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사진에 박히다 -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이경민 지음 / 산책자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사진은 언제나 사실만을 표현하는 줄 착각한 적이 있었다. 위조 사진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고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사실이 왜곡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것은 저자가 계속해서 사진 자료를 누가 재현하느냐 하는 주체를 말하는 대목과 일치한다. 예전에 본 한 장의 사진에 대한 설명은 사실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체 중 일부분만 편집하여 원래의 사실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만들어진 사진을 보고 결코 보이는 것 모두가 사실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란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모두 4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사진이란 재료를 통해서 한국 근대사를 풀어낸다. 앞에서 말한 재현 주체를 분석하고 이해하기보다 문화현상의 하나로서 사진이 어떻게 사회 속에 스며들어갔는지, 당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에 좀더 주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는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조금은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부분을 많이 다루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사와 정치와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1부는 사진과 권력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진과 권력이 무슨 관계냐고 말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쉽게 생각해서 주민등록증, 여권 사진이나 군사보호지역 등으로 묶여 촬영금지구역으로 지정된 곳을 생각하면 된다. 너무 당연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럼 지문과 사진으로 넘어가자. 지문은 DNA로 사람을 판별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많이 사용되던 범죄수사의 방법이었다. 근데 지문만 가지고 그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을까? 없다. 실물과 연결시켜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진이다. 이렇게 연관성을 맺음으로서 권력기관이 말하면 효율적인 통제수단이고, 인권단체에서 말하면 개인자유의 억압이자 잠재적 범죄자 이야기가 된다.

 

2부로 넘어가면 경성 사진관을 말한다. 이 부분은 조금 지루하다. 사진관과 사진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큰 흥미를 불러오지 못한다. 고가의 장비나 시대적 한계 때문에 벌어진 다양한 사건, 사고가 눈길을 끌지만 기록적인 면이 많아 순간적으로 몰입하기 어렵다. 이것은 3부로 넘어가 절도, 강도, 위폐 사건으로 이어지면 그 사회의 삶이 그려진다. 현재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면서 시대의 변화 속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또 박열 부부의 괴사진을 둘러싼 이야기는 저자의 말처럼 식민지 조선의 운명적 삶을 엿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둘러싼 신문화 풍경은 현재와 과거, 사진과 정치, 욕망과 금기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만 보고 하와이로 결혼하러 갔다는 이야기는 현대의 농촌 총각들의 동남아 결혼 여행을 연상시키고, 그 시대의 비극과 닮은 현대의 삶이 드러난다. 한 장의 관광사진에 담긴 정치학은 사진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욕망과 목적은 나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80년대, 90년대 청계천, 세운상가를 연상시키는 에로사진 이야기는 놀라운 신문광고와 더불어 잠시 추억에 빠지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칼비노의 다른 작품과 많이 차별되는 소설이다. 그의 다른 소설과 비교하면 이번 소설은 상당히 낯설다. 나에게 이탈로 칼비노는 환상소설 작가인데 이 소설은 이탈리아 신사실주의 작품으로 말해지고 있다. 물론 이 작품 속엔 환상소설 씨앗이 잠자고 있다고 한다.(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은 너무 사실적이라 오히려 환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도 미화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약간은 무감각하게 느껴진다.

 

소설은 핀이란 소년을 중심으로 이야기기 펼쳐진다. 핀의 나이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그는 어른들과 친하지만 자기 또래와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자기 친구들과 무리지어 돌아다니고 싶지만 아이들은 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결코 끼워주지 않는 그들을 생각하면 어른들은 잃어버린 유년기의 보상인지도 모른다. 창녀인 누나 덕분에 성적인 호기심으로 충만한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지만 그 순간뿐이다. 그러다 주변 어른들의 충동적인 요구에 따라 누나를 찾아온 독일 해병의 권총을 훔치면서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삶 속으로 들어간다.

 

십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핀이 권총을 훔치고, 이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고, 고문을 당하고, 도망가는 과정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허세를 부리고, 예전과 다른 분위기 때문에 위축되지만 과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언제나 현실이 아닌 저 멀리 환상의 공간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든다. 이런 순간 속에 만난 한 명의 게릴라 빨간 늑대는 또 다른 삶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이제 감옥이란 공간에서 산 속 레지스탕스로 바뀌게 된다.

 

산 속에서 만난 레지스탕스들은 정열적인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여자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거나 이런 저런 사유로 도망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분명한 정치 철학을 가진 것도 아니다. 소설 속 화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반대편에 존재하는 파시스트 무리들과 닮아있다. 성격적으로는 비슷하다. 하지만 역사의 평가에 의해 정반대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산 속에 있는 유일한 여자에게 보내는 끈끈한 눈길이나 서로에게 야유를 보내거나 다른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며 웃는다. 이 분대도 역시 저잣거리의 어른들과 특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핀은 잘 적응하면서도 외롭고 무섭다.

