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뼈 - 마키아벨리와 다 빈치가 펼치는 고도의 두뇌추리
레오나르도 고리 지음, 이현경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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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마키아벨리. 이 두 사람은 서양사에 큰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레오나르도는 얼마 전 <다 빈치 코드>란 소설로 다시 그 이름을 만방에 떨쳤고, 마키아벨리도 새롭게 번역된 그의 책 <군주론>으로 새롭게 인식 받고 있다.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이 두 사람은 전혀 유사점이 보이지 않는다. 과학자자 예술가이자 해부학자였던 레오나르도와 근대 정치학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는 마키아벨리가 어디에 접점이 있는 것일까? 서양사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 아니라면 좀처럼 그들의 만남을 생각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 둘을 가상의 공간 속에서 만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중세의 역사 속에서 사건을 만들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와 결말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1504년 4월 리보르노의 거리를 원숭이들이 활개를 친다. 수많은 원숭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사이에 한 남자가 열심히 달아난다. 그를 좇는 두 남자가 뒤를 따른다. 한 집을 찾아가 뭔가를 전해주고 달아나지만 곧 잡힌다. 그는 사실을 말하고 살해당한다. 그 사이 원숭이들은 죽거나 흩어진다. 그렇게 밤은 깊어지고 아침은 밝아온다.  

 

 공간이 바뀌어 마키아벨리가 등장한다. 그는 피사를 공격하기 위해 레오나르도의 발명품으로 아르노 운하를 파고 있다. 근데 아프리카 흑인 시체 네 구와 고릴라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그들에게선 레오나르도의 해부 흔적이 있다. 함께 작업을 하던 그는 사라지고 없다. 그의 제자였던 두란테는 해부의 흔적에서 어떤 단서를 발견한다. 그리고 두란테의 아내 지네브라는 마키아벨리와 연인사이로 변한다. 공사현장 곳곳에서 레오나르도가 새로운 비밀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이에 마키아벨리는 그 흔적을 좇는다. 그리고 리보르노에 닿는다. 그곳에서 괴상한 수집품과 새로운 시체를 만난다. 레오나르도는 어디에 갔을까?  

 

 소설은 초반에 레오나르도를 찾기 위한 마키아벨리의 노력을 다룬다. 그 흔적을 따라간 두란테는 시체로 발견되고, 그마저도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을 만난다. 과연 그가 만들고 있다는 비밀무기는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일까? 사실 중반쯤에 그 비밀무기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다. 단서를 너무 많이 흘려놓아서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비밀무기는 마지막에 가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에 의해 과거가 새롭게 해석되었다고 해야 하나?  

 

