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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한 가지 정보 오류부터 바로 잡고 가자. 뒤표지에 나오는 인기 장편 순위에서 1,2위를 다투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정확히는 평론가들의 순위다. 이 정보를 보고 처음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한때 판타지, sf순위에서 1,2를 다투던 것이 <반지의 제왕>과 <엔더의 게임>이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의 후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면 기억이 잘못되었다고 나의 기억력을 탓했을 것이다.
젤라즈니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것은 역시 그의 장편 <앰버 연대기>다. 역자는 이 소설을 <내 이름은 콘래드>, <신들의 사회>와 같이 sf신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역시 <앰버 연대기>다. 판타지와 sf가 교차하고, 그 경계를 걷는 주인공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앰버 연대기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이 소설도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지 않았다면 어떨까?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이 중편이나 장편으로 독립될 수 있다. 1부는 주인공 싱어가 외계의 암살자를 막기 위해 자신이 사냥한 변신수를 풀어서 사냥하는 내용이고, 2부는 사냥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그가 사냥감으로 변한 후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2부가 더 재미있었다. 1부의 내용은 전개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전개와 설정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집중이 필요했다. 그리고 예상을 깨고 너무 간략하게 마무리되면서 혹시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도 생겼다. 젤라즈니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다보니 그의 특징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전투 장면에 세밀한 공을 들이는 작가가 아님을 말이다.
2부에선 사냥꾼과 사냥감이 바뀐 현실에서 싱어와 캣의 관계, 이 둘을 둘러싸고 싱어를 도우려는 텔레파스들의 노력과 시도가 싱어의 변화 속에서 속도감 있게 다가온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선 나바호 인디언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나바호 인디언의 신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소설들과 함께 sf신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한 모양이다. 평론가들이야 작품을 하나씩 분석해야 하니 이런 분석이 의미 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얼마나 그 신화가 소설 속에 재미있게 녹아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잘 녹아있다. 그리고 토니 힐러먼에게 책을 헌정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원제목은 <EYE OF CAT>이다. 여기서 캣은 싱어를 사냥하는 외계 변신수인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무력하고 권태로운 삶을 살던 그를 바꾸어놓은 존재다. 캣은 놀라운 변신 능력도 있지만 텔레파시로 마음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중심은 대부분 싱어를 따라가는데 가끔 등장하는 캣과의 대화는 싱어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둠과 아픔을 건드린다. 사냥감이 되어 도망가면서 공포를 느끼고, 놀라고, 긴장하면서 그는 점점 나바호의 원형을 찾는다. 과거와 달리 뒤바뀐 두 존재의 내면과 상황이 주는 재미와 판타지와 결합한 SF가 주는 재미가 공존한다. 대충 보면 간략한 서술이나 묘사 같지만 좀더 집중해서 문장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세밀한 풍경이 그려진다. 그럴 때면 속도는 뚝 떨어진다. 하지만 잘 몰랐던 재미를 발견한다. 중간 중간 나오는 뉴스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시대 풍경을 , 생략된 사건의 결과를 알려준다. 재미난 장치다.
길, 걷는다, 달린다. 이 단어들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다가온 것들이다. 이 단어들 때문에 <앰버 연대기>를 많이 연상한 것도 사실이다. 판타지와 SF의 결합이라기보다 그 경계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단어들 때문이다. 싱어가 자신을 찾아 길을 걷고, 달리듯이 나 자신도 책을 걷고 달리는 속도로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