 

사실적이기에 약간 건조하고, 핀의 행보를 보면 모험소설을 읽는 것 같다. 권총을 훔치고, 감옥에 들어가고, 고문을 받고, 탈출하고,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그곳에 머무르는 이야기들이 멋진 모험처럼 느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린 그 시절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소설의 가장 멋진 장점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혀 미화하거나 악하게 묘사하지 않고, 사실대로 표현하는 그 문장들은 섣부른 감상을 막는다. 하지만 되돌아 생각하면 핀이나 그와 함께한 사람들이 머릿속에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환상이나 영웅의 모습이 아닌 현실 속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 모습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모 델피누스 - 아틀란티스의 돌고래 인간
마를리제 아롤드 지음, 김태성 옮김 / 지양어린이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는 늘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 대륙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작가들의 상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소설도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다른 소설과 달리 돌고래 인간이란 조금 특이한 접근을 한다. 그리고 마법을 통해 소년 소녀의 모험을 이야기 한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면 사실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한 편의 재미난 소설을 만나게 된다.

 

소년 마리오와 소녀 세일라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후예다. 마리오는 엄마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차이돈이란 존재에게 쫓긴다. 자신들과 유사한 능력을 가진 바다 산책자들의 도움으로 도망을 다니지만 언제나 그는 그들을 찾아낸다. 세일라는 어느 날 갑자기 바다에서 돌고래로 변신하는 주문을 외우고, 돌고래로 변신한다. 이 놀라운 재능에 놀라지만 돌고래를 좋아하기에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다 우연히 덫에 걸린 돌고래를 구한다. 그 돌고래가 바로 마리오다. 이후 그들은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 때문에 친해지고, 마리오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차이돈에게 간 엄마를 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작가는 쉽게 차이돈과의 대결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차이돈과 대결을 위한 도전 과제를 내놓고,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을 재미나게 그려낸다. 그것은 바로 우주석이다. 이것은 지구와 다른 세계를 열 수 있는 열쇠이자 마법의 돌이기도 하다. 엄마를 구하기 위해 차이돈과 계약을 하고 우주석을 구하러 가는 그들은 보면 약간은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주석을 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예상하지 못한 보물 지킴이의 반격은 느슨할 수 있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후예인 열세 살 소년 소녀의 해양모험이란 말처럼 칠대양을 누비는 그들의 모습은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상당히 도식적이다. 엄청난 고난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문제도 너무 쉽게 해결된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도 너무 쉽게 결정되고, 그 결정이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 긴장감이 고조되어야 하는 순간조차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조금 성장한 아이들이라면 글쎄 어떨까? 그럼에도 이 소설은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짧은 문장과 빠르게 변하는 장면들과 곳곳에서 발휘되는 마법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아틀란티스 대륙을 발견한 프랑스 인류학자 장 드 라 포르툰의 존재다. 우주석의 매력에 끌려 차이돈을 속이고, 마법으로 다른 세계로 넘어갈 욕망에 불타는 그를 보면 오히려 차이돈보다 더 비중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기억을 잃은 후 신문에 발표된 기사는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루어진 것이지만 재미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가 너무 쉽게 무너진 것이다. 긴장감을 주지 못한 대결이 후반으로 가면서 재미를 떨어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기욤 뮈소 지음, 김남주 옮김 / 밝은세상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감 있다.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은 쉴 새 없이 활자를 따라가게 만든다. 장면이나 상황이 허술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도 대단한 속도와 몰입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 탁월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몇 권을 읽다보니 조금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변함없이 읽게 만드는 매력이 곳곳에 놓여있다. 사랑, 운명, 과거, 현재 그리고 펼쳐질 미래를 이렇게 멋지고 빠르게 그려낼 작가가 과연 흔할까?, 묻고 싶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제목 그대로다. 15년 전 성공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던 연인과 친구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에단은 떠난다. 5년 전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셀린과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헤어진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온 유명 토크쇼 여진행자의 아이를 치료하면서 정신과의 총아로 떠오른다. 출간과 세미나와 연설과 방송출연으로 그 명성은 더욱 굳건해진다. 자신이 15년 전에 바랐던 성공이 자신의 앞에 놓인 것이다. 그런데 그 성공은 결코 행복을 가져주지 않는다. 자신 속에 점점 커져가는 공허함과 그리움과 허무함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그에게 변화의 순간이 온다.

