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2]의 서평을 써주세요.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뫼비우스 서재
칼렙 카 지음, 이은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뉴욕은 패션과 예술과 금융의 도시다. 그 휘황찬란한 불빛과 높게 치솟은 마천루들은 세계의 수도로 불리며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으로 돌아가면 그 도시는 참혹한 광경으로 가득하다. 물론 현대도 그런 모습이 밝은 빛 아래 그림자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만나는 뉴욕은 암흑과 어둠이 빛을 삼킬 정도다. 살인과 강간과 부패와 가난과 마약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 남자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그는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장례식장에서 1896년에 있었던 한 연쇄살인 사건을 떠올린다. 그 사건은 너무나도 잔혹하고 처참하다. 10대의 소년이 눈이 파헤쳐지고 성기가 잘린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이를 본 당시 뉴욕 경찰청장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자신과 친분이 있던 정신과의사 크라이즐러와 존 무어에게 은밀하게 사건을 수사할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 직원 세 명을 지원한다. 최초의 여자경찰인 새러와 유태인 경찰 아이잭슨 형제다. 이들은 당시 범죄자와 결탁한 부패한 경찰들과 다른 존재들이다.

 

새러는 최초의 여경이란 점도 있지만 독립심이 강하고, 남성 위주의 팀에서 여성의 시각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가끔 그녀의 의견을 듣다보면 남자들이 보지 못한 현실적인 부분이 잘 드러난다.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를 발견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다. 그 시대에 여성의 참정권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 아이잭슨 형제는 소설 속에서 과학수사를 펼치는 인물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그 시대에 지문이 법적 증거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불과 십 수 년 전 DNA 검사가 떠오른다. 이 형제가 지문으로 동일범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나 현장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장면을 보면 드라마 CSI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이들은 주먹구구식 수사를 한 단계 높이고, 추론이 아닌 증거에 의한 확신으로 인도하는 존재다.

 

이 팀을 구성하고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크라이즐러는 탁월한 정신과 의사다. 정신과 의사로는 탁월하지만 법의학자로서 그는 아직 초보단계다. 자신이 가진 심리학 지식과 풍부한 경험은 현장에서 나온 증거와 상황을 분류하고, 조합하고, 방향을 설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가끔 자신의 과거 때문에 벽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은 발군이다. 그리고 화자인 존 무어는 뉴욕 타임즈 신문기자다. 그의 능력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지만 팀의 기둥이다. 함께 발로 뛰고, 팀 각자에게 영감을 주고, 단서를 좇는 능력은 현장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한다. 그 동안 쌓은 기자의 경험은 막힌 곳을 뚫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가장 인간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 다섯 명은 현재라도 멋진 과학수사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19세기 말이다. 현재라면 법이나 다른 경찰들의 충분한 도움으로 수사에만 몰두할 수 있을 테지만 그 당시엔 그것이 쉽지 않다. 경찰청장 루스벨트가 그들을 고용했다는 것이 드러나면 정치적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또 그들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에 반감을 품은 조직도 존재한다. 우연히 드러난 참혹한 사건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연속적인 연쇄살인임이 밝혀지지만 몇몇을 제외한 그 누구도 진실을 좇길 바라지 않는다. 부패한 경찰은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무능이나 부정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고, 종교 지도자는 이 사건으로 자신들의 권위가 약해질 것을 겁낸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그들은 단서를 찾고, 단서를 따라가서, 증거를 찾고, 증거에서 범인을 찾아낸다. 모아진 자료로 범인상을 찾는 수법은 굉장히 현대적이다. 물론 빠른 속도로 정보가 교환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더디고 지루한 과정이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재미난 광경이기도 하다.

 

사실 이 소설은 다른 추리소설처럼 단숨에 읽히지는 않는다. 적지 않은 분량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19세기 말 뉴욕의 풍경이 세밀하게 그려지면서 머릿속으로 그 시대를 재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화려함보다 어두움이, 세련되고 멋진 사람들보다 삶의 저 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현재의 환상에서 만들어진 뉴욕의 이미지가 산산조각난다. 하지만 그 당시 정신의학에 대한 수준을 알아보는 재미도 있다. 그 시대의 풍경과 삶은 고증에 의한 사실로 다가오지만 수사팀의 놀라운 수사능력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의문이 조금 생긴다. 그래도 이 한 권의 책으로 19세기 말 뉴욕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여행이 결코 밝고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사실적으로 19세기 말 뉴욕의 풍경을 그려내었다. 과학수사의 태동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CSI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나 과거의 풍경이나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소위 '뉴욕 사교계' 스타일에 맞출 수 있는 돈과 만용을 가진 신사 숙녀들 사이에 있을 때보다 폭탄을 던지는 반정부주의자의 마음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때는 없을 것이다. 정장과 드레스 차람에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고 향수 냄새를 풍기는 전설적인 뉴욕의 최상류층 출신 4백 명이 다양한 측근들을 거느린 채 이리저리 밀치고 공격하고 남의 흉을 보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이 모습을 즐기는 구경꾼들은 흥미롭지만 초대받지 못한 불운한 방해꾼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2권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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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뿔(웅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금 소설이다. 이 얼마나 매혹적인 단어인가!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수많은 야동이나 포르노를 다운받아 볼 수 있지만 예전엔 미성년자 관람불가란 영화조차 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19금 소설을 접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19금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얼마나 야하거나 잔인할까 하는 기대로 말이다.

