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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괴환상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란포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이 통신을 통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당시 통신에 번역된 단편소설들이 올라오곤 했는데 그때 읽은 작품이 <인간의자>다. 당시 기발한 착상과 진행과 반전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후 <음울한 짐승>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때도 역시 감탄했다. 이번을 포함하면 세 번 읽게 되는데 길지 않은 분량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늘 색다르게 다가온다. 늘 단편으로만 읽었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나의 취향과 잘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후기를 보니 그 이유가 있었다.
이번 단편집엔 22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2편(<공기사나이>, <악령>)은 미완성작이다. 이 두 편을 읽으면서 갑자기 끝나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었다. 두 작품은 모두 초반에 흥미를 불러오지만 끝부분이 갑자기 변하고 의문을 달게 한다. 장편으로 발전했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보지만 아마 단편처럼 매력적일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단편으로 잘 마무리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전단편집이라고 하지만 실제 이 단편집에 실린 것은 란포의 소설 중 일부일 뿐이다. 란포 전집이 18권임을 생각하면 극히 일부만 실린 것이다. 하지만 이 3권들은 란포의 대표작일 수는 있다. 먼저 나온 1권에 실린 단편들이나 아직 나오지 않은 2권이 본격 추리를 다루고 있다면 이번 3권은 제목 그대로 기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본격추리에서 추구하는 트릭이나 범인은 누구?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과 분위기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한 번 그 괴이한 분위기에 빠지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단편들을 읽으면서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에 빠져들지만 어딘가에 본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이것은 이미 읽은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쌍생아>처럼 츠카모토 신야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목이 같아서 혹시 했는데 그 분위기와 전개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졌고, 검색으로 확인하였다. 이 단편을 보면서 오히려 옛 영화의 기억을 되살리며 더 많이 이해했다면 조금 이상할까!
<인간의자>를 비롯하여 강한 인상을 주는 몇 작품이 있다. <붉은 방>, <고구마벌레>, <방공호>, <메라 박사>, <거울지옥>, <벌레> 등이다. 앞의 두 작품과 마지막 두 작품은 이미 다른 곳에서 읽었지만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붉은 방>은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마지막에 터트리는 반전이 절묘하고, <벌레>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저지른 살인과 집착과 광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강하게 그려주면서 시선을 끌었다. <방공호>는 한 남자에게 남자와 여자가 하룻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식인데 앞에 이야기한 남자의 환상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뒷 여자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만난 한 남녀의 하룻밤 이야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대단하다. 문득 원효대사의 고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메라 박사>와 <거울지옥>은 거울이란 소재가 눈에 들어온다. 요즘은 너무 일상적이라 느끼지 못하지만 한때는 거울이 지닌 마력에 많은 사람들이 휘둘렸다고 한다. 거울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나를 비추어주면서 나와 반대로 있는 거울 속 존재는 참으로 매력적인 모양이다. 가끔 동양 판타지에서 거울은 악마를 물리치는 도구로도 사용되는데 이 점도 기억할 대목이다. 특히 <거울지옥>에서 거울이 비추어주는 자신의 다양한 모습에 빠지고 만 남자의 일생은 정말 기묘하다. <메라 박사>의 살인 방법은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생각하지만 달빛과 음산한 분위기가 잘 조화를 이룬다면 어떨까? 기이하고 절묘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