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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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가의 소설은 이전까지 읽은 책이 두 권이고, 영화로 본 것이 두 편이다. 이번에 여기에 읽은 책 한 권을 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읽은 것과 본 것과는 다른 모습에 약간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단 세 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이 소설집이 나에게 작가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그러나 이전 같은 재미를 준 책이다.  

 

 표제작 ‘연애소설’은 상당히 특이하다. 소설이 특이하다기보다 등장하는 인물이 특이하다. 별명이 사신인 인물에 대한 글인데 그와 친한 사람들은 모두 죽기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우연한 사고로 만나 사귀지만 불치병으로 죽는 여자친구 이야기가 지독히도 불행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낸 그 남자의 모습에 동정이 아닌 시선으로 멀리서 바라보게 한다. 평생 외톨이로 지내야할 그를 생각하면 삶의 불공평과 남은 시간의 기나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의 환’은 암으로 죽어가는 한 남자가 아는 사람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내용이다. 누구를 선택할까 고민하지만 적당한 인물이 없다. 그런 어느 날 한 남자 K가 찾아오고 그에게 부탁을 하는데 K의 정체는 놀랍게도 킬러다. 왜 그를 죽이고자하며 자신의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와 긴장감이 상당한 작품이다. 역시 약간은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묘하게 읽는 동안 젖어들게 한다.  

 

 ‘꽃’은 동맥류로 수술을 해야 하는 한 남자가 아르바이트로 한 유명 변호사를 태우고 여행을 떠나면서 마주하는 과거의 기억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동맥류가 언제 파열할지 모르지만 그 수술의 성공여부가 확실하지 않고,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하지만 그는 주저하고 있다. 그런 시기에 만난 변호사와의 자동차 여행에서 변호사의 이혼한 옛 부인과의 과거를 마주하면서 깨닫게 되는, 잊고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현실에서 주는 감동은 잔잔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세 작품 모두가 담고 있는 주제는 사랑이다. 사신의 사랑이나 암에 걸린 환자의 사랑이나 이혼한 변호사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열정적이라기보다 지독히 현실적이고 낭만적이다. 누구나 사랑을 처음 시작하면 그 뜨거운 열정에 심장이 터질 듯하고, 타는 목마름을 겪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열정과 갈증은 차갑게 식어가고 냉정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 현실의 벽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기억 속에, 추억 속에 남겨진 아름다운 사랑은 조그마한 불씨만 남아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뜨거움이나 그리움으로 우리를 들뜨게 한다. 사랑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만 바라보는 것으로 그 사랑에 즐거워하게 되는데 이 소설이 그런 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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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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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책 표지를 보고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 것은 만화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이다. 예전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 만화다. 오래 전이라 정확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그 만화가 생각난 것은 왜일까? 일러스트가 주는 분위기와 책에 대한 짧은 설명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귀신들과 그 속에 만나게 되는 사연들이 굉장히 따스하고 인상적이었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따스함보다 섬뜩하고 괴이하고 충격적이다.  

 

 여덟 편의 괴담이 실려 있다. 일상의 평범함에서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는 환상적이고 기괴한 풍경은 낯선 느낌과 동시에 섬뜩함을 전해준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장면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돌출적인 반전은 마지막 문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기괴한 이야기를 만나고, 만들어가는 두 콤비의 활약은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이 두 콤비가 그 기괴한 현상을 물리치거나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그 현장에서 그 사건을 마주할 뿐이다.  

 

 두 콤비는 별명이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불리는 남자와 화자인 사루와타리다. 백작의 직업은 괴기소설을 쓰는 작가다. 반 백수인 사루와타리와 만난 것도 우연한 사고가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둘이 가까워진 것은 두부를 좋아하는 식성 때문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맛있는 두부를 찾아 돌아다니는 마니아다. 이 둘의 이동에는 거의 대부분 사루와타리가 운전을 하고 가는데 그들이 처음으로 만난 기담도 바로 맛있는 두부집을 찾아가면서다.  

 

 단편들의 구성은 간단하다. 처음엔 사루와타리의 사연이 나온다.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이 나타나서 기괴한 일상을 이야기하거나 상황을 연출한다. 이성의 세계에서 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일들인데 이 소설 속에선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면서 사람을 끌어당긴다. 일상에서 반전처럼 변하는 풍경은 처음 몇 편에선 제대로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고 섬뜩함과 강한 여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지막 문장은 여러 번 음미하게 된다.  

