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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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단편집 <여성혐오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1975년)과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1979년)을 합쳐 내놓은 책이다. <여성혐오>는 오히려 단편보다 콩트에 가깝다. 몇 쪽이 되지 않는 분량으로 이야기를 끝내는데 그 짧은 글 속에 느껴지는 섬뜩함과 긴장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 분위기에 익숙해서인지 다음 단편집인 <바람 속에서>를 읽을 때는 처음엔 약간 늘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단편들이 내품는 공포와 살의와 살인은 대단하다.  

 

 모두 29편이다. <여성혐오>가 19편이고, <바람 속에서>가 12편이다. 분량은 <바람 속에서>가 더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성혐오>에 실린 이야기들이 단편소설보다 콩트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처음 전작에 실린 단편을 읽을 때 일본작가 호시 신이치의 초단편 소설이 연상되었다. 하이스미스가 그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짧으면서 강한 인상을 주는 점에서 유사하다. 물론 그녀가 품어내는 냉기가 더 강한 것은 사실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단편인 <손>은 관용구를 비틀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언어를 사실과 연결시켜 사건을 만들어내고, 한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 간결한 내용이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현실을 짧게 그려내면서 냉혹하게 마무리한다. 이 소설들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면 소위 말하는 남자의 등골을 휘게 하는 여자들이다. 그 한계가 어느 곳인가에 따라 비등점이 다르지만 그 결말은 모두 비슷하다. 그녀들로부터 벗어난 남자들의 편안함이 왠지 모르게 더 섬뜩하다.  

 

 <바람 속에서>는 읽다보니 스티븐 킹의 소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이 있다. <연못>과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가 그것이다. 전작이 초자연적인 공포를 조금씩 풍기면서 파국으로 이끈다면 후작은 옥수수 밭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시체의 모습이 그를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 순으로 따지면 하이스미스가 먼저다. 하지만 나에게 먼저 다가온 작가가 킹이다 보니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어쩌면 킹이 그녀에게 더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더 올라가면 앨런 포로 귀결될 수 있지만 아직 포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기에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그려내는 일상의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다. 세밀하고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지만 간결함 속에 담긴 현실은 공포와 두려움과 살의와 탐욕과 위선과 집착 등이 잘 살아있다. 평생 아이디어가 고갈된 적이 없다고 고백한 그녀의 글답게 현실에서 뽑아낸 이야기들은 냉혹하고 도발적이고 풍자적이다. 일상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급격한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대단한 필력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수많은 영화계의 거장들이 그녀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 이야기마다 평을 달아 분석할 수 있지만 그녀가 만들어낸 현실에 잠시 머리를 담구고, 일상 속의 일상 밖을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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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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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초콜릿 사건>, <시행착오>의 작가 앤소니 버클리와 같은 작가다. 두 작품 모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특히, <시행착오>는 지금 보아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추리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해설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어딘가에서 본 기억도 있지만 나의 기억이라는 것을 믿기에는 너무나도 부정확하다.  

 

 <살의>는 도서추리의 3대 걸작이니 하는 광고도 있지만 사실 이런 것의 출처는 대부분 불분명하고 과장된 부분이 많다. 추리소설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작가의 작품은 완성도와 많은 의미를 가지겠지만 재미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세련된 맛이 조금 떨어진다. 요즘 워낙 많은 작가들이 범인의 심리를 극한으로 몰고 가고, 그를 쫓는 경찰들을 멋지게 묘사하는 것에 길들여져서 그렇다는 것이지 시대나 초창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범인이 누군지 알고 보는 추리소설을 보았을 때를 지금도 기억한다. 부정확한 나의 기억이지만 아마 김성종의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범인의 행동과 심리를 한쪽에서 묘사하고, 다른 쪽에선 그를 쫓는 형사들을 묘사한 소설이었다. <제5열>이나 <제5의 사나이>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나중에 <자칼의 날>을 읽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김성종의 소설과는 다른 범인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떻게 해서 자신의 아내를 죽이게 되었는지와 다른 살인을 준비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과 심리를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저놈은 반드시 죽이고 싶다는 열의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상상만으로 대리만족을 하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경우 살의가 생기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하고, 실행을 하지만 살인의 유일한 목적이 없어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린 그가 자신의 열등감을 묘하게 비틀어 다른 쪽으로 상황을 몰고 간다. 현재 자신의 삶을 위험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것이다.  

 

 살해하려는 마음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살인으로 얻고자한 것을 가지지 못하고, 살인으로 얻은 불안을 복수로 풀고자 하는 연속적인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의 기복과 불안이 이 소설의 핵심인데 약간 거친 맛은 있지만 재미있다. 아쉬운 점도 있는데 법정 심리 장면을 좀더 보강하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결말 부분도 역시.  

