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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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본드라마 특집극을 본 적이 있다. 귀머거리 아내와의 결혼을 다룬 것이었다. 칸노 미호 주연의 ‘너의 손이 속삭이고 있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귀가 들리는 남자와의 결혼과 삶이다. 사랑으로 결합하여 힘들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예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그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에 대한 불편함이나 아이를 키우면서 들리지 않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예상하지 못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상생활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그 한 편의 드라마로 단숨에 깨어졌다. 왜 이렇게 다른 드라마 이야기를 하느냐고? 바로 이 소설의 교코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슌페이는 어느날 우연히 공원에서 한 여자를 보게 된다. 퇴원 시간이 되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아니다. 그렇게 그는 교코와 만남을 시작한다. 한 번이 두 번으로 바뀌고, 그녀를 불편함을 받아들이면서 사랑이란 감정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보도국에서 밀려나 다른 부분에서 일하던 그에게 우연히 탈레반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이었던 바미안 대불이 파괴되는 비디오가 들어온다. 이것은 그는 충격을 받고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만들고자 한다. 이렇게 소설은 슌페이의 사랑과 바미안 대불 파괴를 둘러싼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로 묶여있다. 그것은 관심과 목소리다. 청각장애가 있는 교코와의 사랑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삶과 사랑을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면 바미안 대불 폭파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들은 그에게 새롭게 그 사건을 돌아보게 한다. 소리로 대화를 하지 못하는 교코와의 대화는 늘 필기로 이어지고, 소리가 제거된 그 대화는 그에겐 색다른 경험이다. 전화 대신 문자로 자신이 말을 전하고, 사소한 몸동작이나 행동으로 감정이나 자신을 드러낸다. 일에 빠져 정신이 없을 때 그를 떠난 여자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자 삶이다. 작가는 교코의 행동이나 반응을 통해서 슌페이의 감정과 청각장애인의 삶을 드러낸다. 너무 당연했던 슌페이의 생각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새롭게 다가오고, 주변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놀란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주변의 소리가 사라진 것 같고, 그녀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가끔 섬뜩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낯선 삶을 들여다 본 그의 반응은 신선함을 받기도 하지만 크나큰 벽을 세운 것 같기도 하다.   

 

 바미안 대불의 폭파는 문화의 충돌이자 역사의 한 장면이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정복자들이 피정복자의 문화유산을 약탈하고 파괴했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유물들이 그렇게 획득된 것들이다. 최근에 와서 세계적인 여론으로, 상업적 목적으로 문화재 보호가 강화되고 있지만 자신들의 교리나 문화와 다른 유물을 파괴하는 데는 목적이 담겨있다. 바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수많은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그 사건을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진실 되게 보호하려고 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많은 인물들이 그 유적을 보호하려고 했을 테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유적일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와 다르고, 자신들의 나라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소리를 놓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다시 슌페이와 교코의 사랑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의도적인지 아니면 생략한 것인지 모르지만 교코의 과거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녀의 감정과 사랑이 슌페이의 시선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보니 말 못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단지 문자나 손으로 쓴 글로만 전해지는데 그녀의 감정을 전달하기엔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슌페이는 수화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만난 시간이 짧아서인지 아니면 바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의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배제하고 있다. 그의 관심이 소리에 너무 집착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녀가 만들어낸 고요함이나 소리 없는 세상이 안락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 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기엔 쉽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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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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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 전 작가의 말을 보고 왜 이런 글을 썼을까? 궁금하였다. 하지만 모두 읽은 지금 작가의 말에 대한 의문만 더 생겼다. 작가는 이 소설이 SF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휴고와 네뷸러 상 후보에 올라가기까지 했다. 과연 SF소설인가? 영생을 다루고 있지만 소설의 진행이나 소재를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않는다. 아마 작가에 대한 설명이나 장르 구분에 둔한 사람이라면 소위 말하는 주류문학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장르의 경계를 걷고 있다.  

 

 일라이, 티모시, 네드, 올리버. 이 네 명의 룸메이트들이 일라이가 발견한 고서 ‘두개골의 서’의 해석에 의해 영생을 찾기 위해 떠나는 이 소설이 상당히 특이하게 다가온다. 책의 전반부가 로드무비처럼 진행된다면 후반부는 오히려 도인들의 수련 같다. 이 양극단의 진행이 단순한 이야기의 흐름을 쫒아가기보다 각각의 화자들의 개인사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기에 더욱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4명이 가서 두 명만 영생을 얻고, 2명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가 추론하는 결과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는 다르고, 그들이 의도했던 영생과 실제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도 준다. 과연 영생으로 불멸을 이루었을까?   

