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아이, 지구 입양기
데이비드 제롤드 지음, 정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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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머리에서 아이가 화성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어린 아이가 왜 자신을 화성인으로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이 아이 데니스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려주면서 작가 자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데니스를 입양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근데 이 과정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데니스의 과거와 수많은 이력들은 작가 자신이 과연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첫눈에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느낀 그지만 현실의 진행은 결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이 진행 사항을 작가는 결코 무겁지 않게 그려내면서 한 화성아이를 지구인으로 돌려놓는다.

 

입양. 아직 우리의 풍토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들이 자신의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은 논외로 하고, 게이인 작가가 아이를 입양하고, 자신과 데니스의 간격을 좁혀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에 집중하자. 입양을 두고 자신과 사회복지사의 시각 차이를 보여주는 문장 “그들은 다만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에서부터 느낌이 팍 왔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과 아이를 단순히 일로써 입양시키려는 사람의 차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하면 일이기 때문에 좀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뒤에 가면서 작가가 느끼는 불안과 현실에서, 데니스가 거쳐 온 삶의 모습에서 더 명확해진다.

 

작가가 과잉 행동 장애, 알코올성 태아 증후군, 정서 학대, 신체 학대를 겪은 데니스를 입양하기 전후에 느끼는 불안에서 입양을 둘러싼 현실을 보여준다. 아이를 간절히 원해 입양을 한 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를 포기하거나 학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러니 사회복지사가 일로서 냉정하게 접근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감정은 늘 이성보다 먼저 움직이기 마련이다. 냉정하게 현실의 이런 저런 상황을 분석하기보다 그들의 접근 방식에 순간 울컥한다. 그리고 작가의 불안감과 아이와의 벽을 조금씩 없애는 과정을 통해 성공의 한 사례를 보게 된다.

 

책은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입양 전의 진행사항과 입양 후 행복하기만 했던 때와 2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힘겨운 시기다. 진행사항은 앞에서 많이 이야기 했으니 제외하자. 입양 후 그와 아이는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게이 아빠와 살면서 가족이란 것에 적응하는 모습은 행복 바로 그 자체로 보인다. 중간 중간 조금씩 마찰이 있지만 품어져 나오는 행복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심하게 변한다. 바로 이때가 2년이 될 무렵이다. 이 2년이란 단어에 아픔이 묻어있다. 데니스는 작가를 만나기 전 어디에든 2년 이상 머문 적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이 행복이 언제나처럼 2년이 지나면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가방을 싸고, 아빠의 소중한 물건을 부수고, 불안한 마음을 과격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 순간을 지금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부터 아려온다. 읽을 당시는 그냥 아픈 정도였는데 지금 다시 그 문장을 읽으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8살 아이가 느낀 그 2년이란 시간에 말이다.

 

작가의 이력 때문에 가끔 나오는 sf작가들은 반가웠고, 지나간 시간 속에서 작가가 아이를 입양을 통해 느끼는 행복은 나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도 생겼다. 미국에서 자신이 화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은 듯한데 나 자신도 어린 시절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와 우리나라 아이들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즐겁고 재미있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아픔은 데니스의 과거 속에서 강하게 품어진다. 작가가 느끼는 입양으로 가족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문장이 소설 속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어 준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선택이어야 한다. 헌신은 양방향에서 오는 감정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양은 그저 또 다른 시설, 또 다른 살 곳에 불과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입양이 특별하길 원했다. 테니스도 선택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이를 원하는 만큼 데니스도 나를 원하길 바란다.”(67~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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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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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지를 보면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의 결합이란 문구가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겐 정말 대단한 유혹이다. 그리고 2007 페미나 상 수상! 이란 문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작가가 페미나 상을 받은 작품은 <영화의 입맞춤>이다. 출판사의 의도적 실수일까? 그리고 도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될 수 없는가? 하고. 이런 단서는 소설을 읽으면서 끝까지 되새겨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직설적으로 풀어내면 여장을 한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는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비극과 슬픔이 이 문장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화자이자 주인공 펠릭스가 운영하는 아쥐라 보험 고블랭 대리점에 화재 사건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고객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화자는 현장에 달려간다. 집은 불타고, 그 집 한 곳에 살던 모녀의 생사를 걱정하는 고객을 만난다. 하지만 화재 현장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다시 현장에 와서 그 집을 둘러보고 간 것도 이유가 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 자동차 뺑소니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 사고의 여파는 펠릭스의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그를 불안하게 여긴 직장 동료들이 그에게 휴식을 제안한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잃은 아들 콜랭에 대한 회상과 추억에 빠지고 삶은 평범함을 벗어난다. 그리고 그 사고에 대한 의문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추리하게 만든다.

