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의 수수께끼 밀리언셀러 클럽 81
나가사카 슈케이 외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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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가 18인의 특별 추리 단편선이란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엔 에도가와 란포상 작품집으로 착각을 하기도 했다. 정확하게는 그 상을 받은 사람들의 새로운 작품들이다. 낯익은 작가 두 명과 낯선 작가 세 명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두 명은 아주 좋아하는 작가고, 나머지 세 명은 그들의 수상작이 기대된다. 

 

모두 5편이 실려 있다. 작가 당 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신노 다케시의 <가로>였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작품에 시선이 간 것은 이야기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다.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내는 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도련님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에서 과거의 비밀을 암시하고, 새로운 관계를 끌어낸다. 물론 마지막은 너무 조급하고 일방적이다. 마무리까지 좋았다면 정말 좋아하는 단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칼에 찔리고, 그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기존의 소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들이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밀실을 만들어 드립니다>는 밀실을 소재로 만들었다. 밀실을 만들고, 풀고 하는 과정이 책 속에서 말하는 의식의 밀실처럼 재미나기는 하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란 이름에 너무 짓눌린 모양이다. 마지막 살인을 없애고 일상의 재미난 이벤트로 만들었다면 더욱 재미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상복부인과의 장면은 너무 친절하여 현실감이 더 떨어진다.

 

<구로베의 큰곰>에서 심포 유이치의 산악 스릴러를 다시 만났다. <화이트 아웃>에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긴장감을 고조시켰는데 이번엔 이야기 속에 기교를 조금 부렸다. 집중력이 깨어진 덕분인지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그의 특기인 듯한 산악 장면은 역시 뛰어나다. 다만 나 자신이 산악 등반에 너무 무지하다 보니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더 정독을 하면서 놓친 부분들을 찾고 싶은 작품이다.

 

<라이프 서포트>는 기존의 만화 때문인지 설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만화 등에선 자신의 버려진 아이를 찾기 위해 탐정 등을 고용하지 직접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를 개인적으로 고용하여 찾아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선입견에 딸을 찾아가는 과정과 너무 쉽게 추측 가능한 범인은 긴장감을 많이 떨어트린다. 딸을 찾는 과정보다 각각의 과거를 좀더 깊이 파고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두 개의 총구>는 장편으로 나에게 큰 재미를 주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단편이다. 이번 작품도 그의 다른 소설처럼 영화로 만든다면 멋진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길지 않고 공간도 밀폐되어 있어 긴장감을 높이고, 범인에 대한 의문을 더 강화한다면 갇힌 이시야마의 기분에 더 공감할 것 같다. 빠르게 전개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특유의 속도감에 다른 장편에서 보아오던 사회 비판이 빠지면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단편집이라고 하지만 분량을 보면 다카노 가즈아기의 작품을 제외하면 중편 분량이다. 수상 작품집이 아니라서 그런지 조금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다음에 읽게 될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기대에 흥분된다.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주는 작품을 만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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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내게로 왔다 - 이주향의 열정과 배반, 매혹의 명작 산책
이주향 지음 / 시작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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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권의 책과 33개의 사랑이 담겨있다. 나 자신의 사랑이 그 속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그 행동이 의미 없음을 순간 깨달았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고, 아프고, 열정적이고, 냉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다. 나만의 사랑이 아닌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관계 속에 이루어진다. 이 책 속 사랑은 이런 관계의 다양함을 보여주며 사랑의 여러 빛깔을 표현해준다. 나의 사랑을 그 속에서 찾기보다 저런 사랑도 있음을 아는 것이 더 좋은 일일 것 같다.

 

33개의 사랑 이야기는 대부분 책으로 읽거나 보거나 알고 있던 것들이다. 어린 시절 읽으면서 그냥 무심코 지나간 부분도 있고, 자신의 감성과 맞지 않아 그냥 넘어간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저자의 마음을 통해 지나온 이 글들을 보면서 새롭게 느끼고 즐기고 생각하게 된다. 가끔은 내가 너무 책을 날림으로 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도 한다. 혹은 너무 메마른 감성을 지닌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지만 사랑 하나로 세상을 들여다보니 색다른 재미를 준다.

 