 마키아벨리는 레오나르도를 만나기 위해 참 많은 위험을 무릅쓴다. 자객은 언제나 그의 목숨을 노리고, 정적과 음모는 그의 주변에서 멈추지 않고 맴돌고 있다. 음모의 대가라고 자부하던 그가 음모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 과정을 제대로 즐기려면 그 당시 이탈리아 역사에 해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들은 이름들이 나오는데 그 시대를 잘 모르니 어떤 의미고, 왜 그런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재미가 조금은 반감되었다. 하지만 예전에 만나지 못한 새로운 신학 해석은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너무 꼰 듯한 사건들은 뒤로 가면서 밝혀지지만 명확하게 정리되어 다가오지는 않는다. 머리가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전체적인 윤곽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소재로 사용한 것들은 경이롭다. 레오나르도가 고대 그리스인의 기록을 참고하여 만들었다는 기계는 현대 과학의 결과물에 뒤처지지 않는다. 다 빈치의 노트가 실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된 현실에서 그의 아이디어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수없이 많은 위협과 고통을 겪는 장면들을 보면서 그 당시를 다룬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너무 쉽게 다룬다는 점이다. 결국 탐정이 모든 것을 파헤치는 것은 현대 수사물과 다른 점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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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라디오 존 치버 단편선집 1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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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존 치버란 작가에 대해 잘 모른다. <불릿파크>란 장편이 호평을 받았기에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소개 글을 보니 레이먼드 카버와 함께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카버의 소설들이 나의 독서법과 맞지 않아 조금 고생한 기억이 있지만 작가의 명품 컬렉션이란 광고 문구에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만난 것은 나의 예상과 너무 다른 현실들이다. 이 단편선집이 네 권 나왔는데 아직도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적응 중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기괴한 라디오란 제목에서 조금은 환상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다. 이런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물론 <기괴한 라디오>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것을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소시민과 중산층의 삶을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삶이 결코 낭만적이지도 환상적이지도 풍요롭지도 않기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미국 중산층에 대한 환상이 무너진다. 물론 대공황 시대를 다루었다면 이해한다. <분노의 포도>에서 그 처절한 삶을 이미 읽었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 소설 대부분은 그 시절 이후다. 나의 상식과 조금 동떨어진 묘사와 서술이 뭉뚱그려 표현된 미국 중산층 집단이 아닌 개인을 돌아보게 한다. 아마 이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섯 편의 단편이 있다. 이 단편들 모두가 나의 가슴에 와 닿았다면 거짓말이다. 나의 몸 상태나 삶의 경험이나 그때그때의 집중도에 따라 조금씩 몰입하는 것이 바뀌었다. 초반에 집중력을 잃다 후반에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것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갑자기 끝나면서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지 고민한 작품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시선을 더 끈 것은 역시 다양한 현실 속에 놓인 개인들이다. 완고하고 괴팍한 동생이나 그냥 그런 일상이나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하거나 이루지 못한 사랑이나 자선을 받는 입장에서 베푸는 입장으로 돌아서는 사람 등이 작가의 섬세한 문장 속에서 숨겨져 있거나 돌출되어 나타난다. 그 하나하나가 어쩌면 우리의 삶일 것인데 미국이란 환경 때문인지 쉽게 가슴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이것은 상당히 아쉽다. 나의 부족함 탓이다.  

 

 현재 느끼기에 존 치버란 작가는 아직 나에게 문을 완전히 열어주지 않았다. 매일 기침을 하고, 출퇴근길에 붐비는 전철에서 읽다보니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순간 몰입에 빠지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준다. 아직 그와 나는 호흡을 맞추지도 못했다. 언제 그와 호흡이 맞는 날이 오면 아마도 정신없이 그를 찬미할지 모른다. 부드럽게 읽히고, 솔직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 글들이 행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다가올 것이다. 그때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 작가의 다른 단편을 한두 권 더 읽고 난 후 그와의 궁합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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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그래픽 노블)>를 리뷰해주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보경 옮김, 케빈 코넬 그림, 눈지오 드필리피스.크리스티나 / 노블마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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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피츠제럴드는 언제나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다. 사실 이 소설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아직도 머릿속으로 가슴속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없다. 대단한 인기를 얻는 작품 몇 편들이 두 번 정도 읽어도 그 재미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하지만 놀라운 발상을 가진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작가의 이미지를 깨트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편을 만화로 표현했다니 그냥 지나가기가 더욱 어렵다.  

 

 먼저 만화를 보았다. 그림체가 일반적인 코믹스와는 다르다.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강한 동작을 살리기보다 이야기를 재현하는데 노력을 들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놀라운 이야기 때문인지, 그림으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인지 술술 넘어간다. 마지막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 시간을 거꾸로 살아간 벤자민 버튼의 삶이 새롭게 다가온다. 인생을 이렇게 완전히 반대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줄거리는 버튼 가족 이야기에서 벤자민이 70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들을 바란 아버지의 기대는 무너지고, 이 놀라운 사건은 사회 이슈가 되어야 하지만 남북전쟁으로 조용히 묻히고 만다. 이런 사회 문제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아버지 로저의 행동이다. 70대의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어린 아이들과 어울려 놀라고 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이를 가진 일반 부모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니 정확히는 늙은 외모 뒤에 숨겨져 있을 것으로 믿는 아이의 순수성을 기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대는 자신의 시가가 조금씩 사라지는 현실로 깨닫게 되지만 그 나이의 아이에게 바라는 바가 완전히 사라질 정도는 아니다.  