 

 구성은 각각의 화자가 현재의 진행 속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성장배경도 살아온 과정도 성적 취향도 모두 다른 네 명의 남자가 불멸을 꿈꾸며 가는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현재의 모습을 그려내기보다 과거의 삶에 끊임없이 집착하는 그들을 보며 그들에게 영생은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거나 또 다른 삶을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일라이가 영생을 얻고 나서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시간 단위로 나눈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상상은 나도 이전에 하여 본 것이기에 많은 공감을 가진다. 하지만 가끔 불멸을 가진 사람들의 힘겨움을 마주하다보면 또 다른 하나의 불멸인 자식 놓기가 더 편한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이 출간된 1970년대의 시대상을 보여주기 때문인지 상당히 낯선 장면과 생각들이 나온다. 당시 히피처럼 삶을 살아가고, 성 혁명이 일어난 시기이기에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묘사와 관계들은 지금 상당히 많이 풀어진 한국의 현실에서 보아도 일상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 후반부 수도원에서 펼쳐지는 수련을 보면 왠지 모르게 무협소설의 연공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단지 이 소설의 외피일 뿐이다.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는 네 청년들의 생각과 행동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마지막에 자신들의 가장 추악한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과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도 있지만 위선으로 가득한, 혹은 강하게 절제된 삶의 한 형태들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출판 기록을 찾아보았다. 현재 절판되지 않은 것은 ‘다잉 인사이더’가 유일하였다. 그의 단편이 sf모음집에 실려 있지만 왜 그를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 뒤에 나오는 해설처럼 이 소설을 통해 sf의 새로운 시도를 알게 되었고, 인식의 확장은 더욱 넓어졌다. 그리고 장르 구분에 대한 고민은 더욱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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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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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나쁜 버릇이 점점 많아진다. 그 중 하나가 유명작가나 최소한 문학상 한둘은 딴 작가들의 작품만 읽는 것이다. 이미 상들이 문학의 완성도나 재미와 상관없이 상업적 목적에 의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 하지만 가끔 입소문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을 통해 접한 책들에서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받는다. 그때의 기쁨은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말하는 의도는 너무 분명하다. 바로 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했는데 기대한 이상의 재미를 주었다. 그러니 서두에 이런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시백. 사실 이 작가 모른다. 유명작가도 아니고, 출판사도 낯선 곳이다. 만약 누군가의 극찬이 없었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고 이문구 선생의 계보를 잇는다는 표현에 조그마한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각각의 주인공들에게 정이 간다. 걸쭉한 토박이 말투를 능청스럽게 구사하면서 농민의 삶 속으로 들어간 문장과 묘사들은 감탄을 절로 하게 만든다. 충청도 말이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여과 없는 듯 흘러나오는 현재 삶에 대한 한탄과 비판과 충성과 열정은 늘 주변에서 실제 듣던 이야기들이다. 그 생생함은 가끔 갸웃하게 하거나 주억이게 만든다.   

 

 연작소설이다. 열하나의 단편을 통해 충청도 농촌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연작이지만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가족이나 한 마을 사람들이 한 곳에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상의 한 농촌을 좀더 광범위하게 다룬다. 앞에 나온 이가 뒤에 중복되게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연작이란 느낌이 약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농촌 사람들의 삶과 입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 현대사와 삶은 보는 나로 하여금 순간 뜨끔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골사람들은 누구는 영악하고, 누구는 우직하고, 누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영악하게 처신한다고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아내를 구박하다 살짝 사라진 그녀를 찾아 동네를 헤매기도 하고, 외국 아내가 설마 도망가랴 막 대하다 놓치기도 한다. 아내의 죽음 때문에 동네사람들에게 돈 밖에 모른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 내막을 듣다보면 처참했던 가난과 과거의 아픔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박통에 대한 강한 향수를 토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변하는 농촌 현실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행동하기도 한다. 몇 푼 되지 않는 선심성 공사와 저렴한 관광 여행에 토지를 싼 값에 팔고 더 영악한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데모를 해야 하는데 할 줄 몰라 전직 학생 운동가를 찾아 데모를 벌이지만 조그마한 목적을 달성한 후 그를 팽개치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이장으로 동네 땅 팔아 구전 챙기는 재미를 누리던 이가 며느리의 노래방 도우미에 허망해한다.   