 

도망치기, 맞서 싸우기, 이해하기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도망치기는 자신의 현실과 진실한 마음에서 도망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맞서 싸우기는 다시 하루를 살면서 전날 겪었던 실수를 막고,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마지막 이해하기는 왜 자신이 살해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에단을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준다. 이 세 과정은 모두 마지막에 가서 에단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데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이미 되풀이되는 하루에 대한 많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았지만 이 소설처럼 급박하고 속도감 있지는 않다. 이것은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죽은 에단이 다시 똑같은 하루를 맞이한다. 그 죽음은 카르마와 운명에 대한 도전이자 사실이다.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공허함과 잊혀지지 않는 사랑과 과거로부터 현실로 나타난 아이의 존재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이자 삶에 대한 새로운 기회이다. 비록 그 결과가 하루에 멈춘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멈출 수 없다. 잊고 있던 삶의 의욕과 새로운 사실들은 자신이 열심히 말했던 주장들의 실천이다. 자신의 재능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효과를 발휘하지만 결코 자신에겐 적용되지 않는 부조리한 현실은 삶의 목표와 의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을 경험하면서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다. 비현실적인 진행과 빠른 진행으로 속도감을 드러내지만 그 바탕은 에단의 사랑 이야기기다. 기욤 뮈소의 소설은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낭만적이거나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감정이나 심리 묘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장면을 나누고, 빠르게 전환하면서 독자가 감상에 빠지는 것을 막고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음 장면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 하나씩 하나씩 감정의 조각들을 깔아놓고 한꺼번에 그 감정들을 표출하는 것이다. 계산된 연출과 장면이지만 마지막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 속 한 구절 “혹시 진정한 사랑은 열정이 가라앉은 후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379쪽)로 에단의 사랑 이야기를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하라 료의 소설을 읽는다. 몇 년 전 힘들게 헌책방에서 구한 <내가 죽인 소녀> 이후 처음이다. 뭐 워낙 과작의 작가이고, 한국에 번역된 책이 이번 책 포함하여 딱 두 권이니 모두 읽기는 했다. 그 당시 기억이 희미하지만 다시 그 책을 끄집어내어 대충 훑어보니 반가운 인물들이 몇몇 보인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분위기도 다시금 되살아난다.

 

하라 료의 첫 작품이다. <내가 죽인 소녀>는 나오키 상 수상 때문에 먼저 번역된 모양이다. 절판으로 구하기 힘들지만 다시 재간된다니 다시 읽고 싶다. 이번에 읽으면서 사와자키에게 점점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건조한 문장과 황량한 분위기도 조금씩 나를 젖어들게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그 분위기가 이 소설 속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물론 희미한 기억 속 한 귀퉁이에 남아있는 한 자락의 감상일수도 있다. 하지만 필립 말로를 다시 만나고 싶게 하고, 먼저 읽었던 사와자키를 다시 만나게 만드는 매력이 강하게 다가온다.

 

가을도 저물어가는 어느 날, 오전 10시쯤 한 남자가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로 찾아온다. 한 남자를 찾는다. 르포라이터 사에키다. 그를 찾아달라고 말하면서 가이후란 남자는 20만 엔을 남겨 놓고 사라진다. 그리고 한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도신 그룹의 전 경영자였던 사라시나 슈조의 의뢰로 그를 찾은 것이다. 역시 용건은 사에키다. 그는 사라시나의 딸인 나오코와 이혼하기 위해 오기로 한 날에 사라진다. 실종된 그를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나오코가 정식으로 그에게 조사를 의뢰하고 함께 사에키의 집으로 간다. 그곳엔 한 구의 시체가 있다. 경찰수첩을 가지고 있다. 이제 단순한 실종사건이 살인사건과 연결된다.

 

사와자키를 지켜보면 필립 말로가 연상된다. 작가가 강하게 영향을 받은 탓도 있다. 건조한 문체와 낡은 블루버드를 몰고 다니면서 힘겹게 사건과 부딪히는 그와 도쿄지만 전혀 그런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 황량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그 영향력을 넘어 가슴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는 말로가 아니다. 그는 경찰과 관계가 좋지 않지만 정보를 사실대로 드러내고 그들과 더불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모습을 보면 시대 때문인지 아니면 나라 때문인지 약간 의아하다. 하지만 현실적이다. 일개 탐정이 조사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발휘되는 능력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사건은 하나에서 시작하지만 곧 두 개로 나누어진다. 사에키의 실종과 도쿄 도지사 저격사건이다. 실종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저격사건이 드러난다. 그리고 도쿄 도지사 선거와 관련된 또 다른 사건과 엮여있다. 이 속엔 인간의 욕망과 야망과 사랑이 뒤섞여 있다. 오해와 거짓말은 진실을 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과거로부터 날아오는 소식은 회상에 잠기게 한다. 사와자키를 따라가다 보면 단서들이 주어지고, 그 단서는 다른 사람들의 오해 속에서 왜곡되어 전달된다. 작가의 교묘한 술책이지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마지막에 그가 사건 내막을 해설하는 두 장면이 강한 인상을 주는 것도 바로 이런 장치들 때문이다. 조금 고전적인 해설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복기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소설의 매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결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문장과 분위기라고 할까?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문장과 구성이라고 할까? 그것도 아니면 황량한 분위기와 왠지 모를 외로움을 몰고 다니는 사와자키와 그의 활약 때문일까? 수많은 의문이 생기고, 그에 대한 답을 해본다. 왠지 모르게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지만 뒤로 가면서 점점 빨려 들어간다. 옛 책을 뒤적이며 이번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과 블루버드를 다시 만나 반가운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