 

 이후 벤자민은 점점 젊어진다. 20대에 50대의 외모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는 점점 어려지고, 아내는 점점 늙어간다. 두 시간이 만나는 시점도 있지만 비켜간 시간 속에 자신의 모습과 달리 늙어가는 아내가 추해 보인다. 삶은 함께 걸어가면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이 늙어가는 것이란 말에 비켜났다. 이것은 그와 아들의 관계에서도 어긋난다. 늙어가는 아들에 비해 어려지는 아버지의 관계는 이제 다른 사람들에겐 역전되어 보인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삼촌이라고 불러라고 하는 그 순간에 말이다.  

 

 이 단편 소설은 많은 분량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루지도 않는다. 시간을 거꾸로 살아가는 한 남자를 간결하고 빠르게 보여줄 뿐이다. 감정의 깊이를 깊게 다루지도 않고, 기발한 사건을 만들어 환상에 잠기게 만들지도 않는다. 물론 설정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삶에 대한 많은 이해와 관계가 담겨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부부의 삶, 늙음과 젊음, 같음과 다름, 자신과 타인 등등 수많은 이야기와 삶이 들어있다. 판타지의 외피 밑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곤 처음 만화로 볼 때는 몰랐다. 원작을 읽고 난 후에도 만화가 충실히 그려졌다고 먼저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책을 읽기 전후에 가진 의문이 하나 있다. 70대 늙은이로 태어난 벤자민은 어떻게 엄마의 자궁을 통해 나왔을까 하는 것이다. 설정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지만 뱃속에선 이렇게 거대한 성인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에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소설 읽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가 원작을 잘 표현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가 될 것 같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스콧 피츠제럴드의 새로운 점을 보게 된다. 영화를 만화로 다시 보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나 영화보다는 원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습관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버튼 부부는 자신들의 아이가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그런 사실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말이다.”(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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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니스트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안문영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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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을 둔지 오래되었다. 다른 읽을 책이 많기도 하였지만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손에 들고 열심히 읽었다. 왠지 모르게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아마 책 소개에서 ‘향수’와 비견되는 작품이란 평 때문인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향수’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고 얼마 전 영화로 보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책 소개 때문인지 모르지만 첫 부분을 읽을 때부터 ‘향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특이한 삶을 다룬다는 것에서 그 느낌은 더 강해졌다. 하지만 두 소설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풀어가는 방식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향수’가 향수를 위해 엄청난 살인을 저지른다면 이 책은 살인 자체를 싫어한다. 공간도 전작이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는 반면에 이 책은 한 지역에 협소하게 파묻혀 있다. 번잡한 도시와 좁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사랑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는 인물과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한 인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요하네스 엘리아스 알더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에쉬베르크는 집성촌이다. 그가 사랑한 여인 엘스베트나 그를 사랑하는 페터나 모두 그의 사촌이다. 이런 외형적 관계와 상관없이 그를 사로잡고 사로잡힌 인물들과의 관계는 소설의 중심축이다. 엘리아스가 죽는 것도 이 둘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리와 음악에 대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도 오르간을 그 누구보다 멋지고 아름답게 연주할 줄 아는 엘리아스의 능력은 천재란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한다고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 재능도 좁은 지역과 사로잡힌 사랑의 감정 때문에 찬란하게 빛을 발하지 못하니 정말 안타깝다.  