 

작가는 단순히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슬픔이나 범인 찾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콜랭과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아들 때문에 변하는 아버지에 무게를 더 둔다. 아버지 없이 자란 그가 아이를 낳고 사라진 아내의 부재로 인한 고생과 아들을 키우면서 누리는 기쁨을 표현하면서 은근히 슬픔과 비극을 깔면서 뒤에 나올 충격을 조금씩 쌓아놓는다. 그리고 아들을 키우면서 점점 변하는 그의 내면적 외면적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외양은 아들이 바란다는 이유로 엄마로 분장하게 되고, 내면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두 번째 본성을 발견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처음 바뀐 모습에 혼란을 느낄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자신을 진짜 여자와 동일선상에 놓고, 아이에 대한 애정을 점점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냥 여장을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 과정에 아들에 대한 강한 소유욕은 문제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추리문학이란 말에 어떤 것을 추리해야할 지 많이 생각했다. 도입부에 나온 사라진 모녀일까? 아니면 점점 변하는 펠릭스의 정체일까? 그도 아니라면 뺑소니 범인에 대한 정보일까? 이런 의문은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가정을 세우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뒤로 가면서 무참히 깨어진다. 기존 추리소설에서 본 장면을 대입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가정에서 하나의 답은 맞추었지만 다른 하나는 너무 생각이 많았던 탓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소설 전반에 흐르는 비극과 슬픔과 놀라운 마무리는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단서를 흘려보낸다. 또 이 과정들이 읽는 나로 하여금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끝으로 오면서 점점 확실해지는 비극의 실체는 한 남자의 과도한 애정과 소유욕에서 생긴다. 그 비극에 놀라움이나 아픔을 느끼기보다 강한 슬픔을 느낀다. 아! 립스틱 ‘붉은 애무’를 짙게 바르고 길을 나서는 그의 모습은 비극의 중심에 나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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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본즈 모중석 스릴러 클럽 16
캐시 라익스 지음, 강대은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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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즈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만약 이 책이 두 번째 작품이었다면 아마 첫 번째 작품인 <본즈 : 죽은 자의 증언>을 읽은 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스카페타 시리즈를 순서에 상관없이 본 적이 있고, 두 작품 사이에 많은 작품이 있어 주저 없이 이 소설을 선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의학과 고고학이 만났다는 정보에 귀가 솔깃하였다. 몇 년 전 제임스 카메룬이 예수의 무덤을 발견하였다는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을 기억하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법의학을 다룬 수많은 장르가 있다. 그 유명한 스카페타 시리즈와 링컨 라임 시리즈를 비롯한 소설부터 드라마 CSI 시리즈까지 포함하면 그 사이 사이에 엄청난 수의 법의학 관련 소설이 있다. 그 수많은 작품 속에서 장르문학이 비교적 약한 한국에서 연속으로 출간된다는 것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자 어느 정도 우리와 맞는 점이 있다는 의미다. 이 이유에 동의한다. 세계화가 되면서 인터넷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미국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요즘 흥행이 되지 않으면 다음 시즌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서 시즌 4까지 나온 것을 보면 그 재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보고 싶었다.