 

 터널을 통과하면서 만나게 되는 피투성이 얼굴의 여인이나 일본 전래의 전설을 배경으로 괴담으로 풀어내거나 무시무시한 스토커 여성을 등장시키거나 백작의 추리를 가볍게 뒤집는 괴물이 나와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다. 그러다 도시괴담 같은 쥐 이야기가 이어지고 결계가 사라진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지옥과 제물에 통곡하고 벌레 이야기로 기이하고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 후 사루와타리가 이 기담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 일련의 과정이 시간 순으로 나오지는 않고 뒤섞여 있다. 하지만 처음과 마지막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인연과 기담이 현실로 나오게 원인을 알려준다.  

 

 재미나다. 문장은 간결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 길게 늘어진다. 한 호흡에 빨리 읽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문장이 작가가 만들어낸 상황과 묘하게 어울린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짧을 경우엔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루와타리가 과연 몇 대의 차를 산 것인지 한 번 세어보고 싶다. 중고차들이 잠시 등장하고 사라지는데 그때마다 그 차들이 묘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운송용인 경우도 있지만 그 자체로 기담을 만들기도 한다. 다른 이야기에는 어떤 차가 나올지 살짝 기대가 되기도 한다.  

 

 

 책 표지에서 말한 두 작가, 에드거 앨런 포와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포의 단편 소설과 비슷한 제목의 두 이야기는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거나 빨리 그 단편들을 읽고 싶게 만들고, 나쓰히코의 <백귀야행>을 연상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잠시 현실을 잊게 만든다. 매력적인 여덟 편의 기이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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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월드>를 리뷰해주세요.
인터월드 -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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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게이먼이란 이름 때문에 눈길이 간 소설이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닌데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솜씨가 대단하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만들어내고, 정교하면서 흥미로운 구성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쪽만 때어내어 보면 그렇게 재미나다는 느낌이 약한데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보면 대단히 즐겁고 흥미롭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연걸이 주연한 <원>이란 영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이연걸은 일인다역을 한다. 그는 악당으로 전 우주에 걸쳐 존재하는 자신의 분실들을 하나씩 죽이면서 오직 하나만 남게 되어 유일무이한 힘을 가지려고 하는 동시에 이를 막는 역할을 같이 연기한다. 이 영화 속 우주는 평행우주로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 나의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차원 속에 존재하고 있다. 영화는 이 각각의 나가 모두 동일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나는 모두 비슷하지만 다르다. 나이도 다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에 따라 외모도 다르다. 이것은 개인의 능력 차이로도 표현된다. 이런 설정이 하나의 주인공을 다양한 활약을 펼치게 만드는 것이다.  

 

 화자이자 주인공은 조이 워커다. 그는 엄청난 방향치다. 집에서도 길을 읽을 정도다. 그런데 숨겨진 재능이 있다.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는 대단한 워킹 능력을 지니고 있다. 워킹이란 한 차원이나 세계에서 다른 차원이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물론 지독한 방향치인 그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우연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그의 몸속에 존재하는 능력을 탐내는 무리에게 납치된다. 그를 구하기 위해 인터월드에서 그의 또 다른 분신인 제이가 나타나 구출된다. 그  과정에서 조이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상을 입은 제이는 죽게 된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던 조이는 그를 대신해 인터월드의 대원이 된다. 하지만 결코 이 임무들이 쉽지 않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모험이 펼쳐지고, 위험과 도전과 용기와 협력에 의해 어려움을 하나씩 뚫게 된다.  

 