 

 요지경 같은 세상 속을 감정이나 사상의 치우침 없이 약간 거리를 두고 능청스럽게 작가는 이야기한다. 구수한 토박이 말투는 가끔 뭔 뜻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게 만들고, 농촌사람들의 말에선 삶의 생생한 현장을 경험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현실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옆에서 보고 듣는 것 같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작가가 충청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도 능청스럽고 자연스럽게 나와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경기도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토박이 말투들이 정겹고 아름답고 즐겁다. 영화 ‘황산벌’에서 각 지역 말투들이 지닌 가치를 이미 경험했지만 점점 언어가 획일화되어가는 현실에서 이런 소설은 더욱 더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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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1 - 보이지 않는 적,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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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트와일라잇> 열풍에 몰아넣은 스테프니 메이어의 신작 소설이다. 인간의 뇌에 침입한 외계 생명체란 설정과 하나의 몸, 두개의 영혼이란 설정에서 기존에 보거나 알고 있던 소설이나 만화가 생각난다. 인간의 몸을 지배하는 설정에선 <바디 스내처>가, 동거라는 점에선 일본만화 <기생수>가 연상되었다. 사실 <기생수>를 생각하면서 이 소설도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한 판 대결로 가득하지 않을까 미뤄 짐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강렬하고 파괴적인 장면을 좋아하는 단순한 나의 바람이었다.   

 

 이 소설 속 외계생명체 소울(Soul)은 흔히 생각하는 외계침입자와는 다른 존재다. 일반 행성에서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들은 대단히 평화적이다. 이런 존재가 지구를 침략하여 인간을 호스트로 삼는다는 것이 좀 이상한 설정이기는 하다.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면 살인과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인정할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 인류를 자신들이 살아갈 호스트로 삼을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라 감정과 연민과 자비 등의 감정은 또 어떨까? 물론 이것은 자극적인 감정에 늘 노출되고, 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관점일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인류가 소울에게 영혼을 잠식당하고 있다. 소수의 인간만이 자신을 지키고 살아간다. 그들 중 한 명인 멜라니가 잡힌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소울의 놀라운 의학은 그녀를 살려내고, 그녀의 몸속으로 소울을 삽입한다. 그 소울은 방랑자로 불리고, 이미 일곱 번이나 다른 호스트에 산 경험이 있다. 멜라니의 정신을 침입해 다른 인간들 정보를 캐내길 바라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몸속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다. 멜라니의 기억과 정신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과 강한 정신력은 이미 여러 번 다른 호스트에서 삶을 경험한 방랑자를 혼란에 빠트리고 이전엔 전혀 느끼지 못한 감정에 빠지게 한다.   

 

 일반적인 외계생명체의 침입이란 설정이라면 치열한 전투나 음모나 계략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그런 것이 없다. 소울들이 인간을 찾아내어 호스트로 삼는 것이 단순히 정복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울이 삽입된 호스트들이 인간들에게 괴물 취급당하고 살해당하는 현실에서 엄청나게 평화적인 소울들에게 이것은 대단한 폭력이자 반사회적 행동이다. 인간들에게 절실한 생존의 문제가 그들에겐 지구의 평화문제나 살인이나 폭력으로 비추어진다. 재미난 점은 호스트에 삽입된 소울들이 호스트의 과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의 성격이나 입맛이나 기억 등에서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순화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아 성향을 잘 모른다. 하지만 이번 소설을 읽다보면 필력을 알 수 있다. 자극적인 초반 설정이지만 자극적인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으면서도 흡입력을 유지한다. 소울과 인간의 대립과 갈등을 고조시켜 긴장감을 만들기보다 소울과 인간의 사랑과 이해를 바탕에 깔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멜라니와 그녀의 연인 제러드와 소울 완다와 이안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울 때문에 살 자리를 잃고 외딴 동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 무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갈등과 의심을 넘어 이해와 동조자가 되는 그 과정은 미묘한 인간관계와 사랑이야기로 흥미를 전혀 잃지 않는다.   

