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앤드 커맨더 1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소설치고는 읽기 고약하다. 19세기 초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단순히 모험소설이나 해양소설로만 읽혔다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부에 나오는 배와 운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곳곳에 나오는 외국어 등으로 쉽게 빠져들지 못하게 한다. 역자가 고백했듯이 수많은 지명과 작가와 언어들은 역자의 주로 만난 덕분에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가끔은 책 속도에 지장을 준 것도 사실이다. 지명에 관해서는 차라리 지도 한 장을 첨부한 후 필요한 독자가 찾아보게 만들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몇 년 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사실대로 말해서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이 시리즈가 미완성본을 포함하여 21권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 중 한 편을 영화로 만들었다. 오락영화로 보기엔 나쁘지 않았지만 소설에서 느낀 재미를 충분히 누리기엔 조금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책 속에선 배의 움직임과 함포전의 이유와 독자에게 설명되어지는데 영화 속에선 단순히 보여질 뿐이다. 거대한 배가 항해하고 싸우는 장면이 멋지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그냥 화려함만 다가온다. 화려한 영상이 주는 장점이 책보다 못한 몇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읽으면서 유럽의 18-9세기를 사실적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비인간적이고 비위생적이고 수많은 문제가 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전투에 참여하고, 매일 술을 마시고,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태형에 처하고, 겨우 한 사람 누울 공간 밖에 주지 않는 등의 일이 있었다. 선원이나 함장이나 모두 배를 타고 나가서는 적국의 배를 공격하여 노략질할 생각만 가득하다. 책 후반부에 가면 그들이 우편선 호위임무로 얼마나 큰 낙담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적의 상선 등을 공격한 후 전리품을 챙기면 배의 선원 모두에게 상금이 배당되니 당연하다. 그리고 그들은 뭍으로 들어와서는 그 돈을 흥청망청 사용한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다. 이것은 현대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두 주인공 잭 오브리와 스티븐 머투린은 음악 연주장에서 처음 만난다. 첫 만남은 결코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잭은 함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있었고, 스티븐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첫 만남이 있던 날 잭은 소피 호의 함장으로 임명된다. 그가 기대한 배는 아니지만 대위로 오랫동안 머물렀던 그에겐 꿈같은 소식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가던 길에 다시 스티븐을 만난다. 이 두 번째 만남으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가진다. 그리고 둘은 함장과 군의로 소피 호를 타고 바다를 누빈다. 밑바닥부터 배를 경험한 잭에겐 소피 호에 탄 선원들이 부족해 보인다. 고되고 반복적인 훈련과 수많은 전투의 승리로 점점 성장하는 그들이 그려진다. 이제 이야기는 바다를 배경으로 소피 호의 흥미진진한 항해로 이어진다.

 

읽을 당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다 읽고 난 지금 생각보다 많은 것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두 주인공의 관계와 그 시대의 풍경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리고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불행한 과거 때문에 죽은 제임스 딜런 대위.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더 복잡하게 회오리친다. 고역이었던 부분들이 사라지고, 장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거대한 함선전의 모습은 예전에 본 영화의 잔영으로 머릿속에서 재구성된다. 한 여인을 두고 벌어지는 질투와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토로하는 모습은 전투의 막간에 등장하는 휴식처럼 느껴진다.

 

역자의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수많은 라틴어를 비롯한 스페인어 등이나  인용되는 유명인의 이름에 대해서 단 하나의 주도 달지 않았다고 한다. 원서를 읽는다면 그냥 고민하다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번역서의 장점이 이 책에선 드러난다. 읽기 고약하지만. 또 지금 우리가 바다가 아닌 우주를 꿈꾸듯이 그 시대는 바다를 꿈꾸었다는 사실이 너무 새롭게 다가왔다. 과연 이 책은 몇 권까지 번역될까? 아마 이변이 없는 한 21권까지 번역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번역되길 바란다. 읽을 때보다 지금 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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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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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가지 정보 오류부터 바로 잡고 가자. 뒤표지에 나오는 인기 장편 순위에서 1,2위를 다투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정확히는 평론가들의 순위다. 이 정보를 보고 처음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한때 판타지, sf순위에서 1,2를 다투던 것이 <반지의 제왕>과 <엔더의 게임>이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의 후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면 기억이 잘못되었다고 나의 기억력을 탓했을 것이다.