 이야기는 복잡하고 다양한 물리학 이론을 배경으로 풀어지지만 이 이론들을 몰라도 상관없다. 작가가 만든 설정을 즐기면 그만이다. 마법과 과학에 대한 설명도 역시 그렇다. 조이가 성장하는 과정은 한 소년에서 전사로 발전하는 모습이자 이야기의 전개다. 화려한 장면들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각각의 장면 속에 담긴 이야기와 상황들은 재미있다. 조이와 휴의 우정이나 제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분신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조이의 모습은 뒤에 펼쳐질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끝으로 오면서 다음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그런데 후기를 보니 텔레비전 시리즈를 생각하고 쓴 소설이란다. 현재 시리즈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애니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 마법과 과학이 충돌하고, 무시무시한 악당이 등장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물론 끔직한 장면도 있다. 워킹 능력을 가진 조이의 분신들을 삶아서 차원을 나는 배를 움직인다는 설정이다. 이런 설정과 구성을 바탕으로 어린 전사들의 모험담을 펼친다면 각각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재미가 상당할 것 같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현대 과학이론을 배경으로 흥미롭고 재미난 설정을 만들고, 그 속에 독특한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즐거운 모험을 보여준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닐 게이먼을 좋아하고, sf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나는 내 아이들이 옳고 그런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특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랐지. 나는 너를 믿는다. 조이. 그리고 너는 옳은 일을 하려고 하잖아. 내가 너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니?”(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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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1>을 리뷰해주세요.
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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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의 고전이라고 뒤표지에 나와 있다.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소설이다. 일본에서 발간될 당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는 글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교사의 추천사를 보면 한 번 출간된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한 모양이다. 홍보가 부족했거나 책이 너무 두꺼웠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읽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총 5부로 되어 있는데 1권이 2부까지만 다루고 있고, 이 같은 분량의 책이 두 권 더 남은 것이다. 그러니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렇지만 1권을 읽은 사람이라면 2권이 읽고 싶어질 것이다. 한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1권의 제목은 세 어머니다. 주인공 지로에게 세 명의 어머니가 있다.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 오타미, 자신의 젖을 먹이며 키운 유모 오하마, 생모가 죽은 새엄마로 들어온 오요시다. 생모는 아이를 낳자마자 유모 오하마에게 아이를 맡긴다. 아이의 첫 인상을 보고 유모는 첫 째 교이치를 떼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상황이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게 키운 아이가 지로인데 젖을 먹이고 키우다 보니 정이 생긴다. 이후 말썽장이 지로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쏟아 붓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지로가 생모에게 받지 못한 애정을 경험하게 하고, 자신의 성장을 측정하는 가늠자가 역할을 한다.  

 

 생모 오타미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자 사무라이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 그녀의 교육관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하지만 어머니란 존재에서 느낄 수 있는 자애로움과 따스함이 부족하다. 자신의 젖으로 키우지 않고, 자란 후 데리고 가면서 지로의 행동 하나 하나가 자신의 이성에 부합하지 않아 지로와 충돌을 일으킨다. 그녀는 어른의 잣대에서 아이를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하길 바란 것이다. 이런 감정이 서서히 깨어지고 무너진 것은 그녀가 병이 들면서 이성이 조금씩 감정과 결합하면서부터다. 이후 그녀에 대한 지로의 이미지는 처음의 보기 싫고 두려웠던 어머니에서 관세음보살처럼 인자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새 엄마 오요시는 자신이 지닌 우유부단함과 용기 부족으로 자신도 모르게 지로와 벽을 쌓아간다. 지로가 오요시의 아버지인 오마키 노인와의 만남을 통해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지만 혼다 가에서 할머니의 기세에 눌리면서 감정을 숨기고 현재에 그냥 눌러 앉게 된다. 아이의 껍질을 벗고, 소년으로 성장하던 지로에게 안락한 가정과 편안함을 주기보다 고민거리를 더 얹어준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만나게 되는 오마키 노인과 데쓰타로는 혼다 가와 외가에서 받은 부자연스러움을 털어내고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세 어머니란 부제가 있지만 사실 이 세 여인보다 지로의 일상과 그 일상을 통한 조그마한 변화들을 쌓아올리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지로의 감정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더디고, 어떤 점에서는 섬세하고,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아이의 감정이 표현되는 곳에선 나 자신도 잠시 아이가 되고, 그런 아이를 다시 어른의 시선에서 보게 된다. 이런 시선의 교차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동시에 보는 효과를 가져온다. 자세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주는 장점이다. 물론 가끔은 아이나 소년의 행동이 어른의 사고에서 비롯한 듯한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지로의 행동과 생각들은 그만의 것이 아닌 그와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와 가족과 선생님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직 어린 지로의 시절을 다루다보니 실수도 많고, 감정의 기복도 심하다. 또 개구쟁이처럼 친구나 친척들과 돌아다니며 활기차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나 친구 누나에 대한 앳된 감정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가끔 기특한 행동을 할 때면 이제 의젓해진 그를 만나지만 금방 철부지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실패와 실수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그를 보면 이 소설이 소걸음으로 한 소년의 성장을 그려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직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어떤 식으로 나올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한 소년의 성장을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천천히 들여다 보게 되고, 동시에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감동을 주기 보다 사실적인 성장소설을 원하거나 아주 긴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어른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규정한다고 믿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아이들이다.”(6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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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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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조금은 무겁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의 유럽문학에 대한 선입견이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가져왔다. 체코 작가하면 먼저 밀란 쿤데라를 떠올리고, 그를 좋아하지만 신나고 즐겁게 읽은 다른 작가를 만난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명한 작가인 경우는 더욱 이런 경향이 많다. 요즘 같이 집중력이 약해진 경우라면 더욱 읽기가 지지부진한데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작은 웨이터 디테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소설은 디테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방식이다. 첫 문장이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 좀 잘 들어보세요!”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하나의 경험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괜찮았나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할께요.”라고 말하면서 마무리한다. 이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는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게 된다. 이 과정은 그가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를 둘러싸고 변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처음 그가 호텔에서 일하던 순간부터 백만장자가 된 후 공산화된 체코에서 모든 재산을 잃고 산 속으로 칩거하는 순간까지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소박한 꿈을 가진 웨이터에서 호텔 주인으로, 욕망에 충실했던 삶에서 욕망을 자제하는 삶으로, 삶을 하나씩 배우는 단계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유창하게 삶을 말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상당히 딱딱해 보이는데 사실은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그 각각의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독특하고 기발하면서 재미난 행동들은 이야기를 풍성하고 재미나게 만들어준다.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가 있다. 처음 그가 견습 웨이터로 입문한 곳에선 발덴 씨를 통해 성공에 대한 꿈을 꾸고, 첫 경험의 강렬함과 매춘부에 대한 숭배와 존중이 가져온 달콤한 열매를 보여준다. 그리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정체된 듯하면서 희극적인 풍경은 인간의 위선과 숨겨진 욕망을 잘 드러내어준다. 그곳을 떠나 호텔 티호타에선 정식 웨이터로 승진하고, 부유한 사람들의 무절제한 욕망의 표출과 거짓이 만들어낸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들의 부를 더욱 굳건히 하고, 그들의 사회에 다른 사람이 갑자기 뛰어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고 무시하려는 마음이 담겨있다.    

