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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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란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소설이 있다. <아랑은 왜?>라는 소설이다. 불과 4,5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김영하란 이름은 낯설었다. 그 당시 이름을 알만한 작가들은 모두 이상 문학상에 실린 작가거나 아니면 2000년대 이전 일부 작가들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책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었던 시기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만 열심히 읽던 시절이었다. 전작주의를 열심히 실행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은 손에 잡히는 책들만 읽지만 말이다. 그 소설로 이름을 기억했고, 인터넷 서점에서 그에 대한 평을 보면서 단편집을 읽었다. 장편처럼 매혹적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 당시 같이 읽었던 한강과도 유사한 진행이다.   

 

 그의 활동은 1995년부터다. 사실 이 시절은 소수의 한국작가와 장르소설에 몰입하고 있었다. 허영심에 들떠 문학상 작품집은 열심히 읽었지만 그 외는 그렇게 집중하지 않았다. 그런 시기에 김영하가 나왔으니 나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을 말하면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다닌다. 이력을 보면 적지 않은 책을 내었고(반 이상은 보았다), 국립 예술대학 교수에 라디오 방송까지 하였다고 한다. 상당히 바삐 움직이며 이름을 알리던 시절이었다. 비록 나에겐 낯선 과거이지만 말이다. 이런 그가 일상을 벗어나 유랑의 길을 떠난다. 그 첫 기착점이 시칠리아다. 거기는 그가 방송국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곳이다. 낯선 유랑 여행을 떠나면서 한 번 방문한 곳을 선택했다는 점이 약간은 의외지만 그때와는 다른 일정으로 그 섬을 돌아본다. 그 여정은 결코 보통의 관광여행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휙~하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고 방을 잡고 그들과 함께 머물거나 인사를 나누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여행을 한다. 그의 지식이 곳곳에 묻어나면서 읽는 즐거움을 준다.  

 

  책 제목인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Memory Lost.'는 후기를 겸한 글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잃어버린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제목을 붙인 것은 무얼까? 여행에서 잃어버린 것보다 한국에서 잃어버린 것이 더 많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물론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얼까? 생각해본다. 다시 책의 앞으로 돌아간다. 그가 왜 성공한 인생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났을까? 생각한다. 쌓여만 가는 읽지도 않을 책과 보지도 않을 DVD를 정리하고 그러면서 그는 잃어버린 자신 안에 있던 예술가를 찾고자 한다. 그 문장들을 읽는 순간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한편으론 그렇게 떠날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럽다.  

 

 

 그가 만난 시칠리아는 쉬운 길이 아니다. 로마에서 파업으로 기차가 다니지 않고, 버스와 배로 이동을 한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늘 압박을 받는 정시 도착 출발이 이곳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나쁜(?) 상황에서 그 부부는 시칠리아 곳곳을 돌아다닌다. 한 곳에 집을 구해 며칠을 머물며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스쿠터를 빌려 도시 곳곳을 다닌다. 단순히 여행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그 마을과 풍경이 빚어내는 역사와 현재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정보와 풍경이 만나 사색에 잠긴다. 만약 당일치기 관광이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자 직관이다. 작가의 글에서 만나는 소설이나 영화나 신화 등은 다시금 옛 기억을 불러오거나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토해낸다.   

 

 책은 쉽고 빠르게 읽힌다. 많지 않은 분량에 사진도 나름 풍부하기 때문이다. 현역 인기 소설가가 쓴 문장이니 몰입도도 높다.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인 유대감, 정, 여유, 느림, 자유, 따뜻한 마음 등등. 여행지에서 살짝 드러나는 작가의 과거 기억과 삶의 단편들은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행지에서 겪은 일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없는 것은 이 책이 여행서적이 아님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곳곳에 시칠리아 정보가 목을 길게 빼고 말을 건낸다. 따뜻하고 뜨거운 열기가 불어오는 시간엔 텅 빈 거리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하지만 그마저 즐기는 순간이 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아내와 함께 갔는데 그녀의 출연이 너무 없다. 가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도 많았다.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떠난 그의 여행에서 더 많은 것을 쌓아가는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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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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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하고 저자는 묻는다. 답은 수치의 제국을 이끌고 있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신흥 봉건제후들’이라고 부른다. 소수가 다수의 부를 차지하는 현상이 중세의 봉건제후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이야기가 결코 과장되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계수치로 만나게 되는 비극들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분노와 부끄러움을 끄집어낸다.    

