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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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작가들을 내세우는 판매 전략은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애드거 앨런 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뒤를 잇는다는 그 문구 하나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히 자극적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 과연 그런가? 하고 자신에게 묻지만 그 답은 모르겠다. 어쩌면 당연하다. 내가 언제 이 작가들의 작품을 제대로 다 읽은 적이 있었던가?     

 

  자! 이제 유명한 다른 작가들은 뒤로 하고 이 소설집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먼저 요즘 나오는 소설집엔 작품집이니 단편집이니 하는 표시가 거의 없다. 제목이나 책 소개나 표지만을 본 사람들은 장편이겠거니 하고 구입하고, 그 호흡에 맞추어 책을 읽는다. 그러나 보니 충분히 그 묘미를 누리지 못하는 몇 편이 생긴다. 어쩌면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지만 나처럼 약간 둔한 사람은 그 사람의 문장과 구성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더욱 어렵다. 넋두리는 여기서 끝.  

 

 표제작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두 번째 작품인 ‘홈 스위트 홈’부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나의 살인사건을 재미나게 풀어내는데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유머가 섞여있었다. 이후 나오는 단편들도 조금씩 작가에 적응하면서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타당한 조건들’이나 ‘그해의 히트맨’이나 ‘갈루스, 갈루스’나 ‘폭력의 집’은 다른 느낌과 분위기로 재미를 준 작품들이다.  

 

 ‘타당한 조건들’은 기린들이 동물원장에게 자신들의 삶에 대한 개선사항을 보내면서 시작한다. 이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자 자살 흉내를 내면서 어린이에게는 공포를 매스컴엔 기사거리를 주게 된다. 간략하고 암축된 구성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단편의 묘미를 느끼게 만든다. ‘그해의 히트맨’은 마피아 히트맨의 삶을 다룬 것이다. 아비 없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지만 할머니 노나의 억센 삶에 의해 살아가다 마피아에 의해 암살자로 훈련 받고 그 업무를 매끈하게 집행한다. 재미있는 것은 살인이 아닌 약간은 평범한 전개와 암살자가 보여주는 귀여운(?) 행동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결말.    

 

 ‘갈루스, 갈루스’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블랙코미디에 적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일상적이지 않고, 묘한 집착을 가진 사람들이다. 평생 구두끈을 매어본 적이 없다거나 닭에게 빠져 정신이 없다거나 동물 소리를 남에게 들려주려고 연습한 것을 끝없이 보여준다거나 아버지의 예상하지 못한 죽음으로 불안정한 것을 두려워한다는 등의 인물이 나온다. 이 인물들이 마지막 한 장면을 위해 움직이고 그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폭력의 집’은 가정내 폭력과 가족간의 갈등이 다루어진다. 여기서 가장 눈에 들어온 인물은 가족 내 구성원이 아닌 심리학자다. 하나의 행동을 부모가 알려주면 그에 맞추어 새 처방을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어나는 사고나 사건들을 생각하면 좀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면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 낯선 모습이 이 소설의 재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과 다르거나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거나 일상에서 보는 잔혹함이 극으로 달려간다거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 틈이 점점 더 커진다거나 하는 모습이 유쾌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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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를 리뷰해주세요.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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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상을 수상한 작품에 눈길이 저절로 간다. 상금이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이 모두 재미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또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예전에 본 영화나 읽은 책 속에서 정신병자들은 어느 정도 미화된 부분이 있겠지만 실제 사회의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의도적으로 대립 관계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세상사의 때를 덜 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보고 있으면 점점 각박해지는 세태와 나 자산을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예전에 본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실제 정신병이 있지 않은데 병원으로 끌려간 사람들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제도적으로 보호자 등이 그를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고, 그에 협조하는 정신병원이 있으면 그냥 끌려간다. 사람이 환경에 쉽게 변하는 속성이 있는데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도 정신병원에 갇혀 매일 약을 먹고, 그들과 생활하다보면 어느 순간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이 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갇힌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병원에서 변화와 혼란을 일으키고, 활기를 가져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화자인 미스 리 이수명은 실제 공황장애가 있다. 가족력에 어머니가 환자고, 본인도 그런 증세가 있다. 그가 어머니의 죽음 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 한 후 심하게 더듬는 말투와 느린 행동 때문에 성추행자로 오인 받고, 그 후 아버지에 의해 수리 희망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가 병원으로 끌려오면서 한 싸움을 보게 되는데 그 싸움꾼이 승민이다. 이 둘의 만남과 조합이 처음부터 쿵짝이 맞은 것은 아니다. 병원에 어느 정도 적응한 수명에 비해 승민은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고 도전한다. 이 과정을 미스 리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소설은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서 이수명이 수리 희망병원에 들어가고, 그 속에서 살고, 탈출하기까지를 위원회에서 말하는 형식이다. 이 과정에서 개성 강한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고, 살아간다. 정신병원이란 공간은 특별한 인물들을 만나기 쉬운 곳이다. 좀도둑인 김용이나 말을 탔던 전력으로 또별이란 말을 사람으로 대체하고 움직이는 노인 만식 씨, 신통한 능력을 보여주는 십운산 선생, 사회복지사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우울한 세탁부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 외 효선이를 찾으면 거구를 움직이는 효선 엄마나 병원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경보나 공주처럼 왕관을 쓰고 다니는 버킹엄 공주나 약간 부족한 지성을 지닌 한이와 지은이 커플 등이 있다. 이들 한 명 한 명이 강한 개성과 함께 진한 인간의 향기를 풍긴다. 우울하고 무서울 수 있는 공간에 다양한 이야기와 인간에 대한 깊은 관찰을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들이다.  