 

소설에 집중하자. 법의학과 고고학의 만남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다. 팩션이 주는 재미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에 음모나 새로운 가정을 도입함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과정을 통해 가정에 신뢰성을 부여하고, 그 학설을 용납하지 못하는 세력과의 충돌로 긴장감과 흥미를 고조시킨다. <다 빈치 코드> 이후 하나의 공식처럼 많은 소설들이 답습하고 있는 내용이다. 한데 이 소설은 그런 과정을 밟지 않는다. 음모론이나 새로운 악당을 등장시키기보다 고고학적 발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법의학적 지식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흥미를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심어놓을 수도 있지만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중심으로 구성하다보니 약간 밋밋한 감도 있다. 그러나 좀더 신뢰가 생기고, 억지스럽지 않은 전개로 빠른 속도로 읽힌다.

 

이야기는 한 유대인의 시신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의문이 있다. 일차 현장 검사에서 자살로 처리하였다. 하지만 시체의 두개골을 재구성하는 과정에 전형적인 킬러의 살인 방식과 닮았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이 시체가 죽은 원인을 알려주는 이상한 한 장의 사진을 넘겨받는다. 여기서부터 법의학과 고고학이 만난다. 그 사진은 마사다 유적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 속 유골이 예수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만나게 되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옴에 따라 사건의 무대는 이스라엘로 옮겨진다. 이야기는 법인을 찾는 것도 있지만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팩션과의 조용한 결합을 시도한다. 과연 그 유골은 예수의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작가는 계속 묻고, 의문을 제시하고, 이 발견을 둘러싼 의미를 말하며 새로운 적을 암시한다. 이야기의 무게가 한 남자의 살인자를 찾는 것에서 유골의 정체로 옮겨진다. 그리고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과 발견과 의문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전체적으로 강한 자극을 주는 부분은 거의 없다. 엄청난 트릭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 빈치 코드>처럼 세상을 뒤흔들 학설을 음모론으로 치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유골이 있는 현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법의학 지식과 추론은 법의학 문외한도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거기에 예수의 유골을 둘러싼 논쟁은 호기심을 부추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빠르게 읽히고 재미난 소설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세 종교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그 유골에 대한 답을 미루어 놓고, “역사적 사실들을 세 종교가 선호하는 정통 신앙에 짜 맞추기 위해 다르게 해석하고 모순된 사실들은 부정했다”고 지적하는 수준으로 강도를 낮춘다. 이 덕분에 마지막에 강한 뭔가를 기대한 독자로 하여금 힘이 빠지게 만든다. 어쩌면 부정확한 학설을 따르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보다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살인사건에 대한 긴 설명과 더불어 아쉬움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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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4 로마사 트릴로지 1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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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해리스가 전작 <폼페이> 이후 다시 로마시대로 돌아왔다. 이번 소설은 그 유명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로마 공화정 마지막 보루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 그다.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 시대의 로마 인물들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가장 거대한 이름을 남긴 한 명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비롯하여 술라 이후 로마를 휘두른 폼페이우스, 유명한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억만장자 크라수스 등을 등장시켜 웅장한 역사 소설의 한 장을 마련했다.

 

키케로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웅변과 공화정에 대한 헌신이다. 이것은 아마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황제로 올라가려는 것을 반대한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의 정치적 기반을 생각하면 공화정에 대한 그의 헌신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도 나오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의 성공이다. 체제 속의 성공을 바란 그가 체제를 뒤엎고자한 카이사르의 반대편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비록 그가 카이사르와 크라수스와 함께 그 유명한 제1차 삼두정치 협약을 맺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역사의 흐름에 의해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사소설은 과거의 한 시점과 실존인물을 등장시켜 허구와 적절하게 섞어 풀어내어야 한다. 그 시대가 너무 밋밋하다면 읽는 사람들이 지루해할 것이고, 너무 복잡하다면 그것을 제대로 풀어내는 고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로마 공화정 말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바로 복잡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은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기 바로 직전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그 격동의 시기는 거대한 흐름으로 인해 변화가 요구되던 때이고, 그리고 바로 그때 희대의 인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에선 아직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직 로마에 카이사르의 이름과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삼부작 시리즈가 계속 나오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그와 함께 수많은 논쟁과 대립과 갈등과 연합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어 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삼부작 시리즈가 빨리 나와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함께 서양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 한 명으로 손에 꼽는 인물인 카이사르를 더욱 깊숙이 파헤치길 바란다. 아마도 그를 등장시킨다면 이야기는 더 긴장감을 주고 긴박하게 흐르지 않을까 살짝 미루어 짐작해본다.