 

 세계화란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불과 십 수 년 전이다. 한때 나 자신도 이 단어에 혹하였다. sf소설과도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하루 만에 여행이 가능해지고, 값싼 물건을 쉽게 쓸 수 있으니 반대할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점점 세계화의 이면에 숨겨진 본 모습이 드러나면서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사실과 만나게 되었다. 나 자신이 결코 도덕주의자가 아님에도 이런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의 삶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아니면 그 사실들을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리고 잊고자 했다. 그러나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점점 더 강하게 다가오는 사실들에 의해 무장해제 되면서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원제는 ‘수치의 제국’이라고 한다. 원제보다 번역 제목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자본의 속성과 인간의 탐욕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현실들과 잘 맞다. 우린 탐욕에 눈이 멀어서 자신의 양심을 던져버리고,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를 위해 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이렇게 눈과 귀를 닫고 양심은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묻어버린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고 바르다고 외치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나 대화 속에서 이런 사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놀란다. 저기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느냐고, 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말해도 그들의 눈과 귀는 닫혀있다. 그리고 입은 끊임없이 말한다. 저들이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부패한데다 능력도 없다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머릿속 깊은 곳에 새겨져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현재 세계의 언론들은 대부분 다국적기업들이나 대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예 노골적으로 그들의 시녀노릇을 하는 매체도 많다.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고, 덮고 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봉건제후들에게 봉사한다. 이익을 쫓는 그들에게 이것만으로도 부족하기에 각국의 정부를 움직여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부채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가는 고리대금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이 부채는 해가 지날수록 늘어만 간다.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부채나 이자는 그 나라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이런 나라일수록 정권과 결탁한 부패가 더 많이 이루어진다. 자본은 뇌물을 먹이고, 관리는 부패하고, 민중은 더욱 가난해진다. 민영화 등을 통해 헐값으로 기업이나 자산을 산 후 막대한 이익을 얻는 과정은 현재 MB정권이 상하수도와 몇몇 공기업을 민영화하려는 사실을 연상시키면서 순간적으로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책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사유재산을 보호하려는 혁명세력이다. 배고픈 민중들이 왕궁을 약탈하고 나오는 순간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처형한 것이다. 여기서 사유재산 절대 불가침이란 가치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이후 지금까지 가진 자들이 자신의 부를 보호하고 늘리는 기본 가치로 자리 잡는다. 이것은 또 특허라는 제도를 통해 더욱 굳세어진다. 현재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가치가 불과 2~3백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제나 놀랍다. 부의 축적과 획득을 위해 그들이 동원하는 수단이 점점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협박하는 것으로 변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거대한 부채 때문에 배움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들에겐 너무나도 무서운 현실이다.    

 

 이 책은 세 개의 키워드로 읽을 수 있다. 부채, 다국적기업, 기아다. 부채에 대해 놀라운 사실은 남반부에서 북반부로 흐르는 돈의 양이 북반부에서 남반부로 흐르는 돈의 양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 나라를 노예처럼 만들고, 사회 기반 시설이나 교육 등에 투자할 여력이나 자본 생성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때 단순히 부채만 생각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실이다. 이런 부채는 정권의 부패와 함께 권력자들에게 들어가거나 다국적기업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기아에 시달린다. 이 악순환을 끊고자 부채상환을 중지하면 전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막혀 고립된다. 충분한 경제력과 자산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게 이것은 부채상환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다. 저자는 부채를 가진 나라의 연대를 주장한다. 만약 한 나라만 봉건제후들에게 반항을 한다면 가볍게 무시되고 진압이 가능하겠지만 대다수 나라가 연대한다면 이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좁게 보면 노동조합 문제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  

 

 쉽게 읽히고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나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간단할 수 있다. 그들은 남이다. 그러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라고. 하지만 탐욕의 시대에 자본의 거대한 입은 결코 그 나라만으로 배부르지 않다. 필연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먹어치우면서 곧 우리에게 달려들 것이다.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벌어지는 양극화와 탐욕은 어떻게 할 것이며, 양심은 또 어떻게 가릴 것인가? 뭐 요즘처럼 돈이 최고라고 외치는 세태에서 양심이 뭐 대수냐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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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수수께끼 -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가 18인의 특별 추리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91
도바 료 외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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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청색의 수수께끼를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를 못했다. 나의 나쁜 습관 중 하나인 순서대로 읽기가 요즘 많이 깨어진다. 뭐 이 추리 단편선의 경우 순서를 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왠지 출간 순서대로 읽고 싶어진다. 뭐 이미 흑색을 먼저 읽은 상태인데도 말이다. 몹쓸 집착이다. 이 집착 때문에 아직 시작하지 못한 작품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언젠가 고쳐지려나?  