 

 이 소설은 전체적인 설정이나 마무리 등에서 분명히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 방랑자가 지나온 행성들의 에피소드는 낯설고 재미난 상상력이 돋보이고, 소울과 인간의 공생이란 점과 소울이 제거된 인간의 영혼은 정신과 영혼이란 철학적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뇌와 정신의 관계를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지만 감정과 기억 등과 연결해서 풀어낸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다. 그리고 자극적인 것에 중독된 우리의 현 사회를 생각하면 그녀의 약간은 밋밋한(?) 이야기와 사랑이 더 다가오는 것은 분명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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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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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연애소설이라기에 가슴 저리고, 기쁨 가득한 사랑이야기로 가득할 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가슴 저리고, 먹먹하고, 아프고, 끊임없이 사랑과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묻게 만든다. 두 남녀의 과거와 현재가 나로 하여금 좀더 진실하게 나의 사랑을, 다른 사람의 과거를 묻고, 생각하게 한다. 비록 초반에 미스터리처럼 숨겨진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긴 하였지만 그 이후 펼쳐지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는 사요나라란 말로 덮어버릴 수 없이 거대한 산이 되어 다가온다.  

 

 시작은 한 여자가 옆집에 택배를 부탁하면서부터다. 이 여자 사토미의 어린 아들이 얼마 전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언론은 이 불쌍한 여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보통의 어머니라면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울음으로 지내겠지만 그녀는 다르다. 점점 더 화장이 짙어지고, 매스컴을 도발적으로 대한다. 이런 그녀를 언론이 점점 밀착하는 당연하다. 숨겨진 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런 그녀의 옆집에 한 부부가 살고 있다. 그냥 평범한 이 부부가 이 연애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도입부는 단지 이 부부와 그들의 과거를 뒤좇는 기자 와타나베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리고 드러나는 과거는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현 위치를 묻게 한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나 여자친구나 친구가 윤간을 당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만약 그 윤간을 한 사람이 당신이라면 어떨까? 소설은 이렇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피해자는 흔히 두 번 세 번 사회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직접적인 피해 이후 은연중에 퍼지는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계속 피해를 입는다. 자신의 과거로부터 달아날 방법은 없다. 만약 말하지 않았다가 드러나면 그 연인은 배신감이 휩싸이고, 과거를 먼저 듣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외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그 순간 다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과거에 집착하고 또 다른 가해자로 변한다. 이 가해자는 단순히 한두 사람이 아니다. 그녀를 둘러싼 모두다. 당연히 감싸고 보호해야할 아버지조차 그렇다. 그녀는 어디로 가야할까?   

 

 그녀를 강간한 남자 넷의 현재는 모두 다르다. 그중 한 남자는 이 과거를 잊지 못한다. 그날 밤 사건은 우발적이었다. 자신의 감정은 솔직했지만 젊은 혈기와 분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해자인 그도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배 덕분에 좋은 회사에 다니지만 과거는 술자리 농담이나 뒷담화로 따라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피해자를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만약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는 조금은 과거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거로인해 계속 피해자로 남아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둘의 과거를 점점 파고드는 와타나베는 일정한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로 감정이입 되기도 한다. 한 아이의 살해사건이 사랑이야기로 넘어가는 그 과정을 중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운동선수였던 그의 과거가 가해자의 경력과 대비되고, 그의 가정사가 그들의 현재 삶과 비교된다. 이런 순간순간 드러나는 사실들은 그 실체에 다가갈수록 가슴 아프고, 아리고, 강렬해진다.   

 

 

 현실은 가혹하고 미묘하고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흔히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사느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피해자에겐 그 가해자보다 더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가해자들이 주변에 있다. 우린 단지 그가 가해자였다는 것만 생각하지 우리가 가해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그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진솔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고, 한 순간의 실수도 아니고, 단순한 재미나 충동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면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 만남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그 사건을 반성하고 잊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피해자가 다른 가해자들로부터 계속해서 피해를 입는다면 말이다. 용서하지 못해 같이 살고, 용서해서 사라진다고 말하는 그녀의 삶은 일어 사요나라가 아닌 우리말 ‘안녕’으로 이해하고 싶다. 헤어질 때 안녕이 아닌 만날 때 안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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