면서 현실성이 떨어지고 돌출적이다. 정아와 앵커와 정아 친구 주희의 살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추리소설에서 자주 만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너무 사족 같다. 이런 단점이 눈에 들어오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열어놓았다. 다음 작품이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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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으로 향하다 - 리암 니슨 주연 영화 [툼스톤]의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9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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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스커더 시리즈 중 번역되어 나온 것은 모두 읽었다. 그때마다 느끼지만 참 재미있다. 예전에 읽은 작품들의 세부 내용들은 이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재미있다는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러니 이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을 그냥 넘어가는 것은 무리다. 인간적이고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그의 활약을 보다 보면 거대하고 비정하면서 잔혹한 대도시 뉴욕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이야기는 잔혹하다. 마약 중개상의 아내 프랜신 코리는 장을 보러 나간다. 장을 보고 나오는 순간 두 명의 남자가 그녀를 납치한다. 비명을 지르고 도움을 요청할 시간을 그녀가 놓친 것이다. 잠시 후 납치범은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몸값으로 100만을 요구한다. 남편은 당장 구할 수 있는 40만불을 제시한다. 인질범은 거래를 승낙하고, 캐넌은 집에 있던 금고에서 돈을 꺼내어 그들의 요구대로 움직인다. 보통 가정이라면 경찰을 불렀겠지만 그의 직업상 그들을 부를 수 없다. 돈을 제대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프랜신은 바로 오지 않았다. 다시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장소를 말하고, 그는 형과 함께 그 곳으로 간다. 그리고 토막으로 잘린 그녀를 차 트렁크에서 발견한다. 

  

 

 캐넌의 형 피터는 알콜중독자 모임에서 스커더를 알게 되었다. 동생에게 이것을 말하고, 스커더에게 연락을 한다. 그는 백정들의 미사에 함께 한 친구가 있는 아일랜드로 가려고 마음먹고 비행기 표까지 끊은 상태다. 하지만 캐넌에서 이 잔혹한 사건을 듣고 여행을 포기한다. 그리고 탐문수사를 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에서 모인 정보와 자신의 경험이 합쳐져서 단순한 납치살인이 아니라 연쇄살인사건임을 알게 된다. 그 범인들은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여자를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하고 있다.   

 

 매튜의 탐문수사는 약간 지지부진한 상태다. 연쇄살인범이란 사실을 밝혀내지만 그 정보만 가지고 범인을 찾기는 사실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티제이와 콩 브라더스의 도움은 범인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된다. 아직 현재처럼 발신자 표시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이니 범인의 전화번호나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찾는다 하여도 대부분 공중전화다 보니 범인을 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단서들은 지금 당장이 아닌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최첨단 기기를 무장하고 온 도시를 휘젓고 다닐 경찰 등의 단체는 없지만 그에겐 탁월한 직관과 그를 대신해 발로 뛰면서 현장을 감시할 흑인 소년 티제이가 있다.   

 

