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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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PD인 타네 씨에게 돌아가신 동성애자 숙부가 거대한 저택을 유산으로 남겨준다. 어릴 때 본 웅장한 저택의 기억에 유산을 받지만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일들에 대한 시작일 뿐이다. 크고 웅장한 저택은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대대적인 수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리업자들을 불러 견적을 내지만 엄청난 금액이 나오면서 그는 변칙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그것은 인력시장, 즉 불법 노동자들이 우글대는 후미진 곳을 찾아 비용을 낮추려고 것이다. 여기서 대부분 독자들은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다.  

 

 첫 번째 지붕공사를 위해 불러온 두 남자는 일은 관심이 없고 집에서 기르는 개 6마리를 일터에 풀어놓는다. 일에 대한 지식도 기능도 없는 이들은 끝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휴가를 내어 집을 수선하고자 하는 타네 씨를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 이후 나타나는 수많은 공사장의 작업부들은 이런저런 일들로 타네 씨를 괴롭힌다. 독실한 신자인 러시아 전기배선공이나 돌아서면 앞에 주의준 실수를 되풀이하는 보일러공, 라디에이터 색칠을 거부하는 전직 예술가 도장공 등 이 소설엔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집주인에겐 악몽 같은 인물들로 가득하다.  

 

 많지 않은 분량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사를 묘사하면서 짧게 출연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그 황당한 인물들의 늪에 계속 빠져있게 하지 않는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실수만 하는 인물이 있는 반면에 타네 씨를 감동으로 빠트리는 인물도 있다. 그는 수도배관공 아랑그 영감이다. 유쾌하고 수도관을 자신의 군대로 생각하는 이 영감이 실수로 용접된 부분이 터져 집주인의 침대를 적셨던 사고는 그를 우울하게 만들고 자존심과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다. 타네 씨가 견적서 요구해도 대답하지 않고, 수표를 보내도 사용하지 않은 이 영감님은 극중 집주인에게 가장 큰 즐거움과 기쁨을 준 인물이다. 수많은 괴짜들 중 한명이지만 분명히 매력적인 등장인물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끔 만나는 집수리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나 갈등을 여기에서 약간은 기대하였다. 공포영화 같은 전개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괴짜들과의 다툼에서 마지막에 벌어질 황당한 상황도 예측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되고 황당한 상황의 판을 키우지는 않는다. 보는 내내 괴짜들과 초짜들의 집수리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타네 씨가 처한 상황에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만약 내가 집수리를 하는데 이런 인물들을 만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생각만으로 끔찍했다. 

  

 

 안정된 직장과 아름다운 집을 포기하고 새롭게 거대한 집을 상속받아 수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 에피소드들의 집합은 재미있다. 작가가 우리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장소를 빌려준다고 하는 대목에선 많은 점을 느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과 빠른 진행과 재미있는 내용은 작가에 대한 평가를 너 높아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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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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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읽는 가쿠타 미쓰요의 작품이다.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았다는 광고 문구가 인상적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늘 글을 참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요미우리신문에 연재한 것을 단행본으로 낸 것이다. 연재 당시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작품 초반은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멈출 수 없는 속도감으로 나아갔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의 두 여인을 다룬다. 과거 속 여인은 사랑하던 남자의 여자 아이를 유괴하고, 도망 다니면서 그녀가 겪은 두려움과 행복을 그려낸다. 현재의 여인은 그 유괴 당한 아이가 성인이 된 후를 보여준다. 과거가 일기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녀가 실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과 행복을 뒤섞어 놓았다면 현재는 과거의 영향으로 자신의 삶이 꼬인 여자의 삶을 그려낸다. 이 두 여인의 삶을 지켜보면 다른 듯하면서 닮았다.   

 

 과거의 여인 기와코는 가정이 있던 남자를 사랑했다. 그녀의 사랑은 남자에겐 욕망일 뿐이었다. 그녀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하고,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녀의 삶은 미래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 남자의 아내가 그녀가 다시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고 했을 때 빈껍데기란 표현을 한 것은 그녀의 삶을 텅 비게 만들었다. 우발적인 가택 침입이 아이의 유괴로 이어진다. 잘 모르는 육아와 함께 이루어지는 도망은 언제 잡힐 줄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로 가득하지만 텅 빈 그녀를 조금씩 채워준다. 3년 반 동안의 도망은 그녀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두 번 다시 가지지 못할 아이와의 유대감과 육아와 가정의 행복을 누렸기 때문이다.  

