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탐정록 경성탐정록 1
한동진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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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설홍주에 대한 단편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한 아마추어의 습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평이 있었지만 모니터로 긴 글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요즘 습관 때문에 그냥 그렇게 기억 속에서 지웠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나 자신이 그냥 그렇게 생각했던 단편들이 출간된 것이다. 이 순간 놀랍고 반가웠으며 동시에 부끄러웠다. 섣부른 판단과 편견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놓칠 뻔한 것이다.  

 

 설홍주는 셜록 홈즈의 우리식 패러디고, 화자 왕도손은 당연히 와트슨의 변주다. 그런 때문인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홈즈의 장면들이 겹쳐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첫 작품인 <운수 좋은 날>은 도입부에서부터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모르고 읽었다면 아마 표절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다. 이후에도 이런 장면들은 자주 나온다. 홈즈의 소설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부쩍 생기는 것도 이 소설이 주는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 다섯 편이다. 창작 연도순을 잘 모르겠지만 <운수 좋은 날>은 아직 미완성의 느낌이 강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홈즈의 분위기가 너무 강하게 드리워져 설홍주만의 매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영향력은 뒤로 가면서 많이 가신다. 특히 시대 배경이 다름으로 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 경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단편은 기묘한 실종사건을 시작으로 납치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이 조금은 매끄럽지 못하게 진행되지만 읽는 재미는 상당하다. 홈즈의 한국판이 그 모습을 드러내어 사건을 해결하면서 보여주는 장면 장면이 반갑고 재미있다.   

 

 <황금사각형>은 수수께끼 풀이다. 작가가 많은 공을 들인 것이 보이는데 왠지 모르게 탁월하다는 느낌보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에 머물고 만다.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긴장감도 떨어진다. 만약 꼼꼼하게 메모를 하고, 수수께끼를 본격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면 다른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광화사>는 트릭이 중첩되어 있다. 초반 트릭은 쉽게 간파를 했는데 다른 트릭은 미술에 대한 무지로 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매끄럽게 이야기를 끌고 가고, 대결구도를 만드는 능력은 장편 작가로의 가능성이 엿보여 반가웠다. 그의 탁월하고 뛰어난 추리 능력은 그 시대 상황과 맞물려 멋지게 드러난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이 단편집에서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천변풍경>은 쉽게 범인을 알 수 있었다. 트릭은 조금 신선한 맛이 있지만 범인을 너무 쉽게 정해진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특별히 추리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리고 김두한의 등장은 반가우면서도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아쉽다. 작품 속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냉정하다.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그 시대의 대표인물을 다루지 않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마지막 <소나기>는 소소한 소품이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미스터리를 다루는데 약간 느슨하면서도 세부적이고 풍부한 이야기로 즐겁게 읽었다. 설홍주가 트릭을 말하기 직전 해답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단순한 착상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이 더 재미있다. 마지막 단무지 이야기는 현대의 경험을 과거를 이식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조금 더 다듬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한 편으론 덜 다듬어져서 좋다. 홈즈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가 반갑고 즐겁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1930년대 경성을 제대로 구현한 작가의 노력과 묘사에 놀란다.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는 나로 하여금 그 시대로 끌고 들어간 듯하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풍부한 자료와 생기 넘치는 인물들을 등장시켰지만 왕도손과 레이시치 경부의 대화가 너무 매끄러운 것이다. 왕도손이 일본어를 잘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레이시치 경부가 우리말을 해야 하는데 이 시대에 과연 그랬을까 의문이다. 이런 저런 것보다 더 반가운 것은 새롭고 멋진 한국 탐정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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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해즈빈
아사히나 아스카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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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처음 보곤 커피 빈을 연상했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빈이란 이름에서 장소를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영어의 has been 현재완료형을 뜻한다. has-been으로 표기하면 한창 때가 지난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사람을 일컫는다. 갑자기 왠 영어 단어냐고? 바로 이 소설 속 주인공인 리리코의 현재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많은 분량의 소설이 아니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결코 밝은 소설도 아니다. 리리코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도쿄 대학을 나와서 같은 대학 출신의 변호사 남편과 좋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밖에서 보기엔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녀는 의욕도 활기도 없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실업급여 때문에 고용안정센터에 나가고, 구직활동을 정열적으로 하지 않지만 하나씩 자료를 모은다. 이런 그녀의 일상을 보여주는 앞부분은 읽다 보면 화가 난다.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날카롭고, 투정을 부리며, 예민한 것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뒤로 가면서 연민으로 변하게 된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구마자와의 만남은 그 변화의 시발점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학원에서 늘 톱을 놓치지 않던 아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이사를 가면서 그 소식이 끊겼는데 취업세미나에서 우연히 만난다. 아이 때 늘 일등을 하여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가 10살은 더 늙은 모습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만남으로 그녀의 성장과정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사립학교 열풍이 강하지 않던 시절, 사립학교 입학 학원에서 최하위반에서 최상위반으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과 열정이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는 부모의 자랑이 된다. 거기에 대학도 도쿄대학을 나왔고,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일했으니 얼핏 보기에 멋진 조건을 갖추었다. 또 남편은 변호사고, 시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이며, 시어머니도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어가는 종이 공예가다. 이런 외양은 오히려 삶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 짐처럼 다가온다.   