 

젤라즈니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것은 역시 그의 장편 <앰버 연대기>다. 역자는 이 소설을 <내 이름은 콘래드>, <신들의 사회>와 같이 sf신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역시 <앰버 연대기>다. 판타지와 sf가 교차하고, 그 경계를 걷는 주인공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앰버 연대기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이 소설도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지 않았다면 어떨까?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이 중편이나 장편으로 독립될 수 있다. 1부는 주인공 싱어가 외계의 암살자를 막기 위해 자신이 사냥한 변신수를 풀어서 사냥하는 내용이고, 2부는 사냥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그가 사냥감으로 변한 후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2부가 더 재미있었다. 1부의 내용은 전개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전개와 설정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집중이 필요했다. 그리고 예상을 깨고 너무 간략하게 마무리되면서 혹시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도 생겼다. 젤라즈니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다보니 그의 특징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전투 장면에 세밀한 공을 들이는 작가가 아님을 말이다.

 

2부에선 사냥꾼과 사냥감이 바뀐 현실에서 싱어와 캣의 관계, 이 둘을 둘러싸고 싱어를 도우려는 텔레파스들의 노력과 시도가 싱어의 변화 속에서 속도감 있게 다가온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선 나바호 인디언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나바호 인디언의 신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소설들과 함께 sf신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한 모양이다. 평론가들이야 작품을 하나씩 분석해야 하니 이런 분석이 의미 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얼마나 그 신화가 소설 속에 재미있게 녹아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잘 녹아있다. 그리고 토니 힐러먼에게 책을 헌정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원제목은 <EYE OF CAT>이다. 여기서 캣은 싱어를 사냥하는 외계 변신수인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무력하고 권태로운 삶을 살던 그를 바꾸어놓은 존재다. 캣은 놀라운 변신 능력도 있지만 텔레파시로 마음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중심은 대부분 싱어를 따라가는데 가끔 등장하는 캣과의 대화는 싱어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둠과 아픔을 건드린다. 사냥감이 되어 도망가면서 공포를 느끼고, 놀라고, 긴장하면서 그는 점점 나바호의 원형을 찾는다. 과거와 달리 뒤바뀐 두 존재의 내면과 상황이 주는 재미와 판타지와 결합한 SF가 주는 재미가 공존한다. 대충 보면 간략한 서술이나 묘사 같지만 좀더 집중해서 문장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세밀한 풍경이 그려진다. 그럴 때면 속도는 뚝 떨어진다. 하지만 잘 몰랐던 재미를 발견한다. 중간 중간 나오는 뉴스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시대 풍경을 , 생략된 사건의 결과를 알려준다. 재미난 장치다.

 