 

 현재의 여인 에리나도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한다. 그녀가 유괴되고,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그녀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유괴되기 전부터 이미 콩가루 집안이었고, 재판 진행 과정에 그들의 상황이 매스컴에 낱낱이 밝혀지면서 삶은 그 자리에 맴돌기만 한다. 에리나는 유괴당한 아이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친구 하나 없고, 그 부모는 많은 사람으로 욕을 얻어먹는다. 가족이란 유대 관계를 유지하지만 결코 그들 사이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바람을 피면서 이혼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과거에 일어난 유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아이를 가지면서 선택하는 것은 기와코와 다르면서도 같은 방식이다.  

 

 다르면서 비슷하고, 비슷하면서 다른 이 두 여인의 삶은 뒤로 가면서 감정의 동조가 이루어진다. 용서 못할 유괴가 어느 순간 조금은 이해가 되고, 현재의 삶에서 결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이 가득한 과거를 기억하면서 조금은 용서의 마음이 생긴다. 그들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언제 이 행복이 깨어질지 모른다는 기와코나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이 아닌 낯선 이방인 같은 에리나의 삶이 그렇다. 과거가 사건의 사실을 기와코의 마음에서 다룬다면 현재는 그녀가 그렇게 행동하게 된 원인을 에리나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자신의 삶이 뿌리 채 흔들린 상황에서 에리나가 그 흔적과 기억을 뒤쫓아 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추악한 사실들이 그녀를 더 힘들게만 만들 뿐이다.   

 

 이 소설이 만약 에리나의 마음에만 집착했다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유괴의 희생자인 자신을 “왜 하필 나였을까”라고 외쳤던 현실에서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는 순간 그 피해자가 가족으로 확대된다. 이런 인식 속에서 과거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자신을 다시 부모의 품으로 보내는 순간 기와코가 아이의 아침을 걱정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기와코를 증오한 것이 자신이 편해지기 위한 하나의 방편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는 그 누구도 증오하고 싶지 않았다. 증오가 사슬이 되어 자신을 감았고, 그 사슬에 묶여 삶을 살아온 것이다. 과거의 장소로의 여행이 그 사슬을 조금씩 풀어준다. 이제 그녀는 좀더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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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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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을 처음 만난 것은 3인 공동 창작집 <누군가를 만났어>에서다. 이 창작집을 보면서 한층 성숙한 한국 SF문학의 발전과 가능성에 흥분했다. 그 이후 이 작가들 이름이 나오면 눈길이 먼저 간다. 그들을 항상 단편으로만 만났는데 약간 기복은 있었다. 그렇지만 반갑고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배명훈 그만의 연작소설집이 나왔다니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설정을 보니 먼저 바벨탑이 연상되지만 잠시 그 속을 들여다보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자 확대경을 통해 그 치부를 드러낸 이야기다.   

 

 빈스토크란 거대 타워 도시를 배경으로 쓴 연작소설이다.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화자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첫 이야기부터 기발한 착상으로 시작한다. 35년산 고급 술병에 전자 태그를 붙여 권력 지도를 연구한다니 독특하면서 기발하다. 미세권력연구소란 이름도 낯선데 이 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더욱 낯설다. 하지만 이 술병의 이동과 집결을 보면 권력의 속성이 살짝 드러난다. 물론 황당한 결과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다. 권위적인 연구소의 모습과 더불어 마지막에 펼쳐지는 반전은 약간 돌출된 느낌이 있지만 재미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약간 비틀어 보여준다. 권력의 힘에 눌려 사회비판적인 글을 쓰지 못하고 자연예찬만 하는 작가나 빈스토크의 시민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추락한 비행기 조종사를 방치하는 현실이나 고시에 합격한 한 남자의 회고를 통해 부패한 곳에서 청렴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시간을 넘어서 전해지는 감성과 한 명의 위해 전 세계가 협력하는 모습은 강한 여운과 함께 감동을 전해준다. 그리고 회고를 통해 우리 사회의 대립과 분열을 능청스럽게 비판하면서 블랙유머를 품어낸다.  

 

 광장에 나타난 코끼리 아미타불과 테러리스트를 등장시킨 두 이야기에선 광장 공포에 질린 위정자와 자신만 살려고 하고 잘못은 모두 남 탓만 하는 정치인을 드러내어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을 비웃고 있다. 편지 형식으로 실험한 <광장의 아미타불>은 형부와 처제의 시각차를 통해 인식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고, 마지막 작품에선 신념이나 테러보다 긴 세월을 함께 부디끼며 산 사람들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하고 솔직한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들에도 마지막 반전이 펼쳐지면서 여운을 남기고 생각하게 만든다.  