 

 의심으로 호텔 티호타에서 쫓겨난 그가 간 곳은 호텔 파리다. 이 상황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 곳에서 디테는 대단한 지배인을 만난다. 그와 함께 한 순간들은 웨이터로 그가 더욱 성장하게 만든다. 그가 보여준 직관력과 경험은 소설의 제목인 ‘영국왕을 모셨지’란 말로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 된다. 들어오는 손님이 어떤 음식을 찾고, 원하는 서비스가 뭔지를 미리 알고 움직인다. 그러다가 그도 황제를 모실 기회가 온다. 하지만 이 기회는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유발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도 이젠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대단한 지배인처럼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셨지’란 말로 자신의 능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2차 대전을 전후 체코의 상황과 그의 아내 리자의 만남과 공산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던 집단 최면과 그 속에 도취되었던 삶의 파편들을 만나게 된다. 전쟁 초기 승리에 도취되어 보랏빛 환상에 휩싸였던 그와 독일인들의 모습과 뒤로 가면서 패배로 인한 암울하고 비극적인 풍경이 그의 눈을 통해 드러난다. 이에 따라 디테 또한 살며시 시대의 분위기를 타게 된다. 그를 부자로 만들어준 것이 전쟁의 광기 속에서 탐욕이 빚어낸 결과물임을 생각하면 순수함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직시하게 된다.    

 

 디테가 백만장자가 되어 그토록 원했던 호텔을 소유한 순간 그가 버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괴롭힌다. 이것을 지워내기 위해 선택한 호텔이 유명인의 사랑을 받고, 이름이 알려지지만 그는 결코 프라하 호텔 주인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아니 그들은 갑자기 부자가 되고, 유명해진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무시한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그를 그리워한 산마을 사람들이 그를 대신해 배달을 해주던 셰퍼드를 총으로 죽인 것과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 속에 자신이 경험한 사실들을 말하고 진짜 끝을 낸다. 그리고 이 소설이 흡족했냐고 묻는다. 물론 흡족했다.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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