 

 소설의 대부분은 그녀의 짜증과 열등감과 날카롭고 예민한 심리와 행동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진실한 그녀의 삶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바뀐다. 결혼하기 전 남편에게 보여주기가 그렇게 부끄러웠던 집이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간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학원에서 늘 우수한 성적을 얻었고, 시험이라면 어려움 없이 합격한 그녀의 힘겨웠던 과거도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학창시절이나 입사시험에서 탁월함을 보여준 그녀가 어느 순간 적응장애를 겪으면서 총아에서 짐으로 전락한다. 세상사가 시험처럼 직선으로 흘러간다면 그녀는 분명 더 높고, 더 큰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냉혹하고 살벌하면서 살아 움직이며 순발력과 유화능력이 필요한 세계에 적응을 실패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그녀의 이때까지 성공이 마지막 순간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설에서 가장 가슴으로 파고드는 장면은 책 뒷장에 나오는 대사다. 늘 바르고 자신감 차 있던 그녀가 밥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지금까지 그녀를 지탱하고 있던, 강요하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여기서부터 그녀의 세상을 보는 시선이 변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을 깨트린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알 수 없다. 그 순간을 영원하게 끌고 가는 아주 힘든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웃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녀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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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시절]의 서평을 써주세요.
방황의 시절 문지 푸른 문학
다치아 마라이니 지음, 천지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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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소설이다. 그 시절 이탈리아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잘 모른다. 뭐 지금 우리 주변의 사랑도 잘 모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엔리카의 생활을 따라가다 보면 놀라운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찾아가는 체사레나 그녀의 동기생인 카를로와의 섹스는 아무 목적 없는 것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건조하고 메마른 문장과 행동 속에 어떤 삶이 감추어져 있기에 이런 행동이 나오는 것일까 궁금하다.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결코 쉽게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체사레의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는 장면부터 나온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친구를 만나러 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섹스는 이런 섣부른 판단을 무참하게 깨어버린다. 체사레가 엔리카를 대하는 방식은 결코 사랑하는 사람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를로와의 섹스는 그녀를 이해하는데 더욱 어렵게 만든다. 단순히 그녀는 섹스를 즐기고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달린다.  

 

엔리카의 집밖 생활이 남자들과 관련되어 있다면 집안은 무능한 아버지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머니로 힘겨운 나날이 이어진다. 돈이 되지 않는 비싼 취미인 새장 만들기에 몰두하는 아버지는 두 부부가 이미 정도 사랑도 없는 무심한 일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그녀가 살갑게 아버지를 대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가슴 한 곳엔 체사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머니가 하는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목적 가득한 평범한 이야기뿐이다.  

