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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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브래드 피트 주연의 동명 영화 덕분인지 이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나왔다. 저작권 기간이 사라진 것과 영화 때문에 이렇게 많이 나온 것 같다. 이 소설집 이전에 이미 그래픽 노블로 나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읽었기에 표제작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픽노블에 나온 해설을 읽으면서 이 작품집에 관심이 많이 갔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피츠제럴드의 이미지가 많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에서 다른 좋은 단편도 쓴 작가로 바뀐 것이다.
열한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각각의 분량이 제각각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벤자민>과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의 경우는 판타지를 바탕으로 하였고, <도자기와 분홍>과 <Mr. 이키>는 단막극 형식이다. <젤리빈>을 비롯한 몇 편은 삶의 한 장면이나 장면들을 멋지게 포착하여 씁쓸함과 아픔과 비극을 보여준다.
각 단편들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몇 편만 간략하게 말한다. 표제작이야 이미 다른 책에서 쓴 서평이 있고, 마음에 든 다른 소설들은 <낙타 엉덩이>와 <메이데이>와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다. 물론 <젤리빈>의 마지막 장면은 강한 인상과 씁쓸함을 주고,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그 황당한 이야기와 허망한 결론으로 재미를 주긴 했다. 그렇지만 이 세편이 나의 취향엔 가장 맞다.
<낙타 엉덩이>는 작가의 말처럼 어느 날 600달러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백금 시계를 사겠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하루 만에 쓴 글답게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작가는 이 단편선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내 경우엔 이 하루의 에피소드가 한 편의 코미디처럼 다가왔고, 마지막 윙크 교환이 좋은 느낌을 남겼다.
<메이데이>는 제목대로 메이데이 하루 동안 벌어진 이야기들이다. 한 명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인물들을 내세워 다양한 심리와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화가 고든에서 술을 찾아 돌아다니는 군인이나 고든을 한 순간 연모했던 이디스나 그녀를 쫓아다니는 남자 등을 등장시켜 조금은 산만한 듯하지만 하루의 광적인 이야기를 멋지게 재현했다. 이 소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소설도 그렇게 만족한 것 같지는 않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는 표제작을 제외하면 가장 마음에 든다. 주인공 멀린이 서점에서 일하는 것도 있지만 그가 삶 속에서 몇 번 만난 그녀의 존재가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에게 프로포즈하는 곳에서 춤을 추고, 그녀 때문에 교통이 막히는 등 여러 사건이 있는데 이때마다 그와 그녀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노년에 그녀를 다시 만난 후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나의 착각은 무참하게 깨어지고, 멀린의 삶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라고 외칠 때는 바보 같은 그의 삶이 강하게 머리와 가슴에 울렸다.
전체적으로 재미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재즈시대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춤과 파티, 술과 욕망이 교차하면서 현실의 높은 벽을 보여준다. 감정의 홍수 속에서 현실의 냉정함이 드러나고, 놀라운 허풍과 과장된 표현은 나 자신도 한때 상상했던 환상이다. 즐겁게 읽다가도 갑작스런 마지막 장면에 놀라고 한 대 맞는 듯하고, 웃음이 각각 다르게 다가온 마지막 장면들에선 삶의 한 단면을 느끼게 만든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의 이미지가 깨어지고 있는데 아직 그 재미를 몰랐던 <위대한 개츠비>나 다른 작품들도 한 번 시선을 다시 돌려야 할 것 같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나처럼 피츠제럴드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눈지오 드필리피스,크리스티나 위어 각색/케빈 코넬 그림) 그래픽노블(노블마인)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거나 그를 좀더 알고 싶어 하고, 단편소설을 즐기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는 너무 많은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신의 섭리를 거역한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천국뿐이었다. 그곳에 가면 그 자신처럼, 이승의 삶을 제대로 쓰지 않고 낭비해버린 자들만 만나게 되리라.”(3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