 

이 모든 이야기는 키케로 본인의 입을 통하지 않고, 그의 노예이자 충실한 기록자이자 비서였던 티로,M.틸리우스의 기록을 통해 전개된다. 티로 그 역시도 녹록치 않은 명성의 저자이며 속기술의 창안자라고 한다. 현대에 남아 있는 키케로의 저술 모두가 그의 속기술의 유산이라니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록과 역사가들의 저술을 바탕으로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멋진 한 편의 역사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두 2부도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원로원 시기고, 2부는 집정관 시기다. 1부의 주요 사건은 베레스 반박문을 중심으로 한 법정 스릴러와 비슷하다. 당시 최고의 변호사였던 호르텐시우스의 대결과 부패가 만연했던 그 시절을 배경으로 멋지게 재구성했다. 부유하지도 않고, 원로원에 들어가기 위해 부유한 집 딸과 정략 결혼한 그가 젊은 시절 웅변을 배우기 위해 파도치는 바다에서 목을 가다듬었던 모습 등을 간략하게 서술한 후 성공을 위해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귀족들과 한 판 싸움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적들도 많고, 자료를 모으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한데 그는 가지고 있는 재산이 없다. 그러니 부유한 아내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도박을 위해 베레스가 가혹하게 수탈하고 로마 시민을 살해한 시칠리아로 가서 자료를 수집하고 증인을 모으는 과정은 현대 법정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현대적으로 전체적인 이야기를 각색한 것 같다. 분명 큰 흐름 속에 그 시절의 법정 장면을 제대로 재연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장면은 현대 법정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는 생각보다 편하게 읽힌다.

 

그 당시도 역시 증거만으론 부족한 모양이다. 부패가 극에 달한 그 시절은 배심원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같은 귀족이란 이유만으로 상대편을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상황에서 키케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다. 이때 나타난 폼페이우스의 존재는 그의 정치 생명을 걸 중요한 도박과도 같다. 그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웅변가라고 하여도 법과 권력으로 똘똘 뭉친 적을 물리치기에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적은 당시 최고의 변호사였던 호르텐시우스가 아닌가!

2부에선 조영관 시기에서 집정관으로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사실 이 시기는 로마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역사의 표면에 이름을 내밀던 시기다.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하지만 아직은 그가 전면에 나올 정도의 경력을 쌓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영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 거인의 젊은 시기를 키케로와 직접 연결하기보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어준다. 그 하나는 로마를 공격한 해적을 물리치기위한 총사령관 선거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사르 평전에서 본 카이사르의 정치적 승부수 중 하나였던 공유지를 로마 시민에게 불하하는 일이다.

2부의 시작은 사실 비극으로 출발한다. 그것은 그의 절친한 조언자이자 후원자였던 루키우스의 죽음이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1부가 법정 스릴러와 같다면 2부는 혹시 탐정 역할을 하는 키케로의 모습을 보지 않을까 조금은 설레었다. 요즘 역사 속 인물들을 탐정으로 기용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에 살짝 기대도 해보았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기대를 뒤로 하고 역사의 흐름 속에 키케로를 던져놓는다. 그리고 그의 정치 성향을 알려주는 사례를 풀어놓으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내밀어놓는다.