 

 책 앞부분은 사실 집중력이 떨어진다. 아직 인물들이 자기 자리도 찾지 못하고,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대립관계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반을 살짝 지나고부터 속도가 붙는다. 수명과 승민의 과거가 드러나고, 그들의 사연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이런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면 다음 번 소동과 탈출이 기다려진다. 정체된 듯 고여 있던 병원이 수명의 발작과 승민의 활약 덕분에 분위기가 바뀐다. 이런 상황에서 수명은 전혀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수동적이다. 그런데 상황은 그와 승민을 중심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에 입원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중에 아쉬운 두 사람이 있다. 수명을 괴롭히던 점박이와 최기훈 간호사다. 생각보다 빨리 무대에서 점박이가 사라지면서 수명이 또 어떤 괴롭힘을 당할까 하는 조마조마한 감정이 사라졌고, 최기훈의 경우는 그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싸움꾼에 환자들에게 애정이 있는 듯하지만 승민의 공격에 대한 반응은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마지막까지 그는 알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이 둘은 사실 소설에 환자의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존재다. 이런 사람들이 비중이 약해지니 뒷부분에 아쉬움이 많다.  

 

 소설을 읽다 보면 많은 생각이 왔다 간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무엇인지, 인간의 욕심에 의해 감금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는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그들이 왜 병원에서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실제 병으로 고통 받는 그들의 아픔이 어느 정돈지, 과연 정신병원은 환자로 하여금 병을 낫게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는지 등이다. 이런 많은 생각들의 왕래 속에 수명의 존재는 그 경계에 걸쳐서 그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그의 새로운 도약과 도전을 만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정신병원이란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인간적이 사람들의 모습과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나 정신병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재미있게 보거나 읽은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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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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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모가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아이를 기다린다. 기다리던 아이 대신 경찰이 찾아온다. 불길한 느낌이다. 주인공 팀의 동료 베어는 지니가 토막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가 살고 있는 동네는 범죄 없기로 유명한 곳이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시체 공시소에서 그 아이를 확인한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오는 중에 아내 드레이의 동료 경찰이 전화를 한다. 범인을 찾았다고. 그들은 범인의 집으로 간다. 경찰들이 기대한 것은 사적인 복수다. 팀의 직업은 연방집행관이다. 그리고 발생하는 갈등. 그는 복수의 손길을 거두고, 살인자 킬델에게서 공범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를 잡은 경찰들에게 이를 환기시킨 후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법 앞에 킨델은 놓이게 되었다.  

 

 이 초반부를 단숨에 읽으면서 부모의 상실과 복수를 느끼게 된다. 당연히 법에 의해 그가 사형대에 올려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는 법의 허점으로 풀려난다. 왜 그를 잡은 그 장소에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그리고 딸을 잃은 슬픔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마약범 체포 작전에 참가한 그가 범인 과잉 살인죄로 추궁 받는다. 딸아이의 상실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표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실감으로 자신을 점점 잃고, 감정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아내뿐이다. 이 부부 사이에 위기가 다가온다.  

 

 이런 초반의 준비 작업을 한 후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그는 듀몬이다. 예전에 보스톤 경찰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자경조직에 들어올 것을 권한다. 그 이름이 바로 소설의 제목인 살인 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모두 일곱 명이고, 만장일치가 될 경우에만 그 범죄자를 죽인다. 팀이 이 위원회에 선택된 것은 그의 화려한 전력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직접 사형을 처하길 바란다. 팀이 보기에 이 사람들이 미심쩍다. 하지만 딸을 잃은 상실감과 법의 허점으로 킨델이 풀려난 것을 보고 마음이 변한다. 이제 그는 살인 위원회의 한 사람이 된다.  