 

 엘스베트에 대한 엘리아스의 사랑을 다룬 대목을 보면 그가 집착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떠돌이 엉터리 설교사의 “사랑하는 사람은 잠들지 않는다”라는 말에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은 그가 지닌 강박관념을 잘 드러내어준다. 사랑하는 엘스베트를 생각하며 연주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문장과 장면으로 가득한데 그 재능을 가장 아름답고 벅차오르게 표현된다. 특히 마지막 연주 장면은 그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지는 못하지만 그 상황에 빠져들어 그의 재능에 찬사를 보내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된다. 실제 구현한다면 어떤 음악일까? 악보로 남겨진다면 누군가 연주하는 것이 가능할까? 등등.  

 

 재미난 장면도 보이고 그 재능에 부러움과 놀라움을 가지지만 책 속에 지속적으로 집중하지는 못했다. 시대와 공간의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묘사 때문인지 약간 답답함을 느낀다. 절제된 듯한 상황과 전개는 다음 기대를 높여주지만 그 기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재능이 절정으로 표현된 장면에서 이어지는 사족 같은 설명들은 약간 지루하기도 하다. 그 설명들이 그 시대와 그 인물에 대해 더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기보다 겉도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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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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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제야 읽었다. 한동안은 이 작가의 책이 언제 출판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이제는 몇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다행이다. 많이 말해지는 외국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지 않으면 호기심이 많이 생긴다. 읽고 나면 별것 없네 하는 마음도 생기지만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러다 가끔 마음에 맞는 작가가 생기면 더 많은 갈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때마다 원서를 읽을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지기도 한다. 

 

 Y의 비극 ‘88 월광게임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Y의 비극이란 이름에서 엘러리 퀸의 작품이 연상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이야기의 화자이자 작가의 이름과 같다. 엘러리 퀸의 작품도 화자는 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퀸의 소설에서 탐정이 퀸인 반면에 아리스가와의 소설에선 그가 속한 미스터리 동호회의 선배 에가미가 탐정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학생시리즈의 경우 에가미 시리즈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것 외에도 퀸의 소설처럼 작품의 중간에 독자에 대한 도전장을 던진다. 퀸의 소설에서도 실패를 자주 하였지만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대한 정보는 책 후반에 나오는 후기에 잘 나온다.  

 

 초반을 읽으면서 고전 서양 미스터리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화산으로 고립된 산을 배경으로 펼치는 밀실 미스터리는 옛 향수를 불러온다. 신본격의 기수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거대한 산을 밀실로 만들어놓고 한 여자의 실종과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그들과 함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사라진 두 인물을 말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순수하게 그들 속에서 알리바이와 단서를 추적하면 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 덕분에 괜히 다른 방향도 검색을 한다. 어설프게 읽은 독자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끔 이전 기억 때문에 범인을 쉽게 맞추기도 하지만 대부분 놓친다. 작품의 특성을 무시하고 다른 소설의 영향 아래 놓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밀실과 같은 분리된 화산이라는 공간과 그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살인이 벌어진다면 분명히 범인은 그들 중에 있다. 이런 고정된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작품도 있지만 이 소설은 엘러리 퀸을 존경하고 그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고전 추리작가 중 가장 독자들과 공정한 시합을 펼친다는 퀸의 방식을 따른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 남겨진 다잉 메시지.   

 

 

 이 소설을 재미있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자가 속한 동아리가 미스터리 동호회라는 것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평을 하고, 트릭을 분석하고, 만드는 그들이 아닌가. 덕분에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이 다른 추리소설을 인용하는 장면에서 옛 기억을 더듬기도 한다. 읽지 않은 작품에선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뭐 이런 방식도 이미 다른 작가가 사용한 것이기는 하다. 그것이 딕슨 카였던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약간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장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사실 작가의 초기작이다 보니 조금 허술한 면이 보이기도 한다. 재능은 돋보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구성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약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매력적이다. 상황을 만들고, 진행하는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거의 20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 겨우 학생 아리스가와 시리즈가 4권 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 아쉽다. 그 4권도 작년에 나왔다고 한다. 아직 이 시리즈의 첫 권만 읽은 나에겐 3권이나 남았다는 즐거움이 있다. 뒤로 가면서 더욱 완성도가 높아지는 듯하니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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