 

 빈스토크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를 하나의 건물로 압축한 것이 아닐까 였다. 좀더 좁게 본다면 강남지역이 이 타워에 더 적합할 것 같다. 현재 우리의 정세나 사회의 풍토가 이 연작소설 속에선 다른 가면을 쓰고, 살짝 속내를 숨기면서 낱낱이 까발려진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 깊은 곳에 깔린 아픔과 울분과 안타까움과 어두움은 희석된 채로 다가온다. 그리고 부록 <520층 연구>는 지역 공동체가 깨어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보다 일방통행으로 다가오는 매스컴의 영향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하면서 중요한지 알려준다. 즐겁고 발랄하고 유쾌한 상상력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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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지키기 위한 한 여인의 투쟁
브루스 바콧 지음, 이진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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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마코앵무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벨리즈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그 나라의 상황은 더욱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아는 것은 있다. 그것은 이 나라의 부패와 부정이 어떻게 자본과 결탁하고, 그 결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았다면 너무 심한 뻥일까? 4대강 정비사업이란 거짓과 불법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현실을 알기에 아무것도 모르던 그 나라와 주홍 마코앵무새가 결코 낯설지 않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는 진행된다. 1부는 위기에 처한 낙원이란 제목으로 벨리즈와 동물원 아줌마 샤론을 중심으로 치릴로 댐 건설로 대변되는 환경 파괴와 부정 부패을 다룬다. 2부는 법정으로 끌고 가려는 노력과 그 노력이 어떤 식으로 풀려나가는지 보여준다. 이 일련의 과정은 시간 순으로 진행되며 그 속에서 알게 되는 사실들은 낯설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하다.  

 

 사실 환경에 대한 나의 인식은 아주 바닥이다. 환경보호에 대해 읽고 보고 생각하지만 그 지식이 정말 얇다.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고, 논쟁을 둘러싼 쌍방의 주장을 분석하고 이해할 능력도 부족하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 이야기를 풀어갈 경우라면 다르다. 이 경제적 논리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숫자는 만드는 사람의 주관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무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익 분배와 부패의 사슬은 화려한 포장을 한 경우라면 더욱 심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경제 논리가 허상임을 알고 있다.  

 

 경제 논리의 허상보다 더 놀란 것은 아주 노골적인 부패다. 벨리즈란 나라가 인구 25만에 군대가 기껏 700명 정도의 소국인 것은 알겠는데 정치인들의 부패와 정경유착 등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다. 연간 수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대단한 효자 상품을 가진 동물원도 자신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옆에 쓰레기 매립지를 조성하려고 한다. 그녀가 자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백인이란 이유만으로 흑색선전을 한다. 정치인과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국제사회의 여론에 신경을 쓰는 듯 움직이지만 구색만 갖출 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밀어붙인다. 누군가 바로 연상이 된다.  

 

 앞부분에서 가장 새롭게 다가온 것은 댐의 효능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댐의 유효성이 여기에선 무너진다. 수력으로 전기를 발생시키면 무공해라고 생각했는데 고인 물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수은 등이 쌓인다고 한다. 당장 소양강 댐이 생각난다. 그곳 물고기 먹어도 상관없을까? 또 침전물로 인해 댐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하류 생태계 파괴와 수물 지구 등에 대한 것도 있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인공적 구조물로 인한 자연의 역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주홍 마코앵무새로 인한 논쟁과 소송이 한 축이라면 샤논의 삶은 그 축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고, 그녀가 공을 들인 동물원은 그 조그마한 나라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게 만들고 이런 환경을 보기 위해 부유한 사람들이 여행을 오게 만든다. 이런 공공의 선을 위한 노력과 결과는 결코 정치인들 개인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들에겐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문제가 보이지만 매수와 협박과 비난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려버리고 왜곡한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고 미래를 어둡게 보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끝없는 노력과 투쟁은 한 줄기 희망의 불씨를 전해준다.  