 

 열일곱 살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결코 장밋빛으로 치장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저런 남자를 만나 섹스를 하고, 어머니가 죽은 후론 먹고 살 걱정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체사레에 대한 애정에 비해 돌아오는 반응은 늘 육체적 욕망의 순간적 배출뿐이다. 예상하지 못한 섹스로 잠시 돈을 받기도 하지만 순간의 방황일 뿐이다. 그녀가 임신을 했다고 말했을 때 체사레와 카를로가 보여준 반응은 지극히 남성적이다. 자신의 순간적 욕망만 배출하는데 목적이 있던 체사레는 자신의 책임을 뒤로 하고, 조심하지 않은 그녀 탓만 한다. 흔히 수많은 남자들이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 보여주는 낯익은 행동이다. 반면에 카를로의 반응은 순간적 흥분과 열정에서 비롯한다. 그녀를 책임질 능력도, 자신도 없으면서 말만 앞세운다. 물론 순수하고 순정적인 마음은 보이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젊음의 한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쉽지 않은 관계와 상황 속에서 더욱 낯선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작가의 문체다. 그녀는 사람과 사람의 대화 속에서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심리묘사에서 감정 이입을 극도로 절제한다. 감상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장황하게 상황을 풀어주지도 않는다. 간결하면서 건조한 문장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볼 것을 요구한다. 잘 읽히면서도 단숨에 읽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의 삶 속으로 나의 감정 이입이 이어지지 않고, 한 발짝 떨어진 곳에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보게 된다. 모두 읽은 지금도 그녀는 알 수 없는 존재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전후 이탈리아의 생활상과 한 여고생의 방황이 사실적이고 건조한 문장과 절제된 묘사로 잘 표현되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김훈을 좋아하는 독자나 건조하고 사실적이고 절제된 시선을 유지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비가 오기 시작했다. 훈훈한 기운과 함께 빗방울은 듬성등성 인도 위로 떨어졌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곧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저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날 것이다.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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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바바라 G. 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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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동화라는 것에 일단 시선이 갔다. 백설공주가 아닌 흑설공주라는 단어에 흑인을 연상하였지만 흑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존의 동화를 작가가 페미니즘 시선으로 개작하였다는데 읽는 내내 즐거움보다 편하지 않는 감정에 쌓여있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교차하면서 안타까움과 자신에 대한 반성도 동시에 생겼다.  

 

 많은 이야기 중 한 편인 흑설공주에 대해 생각해보자. 흑설공주에 대한 묘사를 보다보면 하얀 피부에 칠흑같이 검은 머릿결이 나온다. 예상한 검은 피부가 없었다. 백인에 미녀인 그녀다. 작가는 이야기 앞에 사악한 계모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서 두 가지 의미를 유추한다. 첫 째는 계모의 미모가 흑설공주보다 떨어지는 것에 분노한 것은 남성들에게 더 큰 관심사였지 여성은 경쟁하지 않고 수천가지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과 두 번째로 여성의 영적능력의 마지막 보루인 마법이 교회의 마녀사냥 선포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의미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전개가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 외모에 대한 묘사다. 헌터경의 외모가 결코 뛰어나지 않음과 그 지위가 높지 않음을 이유로 흑설공주는 그를 거절한다. 여기서 작가 또한 외모에 대한 그녀의 바람을 그대로 노출한다. 더불어 왕자에 대한 환상까지 보여준다. 두 번째  헌터경이 복수를 준비한다는 것과 계모가 이를 막는다는 것인데 계모가 일곱 난장이에게 금은보화를 주어 이를 막는데 이 처리 또한 대화나 합리적인 방식이 아닌 폭력에 의한 것이다. 남성의 폭력에 대한 글을 이 이야기 속에 수없이 말하는 작가가 문제 해결 방식으로 보디가드의 외형을 가진 폭력에 기대는 모습은 여성이나 왕자 등의 외모를 아름답고 잘 생긴 것으로 그린 다른 이야기와 더불어 신뢰성을 잃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나의 예외인 못난이와 야수는 제외하고.  

 