 요즘 너무나도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첨단 장비가 도입되어 긴박하게 쫓고 쫓기는 소설이나 영화가 많이 나온다. 이들에 비해 이 소설은 더디게 진행된다. 매튜는 거의 홀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증거와 증인을 찾아낸다. 물론 그의 곁에 일레인과 티제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이나 대규모의 훈련된 지원 병력이 없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연쇄살인이란 사실을 밝혀낸 것이 매튜란 점이다. 구역이나 자신들의 일에만 몰입해 있던 경찰들이 정보 공유를 꺼리고, 연관성을 놓친 반면 짧은 시간 그는 발로 뛰고, 다른 접근법을 통해 사건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전직이 경찰이었기에 이 정보들을 경찰에서 받고, 다시 경찰에게 보낸다. 사건은 심각해졌지만 아직 공권력이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소설 속엔 개성 강한 인물들이 많다. 사랑스런 일레인이나 티제이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내를 잃은 캐넌은 좀더 색다르다. 그의 직업이 마약상이지만 흔히 알고 있는 마약상과 다른 생활과 모습을 보여준다. 거래의 횟수를 늘이지도 않고, 마약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항상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경찰들의 수사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자신의 조상을 말하면서 하나의 사업으로 마약을 거래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왠지 모르게 거부감을 가져오지 않는다. 분명한 악당인데 아내의 잃은 한 가련한 사내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와 복수의 불길이 활활 타고 있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이 소설이 처음 나온 년도와 지금을 살짝 머릿속에서 비교해본다. 범죄는 점점 잔혹해지고, 그 원인은 너무나도 단순해진다. 단지 쾌락을 위해 살인을 하고, 우발적인 충동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 사이에 범죄자들은 더 지능적으로 변한다. 수사기법과 과학수사 능력을 경찰이 키우지만 늘어만 나는 사건들을 모두 감당하기엔 늘 인력이나 지원이 부족하다. 그 조사가 합법의 범위에서 진행되어야 하니 더욱 힘들다. 이 틈을 파고 든 매튜의 활약은 그래서 더 돋보인다. 하나의 사건만 담당하고 끈기 있게 쫓는 그의 행동은 신뢰를 심어준다. 조급하게 사건이 해결되길 바라는 사람에겐 조금 더딜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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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7
존 카첸바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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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바닷새 프랜시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재 그는 약을 먹으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나타나는 소리들을 멀리하면서 살아간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고, 일상의 반복이다. 이런 반복 속에서 그가 그 틈새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 도둑이 들거나 아동성애자의 출현 등이 그런 때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결코 이웃들을 방해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착하기만 하다.   

 

 그런 그에게 한 통이 우편물이 온다. 그가 입원했던 웨스턴 스테이트 병원 기념일에 참석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을 다녀오고, 이후 머릿속에서 과거의 사건과 인물들이 이야기를 강요한다. 이제 그는 자기 집 벽에 과거에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을 적기 시작한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현재와 과거가 만나면서 결코 믿을 수 없는 사내의 사실적이고 솔직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하면서 섬뜩하고 긴장을 조금도 늦출 수 없는 심리대결이 벌어진다.  

 

 사건의 시작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살해당한 사건이다. 금발의 짧은 머리를 가진 그녀가 한밤중에 죽고, 이것을 바닷새와 소방수 피터가 발견한다. 경찰에 신고하고, 현장을 보존하려고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이 둘을 범인으로 몰아붙이고 증거를 망친다. 그러다 몸에 피를 묻히고 있는 다른 환자 꺽다리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데려간다. 물론 그는 범인이 아니다. 단지 그는 그를 찾아온 천사가 악마를 죽였다는 망상을 가졌을 뿐이다. 이 사건을 재빨리 해결하고픈 병원과 경찰 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체를 눈여겨 본 한 여검사가 있다. 그녀는 루시다.   

 

 루시는 성범죄 관련 검찰이자 자신도 강간 피해자다. 그녀가 이 정신병원으로 오게 된 것은 죽은 시체의 잘려나간 손가락 때문이다. 이미 다른 곳에서 금발의 짧은 머리 여자들이 살해당했고, 모두 손가락을 조금씩 짤렸던 것이다. 네 번째 살인사건을 통해 그녀는 이 병원에 그 범인이 숨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온다. 그리고 이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두 환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범인 찾기를 시작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정상인의 시선으로 범인 찾기에 돌입한 것이다.  

 

 단순히 범인 찾기만 집중했다면 긴장감은 강했지만 그다지 몰입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는 중간중간 그 병원에 있는 환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풀어준다. 클레오파트라의 현신이라고 믿거나 나폴레옹이라고 믿는 사람부터 신문기사를 읽고 외워 그것을 다시 말하는 기자나 엄청난 힘을 가졌지만 정신지체아인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에 소방수 피터나 루시의 과거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둘의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방향키다.   