 

 많은 문장과 이야기와 사실들 속에서 가장 가슴으로 파고든 문장이 있다. 그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상소”(399쪽)란 것이다. 힘없고 말 못하는 조그마한 새들이 샤논을 비롯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펼치는 이 투쟁기는 자본의 폭력성과 탐욕과 국경 없음을 보여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결과를 알기에 조금은 힘이 빠지지만 마지막에 샤논이 보여주는 희망과 행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무겁고 힘들게 읽힐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빠르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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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바흐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강명순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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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바흐의 매력에 대해 잘 모른다. 학창시절 라디오에서 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면서 낮잠을 즐겼던 기억은 있다. 나른한 아침의 햇살 속으로 울려 퍼지는 클래식의 선율은 졸음을 잠으로 이어가는데 최고였다. 그 이후도 음악회를 가면 존다. 나쁜 버릇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유명한 음악가의 작품을 소설 등에서 해석한 글을 읽거나 우연히 듣게 된 선율은 CD를 구입하게 만든다. 몇 번을 듣지만 유명한 몇 곡을 제외하면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나의 귀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음악가를 다룬 책이 나오면 눈이 먼저 간다. 이 소설은 바로 음악의 아버지라고 학창시절 배웠던 바흐의 유산을 둘러싼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구동독의 나움부르크다. 구동독이라고 표현한 것은 독일이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움부르크 성 벤첼 교회의 오르간과 그곳에서 발견된 바흐의 유작을 둘러싸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을 뒤섞어놓았다. 바흐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주는 야곱과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아들을 욕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첫사랑과 아버지의 결혼으로 태어난 이복동생 레오가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뒤틀린 묘한 애정을 보여준다면 교회의 오르간을 조사하러 온 저명한 바흐 협회의 회원들이 다른 한 축으로 야곱과 대립하고 속물근성을 드러내어준다. 명성의 허울 속에서 참모습을 꾀 뚫어 보여주면서 진정으로 바흐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려준다.  

 

 주인공 야곱은 특이하면서 불행하고 불안한 남자다. 첫사랑에게 차이고, 그 첫사랑이 자신의 계모가 되었고, 두 번째 사랑한 여자도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 이런 사랑의 실패와 껑충한 키에 굽은 모습은 다른 사람의 애정을 받기에 부족하다. 아니 그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는 그의 삶이 더 문제다.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술로 자신을 지탱하는 그의 모습은 지리멸렬한 삶 그 자체다. 이런 그에게도 한 가지 재능이 있다. 바흐에 대한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도시로 바흐 협회의 회장을 비롯한 거두들이 오르간을 조사하기 위해 온다. 야곱은 이미 이곳에서 수십 년 동안 무료로 연주를 하고 있다. 하지만 소위 거두니 전문가니 하는 사람들이 언제 아마추어의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냉소와 비웃음은 차가운 비수처럼 다가온다.  

 

 이야기는 야곱의 가정사와 애정사를 바탕으로 깔고 그의 바흐에 대한 충성과 우연히 발견하게 된 <요한계시록>이란 악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교회의 오르간 조사위원회에 자신이 오랫동안 연주하고, 아마추어 바흐 연구자였던 것을 알리면서 위원으로 합류하고자 하였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한다. 이에 분개하던 중에 이복동생이 낀 곳에서 바흐의 유산처럼 보이는 물건을 발견한다. 분명 이것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불행하고 불안하고 위원회에 발탁되지 않은 감정들이 결합하여 이것을 숨긴다. 소설은 이 때부터 이 상황을 둘러싼 이야기로 맴돈다. 그리고 우연히 이 악보를 야곱이 머릿속으로 연주하면서 알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음산한 분위기를 경험한다.  

 

 사실 이 바흐의 유작만을 중심으로 나갔다면 속도감은 있었겠지만 풍성하면서 아슬아슬하고 미묘한 재미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유품을 협회에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과 최초의 발견자이자 이 때문에 유명해진 자신을 상상하는 욕망에 휩싸인다. 또 짝사랑하는 여인이나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의 불안감과 욕망을 더욱 키운다.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바흐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다. 이 감정들이 바로 그로 하여금 <요한계시록>의 가치를 깨닫게 만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흐 협회의 회장이나 조수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반면에 일본인 고야타케만 그 실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명성을 얻을 때까지의 업적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이후 그들에겐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잘 읽히고 재미있다. 전작 <오르가니스트>에선 낯설고 더딘 진도였는데 이번에 그렇지 않았다. 전작도 역시 오르가니스트가 주인공(그것도 천재 연주자)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혹 작가 자신이 연주자거나 아니면 이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것일까?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한다면 역시 눈으로 듣는 바흐의 음악일 것이다. 음악에 무지해서 충분히 형상화시키지는 못했지만 글로 만들어진 그 형상이 가슴으로 울려 퍼진 것은 사실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공이지만 연민과 자그마한 애정이 생기는 그의 행동과 삶이 바흐에 대한 삶과 이어져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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