길, 걷는다, 달린다. 이 단어들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다가온 것들이다. 이 단어들 때문에 <앰버 연대기>를 많이 연상한 것도 사실이다. 판타지와 SF의 결합이라기보다 그 경계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단어들 때문이다. 싱어가 자신을 찾아 길을 걷고, 달리듯이 나 자신도 책을 걷고 달리는 속도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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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한 남자가 마약에 취해 운전하다 사고를 낸다. 그 사고로 그는 전신 화상을 입는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포르노 배우이자 제작자였던 과거의 영광은 모두 사라졌다. 전신 화상으로 움직이기도 힘든 그는 퇴원하면 자살을 할 계획이다. 이런 그에게 한 여자가 찾아온다. 이름은 마리안네다. 그녀가 뱉은 첫말은 그가 세 번째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무려 700년 전의 이야기다. 여기서부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과거 속 사랑이야기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소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는 보통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반면에 화자인 주인공은 윤회를 거듭한 것 같다. 마리안네가 세 번째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부분은 그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생각하면 나의 상식에선 조금 이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역사의 상식과 다른 부분이 많다. 이것은 그녀가 남긴 유산에 대한 연구와 설명으로 드러나는데 여기서 작가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기보다 독자에게 떠넘겨버린다. 정확한 정체를 단서와 유산으로 해석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화자가 중간에 계속 이야기하는 정신분열증 때문인지 헛갈린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아서 어떤지 잘 모른다. 만약 로맨스 소설이 이 소설처럼만 쓰여 있다면 아마 가끔 찾아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나오는 보통의 로맨스 소설과는 다르다고 하니 이 소설만 특별할 것이다. 화려한 광고문구와 책에 대한 이력은 분명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이니 당연히 쉽게 읽힐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나에겐 그렇게 쉽게 읽히진 않았다. 세부 묘사가 치밀하고,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만들고, 세밀한 심리 묘사가 속도를 충분히 내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 바쁜 나의 일상과 피곤함도 큰 작용을 하였다.

 

이 책은 사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풀어내려고 마음먹고 천천히 분석하면 할 이야기가 많다. 두 주인공의 과거와 관련된 부분부터 다른 연인들의 정사(情死)나 작가가 본 일본의 모습 등 상당히 많다. 단테의 지옥편을 패러디 했다는 내용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어떤 부분이 과연 다른 작가의 작품과 유사하다고 평을 받는지도 분석의 대상이다. 할 이야기가 많다보니 오히려 복잡해서 적을 것이 없다. 읽고 난 후 머릿속에 정리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남긴 사랑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많은 이야기와 해석이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던 평범한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당신은 열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239쪽) 너무 평범한 문장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가슴속에 와 닿았다. 타고난 외모로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은 그가 하나의 사랑을 찾는 순간이 추악한 외모를 가진 후부터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도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마리안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모의 허물을 벗고 진실한 자신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는 그를 나타내주는 이 문장이 있기에 그 사랑이 더 가슴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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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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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에게 반하게 된 것은 두 편의 소설 때문이다. 문학상에 혹하지만 좀처럼 재미있게 읽지 못하던 나에게 <암스테르담>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은 <속죄>는 이 작가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런 감정은 작가의 책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올 때면 언제나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읽고 싶어지는 작가가 늘어남에 따라 기억 속에만 남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하루키의 소설도, 에코의 신간도, 미야베 미유키의 새 번역도 그렇다.

 

토요일.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이다. <일요일들>이란 일본 소설 때문에 한 동안 토요일이란 잘못된 제목으로 기억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왜 나 자신이 "들"이란 단어를 붙였는지 모르지만 작가의 다른 책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문장은 단문이 아니다. 긴 호흡의 문장으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데 쉼표가 긴 호흡의 흐름을 잠시 쉬게 만들면서 그가 풀어내는 감정에 빠져들게 만든다.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하루 동안의 이야기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시간과 공간을 확장한다. 이 시간의 넘나듦은 작가가 잠에서 깨면서 마주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끝까지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가 눈을 뜬 새벽, 한 대의 비행기가 추락한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그 사고를 본 것이다. 새벽의 어스름이 채 물러나지도 않은 시간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내려왔을 때 나온 뉴스에 아직 속보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사건과 더불어 그를 하루 종일 사로잡는 행사 하나가 있다. 바로 영국이 미국과 함께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결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가 예정된 날이 그 토요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은 그의 행동과 심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알게 모르게 그 일들은 하루 일과에 스며들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40대 후반의 그는 뛰어난 뇌 외과의다. 그의 행동과 심리묘사를 보면 만나는 사람들을 한 명의 환자처럼 분석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냉철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시각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나를 만난 의사가 이런 분석을 하면서 나를 대한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습관은 나중에 그를 좋지 않은 상황으로 몰아가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몸에 붙은 이런 의사로서의 습관이 쉽게 사라지기는 힘들다. 그래서인지 그의 외면은 내면의 따스함과 열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열중하다보니 세상을 보게 되는 시각은 경험에 기반을 두게 된다. 자신이 만난 환자의 경험에서 반전 시위를 해석하고, 이라크의 현실을 이해한다. 나이가 들게 되면 경험이 쌓이게 되고, 이런 경험의 축적은 사물을 이해하고 해석할 때 냉철하고 분석적이고 따스한 마음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그가 딸과 토론하는 장면에서 느낀 점이다.