 

 이번 단편선도 모두 분량이 제각각이다. 사실 이 단편선을 읽으면서 조금 불만인 점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비슷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괜한 투정을 부린다. 그리고 모두 네 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분위기와 다루고 있는 방식이 다르다. 이 부분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네 작가 중 예전에 접한 작가는 단 한 명 있다. <뇌남>의 작가 슈도 우리오다. 아는 작가를 만났을 때 괜히 반갑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뇌남>과 분위기가 다르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일까?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사령의 손>은 중간에 범인을 파악했다. 이미 이와 같은 구조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시대 추리소설인데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서 분위기만 잘 조성한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트릭이나 범인 찾기는 조금 약하다. 검도 3단을 보유하기 때문인지 검도 소설이 많다고 하는데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고 싶다. 이 소설에서도 살짝 검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검찰수사 특별편>은 상당히 선이 굵다. 각성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찰과 검찰과 마약 수사관들의 이야기가 힘 있게 다루어진다. 굉장히 남성적일 것 사회에 여 검사를 등장시킨 것도 재미있지만 그들의 내부 알력과 음모가 재미있다. 한 남자가 감옥에서 풀려나오는 것에서 시작하여 긴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장편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좀 더 살을 붙인 후 조직 간의 갈등을 키운 후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갔으면 대단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920을 기다리며>는 초반에 조금 심심했다. 중반까지도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심리대결이 펼쳐지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10년 전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긴박감은 즐겁다. 영화나 연극으로 바꾸어도 멋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설은 언제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만 때때로 공포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 단편에서 920으로 불리는 존재가 그렇다. 제목만으로는 알 수 없는 920이란 존재가 끝까지 호기심을 불러온다.  

 

 <방탕아의 귀감>은 선입견을 조심해야 한다.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지는 반전은 방탕아들의 존재가 강하게 부각된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과정이 조금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인간이 가지는 욕망과 흥분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는 점은 흥미롭다. 숨겨져 있던 욕망이 갑자기 드러날 때의 기쁨과 피지배자에서 지배자로 바뀌는 순간의 강한 흥분과 기대감은 시간을 초월하여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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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퍼즐 학생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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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이 작가의 밀실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그리고 그 규모의 거대함은 놀라게 한다. 뭐 이런 설정 자체가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전작이 산과 화산으로 고립된 공간이라면 이번엔 5일에 한 번 배가 들어오고, 외부와 교신을 하는 유일한 수단이 무선통신 밖에 없는 섬이다. 그러니 범인은 당연히 자신들과 함께 거주하는 인물이다. 가끔 다른 추리소설에서 외인이 있을 가능성을 말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설정에 진행이다.  

 

 소설은 두 가지로 진행된다. 이 두 가지가 별개의 것은 아니다. 하나는 연쇄살인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외딴섬에 존재하는 보물찾기와 연관된 퍼즐이다. 이 설정을 보는 순간 범인의 윤곽이 바로 드러났다. 작가는 범인을 특별한 인물로 내세워 독자에게 깜짝쇼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그 혹은 그녀인지 추리하는 과정은 그냥 재미로 읽는 이에겐 쉽지 않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고, 각각 개인들의 행동과 심리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마지막에 직관이 아닌 추리로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했는데 에가미 선배가 아리스가와에게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아리스조차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추리소설을 자주 많이 읽다보니 구성과 진행으로 범인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쉬워도 이렇게 하나씩 분석하고 추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동호회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그녀는 이 소설의 무대를 제공하게 되는 마리아다. 아리스와 마리아라 상당히 재미있는 조합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퍼즐을 대단히 좋아한다. 그래서 자신의 유산도 퍼즐로 만들어서 숨겨놓았다. 당연히 그 유산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시가 5억 엔의 다이아몬드다. 하지만 누구도 찾지 못한다. 다만 3년 전 마리아의 사촌오빠 히데토가 답을 찾았다고 말하고 사고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과연 답을 찾았을까? 과연 그의 죽은 사고일까? 그리고 새롭게 발생한 총살 사건은 왜 생겼고, 어떻게 그들은 죽었고, 그 밀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 모든 의문이 생기지만 한 가지 소설 분위기에 이상한 점이 있다. 전작 '월광게임‘에서 미지의 살인마 제이슨을 두려워하면서 공포에 떨었던 것에 비해 이번 사람들은 너무 태평하다. 범인이 엽총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작가는 다른 소설에서 자주 보는 공포심이나 서로간의 갈등을 강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평소처럼 지낸다. 이 상황은 읽는 내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면 나 자신이 너무 기존의 추리소설 설정에 익숙하거나 당연하게 생각한 것일까?  