사랑은 하나하나 색다른 빛깔을 지닌다. 가끔 다양한 색을 품어내는 사랑이 있지만 전체를 보면 하나의 사랑이다. 한 사랑의 삶이 단순한 것 같지만 수많은 변화를 품고 있고, 일란성 쌍둥이조차 다른 부분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랑도 사람마다 다르다. 단지 무리지어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구분하기 때문에 나누어지고 모아졌을 뿐이다. 이 책도 몇 가지로 나누고 모아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편집용이다. 저자는 책 속에 그 사랑이 이 사랑과 닮았다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느낌이지만 다른 사랑임을 알게 된다. 그 미세하고 미묘한 차이가 재미를 만들어낸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사랑을 사람들은 꿈꾼다. 너무나 멋지지 않은가! 현실은 그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을 지나 만나게 되는 현실은 우리의 일상처럼 다가온다. 일상의 반복에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의 멋진 사랑은 한 순간의 꿈이자 바람이다. 자신이 가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사랑을 만나면 회상에 젖고, 가슴이 아리고, 아름다운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 나오는 수없이 좋은 글들이 있다. 그 중에서 유독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장이 있다. “부활은 아름다운 꽃동산으로의 소풍이 아닙니다. 부활은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편견 없이 세상 모든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입니다.”(124쪽) 여기서 부활대신 사랑이란 단어를 집어넣는다면 어떨까? 그럼 좀더 사랑에 대해 한 발 더 다가가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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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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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가지고 이 소설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글 속에서 실제 드러나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그 이유는 바로 제목 그대로 똥친 막대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백양나무 곁가지에서 나무 막대기로, 회초리로, 똥친 막대기로, 낚싯대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세계를 들여다보는데 그 재미가 솔솔하다. 화자의 위치와 환경이 변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시점과 애정은 변함이 없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의 재미지만 누군가에게 기대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 아쉬움을 준다.

 

마을을 지나가는 기차 이야기로 시작한다. 양지 마을을 지나가는 기차가 기적을 울리는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그 일이 다음에 벌어질 대 모험의 단서가 되는 일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논에서 쟁기질을 하는 소와 그 주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평화로운 농촌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 소는 새끼를 가졌고, 몸이 무겁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기적 소리가 더욱 길게 울린다. 놀란 소를 달아나고, 주인 박 씨는 소를 뒤좇는다. 그러다 돌아와 백양나무 가지를 꺾어 소를 뒤좇는다. 바로 꺾인 나무 가지가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곁가지로 편하게 살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이다. 처음 박 씨가 생각한 것은 꺾은 나무로 회초리로 만들어 소를 때리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소가 얌전해지면서 특별한 용도가 없어졌다. 박 씨와 함께 온 막대기는 집 한 구석에서 뒹굴게 된다. 그런데 나무가 연모하는 박 씨의 딸 재희가 성적이 엉망인 관계로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 회초리를 구하려고 나온다. 싸리나무를 구해보지만 쉽게 빠지지 않다가 이 막대기가 선택된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허나 그의 일은 재희의 종아리를 때리는 것이다. 가슴이 아프다. 재희를 때리는 도구로 변한 후 그는 똥통을 뒤섞는 막대기가 된다. 제목처럼 똥친 막대기가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막대기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그 용도가 바뀐다.

 

이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막대기의 용도가 쓰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것과 흐름에 자신을 맡긴 후 최후의 힘을 짜내어 어려움을 돌파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의미도 각자의 상황이나 경험에 따라 발굴되고, 느껴지고, 드러날 것이다. 인간에게 이를 대입하면 운명이나 상황에 휘둘리는 삶이 먼저 떠오른다. 자신의 삶이나 의도와는 달리 사람의 용도에 따라 이름도 일도 다 바뀌는 모습이 우리의 삶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그리고 최후의 노력으로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노력과 용기는 도식적이지만 재미나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장면이 둘 있다. 하나는 재희가 회초리를 구하려 나왔다가 백양나무 가지를 들고 자신의 다리를 때리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재희가 똥친 막대기를 들고 남자 아이들과 대거리를 하는 장면이다. 전자는 어린 여자 아이의 순진한 속내가 잘 드러나기 때문이고, 후자는 당돌한 행동이 빚어내는 재미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재희로부터 비롯된 행운이었다고 하는 대목이다. 그 연모의 감정은 알지만 예찬으로 변하면서 변화의 인자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기보다 다른 존재에 의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산의 그림과 함께 많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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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좌파 선언의 전략
사민+복지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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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사건과 논쟁과 경험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당시나 지금이나 부정적으로 보았던 현상을 새로운 시선에서 다시 보는 계기도 되었다. 이제 좌파도 새로운 시각과 현실의 폭넓은 인식으로 변해야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금의 경제, 사회 현실을 보면 대한민국이 가고 있는 막다른 길이 눈에 선하기에 이런 논쟁은 좀더 활성화되고, 올바른 합의로 이어져야할 것 같다.

 

사실 지난 대선과 총선은 한국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수 우익(?)은 강하게 단결하였고, 좌파를 자칭하는 세력은 사분오열로 쪼개졌다. 그 결과는 한나라당의 대승이다. 지금 아무리 민심을 욕하고 탓해도 그 당시 결정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돌아보고 반성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내세운 수많은 정책들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가 있던지 그들을 지지했던 나마저 그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 중 일부를 이 책 속에서 만나며 한국 좌파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더 절실히 느꼈다.