 

토요일 하루 그가 겪은 일은 어쩌면 많지만 일상의 삶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듯한 주변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나고, 분노는 한계에 달하고, 공포는 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현재에서 바라본 과거는 아름답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그러다 발생한 하나의 사건은 그의 삶을 뒤흔든다. 사실 이 장면을 마주하면서 그 냉정한 대처에 놀랐다. 그리고 그 사후 처리는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조금 이해가 되었지만 그 과도한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몰랐다. 하루의 여정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삶과 가족과 사랑과 사회에 대한 모습들은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울려 퍼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느낀 것이지만 나에겐 이언 매큐언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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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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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책을 선택했다. 최고의 활극소설이란 말에 혹했다. 그러나 약간 삐딱한 내가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왜 그런 입소문이 났는지 알게 되었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술술 넘어간다. 매력적인 주인공 앙드레 루이의 변신은 이 이야기에 가속도를 붙여준다. 세밀하게 분석하면 약간 어색한 대목도 있겠지만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그의 대활약은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한다.

 

처음 소설이 나온 것이 1921년이다. 그 후 두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 소설 속 배경인 프랑스 혁명이 더 관심의 대상이다. 유럽사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온 그 혁명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니 자연스럽게 프랑스 혁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혁명은 부수적이다. 작가는 혁명에 찬성하지만 그 혼란의 시기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인물들의 등장이 괜히 반가운 것은 아직 내가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쉽게 빠져들었다.

 

앙드레 루이는 시골변호사 출신이다. 만약 절친한 친구 빌모렝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냥 “조롱할 줄 아는 재능과 세상이 미쳤다는 생각을 갖고 태어났다”는 말처럼 한적한 시골에서 혁명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죽는 순간 그는 귀족 다쥐르 후작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그 맹세를 단숨에 실천할 권력이 그에겐 없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돈키호테가 풍차에 돌진하는 것처럼 무모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에겐 자신도 몰랐던 재능이 있었다. 사람을 선동하는 언변이다. 이제 그는 돈키호테가 아닌 풍차를 돌리는 바람으로 변한다. 우연히 발견된 재능은 특권계급에 의해 수배자로 전락하게 만들고, 그는 여동생 같은 알린의 도움을 도망친다. 여기서부터 변신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책의 제목인 스카라무슈 역을 맡은 배우에서 검객까지.

 

소설의 재미는 빠른 전개와 주인공의 성공에 있다. 물론 그의 숙적인 다쥐르 후작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서 늘 성공하는 그를 보면 좌절이란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웅변으로 군중을 사로잡고, 처음 올라간 무대에서 관객을 휘어잡고, 검을 쥐고는 최고의 검객이 되었다. 중간 중간 그의 바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도망을 다니기는 한다. 하지만 이 도망은 언제나 그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점이 흠이라면 흠이기는 하다. 긴장감이 약하고, 뒤로 가면서 너무 뻔하게 비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현대의 스릴러나 모험소설과는 궤를 달리한다. 시대가 다르니 당연하지만 쉽게 읽히는 문장과 빠르게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냉소주의자가 역사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서 성장하는 모습은 그의 숨겨진 열정만큼 강렬하다. 그 변혁의 시기에 단순히 끌려 다니지만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모습은 그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냉소적인 외면 속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열정은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 속에서 더욱 빛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공부할 기회를 제공한다. 비록 나의 무지로 한계에 부딪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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