 

 동서DMB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초판본의 번역 문장이 그대로 나와 문장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일본 소설의 경우는 덜하지만 서양 추리소설은 왠지 중역의 느낌을 항상 받는다. 어린 시절 중역 문장을 많이 읽었지만 최근 한국소설 덕분에 어색한 문장이 주는 느낌을 지워내기가 쉽지 않다. 요즘 번역된 소설의 경우 동서보다 못한 것도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좀더 신경을 써 문장을 가다듬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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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기다림 - 바깥의 소설 23
샤를르 쥘리에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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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프랑스 소설이 나와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들 특유의 문장구조나 묘사가 약간의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몇몇 소설가는 쉽게 빠져들기도 한다. 이번에 본 샤를르 쥘리에 또한 처음엔 정확한 문장과 건조한 문체로 호기심을 끌었지만 금방 그 매력에서 빠져 나왔다.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쉽게 빠르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문장은 간결하고 건조하다. 작가와의 대담을 읽다보면 자신의 내면으로 자꾸 들어간다고 하는데 한 개인의 내면 이야기가 약간의 거부감을 주는 모양이다. 세 편 모두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지만 로맨스가 일어나거나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손에 잡힐 듯한 묘사나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없다. 세 편 모두 주저하는 남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모습에서 가끔 과거의 나를 본다. 좋아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주변을 겉도는 남자들. 그들의 감정을 과격하거나 긴장을 주거나 과장되게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나오는 파편들을 기록할 뿐이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다. ‘가을 기다림’은 글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쓰지 못하는 작가가 ‘소용돌이’에서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편지를 쓰고자 하지만 쓰지 못하는 작가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자신을 잘 나타내는 진솔한 문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면의 기쁨과 괴로움과 그리움을 표현할 말들을 그들은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인지 모르겠다.  

 

 다시 책을 펴고 아무 곳이나 읽어본다. 대화는 적고 자신이 관찰한 기록은 많은 소설이다. 하지만 그 문장 하나하나가 정확하여 다시 읽어도 새로운 감이 있다. 다시 처음부터 읽으라고 한다면 읽지 못하겠지만 가끔 펼쳐서 여기저기를 읽는다면 즐거움을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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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내부의 적 간신 - 중국 간신 19인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역사의 경고
김영수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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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간신 19인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역사의 경고란 부제처럼 한국의 간신이 아닌 중국 간신 이야기다. 아직 한국에선 이런 작업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 말을 들으면서 많은 부분이 부끄럽고 아쉬웠다. 해방 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친일파에 대한 연구와 조사는 방해를 받고, 그 후손들이 조상들의 땅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거는 현실에서 이런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놓고 후세에 이를 경고하는 작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쓴 이 책은 간신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권력을 잡고, 유지하고, 최후를 맞이하는지 잘 알려준다. 책은 모두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신의 탄생과 진화를 거쳐 태생을 분석하고 제도 속에 재생산되는 간신을 보여준다. 전반부의 간신들이 낯설다면 후반부는 다른 수많은 책들에서 본 인물들이라 익숙하다. 하지만 낯익은 간신들도 그냥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어떤 부패와 비리를 저질렀는지 좀더 세밀하게 알 수 있다. 

 

책을 펴고 첫 번째 맞이한 역아의 이야기는 굉장히 충격적이다. 왕의 한 마디에 자신의 어린 아들을 직접 요리해서 바친 역아의 사례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간신들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인륜이나 천륜을 가볍게 저버린다. 권력을 위해 자식을 왕이나 황제나 권력자에게 바치는 것을 이미 많이 보았지만 이 고사는 과히 그 끝을 보여준다.  

 

 이후 다른 간신들도 수없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엄선된 18인의 간신들을 시대 순서로 보여준다. 그 한 명 한 명의 사례를 보게 되면 공통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아부와 아첨이다. 흔히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짜증이 나고, 아부도 처음엔 거부감이 생기지만 자꾸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고 빠진다고 하는데 이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것이다.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배경에는 절대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한 사람의 왕이나 황제가 권력을 지고 있다 보니 신분 상승이나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이들은 그 권력자에게 아부를 하고, 그들의 심중을 헤아려 맞추려고 한다. 물론 그 권력자가 현명하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른 배척하고, 사회 구조 속에서 이를 막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이것은 실제적으로 긴 역사 속에서 몇 명의 군주만 가능했을 뿐이다.  

 

 또 하나 중국 역사에서 유별나게 두드러진 환관들의 집권과 부패는 바로 앞에서 말한 절대 권력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 성장하고 자란 내시들을 믿고 중용하다보니 부패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권력이 집중되다보니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많이 들고, 이러다보니 자신의 입맛을 맞추거나 후세가 없는 내시에게 신뢰를 보내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명대에 더 빈번한데 저자는 명대를 가장 암흑기로 기록한 것도 이것이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패한 정권과 무능한 권력자는 간신이 싹트고 자라는 데 더없이 좋은 거름이 된다.’(198쪽)는 대목과 ‘희망이 없는 정치는 죽은 정치이자 나쁜 정치다. 나쁜 정치는 나라를 망치기 때문에 위험하고 무섭다. 절망의 정치를 만드는 자들이 바로 간신배다.’(260쪽)라는 장면에서 현재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고, 절망감으로 한숨을 내쉰다. 1%를 위한 정치를 펼치고, 국민을 위한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현실에서 ‘간신은 역사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인 동시에 정치적 현상이다.’(318쪽)란 말이 가슴을 콕콕 꼬집는다.    