 

19금 소설인 것은 잔인한 장면 때문이 아니라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섹스 장면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된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대담하다. 지금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묘사한 문학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누아르 소설의 고전이라고 하니 단순한 포르노 문학으로 취급할 수 없다.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에 음주와 섹스 장면을 제외하면 그 시대의 풍경을 드러낼만한 장면도 많지 않다. 너무 그런 장면에 눈길이 많이 가고, 집중을 한 탓인가? 하지만 더 관심이 가는 대목은 그 시절 미국에서 과연 그런 성적 자유분방함이 가득했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종 문제와 복수에 걸림돌이 되는 사실은 아니다.

 

한 남자가 시골 마을 서점에 취직되어 온다. 그의 피 속엔 1/8 정도 흑인의 피가 섞여있다. 그런데 이 정도만 되어도 그 시절엔 당연히 흑인으로 분류했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흑백 인종 차별이 그 시절엔 더욱 심했을 것이다. 주인공 리가 여자들에게 흑인에 대해 묻자 그녀들이 말하는 대목에서 그 혐오감이 잘 드러난다. 그들에겐 흑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역사 기록을 보아도 이것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외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리는 하얀 피부에 금발을 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백인이다. 하지만 법과 백인들은 그를 흑인으로 취급하고,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동생이 단지 백인 여자를 사귀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복수를 위해 이 마을에 왔다.

 

흔히 일반적인 복수는 그 대상에 직접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그 분명한 대상이 아닌 다른 여자들에게 복수의 칼날이 향한다. 이 때문에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의 원대한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현실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모습을 다루기 위해 자극적인 장면과 상황을 설정한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깊이 있는 상황 설정과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문학적 성취도도 부족하다. 이 점은 작가도 알고 있다. 재미란 측면에서 본다면 자극적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고, 빠른 진행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현실의 높은 벽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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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근 육백 쪽에 달하는 소설이다. 요즘 같은 연말 분위기에서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무리다. 보통의 장르 소설처럼 휙휙 넘어가지도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 제38회 맨부커상 수상작이기까지 하다. 이름난 문학상 수상 작품들이 쉽게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일반 사람들이 쉽게 찾지 못하는 것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이 아닌가! 또 이 책을 극찬한 살만 루시디의 <한밤중의 아이들>을 아주 힘들게 읽었던 기억도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하지만 이런 예상들은 쉽게 무너졌다. 이틀 만에 모두 읽었다. 출퇴근 시간과 토요일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빠른 시간이다.

 

 

이 소설은 예상보다 빠르게 읽혔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우리의 과거나 현실과 겹쳐 보이고, 불과 이십 수 년 전의 삶이 지금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 중 일부분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니다. 그 심층까지 헤아리지 못한 나의 책읽기가 옮긴이나 평론가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조금 많은 것을 담은 책은 이런 어려움이 늘 있다. 그것 때문에 읽은 후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들기는 한다.

 

인도의 한 지역인 칼림퐁과 미국 뉴욕을 공간적 배경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칼림퐁의 초오유는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사는 집이다. 전직 판사 제무바이와 그의 외손녀 사이와 요리사가 거주하고 있다. 뉴욕은 요리사의 아들 비주가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인도인의 삶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 속에서 비교가 되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전직 판사 제무바이와 요리사의 아들 비주다. 제무바이는 가난한 집 아이지만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공동체 최초로 영국 유학을 가게 된 인물이다. 그 힘든 과정을 거쳐 그는 인도 사회의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판사를 역임했다. 성공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비주는 힘들게 미국 비자를 받아 들어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저임금의 노동뿐이다. 그것도 언제 이민국에 발각되어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다. 가난한 나라 인도를 떠난 두 인물의 너무나도 다른 모습은 그들의 출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제무바이는 식민지 관리의 필요에 의해 육성된 인물인 반면에 비주는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희생자인 것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모두 그 지역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란 점이다. 그 결과는 다르게 나오지만. 

 