 외모에 대한 이야기에서 예외인 못난이와 야수는 또 다른 편견이 있다. 야수의 외모를 사실에 충실하게 묘사하였다지만 왜 하필이면 두 사람 모두 외모가 부족한 커플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자가 못난이라도 야수는 충분히 여성의 아름다운 마음을 아는 멋진 왕자일 수 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 전체에서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뛰어난 사람끼리,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외모 지상주의가 곳곳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 동화처럼 한결 같이 왕자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설정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자연스러운 반영이 아닌가 한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현재 떨어져 있는 여성의 권리를 제대로 신장시킬 필요가 분명히 있다. 나 또한 남자이기에 남성 본위의 마음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남성을 잔혹하고 파괴적이고 불쾌한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여남평등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우위를 주장하는 듯하다. 현대 여성들이 가지는 시각을 보면 남자보다 더 외모 지상적이고 더 욕심이 많고 파괴적인 경향도 보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란 영향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쓰진 이 동화처럼 일방적으로 남성을 몰아가거나 편견이 가득한 경우 그 본래의 의도가 좋다고 하여도 쉽게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혹 이 글에 나의 편견이 가득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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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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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 문학을 읽다보면 한 번은 꼭 에드거 앨런 포를 만나게 된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몇몇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를 살려내어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 소설도 그를 빼고는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가 살았던 시절 일어난 매리 로저스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그가 이 사건을 다룬 소설 <마리 로제 미스터리>를 썼기 때문이다. 단순히 단편 소설을 쓴 것만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포를 사건의 핵심으로 끌어당기고,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한 남자가 여자 시체를 옮기면서 시작한다. 그는 중얼거린다. “오, 메리.” 바로 그녀가 시가 가게 아가씨 매리 로저스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중에 그녀가 시선을 받은 것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 때문이다. 대단한 미모 덕분에 시가 가게는 번성하고, 주변엔 남자들로 가득했다. 그런 그녀가 죽었으니 당시 유력한 인사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 실제는 영원한 미해결로 남겨졌지만 작가는 상상력과 풍부한 자료로 이 사건을 복원하고, 살을 덧붙이고, 미스터리를 해결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과정을 다룬다.  

 

 소설 속 탐정 역은 상급 치안관 올드 헤이스다. 현재 경찰 역이다. 이 당시는 현재처럼 흔히 알고 있는 경찰도 소방수도 없던 시절이다. 가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을 때면 이런 배경들이 낯설게 다가와 혼란을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시대를 배우는 좋은 기회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뉴욕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은 가끔 경찰들 이야기 속에 나오는 평생 해결하고픈 미해결 사건 같은 것이다. 그는 남은 삶 동안 이 사건에 집착한다. 그렇다고 그의 일상 업무를 팽개치지는 않는다.  

 

 이 살인사건과 더불어 두 개의 살인사건이 있다. 둘 다 명확하게 범인이 드러난다. 하나는 콜트 권총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콜트 가의 막내 존의 담당 편집자 살인이고,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 젊은 갱단 두목인 타미의 아내와 딸과 아내의 전 남자 친구 살인사건이다. 그냥 보면 이 세 사건은 아무 연관성이 없다. 그 시대에 벌어진 하나의 에피소드나 사실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건들로 복선을 깔아둔다.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시대의 상황 속에 녹여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중심엔 매리 로저스의 죽음이 있고, 그 죽음 곁엔 애드거 앨런 포가 있다.  

 

 올드 헤이스가 살인사건을 뒤좇고, 범인을 잡고, 정의를 실현한다면 포는 자신의 재능을 팔아 생계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그에 대한 여성들의 숭배와 시대를 앞선 문학적 재능과 날카롭고 저돌적이며 공격적인 논평들은 한편으론 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에 대해 풍부한 자료를 보여준다. 그 당시 미국에 저자권법이 없어 작가들이 쓴 글을 출판업자들이 마구 도용했다는 사실도 놀라운 사실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주로 단편을 썼는데 그 이유가 잡지사는 원고료를 주기 때문이란다. 현재 저작권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미국이 불과 백 수십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 흥미롭다. 또 초반에 아일랜드 갱단들과 원주민 갱단들의 대결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감옥인 툼스가 최근에 읽은 다른 소설 <이스트사이드의 남자>에서 등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반갑다.  

 

 하나의 미해결 살인사건을 한 명의 아마추어가 해결한다는 것은, 특히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을 재구성하고 범인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작가는 그 사건을 통해 그 시대와 그 당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구할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포가 소설로 범인을 추리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범인을 찾아내기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지금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단지 얼마나 논리적이고, 설득적으로 사건을 구성하고 풀어내는지가 관건이다. 여기에 재미난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더욱 좋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만족스럽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빠르게 읽히고, 사실과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만약 책을 읽는 독자가 작가의 가정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자신만의 추론을 내세워 범인상을 만들어내어도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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