 

 갇혀 있는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니 범인은 분명히 병원 안에 있다. 경찰이나 병원은 이미 범인을 잡았다고 하지만 루시와 피터와 바닷새를 비롯한 몇몇은 아직 그 범인이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검사인 루시가 자신의 지위로 환자 기록을 통해 용의자를 추리고 심문한다면 바닷새는 그 현장을 머릿속으로 기록한다. 동시에 피터는 전직 소방조사관의 실력을 발휘하여 현장에서 발견하지 못한 칼이나 다른 증거를 찾아다닌다. 여기에 크고 작은 모지스 형제가 옆에서 도움을 준다.  

 

 분명히 활동적인 소설은 아니다. 한 미친 사내의 이야기가 상황을 묘사하고, 분석하고, 단서를 좇지만 병원이란 폐쇄적인 공간과 비일상적인 상황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액션을 기대하긴 무리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공간과 일상을 독자의 내면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긴장감을 높이고, 실수를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공포를 느끼면서 심리적인 활동성을 높인 것이다.  

 

 

 피해자가 살려달고 외치는 것이 다른 환자들의 일상적 고함처럼 느껴지고 받아들여지고 있고, 병원의 의사는 관료주의의 옷을 두툼하게 입고 있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상인인 두 조사관 루시와 피터의 접근법이 일반적인 것도 물론 사건 해결을 더디게 만든다. 천사로 불리는 연쇄살인범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바로 이런 비정상적인 공간과 상황이 한 목 했다. 그러니 이 모든 사건의 기록자이자 비정상적인 바닷새가 가장 훌륭한 탐정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긴 시간을 넘어 현재에 나타난 천사와 과거 사건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 모호한 사실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대결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로 더욱 풍성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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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고아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3
모리 에토 지음, 고향옥 옮김 / 생각과느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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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과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서 있는 네 아이들의 그림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아동문학상이란 수상 내역은 괜히 손이 나가는 것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몇 번 그런 후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별똥별 머신’을 본 후 같은 작가임을 알고 구입했다. ‘별똥별 머신’보다 더 어린 나이를 다루고 있고, 작가의 초기작이지만 문장이나 이야기 풀어가는 방식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네 명의 중학생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는 요코다. 자신이 좋아하던 약간 덤벙되고 얼렁뚱땅한 담임이 사직하고 인도로 여행을 간 후 노련한 담임이 새롭게 왔지만 왠지 기운이 빠져 이유 없이 2주간 등교거부를 한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것도, 집안에 엄청난 일이 있는 것도, 요코 자신에게 힘든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가고 싶은 마음이 의욕이 없는 것뿐이다. 이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지붕을 오른 후 지붕 오르기라는 놀이를 생각해낸다.   

 

 남매만의 이야기에 아야코와 키오스코가 한 명씩 이 놀이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전개로 이어진다. 그냥 무난하고 남들과 잘 지내는 린이나 혼자서도 씩씩하게 친구들과 이리저리 어울리는 요코와는 달리 아야코와 키오스코는 둘 모두 조금씩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모임에서 왕따를 당하고 홀로 서는데 자신이 없는 아야코는 이 남매를 만나고, 지붕을 오르면서 자신감을 조금씩 가진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란 동반자가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 학교 왕따에 거친 아이들의 심부름꾼인 키오스코는 세기말 모임에 빠져있고 자신의 허약함을 애써 감추려고 한다. 이런 아이들과 약간의 부모의 관심이 부족한 이 남매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가슴속으로 슬며시 찾아왔다.  

 

 대학 졸업 한 것도 오래 되었으니 중학교 당시 나의 감성이나 생각이 어떠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고등학교 때 쓴 일기장이라도 다시 본다면 약간 도움이 되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책 속 소녀가 말하는 것에서 얼마나 어른스러움이 있는지 찾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쉽게 드러나는 말과 행동에서 조금씩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체를 판단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역시 간결한 문장과 군살 없는 진행과 현실에 집중하였다는 것과 두려운 상황과 부딪히려는 노력이 아닌가 한다. 표지에서 느낀 조금은 황량한 분위기가 마지막 장에서 손으로 느끼는 따스함으로 녹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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