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의 지혜>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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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의 지혜 - 혼돈의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기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아은 옮김 / 멜론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나에게 당나귀는 어떤 동물일까? 그냥 말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 정도 일뿐이다. 당나귀를 제대로 본 적도 없고, 특별히 관심도 가진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당나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산산조각 낸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 놀라운 지혜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당나귀의 매력이 쉼 새 없이 품어져 나온다. 한 마리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살짝 살짝 생긴다.
저자는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 시골의 느림과 여유를 누리고자 한다. 이곳에서 한 마리의 당나귀를 만난다. 그리부예다. 그는 따뜻하고 현명하다. 성난 말을 만난 장면에서 저자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차분하게 그를 지켜준 이가 그리부예다. 물론 그가 사람처럼 말을 하거나 행동하지는 않는다. 동물의 특성을 버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저자와 함께 한 여행에서 동반자이자 친구이자 거울과 같은 활약을 보여준다. 저자의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 만나던 친구보다 그리부예가 긴 여행에 더 적합할 것 같다.
저자가 처음부터 당나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먼저 관심을 보여준 것은 당나귀들이다. 몇 주 동안 매일 나타난 그에게 관심과 시선을 보냈다. 이런 시선과 헤아릴 길 없이 깊은 검은 눈 너머에서 둘 사이에 형제애가 싹 튼다. 그리고 당나귀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간다. 이 느림은 자기 자신에 귀 기울이고, 다른 사람과 세상에 귀 기울이고,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싶을 때 딱 맞다. 현대의 속도를 생각하면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많다.
당나귀의 특징과 좋은 점을 나열하면서 다른 작가들이나 글들에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수 천 년 전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 당나귀를 좋아했거나 비유했던 작가들을 인용하면서 당나귀 예찬을 한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을 때 그렇구나! 하고 단순히 생각하던 것이 뒤로 가면서 대단하다, 멋지다 등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부예와 길을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저자를 보면서 예전 같으면 왜 혼자서 중얼거리지 라고 생각했을 것을 이젠 친밀하고 따뜻하면서 우정 넘치는 대화를 나누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이 책이 당나귀 예찬으로 가득했다면 조금 지루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문장과 당나귀와 관련된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과 추억을 뒤섞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엮어낸다. 물론 같은 이야기가 중복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등이 자주 나와 조금 정리가 덜 된 느낌도 있다. 그렇지만 이 중복과 반복 등장이 당나귀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시에 예전에 읽었거나 아직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관심을 북돋아준다.
당나귀와 관련된 이야기 중 멋진 것도 많지만 이집트에서 만난 당나귀들의 사연은 가슴 아프다.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당나귀와 잘 알지 못하는 주인을 만나 고생하고, 상처입고, 다른 지역 당나귀보다 단명하는 그들을 보면 인간의 삶과 유사한 면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된다. 도시의 혼잡함과 소음을 싫어하면서도 그리워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저자가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시골의 고요함과 소리와 평온함은 대단히 부럽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당나귀 그리부예와의 여행이다. 결코 편안한 여행이 아니었을 텐데 그들의 감정 교류와 경험은 그 무엇보다 값져 보인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당나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사라지고, 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게 된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동물을 좋아하거나 당나귀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리고 느림이 주는 삶의 평온함과 여유를 누리고 싶은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당나귀와 동행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조바심과 좌절감, 싸우고 싶은 충동, 앞차를 추월하고 싶은 마음, 경적을 울리고 싶은 마음, 돌아버릴 것 같은 마음, 앞길을 가로막는 느림보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시은 마음을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