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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석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외도작으로 평가되는 소설이다. 법정스릴러의 대가인 그가 한 조그마한 시골의 풋볼 경기장으로 우릴 인도한다. 열기 가득한 스포츠 소설이 아닌 그 현장에 있었던 선수와 코치의 과거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긴장감을 불러오는 구성은 아니지만 편안하고 감동적이다. 스토리를 만들고 풀어내는 그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1987년 메시나의 풋볼 영웅 닐리 크렌쇼가 1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쿼터백으로 학교에서 영구 결번되었고, 그가 기록한 수많은 승리와 감동적인 마지막 경기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영웅이 아닌 부서진 다리로 절뚝거린다. 대학에서 상대방의 악의적인 태클에 무릎이 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생의 추락들.
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메시나의 전설이자 영웅인 레이크 코치가 위독하기 때문이다. 그는 34년간 코치를 맡아 엄청난 기록을 세웠고, 인구 8천명의 마을에 만 명이 들어가는 경기장을 늘 가득 채웠다. 한 비극적인 사건 후 코치직에서 쫓겨났고, 이제 암으로 오늘내일하는 상태다. 이 전설적이고 엄청난 코치의 죽음을 앞두고 며칠을 다루는데 그에 대한 기억과 추억으로 가득하다. 그가 보여준 엄청난 성적의 이면에 있는 선수들의 지옥훈련이나 강인한 정신무장은 책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더욱 강해진다.
위대한 코치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감옥에서 살아가는 순간에도 스파르탄스 선수들의 머릿속엔 레이크 코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그들을 독려하고 몰아붙이고 쓰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자신들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그가 실망하는 모습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의 장례식에 참석한 과거의 영웅들이 회상하면서 현재의 삶과 동시에 보여준다.
‘열여덟 살 때 스타가 되면 여생을 내리막길만 걸어야 한다’는 닐리의 말은 수많은 할리우드나 한국의 아역 스타에서 자주 본 것이다. 아니 영화 등이 아닌 스포츠 세계에서 그 재능을 만개하지 못하고 서서히 사라진 많은 선수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느낌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조그마한 실패에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인물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대기만성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최고의 대우에 주변엔 미녀가 언제나 대기하고 주변에서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돈들은 현실 감각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도 못하게 한다. 만약 그가 좀더 긴 시간을 대선수로 살았다면 약간은 변했을지 모르지만 어린 그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큰일이다.
존 그리샴을 좋아하고 한때는 신간이 나오면 먼저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좋아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느 정도 냉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고, 그의 단점도 발견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의 책을 손에 쥐면 어쩔 수 없이 빠져 든다는 것이다. 최고의 영웅과 위대한 코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도 그런 재미를 준다. 긴장감을 불러오는 사건도 없고, 악당도 없고, 후일담과 회상으로 가득하지만 가슴 속에 파고드는 감동과 재미는 대단하다.
왜 제목이 관람석이냐고? 레이크 코치의 죽음을 앞두고 모인 예전의 선수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그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공간이자 메시나 주민들이 가장 열광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관중의 한 명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운동장에 나가 싸우는 선수가 아닌 선수들에 열광하고, 그들을 기다리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머릿속에서 넓은 운동장 한쪽 관중석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 그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