 

 

 법치국가에서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법이 과연 만인에게 평등할까? 우리는 현실에서 법이 가진 자의 편인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리고 명확한 범죄자인 킨델이 풀려난 것은 절차상 문제 때문이다. 미란다 원칙을 말하지 않고, 영장을 발급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킨델은 청각 장애까지 있다. 어쩌면 그가 풀려난 것은 당연하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법의 정의가 그런 것이다. 처음 이 상황을 보았을 때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명확한 범죄자를 그런 절차 상의 문제로 풀어줄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만약 당신의 집에 경찰이 영장도 없이 침입하여 당신도 모르는 증거물을 들고 간다고 생각해보라. 일반 시민에게 악의를 품은 경찰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여 범인을 양산할 수 있는 것이다. 킨델의 경우는 그가 범인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절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법에 허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허점을 이용한 범죄가 늘어나고, 그 허점을 매우는 작업이 반복된다. 피해자 당사자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큰일이지만 긴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순간 일뿐이다. 피해자 가족이 가슴에 그 아픔과 슬픔을 묻고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분명한 범죄자를 절차상의 문제로 풀어주는 것이 맞을까? 살인 위원회가 구성된 것도 바로 이런 부조리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한 범죄자를 사적으로 처벌하여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순수한 의도가 법을 넘어선 순간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의가 먼저라고 외치지만 그들 가슴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것은 복수심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분명히 재미있다. 팀의 입을 빌려 <더티 해리>를 말하지만 사실 닮은 점이 많다. 그들이 법보다 정의를 외치다거나 결국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일을 그르친다. 빠른 전개와 냉철하고 이성적이면서 뜨거운 가슴을 가진 팀의 존재는 그의 활약과 능력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법의 맹점을 표면에 내세우고, 정의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결국 다시 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은 수 천 년 동안 이어져온 사회 시스템이자 가장 안정적인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대립과 갈등을 기반으로, 법과 정의를 배경으로, 감정과 이성의 충돌로 이어지는 액션 스릴러다. 순간의 감정이 시간의 흐름 속에 더욱 커지느냐 아니면 조용히 정제되느냐 하는 것의 중요성이 잘 부각되어있다. 빠른 전개와 자연스런 감정의 변화와 깨달음은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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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1
마츠모토 타이요 글.그림,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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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본 만화를 읽은 지가 한참 되었다. 한동안 일본 만화에 빠져 살았고, 그 당시에 만난 몇몇 작가는 반드시 읽어야만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길게 이어지는 만화에 지쳐갔고, 완간된 작품은 너무 많은 권수에 주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기억하는 만화 대부분이 요즘 나온 것이 아닌 몇 년은 지난 것들이다. 한국 만화도 역시 그런 경향이 있다. 조금은 독서의 폭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마츠모토 타이요란 작가를 사실 잘 모른다. 도서 검색을 하면서 자주 이 이름을 만나기는 하였지만 나에겐 다른 일본 만화가에 비해 아직 지명도가 떨어졌다. 그를 알린 작품들을 평론이나 서평을 통해 만났지만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도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데 새로운 작가에 도전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였다. 하지만 그의 대한 호평과 첫 시대극이란 것과 그의 그림과 잘 어울린다는 평은 주저 없이 손이 나가게 만들었다.  

 

 처음 이 만화를 펼치고 대충 넘기면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일본 만화의 그림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끄러운 그림이 아닌 투박하면서 날카로운 그림체가 취향과 사뭇 달랐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만화를 볼 때면 예전에 본 그림체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펼쳐 읽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매끄럽지 않은 선과 예쁘지 않은 등장인물들보다 작품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그 그림들이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체와 관련하여서는 이전에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였는데도 아직까지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의 성장이 더딘 모양이다. 

