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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평점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하고 저자는 묻는다. 답은 수치의 제국을 이끌고 있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신흥 봉건제후들’이라고 부른다. 소수가 다수의 부를 차지하는 현상이 중세의 봉건제후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이야기가 결코 과장되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계수치로 만나게 되는 비극들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분노와 부끄러움을 끄집어낸다.
세계화란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불과 십 수 년 전이다. 한때 나 자신도 이 단어에 혹하였다. sf소설과도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하루 만에 여행이 가능해지고, 값싼 물건을 쉽게 쓸 수 있으니 반대할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점점 세계화의 이면에 숨겨진 본 모습이 드러나면서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사실과 만나게 되었다. 나 자신이 결코 도덕주의자가 아님에도 이런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의 삶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아니면 그 사실들을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리고 잊고자 했다. 그러나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점점 더 강하게 다가오는 사실들에 의해 무장해제 되면서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원제는 ‘수치의 제국’이라고 한다. 원제보다 번역 제목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자본의 속성과 인간의 탐욕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현실들과 잘 맞다. 우린 탐욕에 눈이 멀어서 자신의 양심을 던져버리고,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를 위해 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이렇게 눈과 귀를 닫고 양심은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묻어버린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고 바르다고 외치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나 대화 속에서 이런 사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놀란다. 저기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느냐고, 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말해도 그들의 눈과 귀는 닫혀있다. 그리고 입은 끊임없이 말한다. 저들이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부패한데다 능력도 없다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머릿속 깊은 곳에 새겨져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현재 세계의 언론들은 대부분 다국적기업들이나 대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예 노골적으로 그들의 시녀노릇을 하는 매체도 많다.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고, 덮고 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봉건제후들에게 봉사한다. 이익을 쫓는 그들에게 이것만으로도 부족하기에 각국의 정부를 움직여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부채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가는 고리대금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이 부채는 해가 지날수록 늘어만 간다.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부채나 이자는 그 나라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이런 나라일수록 정권과 결탁한 부패가 더 많이 이루어진다. 자본은 뇌물을 먹이고, 관리는 부패하고, 민중은 더욱 가난해진다. 민영화 등을 통해 헐값으로 기업이나 자산을 산 후 막대한 이익을 얻는 과정은 현재 MB정권이 상하수도와 몇몇 공기업을 민영화하려는 사실을 연상시키면서 순간적으로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책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사유재산을 보호하려는 혁명세력이다. 배고픈 민중들이 왕궁을 약탈하고 나오는 순간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처형한 것이다. 여기서 사유재산 절대 불가침이란 가치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이후 지금까지 가진 자들이 자신의 부를 보호하고 늘리는 기본 가치로 자리 잡는다. 이것은 또 특허라는 제도를 통해 더욱 굳세어진다. 현재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가치가 불과 2~3백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제나 놀랍다. 부의 축적과 획득을 위해 그들이 동원하는 수단이 점점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협박하는 것으로 변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거대한 부채 때문에 배움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들에겐 너무나도 무서운 현실이다.
이 책은 세 개의 키워드로 읽을 수 있다. 부채, 다국적기업, 기아다. 부채에 대해 놀라운 사실은 남반부에서 북반부로 흐르는 돈의 양이 북반부에서 남반부로 흐르는 돈의 양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 나라를 노예처럼 만들고, 사회 기반 시설이나 교육 등에 투자할 여력이나 자본 생성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때 단순히 부채만 생각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실이다. 이런 부채는 정권의 부패와 함께 권력자들에게 들어가거나 다국적기업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기아에 시달린다. 이 악순환을 끊고자 부채상환을 중지하면 전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막혀 고립된다. 충분한 경제력과 자산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게 이것은 부채상환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다. 저자는 부채를 가진 나라의 연대를 주장한다. 만약 한 나라만 봉건제후들에게 반항을 한다면 가볍게 무시되고 진압이 가능하겠지만 대다수 나라가 연대한다면 이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좁게 보면 노동조합 문제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
쉽게 읽히고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나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간단할 수 있다. 그들은 남이다. 그러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라고. 하지만 탐욕의 시대에 자본의 거대한 입은 결코 그 나라만으로 배부르지 않다. 필연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먹어치우면서 곧 우리에게 달려들 것이다.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벌어지는 양극화와 탐욕은 어떻게 할 것이며, 양심은 또 어떻게 가릴 것인가? 뭐 요즘처럼 돈이 최고라고 외치는 세태에서 양심이 뭐 대수냐고 외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