 

베레스 사건에서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지만 2부에선 좀더 노골적으로 나온다. 정의보다 자신의 이익에 더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정의를 위했다면 정치보다 철학이라는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가혹한 징수로 고생한 전통적 적국인 가울인 대신 폰테이우스를 변호함으로써 그 실체를 더욱 명확하게 한다. 이 사건은 루키우스의 죽음과도 연관성이 있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를 그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 성공을 위해 다시 폼페이우스와 결탁을 한다. 여기서 이 소설 처음으로 카이사르의 영향력이 조금씩 드러난다. 아직은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이 둘의 대결과 관계는 정말 복잡하고 대단하다. 아마도 무수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야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집정관에 대한 집착은 다시 한 번 더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게 한다.

 

역사소설이다 보니 역사에 조금만 지식이 있다면 이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읽는 이들의 느낌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은 똑같은 시나리오를 주어도 감독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화들로 만들어지는 것과 똑같다. 거장들은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집어넣고, 긴장감을 살리고, 배우들을 개성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감독들은 빛나는 시나리오조차 졸작으로 빛을 잃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살려내면서 역사적 사실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부 사항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면서 재미를 극대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도 있다. 1부에 비해 2부가 긴장감이 떨어지고 조금은 산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극적인 클라이맥스로 몰고 갈만한 사건이 없는 것도 이유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카이사르와의 대결을 위한 전초전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나 자신이 이 소설의 다음 시리즈가 빨리 나오길 더욱 바란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로버트 해리스는 그의 팩션에 대한 나의 믿음에 제대로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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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더링
앤 엔라이트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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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39회 맨부커 상 수상작이다. 영어권 최고의 상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 상이다. 이 상을 수상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몇 권은 정말 어려웠고, 몇 권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럼 이 소설은 어떨까? 읽는 내내 상상과 현실의 교차 속에서 그 명확한 실체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왠지 모르게 뭉실하게 다가오면서 조금은 힘겹게 읽었다. 그리고 윤정모 씨의 ‘슬픈 아일랜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화자 베로니카의 오빠 리엄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화자는 그 자살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과거의 흔적을 좇는다. 이 과정은 결코 사실적이지 않다. 상상력이 발휘되고, 자신의 감정이 개입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설은 쉽고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그 상황을 한 번 더 음미하고,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의 삶까지 활기차지 못한 현실은 그 죽음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 답을 찾지 못할 때 과거로 돌아가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베로니카도 현실에서 리엄의 자살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과거의 한 사건을 삶의 일탈과 변화의 시발점으로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할머니인 에밀리와 어머니의 과거를 되짚어온다. 그 추적은 어쩌면 사실일 것이고, 어쩌면 단순히 그녀의 상상일 수도 있다. 할머니 에밀리와 관련된 두 남자의 이야기는 대부분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 삶의 한 경험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머니다. 초반에 존재가 너무 희미해서 그 윤곽만 보인다고 했다. 살아있고 열두 아이를 낳은 그녀가 존재감이 없다니 이상하다. 열두 아이를 낳고 일곱을 유산한 그녀에게 아이들이란 어떤 존재일까? 최소한 베로니카에겐 그 어머니가 자신의 성장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베로니카의 이름을 부르기보다 “얘야.”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어머니와의 관계와 달리 리엄은 함께 성장하고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니 그의 자살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현실 속에서 부족하고 공허한 삶의 공간으로 파고들어 과거로의 긴 여행을 떠난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소설은 자살 소식부터 장례식을 위해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 속에 베로니카의 기억과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리엄에 대한 추억과 상상이 큰 줄기를 이루면서 자신의 과거도 함께 나온다. 그 많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추억 속에서 단편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이것은 장례모임에서 잘 드러나는데 각자의 안부나 현재만 묘사할 뿐 공통된 추억에 대한 회상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공유하나 추억은 함께 하지 못하는 형제들의 모임은 결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리고 남편과의 삐거덕거리는 관계는 그녀가 자신을 찾기 힘들게 만든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 그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는데 결코 새롭고 변화 있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운명이고,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함이고, 다시 남편과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 긴 여정은 가족의 해체와 결합이란 현실과 바람을 베로니카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되살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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