전직 판사와 비주가 대비되는 외국생활을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다른 경험을 했다면 외손녀 사이와 그녀의 남자친구 지안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른 경험을 한다.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 그 지역의 다수를 차지하는 네팔계 인도인들의 폭동으로 다른 입장과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들의 갈등과 애증을 보면 제무바이의 과거가 생각난다. 몇 년의 짧은 유학 후 그가 느낀 자기 공동체 사람들과의 괴리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현실의 높은 벽이 자신들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자신과 전체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사이와 지안의 관계 속에 드러나는 인도의 문화와 민족 갈등 모습은 다른 매체에서 가끔 보았지만 피상적이었다. 이것을 우리의 부의 분배와 지역 갈등과 연결시키면 묘하게 유사한 점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유사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바로 비주의 삶이다. 그린카드를 위해서라면 어떤 여자와도 결혼할 수 있다고 외치는 대목과 요리사가 “이곳으로 돌아오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지지리도 가난하여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그곳에서 미국의 기회의 땅이자 부의 상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이 어떤 힘든 일을 하는지 모르는 아버지와 그 힘든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열리지 않는 기회의 문을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는 비주를 보면 7-80년대 우리의 이민사 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비자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거짓말을 하고, 쫓겨나고, 울부짖는 모습은 남의 나라 풍경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많은 대목 중 한 곳이 인상 깊다. 바로 자신의 성공에 장애였던 아내를 내치고, 그 얼마 후 생긴 딸마저 의절한 그가 외손녀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사이의 말투와 태도가 자신과 똑같기 때문이다. 서구화된 인도인이고, 인도와는 소원해진 인도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뒤로 가면 그가 키우는 개 무트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다시 그의 삶을 드러낸다. 다른 수많은 문제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그가 개의 실종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한다. 인도인들에겐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아니 판사의 이전 생활을 생각하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행동이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빠르게 읽힌다. 문장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서 그 공간과 시간 속에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재현한다. 지금도 책을 생각하면 이것저것 새롭게 떠오르는 단상들이 있다. 네팔계 인도인이나 비주의 뉴욕 생활이나 요리사의 삶이나 칼림퐁의 조연급 인물들의 허위와 허식들. 이제 예전의 미국으로 가던 우리의 이민사는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온 수많은 아시아 인물들의 이민사로 바뀌고 있고, 비주가 그렇게 고생하던 뉴욕의 저임금 생활은 한국의 불법체류자 문제와 연결된다. 이런저런 단상들이 이제 조금씩 이 책의 가치를 더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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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귀울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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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작가의 추리 단편집을 이렇게 기분 좋게 읽은 것도 참 오랜만이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들이 훈훈한 감정을 전해준다면 이 소설은 은연중에 온다 리쿠 특유의 분위기가 깔려있다. 노스탤지어의 마술사란 말처럼 아련한 그리움과 작품 가득 보이는 유쾌함은 가끔 저 깊은 곳에서 서물서물 올라오는 어둠과 함께 긴장을 풀고 조이고 한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사건의 재구성과 문득 깨닫게 되는 진상은 시선 저 끝에서 꿈틀거리는 악의와 섬뜩함으로 순간 오싹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의 광고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단 하나뿐인 본격 미스터리 컬렉션이란 점이다. 많이 읽지 않은 그녀의 작품들에서 잔잔히 깔려있는 미스터리를 자주 접했기에 약간은 의아한 부분도 있지만 본격이란 단어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전직 판사 세키네 다카오와 그의 아이들이 탐정으로 활약한다. 사실은 거의 대부분 다카오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 전직 판사는 풍부한 경험과 놀라운 직관을 보여주는데 예전에 읽은 미스터리 소설 속 명탐정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세 남매 중 두 명이 보여주는 추리대결도 독자인 나는 이미 간파했지만 놀라운 추리능력을 보여주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만든다.

 

열두 편의 단편 추리소설이 실려 있다. 대부분 마음에 든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실 확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탐정역인 다카오의 추리가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게 설명되지만 그것이 명확한 사실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이것은 작가가 후기에서 말한 ‘설득’과 ‘납득’의 문제이기는 하다. 분명히 독자와의 대결은 불공정한데 독자가 그 추리를 충분히 납득하게 된다면 혹은 즐기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럽지 않나 생각한다. 여기서 가끔 나 자신이 말하는 독자와의 공정한 대결이란 부분과 조금 충돌하기는 한다.

 

개인적으로 <급수탑>,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 <대합실의 모험>이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다. <급수탑>는 추리가 끝나고 길은 나서는 순간 느껴지는 오싹하고 섬뜩한 악의가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그 추리를 되새겨보게 한다.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는 지나가는 아이들의 대화에서 시작된 의문과 추리가 또 다른 사건과 맞물려 이야기를 만드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다카오와 그의 아들 슈운이 함께 추리하는 모습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대합실의 모험>은 이 단편집에서 몇 되지 않는 명확한 답이 나오는 소설이다. <9마일은 너무 멀다>를 꿈꾸며 쓴 듯한데(불행하게 아직 읽지 못했다) 하나의 대화에서 시작된 의문이 해결되는 그 순간 즐거운 기분을 전해준다. 여기서 탐정역은 현직 검사인 아들 슈운이다.

 

최근 온다 리쿠의 책을 한 권씩 모으고 있다. 어떤 책은 취향과 맞아 떨어지고, 어떤 책은 잠시 유보 상태다. 하지만 역자의 후기를 보면서 이번 소설집에 나온 인물들이 주연이나 조연으로 나온 책들이 있다니 호기심이 부쩍 생긴다. 그 책들을 읽을 때 과연 나 자신이 그런 사실을 기억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매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단편집을 계속 내어준다면 독자인 나는 무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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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1.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그의 문장이 건조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 한 자락을 알려준다. 2000년대 초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작가 중 한 명인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2.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3.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4.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문장과 문장의 간결함과 사실적인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문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만 자신만의 글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

5.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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