 

죽도 사무라이란 제목처럼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진검 대신 죽도를 가지고 다닌다. 그가 지녔던 쿠니후사란 검이 실제 어떤 명검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지닌 살기와 승부욕은 진검을 가지고 다녔다면 많은 살인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을 염려해서인지 아니면 이야기 중에 나온 금전적인 이유 때문인지 그는 검을 팔았다. 이 선택 때문에 그는 몇 번의 살인 충동을 넘겼다. 만약 진검을 차고 있었다면 그 검에 몇 사람의 목이 날아갔을지 모른다. 그가 풍기는 살기와 기세에 전도유망한 검술 사범 하나가 도장을 떠날 정도고, 실력 있는 무사 한 명은 목이 날아가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의 이런 숨겨진 실력이 하나의 축이라면 그를 처음 만난 꼬마 칸키치는 관찰자이자 세노로 하여금 동심의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우연히 마주친 세노의 모습은 낯설지만 신기하고 호기심의 대상이다. 영리한 소년 칸키치가 세노에게 매혹 당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 모른다. 첫 부분부터 보여주는 그의 기이한 행동과 말들은 그런 분위기를 더욱 조성한다. 소년의 군더더기가 많은 동작을 지적하거나 다른 동물들의 간결한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조용히 표현하는 말들은 높은 검의 비결을 말하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아직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 그가 에도로 나온 것이 어떤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가 만들어낸 환상 같은 몇몇 장면은 그가 얼마나 순수한지 알 수 있고, 승부에 대한 열망은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될지 예상하게 만든다. 처음에 낯설고 어설프게 느껴졌던 그림도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볼수록 빠져들고 있다. 독창적이고 천재적이란 평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의 씨앗을 보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다른 작품들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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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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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책은 처음이다. 그의 이름을 우연히 듣고 언제 책을 읽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요즘 필요한 영어와 관심 있던 미국 역사를 같이 다룬 책이 나왔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일석삼조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책을 보고, 가볍게 넘겨보면서 생각보다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나 그랬다. 많은 영어 단어와 숙어가 나오고, 600쪽이 훌쩍 넘다보니 더디게 진도가 나갔고 예상한 시간을 훨씬 지나 모두 읽게 되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책 한 권이 주는 유익함과 재미가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발칙한 영어산책이란 제목과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란 부제는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 역사를 영어를 통해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순으로 나오는가 생각하는 순간 주제별로 내용은 변경된다. 그 주제별도 알고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 것들이다. 물론 예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시대가 변하면서 그 가치나 의미가 바뀌거나 새롭게 등장한 산업이나 문화나 스포츠를 다룰 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영어다. 단어를 통해 그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미국이란 나라의 실체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모두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이플라워호의 도착과 그 이전 역사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미국 영어를 다루면서 마무리한다. 미국이 거의 모든 역사란 말에 딱 맞는 구성이다. 너무 방대한 분량에 내용이다 보니 이것을 제대로 정리하거나 요약하는 것은 무리고 작가에 대한 실례다. 사실은 나의 무식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을 이 속에 담고 있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실들 몇 가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몇몇은 너무 간략해서 아쉬웠고, 대부분은 놀랍고 재미있었다.  

 

 분명히 재미있는 책이다. 하지만 읽기는 상당히 괴롭다. 번역자와 편집자도 상당히 고생하였을 것 같다. 수많은 영어 단어와 숙어는 영어 울름증이 있는 나에게 고통을 주었고, 어떻게 발음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단어들을 속으로 읽어보고, 어딘가에서 본 단어인데 뜻은 생각나지 않고, 그보다 더 많은 단어는 발음도 뜻도 몰라 괜히 불친절(?)한 책에 화도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된 것은 이 책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미국의 모습은 현대 역사 교육이나 정보 속에서 우상화되고 미화된 인물의 실체를 하나씩 알게 한다. 미국 건국 3대 인물 이야기에서 그들도 시대의 한계나 한 명의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고, 에디슨 이야기에서 목적에 의해 부각된 그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실체를 다시 만나면서 현대 교육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콜럼부스에 대한 작가의 혹평은 조금 놀랍기도 했다.   

 

 눈길이 간 두 형제가 있다. 바로 라이트 형제와 맥도널드 형제다. 최초의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가 처음에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것과 이 둘이 함께 살았고 평생 독신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데 맥도널드 형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두 형제도 역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사실에 두 선구자 형제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묘한 공통점이다. 다른 수많은 함께 사는 독신 형제가 있을 텐데 눈길이 간 것은 이들이 후대에 끼친 영향 때문일 것이다. 아! 맥도널드 형제가 현재 맥도널드 햄버거 창립자가 아니다. 비록 이 형제의 시스템으로 크록이란 인물이 체인점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이런 예는 이 책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언어는 흔히 시대와 함께 숨을 쉰다고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고, 새롭게 생기고 사라진다. 당시 신생 국가였던 미국이 아메리카에 도착하여 토착 언어와 결합하고, 자신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유통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초기 미국사를 보면서 현재 중국이 통일된 언어를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이 책이 나온 해를 보니 1994년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또 그의 이력에 영어사전을 만든 적도 있다. 재미나고 뛰어난 여행 작가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만든 책이다. 시간되시면 한 번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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