 

 과거 중국 역사에서 절대군주를 통해 그 간신들이 힘을 발휘했다면 현재는 그 간신들이 국민의 이름을 내세우고, 일부 언론의 지원을 받아 힘을 떨치고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역사 속에서 그 누구도 역사의 심판에서 자유로운 자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교훈이 되어야 할 텐데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현실을 보면 인간이 지닌 욕망의 끝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반복적인 현상이 되풀이되게 만든 역사에 덧없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의 권력이 영원하지 않았음을 잊지 말고, 이런 간신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게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국민들을 지속적으로 이런 사례를 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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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리뷰해주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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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 주연의 동명 영화 덕분인지 이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나왔다. 저작권 기간이 사라진 것과 영화 때문에 이렇게 많이 나온 것 같다. 이 소설집 이전에 이미 그래픽 노블로 나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읽었기에 표제작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픽노블에 나온 해설을 읽으면서 이 작품집에 관심이 많이 갔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피츠제럴드의 이미지가 많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에서 다른 좋은 단편도 쓴 작가로 바뀐 것이다.    

 

 열한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각각의 분량이 제각각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벤자민>과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의 경우는 판타지를 바탕으로 하였고, <도자기와 분홍>과 <Mr. 이키>는 단막극 형식이다. <젤리빈>을 비롯한 몇 편은 삶의 한 장면이나 장면들을 멋지게 포착하여 씁쓸함과 아픔과 비극을 보여준다.   

 

 각 단편들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몇 편만 간략하게 말한다. 표제작이야 이미 다른 책에서 쓴 서평이 있고, 마음에 든 다른 소설들은 <낙타 엉덩이>와 <메이데이>와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다. 물론 <젤리빈>의 마지막 장면은 강한 인상과 씁쓸함을 주고,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그 황당한 이야기와 허망한 결론으로 재미를 주긴 했다. 그렇지만 이 세편이 나의 취향엔 가장 맞다.  

 

 <낙타 엉덩이>는 작가의 말처럼 어느 날 600달러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백금 시계를 사겠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하루 만에 쓴 글답게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작가는 이 단편선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내 경우엔 이 하루의 에피소드가 한 편의 코미디처럼 다가왔고, 마지막 윙크 교환이 좋은 느낌을 남겼다.  

 

 <메이데이>는 제목대로 메이데이 하루 동안 벌어진 이야기들이다. 한 명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인물들을 내세워 다양한 심리와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화가 고든에서 술을 찾아 돌아다니는 군인이나 고든을 한 순간 연모했던 이디스나 그녀를 쫓아다니는 남자 등을 등장시켜 조금은 산만한 듯하지만 하루의 광적인 이야기를 멋지게 재현했다. 이 소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소설도 그렇게 만족한 것 같지는 않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는 표제작을 제외하면 가장 마음에 든다. 주인공 멀린이 서점에서 일하는 것도 있지만 그가 삶 속에서 몇 번 만난 그녀의 존재가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에게 프로포즈하는 곳에서 춤을 추고, 그녀 때문에 교통이 막히는 등 여러 사건이 있는데 이때마다 그와 그녀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노년에 그녀를 다시 만난 후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나의 착각은 무참하게 깨어지고, 멀린의 삶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라고 외칠 때는 바보 같은 그의 삶이 강하게 머리와 가슴에 울렸다.  

 

 전체적으로 재미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재즈시대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춤과 파티, 술과 욕망이 교차하면서 현실의 높은 벽을 보여준다. 감정의 홍수 속에서 현실의 냉정함이 드러나고, 놀라운 허풍과 과장된 표현은 나 자신도 한때 상상했던 환상이다. 즐겁게 읽다가도 갑작스런 마지막 장면에 놀라고 한 대 맞는 듯하고, 웃음이 각각 다르게 다가온 마지막 장면들에선 삶의 한 단면을 느끼게 만든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의 이미지가 깨어지고 있는데 아직 그 재미를 몰랐던 <위대한 개츠비>나 다른 작품들도 한 번 시선을 다시 돌려야 할 것 같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나처럼 피츠제럴드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눈지오 드필리피스,크리스티나 위어 각색/케빈 코넬 그림) 그래픽노블(노블마인)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거나 그를 좀더 알고 싶어 하고, 단편소설을 즐기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는 너무 많은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신의 섭리를 거역한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천국뿐이었다. 그곳에 가면 그 자신처럼, 이승의 삶을 제대로 쓰지 않고 낭비해버린 자들만 만나게 되리라.”(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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