 

 이번 소설은 전작에 비해 더 부드럽게 진행된다. 사건이 발생한 내역도 더 쉽게 공감한다. 모아이 상을 이용한 퍼즐은 최근에 본 CSI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었다. 또 상당히 흥미로운 방식이다. 사실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연관성을 찾기 바쁘다. 쉽게 연관성이 드러나면 범인의 윤곽을 잡기 편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지막 순간에 도달해야만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소설이 바로 그렇다. 마지막에 이르러야 그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에가미 선배를 볼 때면 탄복한다. 놀라운 추리력과 지식은 부럽다. 다음에 번역될 <쌍두의 악마>에선 그의 과거사가 나온다니 기대된다. 또 어떤 새로운 인물이 나와서 새롭게 활력을 불어넣어줄지도 궁금하다. 다만 이번 소설에 미스터리 동호회 회원 두 명이 이런 저런 사유로 빠진 것은 상당히 아쉽다. 에가미 선배가 범인을 지목하는 장면도 기존의 명탐정과 다르다. 사람을 모아놓고 범인은 너다!라고 말하기보다 다시 검토하고 그 이유를 묻는 장면은 인간적이면서 굉장히 인상적이다. 모두 5부작으로 설정하였다니 앞으로 세 권 더 남았다. 물론 마지막 한 권은 일본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작가의 발전과 새로운 이야기는 언제나 기다리는 즐거움과 그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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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
쑤퉁 지음, 김지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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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을 많이 보아서인지 뱀이 하늘을 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전설처럼 말하던 하늘을 나는 백사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아는 척하면서 말한 적도 많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뱀이 날 수 있는지 묻는 이 제목에 의문 부호를 달게 된다. 당연히 날 수 있는 뱀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론 이 소설은 뱀이 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도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조금은 희극적으로, 약간은 은유적으로, 사실적으로 말한다.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면 변하는 시대에 대한 적응기이기도 하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세 명으로 중심인물을 잡을 수 있다. 성형미인인 금발소녀와 인생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렁옌과 좋게 말해 채권추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폭과도 같은 커위안이다. 이 셋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인물을 꼽으라면 커위안일 것이다. 그 도시 중심가인 기차역 근처에서 생활하고, 이름을 알리고, 사건을 만드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급격히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그 도시에서 재빨리 적응하지만 결국 그 자신이 완전히 변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그와 금발소녀와의 로맨스는 매춘과 연정의 경계를 걷게 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함을 느끼고 연민을 자아낸다.  

 

 

 소설은 금발소녀가 기차역 여관에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멋진 몸매와 외모에 금발로 물들인 그녀의 등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그녀의 행동은 결코 세련되지 못하다. 기차역 여관에서 일하는 렁옌에게 성형을 한 사실이 드러나고, 목욕탕에서 뱀을 만나 나체로 튀어나오는 사건으로 신비감이나 매력을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후 그녀가 그 도시에 온 목적이 깨어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성공에 대한 열망과 도전이 결코 만만하고 녹녹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자신감이 자괴감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가슴 한 곳을 아리게 만든다.   

 

 렁옌은 그렇게 표시 나는 인물은 아니다. 그 도시의 미남과 결혼하고, 그가 자살한 후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새롭게 만나던 인물과 깨어지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하지만 그 도시에 흘러넘쳤던 뱀 때문에 활성화된 뱀 요리 전문점의 매니저로 재탄생하면서 새롭게 부각된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으로 혐오하는 뱀과의 동거(?)를 멋지게 표현하는 그녀는 후반으로 가면서 금발소녀의 몰락과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커위안, 금발소녀, 렁옌은 서로 약하게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급속하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성공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환경 적응을 위해 몸부림치고, 순간적 판단 실수나 오해나 말실수로 끔찍한 변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도 결코 유쾌하고 즐겁지 않다. 시간적 배경도 새천년이란 대변혁의 시기로 잡아서 시대의 급속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시간이 단속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뱀 사건이 벌어진 6월과 마지막 새천년을 알리는 순간까지의 시간들은 각각의 사람들이 겪는 변화를 단속으로 알려준다. 그 시간을 자연스럽게 견디고 넘어가느냐, 아니면 그 시간의 벽을 넘지 못하느냐에 따라 삶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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