 

책을 엮은 이들은 사민+복지기획위원회라는 조직이다. 이들은 새로운 좌파를 모색하고 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이 책이다. 다양한 저자가 등장하여 다양한 논의를 제공하는데 최종 종착점은 복지국가로 보인다. 하지만 세부내용으로 들어가면 저자들마다 조금씩 혹은 기본 방향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기존의 진보세력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여전히 혁명주의적 사고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순간 가슴속이 철렁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구 결과들에서 현실과 유리된 그들의 정책이나 주장들이 왜 생겨났는지, 왜 그렇게 극우민족주의자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는지, 민주노동당이 왜 갈라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여기서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정의를 보자. 그들은 ‘모든 이념은 상대적으로만 진리’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며, 사회는 이념을 달리하는 다양한 이해집단과 정치 세력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각자 나름의 존재가치와 진리성을 가지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하나의 절대선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인민의 복지에 초점을 많이 맞춘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도그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386세대가 급진적 신자유주의 개혁에 크게 저항하지 않을 것을 민중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양식과 세계관에 비추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이종태 씨가 말하는 대목에서 오랜 세월 동안의 의문이 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사회적 양식이나 세계관이 변질된 것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격한 학생운동으로 감옥을 다녀온 선배가 대기업에 취직을 한 후 기업의 이익을 위해 최일선에 나서 민중을 짓밟는 현실을 보아온 나에겐 쉽게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가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중 하나가 한겨레신문에 실린 한 여성의 수기에 대한 글이다. 취업실패와 취업사기에 절망하고 6개월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그녀가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못하고 난 후 자본주의 사이클 안에 속해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 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녀 같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유지에 봉사한다고 지적하는데 순간 가슴이 뜨끔하였다. 비정규직에도 분명히 행복이 존재하지만 늘 고용의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 단기간은 만족하는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하는 현실에선 그 노력이 취업보다 더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고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가장 관심이 갔던 주장은 지역계급론이다. 지역에는 계급이 없다고 말하면서 지역을 분석한 그 글은 많은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반드시 주목해야한다. 지역에 존재하는 세 집단인 자영업자, 전업주부, 어르신 등의 엄청난 규모에 눈길을 주고, 전략 차원에서 이들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민주주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자 현실에 뿌리를 둔 정치 인식이다. 심정적으로 이론적으로 진보정당을 옳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벽에 발길을 돌린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에 와 닿는다.

 

가끔 나의 착각인지 작가의 착각인지 모를 문장도 보이지만 이 책은 나에게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정치와 현실의 차이를 더 좁힐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주장하는 복지국가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법은 즉흥적이고 단선적이었던 나의 시야를 좀더 넓혀주었다.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한국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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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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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저 없이 살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놀란다. 인간이기에 욕망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헤매기도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그 한계를 넘어가게 되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설 속 살인자나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살인자와 살해당한 자의 차이라면 그 한계를 누가 먼저 넘는가 하는 시간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문제는 한 장의 유언장 때문이다.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만들어놓은 유언장은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긴다이치 코스케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예상대로 살인이 이어진 것도 바로 유언장과 함께 거부였던 이누가미 사헤 옹의 과거 때문이다. 그의 과거를 다룬 첫 부분에서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 예상은 끝으로 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 유언장이 의도한 바도 명확해진다. 하지만 연쇄살인을 불러오고, 그 살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영화로 세 번, 드라마로 다섯 번이나 만들어진 소설이다. 역자의 말처럼 이 정도로 만들어졌다면 일본 사람들에겐 소설보다 영상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영상은 감독의 시선을 통해서 한 번 걸러지기 때문에 원작의 재미를 완전히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이시의 다른 작품인 ‘악마가 오라고 피리를 분다’를 드라마로 옮긴 것을 보고 단숨에 살인자를 파악하게 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단서를 너무 분명하게 영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원작을 읽고 난 후 영상을 접하려고 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이렇게 많이 영상으로 옮겨진 것은 바로 이 소설이 지닌 공포와 재미 때문이다.

 

추리소설이 전해주는 공포는 살인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누군가가 죽어있다면 조금은 심심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무섭게 연출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와 결합하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바로 이 소설이 그런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특징이다. 소설은 이누가미 사헤 옹의 과거와 막대한 재산, 그리고 딸들에 의해 내쳐진 아들의 존재를 축으로 한 가문 속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충돌과 살인으로 빚어내는 비극을 다룬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구조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그 완숙한 진행은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매력의 중심엔 죽을 사람이 죽고 난 후 문제를 해결하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있다.

 

우리에게 소년탐정 김전일로 유명한 긴다이치 하지메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는 매력적인 탐정이다. 매끈한 외모도 아니고, 사건을 단숨에 꿰뚫어보는 직관도 없지만 연속적인 죽음 속에서 사건의 본질을 찾아가는 그 모습은 굉장히 인간적이다. 또 그의 머리를 벅벅 문지르는 버릇은 약간 허술한 느낌을 주는데 그의 날카로운 추리와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만화에서 그의 손자를 자처하는 하지메도 역시 약간 허술한 느낌은 주는데 할아버지처럼 죽을 사람이 죽은 후 문제를 해결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오죽하면 김전일과 여행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란 농담도 있을까!

 

아직 긴다이치 시리즈를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비슷한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가면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악하고, 다른 가능성도 추리해보지만 역시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살인자의 마음과 살인자를 둘러싼 환경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미는 바로 사헤 옹의 과거다. 긴 단편들을 마지막에 꿰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장면은 어쩌면 맥이 빠지지만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기도 하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도 소년탐정 김전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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