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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미국 문학을 읽다보면 한 번은 꼭 에드거 앨런 포를 만나게 된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몇몇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를 살려내어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 소설도 그를 빼고는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가 살았던 시절 일어난 매리 로저스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그가 이 사건을 다룬 소설 <마리 로제 미스터리>를 썼기 때문이다. 단순히 단편 소설을 쓴 것만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포를 사건의 핵심으로 끌어당기고,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한 남자가 여자 시체를 옮기면서 시작한다. 그는 중얼거린다. “오, 메리.” 바로 그녀가 시가 가게 아가씨 매리 로저스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중에 그녀가 시선을 받은 것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 때문이다. 대단한 미모 덕분에 시가 가게는 번성하고, 주변엔 남자들로 가득했다. 그런 그녀가 죽었으니 당시 유력한 인사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 실제는 영원한 미해결로 남겨졌지만 작가는 상상력과 풍부한 자료로 이 사건을 복원하고, 살을 덧붙이고, 미스터리를 해결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과정을 다룬다.
소설 속 탐정 역은 상급 치안관 올드 헤이스다. 현재 경찰 역이다. 이 당시는 현재처럼 흔히 알고 있는 경찰도 소방수도 없던 시절이다. 가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을 때면 이런 배경들이 낯설게 다가와 혼란을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시대를 배우는 좋은 기회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뉴욕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은 가끔 경찰들 이야기 속에 나오는 평생 해결하고픈 미해결 사건 같은 것이다. 그는 남은 삶 동안 이 사건에 집착한다. 그렇다고 그의 일상 업무를 팽개치지는 않는다.
이 살인사건과 더불어 두 개의 살인사건이 있다. 둘 다 명확하게 범인이 드러난다. 하나는 콜트 권총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콜트 가의 막내 존의 담당 편집자 살인이고,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 젊은 갱단 두목인 타미의 아내와 딸과 아내의 전 남자 친구 살인사건이다. 그냥 보면 이 세 사건은 아무 연관성이 없다. 그 시대에 벌어진 하나의 에피소드나 사실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건들로 복선을 깔아둔다.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시대의 상황 속에 녹여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중심엔 매리 로저스의 죽음이 있고, 그 죽음 곁엔 애드거 앨런 포가 있다.
올드 헤이스가 살인사건을 뒤좇고, 범인을 잡고, 정의를 실현한다면 포는 자신의 재능을 팔아 생계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그에 대한 여성들의 숭배와 시대를 앞선 문학적 재능과 날카롭고 저돌적이며 공격적인 논평들은 한편으론 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에 대해 풍부한 자료를 보여준다. 그 당시 미국에 저자권법이 없어 작가들이 쓴 글을 출판업자들이 마구 도용했다는 사실도 놀라운 사실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주로 단편을 썼는데 그 이유가 잡지사는 원고료를 주기 때문이란다. 현재 저작권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미국이 불과 백 수십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 흥미롭다. 또 초반에 아일랜드 갱단들과 원주민 갱단들의 대결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감옥인 툼스가 최근에 읽은 다른 소설 <이스트사이드의 남자>에서 등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반갑다.
하나의 미해결 살인사건을 한 명의 아마추어가 해결한다는 것은, 특히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을 재구성하고 범인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작가는 그 사건을 통해 그 시대와 그 당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구할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포가 소설로 범인을 추리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범인을 찾아내기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지금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단지 얼마나 논리적이고, 설득적으로 사건을 구성하고 풀어내는지가 관건이다. 여기에 재미난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더욱 좋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만족스럽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빠르게 읽히고, 사실과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만약 책을 읽는 독자가 작가의 가정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자신만의 추론을 내세워 범인상을 만들어내어도 좋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